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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개혁시대 이후에 성화의 개념은 다양한 이해 속에서 각각의 견해가 말해져왔다.
1) 종교개혁시대를 거친 개혁주의 교회의 신학에서 보는 성화론.
종교개혁시대를 거친 종교개혁 이후에 성화의 개념은 루터와 칼빈의 신학 사상을 따르는 개혁주의 교회에서 가장 확고하게 정립이 되었다. 그것은 제신조와 교리서에서 분명하게 가르쳐지고 있는 것에서 볼 수 있다. 개혁교회가 세 일치 신조로 삼고 있는 돌트신조, 벨직신조,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서와 개혁주의 장로교회가 신앙의 표준문서로 삼고 있는 웨스트민스터 삼대 표준문서에서 성화를 말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개혁주의 교회의 신학에서 구원의 서정으로 성화 교리를 확고히 가르치고 있다.
개혁주의 교회의 신학에서 성화 교리는 신자에게서 성령의 사역에 의한 성화적인 삶으로 적용되는데, 이는 성령충만과 관계가 있다. 즉 신자가 성령의 도우심에 의해서 성화적인 삶을 산 것은 성령충만 하여 있는 것이요, 성령충만은 신자를 성화적인 삶을 살아가게 하는 것이 된다. 그러므로 신자는 성령의 충만케 하시는 사역을 방해하지 말고 잘 순종해서 살므로 성령충만한 상태를 지속적으로 유지해야 할 책임이 있다. 이때 성화의 과정은 ‘육체의 소욕’과 ‘성령’이 서로 대항하는 전쟁을 통해 실현이 되며, 그 배경에는 중생한 이후에도 중생자의 전 인격의 각 부분마다에 남아 있는 죄의 본성, 곧 성품의 부패성이 자리하고 있다. 성령에 의하여 새로운 심령과 영의 창조함을 받은 중생한 신자들은 전 인격적인 성화를 이루어가기 위하여 부패한 죄의 본성과 거룩한 싸움을 실행하도록 요청을 받는다. 이것은 중생한 신자가 중생한 이후에도 남아 있는 부패한 성품에 의해 범하는 죄의 책임과 형벌은 그리스도 안에서 용서를 받았기 때문에 죄의 책임에서 벗어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죄책과 형벌의 사하여짐의 사건, 곧 칭의의 사건을 전제로 요청이 되고 있는 것이다.
개혁주의 교회의 신학에서 성화 교리는 점진적이며 발전적이다. 이는 칼빈이 칭의와 성화를 직접적으로 관련되어 있다고 보고 참된 그리스도인의 생활은 발전적인 성화의 생활이라고 주장한 데 따른 것이다. 그것은 성화를 일평생 계속되는 회개의 과정으로서의 개념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칼빈은 회개를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회개의 의미는 우리 자신으로부터 떠나 하나님께로 돌이키는 것을 뜻한다. 우리의 이전 마음을(former mind)을 끊어버리고 새롭게 하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나는 회개를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회개란 우리의 삶을 하나님께로 진정 돌이키는 것이다(the true turning of our life). 그 돌이킴이란 순수하고도 진지한 경외심에서 야기된다. 회개는 두 가지 요소로 성립된다. 곧, 육을 죽이는 것(mortification of our flesh)과 영이 소생되는 것(vivification of the spirit)이다. ”
회개는 인간 편에서 보면 하나님께로 그 마음을 돌이켜서 새로워지는 것이나 하나님 편에서 보면 새롭게 태어나는 신생 곧, 중생인데, 이는 개혁주의 신학에서 구원의 서정으로 동시적인 것으로 다루어진다.
칼빈은 성화를 일평생 계속되는 회개의 과정으로 보았다고 생각되어지는 것은 그가 기독교강요 3권 3장 1항에서 칭의, 사죄의 은혜와 더불어 그리스도의 영이신 성령에 의해 성화됨으로써 흠 없고 순결한 생활을 신장(伸張)할 수 있게 되는 중생의 은혜를 주신다고 말함으로써 성화와 중생을 동일한 개념으로 파악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기독교강요 3권 3장 9항에서는 회개를 중생으로 본다. 그러므로 성화와 회개를 같은 개념으로 취급하였다.
뿐만 아니라, 칼빈은 회개의 요소를 육의 죽임(mortification of our flesh)과 영의소생되는 것(vivification of the spirit)으로 말하면서 또한 성화의 요소도 성령의 내주하심으로 육의 욕망이 죽고 영이 소생되므로 하나님의 법을 순종하여(겔36:27-28) 참으로 순결한 생활을 하는 것이기 때문에 회개의 구성요소와 일치한다. 그래서 중생(회개)의 열매는 반드시 성화의 열매로 나타난다.
칼빈은 또한 성화의 궁극적인 목적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순결하여져 하나님께 바쳐지는 것으로 보았는데, 이는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는 중생에 따른 것이다. 그러므로 그는 기독교강요 3권 3장 9항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하나님은 그의 양자로 삼으신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시기를 원하신다. 이 회복은 한 순간이나, 하루나 한 해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고 한 평생이 필요하다. 하나님께서는 계속적으로 어떤 때는 느린 걸음으로 선택된 자들 속에서 육의 부패를 씻어버리며 그들의 죄책을 깨끗이 없애며 그들을 성전으로 바치게 한다. 그리고 그들의 마음을 새롭게 하여 진정한 순결에 이르게 하시고 그들의 평생을 통하여 회개를 실천하며 이 싸움은 죽음이 와야만 끝난다는 것을 알게 하신다. 그러므로 내가 바울을 따라 하나님의 형상을(고후 4 : 4) "의와 진리의 거룩함"이라고(엡 4 : 24 참조) 해석하는 것……은 성장의 여지를 부인하는 것이 아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에 가까워질수록 그분의 형상은 그의 안에서 더욱 빛난다. 신자들이 이 목표에 도달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회개의 경주를 하게 하시며, 평생을 두고 달리도록 하신다.”
