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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계사 – 삼신봉 – 초암능선
쌍계사 - 봉명산장,불일야영장
불일평전의 아침은 온갖 새들의 노래로 활기차다. 입구에는 장승 넷이 반갑다는 듯이 서 있다. 봉명산장 뒤 울타리 앞을 지키고 있는 백구녀석이 주인장 없는 산장에 찾아 든 불청객을 향해 짖어대는 것을 멈추지 않는다. 백구야 나를 몰라보는구나 하고 외치자 메아리가 크게 되돌아 온다. 봉명산장은 메아리가 잘 살 수 있는 산세를 지녔다. 산장앞 수도꼭지의 물은 조그맣게 만들어 놓은 연못으로 떨어져 내리고 있다. 세라컵을 꺼내어 커피를 탔다. 처마 밑에 붙은 시 몇 편을 읽고 뜰 앞을 거닐어 보았다. 평화로운 산장의 아침이다. 쳇바퀴 돌 듯 짜여진 직장생활을 벗어나 휴가와 휴일, 마음이 한껏 여유롭다. 산장 마당에는 음료수와 맥주 캔 몇 개가 반쯤 언 물위에 떠있다. 그 가장자리 위엔 종이박스에 천원짜리 지폐 몇 장과 100원짜리 동전 이 수북이 쌓여있다. 먹고 싶은 사람은 여기에 돈을 놓고 스스로 마시면 되는가 보다. 산장에서 빚은 약초술을 팔아주고 싶었지만 주인장이 벌써 올라올리는 없다.
산을 오르다 수염을 더부룩하게 기른 산장지기를 만났다. 내 배낭을 보더니 세석까지 10시간은 걸리겠단다. 세석에서 점심을 해야겠다는 생각이었는데 나를 믿어보아야 하나.
구례구에서 구례터미널에, 그리고 쌍계사 입구까지 어둠 속을 달려 온 버스는 나를 비워내고 화개로 빠져나가고, 나는 쌍계교를 건너 랜턴을 밝힌 채 쌍계사로 들어섰다.등산로는 일주문, 팔영문을 지나 왼쪽으로 나 있는 옥천교를 건너 돌계단을 오르면 오른쪽으로 산길이 있다. 신라 성덕왕 23년(724) 의상의 제자 삼법이 창건하였다는 쌍계사의 옛 이름은 옥천사였다.
이번 산행의 들머리는 구례터미널에서 결정했다. 화엄사쪽을 제외하고 가장 빠른 버스가 쌍계사행 이었다. 묘향암에서의 1박을 생각해서 피아골을 생각해 보았으나 첫차가 6시 40분에 있고, 화엄사는 11월에 오른 적이 있어 피하는 바람에 삼신봉 능선이 있는 쌍계사가 나를 끌었다. 이 작은 평원을 뒤로하고 몇 분을 걸어가면 지리에서 보기 드물게도 절벽이 있는 계곡이다. 지리산에서 가장 크다는 불일폭포를 품은 계곡 비탈에 적송이 푸르르다. 이번 추위에 불일폭포는 얼어 붙었지만 그 속을 흐르는 물소리의 울림이 크다.
