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이란 회자정리[會者定離]와 같이 만나고 헤어짐의 연속이다.
그런데 이 만남도 어느 시절, 잠시 내 가지를 흔들며 지나가는 바람이 있는가 하면, 내 존재를 송두리째 흔들어 놓는 뿌리와 같은 것이 있다.
바람 같은 만남을 한시적으로 스쳐가는 수많은 사람을 뜻한다면, 뿌리와 같은 만남은 오랜 세월 동고동락하며 교감을 나누었던 가족이라 말할 수 있다.
물론 사람이 살아가는 동안 소중하지 않는 만남이 어디 있으랴만, 사랑하는 가족 특히 배우자와의 이별은 그 무엇으로 비교할 수 없다. 더군다나 핵가족이 만연한 현대에서 배우자를 먼저 보내고 맞이하는 노년은 생각만 해도 암담하다.
홀로 된 외로움은 제쳐두고서라도 남은 빈 공간을 더듬거리며 혼자 살아가기란 여간 힘든 게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요즘 현명한 부부들은 본인이 살아있을 때 하나하나 가르친다는 우스개가 심심찮게 나돌고 있다.
실지로 어제, 그런 눈물겨운 이야기를 듣고 나는 부부라는 말과 진정한 사랑에 대해 오래 생각하였다.
그 여인은 몇 해 전 수술한 암이 온 몸으로 전이되었다는 진단을 받자 바로 퇴원하였다 한다. 남편의 홀로서기를 위해서였다. 그리고 매일 조금씩 남편에게 집안일을 가르쳤다.
밥 짓고 빨래하기, 공과금 챙기기 부터 모시옷을 즐기는 남편을 위해 모시옷 풀 먹이기까지…
그리고 이렇게 말하였다.
“당신 혼자 사는 것 원치 않아요. 나 죽고 나면 정말 좋은 사람 만나야 되요. 그 동안 홀로 지내며 궁상맞게 사는 것 나 보기 싫어요. 지금처럼 이렇게 말끔해야 멀리서라도 내 마음이 편할 것이에요.”
만약 평범한 보통 여인이었다면 상황은 어떻게 되었을까.
남편은 아내의 병수발로 몸과 마음이 만신창이가 된다. 그래도 결국 쓸쓸히 죽어간 아내를 생각하며 연일 술에 의지하며 세월을 보낸다. 집에 들어가도 반기는 것은 불 꺼진 창이고, 아내와 함께 먹었던 밥 한 공기, 양말 한 켤레도 자신에게는 어설프기만 하다. 때로는 이 자식 저 자식 집으로 전전해보지만 가슴에 남는 것은 서러움과 고독뿐이다. 그러다 머잖은 세월에 자신도 큰 병을 얻어 결국 죽고 말 것이다.
물론 아내든 남편이든 남겨진 사람의 홀로서기를 해야 반드시 행복해진다는 뜻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내 생명이 촌각을 다투는 상황에서도 남겨질 상대를 더 생각하였다는 점이다.
이것이 바로 진정한 부부의 모습이 아닐까 나는 생각한다.
심리학자 메리 파이퍼는 “젊은 시절 사랑은 자신의 행복을 원하는 것이고, 황혼의 사랑은 상대가 행복해지기를 바라는 것” 이라고 말하였다.
그렇다면 사랑의 모습은 나라는 단어에서 시작되어 너라는 언어로 완성되는 것이 분명하다.
시한부 인생을 살면서 자신 보다 남겨질 남편의 삶과 행복을 먼저 생각하고, 하루하루 이별을 준비해온 그 여인.
그런 그녀는 진정 꽃보다 아름다운 사람임에 틀림없다.
첫댓글 삶의 끝에서야 상대가 행복해지기를 바라는 것이 사랑이란 것을 깨닫게 되는 게 인간이라는 게 참 서글픕니다. 몇 가지 지적하자면 의미의 중복이 있느지(회자정리), 어색한 구절은 없는지(나라는 단어--너라는 언어)(아내와 함께 먹던 밥 한 공기, 양발 한 켤레) 등은 더 생각하여 보십시요. 그리고 설명하는 식의 문장은 친밀감을 감소합니다. 좋은 수필엔 작가의 숨결이 깃들어 있어야 합니다.
네..잘 알겠습니다. 글을 잘 적어보고 싶은데 아직 여러가지로 부족합니다. 세상의 아름다운 것, 소중한 것, 함께 나누고 싶은 것을 나타내고 싶은데, 글이 아닌 글자의 나열밖에 되지 않으니...많이 노력해야 되겠습니다. 선생님 추석이 가까워졌습니다. 항상 건강하시고 가족과 함께 즐겁고 행복한 연휴 맞이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