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일>2006. 5. 9(화). 흐리고 오후에 비. 20도.
어제 하루를 송악산 트레킹과 휴식으로 보내고 사실상의 도보 종주 첫 시작을 오늘부터 시작하기로 한다.
밤새 민박집 창밖의 파도치는 소리가 마음을 착잡하게 하더니 아침 5시에 눈을 뜨자마자 창문을 열고 바다를
바라본다. 바람은 거세고 바다는 어제와 다름없이 성난듯 파도치고 있다.
여기서 결정을 내려야 한다. 07시에 아침 식사를 마치고 유람선 선착장에 알아보니 오늘도 배가 뜨기는 어려울
거라는 대답. 민박집 주인에게 혹시라도 오후에 파도가 가라앉아 배가 뜨게되면 즉시 연락을 달라고 부탁을
해놓고 등산화 끈 조여매고 배낭을 매고 08:20에 길를 나섰다. 아까운 시간을 지체할 수 없어 마라도는 뒤로 미루고
우선 도보를 시작하기로 한 것이다.
우리에겐 역사적인 순간이다.
식당 주인 여자 말로는, 많은 도보여행자들이 날씨때문에 마라도를 포기하고 송악산에 올라 마라도를 바라보며
발대식을 하고 떠난다고 한다. 우리 3인방은 무슨일이 있더라도 배만 뜨면 즉시 건너가기로 하였다.
첫 출발부터 환상적인 도보 길이 이어진다. 앞쪽으로는 머리에 구름을 인 산방산을 바라보고, 오른쪽으로는 푸른
바다가 넘실대고, 갓길은 자전거 도로로 꾸며져 있어 걷기가 한결 안심이다.
길 옆으로는 들꽃이 지천으로 피어 있어서 지루하지가 않다.
사계리라는 마을을 지나는데 흰둥이 한 마리가 앞장을 선다. 마치 길을 인도하듯이 가다가 뒤돌아 보기를 반복하더니
산방산을 지나서야 용머리 해안 쪽으로 사라진다.
봉수대를 지나 내리막길을 내려가는데 아스팔트길에 자동차 바퀴에 치어 납작해져 죽어버린 뱀 한마리.
차도를 건너다 처참하게 비명횡사를 한 모양이다. 불쌍한 것.
나무아미타불.. 대왕광불 화엄경....
우리는 1시간 걷고 10분 휴식을 취했다. 길가에는 보리가 누렇게 고개를 숙이고 있고 감귤밭이 이어진다.
길섶에는 철쭉이랑 온갖 꽃들이 반긴다.
농장에서 운영하는 길가의 한라봉 직판장에 들렸다. 한라봉을 3개에 4천원을 주고 사서 먹었는데 맛이 확실히 달랐다.
조설모 얘기로는 서울에서는 6개에 3만원한다고 하니 우릴 불쌍히 여긴 주인의 배려로 싸게 사먹는 모양이다.
갑화백이 우리가 준비한 국토종주 페넌트까지 보여주며 가게 여인들에게 작업을 건 덕분이다.
떠날때는 생수까지 얻어 마셨다.
이번 종주길에 3인방 각자의 역활분담이 분명하게 이뤄지고 있다. 예를 들어 식사때가 되어 무얼 먹을 것인가 결정은
내 몫이다. 물론 두 사람에게 의사를 물어서 결정한다. 식탁에 앉으면 그 때부터 갑화백이 나설 차례다. 우선 주인
여자를 불러 도보 종주중이라 주머니 사정이 넉넉치 못하니 밥값을 깎아달라고 하기도 하고, 커피를 얻어먹고 생수까지
물병에 채워서 나온다. 조설모는 밥값 지불 담당이다.
서귀포 월드컵경기장에 도착하니 15:40. 이제 다리가 뻐근해 온다. 오락가락하던 비가 우산을 받아야 할 정도로
오기 시작한다. 무릎 관절과 뒤쪽 근육이 땡기기 시작한다. 발가락도 아파온다. 오늘 도보일정을 이쯤해서 마쳐야
할 모양이다.
서귀포 천지연 폭포 부근 '천호각모텔'에 찾아 들었다. 시각은 17:10.
