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베소서는 참 교회가 어떤 것인지를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의 본문도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의 성숙에 대한 말씀입니다. 외적 성장이 아니라 교회의 내적 성숙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1. 말씀 배경
“닭이 먼저냐 알이 먼저나?” 우리들은 오래동안 이런 질문을 한 적이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무엇이 먼저입니까? 믿지 않는 자들은 영원히 답을 얻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믿는 우리들에게는 답이 성경에 있습니다. 다른 질문을 드림으로 힌트를 드리겠습니다. “아담을 지으실 때에 아이로 창조했습니까? 성인으로 창조했습니까?” 이제 답이 보이십니까? 만약에 알부터 먼저 창조했다면 품고 부화시킬 닭이 없습니다. 그리고 그 알은 무정란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면 닭이 생육하고 번성하지 못합니다.
→ 하나님께서는 천지를 창조하실 때 새 하늘과 새 땅으로 창조하시고 장성하고 성숙한 아담과 하와를 창조하시고 살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통하여 자식을 낳고 번성하게 하셨습니다. 그곳에는 먹기에 좋은 각종 나무 열매들이 있고, 네 개의 강이 에덴에서 흘러나와 사방을 적시고, 하윌라 땅에는 금이 있고 베델리엄과 호마노도 있습니다.
하지만 죄로 인하여 새 하늘과 새 땅이 죄로 물든 세상이 되었고 아담과 하와를 통하여 태어나는 인간들도 아이부터 어른에 이르기까지 죄인의 모습이 된 것입니다.
→ 에베소서는 이런 타락된 사람들의 모습을 “옛 사람, 불순종의 아들,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 잠 자는 자, 감각없는 자, 본질상 진노의 자녀, 소망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 등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반대로 회복된 자를 한마디로 “새 사람”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 하나님께서는 이런 타락된 모습의 세상을 끝장내는 것이 아니라 사람은 새 사람으로 변화시키고, 잃어버린 새 하늘과 새 땅으로 다시 창조하시는 계획을 가지고 계십니다. 이런 내용이 성경 전체의 흐름입니다.
▶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보내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러한 변질된 세상과 죄인들, 곧 잃어버린 낙원, 에덴동산을 되찾아 생명수와 생명나무를 회복하고, 우리들을 죄를 짓기 전의 아담과 하와의 모습 회복시키고자 하는 것입니다.
→ 그 종말론적인 최종적으로 성취된 모습이 바로 요한계시록 21-22장에 나옵니다. 계시록에 기록된 새 하늘과 새 땅은 에덴동산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곳은 새 하늘과 새 땅이요, 만물도 새롭게 되었습니다, 수정과 같은 생명수 강이 길 가운데로 흐르고, 성벽은 벽옥이요, 성은 맑은 유리 같은 정금으로 되어 있고, 문은 진주, 성벽의 기초는 12가지 각양 보석으로 되어 있습니다. 강 좌우에는 12가지 열매를 달마다 맺는 생명과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으로 가득차 있어 해나 달의 비침이 쓸 데 없습니다.
에덴동산보다 더 찬란한 모습입니다. 에덴동산의 완벽한 회복입니다. 그곳에는 그리스도의 신부인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있습니다. 에덴동산에 살던 장성한 아담과 하와의 모습보다 더 영광스러운 모습일 것입니다.
이런 모습은 궁극적으로 종말에 이루어지는 모습이지만, 이를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지금, 현재 이 땅에서도 이루어가고 계십니다. 어떻게 이루어 가십니까?
2. 만물도 사람도 충만하게 하십니다.
1) 만물을 충만하게 하십니다.
10절, “이는 만물을 충만하게 하려 하심이라”
“충만하다” (플레로오)는 것은 “채우다”는 의미와 “완전하게 하다, 완성하다, 새롭게 하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무엇으로 만물을 채웁니까? 이것은 그리스도로 인하여 만물이 하나님의 뜻대로 회복되는 것입니다. 더렵혀진 만물이 거룩함을 회복하고 그리스도의 통치와 다스림이 완전히 이루어지는 상태입니다. 한마디로 그의 계획대로 만물이 구원을 이루는 상태입니다.
만물도 인간의 죄로 인하여 원래의 형상을 많이 잃었습니다 (롬 8:21-22). 땅도 피흘림으로 인하여 더렵혀지고, 만물들을 인간이 우상으로 섬김으로 인하여 함께 더렵혀진 것입니다(로 1:25).
하나님 보실 때 더렵혀진 것은 없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혼돈하고 공허할 뿐입니다 (창 1:2) 그래서 최초의 창조시처럼 새롭게 하나님의 뜻대로 채워져야 합니다.
