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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사: 서로를 보는 눈"에 대한 질문(토, 4월 27일까지)
*교재를 읽고 다음의 Questions에 대한 답해주세요.
각 교재 문헌에 관해 “새롭게 알게 된 점”, “여전히 의문이 남거나 설명을 원하는 점”, “같이 토론해 보고 싶은 점”을 각각 1개 이상 쓸 것.
동아시아 국제관계 : 서로를 보는 눈
1. 박윤재 (2021). 때를 밀자 ―식민지시기 목욕 문화의 형성과 때에 대한 인식. 역사비평, 360-382.
2. 黃永遠 (2021). 국경을 넘나들던 친일파 - 이완용과 근대 중국의 매국노 담론(1905~1945) -. 중국근현대사연구, 90, 63-93.
3. 尹輝鐸.(2001).〈滿洲國〉의 '2等 國(公)民', 그 實像과 虛像.역사학보,169,139-171.
<고원>
1. 새롭게 알게 된 점:
이 문헌을 통해 식민지 시기 한국에서 목욕 문화가 어떻게 변화했는지에 대한 통찰을 얻었다. 특히 일제 강점기에 위생이라는 개념이 도입되면서, 공공 목욕탕의 보급이 확산되었고, 개인 위생에 대한 인식이 서서히 변화하기 시작했다는 점이 인상 깊었고 '때를 밀다'라는 행위가 단순한 청결 유지를 넘어서 사회적, 문화적 상호작용의 장으로 기능했다는 점도 새롭게 알게 된 내용이다. 이는 목욕을 통한 신체적 정화뿐만 아니라, 사회적 교류와 계층 간의 상호작용에 있어서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2. 여전히 의문이 남거나 설명을 원하는 점:
목욕 문화가 계층에 따라 어떻게 다르게 수행되었는지에 대한 분석이 상세히 이루어지지 않았다. 예를 들어 상류층과 하류층에서의 목욕 문화가 어떻게 달랐다.
3. 같이 토론해 보고 싶은 점:
식민지 시기의 목욕 문화가 현재의 목욕 문화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탐구하는 것 흥미로울 것이다. 과거의 위생 개념과 목욕 관행이 현대에 어떻게 변화되어 수용되었는지를 이해함으로써, 문화적 연속성과 변화를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을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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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새롭게 알게 된 점:
이완용이 단순히 한국 역사에서 매국노로 보는 것 뿐만 아니라, 같은 시기 중국에서 매국노로 여겨지는 인물들, 예를 들어 왕정위와의 비교를 통해 그의 정치적 결정과 행동을 새로운 관점에서 이해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국제적 비교는 이완용과 같은 역사적 인물들이 자국 내에서 어떻게 기억되고 평가되는지에 대한 이해를 넓힐 수 있다.
2. 여전히 의문이 남거나 설명을 원하는 점:
이완용이 외국 세력과 마주했을 때의 정책 선택과 행동에 대해 언급하지만, 그의 개인적 신념이 이러한 결정에 어떻게 영향을 미쳤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은 부족하다. 예를 들어 일본이 조선의 이익을 지킬 것이라고 진심으로 생각했을까?
3. 같이 토론해 보고 싶은 점:
역사 인물을 ‘매국노’라고 꼬리표를 붙이는 것의 정당성과 그 복잡성에 대하여. 이완용의 행위는 분명 조선의 역사에 깊은 영향을 미쳤지만, 그를 일률적으로 매국노로 몰아붙이는 것이 당시의 역사적 환경과 한계를 간과한 것은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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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새롭게 알게 된 점:
만주국이라는 특수한 정치적 구조 속에서 한국인, 중국인, 일본인이 어떻게 각기 다른 방식으로 상호 작용하고 공존했는지의 상세한 묘사는 매우 흥미롭다. 이는 다문화 공존의 역사적 모델을 제공하면서도, 내부적 갈등과 외부의 압력이 어떻게 국가 운영에 영향을 미쳤는지를 보여준다.
2. 여전히 의문이 남거나 설명을 원하는 점:
논문은 만주국의 정체성을 '2등국(2등공민)'으로 묘사하며, 이로 인한 내부적인 정체성 혼란과 외부의 정치적 압력 사이의 긴장을 탐구한다. 하지만 만주국 주민들 자신의 정체성 인식, 특히 한국인과 중국인 사이의 신분 정체성의 차이는 어떻게 발현되었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분석은 부족한다.
3. 같이 토론해 보고 싶은 점:
만주국의 '2등 국'으로서의 자율성과 의존성의 균형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지는 토론할 만한 주제이다.
<오천융>
1:본문에서는 때밀이 문화를 있어서는 안 될 수준까지 끌어올린 것 같은데, 정말 그렇게 높은 문화적 지위를 가지고 있습니까?
2 : 량치차오, 루쉰 등도 자기 민족을 표현할 때 '우매하고 무지하다' 등의 비하 표현을 자주 사용하는데, 그들이 정말 한국인을 못마땅하게 여겨서 그런 말을 하는 것일까? 한국인들이 어떻게 행동하는지 말해줌으로써 국민을 일깨우는 것이 아닌가.
