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씬1.나무 위 거미줄 / 해질녘
거미줄 중앙에 있던 거미 한 마리가 위로 기어 올라가면
멀리 집 한 채가 거미줄에 꽉 차게 들어온다.
바람에 흔들거리는 거미줄. 이 위로 망치질 소리.
씬2.거미집 복도 / 밤
쿵! 삐거덕 쿵! 삐거덕 반복적으로 들린다.
카메라 어둡고 긴 복도를 따라 가다 살짝 열려진 방문 앞에 멈춘다.
여자(인남/32세) 하나가 책장 아래쪽에다 못질을 하고 있다.
씬3.서재 안
책과 비디오테이프가 빽빽하게 들어차있는 공간.
인남, 못이 빠져서 위태롭게 튀어나온 책장을 고정시키고 있다.
그런데 아래쪽에 망치질을 가할 때마다 위쪽 못이 조금씩 빠져나온다.(C.U)
쿵! 삐거덕 쿵! 삐거덕
눈치 채지 못하고 열심히 망치질 해대는 인남.
씬4.다시 복도
망치 소리가 어두운 복도 가득 울린다.
카메라 다시 가던 길 간다.
열려진 손님방을 지나고, 역시 열려진 욕실을 지나고,
환한 빛이 올라오는 계단 아래로 내려가려 할 때
인남의 비명소리. 아악~~~~
잇따라 뭔가 우루루 무너져 내리는 소리 쿠웅!!! (빠르게 암전)
어둠 속에서 전화벨 울리면서
타이틀 스멀스멀 뜬다.
씬5.거미집 전경 / 아침
비가 쏟아 붓듯 내리고 있다.
씬6.복도
창 밖으로 비가 쏟아지고. 번쩍 우르릉 쾅쾅! 천둥과 번개.
씬7.서재 안
어둑한 실내.
벽에 붙어있어야 할 책장이 바닥에 엎어져 있고,
그 주변에는 양장본의 두꺼운 책들이 무덤처럼 쌓여있다.
인남의 손 하나가 나와 그것들을 걷어보지만
악!! 단발마의 비명. 어딘가를 다친 모양이다.
책 밑에 깔려서 깜빡이는 인남의 눈.
인남 : (E) 동물계, 척추동물문, 포유강, 영장목, 인류과, 호모속에 속하는 사람으로 태어나 서른 두 해를
살았다. 도파민, 페닐에틸아민, 엔돌핀의 대상이 남들과 달리, 남자가 아닌 책이었던 나.
책에 파묻혀 평생 연구만 하다 죽어도 좋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진짜로 그렇게 되다니!
아래층 전화 벨소리 작게 들린다. 문 쪽으로 고개를 돌리는 인남.
씬8.거실
전화벨 울린다.
햄스터가 우리 안에서 불안하게 쳇바퀴를 돌리고 있다.
씬9.다시 서재 안
서재 안을 천천히 훑는 카메라.
상당부분 생물학 관련 서적과 비디오자료들이다.
인남 : (E) 그제 밤부터 계속 울어대는 전화벨소리. 분명 아무 쓸데도 없는, 부동산투자정보 회사이거나
리서치기관에서 설문조사에 응해달라는 내용일 거다. 아마 난 이 방에서 푸욱 썩은 후에나
발견되겠지. 신문에 나겠군. 30대 생물학강사, 단독주택에서 한 달 만에 썩은 채 발견!!
이때 들리는 삐거덕 소리. 누군가 계단을 올라오고 있다.
긴가민가해서 긴장하고 듣는 인남.
복도를 거닐고 방문을 열고 닫고. 틀림없다!
인남 : (E) 도둑?! 이럴 수가! 나쁜 일은 겹쳐서 온다더니. 혹시 모르니까 살려달라고 외쳐볼까?
바로 이때 활짝 열리는 서재 문.
움찔하는 인남. 바짝 얼었다.
터벅터벅 걸어오는 남자의 커다란 발.
인남 : (E) 어떡하지? 죽은 척할까?
남자, 책장을 들어올린다. 죽은 척하는 인남.
빠르게 책을 걷어내는데... 악!!! 인남의 비명소리. 아픈 데 건드렸다.
인남, 죽을상이다.
지운 : (당황해서) 괜찮아요?
인남 : (착하게 생긴 지운 얼굴을 보자 왠지 안심이다) 누구...세요?
지운 : 아, 예... 그 보다... (책을 마저 치운다) 기절한 줄 알았어요.
인남 : (아픈 데 또 건드렸다. 짧은 비명) 앗! 조심해요!
지운 : 아, 예... 죄송합니다. 팔을 다치셨군요. 다른 덴 괜찮아요?
인남 : (지운의 옷에서 떨어진 빗물이 책 적시는 걸 보고) 아, 거기 물!!
미안한 듯 뒤통수를 긁적이는 지운.
인남 : 근데... 누구세요?
멋쩍게 웃는 지운.
씬10.거실 / 낮
거실 통유리를 타고 내리는 비. 조금 멎었다.
깁스를 한 채 통화 중인 인남.
저만치 떨어져서 햄스터(두 마리) 구경하고 있는 지운이 보인다.
인남 : (통화하며, 지운 힐끔 보고) 뭘 저런 걸 보냈어? / 나야 고맙지. 잘 먹을게. / 그래 또 연락해.
(하고 전화 끊고, 지운 본다) 그쪽 말이 맞네요. 고맙습니다, 구해주셔서.
저녁이라도 대접해서 보내드리고 싶은데 (깁스한 팔 보이며) 보시다시피...
지운 : (뭔 얘긴 지 몰라 멀뚱히 쳐다본다)
인남 : 아! 이거라도 드실래요? (케?? 상자 풀며) 제가 초코 케?揚? 좋아하 니까 언니가 보냈나 봐요.
들고 오느라 귀찮았죠?
지운 : 아뇨, 그게 아니라...
인남 : (생각난 듯) 아! (가방 속에서 지갑 꺼내며) 목숨을 구해주셨는데 당연히 사례 해야죠.
지운 : (당황해서) 아뇨! (혼잣말처럼) 얘기가 아직 안 됐나보네?
인남 : (멀뚱히 바라보는) ?
<시간경과>
다시 통화 중인 인남. 저만치 난처한 표정의 지운이 서 있다.
인남 : 그래서 그렇게 밤낮으로 전화를 퍼 부우셨군?
인영 : (F) 뭐야, 갑자기? 아까 전화할 땐 고맙다고 난리더니?
인남 : (버럭) 나 걱정돼서 보낸 줄 알았지!? 누가 (하다가 지운 의식하고 목소리 낮춰)
이 집에서 같이 지내라는 건 줄 알았어?
인영 : (F) 신원은 걱정 마. 내 대학 후배야. 니 형부랑도 잘 알고, 조각하는 앤데, 다음 학기부터
서울에 있는 대학에서 강의를 맡게 됐어. 자리 잡을 때까지만 니가 좀 도와줘.
서울에 아는 사람 아무도 없대.
인남 : 언니, 그걸 지금 말이라고 해?
인영 : (F) 그래, 니 자폐성향 알지.
인남 : 언니.
인영 : (F) 아는데, 이번만 좀 부탁하자. 걔 진짜 괜찮은 애야. 지가 손해 보면 봤지, 절대 남 귀찮게 안 해.
인남 : 언니, 이건 귀찮고 어쩌고의 문제가 아냐.
인영 : (F) 이참에 니 성격도 좀 고쳐라, 기집애야!
인남 : (어이가 없는 듯 ‘허’ 하다가) 언니! 저 남자랑 내가 같은 변기 위에서 앉았다 일어났다한다는 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지운, 이말 들었다. 쳐다보고 웃는.
씬11.욕실
지운을 세워두고 뭔가 설명하는 인남.
인남 : 욕조 사용은 삼가주시구요. 샤워는 해도 좋아요. 선반은 여기까지만 사용하시고
이 선을 넘지 않도록 해주세요. 그리고 변기! (변기 위에 붙은 깔개 가리키며)
앞으로 이걸 이용하실 땐, 이걸 떼어내고 사용해주세요. 아셨죠?
