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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인 대표들이 모인 싱귤래리티 대학을 아시나요?
월간<CEO&> 창간 6주년을 기념해 이번 달은 인터뷰도 좀 색다르게 준비하였습니다. 미래를 열어 갈 기업들에 대한 투자 심사를 맡고 있는 한 전도유망한 청년, 정지우 소프트뱅크 벤처스 책임심사역을 만난 것이죠. 왜 정 심사역이 이번 호의 주인공이냐고요? 이유는 그가 미국 샌프란시스코 근처 ‘싱귤래리티 유니버시티 Singularity University’라는 ‘특이한’ 곳에 가서 앞으로 인류의 삶을 획기적으로 바꿀, 첨단 가운데서도 첨단의 미래를 보고 왔기 때문입니다. 그가 보고 직접 경험하고 온 미래, 그리고 그 미래를 선보이고, 엿보게 하고, 만들어가는 세상에 둘도 없는 교육 기관의 이야기를 함께 들어 보실까요?
Interview 양영은 KBS 기자 Photographer 이경직
<출처 : CEO &>
‘특이점(特異點, Singularity)’이라는 게 있다. 인터넷에서 기술적 특이점(Technological singularity)을 검색해보면 ‘미래학에서 문명의 미래 발전에 가상 지점’을 뜻하는 용어로서 ‘기술 변화의 속도가 급속히 변함으로써 그 영향이 넓어져, 인간의 생활이 되돌릴 수 없도록 변화되는 기점’을 뜻한다고 돼있다.
이 특이점에 대해 가장 많이 이해하고 있다고 알려진 사람들 가운데 하나가 레이 커즈와일(Raymond “Ray” Kurzweil)이라는 미래학자다. 그리고 이 레이 커즈와일이 인류가 당면한 크나큰 도전과 과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폭발적 성장이 기대되는 미래기술들(exponential technologies)’을 적용해 문제를 풀 수 있도록 리더들을 교육하고, 영감을 주고, 힘을 실어주기 위해 창립한(Our mission is to educate, inspire and empower leaders to apply exponential technologies to address humanity's grand challenges) 학교가 바로 ‘싱귤래리티 대학’이다. 매년 여름이면 전 세계에서 가장 반짝반짝한 사람들이 모여 세계의 가장 어려운 문제들을 풀기 위해 고민하고 시도한다는 그곳의 생생한 이야기를, 몇 해 전 참가한 정지우 심사역으로부터 들어본다.
몇 안 되는 한국인 졸업생인데 어떻게 싱귤래리티 유니버시티(이하 SU)에 가게 되었나?
처음에는 벤처 회사에서 엔지니어로 일을 했다. 그러다가 점차 경영이나 기업 운영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이후 매킨지에서 컨설턴트로 일했다. 일반적으로는 컨설팅에 있다가 MBA 과정에 지원하는 경우가 많지만, 전공도 전기공학이고 창업이나 IT 분야에 관심이 많아, 급변하는 시대에 새로운 도전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강했다. 그런 맥락에서 운 좋게 기회를 얻어 2013년에 다녀왔다.
무엇을 공부하고, 지금 하는 일하고는 어떻게 관련되나?
SU는 매해 6월부터 8월까지 10주 동안의 프로그램으로 진행된다. 지금 하는 일과 어떻게 연관되는지를 먼저 설명하면, 소프트뱅크 벤처스는 모회사인 소프트뱅크의 비전에 부합하는 벤처투자를 하는 곳으로, 손정의 회장이 표방하는 바가 ‘인터넷 혁명을 통하여 인류를 행복하게 하겠다’는 것이다.
따라서 소프트뱅크 벤처스에서도 IT 기반 회사에 투자를 많이 하고 있는데, 그렇기 때문에 IT 영역에 대해서도 잘 알아야 하고, 기술과 경영을 알고 있으면 편하다. 게다가 IT 영역에서의 혁신은 어느 한 지역에만 한정돼 일어나는 게 아니라 글로벌하게 일어나는 특성이 있다.
그리고 관련 정보가 있고, 사람들 간 교류가 있으면 투자도 더 잘 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시장에 대한 전망을 갖는데도 서로 도움을 주고받을 수 있다. 그런 측면에서 SU는 ‘특이점’이라는 말처럼 인류가 직면한 굵직굵직한 문제들을 기하급수적으로(?) 성장하는 기술로 푸는 시도를 해보는 곳인데, 그러다보니 참가자들이 모두 미래 기술에 관심이 많고, 앞으로 어떤 변화가 일어날 지에 관심을 두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현재 몸 담고 있는 소프트뱅크, 또 소프트뱅크 벤처스와도 맥락이 맞닿아있다고 할 수 있다.
