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를 담은 주제공원, 그 속의 제주문화
#1. 돌하르방 공원

나무들은 그리 울창하지도 빽빽하지도 않게, 적당히 기분 좋게 자라 있다. 그 속에 자리한 돌하르방들이 마치 움직이는 듯 분주해 보인다.

연인에게 하트를 그려주기도 하고, 새에게 어깨를 내어준 돌하르방도 있다. 어서 와서 팔짱끼고 사진 한방 박으라고 외치는 듯한 재치 있는 돌하르방까지 다양하다. 대부분 돌하르방이라고 하면 무뚝뚝한 얼굴로 가만히 서 있는 모습을 연상하지만, 여기의 돌하르방들에겐 표정이 생생히 살아 있다. 그 모습엔 한결같이 이 공원의 주제인 사랑과 평화가 녹아들어 있는 것이다.

그렇다 해서 제주의 전형적인 돌하르방 모습을 볼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제주의 대표적인 돌하르방은 이곳에서 다 볼 수 있다. 물론 실물과 똑같이 직접 돌을 깎으면서 만든 것이긴 하지만, 이끼까지 끼어 있는 게 10여 년에 가까운 세월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돌하르방 공원에서 그냥 나가기가 아쉽다면 목판, 석판, 고무판을 이용한 판화찍기나 흙으로 돌하르방 토우를 만들어 보는 체험코너를 들리는 것도 좋다. 또한 돌하르방이 그려져 있는 우편엽서도 공짜로 가져갈 수 있으니, 시원한 나무그늘 밑에서 편지를 쓰는 행복한 체험도 오랜만에 해보자.

돌하르방 공원을 직접 만들고 관리하고 있는 5명 중 한 명인 이창현 사장을 만나 보았다. “원래는 서양미술을 전공했습니다. 제주의 풍광을 스케치하러 다니다 보니 동자석이 보이고, 그 재료인 제주의 돌, 현무암이 마음을 끌더군요. 그것이 인연이 되서 지금은 이렇게 돌하르방과 함께 생활하게 되었습니다.”라며 지금에 이르게 된 사연을 이야기해 주었다.
경영상의 어려움에 대한 질문에 이창현 사장은 시작도 어려웠지만 지금도 힘들다고 하면서도, “아이들은 커가고, 아내는 걱정스런 얼굴로 쳐다보고, 그래도 나머지 이천평의 땅을 어떤 방법으로 꾸밀까 하고 스케치하고 있습니다”하면서 그저 사람좋은 웃음을 짓는다.
여행사에 송객수수료를 지급하지 않아 단체관광객이 거의 없는 어려움 속에서도, 학생들을 위한 토우체험엔 단체인 경우 겨우 재료값 정도인 5천원만 받고 있다고 하니, 큰돈 벌기는 힘들 것 같았다.

이런 주인장의 마음가짐 때문일까? 돌하르방 공원은 외가댁에 놀러온 것 같다. 새롭고 재미있는 경험과 함께 할아버지의 푸근한 마음까지도 느낄 수 있었다.
이창현 사장은 “돌에 대한 이해, 제주문화에 대한 이해와 사랑이 필요합니다. 지금도 제주의 돌과 그 이야기를 찾아다니고 있는데, 바닷가 환해장성에 가 보면 아쉬움이 참 많습니다. 행정기관에서는 환해장성을 복원하고, 관광객들은 그 장성을 허물고 돌탑을 쌓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옆에 있는 지역주민들은 관광객들이 와서 오징어가 잘 팔린다며 좋아하고 있는 것이 지금의 현실입니다”라며 ‘제주돌과 제주문화’에 대해서는 열을 올리며 긴 아쉬움을 토로했다.
문화나 자연 등 모든 것을 굴복시켜버리는 ‘돈’ 앞에 당당하기란 참 힘든 모양이다. 돌하르방 공원을 나오면서, 관광객들이 직접 만들어가는 돌하르방의 모습에서 희망을 찾아본다. 서툰 솜씨지만 망치와 정을 잡고 머리부분을 다듬어 보았다. 이 돌하르방이 멋진 모습을 드러낼 때 쯤, 우리의 돌에 대한 생각, 제주문화에 대한 마음도 다듬어져 있었으면 좋겠다.
#2. 도깨비 공원

서민들에게는 무속신앙과 결합된 모습으로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 도깨비는 “금 나와라 뚝딱, 은 나와라 뚝딱”과 같은 전래동화나 설화에서도 쉽게 접할 수 있을 만큼 친숙한 이미지이다.
이 도깨비에 관심을 가지고 지난 1998년 제주대 산업디자인과 古이기후 교수와 강사, 학생들이 주축이 되어 도깨비 공원을 조성하기 시작했다. 도깨비 공원은 전시된 모든 작품들이 순수 창작 조형물이라는 데 의의를 지닌다.

처음에는 제주의 설화를 살려서 제주관광에 기여할 수 있는 ‘설화원’을 만들어보려고 했지만, 전통 속에 숨어 있는 도깨비를 우리 제주의 정체성과 연관시켜 보고 싶다는 열정 덕분에 2005년 5월 “도깨비 공원”은 탄생할 수 있었다.

제주에서 도깨비는 ‘도채비’라 불린다. “진짜 도깨비를 보고싶다”는 관광객들의 요청에 따라 제주의 영감놀이 복장을 모티프로 하여 허깨비를 투입시켰는데, 이교수는 허깨비 복장을 하고 사람들을 놀래키기도, 웃음을 주기도 했다. 이교수팀은 전통적 도깨비 개념에서 탈피하여, 디자인면에서는 어린이들에게 친밀감을 느낄 수 있는 동화적 개념의 도깨비로 변환해 작업을 진행했고, 이교수는 초기 공사착공 단계에서 직접 포크레인 기사자격증을 따서 공사에 나설 정도로 열정적이었다.

어린 시절 깊은 밤의 단골 이야기 대상이 되었던 도깨비를 무한한 상상력의 바탕 위에 올려놓음으로써, 제주를 대표하는 테마파크로 우뚝 서고자 하는 세계 최초의 도깨비 공원이, 제주인의 정체성을 세계에 알리는 데 얼마나 기여를 할 수 있을지 관심을 가져보아야 할 것이다.

‘돌하르방공원’과 ‘도깨비공원’엔 공통점이 있다. 우선 젊다는 것이다. 개관한지 얼마 되지 않은 것도 그렇지만, 기획하고 만들고 운영하는 사람들도 청년이다. 그리고 관광버스가 잘 보이지 않는다. 다른 곳처럼 커미션을 주고 관광객을 불러들이지 않고 있는 것이다. 무엇보다 주목해야 할 것은 그들만의 독자적인 주제를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는 독특함, 거기에 제주를 담아 세계와 함께 하려고 한다. 당장은 배고프고 어려울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과거의 전통양식을 현재를 반영하며 새롭게 재해석 하고, 귀중한 향토문화유산을 다시금 돌아보게 함으로써 단절된 과거를 이어가는 이들의 모습에서 제주관광의 미래는 밝아 보인다.
제주는 남다른 섬이다. 올해가 ‘제주민속문화의 해’인만큼 숨겨진 제주문화를 발굴하고, 제주만의 특수한 정체성을 세계에 널리 알릴 수 있을 때, 우리 할아버지·할머니가 물려주신 유·무형의 소중한 자산을 후대에까지 이어갈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