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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문화 속의 동물 상징
1. 거북
옛 사람들은 거북의 수명이 1천년 이상이라고 생각해서 장수의 상징으로 삼았다. 학자들의 연구 결과, 거북은 척추동물 중에서 가장 오래 살며 2백년 가까이 산 거북도 기록되고 있다. 거북의 장수 비결은 느린 행동에 있다.
땅에서는 물론 물에서도 매우 느리게 이동하는데, 이는 에너지를 절약해 생명력을 연장해 준다. 호흡도 1분에 한 번 정도로 매우 긴 호흡을 한다.
긴 호흡과 느린 행동, 오래 사는 동물들의 특징이기도 하다.
거북은 단단한 등껍질과 배를 가지고 있어 위험한 상황에 빠지면 머리, 꼬리, 다리를 껍질 안에 넣어 자신을 보호한다. 또 물과 땅을 오가며 생활할 수 있는 신비한 능력이 있다.
그래서 고대에는 거북의 등껍질을 태워 그 갈라지는 모양을 보고 하늘의 뜻을 알아냈다.
곧 하늘의 뜻을 알고 있는 신성한 동물로 인식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 문화에서는 거북을 잡아먹거나 함부로 다루는 법이 없다.
어쩌다 거북이 모래밭에 올라오면 잘 대접해서 바다로 돌려보낸다.
다 신성한 동물로 여겨 왔기 때문이다.
이렇게 온순한 동물이 상대를 한 번 물면 아무리 목이 늘어나더라도 절대로 놓지 않는 끈질긴 투쟁력을 갖고 있다.
이런 특성 때문에 황제의 군대 깃발에 용과 함께 그려진다.
곧 용처럼 하늘을 날 수는 없지만 지상의 싸움에서는 결코 지지 않는다는 상징이 바로 거북이다. 이순신장군의 거북선도 이러한 의미에서 서로 연결된다.
결국 거북은 장수, 튼튼함, 싸움에서 지지 않는 불패의 정신, 이런 상징들을 함께 갖고 있는 우리 문화의 대표적 동물들 중의 하나이다.
2. 말
서라벌 어느 숲 속에 흰 말 한 마리가 꿇어앉아 절하는 모양을 하고 있어 사람들이 다가가니 길게 소리쳐 울고는 하늘로 올라갔다. 그리고 흰 말 앞에 놓여 있던 자주색 알에서 한 아이가 탄생하니 그가 바로 신라의 시조 박혁거세다.
이처럼 말은 옛날부터 하늘의 뜻을 지상에 전달하는 심부름꾼으로 믿어졌다.
게다가 말은 인간이 길들인 동물 중에서 가장 빠른 동물이며 주인을 잘 따른다.
전쟁 중에 주인이 죽으면 그 주인을 집까지 모셔온다던가, 또는 주인을 따라 굶어죽었다는 전설과 함께 그러한 말무덤이 여러 곳에 전해지고 있다.
곧 의리와 충절의 상징으로서 말을 생각하였던 것이다.
또 신랑이 장가를 갈 때 흰 말을 타고 신부의 집으로 가는 풍속도 있었다.
이도 역시 흰색이 태양을 상징하는 성스러움과 말의 수호신 역할을 함께 묶어 신랑의 앞날에 잡귀가 접근하지 못하도록 한 것이다.
오랫동안 말은 신성한 동물로서 우리 민족에게 인식되었으며 따라서 말고기도 먹지 않는 풍습을 가지게 되었다.
3. 사슴
사슴뿔은 나뭇가지 모양을 하고 있고 봄에 돋아나 자라면서 점점 딱딱한 각질이 되었다가 이듬 해 봄에 떨어진다. 그리고 다시 뿔이 돋는다. 이처럼 자연의 순환법칙을 머리의 뿔로 나타내는 동물은 사슴뿐이다.
따라서 사슴은 땅의 이치와 원리를 갖춘 동물로 여겨졌고 사슴뿔은 영원한 생명력이나 다시 태어나는 재생의 상징으로 쓰여 졌다.
또 사슴은 풀을 먹는 초식동물로 평소에는 온순하지만 짝짓기 할 때는 수컷끼리 뿔을 맞대고 격렬하게 싸운다.