3 : 재만조선인은 이등공민이 아니며, 그들 대부분은 다른 민족과 마찬가지로 괴로워하며 때때로 다른 민족의 조롱을 받기도 한다고 이 글은 말한다. 하지만 내가 내 조선족 어른들에게 들은 이야기는 다른 버전이었다. 한족보다 조선인이 더 잘살고 일본인이 조선인을 우선 채용한 것으로 기억되는데 어떻게 된 일일까.
<홍지원>
[박윤재 (2021). 때를 밀자 ―식민지시기 목욕 문화의 형성과 때에 대한 인식. 역사비평, 360-382.]
논문에 서술된 내용을 보면, 당시 백성들은 물 부족과 인식의 결여 등의 이유로 목욕이 일상화되지 못했던 것 같은데 당시 왕족과 양반의 목욕 실태는 어떠하였는지 궁금하다.
[尹輝鐸.(2001).〈滿洲國〉의 '2等 國(公)民', 그 實像과 虛像.역사학보,169,139-171.]
당시의 조선인이 부정업자나 건달이 되지 않고 의식주가 제대로 보장되는 삶을 살기에는 정말 불가능했던 것일까. 이러한 시기 임에도 노력하여 성공한 조선인의 사례가 있다면 알아보고 싶다.
<김찬오>
1. 박윤재 (2021). 때를 밀자 ―식민지시기 목욕 문화의 형성과 때에 대한 인식. 역사비평, 360-382.
- 여전히 의문이 남거나 설명을 원하는 점
일본에서 때를 미는 문화가 생겼던 이유와, 때를 미는 문화가 사라진 이유가 조선과 동일한지 궁금합니다.
2. 黃永遠 (2021). 국경을 넘나들던 친일파 - 이완용과 근대 중국의 매국노 담론(1905~1945) -. 중국근현대사연구, 90, 63-93.
- 새롭게 알게 된 점
이완용이 한국뿐만이 아니라, 중국에서도 매국노의 대명사로 쓰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 같이 토론해 보고 싶은 점
망국의 결정적인 책임은 개인에게 있을까? 아니면 구조적인 문제일까?
개인에게 있다고 생각하면 누구인지, 구조적인 문제라고 생각하면 어떠한 구조의 문제라고 생각하는지 토론해 보고 싶습니다.
<이상민>
1. 박윤재 (2021). 때를 밀자 ―식민지시기 목욕 문화의 형성과 때에 대한 인식. 역사비평, 360-382.
목욕 문화에 대해 단순히 청결을 유지하는 실용적 행위라는 관점을 넘어, 정치적 및 민족적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는 관점에서 연구했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특히 한국인이 때를 밀면서 청결과 위생을 강조했던 배경이 식민지 시대 민족적 수치심과 연결되어 있었다는 부분이 인상적이었다.
2. 黃永遠 (2021). 국경을 넘나들던 친일파 - 이완용과 근대 중국의 매국노 담론(1905~1945) -. 중국근현대사연구, 90, 63-93.
조선 망국의 책임을 전적으로 매국노 개개인에게 돌리는 것은 마땅치 않으며 역사 사실과도 부합되지 않는다는 논문 내 서술을 보며, '역사가에 요구되는 것은 개인이 아니라, 그 개인의 배후에 있는 사회적 맥락과 환경을 분석하는 것'이라는 E.H.카아의 의견이 떠올랐다.
3. 尹輝鐸.(2001).〈滿洲國〉의 '2等 國(公)民', 그 實像과 虛像.역사학보,169,139-171.
평소 알고 있던 것과는 다르게, 일부를 제외하고는 만주국 내 조선인들이 중국인들과 나을 바 없는 삶을 살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일제, 만주국 패망 이후 만주국 내 조선인들이 어떻게 되었는지 궁금하다.
<이원준>
알게된 점: 목욕이라는 현대에 일상적인 요소가 근대화 문명화의 상징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여전히 궁금한 점 : 목욕이 그 당시 문명화의 상징이라면 일제에 의해 도입된 목욕 방식은 메리트가 떨어지며 타 세력에 의해 문명화된 타율적인 느낌이 듭니다. 조선인들은 자신들만의 목욕 문화를 고수했나요, 아니면 도입된 문화를 받아들였나요.
토론해보고 싶은 점 : 조선 사람들의 정신적 민족적 산물인 목욕이 같은 조선인을 차별화하는 기준점이 될 수 있을까??
2번논문
알게된 점: 이완용의 경우는 어릴 때부터 지속적인 교육으로 친일파라는 이미지가 각인되었고 자연스럽게 ‘조선은 친일파 때문에 망했다’라는 생각이 주입되었었다. 이런 생각이 매우 구시대적이며 좋은 담론을 방해할 수 있다는 생각의 전환을 할 수 있었다.
토론하고 싶은 점 : 친일파의 경우는 현시대에 청산을 효과적으로 수행하지 못해 독일의 나치청산과 비교되고 있습니다. 친일파문제는 과거의 문제인가? 아니면 현대의 문제인가 무엇을 더 중요시 해야 하는가?
3번 논문
알게된 점: 조선인의 정체성 혼동이 외세적 요인이 짙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또한 만주국에서 조선인의 입지가 차별적으로 만들어졌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궁금한 점 : 만주국 자체에 의문이 있습니다. 만주국은 일본에 있어서 식민통치적으로 어떤 의의가 있었는지, 조선과 중국에서는 어떻게 바라봤는지가 궁금합니다.
