* 마을유래
옛날부터 얘기가 있었다. 구음리 마을 입구에 약 50평 남짓한 연못에서 말이 우는 소리가 아홉번이나 들렸다. 마을 사람들은 말이 아홉번이나 우는 소리가 이상해서 소리나는 장소에 나가 보았다. 그런데 그곳에는 강보에 쌓인 어린아이가 있어 주민들은 이를 신비하게 여기고 마을로 데려와 키웠다. 이 사람이 구음리에 사는 지씨의 시조가 된 것이다. 구음리에 사는 지씨의 가구수는 이제 얼마 남아 있지 않다. 이제 3가구.
그러나 전해오는 말로는 현재 구음리에 살고 있는 어느 성씨보다도 지씨가 먼저 들어와 마을에서 살았다는 얘기는 적어도 이 전설과 밀접한 연관을 갖는다고 추정할 수 있다. 마을이 구음리라고 불렀던 것은 말이 아홉번을 울었던 데서 연유되었다 하며 또 구음리를 지나자면 작은 냇물을 아홉번을 지나야 한다는 얘기도 전하고 있어 사실여부 떠나 흥미로움을 더해주고 있다.
어찌되었든 기록상으로 나타난 구음리는 청산현 황음리에 속해있던 마을로 후에 거포리와 구음리로 나뉘어져 오늘에 이른다. 1739년과 1890년의 기록에는 각각 1백35호와 1백45호가 살았던 기록이 나온다. 구음리라 함은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상 '말이 아홉번을 울어서 정해졌다'는 말 이외에 구비의 '구'자와 구음2리의 황음의 '음'자를 한자씩 취해 이름을 지었다고 전한다.
우선 구음1리의 자연마을로는 '구비'와 '숯가마골'이 있다. 마을 지명상 신기한 것은 분명 면이라는 행정구역이 다른데에도 불구하고 이곳 구비라는 지명과 안남면 지수2리 수동 마을의 지명중 하나인 구비와 같다는 점이다. 여기에서 말하는 지명인 구비(鳩飛)란 뒷산의 지형이 비둘기가 날아가는 형국이라 해서 붙었다는 말이 있다. 구음리에서도 수동에서도 모두 뒷산의 지형을 본떠 구비란 지명을 사용하게 된 것으로 추정된다.
* 마을연혁
구음리는 원래 청산현 서면 황음리에 속해 있던 마을이나 후에 거포리와 구음리로 나뉘었다.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구장리와 거흠리를 합하면서 구장리의 구자와 원래의 이름 황음리의 음자를 취하여 구음리라 하여 청서면에 속하였다가 1929년 청성면에 편입되어 오늘에 이른다. 자연부락으로는 구비, 느름실, 숫가마골 등이 있다.
* 마을자랑비
<구음2리>
우리 황음마을은 동으로는 적덕을 가지고 온다는 덕고개가 있고, 서로는 불로장생한다는 노방골이 있고 북으로는 말이 오곡을 싣고 온다는 말목재가 있으며 남으로는 보청천이 유유히 흐르는 아담하고 포근한 터전으로 자리잡고 있다.
옛부터 이 마을 입구에는 작은 연못이 있었는데 이 연못에서 말의 울음소리가 아홉 번 울기에 동네사람들이 이상히 여겨 나가보니 옥동자가 강보에 쌓여있음을 신기하게 여기고 데려왔다. 후에 이아이가 자라서 휼륭한 인물이 되었고 연못에서 나왔다 하여 지씨의 성을 내려 시조가 되어 황음리가 되었다는 전설이 있으며 약 400여년전 박씨, 이씨. 김씨, 전씨, 유씨, 염씨, 전씨가 모여 마을이 형성되었다.
연혁을 보면 1739년 기록에 의하면 청산현, 서면, 황음리에 속해있는 마을로써 후에 거포리와 구음리로 나누어졌으며 1985년 행정구역개편의 일환으로 구음리에서 구음2구로 분할되었다. 우리마을은1967년 황음소류지가 만들졌으며 1970년대에는 새마을 사업의 일원으로 재건단합 협동을 중시한 모범마을로 국가에서 지정되어 새마을 우수마을로 선정되는 영광을 마을주민에게 안겨주었음. 1990년 구음 경지정리 사업 완성으로 마을앞 뜰이 비옥한 옥토로 만들었으며 1999년 청주지방검찰청 영동지청에서 범죄없는 마을로 선정되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