그래서 만물도 인간도 새롭게 할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계 21:5, 고후 5:17)
우리 예수님은 사람 뿐만 아니라 만물까지 구원을 하시기 위하여 오셨습니다 (롬 8:20-21). 마치 우리 인간의 영혼 뿐만 아니라 육체까지 구원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도 만물이 회복되도록 만물을 더럽히는 더러운 우상숭배를 피하고, 죄를 멀리하고 만물이 하나님의 뜻대로 되어지기를 선포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셨다가 부활 승천 하신 이유가 하늘과 땅에 있는 만물을 충만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엡 4:7-10). 하늘에 오르지 못하는 자가 어찌 하늘의 것들을 충만하게 할 수 있습니까? 만물을 충만하게 하실 분은 오직 예수님 밖에 없습니다.
2) 사람을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까지 충만하도록 자라게 하십니다.
13절,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15절,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 동사는 가정법 과거형 (~한다면 ~할텐데, 조건)
예수님을 믿지 않는 자들은 아직 영적 생명이 없는 자입니다. 육신은 태어났지만 영의 생명은 태어나지 않는 자입니다. 이런 자들은 예수님을 믿음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처음 태어난 사람은 영적 어린아이입니다.
마치 육신의 아이가 세상에 태어난 것과 같습니다.
육신적이든 영적이든 아기는 자라야 합니다. 아기가 평생 아기로 있다면 정상이 아닙니다. 성장이 멈추어 있는 자는 정상이 아니라 장애인인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끝임없이 ”자라야 한다. 성숙해져야 한다“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딤전 4:15, 엡 4:15).
▶ 성경에서 사용된 인물들은 하나님 나라에 봉사 할 수 있는 정도로 영육간에 자란 분들입니다.
→ 제사장으로 봉사하기 위해서는 30세가 되어야 합니다. 요셉이 총리가 된 나이는 30세입니다. 에스겔도 30세에 부름 받고 사용되었습니다 (겔 1:1)
모두 30세가 되기까지 성장하는 준비 기간이었습니다. 30세가 되어야 장성한 분량에 이른 것입니다. 영적 나이도 마찬가지로 30세가 되어야 장성한 분량이 되는 것입니다.
사무엘도 하나님 앞에서 자랐습니다.
[삼상 2:21] 여호와께서 한나를 돌보시사 그로 하여금 임신하여 세 아들과 두 딸을 낳게 하셨고 아이 사무엘은 여호와 앞에서 자라니라
세례요한도 자랐습니다.
[누가복음 1:80] 아이가 자라며 심령이 강하여지며 이스라엘에게 나타나는 날까지 빈 들에 있으니라
예수님도 30세부터 공생애를 시작하셨습니다. 그동안은 자라신 것입니다.
[누가복음 2:52] 예수는 지혜와 키가 자라가며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욱 사랑스러워 가시더라
▶ 예수님께서 이 땅에 성인으로 오시지 아니하시고 아이로 오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장성한 분량으로 채워져야 합니다. 우리들과 똑같이 먹고 자고 지식을 습득하고 그래서 영.혼.육의 성장을 이루어가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라신 후에 30세가 되어서 세례를 받으시고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공생애를 시작하셨고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되셨습니다. 이제는 자라는 아이가 아니라 ”장성한 분량의 아들“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3:17] 하늘로부터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
시 2:7절을 근거로 본다면 30세가 되는 그때가 왕으로 선포되는 때인 것입니다.
[시 2:7] 내가 여호와의 명령을 전하노라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내가 너를 낳았도다
우리들도 성숙하면 왕같은 제사장이 되는 것입니다 (벧전 2:9)
유대인들도 나이가 30세가 되면 아버지가 많은 사람들이 앞에서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고 선포한다고 합니다. 이제는 이 아들이 공적인 일을 할 수 있는 장성한 아들이 되었음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 왜, 예수님을 첫 아담처럼 성인으로 이 땅에 보내지 않으시고 ”아이“ 예수님으로 오셨을까요?
예수님은 우리들의 성숙의 모델로 삼으시기 위함입니다. 우리도 예수님처럼 자라서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까지 자라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똑같을 수는 없지만 예수님의 모습이 우리가 자라가야 하는 목표입니다. 분명히 영적인 아이 단계가 있습니다 (요일 2:13-14). 우리들은 계속 아이의 단계에 머물러서는 안됩니다. 더구나 자라기는커녕 오히려 퇴보하고 있으면 더더욱 안됩니다. 하나님 이런 사람은 기뻐하지 않으신다고 하셨습니다.
[히브리서 10:38]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또한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그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자라야 쓰임을 받습니다. 궁극적으로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까지 자라기를 바라시는 것입니다.
장성한 자가 궁극적으로 새 하늘과 새 땅에서 그리스도의 신부가 되는 것입니다. 이 땅에서도 미성년자를 신부로 취하지 않습니다.
천국에 있는 그리스도의 신부는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까지 이른 자들입니다.
3. 영적 성장의 방법
이제 우리들이 어디까지 성숙해야 하고 회복의 목표가 무엇인지 알았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1) 당연히 그리스도 안에 있어야 합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어야 영적 자녀가 되기 때문입니다. 자녀로 먼저 태어나야 자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 안에 없는 성장은 단지 육신의 성장에 불과합니다. 겉 사람 곧 육신은 때가 되면 늙고 낡아집니다 (고후 4:16). 그러나 영적 성장의 모습은 천국에 그대로 가지고 갑니다. 이 땅에서 이룬 영광을 그대로 가지고 천국에 들어가기 때문입니다 (계 21:26).