<정선우>
새롭게 알게 된 점: 이완용이 중국에서 정치적으로 자주 거론되고 회자되던 인물임을 새롭게 알게 되었다
의문이 남는 점:
1. 우리나라나 동양에서는 목욕 문화가 존재했지만 대중화가 된 것은 어느 정도 최근이다. 서양은 목욕 문화의 존재와 대중화 모두 매우 과거에 이루어졌는데 이러한 차이는 어떠한 요소 때문에 발생했는지 의문이다
2. 중국에서 이완용 이외의 정치적으로 언급이 자주 된 다른 조선의 친일파는 없는 지 의문이다.
토론해 보고 싶은 점: 사실 조선은 공동체주의 사회가 아닌 개인주의 사회가 아니였을까라는 질문을 가지고 토론해보고 싶다.
<신세라>
1. 알게 된 점: 사회적으로 청결도와 민족성을 등치하다시피 했었다는 사실이 새로웠다. "대중목욕탕 하나 운영하지 못하는 우리”가 “독립을 운운할 수 있는 건가”라는 자조적인 비판이 나올 정도로 청결하지 못한 것을 수치로 여겼다는 것이 신선했다.
질문: 더러운 국가로 여겨졌던 나라 중 하나인 중국에 씻는 문화가 정착하게 된 과정도 궁금하다.
2.
일상에서 막연히 매국노의 대명사로 이완용을 언급하고는 했는데, 매국노로 이완용을 언급하는 것이 관용화되는 과정을 알 수 있어서 재미있었다. 특히 그가 중국에서도 자주 언급되었다는 것이 새로웠다.
토의: 조선 식민지화의 책임이 가장 큰 인물, 혹은 집단에 대해 각자의 의견을 토의해 보고 싶다.
3.
알게 된 점: 만주국에서 조선인이 중국인보다 상대적으로 나은 처지에 있었던 부분들(치외법권, 식량 배급 등)이 있었다고 해서 이로 인해 조선인이 진정으로 우대 받았다고 보기 어렵다는 것을 통해, 단순 통계 자료만 가지고 과거의 실상을 파악하려고 하면 오류가 생기기 십상이라는 것을 재고하게 되었다.
질문: 만주국 내의 여러 민족들 사이의 구체적인 연대 사례는 없었는지 궁금하다.
과제와는 별개로 세 논문을 읽으면서 식민시기 조선인들에 대한 처우가 얼마나 부당했고 얼마나 비참했는지, 그들이 독립 자주를 이룩하기 위해 얼마나 치열했을지 다시금 생각하게 되어서 가장 흥미로운 논문들이었던 것 같습니다.
<이정렬>
1. 박윤재 (2021). 때를 밀자 ―식민지시기 목욕 문화의 형성과 때에 대한 인식. 역사비평, 360-382.
-새롭게 알게 된 점
식민지 시기의 목욕문화에 대한 주제가 새로웠다. 과거에는 목욕이 치료로서의 목적이 있었다는 사실과 사람들이 자주 씻지 않았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또한 식민지시기에 불결함을 수치로 생각하며 민족적 차원에서 청결이 요청되었다는 사실이 정말 신기했다.
-여전히 의문이 남거나 설명을 원하는 점
우리나라는 여전히 때밀기 문화가 존재하며 목욕탕을 가면 때를 미는 사람이 많은데 일본에서는 왜 때밀기 문화가 사라졌는지 궁금하다.
2. 黃永遠 (2021). 국경을 넘나들던 친일파 - 이완용과 근대 중국의 매국노 담론(1905~1945) -. 중국근현대사연구, 90, 63-93.
-새롭게 알게 된 점
이완용은 우리나라와 일본에서만 언급되는 줄 알았는데 중국에서 매국노의 상징이었고 정치적으로 많이 사용됐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또한 매국노뿐만 아니라 친소파의 이미지였다는 사실도 새로 알게 되었다. 여러 이완용이 사용된 중국의 여러 사건들에 대해 알게 되어서 좋았다.
-여전히 의문이 남거나 설명을 원하는 점
이완용 말고 이미지가 이용된 다른 상징적인 인물이 더 있었는지가 궁금하다.
3. 尹輝鐸.(2001).〈滿洲國〉의 '2等 國(公)民', 그 實像과 虛像.역사학보,169,139-171.
-새롭게 알게 된 점
만주국에 대해 거의 알지 못했었는데 만주국에 대해 조금 알게 된 것 같아 좋고 만주국에서의 조선인에 대한 여러 가지 사실들을 새롭게 알게 되어서 좋다.
-여전히 의문이 남거나 설명을 원하는 점
여기에는 만주국의 조선인에 대한 설명이 주로 나와 있는데 만주국에 대해 잘 알지 못해서 만주국에 대한 설명을 더 듣고 싶다.
-같이 토론해 보고 싶은 점
당시 조선인은 여러 안 좋은 이미지들을 갖고 있고 부정업자가 많았는데 만약 내가 당시 만주국으로 넘어가 만주국 사람이 되었다면 나는 성실히 일을 할 것인지 아니면 나도 큰돈을 챙겨 고향을 가자는 생각으로 안 좋은 일들을 했을지 토론해보고 싶다.
<도현준>
1. 박윤재 (2021). 때를 밀자 ―식민지시기 목욕 문화의 형성과 때에 대한 인식. 역사비평, 360-382.