기하급수적인 기술(exponential technology)에 대해 설명해 달라.
미래 기술이나 첨단 기술이라는 말이 더 이해가 쉬울 것 같다. 새롭게 개발되고 있고 그 발전 속도가 점차 가속화되는 첨단 기술이라고 설명할 수 있다.
‘싱귤래리티’ 즉, 물리학 용어로 ‘특이점’이라고 부르는 것과도 직접 관련이 있는데, 다시 말해 기술의 발전 속도가 리니어(linear)하게 증가하지 않고, 어느 순간 기하급수적, 폭발적으로 성장하게 되는 것을 일컫는 말이다.
어느 시점에서는 성장하는 속도가 눈에 보이지만, 그 속도가 기하급수적이 되면 무한대로 수렴하게 되는데, 그렇게 되면 기술이 인간의 지능 수준까지 도달하게 되는 시점이 올 거라고도 예측해볼 수 있다. 우리는 지금 이런 특이점이 오는 시대에 살고 있다. 그리고 그와 같은 성장 곡선을 그리며 발전하는 기술이 기하급수적인 기술이고 성장 속도가 급변하게 되는 그 시점이 바로 특이점이다.
저명한 미래학자이면서 SU의 공동 설립자이기도 한 레이 커즈와일은 이러한 기술들을 활용해 인류가 직면한 커다란 문제들을 풀어보려는 노력을 할 수 있을 거라는 목표로 SU를 세웠다. 그러다보니 SU에서는 그런 기술을 가르치는 동시에 그걸 통해 풀어볼 수 있는 이른바 ‘글로벌 그랜드 챌린지(global grand challenges: 빈곤, 환경, 기후 변화, 물, 보안, 교육, 에너지 문제 등)’들을 같이 일깨운다.
예를 들면 기술의 경우, 하나의 기술이 하나의 문제를 풀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에 아주 폭넓게 여러 가지를 가르치는데 바이오, 컴퓨터 사이언스는 물론이고 나노 기술과 우주 공학도 포함한다.
그렇게 포괄적이고 집중적으로 가르친 다음에 전 지구적 문제들에 대해 세미나를 통해 공부하고, 그래서 어떻게 풀려나갈 것이라는 걸 토론을 통해 프로젝트화해보고 하는 식이다. 그렇기 때문에 정식 교육기관으로 등록돼 있지는 않고, 비영리 법인으로 되어 있다.
주로 어떤 사람들이 프로그램에 참여하나?
2013년도에는 39개 국가에서 80명의 사람들이 왔었다. 처음 오리엔테이션을 할 때 참가자들의 비율을 소개해줬는데, 공대를 나온 사람이 과반, 박사 학위 소지자가 20% 정도, 그리고 창업 유경험자가 30% 이상이었다. 그 중에는 디자이너도 있고, 정부 기관에 몸담고 있는 사람, 벤처 캐피탈리스트, 학생, 그리고 해커 출신도 있었다.
학교의 미션 스테이트먼트가 인상적이더라.
그렇다. 학교 홈페이지에 가면 맨 처음에 나온다. “Our mission is to educate, inspire and empower leaders to apply exponential technologies to address humanity's grand challenges”라고, 말 그대로다. 각 분야에서 일하는 전문가이건 자신만의 비전을 믿고 한 우물을 파는 잠재력 있는 사람이건, 그런 사람들에게 폭발적으로 성장할 미래기술을 소개하고 그 기술들을 활용해 해결 불가능해 보이는 문제들에 도전할 수 있다는 의욕을 고취시키고 영감을 북돋우는 ‘배움터’인 것이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무엇을 배웠나?
단순히 ‘통찰’이나 ‘지식’이라고 말하기보다 꼭 짚고 넘어가야할 게 ‘미래를 보고 오는 느낌’이라고 할까? 사실 미래를 만들어간다고 하는 구글이나 유투브 같은 기업들도 한국에서 얼마든지 스터디가 가능하다. 그런데 SU는 그걸 뛰어넘는다고 할 수 있다.