상불재 – 삼신봉
계곡을 따라 상불재로 오르는 길에 땀이 흘러 반소매만 걸쳤다. 오른쪽 무릎이 신통치 않다. 스틱을 빼내어 사용해 보았다. 나는 좀처럼 스틱을 사용하지 않는다. 등반속도가 빠른 나에게는 스틱은 부담이다. 배낭에 넣고 다니다가 필요한 사람에게 내어주는 것이 보통이었다. 이번엔 뭔가 다른 조짐이 보인다. 상불재에서 바라본 반야봉, 왕시리봉, 불무장등 능선이 햇살을 받아 시원스럽다. 오랜만에 신고온 등산화가 부담스럽다. 두시간여의 등반끝에 내삼신봉에 도착했다. 오른쪽으로 천왕봉이 가까이 다가선다. 키를 넘은 산죽 길을 지나고 단천골로 빠지는 희미한 등산로도 보인다. 청학동에서 올라온 능선과 만나는 삼신봉이다. 삼신봉은 내삼신봉 보다 높이가 낮지만 예로부터 소위 도인들이 많이 몰렸다는 청학동이라고 불리는 묵계리에서 상불재와 삼각을 이루는 봉우리로서 지리 주능선인 세석으로 이어진다. 그런 생각을 해서인지 능선을 지나면서 뭔가 나를, 나의 배낭을 끌어당기는 기분이었다. 청학동에 내려가 도나 닦으라는 신의 계시인지. 입맛이 제법 까다로워 밑에서는 마시지 않던 보성 봉지녹차 맛이 이렇게 맛있을 줄이야, 보온병에 받아온 물을 부어 마셨더니 힘이 솟아난다. 차 한잔에 온갖 상념을 삭이고 있는데 밑에서 부스럭 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청학동에서 올라온 세 명의 등산객이다. 차는 나누어 마실 수 없고 사탕을 하나씩 건네주고 먼저 자리를 떴다. 삼신봉- 음양수 세석까지는 비교적 편한 능선길이 이어진다. 여기도 군데군데 산죽이 빽빽이 들어차 있어 잎새와 나뭇가지가 팔을 긁는다. 한벗샘에서 점심 겸 저녁을 생각했는데 능선에서 한참을 내려가야 샘이 있다. 고픈 배를 움켜쥐며 차 한잔을 마시고 그냥 지나쳤다. 새벽 5시 반 이후로 사탕 몇 개와 초코렛 한 개, 차 몇 잔을 마시고 계속된 산행에 허기가 밀려든다. 등반 포기하고 오늘 밤에 한신계곡을 타고 백무동 나의 단골집에 가고싶다. 송어회 한접시에 동동주와 산채비빔밥으로 배나 실컷 채우고 싶다. 오른쪽 무릎이 불안하여 속도를 낼 수 없다.
음양수 샘터
음양수 샘터를 발견하니 살 것 같다. 원체 맛있는 물이지만 오늘따라 그 맛이 좋다. 배낭을 부려놓고 버너부터 켰다. 바람이 세차게 불어댄다. 코휄에 물을 붓고 된장 한 숟갈을 풀었다. 거기에 약간의 김치와 라면 반 개, 햄 반 통을 숟가락으로 잘라 넣었다. 산에서 힘 쓸려면 된장이 최고다. 그 사이 세끼 분량의 쌀을 씻어 물에 불였다. 서산을 벌겋게 달군 석양, 이미 낙조가 시작되고 있었다. 바위로 올라가 거센 바람을 맞으며 지는 해를 감상하면서 한편으로는 서둘러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맛을 음미할 틈도 없이 가져온 음식들을 입에 넣었다. 내일을 위해 배를 채워야 한다는 생각밖에 없다. 어두워지기 시작하여 짐을 챙겼다. 배가 따뜻해 지자 아까 품었던 백무동 음식점에 대한 생각은 온데 간데 없구나. 사람은 이렇게 간사한 것이다. 조그마한 배를 채우기 위하여 우리가 이렇게 살아가고 있네.
세석산장
바로 위가 세석인데 왜 이리고 멀게 느껴지는지. 눈이 제법 쌓인 길을 걸었다. 해가 지고 바람이 불어 차갑다. 세석산장에 들어서니 예약을 하고 다녀야 한다는 관리공단 직원의 이야기다. 대꾸할 가치도 느끼지 않고 배정된 1호실에 짐을 풀었다. 일찌감치 자 두어야 겠다. 산장에는 10여명이 자리를 잡았다. 내일 새벽 일찍 눈이 뜨이면 천왕봉 일출을 볼 수 있을 것 같다.
세석 – 장터목
굳이 서둘러야 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여 침상에서 꾸물대다 8시가 되어야 세석을 출발하게 되었다. 필름 1통을 4,000원에 구입했다. 바람만 없다면 햇볕이 따뜻한 겨울날이다. 양지가 나오면 마음껏 쉬었다. 아침을 머금은 산군들이 그 특유의 색상을 갖고있다. 장터목산장 취사장에 들어가 아침 겸 점심을 한가롭게 준비했다.혼자서 준비한 식사에 외롭다는 말이 더 어울릴까. 라면을 끓이고 어제 저녁 해 둔 밥을 먹었다. 보온병에 따뜻한 차도 채웠다. 끓인 물이 남아 작은 코펠에 커피를 타서 그걸 다 마실 때 까지 산장 밖에 나가 온갖 여유를 다 부려보았다.
