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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일자: 5월 28일(일) 무박 |
▲ 백두대간 종주 4구간 들머리 벽계쉼터에서. [사진제공-통일뉴스 백두대간 종주대] |
한 밤에 녹음 우거진 산길을 따라 꼭대기로 톱아 올라보았는지, 서서히 여명이 밝아오고 저 멀리 동녘 하늘에 붉은 태양이 솟는 광경을 지켜보았는지, 말없이 새벽길을 걸으며 그 짙은 풀내음 그 야릇한 새 소리, 그 자연 생태계의 온갖 기지개를 느껴보았는지. 그리고 친근한 벗들, 사랑스런 아이들과 함께 아름다운 금수강산 얘기하며 끊어진 조국의 산길이 이어지길 빌어보았는지...백두대간 4구간 무박 산행을 다녀왔다.
지난 5월 27일 토요일 밤 11시 30분 사당역 1번 출구 앞에 있었다. 나를 포함 4명이, 11시 구로역에서 13명을 태우고 출발한 ‘통일뉴스 백두대간 종주대’전세버스를 기다렸다.
백두대간 4구간 무박산행을 떠나기 위해서다. 어김없이 제 때 도착한 버스는 우리를 싣고 가다가 다시 경부선 동천버스정류장에서 분당 사는 부부까지 태우고 고속도로를 달렸다. 4학년 5학년 초등생 2명 포함 총19명. 벌써 참가자들은 잠들었거나 애써 눈을 감고 있다. 무박 산행이기에 흔들리는 버스 안에서도 꼭 자두어야 산을 탈 수 있다고 경험 많은 종주대장이 강조했기 때문이다.
영취산, 한 밤에 산길을 톱아올라
▲ 산림 속으로. [사진제공-통일뉴스 백두대간 종주대] |
버스는 새벽 2시 40분경 예상보다 빨리 벽계쉼터에 도착했다. 원래 지리산에서 백두산으로, 남쪽에서 북쪽으로 향하는데, 백두대간 4구간의 방향을 반대로 바꾸어 북쪽에서 남쪽으로, 무룡고개~영취산~백운산~월경산~광대치~대안리 코스를 선택했기 때문이다.
빨리 올라 백운산 정상에서 일출을 보기 위한 조치였다. 무릉고개(해발920M) 대로변 갈림길에서 좌측이 영취산 방향이고 우측이 장안산 방향이다. 벽계 표지석 앞에서 야간산행의 장비를 착용하고 단체사진을 촬영한 우리는 새벽3시에 곧바로 영취산 정상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 영취산 정상에서. [사진제공-통일뉴스 백두대간 종주대] |
5월 하순의 영취산 초목은 푸르게 우거졌고 신선한 밤공기는 폐부 깊숙이 파고들어 기분을 상쾌하게 만들었다. 영취산은 경남 함양군 서상면과 정북 장수군 번암면 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해발 1076M이다.
백두산에서 뻗어 내려와 지리산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에서 금남-호남정맥으로 갈라지는 분기점의 산이라고 한다. 나무 계단을 올라 불과 20분 만에 영취산 정상에 도착하고 바로 3.4Km 앞의 백운산 방향으로 나아갔다.
새벽은 온다 ; 어둠은 빛을 이기지 못해
약1시간 30분 정도 백운산 정상으로 이동했다. 이 과정에 어둠은 서서히 걷히고 새벽을 여는 여명은 소리 없이 밝아왔다. 역시 어둠은 빛을 이기지 못했다. 새벽이 열리니 새소리도 부쩍 요란해졌다. 옛 시조에도 ‘동창이 밝았느냐 노고지리 우지진다’하지 않았던가.
“호호호호”라고 했는지 그 희한한 새소리를 문학적 자질 부족으로 정확히 표현하지 못해 안타깝다. 자연이나 사회나 이치는 같다. 촛불로 어둠을 걷어내고 대선으로 새벽을 여니 민중의 소리가 높아질 것이리라.
