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진 품 명 품
심 영 희
오늘도 진품명품 시간을 즐겨보았다. 프로그램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단골 손님은 당연 도자기 작품이 제1순위다. 나는 왜 그 프로를 그리도 즐겨 보는 가. 그 이유는 내게 진품이나 명품이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니라 도자기 외의 다른 공예품이나 붓글씨와 그림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거기에다 진행자의 재치 있는 말씨도 좋고 쇼 감정단의 엉터리 감정도 재미를 더해준다. 더러는 정확한 가격을 책정하여 인형 두 개를 받으며 흐뭇해 하는 모습을 보며 괜히 덩달아 신이 난다. 전문 감정 단이 쇼 감정 단의 엉터리 감정에 코웃음을 치기도 하고 그럴싸한 감정에는 찬사를 보내기도 한다.
그 프로를 통해 우리의 옛 것을 많이 배운다. 생소한 물건은 어디에 쓰는 물건인고? 하고 묻는 진행자의 물음에 용도를 함께 추측해보기도 하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데 우선 눈이 즐겁다. 박물관에 가지 않아도 옛 물건을 볼 수 있고 그 가치가 어느 정도인지도 알 수 있다. 남의 집 거실이나 안방에 잘 모셔두었을 귀중품들을 도둑질 하지 않고도 집안에 편안히 앉아서 구경할 수 있는 행복을 KBS1텔레비전을 통해 누리고 있는 셈이다.
생전 처음 보는 물건들!
매주 새로운 물건이 나올 때마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 시험문제를 풀 듯 열심히 동참하고 있는데 정말 진귀한 물건들을 보관도 잘하고 오래 간직하고 있다는데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우리 집에 구입한지 이십 년이 넘는 도자기 화분이 하나 있다. 이것이 보통 도자기화분과는 다른 것이라 늘 내 마음을 혼란스럽게 한다. 처음부터 꽃집에서 꽃에는 관심이 없고 도자기분에 욕심이 생겨 구입한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예쁘고 화려한 도자기 분에 보잘것없는 선인장 한 포기가 심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일반적인 도자기 분은 도자기를 빚은 후 물감으로 그림을 그려 구워내는데 비해 이 귀엽고 앙증맞은 화분은 백색도자기에 네 면은 남색바탕을 칠하고 그 위에 백 목련 꽃을 양각으로 처리하여 이른 봄에 막 피어나는 목련 꽃처럼 화사함을 느끼게 한다. 이 화분에 흠이라면 한쪽 귀퉁이에 약간 금이 갔다는 사실이다.
처음에는 궁중에서 쓰던 화분은 아닐까 생각했는데 금간 곳을 볼 때마다 생각이 달라졌다. 이것은 분명 외국에서 들어온 것이고 귀하게 쓰다가 금이 생겨 상품가치가 없어져서 버렸을 것이라는 생각이 머리 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그래도 도자기의 고향을 알고 싶어 선인장을 다른 분으로 옮기고 화분을 깨끗이 씻어 문갑 속에 잘 보관해 두고는 아들 딸에게 이다음에 ‘진품명품’에 선보일 작품이라며 은근히 자랑을 하기도 했다.
기회는 찾아왔다. 이십 년이 지난 올 봄 진품명품 출장감정이 춘천에서 진행된다는 반가운 소식이 텔레비전과 신문에 보도되었다. 이틀 뒤 춘천문화원에 전화를 걸어 예쁜 도자기 화분이 하나 있는데 외국 것 같은데 어느 나라 물건인지 알고 싶다며 접수를 해 놓고 그날을 기다렸다.
드디어 결전의 날이 되어 도자기를 소중하게 모시고 행사장소인 춘천문화원에 도착했다. 조금 있으니 점심 식사를 마친 듯 감정 단이 들어왔다. 거의 매주 일요일 텔레비전에서 만났으니 아주 친숙한 사람처럼 느껴져 텔레비전에서 많이 봤습니다. 안녕하세요 하고 인사를 건네며 잠겨 졌던 문이 열리자 녹화장으로 들어갔다.
텔레비전에서 보던 대로 개그맨 강성범 씨의 진행으로 약간의 연습과 주의 사항을 듣고 녹화방송에 들어갔다. 도자기 그림 민예품 등을 담당 감정위원들이 감정하여 진품 몇 점을 골라 방송했지만 내 물건을 선택되지 못했다. 기대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실망도 없다.
그래도 공짜 감정을 받을 수 있다는 것도 행운이다. 감정위원 말을 빌리자면 행사 때가 아니고 개인으로 감정을 받을 시는 삼십여 만원의 감정료를 내야 한다니 이 얼마나 다행인가. 그런데 내 물건은 정확한 감정을 받을 수 없었다. 중국 것 같다는 것과 예 것이 아니고 현대 작품이라는 감정위원의 말을 뒤로 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중국 물건이 맞을 것이라는 생각과 이십 년 전에 화분을 구입할 때도 꽤 오래 된 것 같은 착각이 들도록 밑 부분이 지저분했으니까 한 오십 년 전에 만든 작품이라고 추측해도 이것은 분명 진품은 아닌 것이다. 문갑 속에 잘 모셔두기는커녕 다음날 화분에다 모래 흙을 넣고 집 앞 화원에서 다육식물 한 포기를 사다가 다시 심어 화분 대열에 끼워 넣었다. 대부분 다육식물은 꽃대를 자르고 키우는데 꽃대를 그냥 두었더니 요즈음은 별 모양을 한 붉은 꽃이 수십 송이 피어 화려한 화분을 더욱 화려하게 장식하고 있다.
그래 우리 집에 원래 진품은 없다. 오래된 물건이 없으니까. 하지만 나름대로의 명품은 있다. 친정 어머니께서 쓰시던 약간의 물건도 어머니와 내가 맺은 인연의 정으로 명품이라고 생각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내 명품은 역시 내 물건이 최고다. 명품 제1호는 육십 년대 초 중학교 일학년 때 쓴 영어노트다. 영어 단어 받아쓰기에 백 점을 받은 것도 있고 노트 검사에서 깨끗이 필기를 잘했다고 수(秀)를 받기도 했다. 2호는 여고 일학년 가정시간에 수놓아 만들 강강술래 액자인데 까만 비단천에 은사로 수를 놓은 강강술래는 정말 여인네들이 손에 손을 잡고 강강술래를 하는 듯 생동감이 있어 좋다.
그 외에 내가 출간한 수필집 시집을 비롯해 정성껏 그린 그림이며 작품 만드는 재미에 푹 빠져 밥 먹는 시간도 잊어버리고 심혈을 쏟아 만든 한지공예품은 진귀한 물건이라는 진품은 아니어도 내 혼이 담긴 만큼 나에게는 모두 명품이다. 다른 이들이 명품이라 생각하지 않아도 텔레비전에 나오지 않아도 그것들은 나에겐 대단한 명품이라고 생각한다.
춘천에서 녹화한 방송이 나오던 날 그날도 어김없이 ‘진품명품’프로를 시청했다. 내 작품 대신 내 얼굴만 화면을 가득 채웠다. 봄 기분을 내느라 화사한 꽃분홍 블라우스를 입고 가서인지 끝 장면에 내가 제일 크게 나왔다. 이십 년 기다리느라 수고했다는 격려처럼 분홍빛으로 화면을 물들이던 진품명품 시간은 언제나 재미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