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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김씨 삼현파조(派祖)와 김해김씨 삼주(三珠)
김해김씨 '판도판서공파(版圖判書公派) ' 또는 '판도판서휘관파(版圖判書諱管派)'는 평시 '삼현파(三賢派)'를 말한다. 김해김씨는 서기 42년 가락국을 세운 태조왕(김 수로 왕)이 시조(始祖)이시고, 중시조(中始祖)는 수로왕 13世이신 신라 흥무대왕 김유신(595∼673)이시다.
삼현파(三賢派)는 문정공 (文貞公) 정성(靖醒) 김관(金管)를 파조[中祖]로 하고 본관을 김해(金海)로 하는 제 후손(後孫)들이다. 정성 김관(金管)선생은 고려조 제23대 고종37(1250)년에 김해'어병마을'에서 태어나 17歲에 등과 고려조정에 출사하여, 벼슬이 판도판서(版圖判書)에 이르렀고, 제29대 충목왕 2(1345)년 수 96世로 세상을 떠날 때 까지 조정에 충성을 다하신 문인(文人)이다.
고려말엽부터 김해지역에서 중조[파조] 김관(1世: 1250∼1345)선생의 아들 김문숙(2世: 1293∼1348), 손자 김항(3世 : 1326∼1382), 증손 김서(4세)에 이르렀으나 증손[4世 김서(湑: 1342∼1420)]는 조선조에 경북 청도(淸道)로 이거(移居) 태종조에 의흥(義興)현감으로 도임(到任)하였고, 퇴임 후 청도(淸道) 계산(溪山)에서 금서(琴書)로 자오(自娛)하고 자손을 교화하며, 청도 입향조(入鄕祖)가 되었다.
김관 파조(派祖)의 증손 김서, 그의 아들 5世 현손(玄孫) 김극일(金克一)은 효행(孝行)으로 이름을 떨쳤다. 김극일(金克一)은 아들 여섯(건, 맹, 용, 순, 인, 현)을 두었고, 그 중 둘째 김맹(金孟)은 세종(世宗)때 문과(文科)에 올라 집의(執義)를 지냈다.
밤에 용마(龍馬)의 꿈을 꾸고 세 아들을 낳는데 이름을 김준손(金駿孫), 김기손(金驥孫), 김일손(金馹孫)이라 지었다. 이들 3형제(兄弟)가 모두 빼어나서 장자(長子) 준손(동창공)과 둘째 기손(매헌공)은 성종13(1482)년 알성과(謁聖科)에 기손 1위, 준손 2위로 나란히 장차원(壯次元)으로 등과(登科)하였다, 그 후에 셋째 일손(탁영공)은 정시(庭試)문과(文科)에 3年 연괴(連魁)하였다.
삼형제가 모두 중앙 관직에 나가 준손은 홍문관 교리요, 기손은 이조 좌랑이요, 일손은 춘추관 기사관이라 형제(兄弟)가 다 청선(淸選)의 직(職)에 있어 유명을 떨치니 그들 삼인(三人)을 김해김씨 삼주(三珠)라 하였다.
청도(淸道)를 주 세거지(世居地)로 하여 내리 4代(5世∼8世)를 거치면서 三선생 즉 5世 절효 김극일, 7世 탁영 김일손, 8世 삼족당 김대유를 삼현(三賢)이라 일컬어졌고, 그 외도 뛰어난 후손이 많이 배출되어 날로 번창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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