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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5월 16일, 화요일, Batumi, Hotel Tico
(오늘의 경비 US $41: 숙박료 40, 점심 5, 저녁 2.50, 식료품 8, 버스 18, 환율 US $1 = 1.8 lari)
조지아 개들은 덩치가 크고 순하다. 아침에 미니버스를 기다리는데 개 한 마리가 꼬리를 치며 천천히 다가오더니 쓰다듬어 달라고 내 앞에 들어 누어서 처다 본다. 좀 쓰다듬어 주었더니 좋아한다. 미국 딸네 집의 애견 골든 레트리버가 생각난다. 이곳 개들은 골든 레트리버 만큼 크고 성격도 비슷하다. 골든 레트리버는 아무나 좋다고 따르는 것이 흠인데 이곳 개들은 그렇지는 않다.
한 친구가 다가오더니 “파루스키 - 러시아어” 아느냐고 말을 붙인다. 못 한다고 하면 “잉글리시?” 하고 물어서 그렇다고 하면 실망해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한두 번 그런 질문을 받은 것이 아니다. 그렇게 묻는 사람들은 외국 여행객과 얘기를 하고 싶어서 그러는 것인데 왜 외국 여행객들은 러시아어를 못하는지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이다. 이 사람들에게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러시아어가 세계어였는데 이제는 아닌 것이 이해가 잘 안 되는 것이다. 시골 사람들일수록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다.
아침부터 술 냄새를 풍기는 사람들이 많다. 어제 저녁 식사 때 보드카를 물마시듯 마시던 숙소 주인 고차와 경찰관 생각이 난다. 그렇게 마시고도 아침에 제대로 일어날 수가 있을까? 아침 9시경인데 안 보이는 것을 보면 아직도 자고 있는 모양이다. 아침에 술 냄새를 풍기는 사람들은 밤새 술을 마셨거나 어제 밤에 못 마셔서 대신 아침 일찍 마신 사람들인가 보다. 미니버스 기사는 술 냄새를 풍기지 않으니 다행이다.
오늘은 기가 막히게 좋은 날씨다. 흰 구름이 약간 보이는 청명한 날씨다. 하늘을 보니 내가 좋아하는 색깔이 푸른색과 흰색이란 생각이 갑자기 난다. 옛날에는 하늘색 푸른색과 흰색 옷을 많이 입었는데 요새는 검은색이나 회색 계통 옷을 많이 입는다. 왜 그렇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다시 하늘색과 흰색으로 바꾸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예정대로 9시 반에 미니버스가 나타나서 타고 11시 15분경에 Akhaltsikhe 버스 정류장에 도착하니 11시 반에 떠나는 Batumi 행 미니버스가 기다리고 있었다. 시간이 별로 없어서 매표소에 가서 버스표를 사고 화장실에 잠깐 다녀오고 아침 겸 점심으로 기름에 튀긴 치즈 빵 하나 사서 버스에 올랐다. 앞자리가 다 차서 불편한 제일 뒷좌석에 탔다. 한 시간 정도 가서야 사람들이 좀 내려서 중간 자리로 옮길 수 있었다. 제일 뒷좌석은 요동이 너무 심하다.
생각했던 것과는 다른 길로 간다. 지도에 보면 Akhaltsikhe에서 Batumi로 직접 가는 길이 있는데 그 길로 갈 줄 알았더니 그 길로 안가고 Borjomi를 거쳐서 Tbilisi로 가는 길로 돌아서 간다. 거리가 거의 두 배는 되는 길인데 왜 가까운 길을 두고 먼 길로 돌아갈까 생각해보니 가까운 길은 도로 상태가 안 좋은 모양이다. 돌아가는 길은 도로 상태가 좋아서 쌩쌩 잘 달린다. 예정대로 오후 5시경에 Batumi에 도착했다. 어디에선가부터 풍경도 바뀌고 강물도 동쪽이 아니고 서쪽으로 흐른다. 지금까지는 강물이 동쪽으로 흘러서 Caspian Sea로 들어갔는데 이제는 서쪽으로 흘러서 Black Sea로 들어가는 모양이다.
Batumi에서 한 시간 정도 떨어진 곳에서 Black Sea의 파란 물이 보인다. 아, 지도에서만 보던 Black Sea, 즉 흑해를 직접 보고 있구나 하니 조금은 감개무량하게 느껴진다. 이번 여행에는 지도에서만 보던 Aral Sea, Caspian Sea, Black Sea를 보았다. 언젠가는 집에 앉아서 옛날에 찍은 사진을 들여다보면서 똑같은 생각을 할 것이다.
