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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4월 1일(금)
오늘은 새로운 마음으로 기둥을 높이는 작업을 하려고 하였습니다.
그간 작업준비를 다 해놓고 오늘 철 판넬을 올려 조립을 하려고 하였더니 도저히 맞지를 않는 것입니다.
철 판넬이라 무겁기는 무지하게 무겁워 세 네 사람이 들어 올려야 정한 높이의 공사를 할 수 있는데 몇 번을 올렸다 내렸다 하여 기진맥진 해졌습니다.
도무지 방법이 없어 임시 창고겸 경비숙소에 들어가 몸을 눕혔습니다.
1분도 지나지 않은것 같은데 깜빡 잠이 들었습니다.
일하는 일군 쌍감이 목사님 몸이 않좋은가요 라는 소리에 벌떡일어나 아니라고 하고 다시 나와 방법을 찾았습니다.
세워진 기둥위에 정한 길이에 맞추어 볼트 조립을 하려고하니 도저히 되지를 않아 콘크리트 기둥 맨 위에 올려놓고 볼트를 조절하여 밑으로 내리는 방법을 택하였습니다.
어렵게 콘크리트 마지막 부분까지 올려 시도 하였지만 이렇게 하여서는 안될 것 같습니다.
하는 수 없이 철판 판넬만 오늘 붙들고 씨름을 하루종일 한 셈입니다.
그리고 집으로와서 아닐과 대화를 하다가 기가막힌 아이디어가 떠올랐습니다.
높이가 큰 철 판넬을 정상 높이만큼 잘라 올려 맞추면 되는 것을 가지고 하루종일 생 고생을 하였던 것입니다.
건축가가 들면 기가막힐 말을 늘어놓는것일지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이곳의 상황에 따라서 하나님이 일을 하도록 해주시니 너무 감사할 따름입니다.
저녁에 들어와 저녁 먹기전에 양배추를 절여 놓았는데 씼어서 양비추 김치를 담그고 잠자리에 들어가려고 합니다.
모기가 극성맞게 들러 붙는데 바르는 모기약을 가져와 바르니 냄새는 독하여도 참 좋습니다.
안녕히 주무세요.
아니 한국은 지금 2시 57분, 3시가 다 되어가는군요.
2011년 4월 2일(토)
오늘 기둥 높이기 작업은 실패를 하였습니다.
어제 아무리 판넬을 맞추어 보려고 노력을 하였지만 안되어 철판 판넬을 잘라서 하기로 하였습니다.
아침 일찍 어제밤 야간경비를 선 사람하고 교대를 해주기 위하여 일찍 나가 철판 판넬을 높일 기둥 높이를 재어 하나를 잘랐습니다.
그런데 벽돌 쌓는 사람들 세 사람이 나왔습니다.
오늘 기둥 높이기를 한다면 벽돌 쌓는 사람들이 돌아가야만 하게 될 것 같아 벽돌 쌓는데 모든 인원을 투입하기로 하였습니다.
내일 더 많은 일군들을 찾아 투입하면 양쪽에서 작업이 이루어질 것 같습니다.
벽돌 쌓는 속도를 보아 이번에 교실 칸칸이 벽돌을 쌓고 자재를 투입할 재정이 확보되고 자재만 준비되면 완성 가능성도 보입니다.
하나님이 이루어 나가시는 모습을 보면서 시간을 단축시켜 주시는 것 같습니다.
인도에 계신 박집사님과 오늘 통화를 하였고 필요한 부분을 후원하고싶으신 목사님이 계시다고 하여 지붕을 올리는 자재를 신청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한국에서 팬션을 짖는 최집사님에게 전화를 걸었더니 받지를 않아 동생 최집사님과 통화를 하였습니다.
길이와 면적 교실 칸칸을 알려드리고 샌드위치 판넬과 지붕 구조물을 준비하려면 어느정도의 재정과 자재 부피는 어떠할지 알려 달라고 부탁을 해 놓았습니다.
오늘도 안전하게 지켜주신 하나님께 감사와 찬송을 드립니다.
기둥 높이기를 할 철판 판넬을 카타기로 자르다가 철판을 자르는 날이 부러지면서 저의 다리를 강타 하였습니다.
아차 큰 부상이면 어쩌나 하고 염려하는 마음으로 바지를 올려 보았는데 약간 붉은 빛이 살결에 남고 저녁에 집에와서 자세히 보니 아프지도 않습니다.
전기의 힘으로 카타날이 돌아가는 속도를 생각하면 바지를 찢고도 남을 회전력인데 기계도 상함이 없고 저도 상함이 없이 안전함을 알려 드립니다.
요 몇일간 12시가 넘어 잠을 자서 그런지 오늘은 너무 피곤합니다.
이곳시간은 10시가 되었습니다.
어서 잠자리에 들겠습니다.
안녕히 주무세요.
2011년 4월3일(주일)
아침에 일어나 서둘러 아침을 먹고 현장으로 나갔습니다.
일어나자마자 밥을 먹으려니 쉽지가 않습니다.
그래도 일을 하려니 억지로라도 먹어 두어야 합니다.
너무 피곤이 겹쳐오는것 같습니다.
아닐 식구들과 이웃 사람들은 아닐집의 거실에 모여 인도와 스리랑카의 크리켓 경기를 보고 인도의 승리를 위해 응원이 대단 하였습니다.
그래도 저는 너무 피곤하여 잠자리에 들자마자 잠이들었습니다.
아침에 아닐이 말하길 20년만에 인도가 크리켓 경기에서 우승을 하였다고 하면서 좋아합니다.
아닐 뿐이겠습니까?
인도 국민 모두가 기뻐할 일이지요.
오늘도 하나님이 일하시는 모습을 듣고 눈으로 보면서 이 하루를 주께 찬양하면서 경배를 드립니다.
후원자의 손길을 축복하시고 늘려주시면서 이곳에 세워나갈 하나님의 구원사역을 더 앞당기시는것 같습니다.
날마다 감사를 더하고 하나님이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도록 우리 선교회 회원 여러분들의 많은 기도와 물질의 후원이 인도 땅을 변화 시키시는 밀알이 되고 있습니다.
이 변화는 아주 많은 시간이 필요하고 세월이 요구되고 있습니다.
인도인들의 생각은 누구보다 내가 더 잘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없는 사람들이고 잘 배워야 한다는 것도 없어보이는 듯 합니다.
그러나 지난해 7월달 이곳에 와서 학교 건축 현장에 심어 놓았던 나무들이 무너직 벽돌 밑에 깔려 벽돌을 모두 꺼내고 죽어있는 나무에 매일 아침 저녁으로 물을 주고 기다리니 살아나는 나무의 모습을 보면서 희망이 없어 보여도 이들에게 희망을 안겨주는 것이 곧 하나님이 하시고자 하는 일이신줄 믿습니다.
매일 물을 주듯 하나님의 사랑과 주님의 은혜안에서 성령의 역사하심을 따라 우리가 희생하면 이곳이 변화되어 희망의 싹을 통하여 맺혀질 열매를 볼 그날이 앞당겨질 것입니다.
2011년 4월 4일(월)
어제밤에 또다시 돌풍이 불어왔습니다.
잠자리에 들었는데 심상치않은 바람 소리에 깨어 비가 오지 않기를 기도하면서 있을때 아닐도 심상치 않은 느낌이었는지 아니 아닐은 저보다 더 민감하게 잘 알고 있었겠지요.
아닐이 목사님 하고 부르는 소리에 나가보니 집앞 마당에 펼쳐놓은 우리나라로 말하면 깨 묶음이라고 말해야 이해가 쉬울 듯 합니다.
