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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7대 불가사의 선정
연합뉴스 입력 : 2007.07.08일 08:23
민간단체인 세계 신(新) 7대 불가사의 재단은 7일 ▲ 중국의 만리장성 ▲ 페루의 잉카 유적지 마추픽추 ▲ 브라질의 거대 예수상 ▲ 멕시코 치첸 이차의 마야 유적지 ▲ 로마의 콜로세움 ▲ 인도의 타지마할 ▲ 요르단의 고대도시 페트라를 신 7대 불가사의로 선정, 발표했다.
스위스의 영화제작자인 베르나르드 베버가 주도하는 재단은 이날 오후 포르투갈 리스본의 경기장에서 대규모 행사를 열어 신 7대 불가사의 선정 결과를 공개했다. 최종 선정 결과는 전 세계에서 1억여 명이 인터넷과 전화를 통해 참여한 투표 결과를 종합한 것으로, 라틴 아메리카에서 3군데나 신 불가사의로 채택돼 눈길을 끌고 있다.
이날 공개 쇼에서는 미국의 여배우 힐러리 스웽크, 인도 여배우 비파샤 바슈, 영국 배우 벤 킹슬리, 가수 제니퍼 로페즈, 성악가 호세 카레라스 등이 공연을 펼쳤다.
선정작업은 베버의 주도로 1999년 시작돼 200 군데에 이르는 애초의 후보지가 지난해 초에 21군데로 좁혀졌다. 투표는 지난 6년간 진행됐으나 6일 마감을 앞두고 최근 몇 달 사이에 집중됐다고 AP 통신이 전했다.
21개 최종 후보에는 그리스의 아크로폴리스, 터키의 하기아 소피아 성당, 러시아의 크렘린궁과 성 바실리 성당, 캄보디아의 앙코르와트, 스페인의 알함브라 궁전, 칠레 이스터섬 석상, 시드니의 오페라하우스 등도 포함됐었다.
베버는 문화유산 보존 및 복원을 통해 문화 다양성을 증진하는 것이 이번 프로젝트의 목표라며 프로젝트에서 나온 순수입의 50%를 문화유산 복원 노력에 쓰겠다고 밝혔다. 재단은 2000년 탈레반에 의해 파괴된 바미얀 부처상을 복원하는 작업을 우선 과제로 삼고 있다.
베버는 이날 행사에서 8일부터는 신 7대 자연 불가사의를 선정하는 캠페인을 시작하겠다고 선언해 관심을 끌었다.
◇ 중복투표 가능한 선정방식에 문제 제기
일부 문화 전문가들은 고대의 7대 불가사의 선정을 흉내 낸 이번 선정 작업이 공정하지 못하다고 지적했다고 AFP 통신은 전했다.
유네스코 소속의 인도 문화 전문가인 니콜 볼로미는 “이번 캠페인은 민주적이거나 과학적이지 않다”며 일부 외양이 좋은 유적지에만 관심이 쏠리게 하고 보존 위험에 처한 유적들은 외면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중복 투표를 막을 방법이 없어 공정한 결과가 나올 수 없다는 것이 이번 투표의 최대 문제점으로 꼽힌다.
선정 작업이 화제를 불러일으키자 자국의 유적을 신 불가사의 명단에 올리려는 각국의 신경전도 펼쳐졌다.
중국의 만리장성학술원은 지난 5월 자국인들에게 인터넷 투표에 참여하라고 촉구했고, 앙코르와트를 가진 캄보디아의 관리들은 많은 자국민이 인터넷을 사용하지 않는 점을 들어 앙코르와트가 선정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내다봤다.
이집트의 한 전문가는 기자 피라미드만이 현존하는 유일한 불가사의라는 점을 강조하면서 신 불가사의 선정 작업은 관광 홍보용 이벤트라고 일축하기도 했다.
재단 측은 중복 투표하는 것을 막는 확실한 방법이 없었다고 인정하면서도 그러나 세계 모든 나라에서 이번 투표에 참여했다고 밝혔다.
전 세계를 아우르는 공식 문화 기구인 유네스코 측은 이번 선정 행사는 투표한 사람들의 의견만을 반영할 뿐이라며 거리를 뒀다. 유네스코는 이미 851군데를 세계 유산으로 등재했다.
고대에 선정된 7대 불가사의는 ▲ 이집트의 기자 피라미드 ▲ 메소포타미아 바빌론의 공중정원 ▲ 올림피아의 제우스 상 ▲ 에페소스의 아르테미스 신전 ▲ 할리카르나소스의 마우솔로스 영묘 ▲ 로도스 항구의 크로이소스 거상 ▲ 알렉산드리아의 파로스 등대 등이다. 이 중에서 현재까지 남아 있는 것은 기자 피라미드뿐이다.
