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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선교운동사
I. 근대 개신교 선교의 시작
근대 개신교 선교운동의 물꼬를 튼 사람은 영국 침례교 목사였던 윌리엄 캐리(William Carey, 1761~1834)이다. 1761년 영국의 작은 농촌 마을에서 5남매 중 첫째 아들로 태어난 캐리는 구두수선 기술을 배웠다. 19세가 되던 1779년, 그는 한 기도 모임에서 히브리서 13장 13절 말씀을 통해 그동안의 세상과 타협하여 살던 미지근한 신앙을 회개하고 그리스도를 배척하는 세상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고난과 능욕을 받겠다는 결단을 하며 전(全) 생애를 헌신하겠다고 기도했다. 그 당시 영국은 웨슬리(John Wesley)와 조지 휫필드(George Whitefield)가 이끄는 영적 부흥 운동이 전국을 휩쓸고 있었으나 세계선교에 관해서는 관심이 없었다. 1783년 침례교 목사가 되어 목회에 전념하던 어느 날 캐리는 『쿡 선장의 항해기』(Captain Cook's Voyages)를 읽고 세계선교의 비전을 갖게 되었다. 캐리는 그 책에서 미지의 세계를 항해하며 태평양의 알려지지 않은 섬들과 원주민들의 원시적인 삶에 대한 기록들을 읽고 크게 감동되었다. 특히 쿡 선장은 그의 두 번째 항해에서 타히티(Tahiti)섬을 방문하여 아무 설명 없이 나무 십자가를 세웠다고 기술하였다. 선교의 가능성을 염두에 둔 것이었으나 그 당시 기독교는 이러한 시도를 진지하게 받아들이지도 않았다. 캐리 시대의 사람들은 공관복음과 사도행전에서 예수님이 말씀하신 위대한 선교 명령 구절들은 오로지 사도들에게만 주어진 명령이므로 자신들과는 상관이 없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선교 사업은 자신들과 무관한 것으로 여겼다.그는 각 나라에 대한 인구와 종교 등의 정보를 수집하고 사무실 벽에는 세계지도를 걸어놓고 당시에는 아무도 꿈꾸지 않았던 세계선교에 대한 비전을 품고 선교적 관점에서 성경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그는 해외 선교는 교회가 순종해야 할 선교 명령임을 확신했다. 1792년 초, 32세가 되던 해에 캐리는 그 당시의 지배적인 의견을 반대하기 위해 선교 논문 “이교도 개종 방법을 모색하는 기독교인의 책임에 관한 연구”1에서 당시 개신교회에 널리 만연하고 1 William Carey가 발표한 논문의 원제목은 An Enquiry into the Obligations of Christians To Use Means for the Conversion of the Heathens이다. 변창욱 번역으로 『이교도 선교 방법론』 (서울: 미션아카데미, 2008)이란 제목으로 한국에서 번역본이 출간되었다.현대 선교 운동사현대 선교 운동사 131있던 선교 무용론과 극단적 예정론을 정면으로 논박했다. 캐리는 총 87쪽의 선교 소책자에서 영국 내에도 불신자들이 있지만, 그들은 복음을 들을 기회가 충분히 있음에도 거부한 이들인 데 반하여, 선교지의 사람들은 자신들의 의지와 상관없이 복음을 들을 기회가 전혀 없었다는 것을 주장했다. 캐리는 주님의 선교 명령에 순종하여 교회는 선교지의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할 책임이 주어져 있음을 강조하였다. 그는 예수는 모든 사람의 구주 되시며 선교사를 보내지 않으면 구원을 받을 수 없다는 바울 사도의 말씀(롬 10:12-15)을 상기시켰다. 또한, 선교를 위한 구체적 방법(means)으로 교파별로 선교회를 조직할 것을 제안했다. 그해 5월 캐리는 노팅엄(Nottingham)에서 열린 침례교 목사들의 선교대회에서 설교하였다. 그의 메시지의 핵심은 이사야 54장 2~3절이었다. 그 주제는 그의 선교적 탐구의 주제이기도 했다. 그는 “하나님으로부터 위대한 일들을 기대하라. 하나님을 위한 위대한 일들을 성취하라(Expect great things from God, attempt great things for God)”고 역설했다. 또한, 캐리는 마태복음 28장 18~20절을 교회에 주신 새로운 선교 명령(대위임령)으로 되살렸다.그의 이러한 세계선교의 필요성을 역설하는 노력의 결과로 1972년 10월 침례교 해외선교회(BMS)가 조직되었다. 1793년 6월 침례교 해외선교회의 파송을 받아 캐리는 자신이 가장 먼저 인도 선교사로 자원해 인도 뱅골(Bengal)로 떠났다. 이러한 캐리의 선교 열정과 헌신을 통해 “위대한 세기”로 불리는 19세기에 새로운 선교 운동이 일어나게 된다. 예컨대, 캐리를 통해 교파별 선교회의 조직, 선교를 위한 ‘기도합주회’(concert of prayer)와 같이 조직적이고 체계적인 선교의 시대가 시작된다. 그 결과 그동안 독일어 사용국에 의해 주도되어 온 개신교 선교 운동의 흐름이 영국과 미국 등의 영어 사용국으로 넘어오게 되는 계기를 맞게 된다.윌리엄 캐리가 침례교 해외선교회를 세우고 그 자신이 인도에 선교사로 출발한 이후, 영국과 유럽과 미국에서 많은 선교 단체가 설립되어 해외 선교 사역에 동참했다. 18세기 말엽 영국에서 시작된 서구 교회의 개신교 선교는 19세기 초엽 미국이 동참하면서 양대 축을 이루게 되었다. 미국에서는 1880년대 해외 선교를 위한 대학생 자원운동(SVM, The Student Volunteer Movement for Foreign Missions)이 태동하면서 “우리 세대 안에 세계 복음화”를 완수하기 위한 세계선교 운동이 엄청난 기세로 추진되었다. 문제는 여러 개신교단과 선교 단체가 제각기 선교사를 파송했기 때문에 선교지의 현지인 시각에서 볼 때는 교회의 본질과 복음에 대한 혼란이 생길 수 있었다. 더욱이 선교사들의 과다한 경쟁과 사역의 중복은 선교지에 갈등과 사역에 어려움을 초래하게 되었다. 이러한 교파 간 차이와 분열과 경쟁의식은 선교 사업의 커다란 장애물이었다. 여러 선교지에서 각기 다른 교파에서 파송된 선교사들과 선교 단체들은 교파의 장벽을 완전히 없앨 수는 없었지만, 그 해악을 줄이기 위한 노력이 시작되었다. 그 대표적인 것이 선교구역 분할 협정(comity agreements)이었다. 또한, 예배를 공동으로 드리기도 하고, 교육 사업이나 의료 사역, 사회사업을 공동으로 운영하기도 했다. 그런 가운데 교단 교회와 선교 기관132 세계선교의 길라잡이이 협력하여 교파를 초월하는 협력 사역을 위한 국제적인 선교대회가 시작되었다.
선교사로 떠나기 전, 캐리는 “현재 여러 교파로 나뉘어 있는 기독교계(Christendom) 상황에서는 연합하여 선교 사업을 추진하는 것보다 각 교파가 개별적으로 추진하는 것을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여러 교파로 나누어져 있는 개신교 상황을 고려할 때, 그것은 현실적이고 실용주의적인 측면을 고려한 제안이었다. 그러던 캐리는 선교지 인도에서 13년간 사역하면서 그의 생각을 바꾸게 된다. 그리하여, 1806년 5월 15일 캐리는 “전 세계의 여러 지역에서 사역하는 모든 개신교 선교사를 위한 전체 모임”을 10년마다 개최할 것을 제안하였다. 선교지에 가기 전에 타 교파와의 협력보다는 교파별로 선교회를 조직하고 교파별 선교를 생각했던 캐리는 선교 현장에서 두 번의 임기를 마친 후에 혼자 힘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선교 현장의 여러 문제점을 보고서 애초의 생각을 바꾼 것이다. 선교지에서 타 교파 선교사들과 협력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끼게 된 것이다.
캐리 당시에는 허망해 보였던 캐리의 제안은 불과 반(半)세기도 채 되지 않아서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유럽과 북미에서는 여러 선교회의 대표들이 선교 현장의 제반 문제를 상의하고 협의하기 위한 여러 국가적 기구가 설립되었다. 1820년대부터 선교지에서 여러 교파의 선교사 간에 다양한 형태의 친교 모임이 일어나기 시작했고, 1850년대에 접어들면서 선교지에서 지역별 선교사대회가 열리기 시작했다. 1870년대 말 이후에는 선교 파송국인 영국과 미국에서도 거대한 규모의 선교사대회가 개최되기 시작했다. 선교지 문제를 토의하기 위해 모든 교파를 망라해 열렸던 여러 선교사대회는 런던(1878년, 1888년), 뉴욕(1900년), 에딘버러(1910년) 등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이 중에 1910년 에딘버러 세계선교사대회는 캐리가 선교사대회를 제안한 지 정확하게 100년 만에, 그의 전 세계적인 선교사대회의 열망을 실현하는 대회가 된 셈이었다. 에딘버러 대회는 19세기 위대한 세기의 선교 운동을 정리하며, 이후 전개될 20세기의 에큐메니칼 운동을 태동시키는 계기를 마련하는 대회가 되었다.