이들은 유채꽃처럼 노랗게 꽃이 피는데 그 열매로 기름을 짠다고 합니다.
다 익은 것을 탈곡을 하려고 마당에 베어다 놓았는데 망연자실 비가오면 모두 버린다고만 하고 방치하고 있습니다.
제 생각 같아선 집 안으로 들여놓아도 충분할텐데 한숨만 쉬는 것입니다.
대신 올려 줄 수도 없고 공사현장에 야간 경비를 서는 라나와 아제이가 걱정이 되었습니다.]
뇌성과 번개가 계속하여 우루룽쾅쾅 번쩍 번쩍 하는데 허허 벌판에 철근이 뾰쪽하게 올라온 기둥들이 들비한데 혹시 벼락이라도 내리면 얼마나 큰 사고일까 생각하면서 하나님께 간절한 기도를 하였습니다.
정말로 현장에서 부딪히는 기도야말로 실감이 납니다.
하나님 이 비바람이 다른 곳으로 비켜가게 해주세요.
바람은 계속하여 불어대고 빗방울도 하나씩 떨어지기 시작 하였습니다.
그러나 더 이상 비는 내리지 않고 바람만 불었습니다.
현장에 있는 아제이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어쩔줄 모르는 모양처럼 현장의 모습이 전화기 넘어로 소리가 들립니다.
노란 비닐천막이 지난번에도 견뎌 주었는데 이번에도 견뎌주길 기대하고 물었더니 다행히 상하지는 않고 바람이 거세 무섭다고 합니다.
잠시 후 아닐이 불러 가리키는 곳을 쳐다 보았더니 하늘에 별들이 보입니다.
한쪽은 검은 먹구름으로 어둡고 한쪽은 별들이 보이는 맑은 모습이 보입니다.
하나님께서 저의 기도를 들어 주셨습니다.
더 이상 비는 오지않고 바람도 수그러지는 듯 하였습니다.
방으로 들어와 다시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매일 피곤이 누적되어 그런지 이제 눕기만 하면 바로 잠이 듭니다.
아침이 되어 잠을깨니 밖에서 나는 소리가 심상치가 않았습니다.
비가 오는 소리인듯 하여 나가 보았더니 방금 내린비인것 같았습니다.
마른땅에 비가 흩뿌리고 지나간 모습 이었습니다.
다섯시가 조금 넘어 일어나 정말로 넘어가지 않는 밥을 인스턴트 김치국을 하나 끓여 말아먹고 현장으로 달려 갔습니다.
잠시 내린 비로 현장안에 빗방울이 새어 침상을 옮겨놓았습니다.
다행히 시멘트 창고에는 비가 새지를 않아 염려는 안해도 되었습니다.
천막 옆으로 비가 모이면 천막을 들어 물을 내리곤 하였습니다.
할 수 없이 다음을 위하여 아닐에게 비닐을 더 사오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어제 높인 기둥을 해체하고 오전에 인부들 나오자 마자 하나를 조립하여 콩크리트를 타설하고 오후 4시경 다시 해체를 하여 다시 하나를 타설하였습니다.
이제 기둥 세 개를 높여 놓았습니다.
내일도 두 개를 타설 할 것입니다.
그러면 앞으로 매일 두 개씩 타설한다면 보름정도면 기둥 높이기가 완성 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어제 한국에 최집사님에게 전화를 걸어 샌드위치 판넬 지붕을 하는데 A트러스 공법으로 할때 경비가 얼마나 들어가는지 알려 줄것을 부탁을 하였는데 전화가 왔습니다.
구체적으로 이야기를 나눈 뒤 내일 다시 연랃=ㄱ을 주시기로 하였습니다.
최집사님의 이야기로는 한국에서 컨테이너로 가져오는 것 보다 인도에서 구입하는 것이 훨씬 싸게 살 수 잇을 것이라고 조언도 아끼지 않았습니다.
저녁에 들어오면 손이 잘 오그려지지가 않습니다.
아침이면 얼굴은 팅팅 붇고 너무 피곤한 모양입니다.
건강을 위하여 기도해 주세요.
지금까지는 매일 하루 하루의 일과를 이렇게 올려 드렸는데 앞으로는 매일 올리는것이 어렵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일을 끝내고 집에 들어오면 펌프 물을 길어다가 화장실에서 샤워를 해야 하는데 물 한 양동이 퍼나르는것이 너무 힘이들어 아닐 부인에게 비살보고 내가 들어오는 시간에 맞추어 물을 길어다 놓으면 좋겠다고 했더니 그러겠다고 합니다.
정말로 들어오면 그냥 쓰러져 자고 싶습니다.
하루종일 먼지에다가 기둥 높이기를 할 때 콘크리트 물이 튀겨 얼굴이고 옷이고 얼룩이 지고 말이 아닙니다.
이것을 말로만 시키기가 너무 불안하여 그렇습니다.
제가 잠시 한눈만 팔아도 이들은 쉽게 말해 농땡이를 피거든요.
공사비가 많이 부족 합니다.
현재 남은 금액이 백여만원 남았는데 내일이나 모래 모래 한차 들어오면 임금줄 돈도 빠듯할 것 같습니다.
벽돌도 더 사야하고 임금도 더 들어아야하고 앞으로 자재비가 목돈으로 들어갈 금액이 많아집니다.
창호라고 하는데 창문과 큰 문들을 사야 합니다.
한국에서 사용하는 창호를 아는 집사님이 인도에 와서 이 사업을 시작 하였는데 인도에서 만드는 한국형 창호를 사용할 계획입니다.
소식지에 각 공사비를 나누어 올려 드렸는데 그에따른 공사가 잘 진행 될 수 있도록 많은 기도와 후원을 부탁 드립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릴 수 있는 주인공이 여러분이시길 기도합니다.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는 하나님이 여러분과 합께 하심을 감사드립니다.
벽돌 쌓기가 생각보다 속도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시작을 1m높이로 하여 건물 전체 둘레와 교실 칸칸이 먼저 쌓고 있습니다.
사흘만 더 쌓으면 건축면적 모든 둘레를 1m 높이로 쌓는것이 마쳐질 것 같습니다.
자재만 모두 준비된다면 제가 들어가기 전에 건축이 모두 완성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앞으로 사용될 학교의 내용이 어서 준비 되어야할 것인데 하나님이 어떤 방법으로 일하실지 큰 기대가 됩니다.
주여 일군을 보내 주옵소서.
이곳에 일꾼이 필요합니다.
교육을 담당할 교사들과 농촌발전을 위한 농업 기술 교육자 및 선교사들이 필요합니다.
주님 이 부족한 종을 사용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2011년 4월 5일(화)
어제밤 아닐 누나와 매형이 온다고 아닐이 말을 해 주었습니다.
몇시에 도착 하느냐고 물었더니 10시40분경 도착 할 것이라고 합니다.
그럼 잠시 잘테니까 깨우라고 하였더니 잠을 깨니 아침 이었습니다.
왜 깨우지 않았느냐고 하였더니 자는 사람 한번 깨면 다시 잠들기 어려워서 안깨웠다고 합니다.
아침에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함께 이야기할 시간도 없어서 저는 현장으로 나갔습니다.
아닐 매형도 뒤따라와서 학교 건축 현장을 둘러보고 간다고 합니다.
저는 현장에 도착 하자마자 어제 저녂에 세워놓은 조립해 놓은 기둥 철판 판넬을 해체를 하였습니다.
볼트 해체를 하고 혼자 내리기에는 너무 위험하나 그래도 일군들 나오면 바로 작업을 할 수 있도록 그간 혼자 그 무거운 철판 판넬을 내렸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어려워 주춤하는 사이 일군들이 나왔습니다.