1. 만리장성(The Great Wall Of China)
중국 네티즌의 몰표 덕분에 1위를 차지한 만리장성은 길이가 무려 6000km나 되는 어마어마한 성이다. 너무 길어 한눈에 그 전체를 다 볼 수 없을 정도다. 대개의 관광객은 베이징 북방 80km 거리에 있는 바다링(八達嶺)에 올라 그 일대를 둘러보는 것에 만족한다. 이곳은 1987년 ‘베이징 16경(景)’의 하나로 선정된 데 이어 1992년에는 만리장성의 백미로 지정됐을 만큼 명소다. 교통이 편리하고 풍광도 뛰어나다.
그곳에서 만리장성은 남과 북으로 나뉜다. 북성은 잘 지어졌고 경관이 아름답다. 성벽은 폭이 넓어 말 4필이 함께 달릴 수 있을 정도다. 그 길을 따라 오르면 총안(銃眼)이 있는 여장(女墻·성 위에 낮게 쌓은 담)과 돈대(망루), 봉화대를 볼 수 있다. 어떻게 이 높은 곳에 이토록 높고 튼튼한 성벽을 끝도 없이 축조했는지 놀라울 따름이다.
해발 888m 지점에는 마오쩌둥(毛澤東)이 직접 ‘장성에 오르지 않은 이는 진짜 사나이가 아니다’고 쓴 만리장성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사람들은 이 비석 앞에 서서 기념사진을 찍는다. 어떤 이는 퍼포먼스를 벌이기도 한다.
하지만 이곳까지 걸어서 오르는 일은 쉽지 않다. 나이든 사람이나 아이들, 그리고 시간에 쫓기는 여행객들은 케이블카로 대신한다. 케이블카로는 정상까지 10분이면 족하다. 하지만 장성의 이모저모를 보고 싶다면 힘들더라도 제 발로 걸을 것을 권한다.
이곳에선 바다링 주위의 산세와 그 산세를 타고 끝없이 이어지는 장성의 위용이 발아래 펼쳐진다. 장성은 서쪽으로 달리다 타클라마칸 사막 속의 자위관(嘉틾關)까지 이어진다. 장성 축조의 목표는 단 하나, 북으로부터의 공격에 대비하는 것이다.
만리장성의 역사는 중원을 통일한 중국 최초의 황제 진시황 때부터 시작된다. 그가 제국의 경계를 확고히 하고 북방 유목민족의 침입을 차단하겠다는 목적에서 막대한 인력과 물자를 동원, 춘추 6국(國)이 제각기 쌓은 성벽을 하나로 연결해 만리장성이란 인류사에 길이 남을 역작을 만들어냈던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성은 명(明)왕조가 크게 손보고 증축한 것이다. 명나라야말로 북방 몽골족과 여진족을 상대로 생존을 건 싸움을 벌였기 때문이다. ‘생존을 향한 욕망보다 더 강한 에너지가 어디 있겠는가.’ 나는 장성을 보며 그런 생각을 했다. 조망이 좋은 바다링에는 케이블카가 운행된다.
2. 마추픽추(페루)
안데스 산맥의 고대 잉카 성곽 도시가 있던 터. 높이 2400m에 돌로 만든 성곽과 중앙 원탑 및 계단 터가 남아 있다.
공중도시, 잊혀진 도시 등으로 불리는 마추픽추 유적은 쿠스코에서 우르밤바 강을 따라 114㎞ 떨어진 지점에 있다. 높은 봉우리의 정상을 다듬어서 쌓은 도시다. 아래쪽에서는 보이지 않고, 계곡의 반대쪽은 깎아지른 절벽이어서 사람이 접근할 수 없다.
쿠스코에 에스파냐의 침입을 받자 잉카인들은 이를 피해 최후의 왕국 비루카밤바를 건설하였다. 마추픽추는 비루카밤바의 비밀도시로, 잉카의 정교한 건축기술을 엿볼 수 있는 많은 건물들이 남아 있다. 주위를 둘러싼 뽀족한 봉우리들이 마추피추를 외부 세계와 격리시키고 있다.
3. 리오데자네이로의 거대 예수상
리우데자네이루 시 코파카바나 해변 맞은편 코르코바두 언덕 정상에 자리잡은 예수상은 높이가 38m, 무게 1145 t에 달한다. 브라질인 에이토르 다 실바 코스타가 설계하고 폴란드계 프랑스 건축가 폴 란도프스키가 1931년 10월 12일 독립 100 주년을 기념해 세웠다. 프랑스에서 만들어진 뒤 브라질로 옮겨져 조립됐다.