개혁주의 신학과 신앙을 말해주는 개혁교회의 제신조와 교리문답서는 칼빈의 성화 개념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다. 따라서 개혁주의 교회의 신학에서 보는 성화론은 일평생 계속되는 과정이라 할 것인데 이는 점진적이고 발전적이라는 견해를 갖는다. 그것은 우리 안에는 타고난 본성의 부패와 아직도 죄악의 불씨 찌꺼기가 남아 있어서 이것이 계속해서 죄의 오염에 우리를 빠지게 하여 믿음의 성장과 거룩한 성품을 방해하므로 육을 죽이고 영이 소생되는 회개의 과정, 성화의 과정이 필요한 것이며, 이 과정을 통해서 온전한 새사람의 모습을 닮아간다고 보기 때문이다. 비록 우리의 회개나 성화가 이 세상에서는 불완전하다 할지라도 우리 안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하나님께서 성령의 힘으로 예수의 날까지 성화의 사역을 계속하실 것이라고 보기 때문에, 벌카우워는 성화를 이루어가기 위한 회개의 과정은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믿음과 기도와 죄의 고백으로 진행된다고 보았다.
후크마는 회개를 예수 그리스도를 처음 영접할 때의 최초의 회개와 그 후 계속되는 회개로 구분하면서 그 계속되는 회개를 성화로 본 것도 성화를 지속적인 진보로서의 성화, 곧 점진적이며 발전적인 성화의 개념으로 이해한 것이다. 이것에 의하면, 죄인의 죄가 용서되지 않고 하나님과 화목하지 못한 상태에서는 믿음이나, 회개나, 중생이나 성화 등은 아무런 의미도 없을 뿐만 아니라, 그것들이 성립될 수 없다. 웨슬레(J. Wesley)가 지적한대로 선행도 칭의 전의 선행은 선행이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도 아니요 명령하신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개혁주의 교회의 신학에서 성화 교리는 다음과 같은 말로 요약된다고 할 수 있다. “오직 믿음으로 의롭게 될 뿐만 아니라, 오직 믿음으로 거룩하게 된다.” 이 말은 성화 과정에서 인간의 행함이 ‘오직 믿음’이라는 채널을 통해서 주어지는 하나님의 은혜로만 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하여서, 오직 십자가만이 칭의의 공로인 것같이 또한 성화의 근거라고 하는 견해이다. 왜냐하면 십자가를 바라보는 믿음으로 죄사함과 의롭다 함을 얻은 것 같이, 오직 십자가의 효력을 의지하는 믿음으로 성화를 이루어간다는 것으로, 십자가에서부터 죄를 이기는 능력, 거룩하게 사는 효력이 흘러나오기 때문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개혁주의 교회의 신학에서 성화 교리는 또한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진행된다. “성화는 칭의의 증거요, 지속적인 진보이다.”
2) 근, 현대 교회의 인물에서 보는 성화론
종교개혁과 그 시대의 개혁주의 교회를 거친 이 후의 근, 현대에 이르는 동안에는 그동안 받아들여온 성화론을 바탕으로 해서 다양한 이해에 의한 여러 주목한 만한 성화론이 말해져 왔다. 이에 대한 몇 사람의 성화론을 보면 다음과 같다.
(1) 죤 오웬(John Owen)의 성화론
죤 오웬(John Owen, 1616-1683)은 영국의 스테드 햄의 옥스퍼드 주에 있는 마을에서 청교도 교구 목사인 헨리 오웬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그리고 12세에 옥스퍼드 퀸즈 칼리지(Queen's College)에 입학하여 19세인 1635년에 M. A(문학석사) 학위를 받았다. 이 당시의 옥스퍼드는 알미니안주의와 고교회신학(High Church Theology)이 지배하고 있었다.어서 이러한 신학이 유행했던 옥스퍼드를 1637년에 떠났다.
오웬은 1637년에 목사가 되었고, 1640년대에 올리버 크롬웰의 자문 목사가 되었다. 1652년에는 옥스포드 대학의 부총장이 되어 온 그는 이 학교를 청교도의 요람으로 만들고자 노력했다. 1653년에 이곳에서 신학박사 학위를 받은 후 그는 성직자 임명 과정을 살피는 감독관으로 임명받아 일했고, 1654년에는 영국 의회 의원으로 피선되어 정부 영역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이 적용될 수 있도록 도왔다.
그는 1656년에 ‘신자 안에 내재하는 죄를 죽임에 관하여’(Of the Mortification of Sin in Believers)라는 논문을 출판하였다. 이것은 그가 대학에 거주하면서 공부하던 당시 12-15세의 학생들을 대상으로 연속 강해 설교한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1660년 이후로 찰스 2세에 의한 비국교도 탄압으로 힘든 나날을 겪게 되자 그는 사역지를 찾지 못하는 가운데 정부의 종교 정책에 대한 반대 입장을 펼치면서 여러 가지 논문을 발표했다. 그는 1680년에 ‘로마카톨릭교회, 결코 안전한 안내자가 아니다’란 논문을 썼는데, 그는 이 글에서 찰스 2세가 성공회의 예배 의식보다는 로마카톨리교회의 미신적인 예배를 영국에 소개하려는 정부의 종교 정책을 비판하였다. 그리고 1681년에는 ‘분열 책임에 대한 비국교도의 변호’라는 논문에서 교회 분열의 책임이 청교도에게 있다는 세간의 지적에 대해 교회 분열의 주범이 영국 교회 당국에 있음을 고발하였다. 그러나 1683년에 찰스 2세의 비국교도에 대한 박해가 다시 시작되고, 옥스퍼드 대학에서 오웬의 책들이 불살라졌다. 그는 말년에 심한 천식과 담석으로 고통스러운 날을 보냈으며, 더 이상 설교를 할 수 없는 상태에서 지인들의 도움으로 ‘의로움’(‘Justification)을 쓸 수 있었고, 또 살아 생전에는 발표할 수 없었던 ’죄와 은혜의 지배‘(A Treatise of the Dominion of Sin and Grace)라는 논문이 그의 미망인에 의해 1688년에 발표되었다. 존 오웬은 1683년에 세상을 떠나 ’Bunhill Fields'에 묻혔다.
오웬의 글과 가르침에 나타난 신학 사상에서 화두는 ‘성화’, ‘그리스도와의 연합’ , ‘중생’ 등이다. 그는 회중주의자였지만 또한 칼빈주의자였기 때문에 그의 신학이 칼빈과 유사한 것은 당연한 결과일 것이다. 그의 신학에서 두드러진 주제인 ‘성화’는 그의 두 논문인 ‘신자 안에 내재하는 죄를 죽임에 관하여(Of the Mortification of Sin in Believers)’와 ‘죄와 은혜의 지배’‘(A Treatise of the Dominion of Sin and Grace)에서도 잘 나타나고 있는데, 그의 성화론은 그가 이해하고 있는 구원받은 신자인 인간과 죄에 대한 견해에 따른 것이다.