새롭게 알게 된 점: 일제가 한국인이 목욕을 많이 하지 않는 것을 한국의 경제적 곤란에서 찾는 등 식민 지배를 합리화하는 논리로 사용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여전히 의문이 남거나 설명을 원하는 점: 일제가 일본인들이 청결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일본이 서양과 같이 발전된 국가이며, 후진국과는 다르다는 인식에서 나온다고 보아도 되는 것인가? 인도나 한국, 중국은 실제로 '더러운' 국가였는지 아니면 단지 서양과 일본의 논리일 뿐인지 궁금하다.
2. 黃永遠 (2021). 국경을 넘나들던 친일파 - 이완용과 근대 중국의 매국노 담론(1905~1945) -. 중국근현대사연구, 90, 63-93.
새롭게 알게 된 점: 중국에서 이완용과 같은 매국노와 만들어진 것이 근대 중국의 반일 민족주의와 국민국가 정체성 형성과 밀접하게 연결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3. 尹輝鐸.(2001).〈滿洲國〉의 '2等 國(公)民', 그 實像과 虛像.역사학보,169,139-171.
새롭게 알게 된 점: 조선인이 만주국에서 중국인보다는 어떻게 보면 나았지만, 조선인들은 대부분 희망 없이 살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지연>
1) 대중 목욕탕 하나 운영하지 못하는 우리가 독립을 운운할 수 있는건가.라는 자조적 비판이 나왔다고 했는대, 저자의 논리적 비약이 아니라 실제로 이런 인식이 존재했던 건지 의문이 든다.
2) 해당 시기에는 언론이 그렇게 발달하지도 않았을 시기인데 한국의 이완용이 중국에서까지 거의 고유명사처럼 쓰였다는 점이 신기했다.
3) 만주국이 제국주의 국가의 식민 권력에 의해 급조된 복합민족국가라면, 이와 비슷한 상황인 아프리카에서도 논문에서 설명한 일들과 비슷한 양상의 일들이 발생했을지 궁금하다.
<김예인>
[박윤재 (2021). 때를 밀자 ―식민지시기 목욕 문화의 형성과 때에 대한 인식. 역사비평, 360-382.]
1. 목욕이 청결이라는 신체적 의미를 넘어 문명화라는 위계적 사고와 연결되었고, “불결함을 해결할 수 없다면 독립도 불가능” 하다는 생각이 너무 극단적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저자가 말하고 싶은 건 목욕 그 자체가 아니라 이러한 청결의식에서 비롯된 “진보하지 못한 생활방식” 이었다. 목욕 문화의 형성과 때에 대한 인식의 진보는 민족의 수치를 이겨내고, 문명국가로 나아갈 수 있는 기반이 될 것이라는 믿음이 이 논문의 쟁점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고, 사소한 생활양식들도 역사의 경험이라는 것을 느꼈다
黃永遠 (2021). 국경을 넘나들던 친일파 - 이완용과 근대 중국의 매국노 담론(1905~1945) -. 중국근현대사연구, 90, 63-93.
2. [이완용과 근대 중국의 매국노 담론] 의 저자는 개별 매국노를 꼬집어 매도하며 모든 책임을 한 사람으로 돌리는 언론의 단순화 논법보다 조선의 사회 구조와 국민성 등 내적 요인에 집중한 담론이 생산적일 수 있다고 서술하였는데 어째서 “생산적”인 논법이 과거 이익에 눈이 멀어 우리나라를 넘겼던 사람들의 책임을 묻고, 비판하는 과정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역사는 과거의 잘못된 행동을 비판하고 다시는 반복되지 않게 하기위해 존재하는데, 이러한 작가의 인식은 매국노들의 잘못을 가려줄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尹輝鐸.(2001).〈滿洲國〉의 '2等 國(公)民', 그 實像과 虛像.역사학보,169,139-171.
왜 단기간에 큰돈을 벌어 일확천금을 노리겠다는 생각을 갖고 만주로 이주한 조선인들이 많았을까? 그 당시에 조선인들이 보기에 만주국이 어떠한 큰 메리트가 있었는지 궁금하다
<원서연>
박윤재 (2021). 때를 밀자 ―식민지시기 목욕 문화의 형성과 때에 대한 인식. 역사비평, 360-382.
타 수업에서도 식민사관과 식민 지배의 논리에 대해 배웠는데, 생각지 못했던 위생 문제도 식민 정당화 논리로 사용되고 있었다는 것을 구체적으로 알게 되었다. 또한 위생이 개인의 청결 문제를 떠나 민족의 문명 발전 정도를 나타내는 척도가 될 수 있음을 깨달았다.
조선이 목욕탕이라는 개념과 공간이 구비되는 것이 어려웠던 환경임은 이해하지만, 반도라는 특성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어째서 씻는 행위가 대중적이지 않았는지 궁금하다. 내륙에선 물을 사용하기 힘들어서였다면, 일본 내륙 지방은 어떻게 온천이 대중화될 수 있었던 것인지 궁금하다.
黃永遠 (2021). 국경을 넘나들던 친일파 - 이완용과 근대 중국의 매국노 담론(1905~1945) -. 중국근현대사연구, 90, 63-93.