어제부터 일군들이 한시간 빨리 나와서 일하고 한시간 빨리 들어가겠다고 하여 그렇게 하니 시원한 아침 공기를 마시면서 일을 시작하나 아홉시도 안되어 더웁기 시작 합니다.
이제 교실 칸칸이 절반정도를 1m 높이로 쌓아가고 있습니다.
다음달이면 결혼 씨즌이라 일군들 구하기가 어렵다고 하여 벽돌쌓는 기술자를 하나 더 불러 일을 시키고 있습니다.
오늘까지 기둥 높이기를 다섯 개 하였습니다.
그리고 어제 밤에 아닐과 릴랄에게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우선 집에서 아이들 학교 수업 끝나고 나서 영어학습을 할 수 있는 아이들을 모아서 가르치면 한달에 한국돈 십만원을 주겠다고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인도 돈으로는 4천루피가 됩니다.
그 이야기를 듣고 처음에는 별로 신통치 않게 대답을 하더니 오늘 제가 현장에서 일을 마치고 돌아왔더니 오후에 세명을 불러 영어공부를 하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저녁을 먹고 나서 부부를 불러 아이들 이름이 무었이냐고 물었더니 집에서 부르는 이름하고 등록된 이름하고 달라 내일 정확하게 알려 준다고 이야길 합니다.
릴랄이 말을 합니다 목사님 이제 학교공사가 마무리되면 여러 많은 빌리지(마을) 아이들이 공부를 하러 올 것이라고 벌써 좋아하면서 이야길 합니다.
2011년 4월 6일(수)
생각보다 벽돌 쌓는 속도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오늘 작업이 끝나면 내일 작업이 어려워질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 자재 조달이 잘 되어야 하는데 자금도 부족이라지만 이곳은 지금 보리, 밀 추수 기간이라서 트렉터 벽돌 배달이 쉽지가 않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1m 높이로 교실과 교실 사이와 외부를 모두 쌓고 한칸 분량만 남아 있습니다.
어쩔 수 없이 내일은 휴무를 하기로 하였습니다.
한국에서 최형석 집사님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지붕을 샌드위치 판넬로 할 경우 얼마의 경비가 들어가는지 면적을 기준으로 하여 알려 주셨습니다.
205평형에 약 인건비 포함하여 3,500만원 정도가 들어갈 것이라고 합니다.
인도에서 사업을 하시는 박집사님의 이야기대로 후원에 관심을 주신 목사님이 지붕공사 대금을 지원해 주실것을 기대하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2011년 4월 7일(목)
오늘은 자재공금이 잘 안되어 휴무를 하지만 저는 이전과 같이 7시에 현장에 나가 어제 저녂에 세운 기둥의 철 판넬 볼트를 다 풀어 땅으로 내리고 판넬을 높이기 위하여 세워놓은 나무 기둥들도 해체를 하고 그리고 헤체된 기둥과 쌓아놓은 벽돌에 물을 주었습니다.
저 혼자 철판 판넬을 약 2.5m의 놓이에서 밑으로 내리기에는 정말로 힘에 부딪히는데 그래도 할 사람이 없으니까 하게되더군요.
몸에 무리는 가지만 염려가운데 그리고 무엇보다 하나님의 은혜안에서 힘 주시는 대로 감당하고 있습니다.
정말로 오늘은 좀 제가 쉬고 싶은 생각이 더 들어갈 정도 였지만 일하는 날보다 더 몸을 혹사시키는 것 같습니다.
아홉시가 넘어서 아제이와 교대를 하고 저는 집으로 와서 한국으로 팩스를 보낼 일이 있어 소 도시로 아닐과 함께 나갔습니다,
그런데 가는 곳마다 팩스가 안된다고 하고 인터넷을 좀 하자고 하여도 안된다고만 합니다.
할 수 없이 생필품을 몇가지 사가지고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벽돌을 어제 가져오기로한 공장에서 안가져와 오늘 다른 벽돌 공장을 다녀왔습니다.
전에 가져온 벽돌공장의 벽돌보다 질이 조금 낮은것 같이 보이기는 하여도 괜찮은것 같아 값을 흥정하였더니 전에 가져오던 공장은 벽돌은 마음에 들지만 값이 7,000루피인데 이곳에서는 6,200루피에 주겠다고 하여 싼 값이라지만 그래도 만족하게 여기고 내일 4트렉터를 가져오기로 하였습니다.
집으로 오는길에 아닐 전화기에 전화가 왔습니다.
인터넷을 체크할 사람이 집에 도착하였다는 것입니다.
5분만 기다리라고 하고 달려와 실험을 하였더니 가능한 방법을 찾았습니다.
인터넷을 한번 하려면 고락푸르까지 가야 하는데 한번 나가면 하루의 시간을 허비하여야 하고 너무 힘이들어 처음에는 돈이 들어가지만 집에서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니 처음에 3,000루피를 주고 매달 200루피를 주면 거의 필요한 만큼 사용할 수 있다고 하여 그렇게 하기로 하였습니다.
오늘 밤에 설치를 하기로 하였습니다.
가능하면 오늘밤부터 인터넷을 할 수 있을것 같습니다.
2011년 4월 8일(금)
어제 저녁에 인터넷 시험을 완결하지 못하 밤에 다시와서 마무리를 하겟다고 하던 사람이 안오고 오늘 아침에 현장에 나가 있는데 인터넷 설치 하는 사람이 왔다고 아닐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급히 집으로 와서 다시 실험을 하였는데 별로 신통치가 않아 없던 일로 하려다가 밤에는 좀 속도가 나온다고 하여 그럼 밤에 시험해 보고 결정하자고 하였습니다.
오늘 현장 일도 마찬가지 정말로 저의 몸을 몇으로 나누어야 일이 잘 돌아갈것 같은 이곳 사람들의 일하는 모습입니다.
그런대로 잘 협조들 하여 저의 마음에 쏙 드는 것은 아니지만 잘 되어가고 있습니다.
아마 우리 아버지도 저의 모습에서 얼마나 마음에 안드는 모습이 많을까요?
그래도 실타하지 않으시고 항상 기다려 주시고 참아주시고 지켜보아 주십니다.
현장에서 늦은시간 돌아와 서둘러 밥을 먹고 옥상에 가서 인터넷을 시도하여 보았습니다.
제가 쓰고있는 파란컴에서나마 1시간에여 시간에 메일 두 개를 열어볼 정도로 속도가 느립니다.
그나마 답장도 못하는 결과였습니다.
2011년 4월 9일(토)
어제밤 아닐집 식구를 부르는 소리가 밖에서 들렸습니다.
아닐 식구중 누군가 나가 보겠지 하고 잠이 깬 상태에서 있었는데 시간이 흘러가도 나가보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함부로 문을 열어줄 수 없는 이곳의 모습이라 아닐 방문을 두드리며 깨워도 인기척이 없었습니다.
아닐 동생과 조카가 자는 방문을 두두려도 반응이 없었습니다.
저의 못소리를 들은 밖에 찾아온 사람이(고빈드) 목사님 하면서 불렀습니다.
누누냐고 물었더니 쌍감 아들이었습니다.
전기가 들어와 펌푸 모터를 돌려달라는 이웃집의 요청이었습니다.
요즘 너무 가물어 전기가 들어온 밤 시간에 모터를 돌려 물을 대기위해서 였습니다.
그렇게 잠이깬 후 몸은 몹시 피곤하지만 새벽 3시까지 잠을 이루지 못하였습니다.
아침에 일어났더니 아닐 식구들이 목사님이 모터를 돌려 주었느냐고 이야기 합니다.
아닐이 말을 합니다.