천왕봉
천왕봉으로 오르는 길에 등산객을 만날 수 없었다. 칠선계곡 하산코스가 나타나자 그 곳으로 내려서고 싶었다. 그러나 무릎을 생각해야 했다. 천왕봉에 올라 치밭목으로 하산할까 하다 차편도 그렇고 유평까지의 지겨운 등산을 해야 한다는 생각에 일단 포기하고, 중봉을 지나면서 추성리로 내려서기로 결정했다.
중봉 – 하봉
중봉을 내려가면 치밭목 이정표가 서 있고 하봉으로의 등산로는 통제되어 있다. 벌금 100만원. 눈이 제법 쌓여있다. 하봉으로 내려서는 능선을 탔다.
중봉에서 30여분을 가면 치밭목으로 가는 이정표가 또 서있다. 조갯골과 만나는 등산로다. 능선길이라 혼동할 염려는 없지만 눈이 쌓이고 바람이 거세게 불어 발자국이 없는 길이 몇차례 나왔다. 하봉에는 봉우리를 알리는 이정표가 없다. 하봉은 등산로 약간 좌측으로 앉아있어 그냥 지나칠 수 있다.
초암능선
하봉에서 5분여를 내려가면 큰 바위군을 만나는데 왼쪽으로 돌아 내려서면 초암능선이다. 직진한다면 쑥밭재, 두류능선, 얼음골로 이어지는 등산로다. 초암능이 비교적 쉬울 것 같아 왼쪽으로 방향을 잡아 내려섰다. 리본이 몇 개 펄럭이고, 가파른 길에는 밧줄이 매어져 있다. 초암능은 최후의 빨치산 南道富가 1954년 체포된 곳이다. 우리의 불행했던 과거사의 한 현장을 지나고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숙연해 진다. 그들이 숨어 지내던 곳으로 생각되는 양지바른 바위틈들을 지났다. 바위에 하얗게 세 개의 동그라미가 그려진 표적지(?)가 아직까지 희미하게 흔적을 간직하고 있다. 눈 위의 발자국과 리본을 확인하면서 능선으로 붙었다. 몇 차례 계곡으로 빠질뻔했지만 다시 길을 확인하곤 등산로로 들어섰다. 언제라도 힘이 부치거나 해가 지면 비박을 하리라 생각하면서 서두르지 않았다. 좁은 등산로의 나뭇가지들이 어찌나 배낭을 잡아당기는지, 이 곳 능선과 골짜기를 헤매고 있는 미완의 영혼들이 나를 붙잡는 것은 아닌지 나의 머리는 빨치산이 활동했던 그때를 그려보는 생각들로 가득했다. 초암능선엔 이정표가 있을 리 없다. 하필이면 분간이 어려운 곳에는 리본이 없는 경우가 있다. 몇 군데를 제외하고는 그런대로 리본이 잘 붙어있다. 광주의 백**씨가 매직으로 적은 추성리 방향 표시 리본이 도움이 되었다. 4시가 넘어 배낭의 무게를 줄여야겠다는 생각에 찬 밥을 김치와 김에 먹어치웠다. 맛이 괜찮았다. 지리 주 능선위로 어린 아이 키 만큼 해가 남아있다. 수통의 물과 휘발유를 비워버릴까 하다가도 비박을 하게 된다면 필수품이라 그대로 배낭에 쑤셔넣었다. 추성리 하산 1시간 전쯤에 내년 봄 고로쇠 채취를 위한 작업을 마치고 칠선계곡에서 능선으로 붙은 네 사람을 만났다. 나의 진행이 느리자 그 중 한 사람이 내 배낭을 바꿔 멨다. 배낭무게가 아니라 무릎이 문제였다. 아파오는 다리를 끌고 어렵게 초암목장 철책 옆을 내려와 계곡을 건넜다.