오웬은 그리스도인을 다음의 네 가지의 개념으로 이해하였다. 첫째로, 구원받은 신자인 그리스도인을 당연한 명제인 인간으로 파악하고서, 인격의 3요소인 이성과 감정과 의지를 갖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은혜뿐만 아니라 죄의 역사 또한 이러한 경로를 통해 이루어진다고 보았다. 둘째는, 그리스도인을 구속받은 인간으로 묘사했다. 이것은 신자가 그리스도인으로 말미암아 죄의 권세로부터 해방되었고, 그리스도께서 그 영원한 ‘구속 언약’의 보증이 되신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셋째는, 그리스도인을 중생한 인간, 곧 그리스도 안의 새로운 피조물로 바라보았다. 죄로 죽었던 영혼이 성령의 역사로 새롭게 거듭나 새로운 생명의 법칙과 순종의 습관이 그에게 주입되었으므로 옛사람의 죄와 새사람의 거듭난 생명 간의 전투가 평생에 걸치는 것으로 보았다. 넷째는, 그리스도인을 여전히 타락한 본성을 소유한 인간으로 보았다. 그래서 신자 안에 잔존하는 죄는 오웬의 성화론의 핵심 요소이다. 그는 이러한 신자 안에 내주하는 죄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진술한다. “그 본성과 의도는 하나님께 반항하는 것이다. 입법자이신 하나님, 거룩하신 하나님, 행위로 말미암지 않고 은혜로 말미암는 구원의 길인 복음의 창시자이신 하나님의 죄의 법의 직접 대상이다.”
따라서 죄의 존재와 능력으로 인해 그리스도인의 생활은 자기혐오와 자기 불신 위에 기초되어서 그 죄의 영향을 끊임없이 받는다. 죄는 비록 신자를 지배할 수 없지만, 영향을 끼치는 것이다. 그래서 그 영향력이 극대화할 때, 즉 신자가 지속적으로 불순종하고 은혜로부터 떠나 있을 때, 거듭난 신자라도 죄의 지배 상태1)로 떨어지게 된다. 그래서 이 상대적인 죄의 지배가 극대화되면 죄의 절대적인 지배와 거의 동일한 삶의 결과와 열매를 가져온다.
그러나 이 신자 안에서의 죄의 지배(상대적인 죄의 지배)는 불법한 것이고,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므로 적절하게 참회하고 은혜의 수단을 잘 활용해서 죄를 죽이면 하나님의 은혜가 지배하는 삶을 회복하게 되고, 그 은혜가 깊어지면 죄 죽임의 상태가 된다는 것이 오웬이 성화론을 말하게 되는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인간과 죄의 이해이다. 즉, 원리적으로 거듭난 신자는 죄 아래 있지 않고 신자를 다스리는 하나님의 통치 방법인 하나님의 은혜 아래 있기 때문에 이 은혜가 신자 안에 잔존하는 죄를 죽임으로 성화가 가능케 된다고 보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오웬에게서 성화의 개념은 신자로 하여금 죄의 지배 아래로 들어가게 만드는 죄2), 곧 신자 안에 잔존하는 죄 죽임(Mortification of Sin in Belivers)이다. 그는 죄 죽임 교리를 바울의 두 가지 메시지를 통하여 정의한다. 먼저 골로새서 3장 5절인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숭배니라”에서 바울은 ‘죽이다’, ‘죽임으로 파괴하다’는 의미를 가진 헬라어 ‘네코우’(νεκ?ω)를 사용했다. 오웬은 그것을 육체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는 모든 부패한 본성을 파괴하는 ‘죄 죽임’으로 묘사했다. 그러나 그는 그러한 죄 죽임이 죄의 완전한 파괴는 아니며, 죄의 세력과 힘이 약화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보았다. 또 다른 성경 구절은 로마서 8장 13절인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를 근거로 삼았다. 그는 여기에서 ‘싸나투데’(θανατουτε), 즉 ‘죽음에 이르게 함’이라는 의미의 단어를 사용하여서 “사람을 죽이거나 그는 혹은 어떤 다른 생명체가 모든 그의 힘, 세력, 그리고 그 자신의 원리를 소멸시키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더욱이 오웬은 바울이 그 단어를 현재 시제로 사용한 것은 현재에 항상 일어나야 하는 신자의 의무라는 것을 의도했다고 주장하는 것이라고 보았다. 따라서 오웬은 결론 내리기를, “우리의 육체에 내재하는 죄를 죽이는 것3)은 이 세상에서의 신자들의 의무”라고 말함으로써 성화를 죄와 싸워나가며 죽이는 것으로 이해를 하였다.
그러나 그는 죄를 죽이는 삶을 삶으로써 이루게 되는 성화의 주체를 성령께 돌렸다. 그는 오직 성령만이 죄를 죽일 수 있는 유일한 분이시라고 본 것이다. 그는 그 근거로써 에스겔 36장 26절인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를 들어서 성령께서 육체의 모든 열매들을 파괴하는 은혜들을 주심으로 은혜가 죄를 죽인다고 본 것이다. 그리고 또한 성령께서는 이 죄 죽임의 성화의 사역을 은혜와 믿음으로 하시기 때문에 이것이 신자들에게 적용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것이 신자의 순종의 행위라고 보았다. 그러기에 신자 안에 죄가 죽지 않고 창궐하는 이유는 신자가 전적으로 순종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보고서 말씀 읽기와 기도, 그리고 묵상을 통한 하나님과의 지속적인 교제를 게을리 하지 말 것을 말하였다. 왜냐하면 죄 죽임의 성화를 가능케 하는 순종은 하나님의 은혜로 가능해지는 것인데, 실제적인 은혜에 대한 순종의 결여는 어떠한 결과도 가져올 수 없기 때문이다.