머리가 없는 사람들이라고, 전화를 하였으면 머리맏에 있어서 벨 소리를 듣고 열어주거나 펌프모터 전기를 올려 주었을 텐데 하면서 말을 합니다.
어제 밤에 실험한 인터넷을 그대로 사용할것이가 고민을 하다가 그래도 고락푸르로 나갈 시간이 너무 없어 돈이 아깝지만 그래도 사용하기로 하였습니다.
오늘 다시 시도를 해 보아야 하겠는데 정말 불편 하여도 어쩔 도리가 없는 실정입니다.
어제밤 잠을 설치는 바람에 오늘은 얼마나 힘들던지 낮에 점심 먹으러 왔다가 아제이에게 자재를 좀 싣고 오라고 하고 잠시 눈을 부쳤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피곤이 덜 합니다.
현장에 있을때 인도에서 사업을 하시는 박 집사님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다음주에 두바이를 다녀오게 되었다고 합니다.
철강 사업을 하게 되었는데 잘 되도록 기도부탁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학교건축을 하는데 필요한 후원을 위하여 항상 마음을 담고 있습니다.
이렇게 인도에 와서 사업을 하는 사람들이 말하길 내가 인도에 와서 돈을 벌어 무엇에 사용 하겠습니까?
선교를 해야지요 라고 말은 잘 하는데 실제로 후원을 한분은 이 박집사님 뿐입니다.
현재 나갈랜드에 두 학생 학비 지원하고 계십니다.
2011년 4월 10일(주일)
오늘은 주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장 작업은 쉴 수 없는 환경이라 무거운 마음안고 오늘도 현장에 있었습니다.
학교 건축이 완성 되기 까지는 어쩔 수 없는 환경에 저의 행동을 변명할 수 없습니다.
현재 작업 속도라면 자재 공급만 잘 될 수 있기만 하면 건축완성이 앞당겨질 것 같습니다.
2099년도 11월에 파놓은 펌프가 얼마나 유용하게 사용되는지 너무 너무 감사하게 사용하고 있습니다.
작은 발전기도 너무 잘 사용하고 있습니다.
하루종일 발전기를 돌리고 물을 퍼내도 물 부족함 없이 공사에 지장 없이 잘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벽돌 쌓는 범위가 넓어질 수록 물을 더 많이 사용하게 되는데 그게 좀 염려스러운 모습입니다.
지금은 시멘트 비비는데 사용하는 물도 모터 펌프를 이용하고 벽돌쌓은 곳에도 물을 듬뿍 주어야 단단하게 굳어 튼튼한 건물이 될 수 있는데 지하수 물은 풍부한데 모터로 끌어 올리는 공급이 딸리는 상태가 되었습니다.
아닐이 저녁에 하는 말이 모터 펌프가 크면 물이 더 잘 나올 수있다고 이야길 합니다.
저는 펌프를 하나 더 팔까 생각도 했는데 좀 더 비교해 보고 결정을 하여야 할 것 같습니다.
오늘부로 교실 창문과 복도에서 들어가는 출입쪽 벽면을 제외하고 중간 칸칸의 벽 높이를 2m높이로 모두 쌓았습니다.
그리고 복도에서 교실로 들어가는 출입쪽 벽면을 한칸 쌓기 시작 하였습니다.
내일부터 바깥쪽 벽면 창문이 들어가는 면에 벽돌을 쌓을 것이고 기둥을 높인 곳부터 천정 높이로 벽돌을 쌓아 나갈 것입니다.
그리고 학교 진입로 다리 양 옆으로 벽돌을 쌓아 날개를 만들기 시작 하였습니다.
옆으로 흙이 흘러내려가지 않도록 하기 위함도 되고 다리 난간이 없기 때문에 난간도 만들기 시작 하였습니다.
내일이면 다리 보완 공사는 마무리 될 것 같습니다.
시멘트를 100포대 사서 쓰는데 이제 얼마 남지않아 내일 다시 100포대 더 가져올 생각입니다.
바닥 공사를 제외하고 앞으로 200포대가 들어갈 것이라고 합니다.
지금 사용하는 것은 용량이 얼마 되지않는 것이어서 전기를 어느정도 사용하기 위하여 큰 발전기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전체 교실 8개와 복도 그리고 지금은 슬라브를 안하고 지붕으로 만들었다가 기회가 되면 2층으로 올리기 위하여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을 구성해 놓고 있는데 그곳까지 포함하면 전체 복도와 외곽을 밝히는 등불 그리고 교실들 발전기 용량이 얼마나 되어야 할지는 아직 알아보지 못하여 무릅니다.
이것 저것 알아보아야 할 것이 너무 많습니다.
아버지 현지 사역을 할 동역자를 보내 주세요.
그제 있었던 일을 오늘 말씀드립니다.
들에서 일하던 아이들이 저희 공사현장으로 물을 먹으러 왔습니다.
제 눈에 한 아이의 발에 헝겊을 찢어 맨 다리가 보였습니다.
오라고 손짓을 하여 현장에 가져다 놓은 의약품 상자를 열어 상처부위를 소독하고 요오드약을 바르고 마데카솔을 바른뒤 반창고를 붇혀 주었습니다.
그랬더니 어제 이곳에서 음식을 만들어 먹는 식품을 가져 왔습니다.
나를 주는 것이냐고 하였더니 그렇다네요.
그런데 일을 끝내고 보니 어느 일군이 가져 갔는지 보이질 않았습니다.
정말로 옛날 저희 어릴적 자랄때의 풍경과 같습니다.
연일 방안 온도가 31도를 변하지 않습니다.
부엌이 별도로 있는것도 아니고 그런 온도에 방에서 밥을 하고 먹으려니 평범하지는 못합니다.
그래도 잘때는 천정에 달린 선풍기를 틀어놓고 머리맏 창문을 열어놓고 자다가 새벽녘에는 이불을 덮을 정도로 추위를 저만 느끼고 살고 있습니다.
제 몸이 이들과 비교할 때 정상이 아닌지 이들은 선풍기를 최대로 틀고 밤새 잠을 잡니다.
저는 제일 약하게 틀고 자고요.
2011년 4월 11일(월)
몇일전 공사비가 모자라 한국에서 돈을 부치라고한 돈이 오늘 확인하니 와 있었습니다.
오백만원을 부쳤는데 환전을 하고 그러니까 이곳 돈으로 2락이 조금 못되게 도착을 하였습니다.
절반을 찾아 우선 가져온 벽돌값을 지불하고 오늘 가져온 시멘트 100포대 값을 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중간 임금도 주어야 하고요.
일하는 일군들이 많다보니 이제 하루 간식비도 적지않게 느껴지는군요.
말은 못하지만 별도로 간식 값을 후원해 달라고 부탁을 드려야 하겠습니다.
이제 저의 손금이 다 달아버렸습니다.
오늘 일군 하나가 말도 없이 나오질 않아서 그 몫을 채우려니 너무 힘이듭니다.
내일은 나오겠지요.
지나가다 일을 할 수 있느냐는 사람이 있어 내일부터 나오라고 하였던 사람들이 있었는데 말만하고 나오지를 않더군요.
아닐이 자녁에 들어와 말을 합합니다.
내일 두 사람이 밭에 곡식을 추수해야 하기 때문이 나오지 못한다고 합니다.
들판이 지금 누렇게 익은 밀 곡식들이 있는데 한창 추수시기라 이곳 저곳 베느라 정신들이 없습니다.
온 집안 식구들 어린 아이들 까지 나와 일손을 돕는 모습입니다.
아주 어린 아이인데도 물통을 들고와서 물을 길어가는 모습이 안쓰럽습니다.