사슴 무리는 우리머리 수컷 한 마리가 다스리기 때문이다. 옛 사람은 우두머리 수컷의 의기양양한 모습을 반영하여 그 뿔의 생김새를 바로 왕관에 차용하였다. 신라시대 금관에 나타난 것이 바로 그것이다.
이러한 사슴의 특성 때문에 사슴은 십장생의 하나가 되었고 특히 흰 사슴이 세상에 나타나면 크게 상서로운 일로 생각했다.
그래서 흰 사슴을 잡아 조정에 올리면 큰 상을 받기도 했고 왕이 스스로 사냥했을 경우에는 신하들에게 잔치를 베풀고 포상했다는 기록이「삼국사기에 많이 보인다.
또 ‘사슴 廘(녹)’자와 ‘녹봉 祿(녹)’자는 중국어로 발음이 비슷해서 같은 의미로 쓰여 진 경우도 많았다. 옛날에는 과거에 급제해서 나라의 녹봉을 받는 것이 가장 큰 출세였기 때문에 사슴 그림은 출세를 해서 잘 살라는 상징으로 쓰였기 때문이다. 거기다 흰 사슴이면 더 말할 나위가 없었다.
4. 개
개는 충직한 동물이다. 야생동물에서 제일 먼저 사람에 의해 길들여졌고 주인을 위해 문지기 역할과 사냥의 동반자 임무를 수행하였다.
원래 야생의 개는 떼 지어 생활하며 지도자에게 충성하고 명령에 잘 따른다.
더구나 냄새를 잘 맡고 소리에도 민감하다.
캄캄한 밤중에도 물체의 움직임을 잘 살필 수 있고 낯선 환경에서도 잘 적응한다.
이런 특성은 주인의 수호자로서 적격이었고 사냥할 때도 아주 유용하였다.
그러기에 사람들은 들개를 잡아 길들였고 서로 의존하며 사는 친구나 식구로 성장하게 되었다. 주인을 지키는 충성심은 도둑을 지키는 방범의 상징이 되고 나아가 사람의 재물이나 건강을 지키는 동시에 나쁜 귀신이나 질병을 물리치는 수호자의 성격마저 지니게 되었다.
실제로 술 취한 주인이 길을 가다 쓰러지고 주위에 불이 나자 이를 본 개가 근처 물가에서 몸을 적신 다음 주인 주변에 물을 뿌려 주인을 구한 다음에 자기는 목숨을 잃었다는 이야기가 전북 임실군 오수리나 경북 선산군에 전해지고 있다.
또한 그 개들의 충성스런 행동이 비석으로 남아 있어 그 진실을 전하고 있다.
결국 개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가치는 주인을 모시고 지키는 것이다.
이로 인해 개의 상징은 ‘충성’이 되었고 민화에서 개가 자주 등장하는 것도 이런 이유이다.
5. 사자
사자는 호랑이, 고양이와 같이 고양이과에 속하는 동물이지만 홀로 살지 않고 무리를 지어 산다. 특히 수사자는 목덜미에 난 무성한 갈기로 위엄을 갖추고 있어 웬만한 동물은 감히 대적할 생각을 하지 못한다.
게다가 사자가 크게 울부짖으면 동물들은 기를 펴지 못한다.
그래서 불교에서는 부처님의 설법을 사자의 포효에 비유한다. 사자가 포효하면 모든 동물이 달아나듯이 불교의 진리 앞에 다른 논리나 주장은 전부 무너져 버린다는 것이다.
우리가 쓰는 ‘사자후를 토한다’는 말은 바로 여기에서 태어난 말이다.
이런 사자가 언제 우리나라에 들어왔을까?
확실한 기록은 없지만 경주의 괘릉에 이미 사자 조각상이 등장하고 있으니 신라시대에는 이미 그 이미지가 수입되었다고 할 수 있다. 더구나 불교가 국교가 되면서 사자는 불법의 수호신으로도 믿어졌고 탑이나 석등 등에 조각물로 나타나게 되었다.
특히 불교의 문수보살은 지혜의 상징이고 사자는 동물 중에서 지혜와 용맹이 뛰어나므로 문수보살은 사자를 타고 등장하고 있다.
