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바닷물 속에 들어가면 얼마나 깊이 들어갈 수 있을까요? 사람이 그냥 잠수하면 10~20m밖에 들어갈 수 없다고 합니다. 특별한 장비를 갖추면 50m정도까지는 들어갈 수 있습니다. 잠수함은 핵잠수함 가운데 700m까지 들어간 기록이 있다고 하는데 보통은 200~300m 정도의 깊이까지만 들어갑니다. 몇 년전 트레셔라고 하는 잠수함이 기록을 깨기 위해서 심해로 들어가다가 산산조각이 나버렸습니다. 수색을 했지만 조각난 파편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물의 압력 때문입니다. 수압은 수심 10m당 1기압이 올라갑니다. 수심 1만m에서의 수압은 지상에서의 1천배인 1천기압이 됩니다. 이는 1㎠ 면적에 1t의 무게로 내리누르는 힘에 해당하며, 사람 손바닥에 몸무게 4t 정도인 코끼리 약 25마리를 올려놓은 것과 마찬가지랍니다. 어지간한 잠수함도 너무 깊이 내려가면 쭈그러들고 마침내는 산산조각이 나고 맙니다.
사람이 만든 기구 가운데 10,000m까지 들어가서 심해를 조사한 것이 최고의 기록을 세웠습니다. 10,000m까지 들어가려면 완전한 공모양의 두껍고 강한 특수강판으로 만들어진 잠수구가 필요합니다. 그런데 그런 잠수구의 특수 유리 밖에 헤엄치고 다니는 물고기가 관찰되었습니다. 심해어(深海魚)라고 합니다. 심해어에도 여러 종류가 있는데, 만화영화 니모에서 보듯이 이따금 네온 빛을 내는 것도 있으며, 대체로 먹이가 적으므로 한 번 잡은 먹이를 놓치지 않도록 입이 발달되어 있습니다. 이 심해어의 껍질은 무엇일까요? 특수강판입니까? 두께가 1m라도 되는 단단한 껍질입니까? 이 심해어는 그냥 보통 원근해의 물고기와 똑같이 연한 살과 가죽으로 되어 있었습니다. 어떻게 심해어는 그 큰 물의 압력에도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헤엄치고 있습니까? 그 비밀은 외부 압력과 물고기의 몸 속의 압력이 동일하다는 데 있습니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국 땅에서의 삶도 심해 못지 않은 무서운 압력 투성이입니다. 은행구좌 하나 만들려고 해도 왜 그리도 까다롭고 요구하는 것이 많은지... 비싼 돈주고 산 가전제품이 탈이 나도 제대로 워런티를 받기가 왜 그리 어렵고 힘든지.... 아이들이 아프지 않고 잘 자라주기만 하면 좋겠건만 심한 독감 하나 걸려도 의사 만나 증상 설명하기가 쉽지 않으니... 얘들아 제발 아프지 말아다오.... 때마다 철마다 아이들 선생님 면담 약속을 하라는데 도무지 무엇을 어떻게 물어보고 무엇을 어떻게 도움을 청해야 할지 두렵기만 합니다. 그래도 이런 압력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모처럼 만나 사랑을 나누고 정을 쏟았던 동포로부터 이런 저런 일로 마음의 상처를 입는 일은 참으로 견디기 어려운 압력입니다. 정착할 때 좀 도와주더니 아예 삶 전체를 지배하려고 합니다. 정 주고 시간 주고 알뜰살뜰 도왔건만 어느 순간 눈에 쌍심지를 켜고 '네가 내게 뭘 해줬다고 공치사냐?'고 각을 세웁니다. 공격이 최선의 수비라 했던가? 당하지 않으려면 먼저 기선을 제압하든지 아니면 아예 상종을 말든지...
현실적으로 이런 삶의 고달픈 압력들은 우리를 자꾸 위축되게 만듭니다. 두텁고 단단한 강철 잠수구 안에 숨어들게 합니다. 아주 두꺼운 강철판을 둘러침으로써 삶의 압력을 이기려고 하는 분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외부 세계와 단절하고 좁은 공간에 자신을 가둔 채 세상을 살핍니다. 그 안에서는 안전한 듯이 보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면 결코 현실을 자유롭게 헤엄쳐 나갈 수 없습니다. 심해어가 철갑을 입으면 가라앉아 버립니다.
우리가 이런 환경에 놓이게 된 것이 결코 재앙이 아닙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도 단단한 강철로 둘러싸여 있지 않고 얼마든지 자유롭게 헤엄치며 행복한 삶을 구가(謳歌)할 수 있습니다. 그 무서운 수압을 이기고 자유롭게 헤엄치기 위해서는 우리 내부의 압력을 똑같이 맞추면 됩니다. 어떤 지독한 스트레스와 위협, 압력에도 내부에서 맞설 수 있는 내적인 능력이 있으면 됩니다.
그것을 그리스도인들은 영성이라고 부릅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의 등뒤에서 지켜보고 계시는 하나님의 선하심이 주시는 힘입니다. 하나님의 선하심 앞에 있을 때, 나는 비록 약하나 주(主)가 더욱 강하기 때문에, 어떤 종류의 삶의 무게와 어떤 형태의 죄와 유혹이라도 거기에 눌리지 않고 당당히 헤쳐 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다 보십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지키십니다. 하나님의 생명이 내게 있으면 됩니다. 그 생명은 바로 사랑입니다. 우리를 사랑하신 하나님의 사랑으로 우리의 생명을 삼으면, 그 생명의 압력이 안에서 지탱해주면, 어떤 삶의 압력도 아랑곳하지 않고 자유롭게 헤엄치며 나아갈 수 있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사랑으로 이웃을 섬기면 어떤 일에도 실망하지 않습니다. 날 돕는 이웃의 손길을 통해 일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발견하면 삶에 감사와 찬양이 그치지 않습니다.
죽은 생선에 소금을 끼얹으면 살에 소금끼가 뱁니다. 그렇지만 살아있는 생선에는 결코 소금끼가 배지 않습니다. 생명은 자기를 지킬 능력입니다. 선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입은 그리스도인의 사랑의 영성은 우리를 세상에 찌들거나 주눅들지 않도록 지켜주는 생명의 능력입니다. 심해어처럼 모진 압력에도 결코 짓눌리지 않고 자유롭게 헤엄치는 축복을 누리며 삽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