II. 에딘버러 세계선교사 대회
1910년 에딘버러 세계선교사대회(World Missionary Conference, 이하 에딘버러 대회)는 개신교 선교역사의 여러 선교대회 중에서 가장 중요한 대회였다고 한다. 에딘버러 대회는 어느 날 갑자기 생겨난 대회가 아니라, 1800년대 여러 선교지에서 싹트기 시작한 연합과 협력의 정신이 클라이맥스에 도달한 때에 개최되었다. 에딘버러 대회는 전 세계 개신교 선교 단체를 대표하는 1,215명의 선교사가 ‘어떻게(How) 선교할 것인가?’라는 주제로 모인 실무형 대회였다. 에딘버러 대회 참석자들은 주님의 대위임령을 선교 사업의 유일한 근거로 수용하는데 아무런 이의가 없었고, 선교 명령에 순종하여 선교 현장의 문제와 선교 전략을 토의하기 위해 모였다. 당시의 선교는 서구 교회가 주도하고 있었기 때문에 에딘버러 대회는 서구 선교사 주도의 대회였다. 영국(42%)과 미국(40%) 선교사들이 압도적 다수를 차지했고, 유럽(14%) 선교사들이 그 뒤를 이었으며, 신생교회 지도자들은 4%가 채 되지 않았다. 19명의 비서구 대표 가운데 아시아 교회 대표는 18명이 초청을 받았고, 아프리카 교회는 1명의 대표만이 초청되었다. 에딘버러 대회는 개신교 선교역사에 있어서 실로 중요한 의미가 있다. 개신교의 세계선교가 지속되는 과정에 새로운 도약을 위한 하나의 발판이 된 대회였다. 에딘버러 대회는 교파 중심의 소규모 선교 단체들의 모임에서 탈피하여 초교파적인 모임으로서 선교를 학문적으로 정립하며, 선교사들이 정보를 나누며 그리고 협력의 장을 마련하는 세계적인 모임이었다. 에딘버러 대회는 서구 선교사 중심의 대회였다는 한계와 함께 긍정적 역할도 있었으나 약점도 많았던 대회였다. 동시에 에딘버러 대회는 이후 기독교의 세계선교 흐름의 중요한 기점이 된다.
에딘버러 대회는 세계선교와 관련하여 매우 중요한 몇 가지 선교적 의미를 가진다.
첫째, ‘현대 에큐메니칼 운동의 탄생지’가 되었다. 세계 복음화를 위해 선교회 혹은 교회가 어떻게 에큐메니칼 협력을 이룰 것인가 하는 것이 에딘버러 대회의 가장 큰 과제였기 때문에 회의의 여러 주제와 토론은 결국 선교와 일치(unity)의 문제로 귀결되었다. 에딘버러 대회는 하나의 보편적인 교회에 대해 강조하였을 뿐 아니라 해외에서의 협력과 일치된 선교 노력에 대해 깊이 검토하였으며 이것이 선교 현장에서 계속 실천되도록 독려하였다. 이러한 정신을 영속시키기 위해서 에딘버러 대회는 여기서 끝나지 않고 회의 기간 중에 ‘계속 위원회(Continuation Committee)’를 결성하였고, 이는 1921년 ‘국제선교협의회(IMC, International Missionary Council)’의 창설로 이어졌다. 에딘버러 대회의 가장 큰 의미는 선교대회로 열렸던 이 회의가 “현대 에큐메니칼 운동의 탄생지”가 되었다는 것이다. 즉 기독교의 3대 에큐메니칼 운동이라고 일컬어지는 ‘국제선교협의회(IMC)’, 교회의 사회적 책임을 위한 ‘삶과 사역(Life and Work)’ 그리고 교회 간의 신앙적 일치를 위한 ‘신앙과 직제(Faith and Order)’ 운동이 이 대회를 기점으로 태동했고, 생활과 사업, 신앙과 직제운동은 1948년 암스테르담에서 세계교회협의회(WCC, World Council of Churches)를 탄생시켰다. WCC의 초기 목표는 “선교를 위한 일치(Unity for the sake of Mission)”, “세계가 믿도록(That the world might believe)”이었다. 1961년 뉴델리총회에서는 국제선교협의회(IMC)와 통합되어 오늘날까지 에큐메니칼 운동의 중심을 이루고 있다.
둘째, 비서구를 향한 서구의 일방통행(One Way) 선교였다. 에딘버러 대회에 참석자들은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영국과 북미 그리고 유럽 대표의 모임이었다. 선교란 ‘기독교 국가’에134 세계선교의 길라잡이서 ‘비기독교 국가’로 가는 것이라고 이해했다. 서구로부터 비서구로 향한 일방통행의 선교는 “대회가 교회에 보내는 메시지(Message From the Conference to the Church)”에서도 잘 드러난다. “우리는 전(全) 세계로부터 큰 국가들의 각성 소식과 오랫동안 폐쇄되었던 문이 열렸다는 것과 여러 운동을 통해서 그리스도의 새 왕국이 열렸다는 소식을 들어왔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세계를 복음화하라는 커다란 과제를 우리에게 부여하였다. 이제 우리는 그 과제에 대해서 더욱 막중한 책임감을 느껴야 할 것이다.” 당시 서구 기독교 세계가 비기독교 세계에 복음을 전파해야 하겠다는 열정과 의무를 확인하는 대회였다.
셋째, 낙관적이고 제국주의적 선교가 지배하였다. 에딘버러 대회에서 선교란 복음화에 의한 세계정복을 의미하는 깃발 아래 서 있는 것이었고, 서구의 선교의식과 선교에 대한 열정이 한층 고조되었다. 세계는 주로 신학적 개념이 아니라 지리적이고 역사적인 개념으로 이해되었으며, 이 세계는 기독교 세계와 비기독교 세계의 대립으로 구분되었다. 즉 기독교 세계가 비기독교 세계를 정복해야 한다고 믿고 있었다. 주제 역시 낙관주의에 기초한 “이 세대 안에 세계의 복음화(The evangelization of the world in this generation)”였다. 이 대회는 기독교가 하나님께서 세계에 궁극적으로 계시하신 절대적인 종교임에 동의하고, 인류는 모든 죄로부터의 구원과 보다 크고 충만한 생명을 필요로 하고 있음을 확인하였다. 따라서 절대 구원의 종교로서 기독교가 세계선교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며 어떻게 하면 이 일을 성취할 수 있을 것인가 즉, ‘How Mission?’이 토론의 초점이 되었다. 세계 복음화를 이 세대 안에 이루어 보겠다는 낙관적 사고의 선교와 이를 성취하기 위한 도구로서 제국주의는 하나님의 주신 선물과 축복이라는 생각이 대회를 지배하고 있었다.
