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서 학교까지 8km 거리다. 아침마다 콩나물시루 같은 버스에 몸을 싣고 학교를 간다.
차장은 학생들을 욱여넣듯이 버스 안으로 밀어 넣고 혀 꼬부라진 소리로 “오라이” 하며 차를 두드리면 버스는 ‘부우우웅’ 하며 힘겹게 다음 도착지로 간다. 버스 문은 제대로 닫히지 않은 상태다. 차장은 용케도 차문 손잡일 붙들고 아슬아슬하게 밖으로 몸을 매단 채 차는 달린다. 가끔 동남아 여행과 관련된 영상을 보다가 사람이 미어터지게 탄 버스나 기차의 모습을 보는데 어떻게 저런 상태로 달릴 수가 있지 하고 생각한다. 사실 나의 학창 시절엔 늘 아침마다 벌어졌던 풍경인데 말이다.
난 유난히 성장이 더디었다. 같은 또래에 비해 20cm 정도는 작았던 것 같다. 그게 늘 콤플렉스였다. 그날도 만원 버스에 몸을 실었다. 야트막한 고개를 넘어갈 때면 때는 이때다 싶어 짓궂은 학생들이 뒤에서 앞으로 짐작 밀 듯 밀어붙였다. 그 순간 온갖 비명과 함께 학생들은 앞으로 쑥 밀려갔다가 차가 고개를 넘어 평지에 도착하는 순간 관성으로 다시 뒤쪽으로 밀려갔다. 그러는 사이에 신기하게도 복잡했던 차 안은 어느 정도 여유가 생겼다. 그럼 차장은 더 많은 학생들을 버스 안으로 욱여넣었다. 가방을 든 손이 떨어져 나갈 듯이 아팠다. 하필이면 여학생 틈바구니에 나의 몸이 끼었다. 한 손은 가방을 들고 한 손은 차렷 자세로 서서 사람들이 쏠리는 대로 갈대처럼 이리 저리로 몸을 맡길 수밖에 다른 방도가 없었다. 내 앞에 서있는 학생은 교복차림으로 보아 고등학교 누나였다. 나보다 머리통 하나만큼 더 컸다. 그 누나와 나는 마주 보고 있는 자세였다. 누난 그래도 키가 커서 손을 들어 천장에 매달린 손잡이를 붙들고 있었다. 다시 차가 고갯마루를 막 넘어가는 순간 내 몸은 걷잡을 수 없이 앞으로 쑥 밀려갔다. 내 얼굴은 아주 자연스럽게 앞에 서있는 누나의 가슴에 쿡 처박히고 말았다. 정신이 어찔어찔하였다. 그 보드랍고 푹신한 누나의 가슴이 얼마나 좋던지 숨이 막혀 죽을 것 같으면서도 온몸에 피가 솟구치는 걸 어쩔 수 없었다. 그때였다. 갑자기 눈앞이 번쩍하더니만 누나의 쌍욕이 침과 함께 내 얼굴로 쏟아졌다. 난 그저 두 눈을 감고 어서 빨리 이 순간이 지나가기만 간절히 바랐다. 주변에 있던 고등학교 형들이 킬킬대며 웃어댔다. 그러자 누난 뒤에 서있는 형들을 향해 또 한 번 큰 소릴 꽥하고 지리며 질펀한 욕을 해댔다. 그 소리에 기가 죽었는지 조용해졌다. 버스가 터미널에 도착하자 난 도망가듯 그 자릴 떠났다.
그 사건이 있고 나서 난 아버지께 자전거를 사달라고 졸랐다. 그러나 돌아오는 건 “야 이눔아 누군 자전거 없어서 학교에 못 댕긴다더냐 잔말 말고 버스 타고 다녀 돈이 어딨다고” 그래도 틈만 나면 엄마를 졸라댔다. 몇 날 며칠을 애걸복걸하였지만 씨알도 안 먹혔다. 속으로 징징대며 그냥 학교에 다닐 수밖에 없었다. 첫 차와 둘째 차는 학교에 늦지 않으려고 한꺼번에 학생들이 몰리는 바람에 항상 만원이다. 그러나 뒤에 오는 세 번째 버스는 한결 여유가 있다. 궁여지책으로 난 지각하기 딱 좋은 시간 때의 세 번째 버스를 탔다. 그러니 터미널에서 교실까지 무조건 뛰어야 겨우 지각을 면한다. 문제는 버스가 제 시각에 오지 않거나 속도가 늦으면 어김없이 교문 앞에 엎드려 뻗혀서 규율부 선배에게 모진 고문을 당해야 했다. 하루는 내가 하도 지각을 자주 하니까 규율부 형이 물었다. “야 인마, 너 맨날 이렇게 늦어 무슨 이유라도 있는겨 말해봐” 난 우물쭈물하다 겨우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제가 키가 작아서 만원 버스를 타면 숨을 못 셔 죽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헐렁한 버스를 타고 오는 바람에 그렇습니다” 규율부 선배는 내 얘길 듣고 위아래를 훑어보더니 그럴만하겠다는 듯이 궁둥일 한 대 걷어차더니 들여보내주었다.