미소 머금고, 착하게 고개 끄덕이는 지운.
인남 : (가리키며) 슬리퍼, 바꿔 신지 않으시겠죠?
씬12.거실 / 저녁
지운, 뉴스를 보고 있다.
호텔 살인사건 현장의 어질러진 모습이 나오고 있다.
아나운서 : (E) 오늘 오전 11시경, 파레스 호텔에 묵고 있던 20대 후반의 남자가 목 졸려 살해 된 채
발견됐습니다. 경찰은 목격자의 말에 따라, 당시 방에 있었던 20대 남자를 유력한 용의자로
보고 행방을...
하는데, 갑자기 채널이 바뀐다. 교양구성프로그램이 방영중이다.
쵸코케?? 한 조각, 접시에 받쳐가지고 와서 먹으며 소파에 앉는 인남.
인남 : (지운보고) 방금 그거 보는 중이었어요?
지운 : 아뇨. 상관없어요.
인남 : (먹으며 TV 보는)
식스타임.
TV에 지금 방영중인 프로그램은, 이슈 또는 정보를 제시하면서 패널들의 의견을 묻고 대화하는 식의
별로 무겁지 않은 구성프로다.
<인서트 - TV화면>
MC : 우리나라에서도 이 히키코모리, 은둔형 외톨이가 점점 늘어가고 있는 추센데,
이에 대한 대처방안은 없을까요? 서교수님 생각은 어떠세요?
인남 : 은둔형 외톨이는 치열한 경쟁구도 속에서 도태된 사람들입니다.
지운, 인남을 쳐다본다.
케?? 먹으며 TV에 시선 고정하고 있는 인남.
<인서트 - TV화면>
인남 : 경제적으로도 부모에게 의존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요, 이들을 밖으로 끌어내는 방법은
더욱 더 치열한 경쟁구도 속으로 몰아넣는 방법밖에 없습니다. 스스로 경제활동을 하지 않으면
생존이 불가능하게 만드는 거죠.
MC : 상당히 과격한 주장이신 거 같은데요?
인남 : 별로 그렇지 않습니다. 하이에나에도 두 마리의 새끼를 낳는데요.
지운, TV에서 시선 띄고 인남을 바라본다. 흥미로운 시선.
인남 : (F) 두 마리 중 한 마리만이 살아남습니다. 날카로운 송곳니로 서로를 겨누기 때문이죠.
그래서 결국 살아남은 한 마리만을 엄마 하이에나가 거둡니다. 어차피 현재의 우리 사회도
경쟁사회입니다. 이걸 부정할 순 없어요. 그럴 바에는 계속 오냐오냐 손대면 상할까
불면 날아갈까 조심조심하는 것보다 좀더 혹독하게 다룰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씬13. 손님방 / 밤
지운, 짐을 푼다.
가방 속에서 액자를 꺼내들고 가만히 보다가 협탁 위에 올려놓는다.
지운 옆에서 방긋방긋 웃고 있는 미모의 여자 사진.
씬14. 거실
TV 앞에서 책 읽는 인남. TV는 켜 둔 채다.
책 읽다말고 TV에 뭐가 나오는지 눈을 찌푸리더니 안경을 쓰고 다시 본다.
자동차 실험을 하고 있는데, 안에 타고 있는 인형이 박살이 났다. (인서트)
인남, 수화기를 들어서 어딘가로 전화를 한다.
인남 : 거기 방송국이죠? 조금 전 방송된 프로그램 때문에 그런데요.
<시간경과>
TV앞에서 눈물을 찍어내는 인남.
사랑의 리퀘스트류의 불우한 이웃을 돕는 프로그램이다.
‘다이얼을 누르시면 1000원이 적립됩니다. 여러분들의...’ 멘트 나오고.
인남, 눈물을 닦으며 수화기 들어 버튼을 누른다.
씬15.복도
계단을 올라오는 인남, 불이 켜 있는 지운의 방을 본다.
한참 바라보다가 복도 저편으로 꺾어져 사라진다.
어둠에 잠긴 텅 빈 복도. 창밖 가로등불빛만....
<시간경과>
가로등 꺼져있고, 복도 창으로 아침햇살이 들어오고 있다.
씬16. 인남의 방 / 아침
고동색 원피스를 입고, 머리를 틀어 올리고, 뿔테 안경을 끼고, 숄을 걸치는 인남. 외출할 모양이다.
커다란 가방을 들고 나가려다가 거울 앞으로 다가온다.
얼굴을 유심히 들여다보고는.
인남 : (새삼 걱정스러운) 주름이 많이 늘었네. (작게 한숨쉬고 나간다)
씬17.서재 안
일전에 무너졌던 책장을 고쳐서 벽에 붙이고 있는 지운.
지나가던 인남, 열려진 문으로 빼꼼히 보더니 들어온다.
인남 : 사람 사서 하면 되는데.
지운 : 뭐 이런 걸 돈 주고 해요. 다 끝났어요.
인남 : (단단히 고정된 듯 보이는 책장을 만족한 듯 보다가) 열쇠가 하나 밖에 없어서 못 놓고 가요.
나가려거든 대문만 닫고, 일 보시고 7시 이후에 오세요. 강의 끝나고 오면 그 정도 되요.
지운 : 그럴께요.
계단 내려가는 인남. 삐거덕삐거덕 소리 길고.
다 된 듯 책장 흔들어보는 지운.
연장 내려놓고, 쭉 공간을 훑으며 책을 살펴본다.
그러다 관심거리 발견한 듯 한권을 뽑아든다.
보면, <거미 여인의 사랑법>이란 제목의 단행본.
앞장을 열면 저자 사진, 인남 얼굴이다. (꽤 어려 보이는)
후루룩 펼쳐보면, 칼라판 거미사진이 많다.
관심 갖고 페이지 넘기는 지운.
씬18. 거실 / 낮
둘둘 말린 가느다란 와이어 보이고.
그걸로 뭔가를 만들고 있는 지운.
이때, 전화벨 울린다.
지운, 망설이다가 전화 받는다.
지운 : 여보세요? (놀라는)
지운, 저편에서 뭐라고 했는지 귀에서 수화기 뗀다.
씬19. 거미집 뒤뜰
통나무 의자에 앉아 햇볕 쬐는 지운.
발밑에 자갈로 울타리를 만들어 햄스터들 산책시키기고 있다.
거실에서 울리는 전화벨, 작게 들린다.
지운 : (햄스터에게, 미소) 나와 있길 잘했지?
씬20. 거실
계속 울리는 전화벨.
씬21. 거미집 뒤뜰
화단에 핀 난쟁이 꽃들, 바람에 흔들린다.
지운, 그 모습 보며 미소 짓는데...
맨 끝의 놈이 지붕에서 떨어지는 빗물에 얻어맞고 있는 게 보인다.
<시간경과>
사다리를 대고 지붕으로 올라가는 지운.
물받이가 깨져서 고였던 빗물이 괜한 곳으로 떨어지고 있다.
임시방편으로 접착테이프로 깨진 곳을 막는다.
그러다가 지붕 저편의 옥상을 발견하는 지운.
씬22. 옥상 위
옥상으로 올라온 지운. 한쪽에 간이 의자와 테이블이 놓여있다.
이 새로운 공간이 맘에 든다. 기분 좋은 듯 가볍게 몸을 풀다가...
뭔가 반짝 하는 물체를 발견하고 다가간다.
창문. 하늘을 향해 뚫린 커다란 창이다.
지운 : 이런 데가 있었네?
하며 안을 들여다본다.
침대와 앉은뱅이책상 하나만 덩그라니 놓여있고, 텅빈 방.
흔한 소품 하나 없다.
지운 : (아무리 봐도 이상한) 저긴 어떻게 들어가지?
몸을 일으키는 지운.
카메라 빠지면서, 지운이 서 있는 곳이 지붕의 정 가운데임을 보여준다.