4. 치첸이차 피라미드(Pyramids of Chichen Itza)
멕시코 만을 향해 고개를 내민 유카탄 반도의 중심도시 메리다에서 버스로 2시간 정도 달리면 치첸이차가 나온다. 이곳은 8~13세기 번성했던 마야 문명의 중심지다. 그 가운데서도 명물은 거대한 계단식 피라미드로, 흔히 카스티요(에스파냐어로 城) 또는 쿠쿨칸 피라미드라고 한다.
쿠쿨칸은 ‘깃털 달린 뱀’이란 뜻. 유카탄 반도에서 가장 흔한 게 뱀이다. 마야인들은 이 뱀을 땅의 비옥함을 상징한다고 하여 신과 같은 존재로 모셨다. 그래서 뱀의 형상을 한 피라미드를 축조했던 것이다.
치첸이차를 비롯한 유카탄의 유적지는 아무것도 없는 광활한 밀림 한복판에 세워져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비가와도 강이 되어 흐르거나 물이 고이지 않고 지하로 스며들어 버리는 지형이기 때문에 식수의 확보는 유카탄의 마야인들에 있어서는 중요한 문제였다. 때문에 비의 신 '챡몰'은 마야인들에게 있어서 상당히 신성시 되었다.
6~8세기에 걸쳐서 번성한 카랄코와 수도원을 중심으로 세워진 구(舊)치첸 이차와 성과 전사의 신전, 축구장 등을 중심으로 10세기경에 세워진 북쪽의 신(新)치첸 이차 로 나누어진다. 이후 황폐화되었던 이 유적지는 스페인탐험대에 의해 발견되어지고 이후 1900년경부터 발굴과 연구가 거듭되어, 현재는 멕시코 정부의 투자 덕분에 관광지로 깨끗하게 정비되어 있다. 유카탄 반도의 밀림 속에는 수많은 마야유적지가 점재되어 있으나 치첸 이차는 200년 이상에 걸쳐서 유카탄의 중심지로서 번영을 누려 지금도 그때의 영화를 느끼게 할 만한 장대한 유적이 남아있다. 유적군은 마야 독자적인 특성이 나타나있는 구 치첸 이차와 중앙고원의 톨테카 문명과 융합된 신 치첸 이차의 두 구역으로 구별이 된다. 7세기에 융성한 치첸 이차는 얼마 못가 쇠퇴하여 한번은 역사의 무대에서 완전히 사라지지만 10세기에 들어서면서 중앙고원의 패권을 잡은 전투부족 톨테카인과 손을 잡고 다시 한 번 영광을 누리게 된다. (그 외에도 치첸 이차와 톨테카인과의 관계에 대해서는 톨테가인들이 정복을 했다는 설, 치첸 이차인들은 원래가 톨테카인 중 도래인이었다는 설 등 다양하다.) 이렇게 해서 탄생한 마야 톨테카문명은 신 치첸 이자의 유적에 잘 나타나 있어서 기존의 마야문명에서는 볼 수 없었던 비의 신 챡몰, 호전적인 전사의 조각, 제물로 희생된 해골, 깃털달린 뱀 쿨쿨칸의 조각 등을 볼 수가 있다. 그 후 번영을 누리던 치첸 이차도 13세기 초 마야판족의 침입에 의해 멸망하여 스페인탐험대에 발견되기 전까지 울창한 밀림 속으로 파묻히고 만다.
5. 콜로세움(Coloseum)
콜로세움(이탈리아): 이탈리아 로마에 있는 투기장. 높이 48 m, 직경의 긴 쪽은 188 m, 짧은 쪽은 156 m, 둘레는 527 m의 타원형 구조
로마시대의 문화유산이 집중돼 있는 팔라티노 언덕 아래의 포로 로마노(로마 광장)와 이웃한 콜로세움은 로마 땅 위에 건설된 최대 규모의 축조물이다. 정식 명칭은 ‘암피테아트룸 플라비움’. 그런데 콜로세움으로 바뀐 것은 원래 이 자리에 네로 황제의 거상, 즉 콜로소(Colosso)가 서 있었기 때문이다.
콜로세움은 플라비스 왕조가 로마 시민에게 오락장소를 제공하기 위해 80년에 걸친 공사 끝에 축조한 원형 투기장이다. 지름이 긴 곳은 188m, 짧은 곳은 150m, 둘레가 527m, 높이가 57m로 수용인원이 5만명에 달한다. 당초 4층 구조였다고 하나 지금은 2층 또는 3층만 남은 곳이 더 많다.