(2) 죤 웨슬레(John Wesley)의 성화론
성화론에 대한 견해에 있어서 칼빈(John Calvin)과 가장 많이 비교 연구되어서 말해지고 있는 사람은 죤 웨슬레(John Wesley)이다. 그러므로 이에 대하여서는 좀 자세히 언급하고자 한다. 웨슬레는 성화론을 논(論)함에 있어서 하나님의 구속의 은총이 ‘현재 여기에서’(here and now) 얼마나 깊이 역사하는 것인가를 어느 종교개혁자 보다도 통찰하면서 중요시하였다. 그는 또한 믿는 자의 구원은 죄인이 의롭다 함을 받는데 그치지 않고 실제로 변화를 받는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웨슬레의 성화론의 특징은 점진적인 발전의 관념에 기초하고 있다. 조종남은 그의 이러한 성화론의 특징이 구원의 단계를 죄 문제와 연결시킨 것에서 갖는 것임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첫째로, 원죄로 인한 죄책은 하나님께서 값없이 모든 사람에게 주신 선행적 은총, 곧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무조건적인 공로로 해결된다. 그러므로 선행적 은총 아래 있는 실존적인 인간은 원죄의 부패성만을 지니고 있다. 이 부패성 때문에 이 실존적인 인간은 자범죄를 짓게 된다. 둘째로, 이 자범죄로 인한 죄책은 칭의에서 용서받아야 한다. 셋째로, 누적된 죄의 부패성은 성화의 과정에서 씻김을 받는 것으로 풀이된다. 이에 웨슬레는 이 성화가 신생의 사건으로부터 시작되어(부분적인 씻음) 성화의 과정에서 온전한 성화(온전히 씻김)로 그 성장이 계속되어(Continual Sanctification) 마침내 영화로 완결되었다고 보았다. 넷째로, 이 영화(glorification)의 사건에서는 죄로 인한 모든 흔적, 곧 사람이 지니고 있는 모든 제약성과 허약성(limitation and infirmities)에서도 해방을 받는다고 본 것이다.”
이에 따르면, 웨슬레는 구원의 순서를 인간의 완전을 목표로 하는 하나의 과정으로 알고 있었음이 분명하다. 그는 이와 같은 목적론적인 사상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의 구원관은 주로 성화에 대한 관점으로 결정되고 있다. 그리고 이 성화는 점진적인 발전의 개념에서 세 단계의 과정으로 되어지는 것으로 이해를 하고 있다. 제1단계는 초기의 성화이다. 그리고 제2단계는 온전한 성화이다. 마지막 단계는 영화이다. 즉 웨슬레가 이해하고 있는 성화의 개념은 점진적인 초기의 성화, 온전한 성화, 영화로 구분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 성화의 단계는 서로 다른 종류의 성화를 뜻하지 않고 정도의 차이를 의미한다. 마치 신앙 성장의 단계에 따라 자녀들(baby), 청년들(young man), 아비들(father)로 구분하는 것과 같다.
① 초기의 성화(Initial Sanctification)
웨슬레는 성화를 점진적인 발전의 과정에서 되어지는 것인데, 여기에는 두 번의 순간적인 체험의 성화가 있으며 그 첫 번째가 초기의 성화에서 있다고 보았다. 그는 우선 1단계로 초기의 성화(Initial Sanctification)을 말한다. 초기의 성화는 의인과 동시에 일어나는 성화이다. 이것은 불신자가 회개하고 믿음으로 얻는 순간적인 체험으로, 믿는 자의 신앙이 출생 후의 성장과 같이 중생한 후에도 성장하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가 이렇게 주장하는 것은 중생의 시점을 성화의 단계의 시작으로 보기 때문이다. 중생은 생명의 탄생이라는 점에서는 하나의 완전하고 독립된 사건이지만, 성결의 관점에서는 시작이다. 웨슬레는 중생은 성화의 시작이요 문이라고 했다. 중생은 성화의 첫 단계요 시작이라 할 수 있는데 이것을 초기의 성화라고 한다. 웨슬레는 중생은 마치 자연인의 출생과 비슷하다고 비유하였다.
“모태에 있는 태아는 눈이 있으나 보지 못하고 귀가 있으나 듣지 못하며, 그의 다른 감각 기능도 불완전하다. 그는 자연적 이해와 지식이 전혀 없다. 태아에 대해서는 인간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그가 태어났을 때 비로소 우리는 그가 살기 시작했다고 말한다. 이는 인간의 영적 상태와 너무나 비슷하다. 중생하기 전에는 영적 의미에서 눈이 있으나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한다. 그의 다른 영적 감각들도 잠자고 있다.”
"그는 영적이고 영원한 하나님의 일에 대한 참된 지식이 없다. 그러므로 그는 비록 산 인간이지만 죽은 그리스도인이다. “
중생하기 전의 사람에게서는 영적이고 영원한 하나님 일에 대한 참된 지식이 없으나, 중생한 후에는 전혀 달라진다. 중생하면 모든 것이 변화되는데, 영적인 눈이 밝아져서 땅에 살면서 하나님과 그의 나라와 영광을 볼 수 있고, 귀가 열려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천사들의 찬양을 들을 수 있게 된다. 이러한 영적인 변화가 바로 중생이며 성령으로 태어난 사람은 다 이와 같다고 본다.
웨슬레는 중생을 각 개인의 영적인 새생명을 얻기 위해서는, 그래서 성결과 구원을 얻기 위해서는 절대적으로 필요한 가장 기본적인 단계라고 말한다. 하지만 중생한 자 안에도 아직 악한 성품인 ‘육’이 남아 있음을 웨슬레는 보았다. 그러므로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비록 우리가 그리스도를 진심으로 믿는 순간 중생함을 얻어 깨끗하게 되고, 성화된다 할질라도, 우리가 완전히 새로워지고, 씻음을 받고, 깨끗하게 된 것이 아니요, 비록 극복은 되었다 하나 우리 속에는 악한 성품의 씨인 ‘육’이 그대로 남아 있어 성령을 거스려 싸운다.”
웨슬레의 이러한 주장은 당시의 몰터(Molther)를 중심으로 하는 모라비안교도가 런던에 와서 신비적인 학설을 소개하며 사람은 중생하는 순간에 완전히 성화되어 더 이상 성장의 여지가 없는 양 주장하는 것에 대한 반발적인 성격을 갖는다. 그의 이러한 주장은 인간의 선악에서나 믿음에서나 또는 성결에 있어서 모두 단계가 있다고 보았고, 인간은 거듭난 후에도 아직 내적인 죄가 남아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웨슬레는 남아 있는 죄성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성화의 은총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갖는다. 그래야 남아 있는 죄성에 머무르지 않고 더욱 ‘완전한 데로’ 나아갈 것이기 때문이다.