식민지배의 근원적 원인을 친일파 개인에게 돌리는 것엔 한계가 있다는 의견에 부분 동의할 수 있겠다. 해당 논문의 의견대로 조선의 국민성이나 사회의 구조적 문제로 확대하여 보아야 할 필요도 있다고 생각한다. 경직되었던 사회 구조와 개인의 악행 중 어디에 더욱 무게를 두어 사건의 결과를 해석해야 할 지 토론해보고 싶다.
尹輝鐸.(2001).〈滿洲國〉의 '2等 國(公)民', 그 實像과 虛像.역사학보,169,139-171.
첫 번째 논문에서 청결도가 민족의 발전을 상징했다 바라본 것처럼, 민족의 개성을 존중하지 못하는 등의 국민적 자각이 부족하여도 타국민의 시선에선 부정적으로 비춰질 여지가 있다는 것을 새롭게 이해하였다. 당시 조선인들의 상황과 시대를 모두 고려해보면, 이들을 하나로 묶을 계기나 지도자가 부재한 탓도 있을까? 혹은 조선인 개개인의 태고의 민족적 특성 때문이었을까? 토론해보고 싶다.
<최준영>
1. 박윤재 (2021). 때를 밀자 ―식민지시기 목욕 문화의 형성과 때에 대한 인식. 역사비평, 360-382.
조선의 목욕횟수를 통계 내어 독일이 보도한 점에 처음 접하고 신박한 소재이자 한 편으로는 목적이 무엇인가 생각이 들게하는 소재라고 생각했습니다.
2. 黃永遠 (2021). 국경을 넘나들던 친일파 - 이완용과 근대 중국의 매국노 담론(1905~1945) -. 중국근현대사연구, 90, 63-93.
쑨원을 이완용과 같은 매국노로 중국 언론이 글을 쓴 점을 의외의 시선과 이유에 대해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량치차오의 조선멸망지원인에 대해 주장의 근거와 글의 흐름이 궁금합니다.
한반도의 망국의 원인은 고종의 무능함이라 밝힌 량치차오의 주장에 대해 토론해보고 싶습니다.
3. 尹輝鐸.(2001).〈滿洲國〉의 '2等 國(公)民', 그 實像과 虛像.역사학보,169,139-171.
만주국과 관련한 연구가 만주국에서 일본의 앞잡이 역할을 했다는 주장에 대해 반박하는 목적을 가지고 있음을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재만조선인의 행태가 다른 지역 거주민에게서도 나타난 현상인지에 대해 궁금합니다.
<박지수>
1) 때를 밀자 ―식민지시기 목욕 문화의 형성과 때에 대한 인식
목욕이 청결과 관련된 문제 뿐 만 아니라 문명화, 정치적 의미, 경제적 의미 등 다양한 의미로서 받아들일 수 있다는 점이 새로웠습니다.
2)국경을 넘나들던 친일파 - 이완용과 근대 중국의 매국노 담론(1905~1945) -
왕징웨이의 일본과의 협력은 단기적으로는 중국을 안정시키고 중일 간의 긴장을 완화할 수 있었지만, 장기적으로는 중국의 독립과 안보를 위협했습니다.
왕징웨이도 이러한 사실을 알고 있었을텐데, 그럼에도 일중친선을 찬성하였던 근거는 무엇이 있을까요?
3) 〈滿洲國〉의 '2等 國(公)民', 그 實像과 虛像 역사학보 169
만주국에 조선인들이 일본인들을 위한 쌀 재배, 군사적 목적으로 이주된 사실은 알고 있었으나, 이들이 교육, 주거 등의 사각지대에 끼게 되었고, 이로 인해 생겨났던 문제들에 대해 새롭게 알게 되었습니다.
<이수아>
1. 박윤재 (2021). 때를 밀자 ―식민지시기 목욕 문화의 형성과 때에 대한 인식. 역사비평, 360-382.
새롭게 알게 된 점 : 일본인들이 때를 밀지 않는 것에 대해 궁금해 하며 논문을 쓴다는 것을 보며, 작은 궁금증에서 시작하여 학문적 연구를 이어나갈 수도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지금의 목욕문화가 있기까지 역사적인 변천을 알 수 있었고, 목욕이 단순히 청결과 위생의 개념의 아니라 근대화와 문명화의 상징이라는 걸 깨달았다. 이를 식민지배를 당한 한국의 민족성과 연관지어 한국이 일본보다 더 위생을 중요시여기는 문화를 새로운 관점으로 해석했다.
2. 黃永遠 (2021). 국경을 넘나들던 친일파 - 이완용과 근대 중국의 매국노 담론(1905~1945) -. 중국근현대사연구, 90, 63-93.
새롭게 알게 된 점 : 이완용을 조선의 입장에서 매국노라고 지정하지 않고 중국의 입장도 함께 보여주면서 민족주의 사상과 국민국가 수립의 이데올로기를 잘 표현한 것 같다. 이를 통해 역사를 바라보는 다양한 관점을 배울 수 있었다. 한 쪽 측면에서, 선과 악의 관점에서 역사를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논문 전반적으로 다양한 시각을 서술하고 하나의 결론으로 단정 짓지 않으면서 ‘이완용’이라는 사람을 객관적으로 이해하게 되었다. 시대적 배경와 세계의 흐름 속에서 흘러가는 역사와 개인을 보여주는 서술이 인상 깊었다.
3. 尹輝鐸.(2001).〈滿洲國〉의 '2等 國(公)民', 그 實像과 虛像.역사학보,169,139-171.
