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핸드폰 없는 세상’이나 ‘승용차 거부의 반골 기질’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릴레이 경주처럼 초스피드로 변화하는
남들의 문명 향유에 재빨리 편승하는 게 싫었던 탓도 있었으리라. 하지만 가장 큰 이유는 ‘변화에 대한 두려움’과 ‘굼뜬 행보’
탓이다. 그 느림보 체질의 똥고집이 어느 날부터 천연기념물로 둔갑시킨 것이다. 그러면서 몇 가지 원칙을 세웠다. 그 첫 번째가
가급적 남의 차와 핸드폰을 타지 않고 빌리지 않는다는 내용이다. 한 동안 그 원칙을 지키다가, 언제부터였나, 와장창 깨졌다.
퇴근길,
승용차로 등교하는 교사와 걸어서 등교하는 교사의 정서가 절대로 같을 수 없다고 주장하
기도 했다. 남들의 승용차가 교정을 빵빵 빠져나갈 때 나 혼자 타박타박 교문을 빠져나오는
낭만도 찾으려 했었다. 시내버스를 기다노라면 아이들이 다람쥐처럼 쪼르르 몰려와.
‘왜 여깄슈?’
‘차 읎슈?’
‘차 살 돈 읎슈?’
어쩌구 시비조로 몰려오는 모습이 귀여웠던 시절이 분명히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그게
귀찮아지는 것이다. 개구진 아이들 모습과 푸짐했던 터미널 풍경이 갑자기 음울하게 가슴을
찌르기 시작했다.
몸의 노쇠 탓일까, 아이스크림이나 떡꼬치를 입에 물고 재잘재잘 달려드는 모습을 가끔씩
피하고 싶어지는 것이다. 함께 안고 뒤잡이로 뒹굴고 축구공 쫓아다니녀 함성을 지르던 모
습에서 멀어지는 것이다. 버스 시간을 기다리며 아이들과 부딪치지 않기 위해 전신주나 광
고판에 몸을 가리기도 했다. 그러다가 남의 승용차에 합류하면서 그런 소박한 풍경조차 단
박에 사라져 버렸다. 승용차 창 밖으로 보이는 ‘풍경의 객관화’에 젖는 것이다. 아프다.
요즘은 핸드폰 강박증에 시달리고 있다. 언제부터였나, 거리에 즐비하던 공중전화박스가 시나브로 사라진 것이다. 예전에는
전화카드 한 장이면 웬만한 통화가 해결됐는데 지금은 터미널 부근을 제외하곤 찾을 수가 없다. 있던 놈을 때려 부수진 않겠지만 일단
고장난 전화박스는 절대로 고치지 않기 때문이다. 맞은편으로 늘어선 공중전화 박스 속의 복잡다기한 표정을 감상하며 ‘아,
평화롭다’ 하는 감탄사를 내뱉던 시절도 이젠 흘러간 추억이다. 전화박스 찾아 시불시불 돌아다니다 번번히 약속 시간이 빗나가면서
이젠 ‘금기를 깨고 핸드폰을 사야 하나?’ 하는 갈등도 있다. 여하튼 아직은 무소유다.
하지만 운전에 대한 절박감은 분명히 다르다. 솔직히 엄두가 안 난다. 핸드폰이야 돈으로 해결되지만 운전은 시간 투자를
필요로 한다. 연습기간 내내 운전학원 시간대에 맞출 자신도 없으며 왠지 그 흔한 운전면허증이 나에게만큼은 영원히 ‘머나먼
당신’일 것 같다. 설령 면허증을 딴다 치더라도 졸음운전이나 음주운전으로 일대 사단을 낼 것이 틀림없다. 요즘은 철판 깔고 타던
남의 승용차도 너무 자연스럽게 탑승한다.
아무튼 ‘공주 - 서산’ 주말부부를 보내면서 그 육년 내내 진짜 허부지게 남의 차 신세를 졌다. ‘대전-서산’
출퇴근이라는 신기록 보유자 박선생한테 일년, 체육과 오부장, 인근 학교 김선배, 기술과 성선생, 처녀교사 황선생 등 닥치는 대로
문을 두둘겼고 그도 저도 안 될 때만 직행버스를 탔다. 더러는 찝찝한 승차거부 사연도 있었지만 나는 ‘사고가 생겨도 운전자에게
일체 책임을 물지 않겠다’는 각서를 써주기도 하면서 동냥 탑승을 연장했다. 운전자와의 행복한 출근길을 위하여 그동안의 ‘자발적
소외’ 규정이 깨졌고 박학다식과 산파식 대화법에 익숙하게 되었다.