추성리
배낭을 메어준 동네 토박이 선두용씨와 추성리 가게에서 소주를 마셨다. 청국장에다 오랜만에 마시는 소주가 단맛이었다. 몇 잔을 털어 넣었다. 오후 늦은 시간에 함양 가는 버스는 있는데 마천,인월행은 없단다. 행정구역이 함양이어서 마천행은 하루에 두대밖에 없다나. 가게 아주머니에게 택시 콜을 부탁했다. 오른쪽 무릎이 걱정되었다. 삼신봉에서부터 배낭을 끌어당기는 것이 있었는데 그것은 무리하지 말라는 뜻이었고, 초암능선의 붙잡음은 하루쯤 쉬어가라는 것은 아니었는지 생각해본다.
Dec 21, Sun, 2003 23:50 서울역 – 구례구역 w20,000-
Dec 22, Mon, 2003 05:05 구례구 하차, 구례터미널- 화엄사행 버스 대기중 750원
05:30 터미널 식당 재첩국 5,000원, 화장지 600원
06:10 구례 – 쌍계사 1,600원
06:40 쌍계교 하차 쌍계사 매표소 Free , 입장료 3,100(공원 1,600 문화재 1,500)
07:00 쌍계사 일주문 쌍계사- 삼신봉 9km
07:30 국사암 불일폭포 3거리
07:55 이정표 쌍계사 1.2km, 불일폭포 1.2km, 세석산장 15.3km
08:20 鳳鳴山房
10:45 상불재, 불일폭포 3.1km, 삼신봉 4.1km, 청학동 2.5km
11:40 넓은 공간(야영적지), 세석 10.7km, 쌍계사 5.8km 오른쪽으로 이정표 없는 등산로(청학동으로 이어질 듯)
13:00 三神山頂 1354.7m, 內三神峯
13:45 三神峯 1,284m 세석7.5km,청학동 .5km,쌍계사 8.9km
14:50 한벗샘 청학동 5.2km, 세석 4.8km, 한벗샘 40m
16:15 대성교 삼거리 대성교 6.9km, 세석 2.2km, 삼신봉 5.3km
16:45 음양수 샘터, 식사(점심 겸 저녁, 초라한 晩餐)
17:50 음양수 출발
18:20 거림, 의신 갈림길
18:30 세석산장 1호실 10번 침상 배정
Dec 23, Tue, 2003 08:00 세석산장 출발
09:30 장터목, 식사(朝, 中食)
10:30 장터목 출발
11:30 천왕봉 1,915m
12:10 중봉 1,874m,천왕봉 0.9km,대원사 10.8km,치밭목 3.1km
12:45 치밭목 갈림길 천왕봉 1.7km, 치밭목 1.8km
13:10 하봉 1,781m, 5분후 암능에서 왼쪽으로 초암능선 이어짐
13:45 가파른 경사길 밧줄 하산후 휴식
15:15 능선넘어 추성리 하산 우측으로 이어짐, 뒤에는 지리 주능
16:00 어제밤에 담아둔 밥과 김치 먹음, 짐 줄이고 하산후 시간 없을 것 같아
16:30 추성리 고로쇠 작업팀 4명 만남 (선두용, 055-962-3052, 함양군 마천면 추성리)
17:40 추성리 본동 가게도착, 소주 4병 10,000원, 2병은 여유로
(초암농장 흑염소 방목 울타리옆 용소와 국골 만난지점으로 나와, 계곡 건너 길 따라 나오면 국립공원 매표소 부스 있음)
18:10 추성리 출발 – 마천Taxi 5,000원
18:40 마천 – 인월 900원, 엿100원, 게토톱 2,500원, 우유 400원
19:10 인월 – 남원 2,200원 버스10분 연착
20:11 남원 – 순천 열차 4,800원, 15분 연착
21:30 순천역 착
22:30 고흥 집 도착(용오 차 이용)
Dec 22, Tue, 2003 13:30 고흥 – 조성 Taxi 5,000원 조성 – 벌교 Bus 900원 벌교 – 광주 Bus 5,900원
16:25 광주 – 서울 고속버스 13,000원 21:00경 강남터미널 착
첫댓글 일정기록의 맨 마지막 Dec 22,Tue는 Dec 24,Wed로 바로잡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