SU에서는 이런 기술들을 교과서를 가지고 가르치는 게 아니라 구글 X 연구소, 스탠포드 대학 연구원들, NASA 직원들, 그리고 세계 최고의 IT 업체 신규 사업팀 사람들을 직접 초청해 가르친다. 이 사람들은 한 마디로 앞선 회사들의 앞선, 그러나 아직 돈이 되지는 않는 사업들을 맡고 있는 사람들이라 할 수 있는데, 그런 사람들이 강연자로 참가해 토론 주제를 던져주고, 최근 자기 회사에서 이슈가 되는 것들이 어떤 것들이라고 공유하니까, 심도가 있다기보다는 넓게 알려주는 거지만 충분히 미래를 엿볼 수 있는 기회가 된다.
졸업한 지 2년이 됐는데 언제 가장 그리운가?
SU에 있을 땐 마치 몽상가 같은 이야기들을 전혀 정제되지 않게 했어도 됐다. 마치 미친 사람 같은 이야기를 해도 아무런 부담이 없는 자리들이 많았다. “만약에? What if?”라며 시작하는 밑도 끝도 없는 상상들이 많았고, 그래서 그런 토론을 즐겨하는 게 처음엔 되게 이상하고 어색하게 느껴졌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런 것들이 가장 재미있었고 기억에 남는 것 같다.
예를 들어 요즘 생명공학의 주요 화두인 유전자 변형을 통한 식량 증산이 무중력 상태에서 더 효과적일 수 있다고 누군가가 가설을 세우면, 실제로 생명공학을 하는 친구가 그 가능성을 진단하고 이후 NASA에서 일하는 강연자와 이야기를 하면서 우주정거장에 별도의 실험실을 만들어 보면 어떠냐, 그것도 사업이 될 것 같다는 식으로 아이디어를 발전시키는 거다.
어떻게 그런 분위기가 가능할까?
일단 환경 자체가, 공간이 주는 의미가 큰 것 같다. SU는 NASA AMES 연구 단지 내에 위치해있고, 자고 일어나 기숙사에서 나오면 바로 눈앞에 우주선을 놓는 큰 돔이 보이니까 ‘아, 내가 이런 곳에 있구나!’하고 매일 자각하게 된다. 그리고 바로 오전 수업을 듣는데 와서 보면 구글의 비밀 연구소에서 연구하던 사람이 와서 이야기를 하고 있고, 또 스페이스 엑스 CEO가 하는 사업들도 바로바로 볼 수 있고, 길거리에 테슬라 자동차가 아무렇지도 않게 굴러다니니 이곳에선 왠지 그에 걸맞은 이야기를 해야 할 것만 같고, 그런 게 전혀 이상하지 않은 환경을 조성해주는 것이다.
게다가 세계 각국에서 나름 특이한 사람들을 뽑아 놓았으니 뭔가 지구인 대표가 된 느낌이랄까. 그러니 다들 자유롭게 큰 주제들을 얘기하고. 비록 일하는 현장으로 돌아가면 실행으로 옮겨지긴 힘든 것들이지만 적어도 SU에선 그런 주제들로 자유롭게 대화가 이루어진다.
수업 진행 방식도 특이하다던데?
매우 혁신적이다. 할 수 있는 건 다 하는 것 같다. 기본적으로 강의실 분위기가 아주 자유로운데 의자에 바퀴가 달려 있고, 아무데나 돌아다닐 수 있는 책상에 앉아서 자기 편한 대로 서서 들어도 되고, 누워서 들어도 되고 마음껏 자유로운 자세로 수업을 듣는 식이다.
그리고 수업만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조별로 토론하고, 관련된 회사를 가보기도 하고, 연구소를 방문하기도 한다. 자기가 특별히 관심 있는 분야가 있으면 연관된 세션 강의를 더 찾아 들을 수도 있다. 또 자기가 전문성이 있는 분야가 있으면 스스로 강의를 하겠다고 해서 소규모 세미나를 진행하기도 한다. 그럼 또 관심 있는 사람들은 와서 듣고 하는 식이다.
당시 핫한 주제가 드론, 3D 프린터, DNA 검사 관련된 것들, AI, 딥러닝, VR 같은 거였는데 우리나라에는 요즘 한창 핫한 주제이지 않나. 그러고 보면 1년에서 1년 반 정도 미래를 먼저 보고 온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 같다.
