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공원 덕유산(1614m) 눈꽃 산행기
2009년 1월 11일(일요일) 맑음
봄꽃보다 화사하고 여름꽃보다 탐스럽고 가을꽃보다 가냘픈 눈꽃!
1975년 2월 1일 국립공원 제10호로 지정된 덕유산은 우리나라 등줄기인 백두대간의 산이다. 덕유의 덕(德) 자는 크고 덕이 있다는 뜻이고 유(裕)자는 넉넉하다는 뜻이다. 즉 덕유라는 이름은 덕이 있고 크며 넉넉한 산의 모습을 한자로 나타낸 것이다.
덕유산은 2개도 4개군. 8개 면에 걸쳐 1,400m 이상의 중봉(1594m), 백암봉(1503m), 무룡산(1492m), 삿갓봉(1410m), 남덕유산(1507m), 서봉(1492m-일명 장수 덕유산)등 큰 봉우리들이 솟아있고 덕유평전 등 넓고 넉넉한 초원이 펼쳐져 있어 장중하고 광대하다.
백두산(2744m)에서 시작한 백두대간 큰 산줄기가 남한 땅으로 진입하여 국립공원인 설악산(1708m), 오대산(1563m), 태백산(1566m), 소백산(1440m), 월악산(1093m), 속리산(1058m)을 차례차례 솟구치고 백두대간의 기를 모아 덕유산을 불끈 들어 올린다. 덕유산을 지난 백두대간 산줄기는 지리산(1915m)으로 웅장한 산악미를 뽐내며 힘차게 솟구치고 백두대간을 마친다.
남한 땅에서 네 번째로 높은 덕유산 향적봉에 오르면 첩첩하고 많은 산 그림자가 사방에 늘어서 산객의 마음을 한껏 부풀게 한다. 동쪽으로 가야산(1430m)이 수석처럼 솟아올랐고 남으로는 백두대간의 옹골찬 산줄기가 지리산까지 힘차게 뻗어 나간 것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서쪽은 광대한 벌판 뒤에 운장산(1126m)이 양팔을 길게 벌린 모습으로 솟아있고 북으로는 아스라이 속리산이 조망된다.
중첩하게 늘어선 산의 윤곽선을 “그리메”(그림자)라는 단어로 표현한다고 한다. 그리메란 한마디로 그리움이다. 그리움은 대상이 무엇이든 아름답다. 그리워해 본 사람은 그리움이 얼마나 아름다운 감정인지를 안다.
그래서 덕유산을 “산그리메” 첩첩한 조망 제일 명산이라 부른다.
덕유산은 4계절 어느 때 탐방해도 독특한 아름다움을 만끽할 수 있지만 특히 겨울 설경이 빼어나다. 그래서 덕유산 정상 향적봉은 황홀한 설경을 찍기 위해 수많은 사진작가가 몰린다. 반짝이는 눈꽃을 피우는 기묘한 형상의 고사목과 조화를 이루며 펼쳐진 대자연의 풍광은 그림보다 멋진 선경을 이룬다.
안성탐방지원센터에서 산행이 시작됐다(9:50). 얼어붙은 칠연계곡을 왼쪽에 끼고 널찍한 길로 산에 오르기 시작한다. 여름에는 멋진 경관을 자랑하는 가마소를 지나 조금 더 오르자, 칠연폭포 삼거리가 나타나고 왼쪽으로 동엽령 3.3㎞, 오른쪽으로 칠연폭포 0.3㎞란 팻말이 서 있다(10:03). 칠연폭포는 7개의 폭포가 연달아 걸려 있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여름철엔 자연의 신비로움의 절정을 나타내지만, 지금은 얼어 있어 칠연폭포 탐방을 생략하고 왼쪽 길로 나아가 계곡을 건너는 구름다리를 지난다. 이젠 계곡을 오른쪽에 끼고 완만한 산길로 산을 오르다가 다시 계곡을 건너는 다리를 지나 계곡을 왼쪽에 끼고 진행한다.
조금 후 나무계단 길이 나오면서 산길은 가팔라진다. 눈 덮인 가파른 산길이지만 어렵지 않게 올라서니 작은 능선이다(10:39). 키 높은 붉은 소나무가 하늘을 가려 산이 깊음을 말해준다. 작은 능선에서 능선 오른쪽 사면 길로 나아가니 또다시 계곡이 나타난다. 계곡을 따라 이어지는 산길은 계곡으로 길이 나 있기도 하다.
