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1월
마카오의 한 경매장이 들썩거렸다. 도박왕으로 알려진 억만장자 스탠리 호가 세계에서 가장 비싼 식재료로 알려진 화이트 트뤼플(truffle: 송로버섯) 1.08kg을 한화 3억 원가량에 낙찰 받았기 때문이다.
가장 질 좋은 트뤼플의 산지인 이탈리아에서는 매년 늦가을마다 미식가와 레스토랑들이 열광하는 두 번의 경매가 열리는데 하나는 이탈리아 와인의 왕이라고 불리는 바롤로 와인 경매이고 또 다른 하나가 바로 송로버섯 경매다.
매번 경매가 열릴 때마다 이번에는 얼마나 크고 좋은 트뤼플이 누구에게 얼마에 팔릴까에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되고, 운 좋은 누군가에게 발견된 최고급 송로버섯은(이 버섯을 전문적으로 찾아내는 개의 가격만 350만원이니 반드시 운만은 아니다) 사람들의 감탄 어린 환호 속에서 트뤼플 컬렉터나 세기의 갑부들에게 넘겨지는 진풍경이 연출된다.
일반의 상식을 뒤엎는 초고가 식재료는 사람으로 치면 세간의 입에 단골로 오르내리는 연예인과 같다. 추종자들의 절대적인 지지에 떠받들리면서도 한편으로는 그 가격에 준하는 맛을 증명하라는 나머지의 냉정한 시선도 견뎌야 한다.
논란은 주로 턱없이 높은 가격이 맛에 비해 적절한가에 맞춰진다. '희귀하지 않았어도 비쌌을까'라는 의문은 가질 수 없는 것에 유독 집착하는 사회병리학적 현상으로까지 해석되곤 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한쪽에서는 작은 병에 담긴 최상품 캐비어에 기꺼이 50만원을 지불하려는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루는 시대다.
그러나 이 럭셔리한 식재료들이 마냥 호시절을 보낸 것만은 아니다. 지금처럼 물량이 달리지 않던 시절에는 집안에 굴러다니는 감자보다 못한 대접을 받기도 했고, 동물 학대 논란이 일어날 때에는 잔인한 음식이라는 오명을 쓰고 눈치를 보며 먹어야 했다. 어떤 이들은 이 진귀한 재료들에게 터무니 없는 효과를 기대하기도 했다.
19세기경 트뤼플에 최음 효과가 있다고 굳게 믿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자 당시 프랑스의 유명한 미식가인 브리야사바랭은 "트뤼플이 결코 뚜렷한 효과를 내는 최음제는 아니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부인들을 한층 순종적으로 만들고 남성들을 좀 더 상냥하게 만든다"는 말로 대중을 진정시켜야 했다.
음식계의 스캔들 메이커, 초고가 식재료들이 겪은 파란만장한 음식사.
푸아그라
세상 모든 나라의 사람들이 프랑스 인들을 잔인하다고 욕해도 이집트인들만은 자격이 없다. 푸아그라는 고대 이집트에서 유래한 음식일 뿐만 아니라, 거위에게 강제로 먹이를 먹여 살찌우는 방식까지 이집트에서 최초로 시도된 것이기 때문이다.
장거리 비행 전 영양분을 잔뜩 섭취해 에너지를 비축하는 거위를 보며 '과연 저 속의 간은 어떤 맛일까?'를 궁금해한 이집트 인들 이후로 푸아그라는 파라오와 스파르타의 왕, 로마 황제 등 권력자들의 식탁을 장악했다.
주로 무화과 열매를 먹여 살찌운 거위의 간은 지방질로 인해 식감이 극도로 부드러우면서도 비계처럼 느글거리지 않아 많은 이의 사랑을 받아 왔다. 미식가의 음식이라고 하는 것들 대부분이 보통 사람은 처음부터 맛을 알기가 쉽지 않은 데 비해 푸아그라는 고지식한 입맛도 단번에 만족시키는 매력을 가졌다. 구운 푸아그라는 사과나 발사믹 식초 같은 시큼한 맛과 잘 어울려 자주 함께 쓰인다.