그럼 SU가 당장 실질적으로 기여하는 바가 있나?
아주 좋은 질문이다. 나도 그런 질문을 학교에 했었으니까. 답은 학교 측에서 생각하는 성공의 정의에 따라 다를 것 같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 고등학교의 경우는 졸업생 가운데 서울대를 간 사람이 몇 명이냐는 게 성공의 기준이지 않나. 그렇듯이 SU도 성공의 기준을 그곳을 거쳐 가서 영감을 받아 창업을 한 사람들의 수라든지, 그 사람들이 창업한 회사들의 기업 가치라든지 하는 걸로 볼 수도 있다.
아직 SU의 설립 역사가 그렇게 길지 않아서 그런 성과를 계측하긴 어렵지만 분명히 SU 출신이 만든 회사들이 있다. 그리고 졸업자 중에 IT 회사나 유망 스타트업으로 가는 경우도 많고. 바로 그런 것들이 이 학교의 가치를 나타내는 지표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그렇다고 해도 ‘창업 사관학교’와는 다른 개념인 것 같다.
그렇다. SU에서 이야기하는 것은 ‘5년 내로 10억 명의 인류에게 영향을 줄 수 있는 일을 하자’는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기업가 정신(entrepreneurship)을 이야기한다.
그렇다면 SU에서 배운 기업가 정신은 당신의 삶 속에서 어떻게 발현되고 있나?
내 경우는 일단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느냐에 대한 답을 하기 위해서 우선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이 시대가 어떤 시대냐에 대한 인식을 먼저 하고 시작하는 것 같다. 다양한 관점에서 세계를 이해해볼 수 있겠지만, 일단 생활에서도 느낄 수 있고 거시지표로도 나타나듯이 요즘 시대는 변화가 정말 빠르지 않나. 기술의 발전 속도에서 비롯되는 측면이 많다. 모바일로 넘어오고, 또 그 파급력이 글로벌하게 미치고, 한편으로는 사회 체제 측면에서 보면 자본주의가 그 자체만으로는 완전치 않아서 또 새로운 시도들과 실험들이 막 이뤄지고 있다. 그리고 경제성을 띄는 기술들이 나오는 속도도 갈수록 더 빨라지고. 그런 시대 속에 살고 있으니까 시대 변화를 표현하는 키워드를 나름대로 뽑아본다면 IT와 비즈니스 쪽이 핵심 관심 분야가 될 것 같고, 그래서 물론 내 스스로 비즈니스를 직접 만들 수도 있지만 지금은 일단 비즈니스를 투자하고 같이 키워나가는 형태로 러닝을 쌓아가고 있는 것이다.
결국 IT와 비즈니스를 통해서 SU에서 논했던 인류의 도전 과제들에 대해 무언가 기여를 할 수 있게 되면 정말 뿌듯하고 좋을 것 같다. 그러한 비전은 현재 소프트뱅크사의 비전과도 일치하는 거라서, 사실 관심사와 아주 흡사한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어떤 사람들에게 SU를 권해주고 싶은가?
일단 기술 자체를 좋아하거나 호기심이 있는 사람, 단순히 ‘나 좀 관심 있어’ 이런 게 아니라 진짜로 좋아하고 구체적으로 무언가를 만들어본 사람, 이미 그렇게 만들어서 써보고 하는 수많은 실험의 과정을 거친 사람이 SU에 가게 된다면 그 사람이 만들 수 있는 게 생각보다 훨씬 클 수 있겠다는 자신감을 얻게 될 거다. ‘다들 이렇게 만들고 꿈꾸고 하는구나!’라는 걸 느끼면서 말이다. ‘내가 특이한 줄로만 알았는데, 이런 사람들이 살고 있고, 또 실제로 무언가 대단한 걸 만들어내기도 하는구나!’하고. SU에는 정말 물 만난 고기마냥 실험실에서 밤새 작업하고 처박혀 사는 친구들도 있었다.
요컨대 SU는 내 상상의 제약을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까지 풀어볼 수 있는 곳이었다. 그렇게 평소에는 기인 취급을 받을 것 같은 생각들을 마음껏, 자유롭게 하면서 시야를 넓힐 수 있는 곳이다. 그리고 미래를 미리 볼 수 있는 곳이고, 마지막으로 전 세계에서 온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100일을 함께 지내며 우리가 지구촌에 살고 있다는 느낌을 확실히 받을 수 있는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