백두대간 능선인 동엽령이 가까워지며 동화 속 분위기를 연출하는 덕유산 설경이 펼쳐지기 시작한다. 골짜기 바위는 흰 눈옷을 입었고 계곡물은 얼음 옷을 입고 있고, 나무들은 가지마다 고운 눈꽃을 피우고 있다. 안성탐방지원센터에서 4.5㎞거리인 동엽령(1320m)에 1시간 20분 만에 닿아(11:10) 백두대간 능선을 타고 4.3㎞거리인 향적봉으로 나아간다(11:14). 뽀드득 소리 내며 걷는 눈길은 참으로 정겹다.
백두대간 주변엔 눈꽃이 만발하여 겨울 산의 정수를 맛본다. 봄꽃인들 이보다 화사할 수 있을까? 여름꽃인들 이보다 탐스러울 수 있을까? 가을꽃인들 이보다 가냘플 수 있을까? 마치 선경의 세계에 온 듯 신비롭고 동양화 속을 걷는 기분이다. 산의 아름다움에 취해 발걸음이 느려진다. 완경사 백두대간 능선을 타고 덕유산 주릉과 백두대간 산줄기가 갈라지는 백암봉에 닿으니(12:20) 향적봉 2.1㎞란 안내판이 반긴다. 오른쪽 백두대간 능선은 전북과 경남의 도 경계를 이루며 신풍령으로 뻗어간다.
백암봉에서 점심을 먹고 중봉을 향해 나아간다(12:50). 덕유평전을 지나 나무계단이 설치된 길을 타고 백암봉에서 18분 만에 중봉에 올라서니(13:08) 강풍이 기다리고 있었다. 손끝이 얼어오고 살을 에는 칼바람이 불어온다. 하지만 눈앞에 전개되는 선경의 파노라마에 추운 줄을 모른다.
중봉을 지나면서 아름다움은 점입가경이 돼 살아 천년 죽어 천년인 주목이 하나둘 나타난다. 눈꽃이 달라붙은 주목을 보니 신비함과 아름다움에 눈이 휘둥그레진다. 중봉에서 19분 만에 수많은 산객으로 장터 같은 덕유산 고스락(정상)인 향적봉에 올라선다(13:27).
눈과 바람이 빚어낸 덕유산 설경에 산객 모두 입이 쫙 벌어진다. 고스락은 너무 추웠지만 화려한 눈꽃 세상을 그려내고 있었다. 향적봉 눈 세상은 하나하나 달랐다. 눈꽃은 보석처럼 빛났고 바람이 불자 눈가루가 얼굴로 눈꽃 비를 뿌렸다. 어찌 이런 장엄한 신비를 볼 수 있겠는가! 진정 가슴 뭉클한 감동에 빠져 주변 조망에 정신없이 취해본다.
하산은 백련사로 방향을 잡는다(13:40). 빼어난 설경은 백련사까지 내려가는 동안 계속됐다. 백련사에 닿으니 마음이 편안해진다. 부처님의 자비로움이 느껴지는 대웅전에 들어가 참배하고 길을 재촉한다. 이젠 널찍하고 경사를 느낄 수 없는 구천동 계곡 길로 나아간다.
차도 다닐 수 있을 만큼 넓고 평평한 길이기 때문에 가벼운 산책을 즐기거나 가족 단위 나들이에 적합한 코스다.
구천동 33경을 이루는 이속대, 백련담, 안심대, 청류계, 호탄암, 구월담, 다연대, 비파담으로 이어지는 길은 호젓하고 모두 눈이 덮여 제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지만 내 마음을 휘어잡았다.
오늘 산행은 눈꽃이 참으로 아름다웠다. 마치 은가루를 뿌려놓은 듯 반짝이며 화려한 풍광을 자랑하여 세상사 모두 잊고 끝없이 걸어가고만 싶어졌다. 오늘의 덕유산 풍광은 오랫동안 나의 머리에 간직돼 소중한 추억으로 남을 것이고 나의 삶에 커다란 활력소가 될 것이다.
☆ 산행거리: 16.9Km, 6시간 20분 소요(휴식시간 60분포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