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요즘 큐로 인한 즐거운 고민에 빠져 있습니다.
첫 개인큐로 더블오비(55B)를 장만하여 두 달여 정도 아주 만족스럽게 사용하다가
롱고니사의 “Ray of Light”를 손에 넣게 되어 길들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사실 지금도 55B의 성능에 대해서는 전혀 불만이 없습니다.
아니, 제 실력에 비하면 오히려 과분할 정도입니다.
가격도 저렴한 편인 데다가
면의 안정성이 대단히 좋아서 기본공은 말할 것도 없고
조금 신경을 써서 면을 따야하는 경우에도 원하는 대로 움직여 줍니다.
아주 까다로운 위치가 아닌 담에는 웬만큼만 들이대도 별 편차 없이
의도하는 궤적에 따라 얌전히 진행한다는 뜻이지요.
덕분에 핸디도 올리게 되었고 그 핸디로 누구와도 별 부담 없이 게임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Ray of Light - 소위 ‘광선검’은 많이 다릅니다.
기본공 정도야 별 상관이 없지만 각이 조금만 예민한 공을 시도할 때는
내공의 당점과 첫공의 두께를 정확하게 처리해야지 그렇지 않고
대충 얼버무리면 여지없이 성질을 부립니다.
조금 더 끈 것과 조금 더 민 것, 약간 두꺼운 것과 약간 얇아진 것에 따른 공의 변화가
민감하게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물론 그렇기 때문에 이전의 다른 큐로는 엄두가 나지 않던 공이나
극도로 세밀하게 치느라 실패율이 높았던 공들을 훨씬 수월하게 다룰 수 있다는
장점이 되기도 하지요.
제 경우 “Ray of Light”는 순전히 디자인 때문에 욕심을 냈습니다.
큐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되어 이런저런 정보들을 검색하다가
이 큐 사진을 보는 순간 까무라칠 뻔 했습니다.
이태리 넘덜 아니랄까봐 큐까지 이런 디자인으로 뽑아냈구나 싶었지요.

하지만 솔직히 저로서는 이 큐의 성능을 제대로 살려내기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으로서는 이 큐의 장점을 제대로 끌어낼 수 있을 만큼의 실력수준에 못 미칠뿐더러
그에 필요한 연습을 위해 시간투자도 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55B가 훨씬 더 제 기량을 안정적으로 보장해 줄 수 있을 것입니다.
실제로 Ray of Light에 적응하는 요즘 승률도 에버도 날마다 바닥을 치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제 수준에서 Ray of Light 휘두른다는 것은 무모한 사치일수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마치 성실하고 헌신적인 아내를 두고 짜릿한 쾌감을 즐기느라
매력적이기는 하지만 요구사항도 많고 변덕도 심한 애인을 몰래 사귀는 꼴입니다.

아무튼 Ray of Light 는 좀 실수를 하거나 억지를 부려도 웬만하면 다 받아주는 한결같은 마음씨의 푸근한 마눌님 같은 큐는 결코 아닙니다.
오히려 조금만 마음에 들지 않으면 토라져서 성질을 부리는 까칠한 애인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이 까칠한 애인 같은 Ray of Light를 포기하지 않을 겁니다.
까다로움에 적응하기 어렵다는 문제가 있기는 하지만 정확한 샷을 구사하기만 하면
보통으로서는 느낄 수 없는 아찔하고 짜릿한 감동을 선사하는,
말 그대로 스릴과 샤쓰빤스가 넘치는 긴장감으로 인한,
말로다 설명 할 수 없는 매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한편 이렇게 매력적인 큐가 중고시장의 단골메뉴인 이유를 알 것 같습니다.
우선의 화려한 매력 때문에 어떻게든 길들여 보려고 애를 써 봐도
좀처럼 손아귀에 들어오지는 않지, 그러는 동안에 승률과 에버는
신경정신과적 문제가 있는 여성분이 바람 부는 날 명절에 즐겨하는 민속놀이를 하는 것처럼 되고
사람의 인내심에는 한계가 있기 마련인지라
‘이 노력을 진작 아담이나 플러스의 볼트에 했었더라면....’ 이라는 후회가
들인 돈과 노력에 대한 미련을 훌쩍 넘어설 무렵
“에라이~~”하는 비통한 심정으로 중고시장 문을 두드리게들 되었을 것입니다.
핸디 14~17점 대의 분들 중, 혹 얘 사귀어 볼라구 마음 먹은 분 있다면
웬만하면 접으시라고 한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성질머리 x랄 같아도 얼굴 이쁜 맛에 평생 속 썩으며 살겠다는 각오 아니시라면
진작 내게 꼭 맞는 조신한 조강지처감 찾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