씬23. 정원 / 저녁
인남, 깁스 때문에 한 팔로 커다란 책과 가방을 어렵게 들고 들어온다.
거실에서 이를 본 지운, 밖으로 나온다.
다가와서 말없이 인남이 들고 있는 것들을 받아주려 하는데.
인남, 어색해서 주춤하다가... 지운에게 맡긴다.
미소 짓는 지운. 이때, 이상한 느낌에 뒤를 돌아본다.
대분 밖의 검은 그림자. 재빨리 사라진다.
이상한 듯 갸우뚱하고, 다시 걸어가는 지운.
씬24.거실
안으로 들어오는 두 사람.
지운 : (짐 들고 계단 쪽으로 가며) 된장찌개 좋아해요?
인남 : (보면)
지운 : 저녁 아직이죠? 준비해 놨어요. (짐 들어올리며) 이거 서재에 놓을까요, 방으로 놓을까요?
인남 : 서재로 가져다주세요.
이때, 전화벨 울린다. 인남, 받으려하면.
지운 : 받지 마요!
인남 : (의아한 듯 지운 보다가, 벨이 계속 울리자 받는다) 네.
소리 : (F 쫙 가라앉은 남자의 음성) 적자생존, 약육강식. 니가 바라는 게 그거야?
인남, 지운을 보면. 지운, 난처한 듯 웃는다.
전화에 귀 기울이는 인남.
소리 : (F) 하이에나 새끼들같이 송곳니로 물어뜯어 죽이자고?
서인남, 너 지켜보겠어. 니가 살아남을 수 있을지 나도 궁금해. 큭큭. (찰칵! 끊기는)
인남, 전화 끊으면 다시 또 울리는 전화벨.
인남과 지운, 서로 바라본다.
지운 : (내려오며) 내가 받을께요.
인남 : (전화 받는다. 화난) 당신 뭐야!? 나한테 왜 이러는 거야? 당신 그, 히키코모린가 뭔가.. 그거야?
구성작가 : (F) 서교수님이세요?
인남 : (놀라는) ....네.
작가 : (F) 교수님 여기 방송국인데요. 저희가 개편 때문에...(약간 주저하는) 다음주부터 좀 바뀌거든요?
이제 안 나오셔도 된다고 말씀드리려고.
인남 : 개편이요? 얼마 전에..... (왜 그러는지 알겠다) 알겠어요. (끊는다)
낙담한 표정의 인남. 바라보는 지운.
씬25. 서재 / 밤
컴퓨터 모니터 앞에 앉은 인남. 점점 표정이 굳어 들어간다.
<인서트 - 컴퓨터 모니터>
6시에 만나는 6가지 이야기 <식스타임>
‘인간과 하이에가 동급?’, ‘서인남은 공개 사과하라’,
‘보따리장사 때려쳐라’, ‘당신이나 집구석에서 은둔하시오’ 등등
게시판에 가득 찬 비난, 비방 글들. 굳은 표정의 인남.
씬26. 거실 안 / 밤
호두망치로 호두가 든 주머니를 두들기는 인남. 깨진 호두를 까서 햄스터에게 준다.
기계적인 행동일 뿐 생각은 딴 데 가있다.
지운, 새 모양의 와이어공예품을 들고 계단을 내려온다.
창쪽 적당한 위치에 걸고.
지운 : 어때요?
인남 : (보고) 뭐예요?
지운 : 와이어공예라고, 철사로 만든 작품이에요. 이거 여기에 걸어도 되죠?
인남 : 네.
호두망치랑 호두알을 주머니에 넣고 일어난다. 힘없이 계단 쪽으로 가는데.
지운 : 저기요.
인남 : (돌아본다)
지운 : 나도 그렇게 생각해요.
인남 : (보는)
지운 : 인남씨처럼. 그러니까.... 여기는 경쟁사회고 스스로 싸우지 않으면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다는.
인남 : 네에. (계단 올라가려하면)
지운 : 그러니까....
인남 : (멈춘다)
지운 : 그러니까, 싸우세요.
인남 : (본다)
지운 : 옳다고 믿는다면, 저들에게 지지말고 용기내세요.
인남 : (지운을 가만히 보다가 끄덕하고, 다시 계단 오른다)
지운 : (작게 미소 짓고 인남을 바라보는)
씬27.욕실 안
거울을 보는 인남.
지운 : (E) 나도 그렇게 생각해요. 인남씨처럼.... 그러니까, 싸우세요.... 지지말고 용기내세요.
인남, 물을 튼다. 손을 넣었다가 수도꼭지 방향을 좌우로 돌려보는.
뜨거운 물이 안 나온다.
씬28.지하 보일러실
보일러를 살펴보는 지운.
지운 : (몸을 일으키며) 점화 트랜스가 고장 났어요. 내일 교체해야겠어요.
인남 : 그것만 교체하면 되요?
지운 : 네.
인남 : (끄덕이다가, 갇힌 공간에 둘만 있는 게 어색한 느낌이다) ....
지운 : 참! 물어볼 게 있는데. (쭉 늘어서 있는 밸브 하나씩 가리키며) 이건 인남씨 방, 이건 서재,
이건 지금 내가 쓰고 있는 방, 이건 욕실, 이건 복도, 이건 거실..... 그런데 이건 뭐죠?
인남, 지운을 바라본다.
씬29.서재 안
인남, 앞장서서 걸어와 어느 책장 앞에 선다. 따라와 서는 지운.
책장을 옆으로 밀면 그 뒤에 떡 버티고 선 문 하나!
열쇠를 돌리는 인남. 문을 연다.
씬30.하늘 방 / 밤
안으로 들어오는 인남과 지운.
지운이 위에서 본 대로 침대와 책상 하나만 있고 텅빈 방.
올려다보니 천정을 거의 차지하고 있는 커다란 창이 밤하늘을 가득 담고 거기 있다.
지운, 저도 모르게 탄성!!
지운 : 여긴 뭐하는 곳이에요?
인남 : 저희 아버지 방이었어요. 엄마 돌아가신 후로 이 방에서 책 읽고 글 쓰고 기도하고,
식사랑 잠까지 전부.... 거의 은폐된 생활을 하셨어요.
지운, 불을 켜려고 벽을 더듬는데.
인남 : 이 방엔 조명이 없어요.
지운, 인남을 본다.
씬31.옥상 위 / 밤
의자에 앉아 맥주를 마시는 두 사람. 안주는 호두다.
인남 : 하늘과 만나는 데 거추장스러운 것들은 다 치우셨어요. 첨엔 그냥 서재에 딸린 창고 비슷한
골방이었는데 어머니 돌아가시고 아버지가 개조하셨어요. 하늘로 창도 내시고. 조명도 없애고.
지운 : (하늘방의 창문 바라보며) 줄곧 저 방에서만 생활하셨다구요? 마치....
인남 : ....... 은둔형 외톨이요?
지운 : (끄덕)
인남 : ....... (자조적으로 웃는) 그러네요.
지운 : (분위기 바꾸려 부러 밝게) 저런 방에서 살면, 나라도 그러겠다.
좋잖아요. 누우면 바로 하늘도 보이고.
인남 : (지운 보는)
이들 머리 위로 초승달 떠있다.
씬32.거실 / 아침
외출복 차림으로 계단을 내려오는 인남.
나가려고하는데 전화벨 울린다. 멈칫하는 인남.
부엌에서 물마시던 지운, 거실로 나온다.
인남 한참 주저하다가 막 받으려는 찰라,
지운이 수화기를 든다.
지운 : 여보세요? / (미소 지으며 듣다가) 이봐. 무지 지루해. 레파토리 좀 바꾸지 그래?
사는 게 심심해? 그럼 나한테 와. 내가 가르쳐줄께. 수험료는 필요 없어. 너만 있으면 돼.
(수화기 든 채 미소 짓고) 끊었네요. (수화기 내려놓는)
인남, 눈이 동그래져서 지운을 바라본다.
