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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9월 13일, 화요일, Orchha, Hotel Rukmani
(오늘의 경비 US $8: 숙박료 100, 저녁 55, 식수 12, 20, 식품 25, 바나나 10, 릭샤 10, 오토바이 릭샤 20, 버스 100, 버스 팁 5, 환율 US $1 = 44 rupee)
아침 11시 15분 버스로 Orchha로 향했다. 숙소에서 버스정거장까지 가는 동안 한국 음식점이 여럿 보였는데 이름이 “전원일기”, “총각식당” 등 재미있다. 버스가 처음으로 만원이 아닌 상태에서 떠났다. 나중에 만원이 되긴 했지만 어제보다 편하게 갔다.
Orchha로 들어가는 길목까지 4시간 반이 걸렸다. 버스 안에는 외국 여행객이 나까지 5명 탔다. 오는 동안 경치는 어제와 마찬가지로 아름다웠다. 이 지역에는 논은 하나도 안 보이고 모두 밭뿐이다. 가축들도 많이 보였다. 개간해도 될 만한 버려진 땅들이 많이 보였는데 왜 개간을 안 했는지 모르겠다. 물이 부족해서 그런 것일까? 더 이상 개간할 필요가 없는 것일까? 이곳은 Hampi 근처와 비슷한 지형으로 갈색의 바위들이 많이 보인다. 간간히 나지막한 흙 돌산들도 보인다. 역시 인도는 큰 나라라 아직도 빈 땅이 많은 모양이다.
한 시간 반쯤 달리다가 어느 도시에서 잠깐 섰다. 재빨리 나가서 화장실을 찾아가서 소변을 해결했다. 버스 여행을 할 때는 소변 관리를 잘 해야 한다. 설사를 심하게 할 때는 버스 타는 것을 조심스럽게 해야 한다. 바나나를 사가지고 버스로 돌아와서 점심으로 먹었다. Ladakh에서는 바나나가 매우 비쌌는데 이곳은 아주 싸다. 10여개 붙은 바나나를 10 rupee에 샀다. 바나나는 좋은 음식이고 안심하고 먹어도 되기 때문에 자주 사먹는다.
오늘은 구름이 끼어서 시원하다. 오후 늦게는 햇빛이 나왔다. 오늘이 9월13일, 인도 더위도 한물 간 것 같기도 한데 잘 모르겠다. 조금씩 나아지고 있는 것은 틀림없다.
오늘 달린 길은 지금까지 버스로 달린 길 중에서 상태가 제일 좋은 것 같다. 근래에 건설된 도로 같다. Orchha로 들어가는 길 입구에서 버스에서 내려서 프랑스 커플과 오토바이 릭샤를 함께 타고 Orchha까지 들어왔다. 한 오토바이 릭샤에 3인 이상은 못 탄다고 해서 다른 외국 여행객 둘은 다른 오토바이 릭샤에 탔다. 오토바이 릭샤 크기가 7명도 탈 수 있는데 (뒤에 좌석이 두 줄) 왜 3인 이상은 못 타는지 모르겠다. 외국 여행객들에게만 적용되는 규칙 같다. 그래도 양심적이다. Orchha 시내까지 8km거리에 60 rupee를 적정 가격으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한 사람 앞에 20 rupee씩 60 rupee를 받는다. 다른 곳에서는 보통 적정 가격의 2배 내지 3배씩 요구하는데 (Sikkim만 빼놓고) 이곳은 딱 적정 가격만 부른다. 인도에도 이런 곳이 있다니 믿겨지지 않는다. Orchha 시내에 들어오니 Lonely Planet에 쓰여 있는 그대로 조그만 마을이다. 호텔, 음식점, Temple, Fort 등 모든 것이 가까이 있어서 좋다.
Lonely Planet에서 추천하는 Hotel Deep Regency에 갔더니 매니저 인상도 안 좋고 방도 누추한데 Khajuraho에서처럼 깎아주지도 않는다. Lonely Planet에 깨끗하다고 나온 Shri Mahant Guest House에 가보니 역시 누추하다. Lonely Planet에는 좋게 나왔는데 왜 이렇게 다른지 모르겠다. 결국 Hotel Deep Regency 바로 옆에 있는 Hotel Rukmani에 들었는데 새로 생긴 곳인지 규모는 작은데 아주 깨끗하디. 가격도 100 rupee면 싸다. 나하고 같이 오토바이 릭샤를 타고 온 프랑스 커플도 같은 호텔에 들었다. 휴식도 취할 겸 계획한 대로 이곳에서 이틀 밤을 묵고 가야겠다. 주인인지 매니저인지 인상도 좋고 친절하다. 조그만 공책을 주면서 한국 사람들 책이란다. 한국 사람들이 많이 오는 모양이다. Varanasi, Khajuraho, 그리고 이곳은 네팔이나 Ladakh와는 달리 나를 보고 “곤니찌와” 하지 않고 ”Japan, Korea?" 하고 묻는다. 때로는 처음부터 “Korea?" 한다. 한국 사람들을 알아보는 것이 네팔보다 훨씬 앞섰다. 네팔 사람들은 한국 사람들이 일본 사람들 못지않게 많은데 아직도 한국 사람들을 보고 무조건 ”곤니찌와“ 하는데 왜 그러는지 모르겠다.