넷째, 현지 사역자와 선교사의 협력 선교의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외국선교사와 토착교회 사역자, 선교회와 지역교회와의 에큐메니칼 협력의 필요성에 관한 주장은 두 가지 면에서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왔다. 하나는 지역교회와 선교회가 함께 추천하는 일들에 대해서는 선교회 단독의 제의보다 더욱 비중 있게 받아들여야 한다는 의견에 대해 에딘버러 대회의 많은 참석자가 동의하였다. 이것은 에딘버러 대회가 비록 선교회의 대표들이 모인 대회였으나 교회 역시 선교 사역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새로운 인식을 하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다섯째, 교회가 아닌 선교회 중심의 선교였다. 에딘버러 대회는 선교의 과제가 교회의 한 부서로 인식되고 있었고 따라서 선교는 아직 선교회 중심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교회의 선교에 대한 토의나 내용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에딘버러 대회가 선교 단체들의 대표들로 구성되었을지라도 교회의 선교적 의무를 새롭게 발견하였으며 교회의 생명은 선교에 있음이 강조되었다. 에딘버러 대회에 나타난 교회의 선교적 의무에 대한 인식은 대단히 중요한 선교신학적 발전이기는 하지만, 여기에서 말하는 선교적 의무란 교회의 여러 가지 과제 중의 하나를 의미하고 있기 때문에, 교회 자체의 존재 이유가 선교에 있다는 오늘날의 관점(觀點)과는 많은 차이가 있다. 그것은 그 당시 많은 선교단체들이 본국의 교회로부터 지원을 받고 있었고, 따라서 선교가 교회의 지원 여부에 폭넓게 의존하고 있었기 때문에 교회의 보다 많은 관심과 지원이 현실적으로 필요하였다. 바로 이와 같은 관점에서 교회가 선교적 노력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하였던 것이다. 그러므로 여전히 그 당시 선교의 중심과 수행자는 선교회였고, 이를 교회가 좀 더 관심을 가지고 뒷받침하기를 기대했다.마지막으로 에딘버러 대회의 비극적인 결점은 서구 문화에 대한 성공주의와 자만 때문에 서구 기독교 국가 내의 비극적인 결함들을 예측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런 결함들은 4년 뒤, ‘기독교 국가들’ 간의 싸움이었던 제1차 세계 대전으로 이어졌다. 수백만의 병사들이 안타까운 목숨을 잃었다. 영국, 스코틀랜드, 독일의 장래 선교사 지망자들 가운데 절반이 전쟁으로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설상가상으로 동서양의 많은 사람이 전쟁으로 인해 기독교 신앙의 타당성에 회의를 품게 되었다. “기독교 국가들”이 그런 식으로 행동했는데, 어떻게 그들의 신앙이 옳을 수 있겠는가? 그런 가운데 흥미로운 사실은 대회가 열리기 4년 전, 1906년 한때 마구간으로 사용되었던 로스앤젤레스의 아주사 거리에서 흑인 부흥사인 윌리엄 시모어에 의해 오순절 부흥운동이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이 부흥집회는 3년간 계속되었으며, 수많은 사람이 그 집회에서 성령의 역사를 경험하면서 이 운동은 초 교단적이고 전 세계적인 운동이 되었다. 에딘버러 대회에 모인 지도자들은 이런 사실을 몰랐다. 대부분의 학자는 강력한 바람과 같이 역사한 오순절 운동이 20세기의 다른 어떤 교회 운동보다도 많은 사람에게 기독교 신앙을 심어주었다고 믿는다. 이것은 성령님이 언제나 창조적이시며, 따라서 그분의 사역을 우리가 절대 예측할 수 없다는 것을 우리 모두에게 일깨워주는 지표이다.III. 에큐메니칼 선교운동1910년 에딘버러 선교사대회는 선교 현장에서 연합과 일치를 위한 에큐메니칼 대회였다. 이것은 선교지에서 교단의 물리적인 통합이나 각 교단의 교리를 통합하자는 것이 아니었다. 각 교회의 교리와 정책의 차이가 있지만, 선교 현장에서 교회 간의 연합과 일치를 추구하자는 것이 에큐메니칼 정신이다. 에큐메니칼 정신은 세계 복음화를 위한 선교운동으로부터 유래한 것으로, 교회가 일치하고 연합해서 선교를 감당하자는 선교적인 동기에서 에큐메니칼 선교란 말을 사용하게 되었다. 역사 속에서 교회에 주어진 하나 됨을 나타내는 용어로서 에큐메니칼 하다는 것은 교회가 하나 됨을 이루고 한 분 되시는 주님을 인정하는 기독교인들의 교제를 실현하려고 시도하는 데서 에큐메니칼이 된다.
1. 에큐메니칼(Ecumenical)의 의미
에큐메니칼이란 영어 단어는 그리스어 오이쿠메네(oikoumene)에서 유래하였다. 이 말의 어원은 oikos(집)인데, 이 말의 사전적 의미는 “사람들이 사는 온 세상(커다란 집)”이다. 오이쿠메네라는 단어는 신약 성경에 15회 정도 나타나고 있는데 사도행전 15장에서 교회의 분쟁을 해결하기 위해 예루살렘에 모여서 가진 회의에서도 이 단어가 사용되고 있다. 교회의 연합은 교회의 본질에 속하기 때문에 니케아 신조도 교회의 연합, 거룩, 보편성 및 사도성을 강조하고 있다.에큐메니칼은 전 세계를 아우르는 커다란 모임을 의미하며, 기독교 역사적으로는 ‘지역교회보다 큰 전체의 교회’라는 의미로 사용되었고 오늘날에는 교회의 보편적 일치와 결속을 위한 ‘교회일치운동’의 의미로 사용된다. 에큐메니칼은 교단의 물리적인 통합이나 각 교단의 교리를 통합하는 것은 아니다. 각 교회의 교리와 직제와 정치의 차이점에도 불구하고 교회 간의 연합과 일치를 추구하는 것이 에큐메니칼 정신이다.
2. 선교운동으로서 에큐메니칼
에딘버러 대회의 이러한 에큐메니칼 정신은 시간이 지나면서 두 종류의 선교운동으로 양분된다. 첫째는 세계교회협의회(WCC)를 중심으로 하는 에큐메니칼 선교운동이고, 두 번째는 로잔 운동에 그 중심을 두고 있는 복음주의(에반젤리칼) 선교운동이다. 그래서 오늘날에는 에큐메니칼 선교운동이라고 하면 주로 세계교회협의회(WCC)에서 시작된, 세계교회협의회와 그 산하 기관의 신학 혹은 공식적인 견해 및 신학적 경향을 지칭하는 말이다. 에큐메니칼 선교운동은 처음부터 교파를 초월하고 패권주의식 선교를 반성하고 겸손한 선교를 지향하여 새로운 기독교 선교를 감당하자는 목적과 취지로 시작되었다. 이러한 자세의 전환은 자연스럽게 선교개념의 전환을 가져오게 되었는데 고전적 선교개념에서 현실 참여적 선교개념으로 전환을 가져오게 되었다. 교파와 교회를 초월하여 세계선교운동이라는 관점으로 본다면 두 개의 선교운동은 모두 연합과 일치를 추구하는 에큐메니칼 활동이라고 할 수 있다.현대 선교 운동사 137
3. 에큐메니칼 선교대회 개관: 역사적 흐름과 주제
제1차 암스테르담 총회
▣ 장소: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 날짜: 1948년 8월 22일~9월 4일
▣ 참가: 147개 회원교회 351명 총대
▣ 시대 배경: 1차대전 이후 세계 개신교회들은 교회 일치를 위해 노력한 결과 국제선교협의회(IMC), 삶과 사역(Life and Work), 신앙과 직제(Faith and Order)의 세 기구를 탄생시켰다. 그러나 진정한 일치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신앙의 일치와 봉사를 통한 일치가 분리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그 결과 1938년 ‘신앙과 직제’와 ‘삶과 사역’의 대표자들은 WCC를 창립하기로 하고 WCC헌장을 작성했다. 2차대전 이후 서구교회의 낙관론은 산산이 조각났다. 전쟁으로 분열된 교회공동체는 복음 메시지를 세상에 전달하는데 무능하다는 것이 드러났다. 교회는 세상을 화해시키는 사역을 감당하기 위해서 먼저 교회가 일치되어야 하는 상황을 맞게 되었다.
▣ 특징: 1938년 네덜란드 위트레흐트에서 WCC 창립을 결의한 후, 10년이 지나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창립되었다. 초대 사무총장 비셔트 후프트 역시 네덜란드 출신 신학자였다. 창립총회에 147개 회원교회로부터 351명의 총대들이 참석하였다. 이들은 주로 유럽, 북미 교회들과 소수의 동방정교회 대표들이었다.
▣ 주제: 인간의 무질서와 하나님의 섭리(Man's Disorder and God's Design) WCC는 세계와 교회가 함께 위기를 겪는 상황에 창립되었다. 당시 에큐메니칼 운동의 핵심 과제는 무너진 세계를 재건하는 것이었다. 암스테르담 총회에서 교회 대표들은 오직 하나님의 섭리만이 인간의 무질서를 해결할 수 있고, 교회는 하나님의 중재자가 되어야 한다고 믿었다. 그렇지만 교회가 심각하게 분열되어 있었기 때문에 WCC는 교회가 분열을 회개하고 자기 갱신을 통해 일치를 추구할 것을 추진하였다. 암스테르담 총회 주제는 인간의 교만함을 지적하면서 어떤 문명과 교회도 하나님의 심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바르트 신학이 나타나고 있다.
제2차 에반스턴 총회
▣ 장소: 미국 일리노이주 에반스턴
▣ 날짜: 1954년 8월 15일~31일
▣ 참가: 161개 회원교회
▣ 시대 배경: 동서 냉전시대의 긴장이 반영되어 있다. 냉전의 중심에는 미국이 있었고, 상황에 맞게 총회도 미국에서 열렸다.
