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포동(聲浦洞)
-성포동은 법정동 이름이며, 행정동도 성포동이다-
조선시대에는 안산군 군내면 성곶포촌리(聲串浦村里)였다가 조선 말기에 성포리(聲浦里)로 바뀌었다. 1912년 2월 5일 군내면 점성리(占星里)와 성포리를 통합하여 성포리가 되었다. 총독부령 제111호에 따라 1914년 3월 1일 안산군이 시흥군(始興郡)으로 통합되었고, 4월 1일 군내면이 수암면(秀岩面)으로 통합ㆍ개칭되어 시흥군 수암면 성포리로 되었다. 그 후 법률 제3798호에 의거 1986년 1월 1일 안산시 성포동이 되면서 옛 점성리 지역은 일동(一洞)으로 분리되어 나갔다. 이곳은 안산군의 어업의 전진기지로, 성곶포(聲串浦)가 있던 곳으로, 만선 귀향하는 어부들의 소리가 컸다 하여 성포리로 불리다가 성포동이 되었다. 성포동의 자연취락은 신도시개발 때 모두 폐동되어 옛 성포리(성머리·독주골)는 예술인아파트·주공고층아파트·삼성홈플러스·시외버스터미널 등으로 변모되었다.
• 갱변마당
현 상록구노인회관 근처(황용덕씨 집) 앞에 있었던 400여 평 정도 되는 마당. 해안가에 접해 있어 갱변마당이라고 하였고 노적봉 당제를 지낼 때 이곳에 차일을 치고 멍석을 깔고 굿마당을 펼쳤었다.
• 노적봉(露積峰)
노적가리를 쌓은 모습과 같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며 해발 143m의 산이다. 노적봉은 가사미산(可使美山)으로 불려오다가, 일제강점기 때부터 쓰인 이름이라고 하여 1994년 9월에 조선시대부터 써온 지금의 이름으로 개칭한 것이다. 일설에는 가사미산은 일본말이 아니라 갓[笠]을 닮은 산이라 갓뫼라고 했다가 연음되어 가사미가 되었고, 여기에 산이 붙어 가사미산이 된 것이라는 주장도 있으며, 마을의 가장자리에 있다고 해서 가사미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일부 있다.
• 독주골•독수골•독지골
이 마을은 성머리에서는 아랫말이라 부를 만큼 성머리와 한 마을이었는데, 취락이 형성되기 전 노적봉 아래에 샘 우물이 하나 있어 물맛이 좋으므로 성머리 주민들이 식수로 이용했다고 한다. 그 후 조선 말엽에 취락이 이루어지자 우물 하나 있던 곳이라 하여 ‘독수골[獨水谷]’이라 했다가 후대에 내려오면서 ‘독주골’로 불렸다 한다. 일설에는 이 마을의 첫 입주자인 여주이씨 후손의 호가 ‘독지(獨志)’였으므로 ‘독지골[獨志谷]’이라 칭했다고 하나 여주이씨 후손 중에는 독지란 호를 가진 사람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폐동 때(1982년)의 마을 호수는 35호였으며, 현재는 연립주택이 들어서 있다. 이 마을에서는 해마다 음력 1월 15일경 노적봉에서 도당제(都堂祭)를 지냈다.
• 성머리[聲頭]
고잔동 태봉과 독주골 사이에 있던 마을이 성머리[聲頭]이다. 현재는 마을 앞에 안산천(옛 개교천)이 흐르지만, 옛날에는 성곶포(聲串浦)라는 포구가 있었다. 이곳은 현 스타프라자에서 서남쪽으로 약 300m, 남쪽으로 약 400m에 이르는 지역이 나루터(성머리 나루터라 칭함)였는데, 풍수로 보아 성포리 머리 부문에 해당되었다고 한다. 일제강점기 지도에는 성두(城頭)로 표기되어 있다.
성머리 어민들은 한국전쟁 직후 방조제의 건설로 바닷물이 들어오지 않아 선박의 출입이 끊기자 현 사동의 구라와 본오동의 배옷 등지로 생업을 위해 떠났다. 그 후 나루터는 농경지로 변모되어 농촌이 되었다.
여주이씨, 영월신씨, 파주염씨의 세거지였던 이 마을은 76호가 있었다고 하는데, 1979년에 폐동된 후 예술인아파트를 비롯하여 주공4단지·주공10단지로 변하였다. 폐동 전까지만 해도 마을에서는 해마다 음력 1월 15일경이면 노적봉 중턱에서 마을의 안정을 기원하는 도당제(都堂祭)를 지냈다.
• 장승백이
남쪽과 북쪽 두 군데 있었으며 북쪽에는 북방흑제대장군 남쪽에는 남방적제여장군이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는 장승이 있었다. 북쪽은 현 주공11단지 부근이고 남쪽은 시외버스터미널 부근에 있었다.
• 헛가마자리
도깨비가 많이 나타나던 자리이다. 소가 그곳을 지나갈 때면 발을 사뿐사뿐하며 걸었고 방울도 흔들지 않고 숨죽여 지나가던 자리이다. 지대가 우묵하고 습기가 많아 음침한 기분을 느끼게 하던 자리이며 그 자리에 소를 묶어두면 사람만 보면 빨리 데리고 가라고 울부짖기도 하였다고 한다. 현 성포도서관 뒤쪽이며 지금은 산책로가 조성되어 있다.
• 농바위
노적봉 중턱에 있는 바위로 농짝처럼 생겼다.
• 방화고개[防火峴, 傍花峴]
꽃이 아주 성대(盛大)하게 피는 고개라서 방화고개라고 하는 설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