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분기 정기 모임을 회원 개개인 사정에 의해 시간 맞추기가 어려워 10월 24일 일요일 가졌다.
워낙 늦쳐진 모임이라 교회 예배를 이유로 일정 조정을 고집할 수가 없어 북한산을 등산하기로 했다.
수유리 역에서 친구들과 만나 우이동 도선사 입구까지는 택시로 이동하고, 도선사 입구부터 걷기 시작했다.
금년 가을에는 특별히 바쁜 일이 없었음에도 산에 갈 기회를 갖지 못해 단풍 구경을 하지 못했다.
북한산의 단풍은 이미 절정기를 지난 것 같았다.
그러나 알록달록 붉게 물든 나뭇잎의 출렁임은 너무나 아름다웠다.
북한산에 몇 번 오른 적은 있지만 성곽을 따라 걷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옛날 우리의 선조들이 이 성곽을 축조하면서 얼마나 많은 고생을 하셨을까?
오직 몸으로 등에 지고 날랐을 텐데 지금의 우리들 보다 힘이 센 신체구조를 가졌던 것일까?
장비라곤 망치와 징 밖에 없던 시절인데 어떻게 반듯 반듯 네모나게 만들었을까?
성곽 구석구석에는 그 분들이 흘린 피와 땀이 베여 있고,
그 분들의 얼이 살아 숨쉬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하산하는 길에 할렐루야 기도원 바로 아래 위치하고 있는 영빈관에서 뒷풀이를 하기 위해 여장을 풀었다.
영빈관의 전신은 밀실 정치의 산실이었던 바로 “선운각”이다.
3공화국 시절 3대 요정으로서 선운각과 삼청각, 대운각이 있었다.
요정은 일반인들이 출입할 수 없는 대통령과 3부 요인, 장관, 국회의원 등 정치인들이 가는 곳이었다.
이곳은 그만큼 비밀과 안전이 보장되는 곳이기도 했다.
선운각은 1960년대 건립 당시 하늘을 날으는 새도 떨어 떨인다는 중앙정보부장 김재구의
내연의 처 “장정이”씨가 운영한 요정으로써 당대의 미인이었던 정인숙씨가 얼굴 마담으로 있던 곳이기도 하다.
1979년 박정희 대통령 시해 사건 이후 중앙정보부의 위세가 떨어져
선운각에 대한 영향력이 미치지 못하게 되자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1986년 김일창씨가 인수하게 된다.
김일창씨가 인수 후 “고향산천”으로 바꿔 한정식을 운영하였으나
거듭된 사업실패로 2000년 7월 경매에 붙여져, 84억 5천만원에 낙찰되어 할렐루야 기도원 원장 “김계화”씨에게 넘어갔다.
김계화씨가 인수후에는 영빈관으로 바꿔 등심을 주메뉴로 하는 식당을 운영하게 된다.
영빈관의 특징은 1인당 1만원에 등심을 무한리필 하고 있다.
물론 고기는 국내산이 아닌 수입산이다.
너무나 저렴한 가격 때문에 고기의 질이 좋지 않을 것이라는 선입관을 갖고 들어갔는데
막상 먹어보니까 고기의 질도 나쁘지 않고, 아무리 리필을 요구해도 종업원들의 얼굴에 싫은 표정이 없다.
동행한 친구들 모두 이구동성으로 고기의 맛은 물론이고 친절과 서비스면에서도 대만족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삼청각은 1972년 건립되어 1980년도까지 요정으로 운영되어 왔으나,
80년 들어 급격히 손님이 줄어들면서 경영난으로 어려움을 겪다가,
1990연대 중반 “예향”으로 이름을 바꿔 일식점으로 변화를 모색했으나,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1999년 12월 문을 닫게 된다.
2000년 5월 22일 서울특별시에서 문화 시설로 지정하여 리모델링 공사를 끝낸 후
2001년 10월 “전통문화 공연장”으로 문을 연다.
새로 단장한 삼청각에는 공연장, 한식당, 찻집, 객실 등이 갖추어져 있다.
대원각은 3공 시절까지 그 유명한 요정이었으나,
김영한(진향이라는 이름의 기생)씨가 “청암장”이라는 간판을 내걸고 한식당을 운영하게 된다.
김영한씨는 법정 스님의 무소유를 인연으로 스님과 인연을 맺게 되고,
80년대 말 법정스님에게 당시 시가 1,000억원 이었던 “청암장”을 아무런 조건없이
시주하겠다는 제안을 하게 된다.
알려진 바로는 당시에 법정스님은 이를 사양했다고 하는데,
1997년 길상사로 이름이 바뀌면서 서울 성북구에 자리잡은 아름다운 사찰로 탈바꿈한다.
길상사 입구에는 법정 스님이 자주 말씀하신 “맑고 향기롭게”라는 현판이 걸려 있고,
극락전 출입구 한켠에는 오늘날의 길상사를 있게한 공덕주 길상화(속명 김영한) 보살의 영정이 위치하고 있다.
이렇게 해서 밀실 정치의 산실로 그 유명했던 요정도 시대의 변화에 따라 원래의 이름마저 보존하지 못한채,
세인들의 기억속에서도 점차 잊혀져 가고 있다.
첫댓글 가을 산행 모습 보기에 좋군요..
그런데 뭘 그리 많이 드셨는지요? 등심도 먹고 회까지 ??????
회사에서 글을 쓴 후 이런 저런 방법을 동원해도 올려지지 않아 결국 집에 와서 종결되었습니다.
설명의 글만 올려져 있던 것은 사진이 있는 곳으로 이동, 재 편집했기 때문에 삭제하였습니다.
등심으로 충분했는데도 불구하고, 전철 타고 복귀중에 회 한사라 하자는 제의를 거절하지 못해
중간에 내려 곡차를 한잔 더 했습니다. 그리고는 다음날 후회를. ㅋㅋㅋ
두사람은 알겠는데... 빨간 조끼는 잘 모르겠네요...
윤박사님! 건강을 너무 자신하는 거 아닌가요? 건강할 때일수록 더욱 신경쓰셔야지요...
몸을 너무 혹사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ㅎㅎㅎ
빨간 조끼의 사나이는 18중대 김윤생입니다.
현재는 용산 근교에서 아파트 관리 소장을 하고 있고요.
작년에 취업했는데 그동안 취업 준비로 활동을 많이 하지 않아 황박사님과는 면식이 없을껍니다.
아~~ 김윤생... 알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