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비의 불륜 현장을 목격한 이후 더 이상 여자를 믿을 수 없게 된 이슬람 제국의 한 칼리프의 광적인 행동
(그는 매일 밤 그와 잠자리를 같이 한 왕비들을 다음날 바로 처형시킨다)을 고치기 위해
자진해서 왕비가 된 대재상의 딸 셰에라자드가 재미난 이야기로 하루하루 죽음의 위기를 넘겨가는
천일(1,000일)하고도 하루 동안의 재미난 이야기 보따리>가 천일야화 혹은 아라비안나이트
라는 사실은 너무나 유명한 이야깁니다.
어려서 읽었던 동화책을 통해서, 혹은 영화를 통해서, 아니면 디즈니 만화영화 시리즈를 통해서,
하다 못해 음악을 통해서라도 우리는 단편적으로나마 천일야화의 서사의 뼈대는 잘 알고 있습니다.
어느날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가 저 책을 제대로 한번 읽어 본 적이 있었던가?'
이것이 천일야화 혹은 아라비안나이트 의 역설이었습니다.
너무도 유명하지만 누구도 제대로 읽지 않는 책.
호기심이 충만할 때 역설을 돌파해야 하는 법입니다.

이슬람 사회에서 단편으로만 혹은 구전으로 무수히 전해져 오던,
목숨을 구하기 위해 매일밤 이야기를 이어가던 셰에라자드의 이야기를
17세기 유럽사회에 처음 소개한 사람은 앙투안 갈랑이었습니다.
<천일야화>의 서구식 정본이랄 수 있는 앙투안 갈랑의 <천일야화>는
어떻게 보면 이슬람문학이라기 보다는 프랑스문학에 가깝다고 볼 수도 있겠습니다.
프랑스문학으로 재탄생한 17세기 앙투안 갈랑의 <천일야화>의 정본이
지구 반 바퀴를 돌아 2010년 1월 우리나라에 처음 소개되기까지 400년이 걸렸습니다.
유럽에서 선풍을 일으킨 앙투안 갈랑의 <천일야화>의 바람은 오히려
이슬람 사회에 역수입되어 다양한 <천일야화> 출판의 계기가 되었는데
리처드 버턴의 영역본은 그중 유명했던 '캘커타 본'과 '이집트 본'을 뼈대로 하여
앙투안 갈랑에 이어 다시 소개되었는데 앙투안 갈랑과는 무려 200년 가까운 시차가 있습니다.
저 역시 앙투안 갈랑의 <천일야화>를 읽기 전에 리처드 버턴의 <아라비안나이트>를 먼저 읽었습니다.
그도 그럴 수 밖에 없는 게 리처드 버턴 버전을 읽고 있는 도중에
앙투안 갈랑의 <천일야화>가 비로소 처녀 번역되어 출판되었기 때문입니다.
우열을 가리기는 힘들다고 봅니다.
외설적 표현을 있는그대로 직역한 리처드 버턴의 편역도 나름대로 이유가 있는 것이고
최초 정본의 지위를 가지고 있는 앙투안 갈랑의 문학적 향기 또한 만만치 않았습니다.
다만,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외설적 문학작품이라는 딱지가 붙게 한 리처드 버턴의 편역은
그런 이유로 19금 도서가 되어 그 독자층을 스스로 제한해 버린 탓에
자라나는 우리의 청소년들이 <천일야화>의 향기를 제대로 음미하지 못하게 한 혐의는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나이 제한없이 누구나 부담없이 읽을 수 있도록 제대로 소개된
앙투안 갈랑의 <천일야화>가 더 반가웠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아색기가>라는 타이틀로 4컷 카툰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고 평가받는
한국 만화계의 새로운 기대주(이제는 이미 기대주가 아닐 수도...) 양영순의 작품입니다.
산문에 비하면 너무나 짧은 만화책이지만 천일하고도 하루 동안 계속된
셰에라자드의 이야기의 향기는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습니다.
아울러 원작을 넘어 중국과 몽골까지 아우르는 작가의 창조적 상상력에 박수를 보냅니다.
<천일야화> 혹은 <아라비안나이트>... 긴 호흡으로 꼭 한번 읽어보시기를...!
- 구덕령 꽃마을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