공선생은 초스피드다. ‘공주-서산’ 두 시간 거리를 삼십 분 이상 단축시켜 1시간 20분 남짓에 주파한다. 그의 요동치는
운전 실력은 마치 에버랜드 천둥열차처럼 위 아래 옆으로 스르릉스르릉 미끄러져서 처음 탑승했을 때는 속이 메슥거려서 힘들어했다.
좌우지간 앞에 보이는 차량은 무조건 추월했다. 대로(大路)가 막히면 순식간에 골목길로 빠지고, 막 켜진 빨간등은 그대로 밀어부치며
신호등에 걸리면 어쩔 수 없이 기다리다가도 파란 불 켜지기 1초전에 ‘슝’ 튀어나가서 선두를 확보하는 숙련공이다.
‘O산 -O양’. 수없이 통과한 그 길이다. 꼭꼭 숨은 감시카메라가 여차하면 ‘경찰서장의 편지’로 뒤통수 때리는
그곳이다. 파출소 담벼락에 숨은 ‘기계 눈빛’의 ‘아차’를 피하기 위해 숙달된 운전자들도 여간 조심스럽지 않다. 면소재지 신작로는
제한속도 30킬로이므로 이제껏 뻥 뚫린 4차선 속도로 쌩쌩 달리다가 진입로에서 깜빡하는 날에는 어김없이 걸려드는 것이다.
- 함정단속이 도동놈이라닝깐요. 바쁠 때 바쁘게 달리게 하면 덧납니까?
- 그 돈이 어디로 가죠?
이런 세속성 언어는 점잖은 말투이고 컨디션 여하에 따라 ‘거침없는 하이킥’으로 돌변하기도 한다.
- 날짜 잡아서 저놈을 작대기로 죄다 내려쳐 버릴 거여.
- 대포로 깡 날려버릴깡?
우히히히히. 실없이 웃지만 결국은 쫄밋거린다. 깜빡 새벽졸음 사이에 꿈을 꾸기도 했다. 카메라 기둥을 원숭이처럼 타고
올라 보자기로 ‘확’ 덮어버리는 화면이다. 마침내 화면 전체를 천으로 칭칭 감은 다음 ‘심 봤다.’ 포효하려는 순간 까마득한
낭떠러지로 굴러떨어져 ‘으악’ 비명을 지르는 꿈이었다. 그 사이 승용차는 신양 신작로에서 좌회전으로 꼬부라져 예당저수지로
들어간다. 여기는 가장 잔혹한 기억의 자리다.
안개 속이었다. 안개 장막 속에서 웬 아저씨 하나가 연신 옷자락을 흔들며 차량 통제하는 장면이 얼핏 공포영화의 플로로그
같았다. 맨 처음 만난 것은 또랑에 쑤셔박힌 트럭이다. ‘언제까지 옷자락을 흔들어야 하나’ 갸웃 하는 찰나 공룡뼈처럼 뒤틀린
오토바이의 잔해가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고등학생 셋이 매달려 스피드에 황홀했던 새벽질주의 결과다. 무섭다.
시속 145의 오토바이 앞에 전봇대가 불쑥 가로막았고 뒤에 매달려 허리를 껴안고 달리던 사내아이 계집아이가 허공으로 솟구친 직후다. 앞의 계집아이는 아예 머리가 사라졌고 뒤의 사내아이는 목이 180도 꺾였다.
그뿐이다. 일상적 출근길을 위해 그 잔영을 순식간에 지나쳤을 뿐이다. ‘운전대가 한 각도만 흐트러지면 저 꼴인데’ 하며 오소소 떨다가도 새로운 사연을 만나면 또 잊는다. 그렇게 피도 눈물도 없는 일상이다.
- 저 카메라 가짜랍디다.
전혀 신빙성 없는 너스레다. 시나브로 몸에 밴 카메라 증오증이 엉뚱한 방향으로 튀어나왔을 뿐이다. 놈들이 비열해 보이는
것이다. ‘감시 카메라 있음’하는 신사적인 예고편을 보여주는 경우도 있지만 ‘신호등 사이에 애매하게 붙어 있거나 ‘숨어서 쏘는
총’도 있고 가끔 ‘가짜’도 있다. 그 중, 지난 번 오선생의 말을 떠올려 가짜라고 무심히 주장했을 뿐이다. (나는 여러 사람의
차를 번갈아 탑승했으므로 화제도 제각각이다.
- 진짜욧?
공선생도 만만찮은 정보망의 소유자이기도 하다. 내 말이 진짜냐는 얘긴지 아니면 카메라가 진짜냐는 얘긴지 애매하게 들린다.
- 100%.
‘너무 지나치게 확신했나’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대로 밀어부치기로 했다. 그래도 공선생은 갸웃갸웃 속도를 낮춘다.