Batumi에 도착해서 숙소를 찾는데 좀 애를 먹었다. 우선 미니버스가 지도에 나온 곳이 아닌 다른 곳에서 서서 내려준다. 지도에 나온 정류장과는 별로 먼 곳은 아니었지만 지도에서 위치를 확인하느라고 좀 애를 먹었다. 외국 배낭 여행객들이 많이 묵는다는 Hotel Bebo에 걸어서 찾아가니 방은 있는데 샤워가 안 나온단다. 샤워가 안 나오는 것은 수건목욕을 하면 되는데 방이 너무 형편없다. 다른 곳을 알아보고 다시 오겠다고 하고 근처에 있는 Hotel Pyramid를 찾아가니 방이 다 차고 없단다. 다시 근처에 있는 Hotel Lotus에 찾아가니 호텔이 없어졌다. 결국 Hotel Tico에 2인용 큰 방에 좀 비싸지만 들었다.
내일은 바다 구경이나 하면서 쉬고 모래 국경을 넘어서 터키로 들어가야겠다. 벌써 터키라니 참 세월 잘 간다.
2006년 5월 17일, 수요일, Batumi, Hotel Tico
(오늘의 경비 US $27: 숙박료 40, 점심 3, 식료품 3, 입장료 1, 인터넷 1, 환율 US $1 = 1.8 lari)
실망스럽게도 오늘은 흐린 날씨다. 한때 비까지 내렸다. 어제는 청명한 날씨였는데 하루에 이렇게 날씨가 달라지다니. 그래도 아침에 해변을 산보했다. 바닷가에는 산책하는 사람들과 바다낚시를 하는 사람들이 많이 보였고 올 여름 여행 철 대비를 하는 듯 해변에 여러 가지 놀이시설 공사가 한창이다. Batumi는 미국 California의 Santa Barbara를 연상하게 하는 아주 아름다운 도시다. 산과 바다가 아주 잘 어울려져 있고 야자수들이 많이 보이는 아열대 풍경이다.
이곳에도 조그만 Stalin 기념관이 있다. Stalin이 20대었을 때 이 도시에 3개월 동안 살면서 노동운동을 했다. 아마 그가 신학교를 다니다 그만둔 직후가 아니었나 생각이 든다. 그때 묵던 조그만 집이 기념관이다. 친구 두 명과 함께 기거하던 방이 그 당시 모양 그대로 보존되어있고 그 옆방에는 Stalin의 일생을 그린 사진들이 걸려있었다. 그가 태어난 Gori에 있는 박물관과 마찬가지로 그의 정적이었던 Trotsky와 Khrushchev의 사진은 없다.
지금까지 본 네 나라, 카자흐스탄, 아제르바이잔, 조지아, 아르메니아의 사람들은 별로 건전하지 못한 삶을 사는 것 같다. 러시아와 구소련 나라들이 다 그런 모양인데 술을 너무 많이 마시고 담배를 너무 많이 피우고 체중관리를 전혀 안 하는 것 같다. 아침부터 술 냄새를 풍기는 사람들이 많고 담배는 줄담배다. 술과 담배 가게가 수없이 많고 담배광고 천지다. 세계 담배가 다 이 곳에 와있는 것 같다. 젊은 사람들이 배가 나온 사람들이 너무 많다. 여자들은 술과 담배를 거의 안 하는 것 같으나 체중관리는 남자나 마찬가지로 안 하는 것 같았다. 절제 없이 많이 먹고 운동 같은 것은 안 하는 것 같았다. 네 나라 중 근래에 역이민이 많다는 아르메니아가 좀 나은 편이다. 다음 갈 나라 터키도 마찬가지일까 모르겠다. 내 눈에는 구미 나라들에게는 적어도 30년은 뒤진 생활을 하는 것 같은데 그런 것을 알고 있는 것 같지 않았다.
내일은 조지아를 떠나서 터키로 들어간다. Erzurum까지 갈 생각인데 제대로 될지 모르겠다.
자갈밭의 Black Sea (흑해) 해변
Black Sea 해변 가의 낚시꾼들
어제와는 달리 흐린 날씨다
산과 바다가 잘 어우러진 Batumi는 아름다운 항구 도시다
Batumi는 아열대의 기후를 자랑한다
Noah의 방주를 상상하게 하는 배
이곳에도 Stalin 기념관이 있다, 이 집에 20대의 Stalin이 3개월 동안 살면서 노동운동을 했다
친구 두 명과 함께 머물었다는 방과 노동운동을 하던 청년 Stalin의 모습을 그린 그림
청년 Stalin은 어른 때와는 달리 제법 호감이 가는 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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