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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충북학습연구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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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교대 스크랩 [제주여행] 4월 9일 이야기
박진환(충남) 추천 0 조회 60 13.04.10 19:20 댓글 1
게시글 본문내용

9일 아침 9시 서둘러 길을 나섰다. 마음에 썩 들지 않은 숙소여서 더 그랬다. 그래도 인사를 드리려 주인부부내외를 찾으려 했으나 보이질 않았다. 그냥 그렇게 숙소를 나와 비양도 다리를 건너 우도 공기관들이 있는 곳으로 발길을 옮겼다. 그때 전화가 울린다. 숙소 여주인이다. 인사를 못했다고 아쉽다며 건강하게 여행 잘 하고 돌아가란다. 불만족스러운 숙소와 달리 주인내외 친절함은 뒤를 돌아설 때까지도 마음을 따뜻하게 했다. 미안하리만치.

 

2km를 걸어 우도 중심에 다다랐다. 멀리서 우도 박물관이 보인다. 폐교를 이용해 해양과학전시물을 가져다 놓은 모양인데, 건물이나 분위기나 아이를 데려가 보여주고 싶은 생각은 별로 들지 않았다. 증명서가 하나 필요해 겸사겸사 우도면사무소를 찾았다. 아들 말마따나 그곳은 면사무소와 소방서, 보건소가 한 데 옹기종기 모여 흥미로운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었다. 면사무소에서 나오자마자 마주친 건 우도초등학교. 우도중학교까지 한데 있었다. 역시나 푸른 천연잔디와 깨끗하고 아름다운 경관은 여느 제주도 학교들과 다르지 않았다.

    

아침을 거른 우리 부자는 우도에서 소문났다는 중국집으로 걸어갔다. 11시가 채 안 된 시간이어서 걱정을 했는데 멀리서 문이 열린 걸로 봐서 일찍 주문을 해도 먹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짐작한 대로 아들과 나는 식사를 할 수 있었다. 해물짜장과 해물짬뽕을 시켜 서로 맛을 보기로 했다. 그런데 멀리 주방에서 보이는 장면은 실망이었다. 비닐에 잔뜩 든 각종 해물을 풀어내는 모습을 보고 말았다. 생물이 아니라는 생각에 맛은 기대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예상대로 짬뽕과 짜장면에는 해동된 해물들이 잔뜩 들어가 있었다. 짬뽕 홍합은 말라붙어 있어 먹기가 힘들어 얼마 지나지 않아 먹기를 포기해야 했다. 멋은 흔한 중국집 맛이었다. 역시나 책에서 추천을 해도 믿을만한 곳이 별로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앞으로 찾아 먹는 곳은 누가 추천한 맛집이 아니라 그냥 우리가 마음 가는 대로 찾아가기로 했다. 확실한 제보자에 의한 정보는 물론 받아들이기로 했다. 이렇게 길을 나서 아들과 나는 다시 비양도 출발지점으로 내려와 올레길 1-1 우도 코스의 나머지를 걷기 시작했다. 우리가 천진항으로 가는 길에서 가장 기대를 품은 곳은 우도봉이었다. 석편을 차곡차곡 쌓아 올린 듯 가진런하게 단층을 이룬 절벽으로 쇠머리 오름이라고도 하는 곳은 우도의 섬머리이기도 하다. 빛깔 고운 잔디와 쪽빛 바다가 어우러진 풍경은 그야말로 왜 우도를 찾고 싶어하는 지를 확인케 해 준다. 그렇게 우도를 내려와 천진항에서 표를 사 다시 성산항으로 길을 떠났다. 제주도민들도 거의 찾지 못한다는 우도를 뭍사람인 나와 그것도 아들과 함께 또 언제 찾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에 미치자 왠지 가슴이 뭉클했다. 우리 아들이 언젠가 우도를 다시 찾을 날에 아버지인 나를 기억해 주기만을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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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코스 우도올레길을 마친 우리는 1코스 끝인 광치기 해변으로 향했다. 가는 길에 우리 곁을 늘 따라다니는 거대한 자연물이 하나 있었다. 그것은 성산일출봉. 조금 힘들어하는 아들에게 성산일출봉을 가보는 게 어떠냐는 제안을 했다. 올레길에는 포함돼 있지 않은 곳이지만. 멀리 보이는 정상으로 가는 길에 무수한 사람들의 행렬을 보니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잠시 망설이던 아들은 함께 가자고 한다. 조금 지친 나는 등에 지고 있는 가방을 어디다 맡겼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성산일출봉으로 가는 길 앞에서 안내를 하시는 노인분에게 여쭈었더니 바로 옆 가게에 맡기란다. 주인장이 나와 기꺼이 짐을 맡아주겠다고 한다. 그러나 세상에 공짜가 어디 있겠는가. 음료수는 필요하지 않느냐고 묻는다. 나는 가지고 있는 물이면 된다고 했다. 다만, 내려와서 한라봉 몇 개를 사겠다 했다. 그렇게 우리는 성산일출봉을 한층 가벼운 몸으로 올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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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산일출봉으로 가는 분위기는 그야말로 단체여행, 수학여행 분위기였다. 90%이상이 중국관광객들이었고 나머지가 수학여행 학생들, 한국인 일부, 일본인 일부였다. 특히 중국인들의 독특한 억양과 화법이 일출봉을 올라가고 내려오는 한 시간 내내 귀를 불편하게 했다. 정말 시끄러웠다는 얘기. 그래도 일출봉 정상에서 분화구를 내려다보는 기분은 말로 표현하기라 어려웠다. 그냥 지나치기 않기를 정말 잘했다 싶었다. 일출봉에서 내려온 우리는 올레길 표식인 리본을 찾지 못해 한동안 헤매야 했다. 어쩔 수 없이 스마트폰으로 길을 검색해서 길을 다시 찾을 수 있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성산일출봉 근처 한 상인이 자신의 앞길에 올레길 표식을 달지 못하게 했기 때문이었다. 1코스를 지나는 사람들이 나처럼 헤매는 사람이 곧잘 생기는 까닭이라는데, 한편으로는 이해도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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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우리는 광치기 해변으로 걷고 또 걸었다. 거기서 만난 표식. 4.3 유적지. 해변 쪽으로는 4.3 희생자들의 위령비가 있고 옆으로는 4.3 희생자를 기리는 강중훈의 시 ‘섬의 우수’가 있다. 바로 옆에는 2008년도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프랑스 J.M G. Le Clezio의 기행문 중 4.3과 강중훈 시와 관련한 글을 옮겨놓은 비도 있었다. 제주 어디서든 만날 수 있는 4.3의 흔적. 이 또한 찾고자 하는 이와 찾았던 이들의 눈에만 띌 것이라는 생각에 바람 찬 제주 광치기 해변 앞바다로 한숨이 절로 나왔다. 너럭바위와 하얀 모레와 검은 모레가 섞여 독특한 장관을 연출하는 이곳을 끝으로 아들과 나는 이틀에 걸쳐 걸은 1-1코스와 1코스의 마침표를 찍었다. 내일 이곳에서 우리는 2코스를 향할 예정이다.