결국 사자는 부처님의 상징이나 수호신으로 여겨져 많은 조각물에 나타나지만 주로 불교관련 신앙물에 많이 나타난다는 특징을 갖고 있다.
6. 원숭이
원숭이는 우리나라에 살지 않는 동물이다.
그러나 「삼국유사」에 이미 그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애완동물로 키우지 않았는가 생각된다.
원숭이는 매우 영리하고 재빠르다. 특히 나무를 탈 때는 마치 나비처럼 가볍게 날아다니는 듯 하다. 흉내를 잘 내고 꾀가 많기 때문에 그 점을 높이 평가해서 옛 사람들은 지혜의 상징으로 삼았다.
그래서 고려, 조선시대의 많은 사람들이 과거시험 공부를 할 때 원숭이 연적이나 필세를 사용하곤 하였다. 연적은 물을 담아 벼루에 따르는 도구이며, 필세는 붓을 씻는 그릇이니 원숭이의 지혜로 과거에 합격하기를 기원했기 때문이다.
원숭이는 또 잡귀를 물리치는 상징물로도 쓰였다. 「서유기」에 나오는 손오공이 초능력을 가지고 삼장법사와 함께 무서운 잡귀들을 물리치며 인도에 가듯이 지붕 위에서 벽사의 기능을 수행한 것이 바로 잡상이다. 잡상은 궁궐 건출물 추녀 위에 주로 나타나는데 맨 앞에 삼장법사가 앉아있고 그 뒤에 손오공, 저팔계, 사오정 등이 차례로 앉아 악한 기운을 물리치는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불교에서는 원숭이가 부처님께 공양을 올리고 미래에 부처님이 될 것이라는 예언을 받는 경전기록이 있어 미미한 동물도 모두 성불할 수 있다는 상징으로 쓰여지고 있다.
7. 코끼리
코끼리는 현재 지상에 살고 있는 동물 중에서 가장 큰 동물이고 지능도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인도에서는 전투용으로 코끼리를 길들여 무적의 코끼리 군단을 만들기도 했다.
특히 불교에서는 석가모니의 모친인 마야부인이 여섯 이빨을 가진 코끼리가 몸에 들어오는 꿈을 꾸고 석가모니를 잉태했다고 해서 상서로움의 상징으로 쓰고 있다.
또 보현보살은 코끼리를 타고 등장하는데 문수보살이 지혜를 상징하듯이 보현보살은 행원(行願)을 상징하고 있다.
행원이란 중생을 구제하겠다는 뜻을 세우고 흔들림 없이 꾸준하게 그것을 실행해 나간다는 것이다.
동물 중에서 거침없이 자기가 갈 길을 갈 수 있는 동물은 코끼리이고 이러한 이미지가 보현보살의 행원과 서로 맞기 때문에 보현보살은 코끼리를 타고 등장하는 것이다.
곧 깨닫기 위해서는 지혜와 행원이 함께 있어야 하고 그에 상응하는 보살이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이다. 또는 지혜와 행원에 어울리는 동물이 사자와 코끼리이기 때문에 사자를 탄 문수보살과 코끼리를 탄 보현보살이 자연스럽게 등장하게 된 것이다.
뚜벅뚜벅 두려움 없이 제 갈길을 걸어가는 코끼리가 꾸준히 실천하는 수행력의 상징으로 쓰여진 것은 지극히 당연스런 결과라 하겠다.
8. 학
학을 우리말로는 두루미라고 하는데 우리나라에서 가장 키가 큰 새이다.
몸은 대체로 순백이고 정수리에 붉은 점이 있어 ‘단정학(丹頂鶴)’ 혹은 ‘단학(丹鶴)’이라고도 부른다.
학은 목과 다리가 유난히 길기도 하지만 장수동물로 알려져서 십장생의 하나가 되었다.
그러나 학이 장수동물로 여겨지게 된 것은 신선사상과 연관이 깊다.
바로 남극노인이 항상 타고 다니는 것이 수천 년이나 되는 학이었고 고구려 고분벽화에도 학을 탄 신선이 그려져 있어 오래전부터 학은 오래 사는 신성한 새로 믿어졌던 것이다.