특징: 기독교인의 불성실과 교회의 분열 때문에 복음 전도가 약화되고 있으며, 이러한 상황에서 일치와 복음 전도를 위한 협력이 강화되어야 한다. 종속과 지배의 관계는 동반자 관계가 되어야 하며 상호 배움의 자발적 의지가 필요하다고 하였다. 에반스턴 총회는 예수 그리스도만이 세상의 유일한 희망임을 선포하였다. 이처럼 에반스턴에는 그리스도 중심주의가 나타나 있으며 향후 WCC 총회 주제에도 기독론이 지속적인 영향력을 미치게 되었다주제: 그리스도-세상의 희망(Christ-the Hope of the World)
제3차 뉴델리 총회
▣ 장소: 인도 뉴델리
▣ 날짜: 1961년 11월 19일~12월 5일
▣ 참가: 197개 회원교회
▣ 시대 배경: 소위 제3세계가 탄생하였다. 1947년 인도와 파키스탄을 시작으로 20년에 걸쳐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식민지 및 보호령 대부분의 독립이 절정에 이르던 시대이다.
▣ 특징: 이 총회에서 국제선교협의회(IMC)가 WCC에 통합되었다. 이로써 WCC는 증언(‘국제선교협의회’를 통한 선교), 일치(‘신앙과 직제’를 통한 일치), 봉사(‘삶과 사역’을 통한 봉사)를 모토로 하는 세계교회협의회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이처럼 세 기구가 통합된 에큐메니칼 운동은 “복음화와 선교”에 대한 관심과 열의로 시작되었던 연합운동이 “일치”와 “봉사”기구와 대등하게 통합되면서 에큐메니칼 운동의 성격이 더욱 폭넓고 다양한 문제들을 포괄적으로 다루게 되었다. 뉴델리 총회에서는 에큐메니칼 역사상 최초로 타종교와의 ‘대화’가 제안되었다. 대화는 효과적인 복음 전도의 한 형태로서 교회는 타종교인과의 대화를 시작해야 하며, 자연재해와 재난에 맞서 교회들이 연대하여 에큐메니칼 봉사를 하도록 제안되었고, 다른 교파의 목회자를 ‘동역자’로서 인정하여 협력하고 선진국들의 재원을 빈약한 나라와 나눌 것을 제안하였다.
▣ 주제: 예수 그리스도-세상의 빛(Jesus Christ-the Light of the World)
제4차 웁살라 총회
▣ 장소: 스웨덴 웁살라
▣ 날짜: 1968년 7월 4일~20일
▣ 참가: 235개 회원교회, 704명 총대
▣ 시대 배경: 1960년대는 세계사적 혼란기였다. 첫째, 과학의 발전이 핵무기 경쟁을 불러일으켰다. 둘째, 큰 암살 사건이 있었다. 케네디 대통령 암살(1963), 마틴 루터 킹 목사의 암살(1968). 셋째, 전쟁의 시대였다. 월남전(1965), 중동의 6일 전쟁(1967), 소련 군대의 체코의 민주화 세력 학살(1968). 넷째, 시위의 시대였다. 미국 20만 명의 흑인 인권시위(1963), 전 유럽 학생 반전시위(1968).
▣ 특징: 웁살라 총회는 네덜란드에 이어서 두 번째로 유럽에서 열린 총회이다. 아르메니아 정교회와 다른 정교회들이 가입하여 회원이 확대되었다. 특히 로마 가톨릭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1962-65)를 열어 교회개혁을 단행했는데 그 영향으로 WCC에 가톨릭이 더 많이 참여하였다. 이 무렵 WCC의 창립 지도력이 물러나고 세대교체가 일어났다. 레슬리 뉴비긴에 의하면, 웁살라 4차 총회에서는 선교지에 대한 개념이 바뀌었다고 한다. ‘지역’을 중심으로 선교지를 선택했던 전통적 개념이 ‘선교가 필요한 우선적인 상황’을 중심으로 개념으로 바뀌었다. 즉, 인간의 존엄성을 도모하는 행동이 필요한 상황이 우선시되게 되었다. 또한, 선교의 목표가 복음화에서 인간화로 바뀌었다.주제: 보아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리라(Behold, I make all things new(계 21:5)) 당시의 에큐메니칼 운동의 중심 안건은 사회정의와 경제정의 문제였다. 사회 참여적 성격이 강한 총회 분위기였다. 혁명적 시기에 개최되는 총회를 준비하면서 WCC 지도부는 기독론을 넘어 종말론적인 하나님의 약속을 주제로 삼았다. 주제로 인용된 성경 구절은 역사의 최종적인 의미가 밝혀지는 순간을 미리 보여주는 의미가 있었다. WCC가 ‘교회 일치’와 ‘선교’보다 ‘세상’에 더 큰 관심을 가져야 할 시기가 되었음을 나타내고 있다. 혁명적인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세상은 하나님이 일하시는 장소이며, 이곳에 교회가 함께 일하도록 요청받고 있다고 주장했다.
제5차 나이로비 총회
▣ 장소: 아프리카 케냐 나이로비
▣ 날짜: 1975년 11월 23일~12월 10일
▣ 참가: 285개 회원교회와 676명의 총대
▣ 시대 배경: 이 시기는 제3세계가 자유와 해방에 대해 거센 몸부림을 쳤던 시간이었다. ‘실천-반성’의 방법론에 근거한 해방신학, 민중신학, 흑인신학, 여성신학 등이 나타났으며 인종차별주의와 다국적기업에 대한 도전이 일어났다.
▣ 특징: 1973년 방콕의 CWME(“오늘의 구원”)는 건강한 동역 관계(partn- ership) 형성과 선교지의 의존성을 해결하고 자립의식 강화를 위해 존 가투(John Gatu)가 제기한 ‘선교 일시중지’를 논의하였다. 나이로비 총회는 기독론에 근거하여 일치, 대화, 해방, 정의, 구조악, 개발에 대해 논의하였다. 그리스도만이 구세주라고 고백하며, 교회는 “복음 전도와 사회적 행동 모두에 참여”해야 하며 “평화와 정의”를 위해 노력할 뿐 아니라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를 전파할 140 세계선교의 길라잡이사명이 있음을 천명하였다.나이로비 대회는 웁살라 대회의 급진적인 하나님의 선교 개념을 유지하면서도 1974년 로잔 세계복음화대회의 영향을 강하게 받아 복음 전도에 대한 강조를 다시 하였고, 복음주의적 선교 개념을 수용하여 통전적 복음을 제시하였다. 또한 생태계 변화, 자원의 고갈, 환경파괴, 지속 가능한 발전 등을 에큐메니칼 운동의 새로운 의제로 다루었다.
▣ 주제: 예수 그리스도는 자유하게 하시고 하나 되게 하신다(Jesus Christ Frees and Unities)
제6차 밴쿠버 총회
▣ 장소: 캐나다 밴쿠버
▣ 날짜: 1983년 7월 24일~8월 10일
▣ 참가: 301개 회원교회와 847명의 총대
▣ 주제: 예수 그리스도-세상의 생명(Jesus Christ-the Life of the World) ▣ 배경: 밴쿠버 총회는 성령론으로 넘어가기 전, 마지막으로 기독론적 신앙고백을 사용했다. 구원의 복음은 모든 사람에게, 특히 가난한 사람들에게 기쁨의 소식임을 선포하였다. 총회는 인종차별, 성차별, 계급적 억압, 경제적 착취, 군사주의, 인권유린, 핵실험과 핵무기 개발 등을 생명을 죽이고 손상하는 죽음의 세력으로 규정했다.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의 생명’으로 고백하는 것은 바로 죽음의 세력에 대응하는 것이고, 그 내용은 정의와 평화를 실현하는 것이었다. 밴쿠버 총회는 나이로비 총회에서 제안된 지속 가능한 사회(sustainable society)의 개념을 에큐메니칼 운동의 주요 관심사인 ‘정의, 평화, 창조세계의 보전’(JPIC)으로 발전시켰다. 다원화 세계에 살고있는 교회는 “예수님의 출생, 삶, 죽음과 부활의 독특성을 확신”하고 증거하지만, “타종교인들 가운데서 종교적 진리를 추구하시는 하나님의 창조적인 사역을 인정”함으로써 타종교에 대해 다소 긍정적인 입장을 견지하였다. 기독교 신앙의 토착화와 ‘복음과 문화’에 대한 관심을 고취하였고, 세계선교의 중심지가 북반구에서 남반구로 이동하고 있음을 지적하였다.
제7차 캔버라 총회
▣ 장소: 오스트레일리아 캔버라
▣ 날짜: 1991년 2월 7일~20일
▣ 참가: 317개 회원교회
▣ 시대 배경: 1980년대 말부터 동구 사회주의 국가들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동구권 교회들은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는 주요한 역할을 했다. 1990년에 나미비아가 남아공에서 독립을 이루어 아프리카의 마지막 식민 통치가 끝났다. 남미의 많은 국가들은 민주적인 선거를 치르고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이념, 인종을 둘러싼 전쟁은 계속됐다. 구소련과 발칸반도 안에서 인종 학살이 일어났다. 과테말라, 엘살바도르, 페루 등지에서는 내전이 벌어졌고, 브라질과 아르헨티나는 초인플레이션으로 고통을 받았다. 페르시아에서는 걸프 전쟁이 일어났다. 광범위한 환경오염, 아프리카와 남미 대륙의 사막화 확대는 인류의 생존권에 대한 위기감을 불러일으켰다. 태평양 지역의 사람들은 자신들의 삶의 터전이 강대국들의 핵실험장이 되고 있다고 호소했다. 사회적인 대안 모델이 절실히 요청되고 있었다.
