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부(烈婦)'의 마을... '송백(松栢)' !
'잣' 이 많았던 천혜의 성(城)... '잣골'
'김 성대(金 成大)'의 조모 '하(河)씨'는
'김 동철'(金 東喆)의 처(妻)로 지아비가 학질에 걸려
근 반년 동안이나 백약이 무효 하여
어떤이의 '사람 고기가 약이다'란 말을 듣고
오른쪽 넓적다리 살을 소고기라 하여 먹이고
또 다시 왼쪽다리 살도 먹여서 학질을 났게 하였다.
이 이야기를 전해들은 '정 윤교(鄭 潤敎)는
다음과 같은 시(詩)를 지어 비(碑)를 세워 칭송 하였다.
'개자추(介子推)'의 행한 일은 고금에 낱낱이 헤아릴 수가 있는데
하(河)씨가 그 지명을 바꾸니 어찌 작은 비석에 말을 다 하랴
벼슬하여 임금을 위했다면 충신이리니 영웅의 남자에 가깝다
어찌 그렇지 아니하랴 아~! 천 만년을 가리라.


현지 리포트... 설은 붑니다.
선비 '태원(泰元)'의 딸로 '박 순삼(朴 順三)'에게 시집을 간 '강(姜)씨'...
" 이 며느리가 우리를 잘 섬긴다." 고 시부모가 칭송을 할 정도 였으며
지아비가 죽자 같이 따라 갈려고 까지 하였답니다.
또... '삼종지도(三從之道)'에 '가도(家道)'까지 생활 법도가 성대 하여
'열녀전(列女傳)'에 기록 될 만 하다고 까지 칭송이 자자 하던
'상검(尙儉)'의 딸 이자 '김 종귀(金 鐘貴)'의 아내 '진양 강(姜)씨'... 등
열부, 열녀 비가 즐비하게 섰습니다.
여기가 바로 '열부의 마을'인 '송백(松栢)...잣골' 입니다.
또한 '송백'은 예전에 '잣'나무가 많았다고도 하지만
이 '잣'이라는 말은 15세기 당시의 우리말로 '성(城)'이라는 뜻을 갖고 있었답니다.
지형적으로 가만이 살펴보면
마을의 3면은 산으로 싸여 있고 나머지 한 면...
'남강'이 흐르는 쪽은 강과 절벽에 싸여 있어 천혜의 '성'으로
둘러 싸인 형국 입니다.
일설은 전쟁시 난 을 피하기 좋은 곳 이라고 하여 '살(生)골' 이라던 것이
세월이 지나고 어떻게 하다보니 '잣골'이 되었다는 말도 있습니다.

사방이 둘러 싸여 있는 탓인지 물러가지도 못하는 늦더위로
동네 어르신들께서 한가롭게 여유를 즐기고 계신 마을 회관앞을 살짝 벗어 났더니
모처름 정다우신 마을 어른 한분을 만났습니다.
" 면장님 ! 안녕 하셨습니꺼?"
대뜸 알아 보시고 반갑게 맞아 주셨습니다.
" 우짠 일로? 이리...?"
전에 우리 고향 면장을 역임 하셨던 '박 일자 세자' 어른 이십니다.
" 면장님... 동네 얘기 좀 들려 주이소 !"
" 내가 뭘 알아야지... 젊은 자네가 더 잘 알낀데..."
참 사양도 겸손하게 하셨습니다.

저~ 위에 '진양호' 에서 '남강 댐'을 박차고 나온 물이
'서장대'를 감고 천수교를 지나 '진주성'의 '촉석루'를 바라보며
'논개'의 땅 '의암'을 쓰다 듬으며 '진주교'를 흘러 갑니다.
'뒤벼리', '칠암벌'을 적시고, '진양교'를 훑고, '새벼리'를 타고 ,돌면 바로 '상평공단'...
그 '큰들'을 촉촉히 적시고 나면 곧 바로 우리의 고향인
'금산'땅에 닿습니다.
그기가 바로 여기 '송백... 잣골' 입니다.
마을에서 강 쪽으로 나오다 보면 넓은 모래땅이
아랫마을 '구암'과 닿아 있는걸 알 수 있습니다.
우리 고향 어느곳인들 그렇지 않겠습니까만...
'송백'도 참 포근 합니다.
유순한 아낙의 넓은 가슴처름 푸근 하고 온화한 느낌입니다.