그래서 학은 여러 생활용품에 문양으로 등장하게 되는데 학을 수놓은 베게, 자수에서부터 도자기, 목공예, 건축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다.
또 학은 죽은 물고기를 먹지 않으며 굶주려도 곡식을 먹지 않는다는 이야기가 있듯이 고고함을 상징하는 동물이기도 하다. 이러한 학의 이미지는 선비로서 갖추어야 할 인품이나 성격을 상징하게도 되었다.
그래서 조선시대 문관의 가슴에 다는 흉배에는 학이 수놓아지게 되었으며 선비들은 흰색에 소매와 깃 만 검은색인 학창의라는 옷도 즐겨 입었다. 학은 머리와 꼬리부분만 검기 때문에 그를 본 떠 만든 옷이 학창의이기 때문이다.
결국 학은 장수의 상징과 깨끗하고 고고하게 사는 선비의 정신을 상징하는 새로운 전통문화 속에서 그 생명을 유지해 오고 있다.
9. 꿩
꿩은 우리나라 전역에 살고 있는 텃새이다. 수컷은 화려한 색채의 몸에 긴 꼬리를 하고 있고 암컷은 평범하게 생겼다. 꿩은 각기 무리를 지어 살다가 짝짓기가 시작되는 3월쯤 수꿩들끼리 결투를 벌여 승자를 가린다. 어느 쪽도 도망치는 법이 없으며 끝까지 우열을 가린다.
고구려 사람들은 수꿩의 용맹함을 높이 평가하여 전쟁에 나갈 때 머리에 수꿩의 긴 꼬리를 꽂고 다녔다. 또한 전쟁에서 싸워 승리하고 돌아온 장군에게도 승리의 상징으로 깃털을 꽂아 주었다.
결투에서 승리한 수꿩 한 마리는 많은 암꿩을 거느리고 살지만 일정한 영역을 표시해 두고 그 안에 있는 암컷 하고만 짝짓기를 한다. 이런 이유로 우리 조상들은 꿩을 덕조(德鳥)라고 불렀다. 곧 다른 이의 입장도 생각할 줄 아는 성품을 갖춘 새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꿩들은 평상시 수꿩과 암꿩이 따로 살기 때문에 ‘남녀유별(男女有別)’이라는 조선시대의 윤리에 잘 맞았다.
그래서 민화에서 대개 꿩을 그릴 때 두 마리를 그려 넣어 상대를 배려하며 사는 덕을 강조하였다.
조선시대 왕비의 대례복에는 꿩 136쌍을 자수로 놓았는데 이는 꿩이 암수를 확실히 구분하고(임금이 하는 일과 왕비가 하는 일을 구분하고) 일정한 시기에만 짝짓기를 하며(색을 지나치게 밝히지 않으며) 깃이 화려한 데(왕비의 아름다움을 나타내는 데) 그 이유가 있었다.
그 밖에 암꿩은 모성애가 유난히 강하여 알을 품고 있을 때 그 자리를 떠나는 법이 없다.
심지어 산불이 나도 그대로 타 죽을지언정 알을 버리지 않는다고 한다.
그래서 알을 품고 있는 꿩을 만나면 꿩도 잡고 알도 얻을 수 있어 ‘꿩 먹고 알 먹고’라는 속담이 생겼다고 한다.
10. 물고기
물고기는 글자 그대로 물에 사는 고기다. 모든 생물은 물이 없으면 살 수 없기 때문에 물은 곧 생명을 의미하며 물에 사는 물고기도 생명을 상징하게 되었다.
동양화에서 물고기를 그린 그림이 많이 있는 것은 풍요와 넉넉함을 상징한다.
물고기는 알을 많이 낳으므로 이는 많은 자손을 복으로 여겼던 옛 사람들의 생각과 같은 의미로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다.
사찰의 범종각에는 목어(木魚)라 하여 나무로 만든 큰 물고기를 아침, 저녁 두드리는데 이는 물에 사는 물고기를 깨우치는 소리라고 한다. 목어의 유래에는 이런 전설이 있다.
어떤 스님이 스승의 가르침을 어긴 탓으로, 죽은 후 등에 나무가 돋은 물고기로 다시 태어났다.