지운 : 진짜 오면... 좀 만나주죠, 뭐. (웃고) 전화소리 신경 쓰이면 코드 빼놔요.
인남 : (나가며) 전화 올 데 있어서 안돼요.
지운 : 핸드폰 없어요?
인남 : (멈칫하고) 네. (나간다)
나가는 인남을 바라보는 지운.
씬33.복도 / 낮
지운, 어슬렁거리며 걷다가 인남의 방 앞에서 멈춘다.
문을 살짝 열어보는 지운. 침대와 화장대가 보인다.
막 들어서려는 찰라. 와장창!! 뭔가 깨지는 소리!!
지운, 소리 나는 곳으로 달려가 보면.
유리창이 박살 나 있고, 바닥에는 날렵한 돌 하나가 떨어져있다.
돌을 줍는 지운. 밖을 내다보지만 이미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씬34.거실 / 밤
통화 중인 인남.
인남 : 언니, 케?? 맛이 달라. 왜 그래 이번엔?
인영 : (F) 그럴 리 있니? 똑같은 재료로 똑같이 눈금 딱딱 맞춰서 했는데. 니 입맛이 변한 거 아냐?
인남 : 아닌데....
인영 : (F) 지운이 뭐하니? 지운이나 좀 바꿔.
인남 : 여기 없어. 이따 보면 전화하라고 할께.
인영 : (F) 나한텐 할 거 없고, 엄마한테나 전화 드리라고 해.
서울 도착해서 한 통화 달랑하고 통 안 했나보더라.
이때, 불 깜빡이더니 이내 정전 된다.
인남 : 어? 이거 왜 이래?
인영 : (F) 뭐가? 왜?
인남 : 정전인가 봐. 언니, 다음에 통화하자. (전화 끊고)
인남, 더듬더듬 부엌으로 간다.
씬35. 부엌 안
양초를 찾기 위해 더듬더듬 이 서랍 저 서랍 열어보는 인남.
이때, 어둠 속에서 누군가 인남의 어깨를 잡는다.
긴장하는 인남. 확 뒤돌아선다.
지운, 인남에게 부딪혀 손전등 떨어뜨린다.
불이 켜진 채 뱅그르르 도는 손전등.
지운 : (놀라서 인남 보다가 손전등 주우며) 왜 이렇게 놀래요?
인남 : (안심하는) 아뇨.
지운 : (웃고) 나두 놀랬네. 두꺼비집 어딨어요?
인남 : 저쪽 (하며 앞서가는)
이때, 뭔가(의자)에 걸려 윽! 하고 넘어지는 인남.
곧바로 플라스틱 그릇 같은 게 바닥에 떨어지는 요란한 소리.
지운 : 무슨 일이예요? 괜찮아요? (하며 손전등을 비춰주면)
인남, 밀가루를 뒤집어쓰고 앉아있다.
씬36. 욕실
불은 고쳤다.
거울 앞에 선 인남, 몸에 묻은 밀가루를 대충 턴 느낌.
그러나 머리는 기름과 엉켜서 여전히 하얗다. 자신의 모습이 한심한.
머리를 감으려고 하는데, 한쪽 팔에 깁스를 해서 어찌해야할지 모르겠다.
이때, 노크소리 나고.
지운 : (E) 혼자 할 수 있어요?
인남 : 네.
지운 : (E) 머리 감는 거, 좀 도와줄까요?
인남 : 됐어요. 혼자 할 게요.
지운 : (E) 고집피우지 말고. 혼자 어떻게 머릴 감아요?
인남 : (깁스한 팔 내려다보며 난감한)
<시간경과>
인남, 의자에 앉은 채 머리를 뒤쪽으로 빼고 있다.
지운과 마주보고 있는 형국. 어색한 인남.
그러나 지운은 아랑곳없이 인남의 머리를 감겨준다.
간혹 눈이 마주치는 두 사람.
어색하게 굳어버리는 인남과 달리 웃어주는 지운.
씬37. 거미집 전경 / 아침
씬38.거실 안
거미 한 마리가 뿔뿔 기어가고 있다.
쾅 밟는 슬리퍼 발. 지운이다.
거미시체를 주워서 햄스터에게 준다.
지운 : 맨날 호두만 먹으니까 지겨웠지?
이때, 인남이 계단을 내려온다.
지운 : 잠깐 나갔다 올께요.
인남 : 저기...
지운 : (돌아보면)
인남 : 목도리... 삐뚤어졌는데.
지운 : 그래요? (고치고) 됐어요?
인남 : 아뇨. 이쪽으로 좀 더.
지운 : (고치고) 됐어요?
인남 : (다가가서 고쳐준다. 긴장한 손끝이 가늘게 떨린다) 됐어요.
지운 : (고마움에 미소 짓고, 가려다가) 참!
인남 : (보는)
지운 : 햄스터는 배가 고프면 지들끼리 잡아먹는 거 알아요?
인남 : (생각해 보니 밥 안 줬다) 아!! (주머니 뒤지는데)
지운 : (웃고) 내가 줬어요. (나간다)
인남, 지운이 문 밖으로 사라질 때까지 바라본다.
슬며시 떠오르는 미소.
씬39.욕실 안
인남, 손을 닦다가 선반 위에 놓인 면도기에 눈길이 간다.
선반 위에 있는 지운의 물건을 자기 물건들과 섞어서 재배열한다.
뒹굴고 있는 지운의 칫솔도 자기 칫솔이 꽂혀있는 칫솔 통에 함께 넣는다.
두 칫솔의 칫솔모를 맞댄다. 미소 짓는 인남.
씬40.지운의 방 안
안으로 들어오는 인남.
탐험해야할 미지의 세계에 온 듯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천천히 둘러본다.
옷걸이에 걸린 그의 외투를 만지고 소매를 잡고 얼굴에 대본다.
그가 누웠던 침대에도 앉아보고. 그러다가 협탁 위의 사진을 발견한다.
여자 옆에서 활짝 웃고 있는 지운. 행복해 보인다.
굳어버린 인남의 표정. 액자를 잡은 손가락에 힘이 들어간다.
씬41.거실 / 저녁
아두둑 아두둑 호두 깨물며 소파에 쭈그리고 앉아 TV보는 인남.
지운이 다가오자, 표정이 더 어두워진다.
지운 : (그런 인남 보고) 무슨 일 있어요? (그러다 퍼뜩) 전화 또 왔어요?
인남 : (고개 젓는다)
지운 : 그럼.... 어디 아파요?
인남 : (가만히) .....
지운 : 아픈가보네? (인남 이마에 손 얹는다)
인남 : (그대로 있는)
지운 : 열은 없고. 어디요? 어디 아파요? (대답 없자) 클났네. 나 내일 나가면 인남씨 혼자 어쩌냐?
인남 : (놀라는) 나가요?
지운 : (웃는) 네. 살 곳 정했어요.
인남 : (굳은 채) 어디로....
지운 : 홍콩에 가려구요. 아는 형이 거기 있어요.
인남 : 학교는요? 강의하기로 돼있다면서요?
지운 : .... 학교랑 얘기가 잘 안 됐어요.
인남 : 강의 자리, 내가 알아봐줄게요.
지운 : (웃는) 하이에나 어미가 못 되겠군요, 인남씨. 내일은 내가 알아서 할 게요.
인남 : (절망한) 그... 여자분은요?
지운 : 여자라뇨? 누구요?
인남 : 사진 속에...
지운 : 사진? 아! 내 방에 있는 사진? 그거 봤구나.
인남 : ..... 같이 가요?
지운 : 아뇨. 그 여잔 못 가요.
인남 : (보면)
지운 : 죽었거든요.
인남 : ...... 나도 가요. 연구는 거기 가서 해도 되요.
지운 : 무슨 소리예요? 인남씨가 왜요?
인남 : 난... 그러니까 난.... 어차피 교수임용에서도 떨어졌고.... (결심한 듯) 남들보다 몇 년이나 앞서
박사학위를 받았고, 연구실적도 좋은 편이에요. 근데 벌써 몇 년 째... 이젠 정말 지쳤어요.
