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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선잠단지(先蠶壇址)
간송미술관은 여전히 그 꼬리가 보이지 않을 만큼 입장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다. 대학 때 '추사'를 보기위해 가 봤던 나와는 달리, 아직 한 번도 간송을 가보지 못한 집사람은 못내 아쉬워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그러나 여쩌랴... 일단은 포기하고 터덜터덜 길을 걸어 내려오는데, 비까지 하루 종일 흩뿌리다, 그치다를 반복한다. 우산을 사려했지만, 우산 파는 곳 하나 없고... 편의점에서는 갖다 놓은 것이 다 팔렸다고 하고... 그냥 '윈드브레이커'가 오늘은 '레인코트'역까지 함께 맡았다. 그 나마 이거라도 겉에 입고 온 게 다행이다 싶다. 물론 추적거리는 비가 아니라 크게 게의치는 않지만...
그러다 눈에 들어 온 것이 선잠단지. 누에치기를 처음 했다는 중국 고대 황제의 황비 서릉씨를 누에신(잠신)으로 모시고 제사를 지내던 곳. 이곳에 단을 쌓은 것은 고려 성종 때라 한다. 조선시대에는 왕은 손수 농사를 짓는 친경(親耕) 시범을 보였고, 왕비는 친잠례(親蠶禮)의 시범을 보이며 의식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한다. 1963년 1월 21일 사적 제83호로 지정되었다.
[선잠단지 입구. 모르는 사람들은 그냥 지나치기 쉽다.]
[선잠단지의 내부 모습. 시름없이 자란 뽕나무가 숲을 이루고 있다.]
6. 혜곡(兮谷) 최순우(崔淳雨) 옛집
시간이 애매하다. 간송은 6시까지라고 하는데, 기다리는 사람들의 줄은 줄어들 기미가 안 보이고... 집으로 가려다가 아쉬운 맘에 아침에 지나친 최순우 옛집을 찾기로 했다. 혜곡 최순우(1916~1984)는 '무량수전 배흘림 기둥에 기대서서'라는 책으로 우리에게 처음 알려진 그 분이다. 혜곡(이 호는 간송이 최순우에게 지어 준 것이다)은 바로 이 집에서 그 책을 썼다. 이 집은 무엇보다도 내셔널트러스트 시민문화유산 1호라는 의미가 있는 집이기도 하다. 누님이 사시다가 어려워져 집을 팔려고 했을 때, 시민단체에서 내셔널트러스트 운동을 벌여 기금을 모아 누님에게서 집을 사 문화재로 보존하기로 한 것이다. 지금은 혜곡 최순우 기념관으로 운영되고 있다. 때마침 김영사에서 '간송 전형필' 전기를 출간한 이충렬 선생이 툇마루에 앉아 방문객들에게 최순우 선생과 간송에 대해 이야기를 해 주고 있었다. 덕분에 책을 한 권 사서, 저자에게 직접 싸인까지 받는 기회를 잡았다.
[혜곡 최순우 기념관 입구. 일반 문화재와는 달리 여기는 화요일~금요일까지 개방한다. 일요일에 가면 낭패본다.]
["ㅁ"자 형태로 생긴 생가. 가운데 '자연'을 상징하는 자그마한 정원이 있다.흰 양복을 입은 분이 이충렬 선생]
[기념관 내부. 최순우의 사진이 보이고, 추사체로 된 '매죽산선재'라는 현판이 보인다.]
[간송 전형필의 전기를 쓴 이충렬 선생으로부터 설명도 듣고, 책을 사서 책표지에 사인도 받았다.]
7. 왕돈가스(식사)
어차피 간송미술관 줄이 별로 줄어들지 않은 상황에서, 일단 저녁부터 먹고 틈을 보기로 하고, 경신고 옆 왕돈가스 집으로 갔다. 사이 좋게, 한 집은 1, 3주 일요일에, 다른 집은 2, 4주 일요일에 쉰단다. 자연스럽게 영업하고 있는 '서울 달인 왕돈가스집'으로 갔다. 들어가니 메뉴도 묻지 않고 크림 스프부터 척, 척 나온다. 7천원. 크다. 집사람은 결국 다 못먹고 말았다.
[큼지막한 돈가스. 특이하게 미역국과 깍두기, 풋고추가 밑반찬으로 나온다. 벽면에는 온갖 연예인 사인이 붙어있다.]
8. 간송미술관(!)