▣ 특징: 그간의 기독론적인 주제에서 벗어나 WCC 총회 최초로 성령론을 주제로 채택하였다. 캔버라 총회는 환경오염과 생태학적인 위기에 직면하여 환경문제를 삼위일체 하나님과 창조세계 속에 현존하시는 성령 중심의 창조신학과 생명신학과 연결하여 대안을 모색하였다. 캔버라 총회는 1983년 밴쿠버 총회의 ‘정의, 평화, 창조세계의 보전’(JPIC)과 1990년 서울에서 열린 JPIC 대회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1989년에 발표된 산 안토니오 CWME 선교문서(“Mission in Christ’s Way”)는 1980년대 말까지 WCC 선교신학을 잘 대변한다. “삼위일체 하나님은 선교하시는 하나님이실 뿐만 아니라 교회 선교의 근원이며 수행자”이다. 또한, 현지교회와의 협력, 파트너십, 단기 선교동역자 교환, 온정주의(paternalism), 개종 강요 등의 실제적인 선교 문제를 논의하였다.또한, 한국교회의 통일을 지원하기 시작했다. 1984년에 도잔소 회의를 개최했고, 이듬해 제네바 글리온에서 남북기독교인 성찬 교류를 추진했다. 북한교회 대표자들이 캔버라 총회에 초대를 받았다.
▣ 주제: 오소서, 성령이여-만물을 새롭게 하소서(Come, Holy Spirit-Renew the Whole Creation)
제8차 하라레 총회
▣ 장소: 짐바브웨 하라레
▣ 날짜: 1998년 12월 3일~14일
▣ 참가: 339개 회원교회 960명 총대
▣ 시대 배경: 공산주의 체제의 동유럽 국가들이 해체된 이후, 미국의 패권주의와 신자유주의 경제 세계화는 국제적으로 국내적으로 경제적 빈부 차이를 심화시켰다. 특히 아시아 지역에서는 대규모의 외환위기가 초래했다. 이러한 경제적 위기로 인해 유럽 사회가 보수화되었고, 에큐메니칼 운동의 방향과 재정에도 큰 위기가 나타났다.
▣ 특징: 아프리카 짐바브웨의 하라레 총회는 WCC 창립 50주년이 되는 희년 총회로 모였다. 하라레 총회는 점증하고 있는 도시폭력, 가난, 인종갈등, AIDS/HIV 질병 등으로 고통받는 아프리카의 문제에 소극적으로 맞설 것이 아니라, 정의와 평화 그리고 생명 살리기 운동을 적극적으로 전개할 것을 선언하였다. 하라레 총회는 삼위일체 되시는 하나님께 돌아가자는 회개와 갱신을 강조하였고, 하나님이 주시는 화해와 일치를 통해 참담한 현실 속에서도 희망을 발견하고 기뻐할 수 있음을 선언하였다.
▣ 주제: 하나님께 돌아가라-소망 중에 기뻐하라(Turn to God-Rejoice in Hope)
제9차 포르토 알레그레 총회
▣ 장소: 브라질 포르토 알레그레
▣ 날짜: 2006년 2월 14일~23일
▣ 참가: 348개 회원교회 691명의 총대
▣ 시대 배경: 신자유주의 경제 세계화는 세계의 빈부격차를 더 심화시켰다. 2001년 9.11사태 이후 미국은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 정권을, 2003년에는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 정권을 무너뜨렸다. 많은 무고한 생명이 희생되었고 이슬람 무장단체들의 자살 테러가 이어졌다. 생태계 파괴로 인한 자연재해가 곳곳에서 일어났다. 2004년 인도네시아와 동남아시아에 밀어닥친 최악의 쓰나미로 22만 명이 목숨을 잃었고, 2005년 8월 말 미국의 카타리나 태풍으로 인해 뉴올리언스에 1만 명의 희생자가 발생했다.
▣ 특징: 포르토 알레그레 총회는 성장하고 있는 오순절교회들을 배려하여 남미에서 열린 최초의 총회였다. WCC는 성장하는 오순절교회들과의 친교를 확대하려고 오랫동안 노력해왔다. 라틴아메리카에서는 오순절 교단이 급성장하였고 사회참여 전통도 강했다. 세계평화를 위한 타종교와의 대화 프로그램이 지속되었고,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도전에 대해 아가페 과정(AGAPE Process: Alternative globalization addressing people and earth)이라는 대안을 제시하였다. WCC는 특별히 아프리카의 정의에 관심을 가지고 HIV/AIDS 극복을 지원하고, 아프리카 어린이의 권리를 강조했다.
▣ 주제: 하나님 당신의 은혜로 세상을 변화시키소서(God in Your Grace, Transform the World)포르토 알레그레 총회 주제는 하라레 총회에 이어 하나님이 중심이 되었고 기도형식을 사용하였다. 여기서 ‘세상’을 변화시키는 주체는 인간이 아닌 ‘하나님’이다. 기독론적 주제에서 사용되었던 예수 그리스도와 세상의 대칭 구조가 여기서는 하나님과 세상의 대칭 구조로 변화되었다. ‘은혜’라는 표현은 WCC의 3대 구성 요소인 개신교회, 동방교회, 오순절교회의 신학을 하나로 묶어내는 주제였다.
제10차 부산 총회
▣ 장소: 대한민국 부산
▣ 날짜: 2013년 10월 30일~11월 8일
▣ 참가: 345개 회원교회
▣ 특징: 부산 총회는 분단상황의 한반도에서 개최됨으로써 총회 주제인 생명, 정의, 평화 가운데 정의와 평화의 문제가 현장과 잘 연결되며 일치와 화해를 추구하는 데도 좋은 대회 장소가 되었다. 부산 총회는 생명, 정의, 평화 문제와 최근 에큐메니칼 신학의 중요한 의제인 ‘창조질서의 보전’의 문제를 삼위일체 하나님의 선교와 통전적 선교의 관점에서 하나로 묶어 논의했다.
부산 총회에서는 새로운 선교문서인 ‘함께 생명을 향하여: 기독교의 지형 변화 속에서 선교와 전도’라는 새로운 선교선언문을 발표했다. 이 선언문에서 선교는 교회에 주어진 본질적 사명임을 재확인하며, 선교하는 교회에 힘을 주시는 그리스도의 영은 교회의 생명이며, 교회는 선교함으로써 존재한다.”라고 선언한다. 나아가 “교회가 선교하지 않으면 더 이상 교회가 아니다”라고 선언한다. 교회의 전통적인 복음 전도와 선교 활동에 대한 강조는 에큐메니칼 선교와 복음주의 선교가 선교신학의 관점에서는 모두 공통의 이해와 균형잡힌 통전적 선교관을 유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처럼 한때 첨예하게 대립하는 선교신학적 입장을 견지하던 두 진영은 함께 교류하며 상대 진영의 선교문서를 통해 신학적 발전과 선교적 과제를 발전시켜 나가고 있다.
▣ 주제: 생명의 하나님, 우리를 정의와 평화로 이끄소서(God of life, lead us to justice and peace)
IV. 복음주의(에반젤리칼) 선교운동
1961년에 국제선교협의회(IMC)가 세계교회협의회(WCC)에 통합된 후, 복음 전도가 사회 참여와 타종교와의 대화 때문에 약화 되는 현상이 나타났다. 이를 반대하는 선교단체들과 선교사 그리고 선교학자들은 ‘복음주의자들의 세계대회’를 개최하기에 이르렀다. 베를린 선언(1966)과 프랑크푸르트 선언(1970)에 이어 1974년 스위스 로잔에서 열린 세계복음화 국제대회(The International Congress on World Evangelization)는 로잔 선언을 발표하면서 복음 선포와 사회봉사 가운데 복음 전도가 으뜸이요 먼저라는 우선성의 문제를 확실히 하였다. 동시에 이 대회는 이전의 복음주의 대회들과는 달리 사회봉사의 중요성을 선교의 주요 내용으로 명시하였다.
1. 복음주의(에반젤리칼) 선교대회 개관:
로잔운동을 중심으로 역사적 흐름과 주제
1) 제1차 로잔 세계복음화대회(로잔언약)
(Lausanne Congress on World Evangelization)
ㅇ 장소: 스위스 로잔 ㅇ 날짜: 1974년 7월 16일~25일 ㅇ 참가: 150여 개국, 2,700여 명 ㅇ 중요 사항: 로잔 언약(Lausanne Covenant) ㅇ 주제: 온 땅이여, 그의 음성을 들으라!(Let the Earth Hear His Voice!)