이 나무는 헤엄치는데 몹시 고통스러웠고 전생의 잘못을 후회하였다. 어느 날 스승이 배를 타고 지나갈 때 이 물고기가 나타나 지난날의 죄를 참회하면서 등에 난 나무를 없애 달라고 애원하였다. 스승은 그 소원을 들어주고 그 나무를 가져다 물고기 모양으로 만들어 사찰에 매달았다. 스님들이 게을러지는 것을 반성할 수 있게끔 상징물로 만든 것이다.
이 목어에서 그 모양이 점차 변하면서 스님들이 갖고 다니는 목탁이 나왔다.
목어나 목탁이나 스님들이 스스로를 경계하기 위해 여전히 쓰여지고 있다.
물고기는 또 24시간 눈을 뜨고 있어 자물통 모양에 많이 응용되었다 사람이 잠들었을 때도 귀중품을 잘 지키라는 뜻에서 감시자의 임무를 부여한 것이다.
11.잉어
옛날 어머니들은 아이를 잉태하게 되면 방 안에 물 위에서 뛰는 잉어 그림을 걸어 놓았다.
잉어는 황하의 용문 협곡을 뛰어오르면 용이 된다는 전설이 있어 이를 민간에서는 출세를 상징하는 것으로 사용했기 때문이다. 곧 태어날 아이가 남자이면서 출세하기를 바랐던 조선시대 남아선호사상이 남긴 풍속이었다.
잉어가 두 마리 그려져 있는 그림도 역시 ‘과거 급제’를 뜻했다. 조선시대에는 자기가 사는 지역에서 치르는 향시(鄕試)에서 합격한 선비만이 다음 해에 서울로 올라 와 다시 시험을 보았기 때문에 두 번 합격을 해야만 벼슬길에 나갈 수 있었다.
그래서 두 마리 잉어를 그렸던 것이다.
잉어는 또 효도를 상징하기도 한다. 중국의 왕상이라는 효자는 추운 겨울 어머니가 잉어를 먹고 싶어 하자 연못의 얼음 구멍에서 울었더니 하늘이 감응하여 잉어가 튀어나왔다고 한다.
곧 잉어는 효도의 상징동물이 되어 오랫동안 문자도 같은 그림 글씨에 나타나게 되었다.
불교에서도 두 마리 물고기를 마주 보고 그려놓은 상징이 있는데 이는 해탈, 자유를 의미한다. 물고기는 물 속에서 자유롭게 행동할 수 있기 때문에 그러한 자유로움을 해탈, 자유의 상징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12. 오리
오리는 물이 있는 곳에 터전을 잡는 물새이므로 논농사와 관계가 깊다.
오리는 논에서 해충을 잡아먹고 살기 때문에 농부 입장에서는 무척 고마운 새였다.
이런 이유로 오리는 농경민족에게 매우 친숙하면서도 특별한 새였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오리는 떼지어 북쪽에서 가을이 되면 날아왔다가 봄이 되면 다시 북쪽으로 돌아간다. 이 세상과 저 세상을 오고 가는 새, 옛 사람들은 무덤에 오리 모양으로 만든 토기를 같이 묻으며 편안한 저승 여행을 기원하였다. 오리들을 죽은 사람의 영혼을 저승으로 안내하는 길잡이로 여겼음을 알 수 있다.
조선시대 그림에는 오리 두 마리와 버드나무를 그린 작품이 많은데 여기에도 과거시험 합격이라는 내용이 함축되어 있다. 오리는 한자로 ‘압(鴨)’이라 하는 데 ‘甲(으뜸갑)’은 과거시험에서 장원 급제를 하라는 뜻이고 두 마리는 두 번 시험에 연속 합격하라는 뜻이다.
버드나무는 한자로 ‘柳(버드나무 류)’인데 ‘留(머물 류)’와 발음이 같아 결국 ‘으뜸을 차지하라’는 뜻을 담아 낸 것이다.
결국 버드나무 아래 오리 두 마리를 그린 그림은 ‘장원 급제를 연속해서 차지하라’는 의미라고 하겠다.