지운 : 인남씨답지 않은 말이네요.
인남 : ............
씬42.서재 / 밤
인남, 불안한 듯 왔다 갔다 한다. 그러다 멈추고.
<인서트 - 회상>
지운과 처음 만나는 순간.
책장을 수리하는 지운.
햄스터를 산책시키는 햇살 속의 지운.
머리를 감겨주는 지운.
회상에 이어...
지운 : (E) 클났네. 나 내일 나가면 인남씨 혼자 어쩌냐? ....홍콩에 가려구요. 아는 형이 거기 있어요.
고개 흔들며 거부하는 인남.
절망적인 표정으로 고개 드는데 하늘방의 문이 눈에 들어온다.
지운 : (E) 저런 방에서 살면, 나라도 그러겠다. 좋잖아요. 누우면 바로 하늘도 보이고.
하늘방 문을 뚫어지게 바라보는 인남.
씬43.복도 / 밤-낮
어둑한 복도, 점점 밝아온다.
인남, 서재에서 나오면
지운도 가방을 들고 방에서 나오고 있다.
지운 : 갈께요.
인남 : .... 잠깐 좀 도와주실래요?
지운 : (보면)
씬44.하늘방 + 서재
침대를 가운데로 옮기는 두 사람.
지운 : 앞으로 이 방에서 생활하게요?
인남 : (대꾸 없이 옮기는 데만 열중)
지운 : 집에만 있지 말고 밖에 나가서 친구도 만나고 그래요. 요즘 같은 때 핸드폰 없는 사람이 어딨어요?
핸드폰 도 좀 사고. (다 옮기고 천정 올려다보며) 이 방은 아무리 봐도 좋다!!
인남 : 침대에 한번 올라가볼래요?
지운 : 왜요?
인남 : (그냥 보는)
지운 : (시키는 대로 올라간다) 됐어요?
인남 : 팔 올려 봐요.
지운 : (웃고) 됐죠?
인남 : 더 뻗어 봐요, 최대한으로. 발꿈치 들고.
지운 : 뭐하는 거예요? (그러면서도 시키는 대로 하며) 됐어요?
천정이 생각보다 꽤 높다. 확인하고.
재빨리 밖으로 나가서 문을 닫아거는 인남.
씬45.서재 안
자물쇠를 채운다. (이전에는 없던 것으로 밤새 달았다)
지운 : (E) 인남씨 뭐하는 거예요? 지금 장난할 시간 없어요. 비행기 시간 빠듯하단 말예요.
인남 : (두려운) 미안해요.
지운 : (E) 네? 뭐라구요, 인남씨?
인남 : (약간 울먹) 미안하다구요!
지운 : (E) .......
인남 : 미안해요, 지운씨. 나도 어쩔 수 없어요.
지운 : (E 전혀 다른 음성. 낮고 섬뜩한) 문 열 어.
인남 : (놀라는) 지운씨....?
두려운 인남, 책장까지 닫는다.
지운 : (E) 미친 짓 그만하고 어서 문 열어. (쾅쾅 치며) 문 열어, 서인남. 어서 열어!
씬46.하늘방 안
지운 : (픽 웃고) 너 미쳤구나? 맞아 너 맛이 좀 갔더라. 진작 떠났어야 되는데, 내가.
미안하다 너한테 환상 심어줘서. 하지만 이건 아니다, 어서 열어. 어서!!!!
(마구 흔들며) 안 열어? 문 부순다?!!
씬47.서재 안
인남, 이 말에 깜짝 놀라 주변 둘러보고 구석에 위치한 커다란 책상을 밀어다 놓는다.
쿵쿵쿵. 흔들리는 책장과 책상. 꽉 잡고 있는 인남
지운 : (E) 너, 나 나가면 죽어. 지금 일은 용서해 줄 테니 어서 열어. 너 내가 누군지 모르지?
후회하지 말고, 어서 열어!? 나가면 진짜 죽어!!! 문 열어, 어서!! 열란 말야!!!!!
(문 부술 듯이 흔들며 발악하는) 아악~~!!!!
인남 : (두려운, 울며 혼잣말로) 미안해요. 정말 미안해요. 나도 어쩔 수 없어요. 조금만 참아요.
곧 좋아질 거예요. 나아질 거예요~
씬48.옥상 위
창을 통해 내려다본 방안 모습.
앉은뱅이책상은 치워졌고, 침대 하나만 덩그라니 있다.
지운, 탈진해서 문에 기대 주저앉아 있다가 뭔가 생각난 듯 벌떡 일어나 침대 위로 올라간다.
목을 쑥 빼고 창을 올려다보며 팔을 뻗어보고 여의치 않자
다시 내려와 침대를 벽에 붙인 다음 자기가 무슨 거미라도 되는 양 벽을 기어오르려고 바둥거린다.
이번엔 침대에서 펄쩍 뛰어 천정에 손끝이라도 대보려고 노력하는데 한참 모자르다.
씬49.서재 안
책상 아래 주저앉아있던 인남, 힘없이 일어나서 밖으로 나간다.
씬50.거미집 현관 앞
첫눈이 내리고 있다.
한손으로 양동이 들고 밖으로 나오는 인남.
눈 오는 거 보고, 얼굴을 들어 눈을 맞는다. 한참 그대로...
씬51.옥상 위
계단을 올라오는 인남.
조심스레 방안을 들여다본다.
팔로 얼굴을 가린 채 침대에 누운 지운. 검은 그림자를 느끼고 눈을 뜬다.
지운 : (깜짝 놀라 일어나 앉으며) 깜짝이야!
당장 일어나서 창을 향해 베개를 집어던진다. 창에 맞고 떨어지는 베개.
지운 : 뭐하고 있나, 구경 왔냐? 이러는 목적이 대체 뭐야?
인남 : (창을 열고 끈 달린 양동이 넣어주며) 밥 먹어요.
지운 : 너 변태냐?!! 내가 니 애완동물이야?!!
양동이 안에 아기자기 놓여있는 그릇들. 보온병도 있고.
지운, 양동이 내려오자 확 잡아당긴다.
그 바람에 아래로 떨어질 뻔한 인남.
지운 : (양동이를 걷어차며) 내가 이걸 왜 먹어. 너나 많이 쳐 먹어 기집애 야!!
(그래도 성질이 안 풀리는지 양동이를 밟고 그릇을 집어 던지고) 내가 개새끼야? 강아지새끼야?
애완동물 밥 줘!!? (깨진 그릇에 발 다치고) 앗!! 씨이~
인남 : 다쳤어요?
지운 : 너 암튼 나 나가면 죽은 목숨인 줄이나 알어.
인남 : 발 다쳤어요?
지운 : 그래 다쳤다 왜? 니가 어쩔 건데? 내려올래? (손짓하며) 내려와!! (침대 탕탕 치며)
한번 놀아보자. 너 이러는 목적이 혹시 이거냐?
인남, 우울한 얼굴로 창문 닫고 일어난다.
쓸쓸히 눈 오는 거 바라보다가 계단 내려간다.
씬52.옥상 위 / 다음 날
낮> 어제와 다른 복장으로 옥상을 올라오는 인남.
양동이 내려가면 양동이채 짓밟는 지운.
저녁> 또 다른 복장으로 옥상 올라오는 인남.
양동이에 담긴 그릇 하나씩 집어서 벽을 향해 던지는 지운.
낮> 또 다른 복장으로 옥상 올라오는 인남.
밥을 똘똘 뭉쳐서 공 던지는 포즈로 창문을 향해 던지고 좋아하는 지운.
씬53.옥상 위 / 낮
또 다른 복장으로 옥상 올라오는 인남. 이번엔 깁스를 풀었다.
양동이 내려온다. 멀뚱히 바라보는 지운.
지운 : 깁스 풀었냐?
인남 : 네.
지운 : 열흘정도 더 있어야 되는 거 아냐? ....나 때매 푼 거야?
인남 : (그냥 본다)
지운 : (피식 웃고) 열녀 났네. 나한테 왜 이러는 거야?