짐을 풀고 뜨거운 물에 샤워부터 했다. 욕조에 물을 받아 몸을 담그기도 한다. 옷을 갈아 입고 빨래를 해야하는데
여기서 갑화백의 실력이 또 나온다. 그새 주인 여자에게 어떻게 작업을 했는지 빨래를 한데 모아가지고 주인 여자에게
가져다 주고 온다.
모텔을 나와 뻐근한 다리를 질질 끌고 근처 식당에 들렸다. '이화삼계탕' 이라는 간판 이름에 이끌려 들어갔다.
한방삼계탕으로 오늘 탕진한 체력을 보충한다.
저녁을 먹고 커피까지 얻어마시고 방으로 돌아오니 그새 탈수까지 마친 빨래가 기다리고 있다.
마음씨 좋은 주인 여자 덕분이다. 방안에 임시 빨래줄을 치고 널어놓는다.
발바닥에 물집이 두 군데나 생겼다. 바늘로 물집을 터트리고 옛날에 배운대로 삼계탕집에서 얻어온 밥풀을 이겨
붙인다. 이렇게 해 놓으면 내일 아침이면 빠짝 말라붙어 있을 것이다.
일기예보에 내일도 제주도에는 호우주위보가 내렸는데 걱정이다.
오늘 걸은 거리. 32km. 9시간(식사 및 휴식 포함)
첫댓글 (캡화백)한달간을 총무노릇해야 하니 집에가면 가족들이 나를 몰라 볼것 같다. 왜냐구? 경비절약차 아양으 떨며 구걸하느라 그나마 있던 몇가닥의 머리카락이 한나도 남아나지 않으것 같으니 말이다. 그래도 3인방을 위해 몸바쳐야지? 06.05.09 22:36
(캡화백맏딸)하하하~ 아빠~ 아주머니들한테 너무 인기가 좋으신 거 아니세요? 엄마가 아시면 살짝 삐치실 것 같은데요? 이거이거.. 엄마께 말씀 드릴까요~ 말까요~? ^^ 06.05.10 13:07
(whitekimkj)날씨땀시 일정은 바뀌어도 대신 아름다운 제주도를 걸으시게 됐네요 다 뜻이 있는거 같습니다 너무힘들이지말고.. 안전제일 입니다 힘찬 박수 보냅니다 안녕^^ 06.05.09 23:51
(장화백)워낙 상냥하고 애교가 있으시니 앞으로 종주 마칠때까지 그 실력 더더욱 발휘하시길... 06.05.09 23:54
(장화백)정말 상상도 못할 머언 거리 32Km 라니... 발인들 성할리 있겠는지요? 불쌍한 3인방의 다리여! 굳세어라. 06.05.09 23:56
(만보)물집의 훈장~ 첫날의 일기부터 감동입니다. 꼭 만보도 함께 걷는 것 같은 기분입니다. 06.05.10 04:56
(신현식)정말 환상산적인 "아름다운 동행"입니다. 여행기 한줄 한줄이 가슴에 와 닿습니다. I hope you have a good trip! 06.05.10 09:03
(짬송)사진과 함께 보니 마치 곁에 계신듯 반갑습니다. 아픈 다리도 얼렁 다져져 먼 길 걷는 데 전혀 불편하지 않게 되엇으면 합니다. 비가 내리는 오늘은 또 다른 낭만과 환상적인 앞길이 놓여지겠지요, 힘내세요, 힘!! 06.05.10 09:26
(나그네)행두형님! 다리조심. 깹이형님! 머리카락 아끼시고, 목사님! 할렐루야!!! 매일 시작하는 마음으로 편안하게 출발하시기를... 06.05.10 09:31
(조설모딸)얼마나 힘드셨을까 지금 두손 남쪽으로 뻗고 안마동작 들어갑니다. 3men 아버지들 힘내세요. 다음엔 물집잡힌 발사진도 한컷 올려주세요. ^^ 06.05.10 12:46
(조설모)안마 잘 받았다. 참 시원하다. 다행히 아직 물집은 없구나. 계속 그래야 하는데.고맙다. 06.05.11 07:19
(완주)위풍당당 3인방 힘 내시고, 발바닥의 물집 잘 아물어 차질 없는 걷기가 되기를 빕니다. 06.05.10 23:26
(벗꽃)대단하십니다 06.06.25 17: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