② 온전한 성화(Entire Sanctification)
웨슬레는 중생한 자는 초기의 성화에 의해서 더욱 완전한 데로 나아갈 것이 요구되고 있는 것으로 보았기 때문에 성화의 2단계인 점진적인 성화(Gradual or Progressive Sanctification)에 의한 온전한 성화(Entire Sanctification)4)를 말한다. 웨슬레의 온전한 성화의 개념에서 갖는 점진적인 성장(Gradual Advance)은 순간적인 요소(Instantaneous Element)와 결합되어 있다. 그래서 성화의 점진적인 과정이 하나님의 직접적인 역사로 순간에 보다 고차적으로 끌어 올려지는 단계가 있다고 보았다. 이에 대한 웨슬레의 말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우리가 의롭다 함을 받는 순간부터 거기서 은혜 안에서 성장하면서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날마다 나아가는 점진적인 성화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만약에 죄가 죽음 전에 그친다면 거기에는 반드시 순간적인 변화가 있어야 한다. 즉 그 변화에는 죄가 존재하는 최후의 순간과 존재하지 않는 최초의 순간이 있어야만 한다. …분명히 말하자면 우리는 점진적인 변화를 진지하게 강조해야 한다. …만약에 죽음 전에 그런 축복받은 변화가 있다면 우리는 모든 신자들에게 그것을 기대하도록 격려해야만 하지 않겠는가?…그러므로 누구든지 신자들의 내부에서 일어나는 점진적 변화를 인정하는 사람이라면 순간적인 변화도 강력하게 주장해야만 한다.”
웨슬레가 점진적인 성화의 과정에서 순간적인 변화를 말하는 것은 순간적인 성화의 기회가 모두 두 번 있는데 첫 번째는 중생을 경험하는 초기의 성화시에 있게 되며, 그 두 번째는 중생한 이후의 신자가 다시 자기의 무능과 자기 안에 아직도 남아 있는 죄를 깨닫는 것으로,5) 믿음으로 받는 신앙의 체험이 순간적인 체험으로 온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이 두 번째의 단계의 체험을 웨슬레는 온전한 성화(Entire Sanctification), 제2의 축복(second blessing), 두 번째 변화(second change), 온전한 구원(full salvation), 기독자의 완전(christian perfection) 등의 여러 가지 말로 표현했다. 그리고 그 본질을 완전한 사랑(perfect love), 혹은 순수한 사랑(pure love) 이라고 불렀다.
웨슬레에 의하면 온전한 성화의 과정에서 겪는 순간적인 체험을 통하여 신자는 마음 속에 남아 있는 죄성으로부터 씻김을 받으며, 사랑과 봉사에 더욱 큰 힘을 얻어 승리하는 생활의 계기가 된다. 그러나 이 완전한 성화의 체험이 그가 말하는 그리스도인의 최종 목표는 아니다. 성결의 은혜를 받는 사람도 성도로써 승리할 때까지 계속 전진하여야 한다. 그래서 계속하여 승리롭게 성화하려면 이 온전한 성화(성결)의 체험이 본질적으로 요청된다고 하였다.
웨슬레가 이처럼 성화의 이해를 점진적인 발전의 과정에 의한 단계로 보면서 여기에 두 번의 순간적인 변화를 체험하는 성화가 있다고 말한 것은 주관적인 경험이 되는 그의 개인적 신앙 체험을 성화 교리로 연결시킨데 따른 것이다.
그는 영국에서 청교도인 바돌로뮤 웨슬레(Bartholomew Wesley)의 증손자로서 사무엘 웨슬레(Samuel Wesley)와 스잔나의 열 다섯 번째 아들로 1703년 6월 17일 엡위드(Epworth)에서 태어났다. 그리고 국교회파가 지배적인 옥스퍼드의 크라이스트 처지대학에 1720년에 입학했다. 그러나 그는 교내의 도덕상태에 크게 불만을 느꼈다. 그 후 1725년 22세가 되면서 번민하다가 성직자가 되기로 결심하고 같은 해 영국교회의 집사로 안수를 받았다. 이 과정에서 웨슬레는 몇 권의 서적을 통해서 큰 감명을 받았는데 그 중에 첫 번째는 제레미 테일러(Jeremy Taylor)의 '거룩한 삶의 방법과 연습‘(Rules and Exercices of Holy Living and Holy Dying)이라는 책이었다. 그는 이책을 통해서 의도의 순수성에 관한 것에 감명을 받았는데, 이것은 후일의 웨슬레 신학에서 기독교인의 완전론에 대한 핵심이 되었고, 그가 1783년에 올더스케이트 사건이 있은 후에도 변함이 없이 오히려 더욱 확고해진 그의 신념이 되었다. 두 번째의 책은 토마스 아켐피스(Thomas a'Kempis)의 ’그리스도를 본 받아‘(The Imitation of Christ)였고, 또 다른 하나의 책은 윌리암 로우(William Low)의 ’그리스도인의 완전과 경건과 거룩한 생활에의 엄숙한 부름‘(Serious Call to Devout and Holy Life)으로 이후부터 그는 반 쪽 그리스도인이란 있을 수 없음을 깨닫고 헌신을 다짐한다. 정리하면, 웨슬레는 제레미 테일러를 통해서 하나님께 완전히 헌신함으로써 선해질 수 있음을 배웠고, 토마스 아켐피스를 통하여 복종은 마음으로부터의 복종이어야 함을 배웠으며, 윌리암 로우를 통해서는 자기 부정만이 하나님의 율법의 절대적 완성의 길이라는 것을 터득하게 되었다. 그는 이 책들을 통해서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 함을 받은 자는 좀 더 도덕적으로 영적으로 성취하는 방법을 가르침 받은 것이 된 것이다.
웨슬레는 이러한 영향 속에서 옥스퍼드에서 공부한 후에 1728년에 목사 안수를 받았으며, 그 뒤 옥스퍼드 대학교 링컨 대학 강사로 있으면서 동생 찰스(Charles)가 조직한 신성 구락부(Holy Club)을 지도하고 교도소와 빈민굴을 정기적으로 방문하는 등의 활동을 하닥라 1735년 북미 조지아주로 전도여행을 떠났다. 그는 이때 시몬즈호 위에서 모라비안 형제들을 가까이 대면하고는 그들의 경건이난 선한 행위 뿐 아니라 바다의 풍랑 속에서도 동요없는 그들의 신앙에 대한 확신에 감동을 받았다. 그리고 선교를 마치고 1738년 초에 런던으로 돌아와서는 모라비안 선교사인 페터 뵐러(Peter Bohler, 1712-1775)를 만나 그에게서 ‘오직 믿음으로만’ 확신에 찬 고백을 할 수 있다는 것과 실제적인 조직 능력에 관하여 영향을 받았다. 그런 그는 모라비안들과 접촉하면서 그들을 통해서 독일의 경건주의를 크게 영향을 받았다.
