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보운전시절
"차, 잘 됩니까?"
"하아. 어제 봤어요. 시내서 어리버리 하데요."
초보 운전 딱지를 떼기 전에 동료들이 웃으며 하는 말이다.
70년대 초, 낡은 라디오에서 80년대가 되면 마이카시대가 도래한다는 꿈같은 말이 흘러나왔을 때 나는 믿지 않았다. 그런데 80년대 후반에 들어 자가용이 늘어나더니 승용차는 우리들 대화에 자주 등장하게 되었다. 기름 없는 나라에 집집마다 자가용이라니 말도 안된다고 하면서 온 동네가 다 사도 우리는 안 사겠다 다짐했다. 그러나 남 늦게 우리 집에도 조그만 차를 하나 사게되었고 그동안 세상은 가구 당 두 대의 세월이 되어버렸다. 모두들 너무 한 것 아닌가 하면서 기름사정이나 도로사정을 생각해서 나만은 참아야지 했지만 근무처가 이동되면서 나만은 꼭 사야하는 형편이 되었다. 또다시 남 늦게 우리도 차 두 대의 가구가 되었다.
토요일 오후 친구들 몇이 모여 모임을 가졌다.
"누구는 차를 몰고 나왔는데 정지를 못해서 글쎄 서울서 인천까지 갔다네."
"어제 인숙이가 트렁크도 안 닫고 엉덩이를 하늘로 든 것처럼 해 가지고 시내를 막 가데."
"그건 어때. 나는 와이퍼를 잘못 건드려서 해가 쨍쨍한 날 계속 이러고 갔단다."하 면서 두 손바닥을 쫙 펴고 어깨까지 흔들면서 좌우로 왔다갔다해 보인다. 모두들 점심상 앞에서 꼬꾸라질 듯이 웃어댔다. 다들 그러고 배웠구나. 나만 그런 건 아니구나. 슬그머니 용기가 났다.
형편상 갑자기 조그만 차를 사기는 샀지만 나는 심한 기계 공포증이 있어서 ‘부르릉’시동 걸리는 소리에도 가슴을 쓸어내기 일쑤였다. 오죽하면 운전학원등록원서 쓸 때부터 떨었을까? 갑자기 본적지가 생각이 나지 않아 멍하니 서 있을 때 이미 나의 운전행보가 예견되었다. 나는 차주가 되면서 스스로에게 몇 가지 약속을 했다. 어디서건 시속 60킬로를 넘지 않는다. 절대 아이들이나 남을 태우지 않는다. 영주를 벗어나지 않는다. 항상 추월을 주겠다. 영업용 탯시에게는 항상 양보한다. 밤 운전은 절대 하지 않겠다. 대충 이런 것이었다.
차를 사니 판매원이 주행연습을 시켜주며 보름간 이것저것 설명해 주었지만 머리가 터질 것 같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남들은 하나를 가르쳐주면 두 개를 안다는데 나는 한 번에 한 가지 아는 것도 힘에 겨웠다. 판매원이 오른쪽 왼쪽 깜빡이를 가르치고 라이트 켜기를 해 보라고 시범을 보이는데 헷갈릴 것 같아 한가지만, 그러니까 깜방만 우선 배우겠다고 했다. 그리고는 무슨 일이 있어도 어둡기 전에 집에 갔는데 어느 날 모임을 마치고 나와보니 밖이 어둑어둑 해 있었다. 어리버리 조심조심 집에 다 와서보니 불도 켜지 않은 채 주행한 것이다. 어쩐지 오는 길이 어두워서 자세히 보려면 가슴을 핸들에 닿이다시피하고 눈에 힘을 주고 와야했던 이유를 그제서야 알았다. 순전히 남의 차 불빛 덕에 집에 까지 온 것이다. 그러나 이런 말은 가족에게는 하지 않는 것이다. 운전은 미숙해도 자존심은 하늘같으니못 미더워서 하는 이런 저런 잔소리는 듣기 싫기 때문이다.
어느 날, 혼자 어리버리 차를 몰고 가는데 기름이 달랑거렸다. 가까스로 주유소에 들어가 주유메타기 옆에 섰다. 청년하나가 뛰어 나오며 외친다.
"어서 옵쇼오. 문 좀 열어주세요."
기름을 넣는데 문은 왜 열라지? 못마땅했지만 나는 차 문을 스르르 열었다. 그리고 기다렸다.
"문요! 아줌마."
"열었잖아요!"
"아줌마, 기름통 열어 줘요!"
기름통이라면 밖에 있는 사람이 열지 안에 있는 나보고 열라니. 가만히 있었다.
"아줌마. 초보래요?"