같이 토론해 보고 싶은 점 : 식민지 시대의 역사를 올바르게 바라보기 위해서 자민족 중심주의에 치우지지 않고, 민족주의를 객관적인 시선에서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저자는 말한다. 역사 속의 자민족 중심주의의 사례를 찾아 함께 토의하고, 이를 올바른 역사관에 입각하여 바라보기 위해서는 그 사례를 어떻게 해석하면 좋을지 함께 이야기해 보고 싶다.
<이유미>
박윤재 (2021). 때를 밀자 ―식민지시기 목욕 문화의 형성과 때에 대한 인식. 역사비평 中
내용이 쉽고 재밌어서 순식간에 읽었음. 특히 개화파가 공중목욕탕 설치 및 목욕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개혁안에까지 포함시켰다는 점과 노동자들이 파업 조건으로 목욕탕 설치를 요구한 점이 신기했음. 그리고 여담이지만 일본 갔다가 ‘때 밀지 마세요’ 한 마디에 한국의 목욕 문화에 대해 연구하고 싶어지는 학구열 정돈 있어야 대학원에 가는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음.
黃永遠 (2021). 국경을 넘나들던 친일파 - 이완용과 근대 중국의 매국노 담론(1905~1945) -. 중국근현대사연구 中
중국은 굳이 남의 나라 매국노를 데려다가 그 상징으로 삼을 만큼 (논문에 언급된 인물 외에도) 이완용의 임팩트를 능가할 만한? 중국의 대표적인 매국노는 없는 것인지 궁금함.
尹輝鐸.(2001).〈滿洲國〉의 '2等 國(公)民', 그 實像과 虛像.역사학보
만주국이 단순한 일본의 괴뢰국가라고 알고 있었는데, 복합적이고 중층적인 통치 구조를 지닌 식민국가라는 점을 새롭게 알게 됨. 또한 조선인들이 한반도에서의 식민 탄압을 피해 새로운 기회를 찾아 만주로 이주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막상 만주국의 통치 하에서 재만 조선인들은 ‘2등 국민’으로 취급받고 멸시 당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음.
1930년대 이래의 재만 조선인 도시민들이 스스로 부정적인 자아의식을 지니고 있었다는 연구가 있고 과거에 한인들이 강제 이주당한 이래로 ‘조선족’이라는 존재는 오늘날까지도 부정적인 인식이 존재함. 이러한 재만조선인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은 오늘날 한국 미디어가 조선족에 대해 차별적으로 형상화하고 있는 현상과도 맞닿아있다고 생각하는데, (역사적인 쟁점은 아니지만 ‘서로를 보는 눈’이라는 주제에서) 대중매체 속 조선족에 대한 범죄자 묘사라는 논제에 대해 토론해보고 싶음.
<박성재>
1. 박윤재 (2021). 때를 밀자 ―식민지시기 목욕 문화의 형성과 때에 대한 인식. 역사비평, 360-382.
조선인의 목욕에 관련된 통계의 주체가 경성제국대학인 만큼 정확성에 대해 의구심이 든다. 물론 조선인이 더러웠다는 사실은 불변하지만, 식민지 시기 통계가 왜곡되었거나 과장되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한편, 최근 대중목욕탕이 사라지면서 때밀이 문화 또한 점차 사라지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2. 黃永遠 (2021). 국경을 넘나들던 친일파 - 이완용과 근대 중국의 매국노 담론(1905~1945) -. 중국근현대사연구, 90, 63-93.
이완용이 식민지 시기부터 매국노로 인식되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3. 尹輝鐸.(2001).〈滿洲國〉의 '2等 國(公)民', 그 實像과 虛像.역사학보,169,139-171.
식민지 시기 타국에 가서 고생한 조선인들이 많이 존재한다. 멕시코 에네켄 농장의 이주 조선인들이 생각나서 안타까웠다.
<임유태>
1. 새롭게 알게 된 점: 때밀이라는 행위가 청결 뿐 아니라 식민지 차별 및 멸시의 시선에서 벗어나기 위함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2. 토론해보고 싶은점: 이완용이 다른 친일파와 비교했을때 더 죄질이 무거운가?
3. 새롭게 알게 된 점: 조선 만주국인이 중국 만주국인보다 좋은 처우를 받았던 이유는 같은 일본 신민이라는 통치 명분 덕분이었다.
<김민찬>
1. 때를 밀자 ―식민지시기 목욕 문화의 형성과 때에 대한 인식. 역사비평, 360-382
1) 새롭게 알게 된 점
- 위생이라는 단어가 일본에서 만들어져 한국에 수입된 새로운 단어라는 사실을 알게되었다.
- 목욕탕이 처음에는 치료 목적으로 운영되었다는 사실도 처음 알았다.
2) 여전히 의문이 남거나 설명을 원하는 점
- 한국이 민족적 치욕을 극복하기 위해 때를 밀었던 것과 같이 중국과 인도에서도 비슷한 문화적 특징이 나타났나요?
2. 국경을 넘나들던 친일파 - 이완용과 근대 중국의 매국노 담론(1905~1945) -. 중국근현대사연구, 90, 63-93.