Varanasi에서의 얘기다. 한국 여자 세 명과 함께 뱃놀이를 갔을 때 강가에서 성기를 닦고 있던 남자를 봤다. 사오십 대로 보이는 남자인데 놀잇배 들이 수없이 지나다니는 강가에서 강을 향해서 쪼그리고 앉아서 꼭 자위행위를 하는 모습으로 성기를 닦아댄다. 성기 때문에 지은 죄를 닦는 것일까? 지나가는 놀잇배들을 의식을 못하는 것인지 안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나도 한국 여자들도 봤지만 못 본 척 하고 지나쳤다.
며칠 전 신문에 보니 누가 칼럼을 썼는데 조사를 한 18개국 중에 인도가 두 번째로 공립 초등학교 교사 결근율이 높은데 약 25%이다. 매일 교사 넷 중에 한명이 결근이라는 얘기다. 그래서 인도에서는 공립 초등학교 다니는 학생들이 배우는 게 없단다. 그래서 여유가 좀 있는 학부모들은 자녀들을 사립학교에 보낸단다. 이런 추세로 가다간 공립학교가 없어지지 않을까 우려된다는 내용이었다. 공립학교 교사의 봉급은 사립학교 교사의 3배란다. 높은 봉급을 받고 결근은 밥 먹듯이 한다는 얘기다. 이렇게 신문에는 인도의 문제점을 그리는 기사가 많이 나온다. 그런가하면 인도가 곧 경제대국이 될 것이라는 기사도 많이 나온다. 인도 사람들은 좋은 소식은 떠들고 나쁜 기사는 가슴속 깊이 묻어버린다. 잃어버리지는 않지만 가슴속에 묻어두고 모른 척 한다. 한 여론조사에 의하면 “인도가 잘나가고 있는가?” 하는 질문에 Yes와 No가 비슷하게 나왔다. 내가 보기에는 Yes라고 대답한 사람들은 무식하거나 정직하지 못한 사람들이다.
영어의 “thug"이라는 단어가 힌두어의 ”Thuggee"라는 말에서 나왔다 한다. 사전에 찾아보니 thug은 “자객”, “살인 청부업자”, “흉악범”, “흉한”이란 뜻과 함께 (옛 인도의) 종교적 암살단원이란 뜻이라고 나와 있는데 실제로는 조폭집단의 단원을 지칭할 때 많이 쓰이는 말이다. Madhya Pradesh 주 동남부에 “Thuggee"란 이름의 힌두교 종교 집단이 있었는데 14세기부터 약 500년 동안 약 백만 명의 사람들을 살해했다고 한다. 주로 여행객들을 살해했는데 노란색 실크 스카프로 목을 졸라서 살해했다한다. 이유는 사람의 피를 좋아하는 Kali 신에게 사람의 피를 바치기 위한 것이란다. (인도 전역에 Kali 신에게 인간 제물을 바쳤다는 얘기가 많이 나온다.) 1800년대 초에 영국군이 이 집단을 공격해서 400여명을 처형하고 수천 명을 감옥에 수감한 후 이들의 만행이 없어졌다고 한다.
이런 것을 보면 교리를 떠나서 힌두교는 500년에 없어진 멕시코의 Aztec 종교보다 별로 날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 Mexico City에 있던 Aztec 신전에서는 많을 때에는 하루에 2만 5천명을 죽여서 피와 살아서 뛰고 있는 염통을 신에게 제물로 바쳤다 한다. Aztec 종교는 스페인의 멕시코 정복자 Cortez가 없앴고 인도의 “thuggee"는 영국군이 없앴다. ”Thuggee" 집단은 그렇게 없어졌지만 “thug"라는 단어는 살아남았다. 이에 대한 힌두교 사람들의 반론은 어느 종교이건 어두운 면이 없는 종교는 없고 그런 것을 가지고 종교 전체를 판단해서는 안 된다고 할 것이다. 그럴 듯한 말이긴 하지만.
Orchha에는 달라붙는 인도인들이 별로 없다. Khajuraho에서는 길을 걷자면 여기저기서 “hello" 소리가 넘쳐흐르고 길을 막고 자기 가게 구경을 하고 가라, 5분 동안만 애기하자, 책, 사진엽서를 들어 밀고 사라고 하는 등, 힘들었는데 이곳은 하나도 없다. 어떻게 이처럼 다를 수가 있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길거리 소음은 이곳이 더한 것 같다.