인남 : .....몰라요.
지운 : 몰라?
인남 : 모르겠어요. 뭐든 다 논리적으로 설명된다고 생각했는데... 모르겠어요.
그냥... 당신이 내 눈 앞에서 사라지는 게 싫어요.
지운 : 헛! 미치겠군. 그래서 나더러 어쩌라구?! 이대로 너한테 사육당하면서 살라구?!
야, 고맙다!! 평생 일 안하고 놀고먹을 수 있게 해줘서 정말 고마워!
어떻게 알았냐? 그게 내 소원이었는데? 고맙다 정말!!
인남 : (슬퍼져서 일어나면)
지운 : 야!!
인남 : (본다)
지운 : 햄스터라도 좀 넣어줘! 이런 방구석에 혼자 있으려니까 미쳐 돌아가시겠다.
참! 글구, 내 가방에 보면 와이어랑 니퍼 있거든. 아, 니퍼 모르겠구나?
작은 펜치 같이 생긴 거 있어. 그것 좀 갖다 줘. 취미생활 좀 하자.
씬54.지운의 방 / 늦은 오후
가방에서 와이어랑 니퍼를 꺼내는 인남.
닫으려다가 뭔가 발견하고 꺼내든다.
통장이랑 도장이다. 펼치면 신용카드가 툭 떨어진다. 낯익다.
카드랑 통장 이름 확인하고 굳어버리는 인남.
예금자 성명 서인남!!
이때 울리는 전화벨소리~~ 오늘따라 날카롭다.
씬55.거실
전화를 받는 인남.
인남 : 여보세요?
인영 : (F) 너 괜찮아?
인남 : (그냥 듣는)
인영 : (F) 너 괜찮은 거지, 인남아? 그 사람, 지금 옆에 있니?
인남 : (뭔가 안 좋다) 그 사람이라니?
인영 : (F) 너랑 같이 있는 사람 말야.
인남 : 지운씨?
인영 : (F 흥분) 지운이 아니야, 그 사람!!
인남 : 무슨 소리야?
인영 : (F) 나도 어떻게 된 건지 몰라. 지운인 서울 도착하던 날 죽었대. 호텔에서 살해 됐대.
인남 : (창백하게 굳는다. 이층 쪽 바라보는)
씬56.거미집 뒤편
옥상 계단을 오르는 인남. 기계인형 같은 무표정이다.
인영 : (E) 신분증이 사라져서 이제야 확인이 됐나봐. 아까 형사한테서 확인 전화 왔더라.
너 한테도 곧 연락 갈 거야. 그 사람 어딨니? 어머나! 혹시 지금, 옆에 있니?
인남 : (E) ........아니. 벌써 떠났어.
씬57.옥상 위
창 안쪽 내려다보는 인남. 깨끗하게 정리된 실내.
(지금부터는 지운이 아니라, 성태다)
성태, 제 양말로 벽에 튄 반찬 찌꺼기 열심히 닦아내고 있다.
창문 여는 인남. 성태, 올려다본다.
인남, 쇼핑백 하나를 침대 위로 떨어뜨린다.
좋아서 꺼내보는 성태. 장난감 얻은 아이마냥 신나있다.
그 모습 보다가
인남 : 돈이 필요했어요?
성태 : (무슨 말인가 해서 올려다보다가, 앗!! 생각났다) 이런... 들켰네. (픽 웃고) 그래, 돈이 필요했어.
살려면 당연히 돈이 필요하잖아. 통장에 얼마 들어있지도 않던데 뭐.
그 나이 먹도록 뭐했어? 돈도 못 모으고?
인남 : 지운이란 사람... 돈 때매 죽인 거예요?
성태 : 뭐? (입꼬리 묘하게 올라간다) 그것도 알았어? 그럼... 이것도 알아냈나?
(E) 초인종 소리.
놀라는 인남.
인남 : (성태보고) 경찰일 거예요. 아무 소리도 내지 말아요. (내려가는)
긴장하는 성태.
씬58.대문 앞
인남, 문을 열면 40대 중반의 남자가 서 있다.
오형사 : (신분증 내 보이며) 서인남씨 되십니까?
인남 : (보는)
씬59.거실
소파에 앉아있는 인남.
오형사, 가슴께에서 사진 두 장을 꺼낸다. 진짜 지운의 사진을 내밀며.
오형사 : 이 사람을 아십니까?
인남 : (보다가) 고개 젓는다.
오형사 : (성태 사진이다) 그럼 이 얼굴은?
인남 : (굳는다. 그저 보는) ....
오형사, 그 모습 살피고 거실을 서성이며 성태의 흔적을 찾는다.
오형사 : (돌아다니며 말하는) 미국에서 협조공문이 왔습니다. 미국 이름은 조니 주.
여섯 명의 여자를 살해하고, 도망중 입니다. 15년 전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이민 갔다가,
이번에 혼자 귀국했습니다. 이곳엔 아는 친구도 없고, 친척도 없고. 대체 어디로 숨었는지,
모래밭에서 바늘 찾기였는데.. (새 공예품 앞에서 발 멈추고 유심히 들여다본다)
지난 11월 15일에 호텔 서 살해 된 남자의 신분이 천지운씨라는 게 밝혀지면서,
그날 그 방에 같이 있었던 남자 얼굴이 주성태와 일치한다는 제보를 받았습니다.
(인남 보며) 그런데 이 집에서 또 막히는군요. 집을 떠났다? ....어디로 갔을까요?
떠나기 전에, 무슨 말 안 하던가요?
인남 : (바들바들 떨고 있다)
오형사 : 아, 미안합니다. 한 집에 같이 있던 남자가 연쇄살인범이라니..
힘드시겠지만, 알고 계신 거 있으시면 다 말씀해 주십시오. (이러면서도 인남을 유심히 살핀다)
인남 : 왜 죽였대요?
오형사 : 네?
인남 : 여자들을 왜 죽였대요?
오형사 : 글쎄 그거야 본인에게 직접 들어야겠지만 그런 치들은 보통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 그러는 게
아닙니다. 사람을 밥 먹 듯 죽인다. 습관이죠. 오락! 딱히 돈이 필요했다거나 그랬던 거 같진
않습니다. 없어진 건 푼돈뿐이라니까요.
인남 : (진정하고) 홍콩으로 간다고 했어요. 아는 형이 거기 있다고.
오형사 : 아, 그래요? 이 집을 나간 날짜가 정확히?
인남 : 26일이요.
오형사 : 26일... 잠깐 그가 머물던 방 좀 확인할 수 있을까요?
씬60.지운의 방
깨끗하게 정리된 방안. 이것저것 살펴보는 오형사.
오형사 : 가고 난 다음에 방을 치우셨습니까?
인남 : 네.
오형사 : 뭐, 남기고 간 건 없던 가요?
인남 : 없었어요.
씬61.하늘 방
힘 빠져서 앉아있는 성태.
오형사 : (E) 책이 많군요?
긴장하는 성태.
씬62.서재
오형사, 쭉 훑어보다 땅에 떨어져있던 책을 집어 든다.
오형사 : 거미여인의 사랑법.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인남 : (보는)
오형사 : 중학교 다니는 딸내미가 숙제해야 한다고 해서 사줬는데, 도와주면서 같이 읽어보니까
재밌더라구요. 특히, 검은과부거미... 던가? 짝짓기 후엔 암컷이 수컷을 잡아먹는다는.
인남 : 다 그런 건 아니에요.
오형사 : 네, 그렇게 쓰여 있더군요. 아무튼 인상적이었습니다. 그건 그렇고, 주성태와 함께 지내면서
이상하다거나, 그런 거 느끼신 적 없습니까?
인남 : 이상했어요.
씬63.하늘방 + 서재
// 하늘방. 바짝 긴장하는 성태.
오형사 : (E) 뭐가, 어떤 점이 말입니까?
인남 : (E) 그 사람이 온 다음부터 제가 밥 먹기가 힘들었어요.
// 서재.