어느 날 우리 집에 어떤 신사분이 찾아오셨다. 그분은 우리 집에서 걸어서 오 분 거리에 오두막 같은 집 한 채를 급히 지어 혼자 사시는 분이었다. 그의 신분과 직업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다만 겉모습으로 보아 글깨나 배운 사람 같았고 뭔가 있어 보였다. 그의 옷차림은 늘 깔끔한 단벌 신사복을 입고 다녔다. 그분이 우리 집에 며칠만 자전거를 맡겨 달라며 끌고 오셨다. 아주 깨끗한 상태로 보아 구입한 지 얼마 안 되어 보였다. 아버진 그러마 하고 자전거를 창고에 집어넣고 일을 나가셨다. 난 얼른 자전거를 향해 달려갔다. 마치 에덴동산에서 하와가 보았던 선악과처럼 멋지게 생긴 게 타봄직 한 자전거였다. 어느새 내 손엔 자전거가 끌려 나오고 있었다. 어디서 본 건 있어서 자전거 페달 한쪽에 오른발을 얹고 왼 발로 땅을 짚고 앞으로 살살 걸어갔다. 우리 집은 동네 꼭대기에 위치하여 저 아래로 비탈진 길이 이어진다. 당연히 비포장 도로였고 길바닥이 늘 울퉁불퉁 파여 있어서 걸어갈 때도 조심스럽게 다녀야 했다. 가슴이 쿵쾅쿵쾅 두 방방이질을 쳤다. 남의 자전거를 가지고 나온 것도 그렇고 자전거를 배워보겠다고 난생처음 모험을 시작하려고 하니 온몸의 피가 머리로 솟구치는 것 같았다. 용기를 내어 왼 발을 힘차게 뒤로 밀자 자전거가 앞으로 훅하고 나아갔다. 깜짝 놀라서 얼른 브레이크 손잡이를 움켜잡았다. 그러자 부욱하고 뒷바퀴가 땅에 끌리며 멈춰 섰다. 다시 용기를 내어 같은 동작을 반복하였다. 처음엔 무섭기 짝이 없던 것이 조금씩 자신감이 붙으면서 자전거의 이동 거리가 점차 길어졌다. 그러다 어느 순간 용기를 내어 의자에 엉덩일 얹고 앞으로 나아갔다. 갑자기 앞바퀴가 좌우로 기우뚱 거리며 내 몸이 갈피를 못 잡고 흔들리다가 시궁창으로 처박히고 말았다. 자전거 체인을 보호하고 있는 뚜껑이 조금 찌그러진 것 말곤 괜찮았다. 얼른 안샘으로 끌고 가 자전거를 물로 씻고 제 자리에 갖다 두었다. 그 뒤로 아무도 없을 때면 나의 자전거 타기 연습은 계속되었다. 대여섯 번 자전거와 씨름하는 동안 안정적인 상태에서의 이동거리가 길어졌다. 그래서 이번엔 용기를 내어 동네 길을 빠져나갈 생각으로 집에서부터 자전거에 올라타고 페달을 밟았다. 문제는 내 다리가 짧아 페달까지 제대로 닿지 않는 것이었다. 페달을 밟을 때마다 엉덩이가 씰룩거렸다. 그래도 자전거를 탈 수 있다는 즐거움에 그까짓 아무 문제없었다. 그런데 복병이 날 기다리고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비탈진 길을 신나게 내려오다가 급커브 길을 꺾어야 하는데 그만 균형을 잃으면서 자전거와 함께 높은 논두렁길 아래로 추락하였다. 진흙탕을 뒤집어쓰고 논바닥에서 몸을 일으키자 붉은 피가 팔뚝과 정강이에서 흘러내렸다. 욱신욱신 몸이 아프고 상처부위가 쓰렸다. 와중에도 자전거 상태가 궁금하여 살펴보았다. 자전거는 그야말로 만신창이가 되었다. 핸들은 꺾이고 바퀴는 찌그러졌다. 순간 앞이 캄캄한 게 미칠 지경이었다. 이걸 어쩌면 좋단 말인가 우선은 사람들의 눈을 피해 자전거를 집으로 질질 끌다시피 가지고 갔다. 물로 씻고 꺾인 핸들을 강제로 돌리니 제자리로 돌아갔다. 뒷바퀴는 다행히 멀쩡했다. 찌그러진 앞바퀴를 창고 구석 쪽으로 처박고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세워두었다.
