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정성이 짙은 발라드로 70년대 추억의 가수의 한 사람인 Lobo의 본명은 Roland Kent Lavoie (롤랜드 켄트 라보에)이며 Lobo는 음악생활을 하면서 얻어진 예명이며 스페인어로 늑대라는 뜻이다. 그는 1943년 미국 <플로리다 탈라하>에서 태어난 미국인이지만 동양적인 느낌과 긴 생머리등의 풍모에서 느껴지듯이 인디언 혈통이 섞여있다고 한다. 그의 아버지는 빅밴드 기타리스트였고 어머니도 한때 빅밴드에서 노래를 했었는데 이러한 음악적 환경의 영향을 받고 성장했다. Lobo가 (1960년)18세때 The Rumours라는 락큰롤 그룹에서 처음으로 밴드활동을 시작하여 다음해인 1961년 <짐 스태포드>와 <그램 파슨스>가 포함된 그룹 Legends에 멤버로 있는등 60년대는 여러 그룹에서 활동을 하면서 연주실력을 쌓아나갔다.
29세때(1971년)부터 솔로 활동을 시작하였고 데뷔앨범 <Introducing Lobo>을 낸다. 수록곡인 밝고 경쾌한 첫번째 히트곡 'Me and you and a dog named Boo'를 빌보드 싱글차트 5위에 랭킹하면서 성공적인 출발을 한다. 이 시점에 Lobo라는 예명을 얻게 된다. 그러나 1972년도의 공식 두번째 앨범 "Of A Simple Man"을 내면서 상황 역전에 성공한다. 그의 생애 최대 히트곡인 수록곡<I'd love you to want me>는 빌보드 싱글차트 2위까지 오른다. 차분한 발라드 'How can I tell her'가 수록된 세번째 앨범 "Calumet"이 1973년에 발표되고 그 이후로도 몇장의 앨범이 발표되었지만 대중적인 인기를 얻는데는 실패하였다.
1974년에는 음악 출판회사인 Boo Publishing을 설립했고 38세때인 1980년대에는 내슈빌에서 컨트리 가수의 앨범을 프로듀싱하며 자신은 일선에서 물러나 조용한 생활을 즐기기 시작해서 1981년에는 <Lobo Records>라는 레코드회사를 설립하고 컨트리 뮤지션들과 계약을 맺는등 음반사업에 뛰어들기도 하였지만 43세(1985년)때 사업을 잠정 청산하고 고향인 플로리다로 돌아간다. 그가 52세인 1994년에는 동양적인 정서를 담은 <Asian Moon>이라는 앨범 발표를 필두로 아시아 시장에서의 복귀 시도를 하였지만 미미한 성과만 남긴채 90년대 후반에 은퇴를 하게 되었다. 천성적으로 낭만적인 그는 방랑벽이 있어서 레코드취입후 느닷없이 여행길에 떠나는 등 행방이 묘연한 일들이 많아서 관계자들이 많은 애를 먹기도 한 일화가 있다고 한다. 2009년 현재 그의 나이는 67세이며 더 이상의 소식은 전해지지 않는다. 그의 음악적 성향은 부드럽고 포근한 목소리의 서정적인 컨트리풍이어서 특히 한국적인 정서에 잘맞아 국내에서 많은 인기를 얻었다. Carpenters,John Denver 그리고 CCR등과 함께 70년대 팝송의 전성시대에 Lobo는 한국내 팝송팬의 사랑을 많이 받았었다. 70년대 한국내의 높은 인기와는 달리 본고장 미국에서는 미미하였다. 그의 곡중 빌보드 10위권내 진입곡은 3개에 불과했고 일례로 한국내 인기곡인 Stoney는 미국에서 제목조차 잘 알려지지 않은 노래이기도 하다. Lobo는 내한공연시 자기노래가 의외의 많은 인기가 있는데 대하여 놀라움을 표시하였다.
70년대 당시 팝송을 발굴하여 국내 애청 팝송으로 만든 주역은 당시의 라디오와 다운타운가 음악다방의 DJ들이었다. 그들은 한국적 정서에 맞는 노래들을 발췌하여 전파하는 일에 매우 적극적이었고 이들의 활약이 이 당시 음악문화의 주류를 이끌어 가는 음악적 감상 및 정서의 기준이 되어버렸다. 이 당시 국내 팬들은 감미로운 선율 중심의 노래를 선호했으며 Lobo의 인기는 이 당시의 풍조에 부합된 것이었다. 1973년에 발표된 Stony라는 곡을 가수 김세환씨가 <무뚝뚝한 사나이>라는 제목으로 번안하여 노래했고 가수 이용복씨는 We'll be one by two today를 번안하여 <우리 함께 간다네>라는 제목으로 번안해 노래할 정도였으니...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