뒷 산을 넘으면 바로 '공군 교육사'...
마을의 일부를 빼앗기긴 하였지만 그래도 그 본래의 모습을 잃지는 않았습니다.
옛날 소시적에 학교 다닐때...
'잣골' 아이들은 좀은 유별 스러웠던 기억이 있습니다.
어디서 그런 유행어를 만들어 내는지...
" 드르륵 팍팍 !!... 드르륵 팍팍 !! "
참 많이도 썼던 기억이 나네요.
학교에서 선생님께 혼줄이 나기도 했을겁니다.
내 친구... '은욱이', '민균이'...
어디서 뭘 하는지... ㅋㅋㅋ

'송백'... '잣골'은 상대적으로 농토가 좁은 편입니다.
그래서 '남강'을 건너 '큰들로... 해가 뜨면 나가서 일을 하고
다시 해가 지면 배를 타고 돌아 오고 하면서
농사를 지었답니다.
그래서 그런지 예전부터 '송백마을'주민들은
난관을 헤쳐 나가는 힘이 남 다른걸 느낄수 있습니다.
남들이... 다른 마을 사람들은 처리하기 어려운 일도
척척 다 잘 해 나가는것 같습니다.
지금 하고 있는 '작목반'사업 같은것이 그런 좋은 예가 될 것 입니다.



** 지난 겨울... '설' 에 찍어 두었던 마을 모습 **
우리 향우회에 활약을 하고 계신 향우님들을 살펴 볼까요...
먼저 '북한산... 박 수철'선배님이 계십니다.
또, '박 순임' 선배님도 있습니다.
'김 진용'님, '김 수진'님이 힘을 실어 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만능 '백과사전... 박 봉모'님이 종횡무진 맹 활약을 펼쳐 주시니
이렇게 카페에 활력이 넘칠 수가 있는 것 입니다.
다 같이 재미있게 열성으로 이끌어 나가봅시다.

아래 사진의 오른쪽이 '어리골... 어유곡(魚遊谷)' 입니다.
논에 물이 많아 농사가 잘되고 '게, 가재, 뱀장어, 미꾸라지...' 들이 많이 놀았다고 붙여진 이름입니다.
'안담', '건너담'으로 마을이 나누어져 있었고
남강의 나루배를 타러 나가는 고개가 '뱃고개' 였습니다.
'뱃고개'를 넘어 강으로 나가서 '황류진'에서 배를 탔지요.
'황류진'은 양쪽으로 강가에 버드나무가 많아 붙여진 이름이며
한때는 인근 지역으로 운반하는 화물선도 운항이 되었답니다.
또 강가의 절벽끝에 있는 소(沼)를 '방태소'라고 불렀고
그 절벽 아래에 '농'처름 생긴 바위가 '농바위'인데
이 '농바위'는 어른이던 아이던 흔들면 같은 각도 만큼 흔들리는 소위 '흔들 바위' 랍니다.
'넘고개', '오방(오뱅이)고개', '싱골 고개'같은 고개도 있었습니다.
달구지가 다니던 '뒷재 먼당길'...
'샛등', '큰등', '진등','가마등'처름 '등'이란 이름이 붙은 곳도 많습니다.
뿐만 아니라 '도란골', 업은골', '논골', '새앙골', '비싯골', '메골' 같은 명칭도 부지 기수입니다.

경상대 목장아래... 현재는 '참숯가마 찜질방'이 있는 곳이 바로 '역(엿)골' 입니다.
'송백 석유'가 있는곳을 '지고랑'이라고 하였고
'달분지'는 '문산'으로 통하는 고갯길 이었습니다.
'함새미', '백새미', 큰(골안)새미', '새터새미', '새앙골샘' 과 같은
깨끗한 우물이 많아 물이 풍부 하였답니다.
그리고 애환의 '해비당 ... 할마당 고개' !!
'문산'으로, '갈전'으로 넘어 가는 고개로 설명이 필요 없을겁니다.
아 ! 아 !~ 알립니다. '송백... 잣골' 동민 여러분 !!
또한, 고향 '금산'의 모든 향우 여러분 !!
이젠 '송백'이던, '개내'던...
'사꼴' 이던, '덕의'던...
'갓베이'도, '갈전'도...
그외 모든 '아파트'도...
전부다 우리의 고향입니다.
각각의 마을에 특색을 갖는
균형된 모습을 상상해 볼 필요가 있을것 같습니다.
사랑 합시다.
'잣골'을 사랑 합시다.
모두를 사랑합시다.
그것이 바로 진정한
愛鄕입니다 !!
설은 부 였습니다.
금산면지와, 진양지, 진양 지명사. 등을 참조 하였습니다.
첫댓글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글과 사진을 이제야 봤네요..
참 부지런하고 자상한 한 선배님께 감솨~~~
새삼 고향이 이렇게 아름답고 정겨웠던가!! 옛날이 그립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