번개운전답게 순식간에 상황판단을 내리는 민첩함이 보인다. 불도화다. 화살표가 60 이하로 쭈욱 내려가는 순간 불도화 하얀 꽃이
선명하게 들어온다. 눈이 부시다. 느리게 가면 이렇게 길가의 꽃 냄새에 취할 수도 있구나. 그러나 삶은 더 바쁘고 실없다.
- 진짜로 가짜라닌까요. 체육과 오선생도 빠드름히 알기 때문에 여기서만큼은 ‘쨔샤 안 속아’ 하며 신나게 달린답니다.
아닌 게 아니라 그 자리만 벗어나면 사차선 직선도로를 고속도로처럼 단칼에 뽑아낼 수 있을 것 같다. 손가락으로 감시카메라를 쏘아대며 한번 더 밀어부친다.
- 사람을 소심증 환자로 만들어요.
- 밟아볼까?
마침내 공선생도 확신이 섰나 보다. 악셀라이트를 밟더니 금세 80으로 올려부쳤다. 자동가속이 붙으면서 희뿌연 매연이 막힌 똥줄기 터지듯 쏴아쏴아 쏟아진다.
다음 길부터는 아예 자신만만하게 100으로 달린다. 막힌 길이 뚫리자 다음부터는 일사천리다. 일주일 뒤에는 ‘제 버릇 개
주나요?’ 하며 120으로 확 늘렸고 그만큼 출근 시간이 단축됐다. 그가 ‘아싸 호랑나비’ 하면 나도 ‘으흐흐흐’ 장단 맞추며
졸음 운전에서 벗어나기도 했다. 그렇듯 운전자와 탑승자가 궁합 맞추는 상큼한 출근길이었다고 할까.
보름쯤 지났을까. 영산홍 자주빛이 유리창에 쩌렁쩌렁 번지는 늦봄의 교정이었다. 범칙금 통지서 한 장이 머리를 때리는
것이다. 4만 원짜리다. 경찰서에 출두하면 3만 원이고 은행에 납부하거나 기일이 경과하면 4만원이라고 친절히 안내해준다. 컴퓨터
앞에서 글자 맞추던 공선생 입술이 닭똥집처럼 찌그러진다. 나는 ‘똥 밟을 수 있잖여.’하면서 대충 얼버무리려 했다. 그런데.
- 강선생님이 가짜 속도계라고 했잖뇨?
- 엣! ……그랬나? …… 그랬구나 …… 다른 데서 찍힌 거 아뇨? …… 혹시?
- 보쇼.
그 자리다. 불도화 하얀꽃에 잠시 가슴이 ‘짠’했던 그 자리였다. 출근길 시간대와 장소와 차량번호까지 정확히 찍혔으므로
빼도 박도 못한다. 나의 과장된 확신이 찝찝하게 깨지는 순간 교무실 전체로 한바탕 자지러진 웃음보가 터졌다. 공선생의 소소한
피해로 교직원 전체가 화기애매한 풍경을 연출시켰고 나 혼자 귀밑까지 빨갛게 물들었다.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다.
다음날 또 한 장이 날아온 것이다. 이번에는 6만원이다. 속도를 자신만만하게 높인 만큼 벌금이 늘어난 것이다. 공선생의 굳은 표정 뒤로 교무실의 박장대소가 ‘찌뿌둥’이 오버랩되었다.
- 반씩 합시다.
내가 뻘쭘하니 선수를 쳤으나 공선생은 ‘노우’ 하며 고개를 흔든다. 진퇴양난이다.
- 내가 오만 원 한도에서는 팡팡 쏜답니다.
나의 썰렁에 사람들이 웃을까 말까 입술을 들먹이다가 저마다 컴퓨터 자막을 마주한다. 그런데 그 다음날 또 한 장이
날아온 것이다. 이번에는 대폭 올라 10만원이다. 마침내 공선생 얼굴이 납덩이처럼 굳어버렸다. 시속 20킬로를 넘으면 벌금이
3만원 30킬로를 넘으면 6만원 40킬로를 넘으면 10만원이라는 사실도 처음 알았다. 문제는 벌금 20만원이나 삼진아웃이 아니다.
내일, 또 그 다음날 어떤 범칙금이 눈덩이처럼 굴러와 교무실을 콱 가로막을지도 모른다. 이제 나의 무책임성으로 신뢰도가 꽝꽝
굳어버릴 것이다. 그해 오월에서 유월 초까지, 오월광주와 유월항쟁이 아닌, 순전히 감시카메라에 대한 내 ‘증오성 허풍’의 늪에
허우적허우적 빠져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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