13. 개구리
개구리는 변화하는 동물이다. 알에서 올챙이로 변신했다가 꼬리가 짧아지고 다리가 나오면서 온전한 개구리가 된다.
옛 사람들은 이렇게 자신의 모습을 바꾸는 개구리를 보면서 매우 신기한 동물로 생각했다.
변신한다는 특징 때문에 상서로운 동물로 생각했고 왕과 같은 존귀한 인물의 탄생담에 상징적으로 등장하게 된다.
부여의 왕 해부루는 자식이 없어 산천에 제사를 지내고 돌아가는 길에 큰 돌 밑에서 금빛 개구리 형상을 한 어린아이를 발견했다. 왕은 이 아이를 하늘이 주신 것으로 생각하여 이름을 금와(金蛙:금빛 개구리)라고 지었고 이 아이가 성장해 금와왕이 되었다. 이는 「삼국유사」에 기록된 이야기다.
이처럼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에는 개구리가 미래를 예언하거나 위험을 알려주는 상서로운 동물로 여러 곳에 기록되어 있다.
선비들이 쓰는 연적에도 개구리 모양이 보이는데 이는 개구리의 새로운 변신을 과거시험 합격에 비유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또한 개구리는 멀리 뛰기 위해서 몸을 움츠리는데 학문의 일취월장을 바라는 소망을 개구리에 빗댄 선비의 마음이라고 하겠다.
14. 나비
나비는 죽은 사람이 환생하는 생물로 등장하는 경우가 우리 민간 설화에 많은데 밀양의 ‘아랑의 전설’이 대표적이라고 하겠다. 아랑이 자기를 죽인 사람을 나비로 다시 태어나 알려주고 복수를 한다는 내용으로 널리 알려진 이 이야기는 요즈음에 밀양의 대표적인 축제가 되었다. 나비가 무엇을 미리 알려주는 예보 기능을 갖고 있다는 믿음은 나비로 그 해의 운수를 점치는 풍속에서도 엿별 수 있다. 예전에는 음력 삼월 삼짇날 아침에 일어나서 처음 보는 나비가 노랑나비나 호랑나비면 그 해에 행운이 오고 흰나비면 불운이 온다고 생각했다.
6,70년대만 해도 아침에 일어나서 처음 본 나비가 호랑나비면 운수가 좋고 흰나비면 운이 나쁘다고 해서 아이들마저도 이 풍속을 따라 점을 치곤했다.
그나저나 나비는 색상과 무늬가 화려해서 아름다움을 상징하기도 하고 쌍쌍이 날아다니는 모습이 보기 좋아 금슬 좋은 부부를 상징하기도 한다.
또 나비는 기쁨과 행복을 상징하기도 한다. 이는 중국의 철학자 장자(莊子)가 꿈을 꾸었는데 꿈속에서 자기가 나비가 되어 행복하게 날아다니다가 깨어나 보니 자기는 장자일 뿐 나비가 아니었다. 여기에서 꿈속의 나비가 자기인지, 아니면 나비 꿈을 꾼 장자가 자기인지 알 수 없는 문제가 발생하게 되는데, 어쨌든 그 나비가 꽃들 사이를 즐겁게 날아다니는 기쁨은 뒷날 나비 문양으로 나타나게 된다. 우리 민화그림에도 기쁨과 행복의 상징으로 자주 그려지고 백접도라 해서 백 마리 나비를 그린 그림이나 병풍도 만들어 졌다.
수미단에서도 역시 나비는 기쁨과 행복의 상징으로 부처님 법을 듣고 찬탄하는 중생으로 나타나고 그 당시 백성들의 희망사항을 대변하는 생물로 나타나게 된 것이라 믿어진다.
15. 거미
우리나라 무속에서 거미는 신이한 존재로 등장한다. 당금애기와 하룻밤을 지내게 된 시주승(부처님께 올릴 공양물을 얻으러 다니는 스님)이 큰 거미로 변해 곁으로 다가가고 둘 사이에서 낳은 세 아들이 나중에 삼불제석이 되기 때문이다.
약한 줄을 이용해 다른 곤충을 잡아먹는 거미의 행동은 대단히 끈기 있고 치밀하다. 게다가 자신이 쳐 놓은 그물에 걸리는 벌레만 잡아먹기 때문에 생물을 죽이는 의리를 아는 곤충이라고도 한다.