페터 뵐러를 통해서 이신칭의의 원리를 알게 된 웨슬레는 그럼에도 단지 그 이해에 있는 것으로서만이 아니라 그의 삶 속에서 그 진리를 경험적으로 소유케 됨으로써 그 자신이 그렇게 오랫동안 추구해왔던 참된 확신과 하나님과의 진정한 교통을 누리게 되기를 원하고 있었다. 이런 그에게서 그에게 점진적인 발전에 의한, 그리고 순간적인 변화의 체험에 의한 성화의 온전한 성화 사상을 갖게 하는 결정적인 사건을 경험하는 것이 있었다. 그것이 1738년 5월 24일에 겪은 그의 올더스게이트(Aldersgate)에서의 체험이다. 그때 그는 올더스게이트 거리에 있었으며, 어떤 이의 입을 통하여 마틴 루터의 로마서 주석 서문을 읽고 있는 중에 체험한 것인데 그때의 일을 다음의 글에서 볼 수 있다.
“그 저녁에 나는 올더스게이트 거리에 있는 한 집으로 갔다. 거기에서 어떤 사람이 루터의 로마서 주석을 읽고 있었다. 9시 15분 전 쯤에 내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으로 말미암아 인간의 마음 속에서 변화의 역사를 일으키시는 사건에 대해서 듣게 되었을 때, 나는 이상하게도 나의 마음에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나는 내가 나의 구원을 위하여 오직 그리스도만을 신뢰하고 있음을 느꼈으며, 그가 나의 모든 죄를 도말하셨음을, 심지어 나의 죄까지도 도말하시고 죄와 사망의 율법으로부터 나를 구원하셨음을 확신케 되었다.”
이러한 마음이 뜨거워지는 극적인 올더스게이트에서의 체험은 웨슬레가 그의 율법주의적이고 그의 도적주의적인 고행주의 방식의 실패를 경험한 후에 주어졌다. 도덕적 삶을 위한 신비주의적인 추구들이 웨슬레의 영혼 속에 가져다 준 허탈감, 그리고 그러한 상황에 대한 하나의 돌파구로서 시도했었던 죠지아에서의 선교 사역의 실패들을 경험한 후에 겪은 것으로서 마치 어거스틴계의 수도원에서 엄격한 금욕주의적 고행 훈련을 통하여 하나님의 의를 획득하려 하다가 그러한 불가능한 시도 가운데서 좌절해 있던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가 그러한 방식의 실패를 경험한 후에 복음의 빛이 비춰졌던 것과 유사한 구조에 의해서 복음의 신앙에 이른 것으로 그의 생애 전반을 다시 시작하게 하는 체험이 되었다. 그리고 웨슬레가 올더스게이트에서 순간적인 변화를 체험한 것은 그의 생애 전반에 전환점을 가져다 줌으로 해서 그의 활동에서 영국의 역사를 바꾸어 놓았고 세계의 역사를 변화 시켜 놓은 사건으로 평가되면서 그의 성화론의 핵심으로 자리 잡았다.
그래서 이것이 웨슬레의 신학 사상에서 가장 주요한 교리가 되어 점진적인 발전에 의한 성화를 말하면서 두 번에 걸친 순간적인 성화(변화)가 있는 것과 또한 순간적인 변화의 체험에 의한 온전한 성화6)를 말하게 된 것이다.
③ 영화(Glorification)의 성화
웨슬레는 초기의 성화, 온전한 성화에 이어서 영화의 성화를 말한다. 그에게 있어서 이것은 온전한 최종적 완전함의 단계에 이른 것인 구원의 완성을 의미하였다.
(3) 죤 머레이(John Murray)의 성화론
성화 개념은 칭의의 범주에 속한 것의 이해에서 구원받은 자의 생활인 성화적인 삶으로 그 이해가 확대되어 오면서 점진적인 발전성을 띠어왔다. 그러한 성화가 웨슬레에 와서는 초기의 성화, 점진적인 성화, 순간적인 성화, 영화의 4단계로 구분되면서 완전성화론을 주장하였다. 웨슬레파나 오순절파는 여기에 있어서 제2의 특별한 성령의 사역이 있어야 한다고 보며 이를 기대한다. 성령의 제2의 사역을 통한 어떠한 영적 경험을 통하여 신자의 성화를 이루어가는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이러한 웨슬레의 성화 이해에 대한 반응으로 개혁주의 안에서 또 다른 성화론이 나왔다. 그것이 죤 머레이(John Murray)7)의 ‘결정적 성화 교리’이다.8)
결정적 성화론에 말하는 ‘결정적 성화’란 그리스도의 삶의 시초에 일어나는 어떤 결정적인 행위, 하나님에 의해 유효하게 부름 받은 때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그들의 정체성의 특징을 이루는 어떤 결정적인 역사를 이르는 것으로, 그것이 단번에 확정적으로 이루어지는, 반복되지 않는 성화라는 것이다. 가령 베드로전서 4장 1- 2절인 “그리스도께서 이미 육체에 고난을 받으셨으니 너희도 같은 마음으로 갑옷을 삼으라 이는 육체의 고난을 받은 자가 죄를 그쳤음이니 그 후로는 다시 사람의 정욕을 좇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뜻을 좇아 육체의 남은 때를 살게 하려 함이라.”에는 결정적 성화가 나타나 있다고 말한다.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받으신 육체의 고난, 혹은 육체의 죽음은 그리스도와 연합된 신자들에게 죄를 그치게 하는, 육체적 삶의 방식에 대한 죽음, 죄에 대한 죽음의 사건이 발생되도록 단번에 결정적으로 발생된 것으로 설명되고 있음은 바로 결정적 성화의 사건을 가리키고 있다고 봐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육체의 정욕을 좇지 않는 ‘육체의 고난’,. ‘육체의 죽음’, ‘육체의 몸을 벗는 것’ 등의 사건들은 성경의 다른 곳에서도 여러 번 언급되는데, 그것이 단번에 발생되었다고 본다.
죤 머레이는 로마서 6장의 세례를 통해서는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에게는 죄에 대하여 죽는 죽음을 가리키는 결정적 성화의 역사가 이미 발생했음을 가리키고 있다고 한다. 하나님께로서 난 자가 죄를 짓지 않는다는 것은, 그가 중생함으로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그와 함께 옛사람이 십자가에 못 박혔으므로 죄에 대하여 죽는 죽음을 경험했고, 따라서 그에게 죄의 통치와 그 세력과의 결정적인 단절이 발생되었음을 가리킨다. 즉 결정적 성화의 역사로 이제 그는 예수님을 부인하거나, 죄를 지속적으로 범하는 죄의 지배아래의 존재로서의 사람을 살 수 없음을 말해준다.
