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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조광장]‘상고심절차에 관한 특례법’ 제4조에 대한 오해(대법원 2005다63429 판결을 중심으로) |
이진우 변호사(서울)
1. 절대적 상고이유와 심리불속행
민사소송법 제424조 제6호는 절대적 상고이유의 하나로서 ‘판결의 이유를 밝히지 아니하거나 이유에 모순이 있는 때’를 규정하고 있다. 대법원 판례는 이 규정을 “판결에 이유를 전혀 기재하지 아니하거나 이유의 일부를 빠뜨리는 경우 또는 이유의 어느 부분이 명확하지 아니하여 법원이 어떻게 사실을 인정하고 법규를 해석·적용하여 주문에 이르렀는지가 불명확한 경우를 일컫는 것이다”라고 풀이하고 있다.(대법원 2001 다 81245 판결)
대법원은,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위 판결의 위법이)판결에 이유를 전혀 기재하지 아니한 것과 같은 정도가 되어 당사자가 상고이유로 내세우는 법령위반등의 주장의 당부를 판단할 수도 없게 되었다면 그와 같은 사유는 당사자의 주장이 없더라도 법원이 직권으로 조사하여 판단할 수 있다”라고 까지 강하게 ‘상고의 정당한 이유’를 보호하고 있다.(2004 다 38264 판결)
대법원은 또 판결이 설시해야 할 이유의 합리성과 객관적의 기준을 다음과 같이 요구하고 있다.
“판결에 이유를 기재하도록 하는 법률의 취지는 법원이 증거에 의하여 인정한 구체적 사실에 법규를 적용하여 결론을 도출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 판단과정이 불합리하거나 주관적이 아니라는 것을 보장하기 위하여 그 재판과정에서 이루어진 사실인정과 법규의 선정, 적용 및 추론의 합리성과 객관성을 검증하려고 하는 것이므로, 판결의 이유는 그와 같은 과정이 합리적·객관적이라는 것을 밝힐 수 있도록 그 결론에 이르게 된 과정에 필요한 판단을 빠짐없이 기재하여야 하고, 그와 같은 기재가 누락되거나 불명확한 경우에는 민사소송법 제424조 제6호의 절대적 상고이유가 되는 것이다”
이 사건 상고인이 내세운 상고이유는, 바로 위와 같은 절대적 상고이유의 요건을 완전히, 갖춘 것이라고 확신한다. 그런데 대법원은 “위 사건 상고인의 상고이유에 관한 주장은 상고심절차에 관한 특례법 제4조에 해당하여 이유없음이 명백하다”라는 짧은 이유로 상고를 기각했다.
상고인도 위 특례법이 “대법원으로 하여금 법률심으로서의 기능을 효율적으로 수행하게 하여 법률관계를 신속하게 확정”하려는 의도로 제정된 것임을 이해한다. 그러나 그 ‘효율성’과 ‘신속성’은 절대적 상고이유를 인정하고 있는 민소법 제424조의 입법정신을 준수하는 선에서 보장되어야 할 것이다. 현실적으로는, 하다못해 동법 제4조에 열거되어 있는 6개의 ‘심리불속행’사유중 어느 항목에 의해서 상고를 기각한다 하는 정도의 이유설시는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이 사건과 같은 상고기각은 ‘효율성’과 ‘신속성’의 횡포일 수 밖에 없다.
2. 사건의 경위
상고인과 피상고인은 부동산을 매매했다. 상고인은 이 매매계약체결직후 그것이 불공정한 거래행위, 또는 기망행위로 말미암았다는 것을 확신하고 그 계약의 해제를, 피상고인의 대리인(중개상)에게 통보하였다. 상고인은 이 때 피상고의 대리인이, 이 사건 부동산의 위치, 지형 및 장래성과 시세에 관하여, 구체적인 지식을 전혀 가지고 있지 않은, 상고인을 기망하여 이 토지를 팔도록 만든 구체적 내용을 분명하게 주장했다.
피상고인의 대리인은 원래의 토지매매대금의 배액에 가까운 값으로 재계약하자는 등의 제안을 하였으나 상고인은 이를 완강하게 거절했다. 동대리인은 할 수 없이 계약의 해제에 동의하기로 이르렀고 이에 상고인은 즉시 계약금을 동인에게 돌려 주었다.
그런데 느닷없이 피상고인은 상고인을 상대로 이 부동산에 대한 소유권이전등기청구의 소를 제기했다. “피상고인은 문제의 토지에 대한 소유권이전등기를 구하기 위해서 이 소송을 제기한 것이 아닙니다. 계약금 배액을 청구하기 위하여 제소한 것을 이해해 주기 바랍니다”라는 것이 동대리인의 변명이었다.
피상고인(원고)의 위 청구원인에 대한 상고인의 답변(항변)요지는 다음과 같다. (1) 민법 제104조의 ‘불공정한 법률행위’는 당사자의 연령, 학벌, 경험 등을 기준으로 판단되는 일반적인 개념이 아니고 법률행위 대상에 대한 구체적인 무경험 또는 지려천박을 말하는 것이다. (2) 부동산중개상인 피상고인의 대리인은 ‘불공정한 법률행위’ 또는 ‘기망행위’를 인정하고 계약해제에 완전히 동의하고 계약금까지 반환받았다.