부끄러운 고백거리가 있습니다.
이곳 아이들을 보니까 저의 어린 시절 모습이 생각 납니다.
제가 초등학교, 지금은 초등학교지요.
초등학교 다닐때 한여름 어느날 형님이 일을하다가 너무 더우니까 제 친구의 집 근처에 아주 시원한 샘물이 나오는 곳이 잇는데 그곳에 가서 한 주전자 떠오라는 것이었습니다.
한마디로 제가 어렸을 때 그 거리가 만만치 않았고 너무 무거웠습니다.
물을 떠오라니 떠와냐 되는데 너무 힘이드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가다가 냇물이 흐르는 곳이 있었는데 샘물까지 안가고 흐르는 냇물을 떠다가 준적이 있습니다.
나중에 동네 형님이 그 모습을 보았었던지 형님에게 일러바친 일이 있었습니다.
형님에게 혼을 나지는 않았었지만 이곳 아이들을 보니 그 때의 일이 생각 납니다.
2011년 4월 12일(화)
전에도 여러차례 말씀 드린바가 되지만 또 언급하게 되는 말씀을 드려 죄송합니다.
이곳에는 전기가 하루에 두 번 들어옵니다.
아침11시경에 들어왔다가 어떤 때에는 서너시간 들어오고 요즘은 한시간 들어왔다가 나갑니다.
밤에는 전에는 11시에 들어왔었는데 지금은 10시에 들어왔다가 새벽 4시경 나갑니다.
그래서 전기 들어오는시간에 집안 식구들이 일어나 어제 밤에 먹은 음식식기들을 덜그럭대면서 설거지를 합니다.
조용히 설거지만 하면 좋을 텐데 왜 그리 말들이 많은지 말이 많은것이 나쁜 것은 아닌데 제가 잠자는 시간에 방해가 되니 너무 피곤합니다.
그런대로 참고 지나갔는데 오늘은 텔레비전을 그 시간에 너무 크게 틍어놓아 참지못하고 나가서 소리좀 줄이라고 말을 하였습니다.
다시들어와 잠을 잤지만 설잠을 잤습니다.
아침에 일어나 나가 씼고 있는데 릴랄이 목사님 미안합니다. 라고 먼저 말을 합니다.
설친 잠에 신경이 예민해졌는지 오늘 현장에서 일할 때 인부들에게 좋은 이미지를 주지를 못한것 같습니다.
간식을 나누어 주는데 한 사람이 전에도 불만을 말하더니 오늘도 되풀이하는 것입니다.
그럼 먹지 말라고 하고 다른 사람들 에게만 주었습니다.
일을 끝내고 그 사람에게 불만이 있어도 고맙다고 받아가지고 집에 있는 아이들에게 가져다 주면 되지 그러냐고 하였더니 말을 잘 알아 들었는지 못 알아 들었는지 내일 일을 안나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일이 아니라 이제부터 나오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제가 제일 실어하는 말이 목사도 사람인지라 라는 말을 하면서 잘목한 것에 대하여 합리화 시키는 것인데 제가 오늘은 이 말을 써 먹게되어 부끄럽기 짝이 없고 하나님 앞에 죄를 범한 것 같습니다.
아버지도 저의 심정을 좀 잘 다스려 주시지라는 투정도 부려 봅니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을 주심은 아버지의 어떠한 뜻이 분명 있으리라 생각 합니다.
어제는 벽돌 공장 사장이 직접 와서 돈을 받아갔습니다.
다른 벽돌 공장에서 6800루피를 주고 한 트렉터분 2,000개를 사다 썼는데 처음의 말과 달리 질이 나쁜 벽돌을 가져다 주고 약속도 너무 지키지를 않아 다른 벽돌 공장을 찾아갔더니 그곳에서는 200루피가 더 많은 7,000루피의 값을 부르는데 벽돌 질이 참으로 좋았습니다.
그래서 조금 더 비싸지만 그곳 벽돌을 주문하여 썼는데 그곳도 역시 처음하고 달리 약속을 너무 지키지를 않아 할 수 없이 또 다른 곳을 찾아보았습니다.
세 번째로 찾은 벽돌 공장의 벽돌은 다른곳보다 질은 조금 떨어지는 듯 하였는데 모양이 잘 나왔습니다.
그런데 이곳 사람들은 질이 좋아보이는 벽돌 이지만 집을 지어 놓으면 좋지가 않다고 말을 합니다.
그래서서 값을 흥정하다보니 6,200루피에 주겠다고 합니다.
우선 4트렉터분의 돈을 주고 주문을 하고 왔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부터는 돈을 주지 않았는데도 알아서 우리 현장에서 일하는 속도에 맞추어 벽돌을 실어다 주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4트렉터분을 더 가져왔습니다.
돈은 한국에서 오는대로 주겠다고 했습니다.
마침 한국에서 보내온 돈이 도착하여 어제 찾아왔는데 어제 오후에 현장으로 돈을 받으러 왔습니다.
그런데 4번째 트렉터에 실은 벽돌의 질이 정말 안좋은 것이 석여 있었습니다.
그것을 보여 주었더니 바꾸어 주겠다고 합니다.
현장 사무실로 안내를 하여 앉아서 다시 값을 흥정 하였습니다.
이왕 가져온 것을 바꾸기도 서로 힘든데 앞으로 한 트렉터분의 값을 6,000루피에 맞추어 주라고 하였더니 아닐하고 한참을 이야기하다가 안된다고 말을 합니다.
그렇게 싸게 판적이 없다고 말을 합니다.
그래도 한번 더 이야기를 하였더니 자기들이 미찌는 장사지만 주겠다고 합니다.
그래서 앞으로 나쁜 벽돌은 안가져 오기로 하고 한 트렉터분에 6,000루피를 주고 쓰게 되었습니다.
제가 생각을 하여도 참으로 싸게 쓰는것입니다.
2011년 4월 15일(금)
피곤하여서 그런지 정신도 없는것 같습니다.
매일 매일 근황을 쓰다가 이틀을 건너뛰었습니다.
이제 점점 일을 끝내고 들어오면 물을 길어다가 씻는것도 귀찮아지고 먹는것도 힘이들고 그냥 자고 싶어집니다.
그러나 누가 밥을 해주는 것도 아니고 제 몸 건강을 위하여서도 모래알 씹는 느낌이어도 물과 함께 넘겨야 합니다.
거기다가 빨래도 해야하고 반찬을 만들어야 하고 정말로 반찬 이라도 만들 수 있어 너무 감사 합니다.
인도에 와서 뉴델리에 한주간 있을 때를 제외하고 고기 반찬은 입에도 대지를 못하였습니다.
먹고 싶은 마음은 안들지만 한국에 있을 때 너무 만찬이 아니었나 싶은 생각이 듭니다.
아내와 통화를 하다보면 닭이라도 하나 사다가 삶아 먹으라고 늘 이야기를 합니다.
사실 한국에서 인삼 뿌리 두 개를 아내가 넣어 주었거든요^*^.
저도 한번 해 먹어야지 하면서도 사실 시간이 없습니다.
일주일에 월요일과 금요일 두 번 장이 서는데 그날을 알면서도 현장에서 일을 하다보면 틈이나질 않습니다.
마른 무 말랭이를 가져와서 물에 담갔다가 무침도 해먹고 있습니다.
오늘은 아내가 넣어준 것이 무었인지 몰랐다가 어제 통화를 하면서 내용을 알아 된장국을 끓였습니다.
마른 두부도 있고 마른 고기라고 하는데 무슨 고기인지는 모르겠습니다.