▲ 여명. [사진제공-통일뉴스 백두대간 종주대] |
▲ 백운산 정상에서 본 일출. [사진제공-통일뉴스 백두대간 종주대] |
▲ 일출을 찍자. [사진제공-통일뉴스 백두대간 종주대] |
▲ 너도 나도 모두 일출을 향하여. [사진제공-통일뉴스 백두대간 종주대] |
▲ 산사나이. [사진제공-통일뉴스 백두대간 종주대] |
새벽 5시경 백운산 정상(1278M)에 도착한 우리가 삼삼오오 인증샷을 남기는 동안, 누군가 “해 떴다”고 외쳤다. 우리는 저 멀리 동녘 하늘에 오늘도 어김없이 솟아오르는 태양, 찬란한 해돋이 광경을 보러 사진 찍기 좋은 곳으로 우르르 몰려갔다.
하루 중에 사진발이 가장 잘 받을 때가 이 즈음이라고 한다. 그래서 사진전문가들도 이 순간의 한 컷을 위해 온밤을 지새운다고. 일행 중의 누군가는 “사진이 너무 선명해 마음까지 보일 정도”라고 기염을 토했다.
백운산 정상의 찬란한 해돋이
아빠 엄마와 함께 온 초등5년 가빈과 초등4년 가희도 일출을 바라본 이 때쯤부터 얼굴이 활짝 폈다. 요즘 어린이들이 부모와의 동행, 특히 힘든 산행을 달가워하지 않는지라 가빈 가희 엄마에게 물어봤다. “잘 따라 나서든가요?”“엄마가 결국 설득해 데려갈 거 쟎아“식의 소극적 동참이라고 귀뜸했다..
▲ 백운산 정상에서. [사진제공-통일뉴스 백두대간 종주대] |
▲ "백운산에 올라왔어요." 가희, 가빈 자매. [사진제공-통일뉴스 백두대간 종주대] |
이제 1~2년만 더 지나면 부모와의 산행이 더 어려워진다고 애들 키워본 선배들이 입을 모은다. 그러나 얼마나 좋은가. 백두대간 산행을 통해 아이와 부모가 소통하고 사람과 자연과 사회를 이해하는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말이다.
노동운동을 오래 해온 한 참가자가 이런 경험을 들려주었다. 뭘 제대로 해준 것도 없고 대화할 시간도 없어 큰 마음 먹고 아이들 고등학생 때 강화도-서해안-목포-제주도 코스로 자전거여행을 같이 다녀온 적이 있다고. 지금 생각해도 참 좋았고 잘 한 것 같다고.
허허...나는 뭐 하고 살았나? 누구든 요즘처럼 살기 팍팍하고 개인주의 사상문화가 범람할 때 부모와 자식, 친구와 동료, 선배와 후배의 소통을 위한 노력이 더 절실하다.
우리의 꿈 ; 걸어서 백두산까지
우리 일행은 다시 이동했다. 백운산 정상에서 2.4Km 전방에 있는 중고개재에 이르러 아침식사를 하게 되었다. 자리를 깔고 빙 둘러 앉아 각자 갖고 온 보따리를 펼쳐보니 없는 게 없고 먹을 게 너무 많았다. 밥과 찬, 떡, 과일, 풋고추, 된장 등에 막걸리, 소주까지 한 잔씩 걸치니 세상 아무 걱정이 없어진다.
▲ 백두대간 산행길임을 알려주는 이정표. [사진제공-통일뉴스 백두대간 종주대] |
▲ 중고개재에서 아침식사. [사진제공-통일뉴스 백두대간 종주대] |
▲ 하산 길에. [사진제공-통일뉴스 백두대간 종주대] |
이런 분위기에서 대선 이후 정세, 남북교류협력 재개와 백두산으로의 종주 가능성이 화제에 올랐다. 통일뉴스 대표의 희망찬 비전 제시는 참가자들의 꿈을 사정없이 부풀리는 데 부족함이 없다. 햐~~ 아무튼 흐뭇한 일이다.
하지만 그만큼 할 일도 많다. 민간 자주평화통일운동을 활성화시켜야 한다. 그래야 문재인 정부가 안팎의 장애물을 극복하고 남북화해협력과 한반도평화 실현에 좀 더 적극 나서도록 만들 수 있다. 최근 몇 군데 인도주의적 지원단체들의 방북을 허용했을 뿐이다.