육중한 벽체 사이로 난 입구를 통해 안으로 들어가자 당초 마루였던 바닥은 없어지고 그 아래에 설치돼 있던 야수들의 우리만이 앙상한 뼈대를 드러내고 있다. 마치 해골을 보는 듯하다. 객석 한쪽에는 그때 희생된 기독교도를 기리기 위해서인지 십자가가 세워져 있다. 많은 사람이 높낮이 심한 객석을 가로질러 그곳으로 간다.
당시에는 뜨거운 햇볕을 막기 위해 이 극장에 천막을 씌워 실내극장으로 만들었다고 하는데, 그게 사실이라면 그 기술도 대단하다고 할 수밖에 없다.
6. 타지마할((Taj Mahal) )
인도의 아그라에 있는 이슬람교 묘당.
무굴 제국의 제5대 황제 샤자한이 왕비를 위하여 세움(1632년~1653년). 세계에서 가장 화려하다는 평을 받는다.
‘백색 대리석의 진혼가’ 또는 ‘세계 최대의 사랑의 기념탑’이란 별명을 가진 타지마할은 16세기 북인도를 지배한 무굴 왕조의 제5대 왕인 샤 자한이 사랑하던 왕비 뭄타즈 마할을 기려 축조한 것이다.
22년간 막대한 돈과 인력을 들여 완성한 타지마할은 양파 모양의 지붕과 동서남북 네 곳에 마치 경비병처럼 서 있는 미라레트(첨탑)가 인상적이다. 건물은 좌우로 기막힌 대칭을 이루는데, 그 앞 긴 연못에 비쳐 좌우상하로 환상적인 대칭의 세계를 펼쳐 보인다.
건물은 온통 하얀 대리석으로 이루어졌지만 눈이 부시진 않다. 눈에 조금도 부담을 주지 않는 투명한 하얀색이라 그런 것 같다. 묘당에 오르기 위해선 신발을 벗어야 한다. 맨발에 닿는 대리석 촉감은 무척이나 부드럽다. 이 하얀 대리석은 시시각각 달라지는 햇빛을 그대로 받아들여 특유의 색깔을 빚어낸다. 새벽녘에는 보랏빛과 분홍의 장밋빛, 그리고 억제된 황금빛을 머금으며, 이른 아침 안개가 피어오를 때에는 건물 전체가 공중으로 떠오르는 것처럼 보이고, 낮에는 화사한 흰색을 토해낸다. 그러나 가장 환상적인 정경은 보름달이 비치는 밤에 드러난다.
사리를 걸친 인도 여성들은 하얀 대리석 바닥 위로 춤을 추듯 사뿐히 걷는다. 그 모습도 아름답다. 벽을 자세히 보니 꽃과 아라비아 서체가 새겨져 있다. 덕분에 단조롭지 않다. 이게 이슬람의 미학인 듯싶다. 묘당 뒤로는 야무나 강이 흐른다. 그곳에선 빨래하는 여인들을 볼 수 있다.
영묘의 내부로 비치는 빛은 격자창을 통해 순화돼 훨씬 부드럽다. 마할 왕비와 샤 자한의 석관은 그 아래 지하에 있는데 모두 상아빛을 발한다. 왕비의 것에는 꽃무늬가 새겨져 있어 여성의 것임을 나타냈고, 왕의 것에는 그런 게 없다. 그렇지만 ‘피에트라 두라’라 부르는 상감세공의 손길이 가해져 고급스러움이 그대로 묻어난다.
7. 페트라(요르단)
요르단 남부에 있던 고대 도시. 나바테아 왕국의 수도였다
페트라는 아랍계 유목민인 나바테아인이 세운 고대도시이다.
그리스어로 ‘바위’라는 뜻의 페트라는 아프리카의 탄자니아에서 시작해 북쪽의 갈릴리바다로 이어지는 천연의 지형 속에 숨어있다.
페트라를 세운 나바테아 왕국은 BC 1세기~AD 1세기에 전성기를 이루었으며, 자체적으로 화폐를 유통했고 문자를 사용했던 고대왕국이었다.
나바테아 사람들은 붉은 사암으로 이루어진 절벽을 깎고 파내 집과 무덤, 극장과 목욕탕, 시장 등을 갖춘 하나의 도시를 만들었다.
페트라는 물이 풍부하고 전략적으로 외적의 침입을 막기 좋은 난공불락의 요새였다.
남부 아라비아와 지중해 사이의 중계무역을 담당했던 나바테아인들은 페트라를 통해 수많은 상인들이 거쳐 가는 무역로를 장악하여 엄청난 부와 번영을 누렸다. 그러나 106년 로마 제국에 의해 멸망됐다
일부 출처 : http://kr.blog.yahoo.com/humus306010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