이 결정적 성화는 또한 점진적 성화를 가능케 해 주는 기초(동인)으로서 이해되고 있다. 곧 점진적 성화의 작업을 유효하게 성취토록 해 주는 근거가 된다. '죄에 대하여 죽은 자가 되었다‘, ’죄에서 해방되었다‘는 결정적 성화의 사건이 근거가 되어서 이제 더 이상 종이 아니기에 죄의 종으로 살지 않는 것이요 하나님의 거룩한 자녀가 되었기에 의의 종으로 사는 것이다. 그래서 죄와 단절되며 의의 병기로 하나님께 드려지는 성화의 작업을 성취해 갈 수 있게 되었다.
죤 머레이의 결정적성화론은 웨슬레의 완전성화론과 차이가 있다. 웨슬레의 완전성화론은 초기의 성화를 말하는 중생에서 시작하여 영화의 단계에서 완전성화의 사건이 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이 단계의 과정에서 ‘ 온전한 사랑’을 경험케 되는, 중생과 구별된 완전성화의 사건이 있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신자는 완전성화의 사건을 통해서만이 죄의 세력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난 삶을 살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성화에 따르면 온전한 사랑을 경험케 되는 완전성화의 사건의 차이에 따라서 신자들 간에 정도의 차이가 있게 되어서 죄의 세력으로부터 완전한 해방을 소유하지 못한 저급한 믿음의 신자와 완전성화의 사건을 통해서 죄의 세력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난 삶을 사는 고급의 믿음을 지닌 신자가 있게 되는 것이 된다.
반면에 죤 머레이의 결정적 성화론은 웨슬레의 단계적인 성화를 하나로 묶어서 완전주의적인 오해를 극복한다. 모든 신자는 죄에 대하여 죽는 죽음의 결정적 성화에 의해서 죄의 세력과의 근본적이고도 결정적인 단절이 발생하여 영적 싸움을 승리로 이끌어 가기 때문이다. 죤 머레이의 이러한 결정적 성화론은 비록 점진적인 성화를 끌어안고 있기는 하지만, 그래서 단번에 되어지는 결정적 성화가 이후의 점진적 성화의 근거가 되는 연결고리를 갖고 있지만, 결정적 성화와 점진적 성화를 하나로 보는 견해를 갖는다. 그에 의하면, 성화 되었기에, 성화가 튀어 나올 수밖에 없다.
(4) 칼 바르트(Karl Barth)의 성화론
칼 바르트(Karl Barth)는 성화(sanctification) 라는 개념이 중생(regeneration), 갱신(renewal), 전환(conversion), 회개(penitence), 제자직(deceipleship)으로도 표현할 수 있지만 이 성화라는 말이 다른 개념과 대립하여 거룩성을 가지고 있으며, 하나님의 존재와 행동을 취급하며, 하나님이 행동 주체임을 잘 드러내주기 때문에 성화라는 개념을 끝까지 유지한다. 그는 성화론을 의인론과의 관계에서 규명해 나가는데 그가 말하는 견해의 특징은, 하나님의 약속의 실현은 의인이며, 하나님의 명령의 실현은 인간의 성화라고 본 것이다. 의인과 성화는 그리스도 사건에서 즉각적이고도 동시적으로 성취된 단일한 화해행위로,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에 의해 성취된 것이므로 자기 의인이나 자기 성화를 말할 수 없다. 의인과 성화에서 얻어지는 의와 거룩은 인간 자신에게 속한, 내재해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 외부에 의한, 세상을 화해시키는 하나님의 행위로 인간의 의인과 성화를 모두 동시에 완성한다.
그러므로 바르트에 있어서 의인과 성화는 상이한 신적행위들이 아니라 단일한 신적 행위의 상이한 요소들(Momenten)이다. 그에게 있어서 의인과 성화의 지식은 하나님의 화해 행위의 한 전체성의 지식이며, 한 전체적이고 분리할 수 없는 예수 그리스도의 전체성의 지식이며, 하나님의 한 은혜의 전체성의 지식이다.
이런 관점에서 바르트는 의인과 성화를 ‘구원의 질서'(Ordo Salutis)의 단계들로 보는 17세기 개신교의 정통신학을 배격한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구원 행위의 동시성은 하나의 시간적 순서 속에 풀어 넣을 수 없다고 보았다. 그는 구원의 질서를 상이한 신적행위들의 순서로 이해하지 않고 한 사건의 동시성 안에서 인간에게 경험되는 구원 사건의 상이한 요소들의 질서로 이해한다. 이렇게 구원의 질서를 동시적으로 성취된 구원 행위의 요소들로 봄으로써, 객관적 구원 조성(그리스도의 화해 사건)과 주관적 구원 획득(구속론)의 이원론은 극복되고 구원의 질서, 즉 의인과 성화의 동시성이 인식된다.
바르트에 의하면 의인과 성화는 구원의 한 사건의 다른 국면이다. 이것들의 차이점은 의인이 위에서 아래로의 운동이라면, 성화는 아래서 위로의 운동이다. 하나님의 죄인 사랑의 역사에 있어서 의인은 영원한 측면이고, 후자는 시간적 측면이다. 이는 인간이 의인이면서 죄인인 까닭이다. 시간 안에 종말 이전 안에 사는 인간들은 은혜와 죄의 투쟁 속에서 살기 때문에 의인과 성화는 구별되지 않으면 안 된다. 의인과 성화의 일치는 완전한 구원이 성취될 때, 즉 종말의 때에나 이루어질 것이기 때문에 의인은 성화가 아니며, 이와 똑같이 성화는 의인이 아니라고 하였다.
초기 루터 같은 사람은 로마카톨릭의 공적주의 사상과 투쟁하다 보니 의인에 더 중점을 두고서 의인 속에 성화를 해소시켰다. 그러나 그런 루터도 후기에는 이중적 의인, 이중적 성화를 말함으로써 이중적 은혜의 도식을 수립하였다. 바르트는 의인이 성화와의 관계가 무시된다면 일하시는 하나님의 이념이 빠지게 되며 결국 ‘싸구려 은혜’가 되며, 게으른 ‘정적주의’가 되며, 이와 똑같이 성화가 의인과의 관계가 무시된다면 하나님 없이 소외 속에 일하는 인간의 이념이 되며 환상적인 행동주의에 빠지게 된다고 보았다. 그는 의인과 성화의 상호 종속적인 관계를 칼케돈 신조의 기독론을 가지고 설명하였다. “만일 우리가 칼케돈 신조의 기독론의 신성과 인성을 받아들인다면 의인과 성화는 구분됨에 틀림없다. 그러나 나뉘거나 분리되지는 않는다.”