오형사 : 왜에...?
인남 : 밤에는 잠도 안 오고 여기저기 많이 아팠어요.
// 하늘방. 성태, 뭔가 느낀다. 헛! 하며 웃는 표정.
오형사 : (E) 혹시 폭력을 사용하던가요?
인남 : (E) 하루에도 기분이 열 두 번씩 하늘로 튀어 올랐다, 땅 밑으로 꺼졌다.
오형사 : (E) 그 자가 말입니까?
// 서재.
인남 : 눈은 항상 한 곳에만 고정돼 있고, 머리도 마비된 듯 움직이지 않고. 무엇보다...
(가슴 누르며, 눈가 붉어지고) 여기가 너무 아팠어요.
오형사 : (정상으로 안 보이는) 저기... 그러니까.. 저는 의사는 아니라서... (방을 한번 휘이~ 둘러보고)
치료를 받아보시는 게.. 좋을 것 같네요. 충격이 크셨나봅니다. 그럼, 오늘 실례 많았습니다.
(밖으로 나간다)
혼자 남겨진 인남, 눈물 한 줄기 또르륵.
// 하늘방. 피식 웃는 성태, 어느새 표정이 복잡해진다.
씬64.거미집 대문
밖으로 나오는 오형사.
이상하다는 듯 한번 돌아보더니 이내 걸어간다.
씬65.서재 + 하늘방
// 성태, 문에 기대 앉아있다.
성태 : 왜 말하지 않았어? 내가 누군지 알았잖아.
// 인남도 반대편 책장 앞에서 얼굴을 무릎에 묻고 쪼그려 앉아 있다.
인남 : ....
성태 : (E) 내가 영원히 이 방에 갇혀 있을 것 같애? ...두렵지 않아?
인남 : (잠긴 목소리로, 차분히) ....왜 그랬어요? 여자들... 천지운씨... 왜 그랬어요?
//
성태 : 그게 궁금하셨군. 그게 궁금해서 불지 않았어. 그렇지?
인남 : ....
성태 : 나도 첨부터 나쁘게는 안 해. 것들이 날 벌레 대하 듯만 안 했어도, 그렇겐 안 됐지.
//
인남 : ....벌레 대하 듯했다고 다 사람을 죽이진 않아요. 다른 이유가 있을 거예요, 분명히.
말하지 않은 다른 이유가... (일어나며) 밥이나 좀 먹어요. 친구 넣어 줄게요. (간다)
// 인남, 나간 문소리 들리고.
성태 : (심각하게) 다른 이유...... (픽 웃고) 없는데.
씬66.하늘방 / 저녁
햄스터 한 마리, 몸 없이 머리만 톱밥 위에 놓여있다.
다른 한 놈 부산스럽게 방안 구석구석을 헤매고 다닌다.
그 옆에서 성태, 탈진 한 듯 누워있다.
열쇠 돌아가는 소리 들리고, 문이 열린다.
이때, 햄스터 한 마리 잽싸게 빠져나간다.
인남, 들어오다가 비명이 새어나올 뻔 한 걸 겨우 막는다.
벽에는 거미줄, 여기저기 뿌려진 톱밥. 벽에 눌러 붙은 반찬찌꺼기.
인남, 청소 시작한다. 죽은 햄스터 머리 발견하고 기겁한다.
차례로, 거미줄 사라지고, 벽의 찌거기들 없어지고, 바닥도 깨끗해졌다.
그릇 때문에 다친 성태의 손과 발을 치료해준다.
누워있는 성태의 얼굴을 물수건으로 닦아주는 인남.
떨리는 손으로 성태의 눈, 코, 입을 만진다.
그러다가 지친 듯 그가 누운 침대 위에 얼굴을 파묻는데, 성태 눈을 뜬다.
한 손은 인남에서 맡긴 채, 다른 손으로 침대 시트 아래를 더듬는다.
거기서 와이어 나온다.
손에 힘이 들어가고, 다음순간 재빨리 일어나 와이어로 인남의 목을 조른다.
켁켁거리며 고개를 드는 인남.
핏발 선 성태의 눈. 인남의 눈에 공포가 서린다.
주머니에서 뭔가 꺼내려다가 몇 번 헛손질. 마침내 꺼내는데 호두망치다.
성태의 머리를 냅다 때리고 성태가 아파서 뒹구는 사이 얼른 나온다.
아픈 발로 문을 쾅 차는 성태.
너무 아파서 발을 잡고 뛰다가 제 성질에 못 이겨 이번엔 손으로 쾅 쳐보지만 역시 아프다.
으유씨, 하며 등짝으로 쾅쾅쾅!!
씬67.서재 안
인남, 아직 와이어자국이 빨갛게 남은 목을 만지며
쿵쿵 울리는 책장을 두려운 듯 돌아본다.
씬68. 하늘방 + 옥상 위 / 아침
매직으로 벽에다 그린 거미집 구조도 .
성태 : (그거 보며) 이 집 참 특이해. 꼭 거미줄 같단 말야. (밥숟갈 뜨며, 픽 웃는) 너도 참 특이해.
자기를 죽이려고 했던 사람한테 또 밥을 주네.
인남 : 죽게 할 순 없으니까.
성태 : 그렇지. 송장치우는 것도 일이더라.
거실에서 울리는 전화벨 소리.
성태 : (멈추고 듣는) 저거 그 전화지?
인남 : ......
성태 : 저런 인간들은 상대가 세게 나가면 바짝 얼어. 실제로는 겁 많은 종류들이야.
다음에 전화 또 오면 이렇게 말해. 야, 이 비겁한 자식아. 숨어 있지만 말고 앞으로 당장 나와!!
인남, 가려고 일어나면.
성태 : 양동이 올려.
인남, 의아한 듯 보다가 양동이 끌어올린다.
올라온 양동이.... 그 안에 들어있는 와이어공예 브로치.
인남, 놀라서 성태 바라보면.
성태, 휘파람 불며 와이어로 뭔가 만들고 있다.
씬69. 거실 / 낮
브로치 만지작거리는 인남. 미소 짓고, 그걸 가슴에 단다.
이때, 전화벨 울린다. 가만히 보던 인남, 결심한 듯 전화 받는다.
인남 : (아무 말도 않고 듣고만 있다가) 비겁한 자식. 전화기 뒤에 숨어 있지 말고, 직접 나와서 말해.
넌 쓰레기야. 도태돼서 폐기처분만 기다리는 쓰레기! 넌 알루미늄 캔만한 무게도 안 돼.
한 주먹이면 끝나!! 알았어? 이 개자식아!!!
수화기 탁 내려놓는 인남. 입가에 통쾌한 미소 감돈다.
씬70.거미집 전경 / 새벽
씬71. 하늘방
침대에 팔베개 하고 누운 성태. 하늘 위에 보름달이 떴다.
먹구름이 밀려와 보름달을 가리자, 성태 자리에 일어나 앉는다.
와이어를 뭉쳐서 만든 못을 니퍼로 잡고 ‘쿵!’ 벽에 꽂는다.
씬72.인남의 방
나쁜 꿈 꾼 듯 벌떡 일어나 앉는 인남. 황급히 침대에서 내려온다.
씬73.서재 안 + 하늘 방
들어와서 불을 켜는 인남.
책장 앞으로 다가가서 비밀문의 열쇠를 조심스럽게 돌린다.
살짝 안을 보다가 놀라서 문을 확 열어 재낀다. 텅 빈 방안.
천정의 창문이 열려있다. 침대가 세워져서 벽에 붙어있다.
와이어와 못으로 단단히 고정된 채.
씬74.거실
인남, 잔뜩 긴장해서 천천히 계단을 내려온다.
두리번거리며 성태를 찾는데...... 누군가 뒤에서 인남의 입을 막는다.
성태일 거라 생각했으나, 낯선 얼굴!!
괴한 : (전화 속 그 남자의 음성이다) 약육강식, 적자생존. 경쟁에서 도태된 자는 쓰레기다.
오늘 나한테 지면 넌 쓰레기다. 큭큭. 근데, 이길 수 있을까?