아닐 집에 있는 감자와 마늘 그리고 시장에서 사온 양파와 파 그리고 오이 당근 담그는 법은 잘 모르지만 아내가 해준 맛과 전혀 비교는 할 수 없지만 그래도 고향, 고국을 생각을 하면서 먹을 수 있어 너무 감사합니다.
참으로 감사한것은 또한가지 냉장고를 샀는데 처음 몇날은 전기가 낮에도 세 네시간 들어오고 밤에는 그래도 네 다섯시간 들어와 냉장고 얼음이 꽁꽁 얼 정도로 좋았습니다.
꽁꽁얼린 펫트병의 물을 수건에 감싸서 현장에 가져가면 서서히 녹으면서 아침에 두병 오후에 두병의 물을 먹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요즘엔 낮에는 한시간 들어왔다가 나가고 밤에도 거센 바람이나 비가 오면 안오는 날도 있습니다.
오늘은 금요일 장이서는 날이라 아닐이 집에 먹을 찬거리를 사왔다고 하면서 잎이달린 무 다섯 개와 토마토 그리고 양배추 당근을 제 방에다 가져다 놓았습니다.
냉장고에 양배추와 당근은 남아 있어서 아닐 집에 다시주고 토마토는 씻어서 먹고 무는 김치를 담으려고 지금 소금에 절여 놓았습니다.
내일은 일군들 일을 시켜놓고 나무 시장엘 다녀오기로 하였습니다.
지난 7월에 와서 심고 갔던 나무중 많이 죽어기에 죽은 자리에 다시 사다가 심으려고 합니다.
지난 3월 14일에 나무들 마다 키를 재어 적어 놓았었습니다.
오늘 생각이 나서 그간 산 나무에 물도 주고 북도 올려주고 정성을 다해 가꾸어 자를 들고 다니면서 하나 하나 재어 보았더니 어떤 나무는 30cm 이상 자란 나무도 있습니다.
너무 작은 나무들을 사다가 심었기에 이번에는 돈이좀 들더라도 좋은 나무들을 사다가 심을 생각입니다.
2011년 4월 17일 (주일)
피곤하다는 핑계로 어제의 일과도 올려드리지 못했습니다.
어제 아침 일군들에게 현장 일을 지시하고 나무시장엘 다녀왔습니다.
한시간여 거리를 오토바이를 타고 다녀 왔습니다.
나무 시장이라고 생각외로 너무 작아 여러 종류도 없었고 눈에 들어오는것은 망고나무와 코코넛나무 였는데 코코넛나무는 키우기가 너무 까다롭다고 설명을 합니다.
땅 조건이 맞지를 않아 다음에 조건을 만든 다음 사오기로 하였습니다.
망고나무 몇 그루와 자문이라는 나무인데 자라면 큰 나무가 되고 그늘을 크게 만든다고 합니다.
나무상자를 근처 시장에 가서 돌아다니면서 구해다가(10루피) 열다석 그루의 나무를 담아 오토바이 뒤에 타고 나무상자를 안고 집까지 달려 오는데 정말로 이런 일은 이제 오토릭샤를 부르던지 해야지 하면서도 돈을 아끼려다보니 힘들게 싣고 왔습니다.
점심을 먹고 학교건축 현장에 나가보니 참으로 일군들을 감시하지 않으니까 눈에 띠게 작업 진행속도가 없었음이 확연히 나타납니다.
지시한 대로 말도 듣지를 않고요.
이런 모습을 보면서 현장에 함께하는 선교사가 정말로 필요한 것을 또한 느낍니다.
아버지 언제나 동역자를 보내 주실 건가요?
서들러 사온 나무를 심었는데 일이 끝나는 시간에 다 심지 못할 것 같아 서둘러 재촉을 하고 저는 한편에서 나무에 물을 주면서 나무시장에서 사온 거름과 약을 섞어 주고 사온 나무를 몇 그루 심을때까지 옆에서 지시한것 외에는 다시 심어야할 정도로 눈가림으로 심어놓고 갔습니다.
이렇게 눈의로 보고 감시를 하지 않으면 일한 모양이 다르답니다.
내일 다시 심어야 할 것 같습니다.
2011년 18일(월)
나무를 심다보니 나무 특징을 몰라 심는 간격을 잘못 심어 다시 심기위하여 옮겨 심으라고 시켰습니다.
심었던 나무를 캐내어 옮기라고 하고 다른 곳 인부들 일을 돌아보고 와서 살펴 보는데 이상하게 캐낸 나무에 젖은 흙을 뭉쳐 붙이는 모습이 수상하였습니다.
젖은 흙을 걷어내고 살펴보니 이미 나무는 두동강이로 부러져 있었습니다.
나무를 캐다가 실수로 부러트렸으면 부러졌다고 보여주며 이야기를 하면 될것을 그것을 숨기려고 눈가림을 하였던 것입니다.
얼마나 화가 나던지 이 못된놈의 자식이라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이 말이 무슨 말인지는 몰랐겠지만 혼나는 줄은 알았을 것입니다.
나무를 옮겨심는 것을 중단하고 다른일을 시키고나서 생각을 해보니 제가 큰 욕을 한 것 같습니다.
못된 놈의 자식이라고 말했으니 그의 아버지를 못된 사람으로 순식간에 만들어 버린것입니다.
그 아들이 잘못한 것을 아무런 상관이 없는 그의 아버지를 끌어다가 못됬다는 것을 넘어서 놈이라고 까지 하였으니 저의 말 한 마디는 아무런 생각 없이 순식간에 뱃어진 말이지만 이 말 한 마디를 통하여 그의 아버지까지 못되다 못해 놈이라고 하고 그의 자식이라고 하였으니 이 생각에 나의 잘못으로 인하여 우리 아버지 하나님을 욕되게 한 일이 얼마나 있었을까 돌이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이 말 한 마디로 저 하나의 잘 못된 모습이 곧 우리 하나님 아버지께 욕을 돌리게 되는것을 깊이 더 깨닫게 되었습니다.
성경에 라가라 하는 말을 하는자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 하였는데 혹 이 말 한마디가 용서받지 못하는 욕이라고 생각한다면 이러한 욕의 말은 입에도 담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2011년 4월 20일(수)
어제 하루를 또 건너 뛰었습니다.
점점 게을러지는 느낌을 드리는것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한국에 돌아가서 인사를 드리기 까지 이러한 모습이 자주 있을 것 같습니다.
이런 말씀은 드리지 말아야 하는데 배부른 투정인지도 모릅니다.
이 인도 땅에서도 마찬가지 저 아프리카에서도 마찬가지 아니 한국에서도 먹을 것이 없어 굶주리는 사람에 비하면 저는 끼니 거르지 않고 그나마 배부르게 먹고 있다지만 밥을 해놓으면 정말로 훅 불면 날라가는 쌀입니다.
인도 사람들도 쌀만 먹으면 영양가가 없어 로띠를 만들어 함께 먹는다고 합니다.
한달을 넘게 쌀만 먹다 보니 적응이 됐나 싶어도 힘이 점점 없어지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오늘 아닐 부인에게 닭 이야기를 했더니 아닐 동생 아제이보고 금요일에 서니까 그때 사다가 먹으라고 합니다.
닭을 사다가 먹는 것을 생각 못해서가 아니라 현장 일을 하다보니 시간이 없었습니다.
이번 금요일엔 꼭 사다가 먹으렵니다.
한국에서 무엇 무엇 먹고싶다 하면 척척 만들어준 아내의 손길이 너무 너무 그립습니다.
지금도 현장에서 지쳐 들어와 바로 눞고 싶지만 새워하고 쌀 씻어 밥 안쳐놓고 이 글을 올리고 있습니다.
