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저에게 가장 공포스러웠던
수학얘기를 하려 합니다
지금까지 살면서 수학처럼 이해 안되고
힘든 공부가 없었습니다
도저히 알 수 없던 과목이었으니까요
도저히 안 되어서 수학을 외웠습니다
중2 중반 쯤 담임선생님이 새로 오셨습니다
그리곤 특명이 내려졌습니다
매일 A4지 4장에 공부한 표시를 해오라는
것이었습니다
안 해오면 반 장에 몽둥이 한 대씩 때린다는 겁니다
그러니 4장을 다 안 해오면 8대를 맞는 것이지요
안 맞으려고 죽을 똥 살 똥 했습니다
수학으로 칸을 채우고 영어로 나머지 칸을
채웠습니다
시험을 칠때는 벌써 거의 답을 외우게 되더군요
평균 55~60점 받던 제가 88점이 나왔습니다
그 이후에 이런 식으로 공부하니 성적은
잘 나왔는데 중학3년의 기초인
1학년과 2학년1학기는 수학공부를 안해서
맹탕인 채로 고등학교에 진학하게 되었습니다
수학만 20점 만점에 9점을 받았으니까요
다른 과목은 몇 개 틀리지 않았는데 말입니다
결국 수학 선생님에게 욕을 바가지로 들었습니다
수학만 잘 쳤으면 수석도 했을 거라면서~~
그 수학선생님은 이름이 "이 훈"이었습니다
이름은 같은데 수학을 못하니 수업진행하다
저를 부르고는 문제를 풀라고 했습니다
제가 풀 수가 있나요?
못 풀면 샌달에 침을 뱉어서는 제 얼굴을 때렸습니다
학교가 가기 싫었습니다
명색이 특별반이었는데도 말이죠
전교 석차 1~60등 정도의 학생들만 있는 반이었죠
수학선생님은 저를 놀리는 재미로 오는 것 같았고
그렇게 얻어 터지는 날이 진행되다가
어느 날 대 사건이 터졌습니다
"제가 문제를 푼 것입니다"
말도 안된다는 표정으로 칠판과 제 얼굴을 번갈아
보시던 그 얄미운 수학선생님이 생각납니다
안 얻어 터지려고 예습을 했던 것입니다
그 뒤로 계속 풀게 하더니 멈췄습니다
재미가 없었나 봅니다
그 뒤로는 예습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계속 그런 식으로 공부를 했습니다
하지만 지금도 수학은 공포입니다
대학교 때 공대의 거의 각 과의 수석을 모아서
"그룹학습실"을 만들고 저는 자격이 안 되는데
만들었다는 공로로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도서관내의 휴게실을 "그룹학습실"로 편의를 봐주신
그 당시 "도서관장"이신 "신상철 교수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그 당시 그룹학습실 멤버들은 수학은
갈아 마시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저만 아주 이상한 사람이었습니다
저는 이런 수학의 한계때문에
KAIST를 포기하고 취업을 선택했었습니다
그 당시 "그룹학습실"을 만들고는 첫 마디가
"저는 이 그룹학습실을 밝히고 사라지는 촛불
이고 싶습니다"라고 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면
어쩜 그런 말을 할 수 있었나 싶네요
아마도 그 때부터 "내 안과 대화를 하고 살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내 눈 앞에 "촛불"이 둥둥 떠 다니고 있었으니까요
그 시점에 가장 최적의 상황을 표현하는 말이 나왔고
지금은 그 사람들하고 연락이 전혀 없는 사라진
촛불이 되었으니까요
이런 것을 "진리"라고 한다는 것도
한 참이 지난 후에 알았습니다
저는 이렇게 산수나 수학은 젬뱅이었습니다
이놈의 수학이 저를 사랑하지 않네요
제가 필요없다나 봐요 ㅠ 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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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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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3.15 1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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