인남, 두려운 표정인데.
갑자기 이 남자, 헉!!! 소리를 내더니 뒤로 넘어간다.
놀라는 인남, 돌아보면. 성태가 서 있다. 물러서는 인남.
남자는 머리를 맞고 바닥에 엎어져있다.
성태 : 또라이 새끼. 오랜다고 진짜 오네. (인남 보고) 이제... 말해봐. 내게 원하는 게 뭐야?
인남 : (고개 젓는)
성태 : 내가 어떻게 해줄까? 수컷이 필요해? 아님, 머슴?
인남 : (고개 거세게 흔든다)
성태 : (인남 확 밀어버리고) 아님, 뭐야? 니 아버지 대용품이 필요해? 저 감옥 같은 방에 틀어박혀 살,
니 정신적 지주가 필요해!?
인남 : (더 이상 고개 젓지 못하고)
성태 : 너..... 외로워서 미쳤냐?
인남 : (그 말에 울컥하는) .....경쟁에서 도태돼 방에만 있는 아버지를 보면서, 생각했어.
난 저렇게 되지 말아야지. 누구도 날 꺾을 수 없게, 함부로 대할 수 없게 강해져야지.
피나게 공부했고, 열심히 살았어. 근데 그 모습이 싫었나 봐... 아무도 날 사랑하지 않아.
성태 : (가만히 보다가 픽 웃는) 그래서.. 나더러 어쩌라구? 널 사랑해달라구?
인남 : (보는)
성태 : 넌 사랑스럽지않아. 넌 또라이야. 저 새끼보다! 어쩜 나보다 더. 널 만지는 상상만으로도 끔찍해.
하지만 지금 이 순간, 니가 조금 불쌍하다. 이리와. 안아줄께.
인남 : (굳은 채 있다)
성태 : (인남을 안는다) 불쌍한 녀석. (머리에 입 맞춘다)
인남 : (눈물 떨구는데)
성태 : 경쟁에서 지면, 생존은 불가능해. 알지?
인남 : (고개 들어 성태 보는)
성태 : 그게 법칙이야. (인남의 목을 조른다)
인남 : (공포에 잠긴 눈에서 눈물 차오른다)
이때, 쓰러져 있던 괴한 슬며시 일어나서 성태의 뒤통수를 가격한다.
인남을 누르고 있던 손이 풀리며, 성태 쓰러진다.
놀라서 괴한을 보는 인남.
괴한 : 눈에는 눈, 이에는 이. (피나는 자기 머리 가리키며) 머리에는 머리다 이 또라이 새끼야!
(그러다가 인남과 눈 마주친다)
인남, 후다닥 계단으로 뛰어올라간다.
괴한 : 거기 안 서! (쫓아간다)
씬75.복도
어둠 속에서 불안하고 가쁜 인남의 숨소리와 발자국 소리 뒤섞이고.
꺾어져서 서재가 있는 복도 벽에 기대서는 인남.
계단을 뛰어올라와, 어슬렁거리며 걷는 괴한의 실루엣이 보인다.
긴장하여 숨을 죽이고 있는 인남.
괴한이 어느 쪽으로 오든지, 반대쪽 복도를 따라서 다시 계단으로 내려갈 계산이다.
(복도가 원모양의 구조이므로)
괴한, 욕실 쪽 복도로 간다.
인남, 바닥 조심스럽게 밟으며 계단을 향해 간다.
막 계단을 내려가려하는데...
머리에 피를 흘리며, 성태가 계단을 올라오고 있다.
둘의 눈이 마주쳤다. 빠르게 도망가는 인남, 쫓아가는 성태.
인남, 서재 안으로 뛰어 들어가서 문을 잠그려는데.
괴한, 손을 넣어서 막는다. 힘으로 밀어붙이자 인남, 물러선다.
씬76. 서재 안
서재의 불을 켜는 괴한. 섬뜩한 웃음 지으며 인남에게 다가오는데.
괴한 뒤의 무언가를 보는 인남. 그걸 본 괴한이 얼른 피한다.
성태의 헛동작. 앞으로 고꾸라지는 성태의 배를 가격하는 괴한.
그 둘 엉켜서 치고받고 싸운다. 피가 튀고 살벌하다.
구석에 몰린 채 덜덜 떨고 있는 인남.
싸움은 성태가 우세해 보인다. 괴한을 깔고서 연거푸 때리는 성태.
정신을 잃은 듯 보이는 괴한.
성태 : (계속 때리며) 그 여자, 사진 속의 여자. 내 첫사랑이다. 그리고 내가, 첫 번째로 죽인 여자야.
(외이어 꺼내며) 그 여자가 그러더라. 나더러 기생충이라고. 구충제도 소용없는
지독한 기생충이래. (괴한의 목을 조른다) 어릴 때부터 들어오던 소릴, 그 여자한테서 또 듣네.
하늘이 노래지더라구. 너도 나 사랑한 거지? (인남 보며) 말해봐. 사랑한 거 맞지?
인남 : (그대로 있다가 두려운 듯 천천히 끄덕인다)
성태 : (픽 웃는) 미쳤어도 어쨌든 사랑은 한 거야. 아님, 사랑해서 미친 것일 수도 있지.
(괴한의 목 더 세게 조르며) 사랑해 서인남. 사랑해!
인남, 그 말에 벌떡 일어나서 두꺼운 양장본의 책을 성태를 향해 집어던진다. 계속. 계속.
성태 : (화난) 그만해. 그만해!! 그만 못 해!! (벌떡 일어나서 인남을 후려친다)
나가떨어지는 인남. 맞은 뺨을 잡고 두려운 듯 성태를 본다
성태 : 기다려. 니 차례는 저 자식 다음이야.
하며 돌아서는데, 놀라서 눈이 휘둥그레지는 성태.
괴한이 순식간에 와이어를 성태의 목에 걸어서 조르기 시작한다.
빠져나가려 발버둥치는 성태.
괴한, 성태의 정강이를 걷어차서 발이 미끄러지게 한다.
질질 끌려가는 성태. 발버둥치더니 마침내 숨이 끊어진다. 눈물 맺힌 채로.
인남, 두려움에 눈물 맺혀서 성태 바라본다.
괴한 : 씨이. 이에는 이, 눈에는 눈. 목에는 목!!! 또라이 자식, 가만있는 날 왜 건드려!!! 흐흐흐
(미친놈처럼 한참 웃는데, 커다란 양장본 하나가 머리 위로 툭 떨어진다) 뭐야!?
(하며 뒤돌아보다가 눈이 휘둥그레진다)
우르르 떨어지는 책들과 거대한 책장. 쿠웅!!
쓰러진 책장 뒤에 인남이 서 있다.
씬77.옥상 위 / 아침
양동이를 들고 올라오는 인남. 창문을 향해 걸어가며.
인남 : (E) 하이에나에도 두 마리의 새끼를 낳는데요. 두 마리 중 한 마리만이 살아남습니다.
날카로운 송곳니로 서로를 겨누기 때문이죠.
인남, 창문을 열면.
어리둥절한 표정의 괴한이 인남을 올려다보고 있다.
인남 : (E) 그래서 결국 살아남은 한 마리만을 엄마 하이에나가 거둡니다.
양동이를 내려다주는 인남.
인남 : (E) 동물계, 척추동물문, 포유강, 영장목, 인류과, 호모속에 속하는 사람 .
사람들은... 외로워서 사랑을 하고, 외로워서 미치고, 외로워서 마약을 한다.
.....외로움은... 중독이다.
씬78.거미집 내부
햇볕 드는 복도.
성태의 흔적이 남아있는 욕실.
텅 빈 성태의 방.
커다란 책 무덤이 있는 서재.
그리고 웅크리고 있는 남자가 보이는 하늘 방...
차례로 보인다.
씬79.거미집 전경
크레딧 올라가면서 쓸쓸한 거미집 풍경 점점 버드아이 시선으로.
거미집, 홀로 서 있는 많은 집들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