이렇게 인기가 좋던 푸아그라는 중세 1000년 동안 자취를 찾아볼 수 없게 된다. 잔인한 사육 방식이 문제가 되었을 거라고 예상하겠지만 의외로 당시에도 비육 습관은 여전했다. 그러나 갑자기 푸아그라가 사라진 이유는 지금도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다. 15~16세기 즈음부터 슬슬 다시 등장하기 시작한 푸아그라는 18세기 후반 프랑스의 장 피에르 클로즈라는 요리사에 의해 파이로 탄생, 루이 16세의 식탁까지 오르며 화려하게 부활한다.
캐비어
철갑 상어의 알인 캐비어는 그 어미와 뒤바뀐 운명을 타고난 것으로 유명하다. 과거 황제에게 바치는 음식으로 유명했던 철갑 상어는 진상할 때 피리를 불고 북을 치며 온갖 요란을 떨 정도로 최고의 음식으로 추앙 받았다. 귀족들에게 귀한 생선살을 바치고 남은 생선 알은 가난한 어부들의 차지였는데 이것이 바로 캐비어다.
캐비어는 같은 생선 알들과 비교했을 때 맛이 탁월하게 좋다. 쓴 맛이 없고 적당하게 짭짜름한 것이 감자, 계란 등 담백한 재료들과 같이 먹었을 때 환상적인 조화를 이룬다. 캐비어의 인기가 높아지면서 철갑 상어가 멸종 위기에 놓이자 최근 대부분의 나라에서 철갑 상어 포획을 금지시키는 법안을 마련했고 이로써 자연산 캐비어의 가격은 어디까지 올라갈지 알 수 없게 돼버렸다. 30g 한 병이 얼마 전까지 30만원가량이었으나 최근 52만원으로 뛰었다고.
한편 캐비어가 세계 3대 진미로 떠오르는 동안 철갑 상어는 살이 단단하고 맛이 풍부하지 않다는 이유로 점점 인기가 떨어져 요즘 프랑스 음식계에서는 아무도 쳐다보지 않는 식재료로 전락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철갑 상어의 맛은 여전할진대 혀를 미혹시키는 것은 맛뿐만이 아닌 모양이다.
진미의 3대 조건
"맛있다고 비싼 건 아니지"
신라호텔 서상호 셰프의 말이다. 이 백발의 노 주방장은 프렌치 레스토랑 콘티넨탈을 비롯해 신라호텔 내 전체 식당을 총괄하며 온갖 비싼 식재료의 향연 속에서 살아왔다. 그가 꼽는 진미의 조건은 맛과 희귀성, 여기에 더해 특징이다.
"트뤼플은 향이 30리까지 퍼진다고 하지. 프러포즈하러 와서 트뤼플을 통째로 내달라고 하는 남자도 있어. 여성을 유혹할 만큼 향이 대단하다는 뜻이지."
푸아그라와 캐비어의 희귀함은 입 안에서 녹아 없어지는 부드러움이나 중독성 강한 짭짤함과 만났을 때에 비로소 신화가 될 수 있었다. 일반적으로 알려진 3대 진미 외에 킬로그램 당 300만원을 호가하는 모렐 버섯(morel mushroom: 그물 버섯) 역시 진한 향과 쫄깃한 식감이 특징이다.
우리나라는 자연산 송이나 전복, 다금바리 외에 딱히 세계에 내놓을 만한 진귀한 식재료가 없는 것이 사실이지만 희망은 있다. 희귀성은 꼭 자연적 소멸이나 포획의 어려움에 의해서만 생겨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일본은 1kg에 50만원을 넘는 최고급 쇠고기 고베니쿠(고베산 쇠고기)를 브랜드화 했다. 정성을 들인 사육과 가공 및 관리 노하우로 독보적인 품질을 확보해 스스로 희소성을 창조해낸 것이다. 돌고 도는 유행을 따라 뜨고 진 진미의 역사를 보건대 다음에는 어떤 변덕을 부릴지 아무도 예측할 수 없는 일이다.
촬영 협조: 신라호텔 내 프렌치 레스토랑 콘티넨탈
참고서적: 음식잡학사전, 윤덕노 저, 북로드 진짜 세계사, 음식이 만든 역사, 21세기 연구회, 베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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