큰 거미든 작은 거미든 거미는 정교하게 거미줄을 칠 줄 안다. ‘거미줄 치듯 한다.’는 말은 범인을 잡기 위해 포위망을 빈틈없이 칠 때 쓰는 말이기도 하다.
또 거미는 먹이가 걸려들기를 기다리며 한 곳에서 움직이지 않고 끈기 있게 기다리기 때문에 인내를 상징하게 된 것이다.
불교에서 거미는 ‘마야의 그물을 짠다’고 하는데 마야는 환(幻)을 의미한다. 거미는 자기의 체내에서 나온 실로 거미줄을 치는데 이는 원래 없었기 때문에 ‘마야’라 하고 또 우리 눈에 보이기 때문에 ‘있다’고도 한다. 곧 절대로 ‘있다’고 할 수도 없고 절대로 ‘무’라고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곧 우리 앞에 벌어져 있는 현상계는 본래 없었지만 변화해서 나타난 환상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거미가 거미줄을 치는 것을 마야의 그물에 비유한 것이다.
16. 조개
조개는 여성을 상징하기 때문에 예부터 재생과 풍요를 의미해 왔다. 이는 조개가 새끼를 많이 낳는데다 번식이 빠르기 때문이다.
민속에서는 마을이나 집안에 돌림병이 돌면 조개껍데기를 문지방이나 동네 입구에 매달기도 했다. 돌림병을 병의 귀신 작란이라 생각했고 그 병 귀신이 숫귀신일 경우에는 여성을 상징하는 조개를 걸어 성적으로 만족시켜 내보낼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우리 민화에서는 조개가 높은 지위를 뜻했다. ‘조개 합(蛤)’은 높은 관리의 존칭인 ‘합하(閤下)’의 합과 음이 같기 때문에 좋은 벼슬자리에 나아가라는 뜻으로 조개를 그려주었던 것이다. 이런 뜻으로 그림을 그려줄 때에는 새우와 같이 그려 주는데 새우는 한자로 ‘하(蝦)’라고 하기 때문이다. 곧 조개 합(蛤)과 새우 하(蝦)가 합해서 ‘합하(閤下)’가 되기에 높은 자리에 오르라는 축원이 되었던 것이다.
17. 쏘가리
옛 그림에 쏘가리도 많이 나타나는데 특히 민화의 소재로 자주 쓰였다. 그러나 쏘가리 그림이라도 배경에 따라 그 의미가 달라지게 된다.
복숭아 꽃잎이 떠다니는 시냇물에 쏘가리 그림이 나타나면 이는 중국 당나라 시인 장지화의 「어부가」중 ‘도화유수궐어비(桃花流水鱖魚肥)’에서 소재를 얻은 것이다. ‘복숭아 꽃 물 위에 떠 갈 때 쏘가리는 살찐다’는 뜻으로 한가로운 봄 풍경을 읊은 것이다. 그러나 쏘가리만 그려진 그림은 ‘과거에 급제하여 궁궐에 들어가 벼슬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쏘가리 궐(鱖)’자가 ‘궁궐 궐(闕)’자와 발음이 같기 때무에 그런 의미를 부여한 것이다.
때로는 낚시줄에 걸려 있는 쏘가리도 그리는데 이는 벼슬자리를 꼭 잡고 있으라는 뜻이다. 이런 그림을 선물하여 과거급제와 진급을 빌어주었던 것이 조선시대의 풍속이었다.
또 한 화면에 두 마리 쏘가리를 그리지 않는데, 그 이유는 쏘가리가 두 마리면 궐(闕)도 두 개여서 임금님이 둘이 되기 때문이다. 이는 다른 의미로 해석되어 문제가 일어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참고문헌
김종대,「우리문화의 상징세계」,다른세상,2001
구미래,「한국인의 상징세계」,교보문고,1995
박영수,「유물속의 동물 상징 이야기」,내일아침,2005
허균,「사찰 장식 그 빛나는 상징의 세계」,돌베개,2005
첫댓글 동물들의 속 이야기 많은것을 배우고 갑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