일이 이렇게 되자 다급해진 피상고인은 “(1) 위 부동산중개상은 상고인의 대리인일 뿐 피상고인의 대리인이 아니므로 설령 위 매매계약체결시 기망등의 불법행위가 있었다고 하더라도 이 점에 대해서 피상고인에게는 책임이 없으며 동인이 매매계약취소에 동의했더라도 그것은 무효한 것이다. (2) 상고인은 잔대금지급기일에 약속장소인 “서산시 이하 불성명불상변호사사무실에 나타나지 아니하였다”라고 주장했다. 피상고인의 둘째 주장은 위 매매계약이 취소되지 아니하였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한, 얼토당토 아니한, 거짓말이다. 상고인은 위 피상고인의 대리인을 증인으로 신청하였으나 그는 아무런 이유없이 두 차례에 걸쳐서 출석을 거부했다.
제1심법원(서산지원)은 “피고(상고인)는 원고(피상고인)에게 이 사건 토지에 관하여 (무조건) 소유권이전등기를 시행하라”라는 판결을 내렸다. 상고인은 판단의 유탈 또는 판단이유의 모순을 이유로 항소하였다.
원심(대전고법)은 이 사건을 단 한 번의 심리끝에 결심한 후 “피고는 원고로부터 150,000,000원을 지급받음과 동시에 이 사건 부동산에 관하여 소유권이전등기절차를 이행하라”라는 판결을 내렸다. 원심이 제1심판결을 변경한 이유는 “이 사건 부동산 매매대금 1억 5천만원을 지급받기까지는 원고의 청구에 응할 수 없다는 취지의 피고의 동시이행항변은 이유있다”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원심은, 제1심과 꼭같이 구체적인 이유의 설시없이, “(1) 위 계약이 불공정한 법률행위 또는 원고의 기망으로 체결되었다고 인정할 증거가 없고 (2) 이 사건 매매계약이 합의해제되었다고 인정할 수 없다”라고 단정했다.
피고는 원심의 위 판결에 대하여 즉각상고를 제기했다. 그 상고이유는 다음과 같다.
(1) 원심의 동시이행항변권에 대한 판단
상고인은 원심이 지적한 동시이행항변권을 행사한 일이 없다. 이것은 원고의 소송대리인도 인정하고 있는 사실이다. 원심이, 당사자변론주의 철칙을 깨뜨리고, 이런 판단에 이른 것은 악의적인 선입견에 의한 결과라고 보지 않을 수 없다. 이것은 당연히 절대적 상고이유가 된다고 생각한다.
(2) 원심의 불공정한 법률행위, 기망행위판단
원심은 피고의 불공정행위 및 기망행위에 관한 구체적인 주장을, 아무런 이유없이 배척한, 제1심의 판단을, 어휘하나 바꾸지 아니하고, 그대로 수용했다. 이 점은 영락없이 ‘판결의 이유를 밝히지 아니하거나 이유에 모순이 있는 때’에 해당한다고 생각한다.
(3) 원심의 계약해제여부에 대한 판단
원심은 이 점에 관해서도 제1심법원의 판단을 그대로 답습하는 형식논리적 궤변을 범했다. 대법원이 이 점에 있어서 원심이 범한 궤변을 그대로 따랐다는 것은 ‘절대적상고이유’를 무시하였다고 볼 수 밖에 없다.
상고인은 이 사건과 관련하여 피상고인을 상대로 사기죄로 고소하였으나 “혐의없음”의 최종결정을 받은 후 2005. 2. 16. 헌법소원을 청구했다. 헌법재판소 지정재판부는 3. 18. 이 소원에 대하여 “재판부의 심판에 회부한다”라는 결정을 했다.
‘사기죄의 범죄 구성요건’이 ‘상고심의 심리불속행 요건’보다 훨씬 엄중하다는 것은 너무나 명백한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헌법재판소가 이 헌법소원을, 각하하지 아니하고, 재판부의 심판에 회부하였다는 것은, 다 같은 최고사법기관으로서, 대법원과 헌법재판소가 가지고 있는 중대한 차이점이라고 생각한다.
더구나 헌법재판소가 위 결정을 내린 후 11개월이 지난 이 시점에 이르기까지 위 사건에 대한 심리를 계속하고 있다는 것은 국민의 존경을 받아 마땅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4) 소결론
대법원이 이 사건에 관하여 민사소송법 제424조 제1항 제6호를 우습게 보았다는 증거는 엉뚱한 데서 발견된다.
피상고인(원고)은 2005. 11. 27. 상고인의 상고이유서를 수령하여 정독한 후 같은 해 12. 15. 이에 대한 답변서를 제출했다. 만약 피고의 상고이유가, 대법원의 판단처럼, ‘심리불속행’사유에 해당하는 것이 명백했다고 한다면, 법률전문가인 원고의 소송대리인은 바로 이 사실을 들어서 “상고를 기각함이 상당하다”라는 간단한 주장으로 답변서에 갈음했을 것이다. 그런데 동대리인은 그렇게 하지 아니하고, 4면에 걸친 장문의 답변서를 통하여, 피고의 상고이유 4개항목에 관한 반박논리를 상세하게 펴고 있다.
이 사실은 대법원이, ‘상고심 절차에 관한 특례법’의 취지를 오해한 나머지 ‘심리불속행’권을 남용하여, 사실판단을 잘못한 증좌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