1974년 스위스의 로잔에서 열린 제1차 로잔대회는 그 규모에서나 중요성에 있어서 의미가 매우 크다. 이는 WCC의 에큐메니칼의 급진적인 선교론에 대한 철저한 복음주의적 선교론을 정립하는 대회였으며, 성경적 복음 선포를 주제로 대회를 이끌었다. 복음 전도에 대한 성경적 기초를 선포하고 이것을 표준으로 선교의 메시지와 방법들을 검토하여 성경의 진리를 그리스도인들이 도처에서 당면한 중대한 문제들에 관련시키는 것을 주장했다. 불신자들을 가장 효과적으로 구원으로 회복하는 데는 성경이 가장 필요하다고 전제하고 성경의 중요성을 주장했다.
영국의 복음주의 신학자 존 스토트(John Stott)가 기초 초안하고 대회에서 승인된 로잔 언약(Lausanne Covenant)은 예수 그리스도의 유일성을 분명하게 천명하며, 아직도 복음을 듣지 못한 자들에 대한 복음 전도가 교회 사명의 최우선 순위임을 확인함과 동시에, 사회적 행동(social action)과 사회적 관심(social concern)이 전도의 필수적인 부분이라는 통전적인 선교의 개념을 확정했다. 존 스토트는 복음 전도와 사회활동 사이의 관계에 대해서 사회활동은 복음 전도의 협력자(a partner of evangelism)임을 주장하고 이 둘은 서로에게 속하는 존재로 규명했다. 그러나 로잔 언약은 선교에 있어서 복음 전도의 우선성에 대하여서는 양보하지 않는다. 제1차 로잔대회는 “전적으로 철저하게 복음주의적인” 선교대회를 위한 계획으로 소집되었다. 로잔대회는 복음 전도와 사회적 책임이 모두 기독교 선교의 부분들임을 인정하고, 또한 복음 전도를 효과적으로 하기 위해서 사회 참여가 필요하다는 점 등은 인정했지만, 에큐메니칼 진영의 구원 개념이나 인간화 개념을 수용하지는 않았으며, 복음 전도의 우선순위를 강조하였다.
이 대회는 기본적으로 에큐메니칼 진영의 선교 방향에 대항하여 복음주의 선교를 분명하게 선언하기 위한 모임이었다. 제1차 로잔대회는 15개 조항의 로잔 언약(Lausanne Covenant)을 발표하였다. 에큐메니칼 진영이 1968년 웁살라 대회에서 선교의 목표 자체를 “복음화”에서 “인간화”로 바꾸고, 1973년 방콕에서 열린 세계교회협의회(WCC)의 세계선교위원회(CWME)에현대 선교 운동사 145서 선교의 핵심내용인 구원의 개념 자체를 “영혼 구원”에서 “오늘의 구원”(Salvation Today) 개념으로 바꾸자, 복음주의자들은 자신들의 선교신학을 분명하게 선언할 필요성을 느꼈고 이것이 1974년 로잔대회로 나타나게 된 것이다. 제1차 로잔 세계복음화대회에서 강조된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선교는 교회의 존재 목적이며 선교적 책임을 갖는다.
각 교회의 모든 그리스도인은 온 세상의 복음화에 책임이 있다고 주장하면서, 교회를 “복음 전도에 있어서 하나님의 대행자”로 심도 있게 논의했다.
(2) 효율적인 선교 사역을 위해서 성경의 권위는 강조되어야 한다.
복음 선교에 있어서 성경의 권위를 강조하였다. 그 이유는 여전히 모든 사람이 영적으로 전적무능하기 때문에, 그들은 하나님의 기록된 특별한 계시가 절실하게 필요하다고 주장하였다.
(3) 선교 사역은 복음 전도와 함께 사회적 책임을 포함한다.
로잔대회의 두드러진 특징은 선교에 있어서 사회적 책임을 강조한 점이다. 로잔대회의 핵심적인 역할을 감당했던 존 스토트(John Stott)는 성경적인 복음화라는 주제의 글에서, 선교란 복음 전도와 봉사를 둘 다 포함하는 넓은 의미로 해석했다. 요한복음 20장 21절에 나타난 선교사명은 복음 선포를 위해서 우리가 세상으로 파송 받을 뿐만 아니라, 성육신하신 예수님처럼 종의 신분으로 섬기는 사역을 위해서 보냄을 받은 것임을 강조했다.
(4) 효율적인 선교전략으로서 미전도종족에 대한 선교적 관심을 가져야 한다. 로잔대회에서 강조한 네 번째 주제로는, 아직도 복음을 듣지 못한 미전도종족들에 선교적 관심을 집중하도록 방향을 이끌었다고 볼 수 있다. 랄프 윈터(Ralph Winter)는 선교사들이 여전히 이미 복음화가 진행된 지역에 집중되어 있다고 하면서 아직까지 복음을 듣지 못한 지역과 인종을 향해 찾아가야 함을 강조하였다. 이를 위해 각 언어나 문화를 연구하는 선교전략을 개발하는데 강조점을 두었다.
(5) 선교는 교회 성장과 긴밀한 관계를 가진다.
로잔대회에서 특히 강조한 것으로 선교는 교회 성장을 포함한다고 강조하였다. 도널드 맥가브란(Donald McGavran)은 선교란 사회활동에 참여하는 일도 포함하지만, 무엇보다도 복음 전도는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유일한 구주로 선포하고 사람들을 설득하여 그의 제자들과 책임 있는 교회의 교인이 되도록 하는 것이라고 강조하였다.
2. 제2차 로잔 세계복음화대회 (마닐라 선언)
ㅇ 날짜: 1989년 7월 11일~20일 ㅇ 장소: 필리핀 마닐라 ㅇ 참가: 170여 개국, 3,000여 명 ㅇ 중요사항: 마닐라 선언(The Manila Manifesto) ㅇ 주제: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까지 주를 선포하자: 모든 교회 구성원들이 모든 복음을 가지고 모든 나라들에게(Proclaim Christ until He Comes: Calling the Whole Church to take the Whole Gospel to the Whole World)
제2차 로잔 복음화대회는 제1차 대회가 열린 후 15년 뒤에 열렸다. 이 대회는 제1차 대회의 정신을 계승하고 확대하기 위한 모임이었는데, 이 모임의 특징은 제3세계 교회 대표들이 대거 참석하였다. 이 대회의 결과로 나온 마닐라 선언(The Manila Manifesto)은 21개 항목의 신앙고백과 “전교회”(Whole Church), “온전한 복음”(Whole Gospel), “온 세상”(Whole World)에 대한 선언문을 담고 있다. 이 대회에서는 또한 급격히 변화하는 오늘의 사회와 타종교, 이데올로기의 변천 상황과 그들의 도전도 나누고 검토하며, 그에 따르는 신학적인 정리도 하였다. 그래서 1974년의 제1차 로잔 언약의 기조에서 그를 보완하는 내용을 담고자 하였다. 참가자 일동은 세계선교를 더욱 촉진하여 20세기가 끝나기 전에 복음을 못 듣는 사람이 지구상에 한 명도 없도록, 하나님께서 모든 교회를 부르시어 온전한 복음을 전 세계에 전하게 하신다고 고백하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시는 그 날까지 복음을 전파하기로 언약하였다.
마닐라 선언 역시 로잔 언약처럼 복음 전도와 사회 참여의 책무를 함께 중시한다. 그러나 마닐라 선언 역시 교회의 참여를 강조하나 로잔 언약처럼 복음 전도의 우선성에 대하여서는 양보하지 않는다.
제2차 로잔대회는 크게 3개 주제로 행사가 이루어졌는데, 첫째는 “모든 교회 구성원들의 선교적 책임”으로, 둘째는 “온전한 복음”을 가지고 복음을 전하는데, 곧 성경에 나타난 다양한 선교 사역을 펼쳐야 함을 강조하였으며, 셋째로는 “모든 나라(온 세상)”에 복음을 전하자는 내용으로 미전도종족을 포함한 선교지역의 구체적인 내용을 중심으로 다루었다.
(1) 교회의 모든 구성원의 복음 선포(The Whole Church)
제1부에서 다룬 모든 교회(The Whole Church)는 지역교회와 복음화의 사명에 대해서 모든 교회의 선교 사역을 논하면서 교회 내의 평신도의 선교적인 사역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특히 피터 하먼드(Pete Hammond)는 현대교회가 목회자 중심으로 편성되어 있어서 평신도의 사역은 찾아볼 수 없는 상황이라고 하면서 99%의 평신도의 선교 사역에 불참은 세계복음화를 불가능하게 만들 뿐만 아니라, 이러한 평신도의 불참은 비성경적인 차별대우라고 주장하였다. 아울러 평신도는 현대사회에서 불신자들을 그들의 직업의 현장에서 만날 수 있으며 효과적으로 복음을 전할 수 있는 자들이라고 평신도선교의 효율성을 강조하였다.