간송 미술관은 1년에 두 번. 5월과 10월 셋째 일요일에서 15일간씩 30일만 개방한다. 그때마다 하나의 주제로 특별전을 여는데, 올해 5월의 주제는 '진경시대회화대전'이다. 정 선, 심사정, 최 북, 강세황, 변상벽, 강희언, 김홍도, 이인문, 김득신, 신윤복 등 당대 최고의 '진경' 화가들의 오리지널 작품들을 볼 수 있는 놓치기 아까운 기회인 건 분명하다. 그러나 줄은... 그런데 밥을 먹고 들여다보니, 줄이 짧다. "ㄷ'자 모양으로 성북초 운동장 축대를 따라 늘어 서 있던 줄이 입구쪽으로만 "ㅣ"자로 줄어 있다. 시간은 아직 4시 50분.. 입장마감인 5시가 아직 되지 않았고... 옳커니 하고 서둘러 갔더니... "지금 오시는 분들, 죄송합니다. 지금 줄을 서시더라도 입장하실 수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연구원들이 간판을 들고 서서 입구에서 외치면서 줄을 자르고 있었던 것. 그래서 당연히 줄이 짧아졌던 것. 나는 그냥 돌아가자고 했지만, 집사람은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기다려 보자구... 그래서 우리도 연구원들의 만류를 못들은 척 하고 줄 꽁무니에 가서 붙었다. 그러나 줄은 줄어들 기미가 없고... 사람들은 혹시나 하면서 거북이 걸음보다 늦은 속도로 조금씩 조금씩 입구쪽으로 발걸음을 옮겨갔다. 입장 마감 시간인 5시. 우리는 여전히 출입문 5m 밖에 서 있었다.
5시가 넘고, 기대 반, 체념 반으로 그저 서 있는데, '중간 보스'쯤 되어 보이는 이가 나와서 '지금 안에는 너무 복잡합니다. 그렇지만 여기 서 계시는 분들은 어쨌든 입장을 시켜드리겠습니다. 다만 6시면 문을 닫아야 하기 때문에 시간이 촉박해서 끝까지 관람하실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라고 말한다.
이게 왠 떡! 집사람이 무척이나 좋아한다. 그렇게도 보고 싶었던 '오리지널' 그림들을 볼 수 있으니 말이다. 비록 시간에 쫓겨 서둘러 황급하게 보고 나올 수 밖에 없었지만, 그래도 조선시대 유명 화가들의 원본 그림첩과 그립들을 눈으로 직접 볼 수 있는 기회를 놓치지 않아 집사람도 나도 너무 좋았다. 2만원 턱~ 내고 화첩도 한 권 사 들고 나왔다.
[집사람이 출입시켜주겠다는 관계자의 말을 듣고 기뻐했다. 출입문 앞에서 한 컷!]
[진경시대회화대전을 알리는 화선지 안내문과 간송미술관 현판; 올해는 간송이 돌아가신 지 50주기가 되는 특별한 해다.]
[간송 전형필은 이태준과 마찬가지로 휘문고보(1921년) 출신이다. 역사깊은 학교에 적을 두고 있으니까 걸리는 데가 많다.]
☞ 서울을 비롯해 구석구석을 걷고 싶은 분들에게 추천하고픈 책:
'주말이 기다려지는 행복한 걷기여행' 서울/수도권 / 김영록, 박미경 지음/ 터치아트
▣ 연휴 3일 (5/28)- 아라뱃길
오늘 하루는 부모님을 위해 쓰기로 했다. 약속이 있다는 윤식이는 놔두고, 집사람과 연주를 태워서 점심에 맞춰 인천으로 내려갔다. 점심을 함께 먹은 후, 부모님을 모시고 '정서진'에 있는 '아라인천터미널'로 갔다. 오후 3시에 출발하는 유람선을 태워드리기 위해서다. 하도 사람들이 아라뱃길에 대해 뭐라 해서, 아주 한산할 거라고 생각하고 갔는데... 웬걸... 인천터미널 주변은 그야 말로 인산인해다. 거대한 주차장은 차들로 빼곡히 차 있고... 아라전망대, 정서진 기념비, 유람선 터미널, 풍력발전기 등이 어우러져, 일대는 말 그대로 거대한 공원으로 바뀌어 있다. '쉼터'가 드문 서울의 배드타운 '인천'에서는 보기 드문 휴식의 공간, 여유의 공간이다.
[아라전망타워 앞에 선 부모님. 전망대(24층 높이)는 두 대의 엘리베이터를 이용해 올라간다(무료!)]
[전망대에서 내려다 본 아라뱃길 유람선용 인천 터미널. 보이는 배는 전시중인 퇴임 경비정. 천안함과 같은 종이다.]
[이날은 연안부두에서 출발한 '하모니호'가 갑문을 통해 들어왔다. 앞에 보이는 돗단배 모양의 건물은 갑문을 관장하는 곳이다.]
김포터미널까지 편도 16000원. 롯데카드로 결재하면 한시적으로 25% 할인해 준다. 3시 표를 끊었다. 부모님과 연주가 함께 배로 가고, 나와 집사람은 차로 움직이기로 했다. 그래야 돌아 올 때 아라마루와 인공폭포를 들러볼 수 있기 때문이다.