 

아들과 2코스 스탬프를 찍고 짐을 잠시 내려놓은 나는 우리가 묵을 예정인 둥지황토게스트하우스 사장님에게 전화를 걸었다. 묵직한 목소리로 들려오는 게스트하우스 사장님이 직접 픽업을 오시겠다는 말씀을 듣고 우리 부자는 바람이 너무도 세찬 그곳에서 그렇게 20분을 보냈다. 마침내 봉고차를 몰고 오신 사장님의 도움으로 우리는 무사히 숙소로 옮길 수 있었다. 단순, 묵직, 털털한 모습에 산적 같이 생긴 사장님은 나보다는 우리 아들에게 더 관심을 보였다. 원래 둥지게스트하우스가 어떤 곳인지 사장님이 어떤 분인지 알고 왔던 터라 기대했던 대로 편안하게 대해 주셔 반갑고 고마웠다.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사장님은 우리 아들을 불러내 낚시를 하러 갔다. 저녁에 먹을 고기를 잡을 요량이었다. 이곳 저녁 식사는 게스트하우스 참가자 모든 사람들이 함께 모여 주어진 재료로 알아서 식사를 하는 곳이다. 재료는 무진장 제공된다. 1인당 1만원. 사장님이 낚시를 하러 갔다는 얘기는 오늘 식단에 회가 더 추가될 수 있다는 것. 그러나 아쉽게도 잡아 오는 데 실패했다고 한다. 생각보다 덩치에 비해 사장님이 허당처럼 보여 더 마음에 들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7시 30분쯤. 한 젊은 분이 식사 같이 준비하자고 연락을 해 왔다. 식당에 모인 사람들은 대략 8명. 사장님 친구들까지 찾아와 13~4명이 한데 모여 닭볶음탕과 달걀말이, 돼지고기 구이, 떡복이 등을 빠르게 준비했다.

    

서로 한 번도 보지 못한 사람들이 역할을 나눠 음식을 준비하고 마련하는 일이 매우 흥미진진해 보였다. 나와 아들은 음식을 만들지는 못했으나 식탁 세팅을 하며 일을 도왔다. 마침내 모인 모든 사람들이 술잔을 돌리며 인사를 하고 식사를 하고 이야기를 나눴다. 나중에는 각자 소개를 하며 여기에 온 까닭과 앞으로 가야할 올레길에 대한 이야기, 이런 저런 정보를 나누었다. 각기 다른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다 보니 서로에게 궁금한 점을 묻기도 하고 격의 없이 때로는 말도 놓아가며 웃음꽃을 피웠다. 서로 이해관계가 없는 사람들의 색다른 만남에 우리 아들도 흠뻑 빠져 있었다. 특히 사장님의 배려 속에 아들 준우가 함께 할 수 있어 더욱 고마웠다. 그렇게 제주의 나흘 째 밤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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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13.04.12 14:47

    첫댓글 박선생님 글솜씨가 정겹습니다. 잘 읽고 좋은 정보 기록해놓았다가 가을에 같은 코스로 제주에 한번 가야겠어요. 올래길 한 곳만 가보았거든요. 그때 꼭 모두 돌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여기 청주도 연일 춥고 바람이 세찹니다. 감기 조심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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