1) 새롭게 알게 된 점
- 이완용이 중국에서 자주 호명되던 매국노의 대명사였다는 사실
- 이완용의 정치적 역할에 비해 그와 관련된 기록과 연구가 미흡하다는 점 (이 내용을 읽고 생각해보니 정말로 그렇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2) 여전히 의문이 남거나 설명을 원하는 점
- 정말로 쑨원이 청 왕조체제를 무너뜨리고 새로운 국가를 건설하는 명의 목표보다 만주의 영토 주권을 후순위로 두었다는게 사실인가요? (학계에서는 어떻게 논의가 되어가고 있는지와 교수님의 생각이 궁금합니다!)
3. 滿洲國〉의 '2等 國(公)民', 그 實像과 虛像.역사학보,169,139-171.
1) 새롭게 알게 된 점
- 만주국으로 이주한 조선인들은 다 처지가 나아진 줄 알았는데 오히려 여러 방면에서 혼란을 겪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2) 같이 토론해 보고 싶은 점
- 재만 조선인은 어디 범주에 포함되어야 할까? (일본 신민 vs 조선인)
<장문혁>
궁금한점: 고려인들은 매일 2회씩 목욕을 하는 등 목욕과 위생에 관해 신경을 많이 썼는데 조선 후기 알랭이 본 것처럼 조선인들은 왜 청결히 다니지 않았는지(왜 위생관념이 퇴화하게 되었는지)
새롭게 알게된 점: 목욕문화의 발전이 위생문제와 질병 문제로 인해 발전하였다고 생각했으나 근대의 정신적 산물이라는 관점은 처음 접하였다
같이 토론해보고 싶은 점: 이완용과 같은 인물에 관한 연구를 지속하여 식민지화의 과정을 개인에게 무조건적으로 전가하지 않고 전체적인 면도 함께 보자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이 때 이완용 개인의 평가는 달라져야하나?
<안지우>
1-1. 예전부터 한국인이 목욕에 대해 가진 인식은 여유보다는 강박이었다. 식민지 시기에, 목욕탕을 휴게 및 오락 공간으로 여기는 일본인들에 의해 한국에도 목욕탕에서의 유흥 문화가 수입되기도 했지만 이 인식은 사라지지 않았다는 점을 알게 되었다.
1-2. 때 말고도 한국인의 독립을 저해하는 '불결함의 대상'으로 여겨진 요소가 있었는지 궁금해졌다.
2-1. 이완용의 매국 이야기를 중심으로 한 경극 '매국노'에서 중국인의 민족주의 요구에 의해 이완용은 '세상 이치를 잘 아는 정의의 인물'이 아닌 '본인의 부귀영화를 위해 나라를 팔아먹는 이기적이고 간사한 인물'로 묘사되었다. 어떻게 매국 행위를 했는지 보다는 매국노라는 이미지가 중시된 점이 흥미로웠다.
3-1. 논문에서는 만주국 국민으로서의 자아의 결여가 조선인이 차별받은 원인이었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과연 재만 조선인이 처음부터 만주국 국민으로서의 자아가 결여된 상태였을지, 즉 만주 문화에 녹아들지 않은 조선인을 향한 차별이 먼저였을지, 조선인이 귀속감을 느끼지 못한 것이 먼저였을지 토론해보고 싶다.
<박건우>
<1번 논문>
-대중목욕탕에서 강박적으로 때를 미는 문화가 20세기 초반에 형성되었고 이는 일본에 대한 위생적 열등감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새롭게 알게 되었습니다.
-보통 대중목욕탕은 찜질방도 같이 운영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러한 찜질방 문화도 20세기 초반 한국에 대중목욕탕이 설치되면서 함께 형성된 것인지 궁금합니다.
<2번 논문>
-중국에서 안중근, 윤봉길 등 독립운동가 뿐만 아니라 이완용처럼 부정적인 인물에게도 관심을 가졌다는 것을 새롭게 알게 되었습니다.
-본문에서 이완용 타이틀은 좌우 이념 투쟁 시에도 활용되었고 친소련파를 상징했다고 언급되어있습니다. 여기서 이완용 타이틀이 무슨 이유로 친일파가 아닌 친소련파를 상징하게 되었는지 궁금합니다.
-현재에도 자신의 이익과 자신이 속해있는 정당의 정치적 이권을 위해서 정치 성향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상대방을 친일파 혹은 종북세력으로 매도하는 일이 자주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렇게 자신의 이익과 정당의 정책을 관철하기 위해 상대방을 매도하는 행위가 옳은 행위인지 토론해보고 싶습니다.
<3번 논문>
-만주국 내부에서 한국인들이 중국인들과 일본인들 사이에 끼어 환영받지 못한 존재였던 것을 새롭게 알게 되었습니다.
-대다수의 조선 사람들이 상업이나 수공업이 아니라 주로 농업에 종사했던 이유가 궁금합니다.
<예진>
1. 때를 밀자 - 식민지시기 목욕 문화의 형성과 때에 대한 인식
1) 새롭게 알게 된 것 : 위생을 구현한다는 것이 청결의 의미를 넘어 근대 문명을 수용하고 성취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졌다.
때는 치욕을 상징하고 육체적 차원을 넘어 정치적 의미를 지닌 제거대상이었다.
2) 궁금한 점
우리나라의 ‘때’처럼 민족차별 경험이 녹아들어 오래 지속된 다른 나라의 문화는 무엇인지 궁금하다.
2. 국경을 넘나들던 친일파
1) 새롭게 알게 된 점 : 이완용이 매국노로 근대 중국 언론에 자주 등장했던 인물이었다. 이는 근대 중국의 반일 민족주의와 국민국가 형성과 밀접하다.