죄는 결국 탈로 나는 법 한 동안 외출하셨던 신사분이 자전거를 찾으러 오셨다. 마침 아버진 집에 안 계시고 나 혼자 마당 가에 있는 화단에서 풀을 뽑고 있었다. 내 가슴은 터질 듯 쿵쾅거렸다. 당장 밖으로 달아나야 하는데 생각은 있었지만 발이 움직이질 않았다. 신사 분은 잠시 후 사태를 확인하더니 어안이 벙벙한 채 자전거만 응시하고 계셨다. 그 모습을 힐끔힐끔 훔쳐보며 난 차마 얼굴을 들지를 못한 채 화단 가운데에 쭈그려 앉아 눈치만 살폈다. 한동안 말이 없던 신사는 나를 힐끔 한 번 처다 보더니 자전거를 도로 창고에 집어넣고 대문 밖으로 나가셨다. 신사는 그 뒤로 두 번 다시 우리 집엘 찾아오지 않았다. 나 역시 그분이 사신다는 집엘 한 번도 찾아가질 않았다. 잘못했다고 용서라도 빌고 싶은 마음이야 굴뚝 같았지만 걸어서 오분이면 도착할 수 있는데도 도저히 용기가 나질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검정색 지프차가 우리 동네로 들이닥쳤다. 흙먼지를 날리며 우리 집까지 올라오는가 싶더니 그 신사분이 살고 있는 집 앞으로 곧장 달려갔다. 그 뒤론 누구도 그 신사분의 행방을 아는 사람은 없었다. 버려진 채 흉가로 방치되던 신사의 집은 어느 여름날 거센 장맛비에 그만 폭삭 주저앉고 말았다.
중학교 삼 학년이 되던 해에 나의 이런 애로사항을 아셨는지 둘째 매형이 철제 책상과 함께 신사용 자전거를 사주셨다. 그때의 내 기분은 이루 헤아릴 수가 없었다. 그 이튿날부터 자전거로 통학을 하였다. 아직 미숙한 실력이었지만 피 터지게 배운 자전거는 몸이 기억하고 있었다. 먼지가 폴폴 나는 신작로보다 아무도 없는 둑길을 나 홀로 자전거를 타고 가노라면 신선한 바람이 얼굴을 스쳐가고 사방으로 펼쳐진 짙푸른 초원이 그림처럼 획획 스쳐 지나갔다. 집에서 느긋하게 나와도 조금 열심히 달리면 지각은 모면하였다. 당시에 학교 안엔 학생들이 자전거를 거치할 수 있도록 별도의 자릴 마련해 주고 있었다. 내가 도착하였을 땐 이미 거치대 안에 자전거가 만차를 이루었다. 말하자면 내가 꼴찌인 셈이다. 그래도 지각은 아니다. 삼 학년이니 규율부원을 무서워할 이유도 없었다. 어쩌다 지각하면 교문 앞에 지켜 서 있는 규율부장에게 눈짓 한 번 하면 그만이었다. 그런데 가끔 작은 내 모습을 멀리서 보고 저학년인 줄 알고 냅다 소릴 지르며 “야 이 새끼야 너 빨리 안 와” 그래서 가까이 다가가면 내가 아는 친구 거나 친구의 친구 거나 했다. 그럼 “어이구 또 너냐, 인마 좀 일찍 오면 안 되냐” 그게 전부였다. 그렇게 인연을 맺은 자전거는 고등학교 이학년이 될 때까지 나의 발이 되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