(2) 온전한 복음을 전파하라(The Whole Gospel)
제2부는 성경에 나타난 복음 선포에 대해 크게 두 부분으로 이루어졌다. 첫 부분에서는 가난한 자들에 대한 성경적 이해에 대해서, 그리고 성경에 나타난 죄와 상실(Sin and Lostness), 그리고 타문화권 복음 전도와 타종교의 도전들, 복음과 구원에 대해서, 복음화의 협력에 대한 것으로 이루어졌다. 둘째 부분은 주로 로마서에 나타난 세상의 죄악과 놀라운 은혜, 그리스도인과 죄, 성령의 충만한 생활, 그리고 종말에까지 복음을 전하고 사랑하는 삶에 관한 내용으로 이루어졌다.
(3) 모든 족속에게 전파하라(The Whole World)
세 번째 부분은 복음화의 대상으로 도시선교, 현대화의 영향력, 사회적인 문제에 관한 관심과 복음화, 예수 그리스도의 눈으로 사람들을 대하기, 그리스도의 유일성에 대해서, 커뮤니케이션과 선교, 미디어 선교의 중요성, 그리고 선교를 위한 희생과 헌신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외에도 제2차 로잔대회는 분과 모임을 통해 다양한 425개의 워크숍을 열어서 각 주제에 대한 심도 있는 다양한 주장들을 발표하게 하였다.
3. 제3차 로잔 세계복음화대회
ㅇ 장소: 남아프리카공화국 케이프타운 ㅇ 날짜: 2010년 10월 16일~25일 ㅇ 참가: 197여 개국, 4,200여 명 ㅇ 중요사항: 케이프타운 서약(The Capetown Commitment) ㅇ 주제: 그리스도 안에서 세상과 화해하시는 하나님 (God in Christ, Reconciling the World to Himself)
3차 로잔대회는 특별히 1910년 에딘버러 세계선교사대회의 100주년을 기념하는 의미를 가지고 개최되었다. 3차 로잔대회는 다원적이고 깨어진 세상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통한 화해의 메시지를 전하고자 하였다. 이 대회는 마닐라 대회에서 채택된 로잔 운동의 정신인 “온 교회가 온전한 복음을 온 세계에 전한다(The Whole Church Brings the Whole Gospel to the Whole World)”는 핵심주제를 분명히 하는 대회였다. 이 세 가지 주제의 축을 근거로 하여 오늘날 세계 복음화와 관련된 주제들을 다루었다. 먼저 온전한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유일성과 깨어진 세계에서 화해의 복음을 다루고, 온 세상은 타종교와 타문화, 그리고 지속적인 과제와 선교전략을 다루고, 온 교회는 교회의 순결함과 청렴함, 그리고 교회의 협력과 일치의 문제들을 다루었다.
이 대회는 앞의 두 대회보다 에큐메니칼 진영의 선교신학을 폭넓게 수용하였다. 앞의 두 대회에서는 사용하지 않던 ‘통전적 선교’(Integral mission)라는 용어를 사용하면서, “하나님의 복음의 온전한 성경적 계시는 복음 전도와 세상에의 참여를 명령하고 이끌어 나간다.”라고 선언하였다. 그와 동시에 “복음은 모든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이다. 믿음만이 축복과 복음의 확증이 부여되는 수단이다.”라는 표현을 통해 여전히 복음이 세계 변혁의 근원임을 강조하였다.
(1) 예수 그리스도의 유일성과 복음 전도의 우선순위(Uniqueness of Christ and the Primacy of Evangelism)
3차 대회는 그 주제 “그리스도 안에서 세상과 화해하시는 하나님”에서 엿볼 수 있듯이 다원주의, 상대주의, 관용주의를 요구하는 포스트모던 시대에 예수 그리스도만이 하나님과 인간을 화목 시키는 유일한 분임을 재확인하였다. 이렇듯 지난 40년간의 3차에 걸친 로잔대회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유일성” 이슈는 신학적 논의 혹은 타협의 대상이 아니었다. 그런 가운데에서도 복음 전도(evangelism)와 함께 그리스도인의 사회적 책임(social responsibility of Christian)을 폭넓게 수용하였다.
(2) 미전도종족 선교(Evangelization of Unreached People)
미전도 종족선교는 1차 로잔대회에서 3차 대회에 이르기까지 일관되게 주요하게 다루어진 이슈였다. 1차 대회에서 랄프 윈터(Ralph Winter)는 나라(국가)에서 종족 단위로 선교하는 미전도종족 선교 개념을 제시하며 세계선교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케이프타운 서약에서 미전도종족 선교 이슈는 더욱 구체적으로 중요하게 다루어졌고 그들에 대한 무관심과 복음 전도를 게을리한 것에 대한 회개와 미전도종족 전도에 대한 재헌신을 결의했다. 미전도종족 선교에 대한 3차 대회의 특이점은 미전도종족 가운데서 선교에서 소외된 종족들을 따로 분류하고, 성경 번역에 대한 강조와 구두적 메시지 전달방식, 그리고 평신도 지도자 양성 등과 같은 구체적인 방법들을 제시하였다.
(3) 디아스포라 선교(Diaspora Mission)와 21세기 선교 주제들
3차 대회는 디아스포라 선교를 비중 있게 다루었다. 디아스포라는 지난 40년간 꾸준히 증가하고 있고 자연재해, 경제적 필요, 정치적 박해 그리고 국제간의 이동과 같은 이유로 앞현대 선교 운동사 149으로도 계속 늘어날 것이다. 이에 세계화와 디아스포라 시대에 맞는 선교전략을 세워야 함을 강조하였다. 3차 대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유일성을 재차 강조하면서 급변하는 세계정세와 환경으로 야기된 글로벌 이슈(진리와 인격, 다원주의, 미디어 사용, 선교와 예술, 그리스도인들의 공적 영역, 피조물과의 평화, 구전 문화권에 대한 선교, 도시화와 도시선교 등과 같은 총 33개의 이슈)의 도전 앞에 21세기 교회가 선교적으로 어떻게 대처하며 변화된 환경 가운데 다양하고 창의적인 방법으로 전하는지 논의하였다. 또한, 3차 대회는 또한 AIDS, 각종 질병, 기근, 핍박, 환경오염, 빈부격차, 인종차별, 전쟁, 핵 문제 등 세상의 모든 문제에 대해 교회가 적극적으로 성경적 답을 찾으며 대처해 나가야 함을 천명했다.
제4차 로잔 세계복음화대회
ㅇ 장소: 대한민국 인천 송도컨벤시아 ㅇ 날짜: 2024년 9월 22일~28일 ㅇ 참가: ㅇ 중요사항:
3차 로잔대회는 특별히 1910년 에딘버러 세계선교사대회의 100주년을 기념
반세기 가까이 세계 복음주의 선교 운동을 선도해 온 로잔운동의 제4차 로잔대회가 오는 2024년 한국에서 개최된다. 국제로잔 총재이자 CEO인 마이클 오(Michael young suk Oh) 목사는 4일 인천 온누리교회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이같은 내용을 공식 발표했다.
이번 발표는 지난 5월 2일부터 4일까지 인천 온누리교회에서 진행된 국제로잔 본부와 아시아 로잔 지도자 모임의 폐회예배를 앞두고 열린 ‘2024 서울 제4차 로잔대회 아시아 공동 개최 기자간담회’에서 이뤄졌다.
마이클 오 총재는 “제4차 로잔대회(2024 서울대회)가 2024년 대한민국 서울에서 개최되는 것을 발표하게 되어 매우 기쁘게 생각한다”며 “2024년은 1974년 스위스 로잔 대회, 1989년 필리핀 마닐라 대회, 2010년 남아공 케이프타운 대회에 이어 로잔운동이 50주년이 되는 아주 큰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2024년이 특별한 기념일 정도가 아니라, 세계 속에서 하나님의 선교에 대한 진지한 재헌신에 대해 교회를 도전하고 결집하도록 부름받은 전략적인 해라고 믿는다”고 강조했다.
제4차 로잔대회는 2024년 9월 22일부터 28일까지 인천 송도컨벤시아에서 약 3천~5천 명의 글로벌 선교 사역자가 참여한 가운데 진행된다. 한국, 일본을 비롯해 아시아 지역 로잔이 협력하여 공동 개최하며, 조직위원장은 국제로잔 마이클 오 총재와 한국로잔 이재훈 의장(온누리교회 담임목사)이 공동으로 맡는다. 조직위원회 측은 이번 대회가 특별히 세계 선교의 가속화를 위해 ‘함께 듣고, 모이고, 행동할 기회’가 될 것으로 기대했다.