바르트에 의하면 의인과 성화의 관계 안에의 질서는 시간적 의미에서의 질서는 없다. 하나님의 유일한 구속 행위는 시간적 순서로는 쪼개지지 않고 또한 심리적으로도 순서가 있을 수 없으며, 그것들은 동시에 함께 발생하는 것이다. 그는 다만 내용에서 의인과 성화의 발생의 구조에서 보면 의인이 성화의 우위에 있음이 틀림없으며, 그러나 의도상으로 보면(목적으로 보면) 성화가 의인의 상위 질서이고 앞선다. 그래서 의인이 기초로서는 첫째요, 전제로서는 둘째며, 성화가 목적으로서는 첫째요, 결과로서는 둘째이기 때문에 양쪽이 다 우위이며 또한 다 종속적이기도 하다. 또 때로는 서로 공속적이 되기도 한다.
바르트는 의인과 성화의 이러한 관계 이해에 의해서 성화를 사적(私的)인 차원에 두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에 의해서 세상의 모든 관계와 세력에 단절이 생기는 것으로 말한다. 그는 제자직으로 부르시는 하나님에게 응답해 나갈 때 이런 단절이 생긴다고 보았다.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는 그리스도 안으로 부르심을 받았을 때 공적인 책임을 받아들이고, 하나님 나라의 건설에 참여를 통하여 요구되는 명령인 복종을 수행하는 것인데 이는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정치, 경제, 사회적 관계의 모두에서 일어나는 전인적인 전환이다. 여기에는 십자가의 의미와 그 존귀함을 말하는 중에 세상으로부터 박해를 받는다. 이것은 역사적, 정치적, 사회적 책임을 감당하는 데서 오는 핍박이다. 왜냐하면 개인의 차원에서만 활동한다면 세상으로부터 핍박을 받지 않거나 받아도 대수로운 것이 아닐 것인데, 이 세상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변화시키고자 활동할 때에 세상의 세력들은 필시 그리스도인들에게 박해를 가해 오게 되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이 박해를 받는다는 사실 자체가 세상에게 미움이 되는 일들을 한다는 증거이며, 그것은 곧 그들이 개인적인 차원에만 머물지 않고 공적인 책임을 감당하고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바르트는 성화를 의인과 성화의 관계성 뿐 아니라 소명의 차원을 매우 중요시한다. 의인은 소명 앞에서 완성된다. 따라서 의인 받은 자는 세상 나라들을 흔들고 부수면서 도래하는 하나님 나라를 증거하고 나타내야 하는 자로서 정치적, 사회적 책임을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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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1) 거듭난 신자에게서의 죄의 지배 상태는 ‘죄의 상대적인 지배’로 말할 수 있다. 이것은 거듭나기 전의 인간에게 죄가 지배하는 상태인 ‘죄의 절대적인 지배’와 구분된다.
2) 오웬은 신자가 은혜 아래 있을 때 신자 안에 역사하는 죄를 두 부류로 나눈다. 신자가 은혜의 지배 아래서 살아가고 있음에도 결코 사라지지 않는 죄가 있고, 은혜의 지배 아래 살아가면 없어지는 죄가 있다고 주장한다. 하나는 인간의 이해를 넘어서는 죄로서 죄의 지배에 적게 영향을 미치는 죄이다. 성경에 의하면 신자가 아무리 뛰어난 은혜의 상태에 있다고 할지라도 절대로 사라지지 않는 죄가 있으니(시19:12), 이것은 우리의 내면 너무 깊은 곳에 있어서 우리의 지식으로 찾아낼 수 없는 죄들이고 따라서 회개하기도 힘든 죄들이라는 것이 오웬의 생각이다. 그런데 이런 죄에 대해서는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책임을 덜 물으신다고 보았다. 신자들이 인간 내면 깊은 곳에 잠재되어 있는 알지 못할 뿐 아니라 인간으로 존재하는 동안에는 피할 수 없는 죄이기 때문에 그런 죄들은 우리의 영적 활기를 유지해 나가는데 있어서 치명적인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여겼다. 비록 그것들도 죄이므로 어느 정도 신자의 영혼에 영향을 주겠지만 그것은 매우 미미하다고 보았다. 죄의 부류에 있어서 다른 하나는 그러나 신자들에게 큰 영향을 주는 죄로서 인간에 의하여 파악되고 통제될 수 있는 죄이다. 이 죄가 신자로 하여금 죄의 지배 아래로 들어가게 만든다.
3) 오웬에게 있어서 '죄 죽임'은 다음의 두 가지로 말해 진다. 첫째, 죄와 정욕을 끊임없이 약화시키는 것이다. 둘째, 죄에 대항하여 지속적인 싸움을 벌여 나가는 것이다.
4) 온전한 성화란 웨슬레가 사용한 Entire Sanctification의 번역이다. 이것은 중생 다음의 체험하는 것을 가리키는 말로 '성결의 체험’이라 불리어 왔다
5) 웨슬레는 이것을 ‘신자의 회개’라고 불러 거듭나게 하는 회개와 구분한다.
6) 온전한 성화는 ‘기독자의 완전’이라는 말로도 표현이 되고 있는데, 이것은 완전한 사람, 그 자체를 두고서 하는 말이 아니다., 곧 인간성이 완전하다는 것에서 하는 말이 아니.라 항상 점진적인 역사하심이 있는 것을 의식한 성결이라는 말을 달리 표현하는 것으로 사용하고 있다.
7) 죤 머레이(J. Murray)는 미국 웨스트민스터(Westminster)신학교에서 30여년간 조직신학 교수로 재직하며 활동했던 개혁주의 신학자이다.
8) 죤 머레이 자신은 결정적 성화 교리가 역사상의 어떠한 특정한 견해에 대한 반응이라고 주장하였던 적은 없다. 그러나 그가 1952년 Keswick운동의 교과서적인 So Great Salvation의 서평을 통하여 그 책에서 제시된 성화관이 안고 있는 문제점을 성경적으로 분석하고 있으며, 그리고 1967년에 '어떤 순간적이며 확정적인 경험상의 변화’에 대한 성경의 본문들을 좀더 체계적으로 분석하여 그에 대한 대안으로서의 성경적 성화관을 ‘결정적 성화’(Definitive Sanctification)라는 제목으로 발표했던 것으로 보아서 그 연관성을 어느 정도는 가지고 있다고 여겨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