청년이 열린 창문으로 머리를 쑥 집어넣고 두리번거리더니 조금 후에는 어깨까지 들여놓고 무엇인가 찾고는 손가락으로 가르쳤다. 열라는 것이다. 기름통문은 내 왼 발 옆에 캐러멜크기로 있었다.그러고 보니 윗표면에 주유박스그림이 그려져있었다.
며칠 후 학교에서 야영을 했다. 나는 담당은 아니지만 동료가 아이들과 밤을 세우는데 먼저 갈 수 가 없어서 9시까지 같이 있어 주려 했다. 밤 운전이 서투니까 밤에는 가족이 데리러 오기로 했다. 시간이 될 때까지 별로 할 일이 없어 차에 올라앉아서 이것저것 만져 보았다.
백미러를 이리저리 돌려가며 각도를 맞춰보고, 시동도 걸어 보고, 의자도 뒤로 앞으로 밀어보고, 등받이도 여러 각도로 제치고 바로하고 하면서 몇 가지를 손에 익혔다.
참 이럴 게 아니라 라이트를 켜는 법을 알아보자. 그 때 판매원이 여기를 만졌는데...... 밀었는지 당겼는지 돌렸는지 눌렸는지 알 수가 있나. 보라고 할 때 봐 둘 걸 하면서 주물럭거리는데 탁! 하는 순간 불이 왔다. 어둠이 깔린 운동장에 부채꼴 환한 빛이 퍼지면서 범퍼 앞에 줄지어 선 개나리울타리가 선명하게 보였다. 지지않고 아직 남아있는 개나리 꽃 몇 개가 노란 입을 벌리고 웃고 있었다. 아무도 없는 차안에서 혼잣말로‘야! 됐네. 이렇게 하는 거 구나!’하고 소리지르고는 시동을 끄고 내려왔다. 그리고 운동장을 가로질러 종종걸음으로 교무실로 들어갔다. 정신 없이 바쁘게 행사 준비를 하는 이 선생이 교무실에 있었다.
"이 선생. 나 차에 불 켰데이. 앞에 불! 근데 뒤에 불은 내일 배울 꺼야."
어린 이 선생은 팔짝팔짝 뛰다가 뱅뱅 돌다가 허리를 잡고 숙였다 제켰다 하면서 우는 것처럼 웃었다. 갑자기 터지는 웃음소리를 듣고 모여드는 선생님들에게 이 선생은 통역을 했다. 교무실은 오랫동안 온통 난리가 났다.
우여곡절 끝에 초보운전시절은 지나갔고 어리버리 내 차도 경력이 붙으면서 이제는 주유도 잘하고 80킬로의 속도도 내면서 가끔은 승객도 생기고 영주를 떠나 타향 땅에 가기도 한다. 그리고 나도 이제 “언니, 내 차는 왜 이리 더운가하면서 삼복 더위에 에어콘도 켤 줄 모르고 땀을 찔찔 흘리고 다녔잖아. 내 차는 고물이래서 그런 줄 알았지 뭐. 하하하하......”하는 시누이의 초보시절 이야기를 듣고 그 날 저녁 이 선생처럼 나도 박장대소를 하며 웃는 때가 왔다.
첫댓글 일상 생활의 모든일들이 모두 수필감이네!. 정말 재미나게 읽었다. 나의 초보 시절을 생각하며 미소 지으며....!!!
ㅎㅎㅎ.....상당수의 여자분들은 습관적으로 기계를 멀리 할려는 경향이 있지요!! 초보시절의 사연 잼 나게 감상 하였슴니다!!! 건필 하십시오!!!
등단 축하 드려요. 너무 오래 참은것, 내가 가장 오래전 부터 보아 왔지요. 손끝이 역시 예술입니다. 건필하세요.
님의 등단에 환호를 보냅니다. 가슴 뭉클함을 여기에 띄웁니다. 건필하소서.
부럽네요....ㅎㅎㅎ전 아직도 초보운전 딱지도 걸지 못했습니다. 아마 영원히 못 걸것 같습니다...장롱속에서 10년째 잠자고 있어요..
어느날 갑자기 예고없이 봉화 친정에 언니처럼 얌전하고 귀여운 차를 몰고오는 언니를 보았는데....호호호...엄청 끝내주는 사연이 있은 후였군요!!! 언니, 혹시 가파른 언덕위 올라가던중 앞차가 콱 서면 그때 언덕에 걸려진 차를 다시 출발하려면 어떻게 해야하는지 아세유? 모르지롱!!! 언니는 여전히 초보?? ㅋㅋㅋ
안다. 한 사람이 내려서 떠밀고 올라가면 되지.
허-걱! 언니는 아직도 여전히 자동차가 장난감인 줄 아시네!!! 오~ 마이 갓!!! 그땐, 사이드브레이크를 올렸다 내리는 동시에 힘차게 악스레다를 냅다 밟았쁘는 것인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