마이클 오 총재는 2024 서울대회를 개최하는 세 가지 이유에 대해 “첫째는 겸손한 경청을 통해 세계의 가장 큰 필요와 기회를 파악하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실패한 길을 회개하기 위해서이며, 둘째는 세계 선교를 가속하는 로잔운동의 사명을 위해 함께하는 것이 더 좋기 때문이다. 셋째는 복음의 능력과 소망을 우리의 말과 삶으로 세상과 나누기 위해서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또 2024년 세계 기독교 지도자들을 동원하는 두 가지 이유로 “첫째는 시대가 겪고 있는 다양한 문제가 극심해질 때, 이것을 다루는 시기가 이때인 것 같을 때다. 둘째는 내부적으로 기독교를 위협하는 요소가 생길 때로, 이 시대 유일한 신학적 질문들을 다루게 되고 세계교회 가운데 관계적 갈등이 있기 때문에 이 모임을 갖는다”고 언급했다.
그러면서 “제4차 로잔대회에서는 겸손한 마음으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무엇을 말씀하시는지 경청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오 총재는 “하나님의 말씀에 경청하는 것이 최우선이고, 또 서로의 뜻을 존중하여 경청해야 한다”며 “서구교회가 전 세계 교회가 하는 이야기를 경청하고, 아시아 교회가 아프리카 교회가 어떤 이야기를 하는지 겸손한 마음으로 경청해야 한다. 그리고 윗세대가 무엇을 하는지 젊은 세대가 들어야 하고, 반대로 윗세대가 젊은 세대가 무엇을 이야기하는지 경청할 필요가 있다. 경청하는 것은 비효율적이지만 효과적이다”고 말했다.
이재훈 의장은 이날 “한국에서 열리지만, 아시아 교회들이 함께 호스팅하는 대회로서 중요한 의미가 있다”며 “아시아 교회가 모든 과정을 함께할 것이고, 그것이 어려운 일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 복음적인 운동이 되리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또 “로잔운동의 중요한 특징은 교파와 계층, 세대를 뛰어넘어 다양한 영역에 있는 분들이 하나 되는 운동으로, 한국교회와 선교단체 지도자들, 젊은이들, 신학생들, 비즈니스 세계에 있는 분 등 많은 성도가 하나 되어 이 대회를 섬기게 될 것”이라고 전했다.
로잔 본부와 아시아 로잔 지도자 모임 참석자 단체사진 ©이지희 기자
이재훈 의장은 제4차 로잔대회에서 논의할 주제에 관해 “아마 2024년에도 여전히 코로나 팬데믹 가운데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며 “코로나 팬데믹 상황 속에서 우리가 어떻게 목회와 선교의 사명을 감당할 것인가가 중요한 한 파트가 될 것이다. 그리고 변화된 디아스포라를 비롯해 팬데믹 이후 일어나는 AI 혁명 등 디지털 혁명이 선교와 어떻게 연결되는가가 중요한 주제로 다뤄질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한국에서 대회를 개최하게 된 이유에 대해 “한반도나 한국교회의 이슈보다는 앞서 이야기한 세계 전체 교회가 모여야 할 시대 상황과 이 시대 교회가 어떻게 서로에게 귀를 기울여야 하는가의 측면에서 실질적인 이유가 많다고 본다”고 말했다. 아울러 “전 세계 교회가 함께 모였을 때 서포트하고 감당할 수 있는 지역이 필요하다. 일종의 풀뿌리 운동인 로잔에서 젊은이들, 신학생들까지 함께 모여 대화할 수 있도록 섬기고, 대중교통이나 재정 등 모든 면을 고려했을 때 복음적 교회가 아시아에서 가장 많은 한국에서 열리는 측면도 있다”고 말했다.
이재훈 의장은 또 “(이번 대회가) 한국교회가 아시아 교회를 하나로 모으는 카탈리스트가 되어야 한다는 부르심인 것 같다”며 “한국에서 열리지만 아시아가 함께 주최함으로써 한국교회의 섬김의 태도를 회복한다는 의미가 있다”고 덧붙였다.
국제로잔 이사회 멤버이자 국제OMF 대표 패트릭 펑(Patrick Fung) 박사는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제4차 로잔대회 가운데 ‘경청’할 주제에 대해 “예를 들어 현재 우리가 겪고 있는 기후 변화 등 여러 가지 사회적 이슈와 지금 우크라이나에서 일어난 전쟁으로 인한 난민 이슈가 있다”며 “현재 12지역에서 리스닝콜을 통해 어떤 이슈와 신학적 문제가 있는지 데이터를 모으고 있다”고 말했다. 펑 대표는 이어 “1974년 제1차 로잔대회부터 2024년 4차 로잔대회까지 5세대 기독교 리더십이 있다고 들었다”며 “개인적인 바람은 한국교회에서 5세대가 모여 서로에게 배우고 서로에게 많은 영적 도움이 되는 것”이라고 전했다.
한편, 조직위원회 측은 “다양한 경청과 모임의 과정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 나라를 위해 함께 협력하여 행동할 것을 전 세계 교회에 요청하게 될 것”이라며 “2024 서울대회는 우리를 세계 선교 가운데 함께 하길 초청하시는 사랑과 용서, 은혜로우신 하나님과 그분의 복음의 축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마이클 오 총재는 “우리는 이 세대에서 이 세상을 살아가며 사랑하도록 부르심을 받았는데, 그것에 단지 충실하길 원한다”며 “2024 서울대회 때문에 2050년에는 세상이 아름답게 달라지길 기도한다”고 말했다.
V. 결론
WCC는 그 이름 그대로 세계교회들의 협의회이기 때문에, 신학적으로 복음주의적 교회와 진보적인 교회가 같이 회원 교단에 속해 있고, 따라서 에큐메니칼 신학 속에는 그 문서들의 신학 노선도 때로 보수적인 것과 자유로운 것들이 복합되어 있다. 그리하여 그것의 진정한 입장이 무엇인지 판단하기 어려운 경우들이 종종 있다. 하지만, 적어도 WCC의 공식 문서들이 천명하는 바를 따른다면 에큐메니칼 선교 신학이 영혼 구원에 대한 전통적 관심이 전혀 없다는 일부 복음주의자들의 비판은 과장된 것이라 할 수 있다. WCC 선교 신학이 가난한 자들에 대한 교회의 책임과 사회적 국제적 정의의 구현을 상대적으로 더 강조하는 것은 사실로 보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전통적 전도와 선교의 필요성을 인정하고 있다.동시에 복음주의자들은 영혼 구원과 전도를 일차적으로 강조하다 보니 현세에서의 책임 있는 삶에 대한 강조가 약하며 인권, 정의, 자유, 인간의 평등 등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다는 생각도 오해라고 할 수 있다. 복음주의자들은 주로 피안의 문제에만 관심을 기울이는 이원론적 경향을 보인다고 말하는 것도 그런 점에서 복음주의에 대한 편견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양 진영 모두 통전적 신학을 추구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서로가 가진 장점을 이해하고 부족한 것을 메꾸어주며 하나님의 선교를 위해 서로 소통하고 동참하며 세상 속에서 다양한 선교 활동의 짐을 나누어지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모두 하나의 하나님의 선교(Mission) 안에서 각자가 받은 달란트의 선교(missions)를 수행해나가는 것이다. 데이빗 보쉬가 『변화하는 선교』에서 말한 것처럼, 우리의 선교 활동은 하나님의 선교에 참여하는 것일 때만 진정성이 있다.150 세계선교의 길라잡이선교는 성경에서 말하는 하나님의 마음, 기독교의 본질이며 수단이나 방법이 되어서는 안 된다. 선교는 그리스도의 지상명령인 것이지 교회를 성장, 부흥시키기 위해 선교를 과시하는 것은 본질적으로 틀린 것이다. 선교의 주체는 하나님이시고 선교의 영역은 온 세상이다. 교회는 선교하시는 하나님의 도구이며 교회의 사역 전체는 선교적이어야 한다. 선교의 목표는 하나님 나라와 의를 구하는 것으로 샬롬의 추구와 실현이라 말할 수 있다. 샬롬의 범주에는 개인 영혼 구원과 사회의 구원이 포함되어있는 것으로서 선교는 개인 영혼 구원과 사회 구원의 합으로 표시할 수 있다.이러한 선교 활동을 수행하는 교회의 자세는 ‘고난의 종’의 모습이어야 한다. 일체의 선교 활동은 우리를 위하여 모든 것을 내어주시고 십자가를 지기까지 했던 주님처럼 우리의 모든 것을 바쳐서 세상을 섬기는 정신으로 수행해야 한다. 결국, 모든 그리스도인이 선교의 사명을 완수하기 위해서는 수직적이냐 수평적이냐, 인간화냐 복음화냐를 양자택일할 수 없다. 이 둘을 적당히 결합시키는 방법을 모색하는 것이 아니라 어느 것 하나 놓치지 않겠다는 책임적인 자세로 양 측면을 모두 포함하는 통전적인 선교로 우리의 지상과제에 임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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