현재 학교 건축 진행 상황은 한 교실 복도 바깟쪽 한면과 안쪽을 제외하고 건축 면적 둘레 모두 돌아가면서 창문 올릴 높이로 벽돌을 모두 쌓고 교실 칸칸이 구별하는 면은 한교실을 제외하고 모두 천정 높이로 쌓았습니다.
다음주 부터는 창문 위 높이부터 벽돌을 쌓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버지께서 예정하신 일이라면 이미 지난번 말씀을 드렸던 것 처럼 샌드위치 판넬과 A트러스 C체널만 후원해 주시면 제가 들어가기 전에 지붕까지 완성하고 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기도 많이 해주세요.
우리 주님 부활하신 부활 주일이 돌아 오는군요.
이번 주간이 고난 주간인데 닭 이야기를 드려 죄송합니다.
밥이 다 되었습니다.
이제 뜸만 들여 먹으면 됩니다.
또 배부른 소리 합니다. 먹기 실어도 먹어야 살 수 있으니까 먹어야지요.
그리고 내일을 위해 누워야겠습니다.
2011년 4월 22일(금)
오늘 공사현장 모든 기둥 높이기를 마쳤습니다.
총 11ft(3.35m) 높이로 올렸습니다.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2층 슬라브지붕으로 예정하신 하나님의 계획이 있으시면 허락하시는대로 보를 올리게 되는데 보의 높이가 50cm 더 높아지니까 총 12ft(3.65m)의 높이가 되는 것입니다.
인도는 덮기 때문에 천정을 높게 만듭니다.
정오가 좀 못되어 아닐과 말란파르 소 도시를 다녀 왔습니다.
창문 위 벽돌을 쌓기 전에 철근을 올려 벽돌 내림을 방지하기 위하여 기둥을 만드는 것 처럼 뉘어서 시멘트 타설을 하기 위하여 철근을 보러 나갔습니다.
그런데 지난해 철근 값보다 너무 값이 올라 있었습니다.
작년에는 철근 100kg에 32,500루피 였는데 이번에는 100kg에 4,100루피입니다.
깍고 깍아서 3,900루피에 흥정을 하고 돈은 내일이든 모래든 주겠다고 하고 오늘 저녁에 싣고 왔습니다.
기둥 높이기를 하기 위하여 발판을 만들기 위한 나무 기둥을 30개 빌려 왔는데 오늘 마지막 기둥 높이기를 다하고 철판 판넬은 내일 해체를 하지만 이전에 쌓아놓은 교실 칸 벽돌이 있기 때문에 그위에 올라가서 작업이 가능하여 모두 모아 돌려 주었습니다.
28일간 빌리는데 1200루피를 주었습니다.
아닐이 저녁에 현장으로 와서 저와 교대를 하고 아제이와 라나가 야간 경비를 서기 위하아여 나오는 시간까지 아닐이 현장을 지킵니다.
아닐이 오더니 목사님 벌드(새)하고 비슷한건데 인도에서 자기들은 처음 보는 것이라고 하면서 목사님 방에 잡아다 놓았으니까 보고 사진 찍고 밖에 보내주라고 말을 합니다.
아제이보고 오늘 말란파르에 가서 닭 고기 1kg을 사오라고 했는데 어서 가서 요리해서 먹으라고 하여 부랴부랴 집에와서 닭도리탕을 나름 만들면서 잡아놓은것이 무엇인가 조심 열어보니 큰 여치 였습니다.
저녁을 닭도리탕 하나에 낮에 지은 찬밥에 배도 부르고 기분도 좋고 행복하게 먹고나서 오이를 작게 잘라 주었더니 날아가지도 않고 지금 한 시간여 동안 조금씩 갈아먹고 있습니다.
오이 냄새를 맏고 왔는지 어디선가 노린내나는 날벌레가 한 마리 날아와 함께 먹고 있네요.
지금 한국 시간은 2시 10분이 되었습니다.
이곳 인도 시간은 10시 40분 이랍니다.
이제 저는 주님 품에 이 한밤도 포근히 휴식을 하렵니다.
오늘 닭도리탕이 너무 맛이 있었습니다.
인도 이곳 현장에 와서 처음으로 고기를 먹었습니다.
2011년 4월 25일(월)
오늘은 현장에 있는 평상에 몇 차례 누워 있었습니다.
제가 너무 지친것 같습니다.
이제 바지를 입으면 헐렁합니다.
오늘은 하늘에 구름이 많아 햇빛을 가려 주었지만 두어차례 빗방울을 흩뿌리고 지나갔습니다.
일하는데 지장은 없었습니다.
하루 일이 끝나고 일군들은 모두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아닐이 집에 있을 때에는 해가 떨어지면 먼저 현장에 나와 저와 교대를 해 주었고 늦은 저녁식사들을 하고 야간 경비를 서는 라나가 나오면 집으로 오면 아제이가 나가 라나와 함께 밤을 현장에서 자면서 지킴니다.
그런데 어제 아닐이 방콕을 갔습니다.
아닐 동생 안젤리 결혼식이 5월 14일인데 혼수품중 귀거리 목거리 반지 등을 사러 갔습니다.
인도보다 방콕이 싸고 좋다고 하여 갔습니다.
아닐이 없어 제가 늦은 저녁 시간까지 현장에 남아 있다가 라나가 나오면 집으로 와야 하는데 갑자기 어두워지더니 돌풍(사막의 모래 폭풍과 같음)이 불면서 온 들판의 흙먼지를 이르켜 눈을 뜰 수 없고 숨을 쉴 수가 없었습니다.
마침 주머니에 일회용 마스크를 넣어 놓은 것이 있어 착용을 하였는데 효과가 없었습니다.
가방에 수건이 있어 그 위에 수건으로 가리고 동여 매었더니 안전하였습니다.
계속되는 돌풍과 천둥 번개까지 치고 조금 있으니 굵은 빗방울이 덜어지기 시작하더니 온 천지가 암흙이되었습니다.
해가 져서 어두워 지기도 하였지만 서쪽 해넘어가는 곳은 붉은 빛을 띠면서도 비가 내렸습니다.
현장에는 시멘트도 있고 발전기도 있어서 비를 가리느라 혼자서 당황하면 안되 천천히 입에 말을 담으면서 손 전등 불빛으로 밝히고 가리고 덮고 동여매고 난리가 났습니다.
한참 후 비가 주춤 그친 시간에 아제이가 나와 교대를 하였습니다.
비에 젖은 옷에 집에오니 추웠지만 흙 먼지를 뒤집어 썼기에 샤워를 하고 따뜻한 우유(버팔로우유)한잔에 몸을 따스히하고 저녁을 먹었습니다.
오늘부로 학교교실 모든 칸을 천정 높이로 쌓았습니다.
몇 칸의 창문있는 복도와 교실 안쪽과 바깥쪽을 쌓고 창문틀 위 철근을 올려 콘크리트를 하고 나머지 벽돌을 쌓으면 지붕 빼고 모두 완성이 됩니다.
일을 해 나갈 수록 해야 할 일들이 너무 많습니다.
이제 쇠창살로 바깥 창문틀을 만들어야 하고 안쪽으로 프라스틱 창호를 넣어야 하고 앞 뒤 출입문을 달아야 하고 교실 끝 부분에 큰 출입문이 필요하고 정문도 필요한 상태입니다.
모든 것이 한번에 다 지어질 수는 없는 것이고 채워 주시는 만큼씩 만들어 간다고 말씀 드린것 같이 계속 일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자재가 부족하지 않도록 기도 많이 해주세요.
2011년 4월 27일(수)
건축 현장 사무실에 식구들이 늘었습니다.