[700명까지 탈 수 있다는 3층짜리 유람선 하모니호가 걱정될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탄다. 김포에서 자전거로 와서 배로 돌아가는 사람도 많았다.]
[집사람과 전망대에서 부모님과 연주가 탄 하모니호가 오길 기다리며. 뒤로 보이는 것이 아라마루 인공 2단폭포]
[부모님과 연주를 태운 유람선이 아라마루 인공폭포를 지나고 있다. 집사람이 유람선을 바라보고 있다.]
[뱃길 남쪽에는 '아라파크웨이'가 인천터미널에서 김포터미널까지 직접 연결해 준다. 자전거길, 산책로도 잘 갖춰져있다.]
[김포터미널. 인천터미널에 비해 평범한 모습이다.]
[김포터미널에 내린 부모님. '좋은 구경 했다'며 좋아하셨다. 하모니호을 배경으로...]
편도로 김포에 내린 사람들에게는 무료 셔틀버스가 제공된다. 연안부두에서 인천터미널까지 간 사람들에게는 연안부두로 가는 무료 셔틀이, 인천터미널에서 김포로 편도로 간 사람들에게는 인천터미널까지 무료 셔틀버스가 데려다 준다. 잘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지만, 그렇게 하고 있다.
돌아오는 길에 꼭 들러 봐야 할 곳이 바로 아라마루다. 일종의 스카이 워크와 인공폭로로 구성된 곳이다. 지난 번에도 한 번 소개했지만, 스카이워크는 중앙이 투명 강화유리로 만들어져 심장 약한 사람들은 간담이 서늘해 지는 원형구조물이고, 폭포는 우리나라 최대 인공폭포로, 거대한 2단 폭포로 구성되어 있다. 계단을 통해 1단 폭포 아래로도 갈 수 있고, 계속해서 2단폭포 아래로도 내려갈 수 있다. 그런데 이 폭포는 유람선의 '구경거리'로 만든 것이라, 유람선 운행이 끝나는 5시 경에는 정지한다. 늦으면 꽝이다.
[집사람은 여전히 적응이 안 된다. 연주가 놀려먹기 딱 좋은 만만한 놀이 상대다.]
[상단 폭포 모습. 제일 뒤에 보이는 물줄기는 뒤로 돌아 들어가서 폭포 안쪽에서 밖으로 떨어지는 물줄기를 내다볼 수 있게 해 놨다. 젖을 각오는 해야 한다. 사진 오른쪽으로는 이런 폭포가 3갈래로 나뉘어 운하 바닥 높이까지 떨어진다.]
저녁을 먹으러 인천집 근처에 있는 주안갈비집으로 갔다. 소갈비는 좀 부담되고(ㅜ_ㅜ); 해서 우리는 그냥 돼지갈비와 국내산 삼겹살, 그리고 아버님은 드셔보고 싶으시다는 소머리 국밥을 드셨다.
[인천 집 근처에 있는 주안갈비집에서 모처럼 부모님과 함께 외식을 했다.]
집으로 오기 전 부모님은 텃밭에서 기른 상추와 쑥갓, 우리 오면 준다고 담그신 오이소박이, 텃밭에서 거둔 어린 배추와 열무로 담근 김치 등을 '바리바리' 싸 주셨다. 연주가 좋아하는 '할머니표 두부조림'도 잊지 않으셨고...
이렇게 해서 '황금연휴 3일'이 끝났다.
큰 돈 들이지도 않고, 멀리 오가느라 차에 시달리지도 않고, 가까운 곳에서 알콩달콩 지낸 시간이 된 것 같아 기분이 좋다. 오랜만에 부모님께도 효도하고...
비록 미리 계획하고 추진하진 않았지만, 연휴를 맞이하는 나의 여행 철학은, '연휴 때는 오히려 도심을 공략하라'는 것이다. 물론 방학 때와 같이 남들이 일하는 주중을 이용해 다닐 때는 장거리로 나서지만, 평시 연휴 때는 가능하면 남들과 섞이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남들과 같은 방향으로 움직인다는 것은 '지긋지긋한 체증'을 감내하겠다는 서약이니까.... 어쩔 수 없이 남들과 같은 방향으로 움직일 수 밖에 없을 때는 출발시간이나 돌아오는 시간을 달리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나는 돌아오는 시간을 아예 늦춰 잡는다. 여수나 통영에서 저녁 먹고 떠나면, 아무리 연휴라도 거의 교통체증 느끼지 못하고 서울로 올 수 있다. 자정 무렵이면 편하게 돌아와 쉴 수 있다. 체증의 짜증은 물론 없이 말이다.
첫댓글 대단해요. 조회 건수가 1,657이라니 까무러칩니다.
좋은 여행기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