머리가 되시는 그리스도께 붙어 있기만 하면 자라나는 것입니다 (엡 4:15-16)
2) 자랄 수 있는 좋은 영적 환경에 있어야 합니다.
오늘 말씀 11절에 ”그가 어떤 사람은 사도로, 어떤 사람은 선지자로, 어떤 사람은 복음 전하는 자로, 어떤 사람은 목사와 교사로 삼으셨으니“ 바람직한 참 교회는 이러한 직분들이 있는 교회입니다. 이런 유기적인 교회 조직을 준 이유가 ”성도를 온전하게 하여 봉사의 일을 하게 하고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기 위함“입니다.
반대로 이런 좋은 영적 교회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성도들이 장성한 분량으로 자라기가 어려움이 있습니다. 성경은 분명히 한 사람의 목사에 의해서 자라게 하는 것이 아니라 이런 여러 기름 부으심의 직분을 통해서 온전하게 하고 자라게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에는 바울과 아볼로의 관계처럼 심는 자도 있어야 하고 물 주는 자도 있어야 합니다. 그렇 때 하나님게서는 자라게 하십니다.
[고린도전서 3:6]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께서 자라나게 하셨나니
교회는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몸과 같습니다. 다양한 직분으로서 손이 있고 발이 있고 눈도 귀도 있는 것입니다 (고전 12:16-30) 이것이 참 교회의 모습입니다. 이와같이 교회는 엡 4:11절에서 말씀하신 다섯 가지 직분을 통하여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 되게 하고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게 하여 장성하도록 자라게 하는 것입니다. (엡 4: 13, 15)
이런 영적 환경에서 믿음 생활하신다면 성장할 수 있을 것입니다.
3) 각자가 할 일도 있습니다. 스스로는 옛 사람, 어린아이의 모습을 벗어버려야 하는 전심 전력이 필요합니다.
14절의 ”어린 아이“(네피오스)는 ”유아, 미성년자, 서투른, 미숙한, 어리석은“ 뜻이 있습니다. 오늘 말씀으로만 본다면 어린아이의 수준은 ”사람의 속임수와 간사한 유혹에 빠져 온갖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 하는 자“(14)이며,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자“ (22) 의 모습입니다.
여전히 초등학생 수준입니다. 스스로 하지 못합니다. 피동적입니다.
이제 스스로 하는 수준으로 올라가야 합니다. 이제는 논어에서 공자가 말한 것처럼 스스로 서야하는 나이 (30세, 而立)가 되어야 합니다.
초등학교를 지나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수준으로 넘어가고 마침내 졸업을 하여 사회에 봉사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 나라에 봉사자가 될 수 있습니다.
오늘 말씀에도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랑 안에서 이제는 참된 것을 해야 합니다 (엡 4:15).
→ 우리들이 다음 단계로 넘어가지 못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시험에서 떨어져 자꾸 유급되기 때문입니다. 다음 단계로 진급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시험을 치르게 됩니다. 졸업고사와 같습니다. 이것은 대체로 사탄의 시험으로 옵니다. 다음 단계로 넘어가지 못하게 하는 시험인 것입니다. 많은 사람이 여기서 낙제를 합니다. 그래서 오래동안 영적인 유급생으로 남아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혹시 유급생이 아닙니까?
→ 오늘 말씀을 통하여 자신의 성숙함의 수준을 되돌아보는 시간 되시길 바랍니다. 자라지 못하고 유급이 되어 있거나 후퇴하는 자의 모습이라면 지금이라도 영적인 분발을 해야 합니다. 딤전 4:15절에서는 바울이 디모데에게 ”이 모든 일에 전심 전력하여 너의 성숙함을 모든 사람에게 나타나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육신의 성장도 밥을 먹어야 자랄 수 있습니다. 영적인 성장도 영의 양식을 먹어야 자라는 것입니다.
영의 양식을 먹기 위해서 예수님 안에서 교회 공동체 안에서 말씀도 읽고 말씀도 듣고 말씀대로 살기 위해서 애씀이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좋은 영적 지도자들과 교류함이 필요하지 않습니까?
12절에 ”온전하게 하다“는 ”준비하다“는 뜻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준비된 자를 사용하시는 것입니다.
모세도 요셉도 준비된 자들입니다. 갑자기 그렇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저도 여전히 준비하고 있습니다. 금 그릇이 될지, 은 그릇이 될지는 모르겠습니다 (딤후 2:20)
연단과 훈련을 통하여 만들어져 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성결한 그릇, 깨끗한 그릇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딤후 2:21)
하나님께서 자라가라고 하셨으니 자라게 하실 것입니다.
자랄 수 있도록 이슬과 같은 성령의 단비를 부어주실 것입니다. 우리들에게 명령하신 것은 하나님께서 이루시겠다는 뜻이 함께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듣고 다시 힘을 얻어 우리 모두 함께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까지 자라가는 은혜가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