문을 더 활짝 열어야 백두산 갈 수 있다. 미국의 대북제재, 한반도 긴장으로 방해받는 게 사실이다. 북미대화를 재개하고 먼저 남북관계를 개선하도록 국민들의 힘을 모으는데 백두대간 종주대 참가자들도 작은 실천을 해야 하지 않을까.
광대치의 찔레꽃
▲ 광대치로 향하는 길에 흐드러지게 핀 찔레꽃. [사진제공-통일뉴스 백두대간 종주대] |
중고개재에서 아침식사를 마친 우리 일행은 2.2Km 전방의 중치를 거쳐 다시 1.9Km 전방의 월경산을 지나 드디어 1.1Km 앞의 광대치로 전진했다. 가는 길 양 옆에는 찔레꽃이 흐드러지게 피어있었다.
어릴 적, 산에 나무 하러 가면, 찔레 순을 잘라 껍질 벗겨 씹어 먹었다. 이런 저런 얘기 나누며 걷다 보니 어느 듯 백두대간 4구간 마지막 지점인 광대치에 도착했다.
▲ 이날 산행의 종착지, 광대치에서. [사진제공-통일뉴스 백두대간 종주대] |
광대치에서 좌측으로 하산 길을 접어드는데, 여태까지 잘 걸어왔던 내 무릎에 이상 신호가 왔다. 광대치에서 전세버스가 있는 대기 중인 대안리 마을까지는 임도를 따라 약3Km, 무려 30분 이상을 더 가야 하는데, 큰일. 다른 방법은 없다. 좌우 스틱에 힘을 싣고 내려가 보는 수밖에.
가빈과 가희는 뛰어 내려갔다가 아빠 엄마에게로 다시 뛰어 올라오기도 했다. 이야! 젊은 다리가 좋구나. 나이는 숫자에 불과한데, 어인 연유일까. 작년 여름 지리산 종주 1박 2일 약36Km를 무리하게 걸어 그 때 생긴 탈이 아직도 가시지 않았는지...
딸 부자집의 국수어탕
▲ 산, 산, 산. . . [사진제공-통일뉴스 백두대간 종주대] |
절뚝절뚝, 무릎 부담 줄이려고 뒤로 걷거나 옆으로 걸으며 대안리 마을까지 오니, 반갑다 버스야! 잠시 쉬었다가 버스에 올라타고 20분 더 가서 경남 함양군 서상면의 딸부자집 식당에 다다랐다. 벽에 딸들 사진을 크게 전시해놓은 식당은 처음 보았다. 얼마나 당당한가. 열 아들 안 부럽다는 부모님의 강력한 시위이리라. 딸들은 도회지에 가 있는지 안 보이고 어머니가 요리 하시고 아버지가 날라다 주셨다.
점심식사 메뉴는 ‘어탕’을 주문했는데, 어탕이란 민물 잡고기를 푹 고아 뼈를 추려낸 다음 건더기, 양념에 국수까지 넣고 끊인 것이다. 공기밥은 별도, 국수 먼저 건져먹고 밥까지 말아 먹으라는 식이다. 주변에 강, 냇가 있는 경상도 내륙지방에서 그 유사 음식이 많다. 내 고향 청도 추어탕보다는 못하다고 속으로만 생각했다.
안주보다 사람이 더 아름답다
점심식사를 마치고 귀경 버스에 오른 우리 모두에게 피곤이 한꺼번에 몰려왔으나 백두대간 4구간의 코스가 하나 더 남았다는 게 아닌가. 다름 아니라, 뒤풀이 말이다. 그것도 가락시장에서 그 비싼 회를 먹겠다고? 그런데 우리에겐 싱싱한 회를 싸게 많이 먹을 수 있는 비결이 있었다.
80~90년대 안양 안산에서 노동운동을 하다가 몸이 안 좋아 잠시 쉬는 통에 가락시장의 형님 일을 도와주면서 배운 생선도매상, 이제 자리 잡고 십수년 해오는 후배가 있었던 것이다. 그도 등산 매니아. 그러나 안주보다 사람이 더 아름답다! 캬~ 취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