2005년 9월 14일, 수요일, Orchha, Hotel Rukmani
(오늘의 경비 US $7: 숙박료 100, 아침 20, 점심 25, 저녁 50, 식품 25, 입장료 50, 이발 20, 환율 US $1 = 44 rupee)
숙소에 있는 “한국 사람들 공책”에 쓴 글을 보니 이 호텔 칭찬을 많이 했다. 한국 여행객들이 한국어로 쓴 글이다. 주로 이곳 주인이 친절하다는 내용이었다. 반면에 옆 호텔 Deep Regency 주인 “배불뚝이”에 대해서는 좋지 않게 썼다. 숙소에는 방이 몇 개 안된다. 옥상에 올라가 보니 2층을 올릴 계획이 있는 것 같이 보인다. 2층을 올리고 옥상에 common area를 (휴게실) 만들면 그럴듯하게 되겠다. 지금은 그저 방이 깨끗하고 주인 친절한 것뿐이다.
오전 9시쯤 Orchha 제일의 볼거리인 Fort 구경을 갔는데 가는 도중에 한국 여자 여행객을 만났다. Jhansi에 가서 오전 11시에 Khajuraho로 떠나는 버스를 타려하는데 Jhansi로 가는 버스나 tempo (합승 택시) 교통편이 마땅치 않아서 난감해 하고 있었다. 150 rupee를 내고 오토바이 릭샤를 타고 Jhansi까지 가면 제일 쉬울 텐데 혼자 돈을 내고 타는 것이 싫어서 망설이고 있었다. Jhansi까지 가지 말고 tempo를 타고 8km 거리인 Jhansi-Khajuraho 도로까지 나가서 오전 11시 20분경에 지나가는 Khajuraho 버스를 타는 방법도 있다고 알려주었다.
Orchha 네거리에 한국 음식을 파는 곳이 있었다. 메뉴에 라면, 김치 비빔밥, 수제비, 백숙 등이 보였다. 음식점 벽에도 한글로 쓰여 있어서 길에서도 볼 수 있었다. Khajuraho에서도 그랬지만 이 지역에서는 일본어보다 한국어로 된 표지판들이 더 많이 보인다. 어떤 이유에서인지 모르겠는데 이 지역에서는 한국 여행객들이 판을 치고 있는 모양이다. 작년 이맘 때 남미 여행을 하고 있을 때만 해도 한국 사람들이 해외 배낭여행을 많이 하고 있는지 전혀 몰랐는데 참 신기하기도 하다. 중남미 배낭여행 붐은 언제나 불까? 한국에서 남미까지 가는 항공료가 비싼 것과 스페인어를 좀 알아야 하는 것이 부담이 되는 것 같다.
오늘 인도에 와서 세 번째로 이발을 했다. Bihar 출신 정치인 Lalu처럼 깎아달라고 했더니 비슷하게 깎아주었다. 전번보다 훨씬 더 잘 깎았다. 잘 깎는다고 칭찬을 해 주었더니 아주 좋아한다. 20 rupee를 받았는데 전번에 Manali에서 깎을 때 낸 40 rupee는 바가지 가격이었다.
점심으로 한국 음식을 먹을까 하고 한국 음식을 판다고 선전을 하는 음식점에 갔더니 식탁 위에 파리가 새까맣게 앉아있어서 먹을 생각이 없어져서 숙소로 돌아와서 샤워를 하고 좀 쉬었다가 Fort 구경을 갔다. 조그만 섬에 세운 Fort인데 Fort 안에 있는 궁전이 거의 껍데기만 남아있다. 그래도 궁전 한쪽에는 호텔과 음식점 겸 관광 안내소로 개조해서 쓰고 있었다. 17세기 무갈 제국이 가장 강성했을 때 어느 제후국이 이곳을 수도로 정하고 세운 Fort와 궁전이다. 이 제후국은 때로는 무갈 제국과 관계가 좋았고 때로는 나빠서 침공을 당하기도 했었다. Orchha는 1531년부터 1783년까지 약 250년 동안 이 제후국의 수도였다.
오후 2시 경 나가서 점심을 먹었다. 한국 음식을 선전하는 음식점에 가서 감자, 야채, 계란을 넣고 만든 수제비를 먹었는데 예상했던 대로 맛이 없었다.
오늘은 무슨 축제가 있는지 하루 종일 힌두교 신 Ganesh 상을 차에 태우고 거리 행진을 한다. 사람들은 여러 가지 색깔의 가루를 서로 다른 사람들 얼굴에 뿌리면서 춤을 추고 소리를 지른다. 주로 젊은이들인데 술에 취했는지 꼭 무슨 일이 벌릴 것 같은 분위기다. 그래서 그런지 무장 경찰관들도 보였다.
Orchha 입구에 세워진 대문
시내 풍경
이 음식점에서 수제비를 먹었는데 맛이 없었다
하루 종일 축제가 계속되었다
여러 가지 색깔의 가루를 서로의 머리에 뿌렸다
Jehangir Mahal에서 (Palace) 내려다보이는 Orchha 주위 풍경
Jehangir Mahal에서 (Palace) 내려다보이는 강 경치
Jehangir Mahal에서 (Palace) 내려다보이는 Orchha 시내와 다리 경치
Jehangir Mahal에서 (Palace) 보이는 다른 mahal과 temple
Jehangir Mahal
Jehangir Mahal
Jehangir Mahal 내부
Jehangir Mahal 내부
Jehangir Mahal 문
Jehangir Mahal 내부
Jehangir Mahal 내부
Jehangir Mahal 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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