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제주도 모슬포 주둔 9연대에 진압 작전 요청
5·10선거 반대를 위한 인민유격대의 무장폭동이 강력해지고 경찰력으로 폭동 사태가 진정되지 않아 점차 입산자가 증가하는 등 사태가 악화되자, 미군정은 군병력을 증강하는 조치를 취하였다. 그러나 인민유격대의 기세가 워낙 강해 별다른 실효를 거두지 못하자 국방경비대 총사령부에서는 4월 17일 제주도에 주둔하고 있던 제 9연대(연대장 김익렬 중령, 제1대대장 이세호 대위, 제2대대장 오일균 소령)에 진압 작전을 실시하도록 지시하였다.
그러나 오일균 소령이 제주 남로당과 내통하고 있으면서 의도적으로 진압 임무를 회피하거나, 작전 계획을 미리 알려 경찰은 적절한 토벌작전을 펴지 못하였다. 당시 9연대 내에는 문상길 중위, 이윤락 중위, 고승옥 하사 등의 남로당 프락치들이 있었다.
(2) 인민유격대 사령관 김달삼과의 평화협상(1948. 4, 28)
폭도들과 평화적으로 사태를 해결하길 원하는 김익렬 연대장의 의중을 파악한 오일균 9연대 내부의 남로당 조직책들은 토벌 억제에 이용하고자 인민유격대 사령관 김달삼과 평화협상을 주선한다.
(3) 김익렬 중령의 해임(1948. 5. 6)
5월 1일 오라리 방화 사건과 5월 3일 하산하는 주민 기습 사건으로, 평화협상은 완전히 깨졌고 경찰과 경비대 간의 불신의 골만 깊어졌다. 이로 인해 김익렬 중령이 해임되었고 박진경 중령이 9연대장으로 임명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