그제 강아ㄱ지 두 마리가 들어왔고 오늘은 병아리 세 마리가 들어왔습니다.
강아지는 주인이 없는 것이라서 제가 키우기로 하였고 오늘 들어온 병아리는 시장에서 사온 것이라서 도을 주기로 하였습니다.
오늘 병아리 세 마리가 들어왔지만 내일 일곱 마리를 더 사온다고 합니다.
병아리 한 마리에 5루피 라고 하니까 50루피가 되겠습니다.
그제 들어온 강아지 두 마리에게 이름을 지어 주었습니다.
검은색에 다리에 반점이 있는 숫컷에게는 아롱이라고 지어 주었고 누런색갈에 반점이 있는 강아지에게는 다롱이라고 지어 주었습니다.
지난해 와서 기초 시멘트 타설시 사용 하였던 판자를 이용하여 집을 지어 주었고 병아리는 모래를 치려고 사왔던 철망이라고 하나요? 이 철망으로 간이 집을 만들어 지난번 나무를 사올때 구입했던 나무상자로 잠자리 집을만들어 주었습니다.
병아리들이 사람이 옆에 없으면 삐약거리고 무서움을 타는것 같습니다.
제가 보이는 곳으로 가면 안전함을 느끼는지 조용히 먹이를 찾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두 강아지가 이 병아리에게 눈독을 들이고 있습니다.
철망으로 집을 만들어 그 안에 있기 때문에 안전은 하지만 이 두 놈들이 저 안에 있는 병아리들을 어떻게 잡아먹지 하는 모습으로 밖에서 쳐다보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현장에서 인부들과 목소리 높이고 씨름만 하던 제게 새 식구들이 들어와 하나님께서 저에게도 정서를 바꾸어 주셨습니다.
2011년 4월 29일(금)
연일 너무 무리를 하였는가? 오늘 저녁은 제 몸이 너무 지쳤습니다.
햇수로는 재작년에 가져다놓은 링거가 하나 남았는데 그거라도 맞아야 되지 않을까 생각이 됩니다.
이곳에서 먹는 양은 한국에서 먹는 양보다 세배나 더 먹는데 살은 쪽 빠져 한국에서 올때 바지 혁띠를 안해도 내려가지 않던 모습에서 이제는 헐렁해졌습니다.
내일 오전이면 창문 위 높이로 벽돌을 다 쌓습니다.
그리고 그 위에 철근을 올리고 콘크리트를 타설하고 굳으면 그 위로 또 천정 높이로 벽돌을 쌓으면 벽돌 쌓기가 마무리 되는 것입니다.
이쯤이면 지붕을 올리는 자재가 확보 되어야 하는데 어떻게 이루어 나가실 것인지 아버지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또 기대하고 기도하면서 기다립니다.
내일이 말일인데 계획대로라면 내일 고락푸르 도시로 나가서 메일로 오월 소식지에 올려드릴 말씀을 보내야 하는데 공사 및 이곳 환경상 내일은 못 가고 다음 월요일이나 화요일에나 나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오늘 다른 날보다 그렇게 더 덮지는 않은 것 같은데 더위를 먹었는가? 구토 증상이 납니다.
저녁은 먹지 못할 것 같습니다.
한국에서 보낸 택배가 오늘 도착 하였다고 연락이 왔습니다.
한국 같으면 집까지 배달을 해 주는데 이곳에선 연락이 오면 찾으러 가야 합니다.
법대로 라면 집까지 배달을 해 주어냐 되는데 시골이라고 공무원들의 횡포가 심합니다.
배달 비용을 착복하는 것이지요.
택배 박스를 내어 주는데에도 까다롭다고 합니다.
차를 사주어야 한다고 아닐이 말을 하던데 아닐은 지금 방콕에 가 있어서 같이 가지 못하고 아제이랑 갈 것인데 찾을 수 있을런지 모르겠습니다.
2011년 5월 3일(화)
몇일동안 근황을 올리지 못하였습니다.
링거 주사를 한번 맞았더니 원기가 좀 회복된 듯 합니다.
못 얻어먹는 강아지 걸음처럼 비틀거리는 모습에 제 자신이 힘을 내야지 하면서 중심을 잡기도 합니다.
이렇게 이곳 환경에 적응을 해가는 것 같습니다.
지난 토요일 한국에서 온 택배를 찾기 위하여 아제이와 함께 우체국을 방문 하였습니다.
먼저 인근 마을에 있는 우체부의 사인을 받아가야 하기 때문에 우체부 집을 방문 하였는데 집에 없어 있는곳을 설명듣고 찾아가 보았는데 찾지를 못하고 다시 우체부 집으로 가는길에 길에서 만나 택배박스를 내어주라는 설명과 함께 사인을 받아 갔습니다.
토요일이라 서둘러 현장 일을 일군들에게 설명하고 갔는데 우체국에서 한 사람이 내용을 보더니 물품을 내어주는 직원이 자리에 없어 그 직원이 와야 한다는 것입니다.
세상에 이런일이 어디 있나 싶었습니다.
한 시간 두시간을 기다려도 오지를 않았습니다.
기다리다못해 다른 직원에게 부탁을 하였더니 내어줄 듯 싶더니 아닐이름으로 왔는데 아닐이 안왔다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하국은 그 집 식구가 찾아가든 받든 하면 되는 것을 이곳에서는 같은집 식구라도 허용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할 수 없이 허탕을 치고 돌아오고 말았습니다.
뉴델리에서 사업을 하는 박 집사님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오래간만에 한국 사람의 목소리를 들으니 반갑기 그지 없었습니다.
지난번에 한국의 어느 목사님께서 도와줄 수 있는것이 무엇이 있느냐고 물었던 물음에 샌드위치 판넬을 부탁했었는데 통화중 다시 물었더니 알아 보겠다고 합니다.
현재 건축 햔황을 말씀 드리자면 모든 교실 칸막이 벽돌과 교실 양편과 복도에 창문 넣을 자리의 높이로 벽돌을 쌓고 이제는 창문 위에 철근을 넣고 타설할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밤에는 한국에서 일했던 옴 가리 라는 친구가 이곳에서 약 한시간의 거리에 살고 있는데 조카의 결혼식이 있다고 초청을 하여 갔다가 왔습니다.
결혼식 하면 현재 한국의 결혼 풍속을 생각하면 안되고요.
인도 전통방식으로 먼저 신랑집에서 손님들을 초청하여 음식을 대접 합니다.
먼저 간단히 기름을 넣어 볶은 콩과 설명이 안되는데 설탕이 아주 많이 가미된것 두 개를 주고 물을 대접 합니다.
그리고 옆 텐트에 준비된 정식 식사 자리로 옮겨 식사를 합니다.
저는 벌써 입구에서 대접받은 것으로도 밥을 먹을 수 없어 밥은 사양하고 아제이가 먹기를 기다렸다가 다음날 일을 해야 하기 때문에 서둘러 돌아왔습니다.
어제 아닐이 방콕에서 돌아왔기 때문에 오늘 우체국에 가서 택배 박스를 찾아올 예정입니다.
2011년 5월4일(화)
아내의 사랑이 가득 담긴 택배 박스에 내용물들을 챙겨 어제 저녁부터 입맛을 돌리고 있습니다.
특히 찹쌀을 좀 보내라고 한 것이 참으로 다행입니다.
오늘은 건축 현장에 나가 하루의 일과를 지시하고 이곳 도시로 나와 인터넷을 통하여 이곳 소식을 올려 드리고 있습니다.
자세한 모습을 보여드리지 못함이 아쉽지만 기도로 사랑으로 늘 같이하여주심 감사합니다.
보고싶습니다.
사랑하고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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