2) 토론해보고 싶은 점
이 논문에서는 이완용을 비롯한 매국노 개개인에 집착하기보다 조선 사회의 구조적 문제와 조선인의 국민성에서 책임을 물어야한다고 설명한다. 그렇다면 조선인의 국민성은 무엇이고 현재까지 남아있는가? 조선인의 국민성을 가지는 우리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하는가?
3. 尹輝鐸.(2001).〈滿洲國〉의 '2等 國(公)民', 그 實像과 虛像.역사학보,169,139-171.
1) 새롭게 알게 된 것
만주국에서 조선인이 2등 국민이었다는 논리는 조선 도시민의 실제 위상을 반영한 것이 아니라 이용하기 위함이었던 것이다.
<박다연>
1. 우리나라가 목욕탕문화가 발달한 데에는 식민지 시기의 영향으로 때를 밀게된 것의 영향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어 신기했다. 이전까지는 '때 밀기'에 대해 아무런 생각이 없었는데, 그 안에 이렇게 깊은 역사적 함의가 존재한다는 걸 이번 기회에 알게 되었고, 개인적으로 흥미로웠던 논문이다.
2. '이완용'하면 매국노의 대명사로 생각되어지는데 이러한 인식이 중국에서도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우리나라 인물 중 그저 중앙정부의 뜻을 충실히 따랐을 뿐인데 과도한 누명을 쓰게 된, 정부의 희생양이 된 인물에는 누가 있을지 더 알아보고 싶다.
3. 만주국은 다양한 민족으로 구성되었고, 제국주의 국가의 권력에 의해 급조된 국가인데, 만주 지역이 이와 같은 특성을 가질 수 있었던 데에는 어떠한 요인의 영향이 있었는지 궁금하다. 그 지리적 특성 때문인지?
<김주찬>
1. 박윤재 (2021). 때를 밀자 ―식민지시기 목욕 문화의 형성과 때에 대한 인식. 역사비평, 360-382.
새롭게 알게 된 점: 역사적으로 한반도 사람들의 목욕에 대한 인식이 어땠는지, 또 어떻게 청결을 관리했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또 식민지 시기에 때를 열심히 밀기 시작한 계기에 대해 알게 되었습니다.
아직 궁금한 점: 일제시대때 목욕 문화를 홍보하기 위한 한인들의 노력이 기사를 쓰는 것과 같은 소규모 활동에 그쳤는지, 아님 조선총독부에서 대대적으로 실행한 캠페인 같은건 없었는지 궁금합니다.
2. 黃永遠 (2021). 국경을 넘나들던 친일파 - 이완용과 근대 중국의 매국노 담론(1905~1945) -. 중국근현대사연구, 90, 63-93.
새롭게 알게 된 점: 근대 중국에 조선의 망국에 대한 관심이 많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완용이 중국에서도 유명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3. 尹輝鐸.(2001).〈滿洲國〉의 '2等 國(公)民', 그 實像과 虛像.역사학보,169,139-171.
아직 궁금한 점: 재만 조선인들을 중 일반적인 농민들이었던 80%는 부정업자들이 깍아먹는 조선인 이미지에 대한 불만을 어떤 형식으로든 표출한 적이 있는지?
<박준석>
1. 이전에도 청결이 강조되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서양인의 관점이 확대되면서, 조선인이 상대적 불결하다는 인식과, 청결과 위생의 중요성이 더 강조되었으며. 여기에 일제가 목욕을 식민 지배를 위한 논리로 확대해석 하면서 차별을 정당시 하였는데, 이런 차별을 극복하기 위해 청결이 더욱 강조되며 때가 육체적 차원을 넘어 정치적 차원에서도 척결해야 할 대상이 되어 일본에 비해 더 강박적으로 때를 씻어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2. 이완용은 청말 서양 제국주의의 약탈로 위기에 빠진 중국 민중들에게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중국에서도 매국노의 대명사로 호명되었으며, 뒷날 긍정적으로 평가되는 왕다셰가 당시 중국에서 이완용과 같은 매국노 딱지가 붙여져 공격당하는 것을 통해 '매국노'라는 용어가 정치적 수사로 남용되고 있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청나라의 왕조체제를 종료시켜 부르주아 국가를 건립하는 이른바 혁명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만주의 영토 주권을 일단 뒷전으로 미루며 일본의 경제적 원조를 받자는 쑨원의 맹약은 경제적 필요성을 위해 전 국민적인 반대에도 불구하고 체결한 박정희 정권의 한일협정과 비슷한 성격을 가졌다고 생각되는데 이런 관점으로 바라볼 수도 있는지가 궁금합니다.
3. 중국인에 비해 조선인이 임금을 많이 받았기 때문에 만주국 내 조선인의 민족적 위상이 일본인 다음의 '2등 국민' 이라는 단정은 당시 노동시장 상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내리는 것이며, 1937년 치외법권 철폐 전까지 조선인이 법적으로 '일본 신민' 이었기 때문에 '2등 국민' 으로 취급 받았으며 중국인이 조선인을 '2등 국민'이라 칭한 배경에는 반발과 멸시, 경멸적인 시선이 내포된 것을 통해 '2등 국민론' 은 실체적 논리라기보다는, 허구적 논리에 가깝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