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전의 춤사위
꽃대가 올라온 상추를 빼닮았다. 눈에 익은 듯하면서도 낯선 노랑꽃 무리다. 길섶에 줄지어서 병아리 눈빛 미소로 고향 찾은 우리 일행을 반겼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상추와 비슷한데 잎은 훨씬 더 길고 좁으면서 잎맥에 단단한 가시가 있다. 관심을 가지고 살펴보노라니 길가, 개울가, 빈터에서도 만날 수 있었다.
고향 지인에게 어릴 적 보지 못했던 꽃이라고 했더니 ‘야생 상추’라고 일러줬다. 잎이 연할 때 왕고들빼기처럼 즐겨 먹고, 잘린 줄기나 잎에서 흰 유액이 나오는 특이성이 약용으로 알려져서 일부 농가에서는 이를 재배하여 판매도 한다는 것이다. 훗날 따로 알아봤더니 유럽 및 지중해 연안이 원산지로 1978년 김포공항에서 처음 발견되었다는 외래 귀화식물이다.
새로운 환경에 던져진 생명체는 어느 종을 불문하고 거의 필사적으로 살아남으려 한다. 항공화물에 휩쓸려 씨앗으로 동그마니 낯선 대륙에 던져졌던 가시상추도 역시 그랬을 것이다. 척박한 환경 속으로의 강제 이주가 어디 호락호락하였겠는가. 낯선 이역 땅 바닷가 공항에서 죽을힘을 다하여 싹을 틔우고 뿌리 내렸을 것이다. 오늘날의 가시상추는 그 과정에서의 수많은 역경을 극복한 결과일 것이다.
국화목 국화과 왕고들빼기속 식물로 분류된 가시상추는 코사코니아, 코와니아 등 씨앗의 내생 세균으로 가뭄 저항성이 높고, 잎을 수평에서 수직으로 곧추세우는 콤파스 식물이어서 강렬한 햇볕에 잘 견디며, 척박한 환경에도 적응력이 높은 식물로 밝혀졌다. 게다가 민들레와 같이 바람을 타고 갓털에 매달려 날아가 그들의 영토를 넓혀가서 2012년 생태교란 생물로 지정되었다.
가시상추는 유럽 본향에서는 정작 제거 대상인 잡초였다. 이역만리 이 땅이 그들의 가나안이었던가. 재생의 길에서 가시상추의 진면목을 알아주는 행운을 얻었으니 말이다. 언젠가부터 영양가 높은 채소로, 효험이 확실한 약초로 알아주는 신분 변화였다. 이역 땅에 뿌리 내린 반세기, 가시상추는 생존 본능에 충실하였고, 토착화에 생사를 걸었을 것이다. 식용과 약용으로 몸을 먹거리로 내어놓으며, 이 땅의 인간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생존법을 터득하였으리라. 그래서 건강식 기능성 채소로 새로운 평가를 받았을 터이다.
채소밭의 주인은 채소이다. 거름 주고 기르면 채소이고, 뽑히면 잡초이다. 채소는 재배의 대상이고, 잡초는 제거의 대상이다. 채소밭의 채소와 잡초는 삶과 죽음의 차이다. 채소로 바라보는 고운 눈길이 생태 교란자로 내몰리면서도 넉넉히 견딜 수 있었던 힘의 원천이었으리라. 제거 대상이었던 잡초의 처지에서 식용 약용으로 재배 대상인 채소의 반열에 올랐으니 어이 놀라운 역사가 아니겠는가. 우리 민족의 혜안과 가시상추의 끈질긴 생명력의 컬래버이다.
가시상추는 거친 자연에서 억척스럽게 살아남아 우리의 식탁에 오르고 약이 되는 이로운 존재로 거듭나 반전의 꽃을 피우고 있다. 생태를 교란하는 침입자가 아니라 우리에게 유익종으로 살아남았다는, 이 땅에서 탄탄한 그들의 터전을 닦아왔다는 사실이 먼저다. 혹독한 환경을 극복하고, 마침내 이 땅과 인간과 합일하는 것, 이것이 지혜로운 생존의 모습이다. 가시상추의 삶을 뒤집은 끈질긴 생명력은 우리에게 깊은 가르침을 준다.
특별히 이러저러한 사연으로, 자의 타의로 이 땅에 속속 밀려드는 이주민들에게 가시상추의 성공적인 정착이 반면교사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은 왜일까. 그들의 특성과 장점이 국민 속에 녹아들어 튼튼히 뿌리내릴 수 있는 자양분이 되었으면 싶어서일 듯싶다. 자랑스러운 한국인으로 어깨 으쓱으쓱하는 반전 춤사위가 보고 싶어서다.
은종일 eunji4513@hanmail.net
《한국수필》 수필, 《문학시대》 시, 《창작에세이》 및 《문장》 평론 등단. (사)한국수필가협회 부이사장, (사)한국문인협회 이사. 수필집: 『스케치북 펼치다』 외 4권, 시집: 『사소한 자각』 외 1권. 평론집: 『현대수필의 창작과 비평』. 수상: 박종화문학상, 대구문학상, 한국수필문학상, 올해의 수필인상(‘25 수필의 날) 외 다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