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제2차 바티칸공의회 이후
제2차 바티칸공의회는 교회를 ‘하느님백성'과 ‘그리스도의 몸'으로 이해하고 있다. 이 두 가지를 종합해서 공의회는 교회를 ‘인류구원을 위한 성사'로 종합하고 있다.
사람들은 이제야 정치와 종교의 혼합으로 왜곡되었던 교회에 대한 이해를 바르게 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즉시 낙관주의가 도래했다. 교황과 공의회를 주도했던 추기경, 주교, 신학자들은 새로운 희망에 젖어 있었다. 교회개념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함께 가톨릭교회의 발전을 기대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공의회 이후 가톨릭교회는 많은 혼란에 직면하게 되었다. 일치 대신에 분열이 찾아오게 되었고, 개방이라는 구호아래 저마다 자기 준거점에 따라 각자가 자기 목소리를 내게 되면서, '진보와 보수'니, '좌파와 우파'니 하는 각자의 관점으로 서로 대립하게 되었다. 이러한 공의회 이후의 노선은 뚜렷이 세 가지 경향을 띠고 있다.
첫째, 진보(개방)주의 : 제2차 바티칸공의회가 과거의 왜곡을 딛고 상당한 진전을 이루었지만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을 따라잡기에는 벌써 부족하다. 공의회는 완전히 한물간, 그래서 더 이상 현대에는 적합하지 않은 과거지사다. 또 다른 공의회를 원한다.(한스 킹) : 예컨대, 사제독신제도의 폐지, 여성사제서품허용, 인공피임허용, 재혼한 이혼자에 대한 성사허용, 주교 임기제 및 주교선임제도개선 등등.
둘째, 보수(전통)주의 : 제2차 바티칸공의회가 섣부른 개방을 함으로써 교회 전통을 붕괴시키고 오히려 교회를 세상풍조와 뒤섞이게 하였다. 제1차 바티칸공의회와 트리엔트공의회를 파괴시켰다. 과거교회의 전통을 더욱 엄격하게 지키는 것이 교회를 지키는 길이다.
셋째, 중도노선 : 성서와 교부에 근거하여 전통을 유지하면서 현대세계의 요소를 수용하고 적응해나가려는 노선.(제2차 바티칸공의회를 가능케 했던 부류) 오늘날 인간의 정신적 가치가 현저히 퇴조하고 물질세계가 전면에 등장하게 되었다. 더구나 60년대 말부터 정신 사조를 지배해온 포스트모더니즘은 강력하게 인간 삶의 형태를 바꾸어 놓고 있다. 개인과 자유가 오늘의 코드다. 이 와중에 가치체계의 혼란은 신앙 자체와 교회를 뿌리째 흔들고 있다. 교회 내의 많은 신자들이 교회를 통해 제시되는 가치체계와 세상이 내어놓는 가치체계 사이에서 긴장과 갈등을 겪고 있다. 교회는 오늘날 새로운 위기를 맞고 있다.
이러한 공의회 이후의 혼란을 독일 주교회의 의장이었던 율리우스 되프너 추기경은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공의회 이후의 교회는 하나의 거대한 건축 공사장과 같다. 교회는 건축 공사장, 그러나 설계도를 잃어버린 공사장, 그래서 각자가 자기 생각대로 계속 작업해 나가는 공사장과 같다."
이러한 혼란된 상황은 가톨릭 내부에 잠재해 있던 여러 긍정적인 힘이 개방을 통해 일시에 분출되는 과도기라고 할 수 있지만, 갑작스런 개방의 여파, 무분별한 개방, 여과되지 않은 개방, 절제되지 않은 개방, 저마다 자기 준거점에 따른 개방에 더 큰 원인이 있다고 볼 수 있다. 먼저 교회의 올바른 개념에 대한 이해가 전제되어야 한다. 그런 다음에 교회가 해야 할 일을 말할 수 있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