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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터 자료를 뒤적이다 어디에도 올린적 있는지 없는지 기억도 없는 여행후기가 있는지라 세상에 내놓는다
장마가 한창인 7월 15일 토요일 낮..누리랑 돌삐가 2박 3일간의 산청여행을 떠난니더.
산청 성심원에서 근무하는 정화를 만나기 위해 맘먹은 여행이었고 여건이 되면 새로 이사한 수정&해동 형님네도 들러볼 작정이다.
남부터미널에 도착하니 장대비가 내리기 시작하는데, 어떡할까 잠시 망설임을 뒤로하고 원지행 버스에 오른다. 서울 경기 지방을 빠져나가니 비가 멈추었다. 가는도중 휴게소에서 반가운 얼굴 사이가 우리와 함께 버스를 타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원지에 도착해서 저녁을 먹고 성심원으로 향했다. 성심원은 천주교 사회복지시설이다.
특히 한센병(나병으로 알고 있는 사람이 많을 거다)을 가진 사람들이 살던 마을에 생겨난 천주교 프란치스코회 복지시설이다. 올 1월 지리산 태극종주길의 마지막 자락인 웅석봉을 뒤로하고 앞쪽으론 경호강을 끼고 있는 25만평가량의 마을이다. 성심원에 도착해서 숙소를 향해 가다보니 소록도의 점이 어머니와 아버지가 떠올랐다. 누리가 대학 다닐 때 소록도(전남 고흥에 있는 섬)에 갔다가 한센병을 가진 점이 어머니와 아버지 수양딸이 된 인연으로 가끔 연락도 하고, 누리와 함께 한번 가야지 가야지 하다 작년 누리와 결혼식을 올린후에야 가서 이틀간 지내다 온곳..많은 사람들이 알다시피 소록도는 육지에서 10분정도 배를 타면 갈수 있는 섬으로, 일제시대 한센병을 가진 사람들이 집단 수용된 시설이다. 지금은 사람들의 한센병에 대한 인식이 좀 좋아졌고 관광지로 더 많이 알려져 사람들의발길이 잦은 곳이지만, 소록도의 아름다움은 한센병을 가진 사람들의 강제노역과 죽음으로 만들어진 산물이다. 섬 이곳저곳을 둘러보면 일제시대때의 감금, 수용시설과 아이를 갖지 못하게 정관수술과 낙태수술(수술이라는 말만 사용했지 수술이 아니다) 하던 병원시설과 여기 저기에 흩어져 아직도 거주하고 있는 일제 시대때 만들어진 도시의 판자촌같은 쪽방시설들이 있다.
점이 어머니집은 항구에서 걸어서 2시간정도 걸으면 도착하는 섬 반대쪽의 해안가,성당과 화장터가 있고 지금은 빈방들이 더 많은 쪽방 한켠을 차지하고 있다. 늙고 거동이 힘든 분들은 중앙 병원에서 생활하지만, 그래도 많은 분들이 마을을 이루면살고있다. 겉만 보기에는 평화롭고 아름다운 마을, 그분들의 실제 생활모습과 사람들의 냉대와 차별, 역사속에서 억압받으며 화장터의 한줌 재가 되신 분들을 생각하면마음이 저민다. 해방후 마을 주민들이 일제의 억압을 벗어나 자치섬을 만들려고 하다 집단살해된 그곳, 잊고 지내던 그곳의 점이 어머니와 아버지...
밥도 같이 해서 먹고, 아버지와 텃밭 울타리 만드는 일도 같이 하고, 나올 때 점이 어머니 틀니하시라고 그깟 육십만원(얼마드릴까 고민하던 우리의 모습,아니 내모습) 드렸더니, 누리에게 전화와서 고맙다고 엉엉울던 점이 어머니 생각이 여행을 다녀온 지금 다시 생생히 떠오른다.올해가 가기전에 누리랑 꼭 다시 한번 찾아뵈야 되겠다.
성심원에서 하루밤을 자며 아침 이곳 저곳을 둘러보니, 예전엔 다리도 없었다던 경호강 나루와 바람막이 대나무 울타리가 소록도와 너무 닮았다. 마을 사람들의 멸시에 밀려 척박한 웅석산 비탈아래로 몰려 살아야 했던 이곳 사람들의 모습을 생각하니 마음이 찡하다. 예전 병원이었다던 직원들 숙소는 엄청난 습기로 곰팡이내가 장난아니니성한 사람도 병이 나겠다. 그곳에서 5개월째 근무하고 있는 정화씨랑 그곳 얘기랑 개인적인 얘기도 하며 밤을 보냈다. 다음날 아침 정화씨는 얼마전 돌아가신 분 장례미사에 참석하러 갔는데, 선생 셋을 키웠다고 늘 자랑하던 그 노인은 자식도 찾아오지 않는 쓸쓸한 곳에서 죽음을 맞이 했다 한다. 자식에게 행여 누가 될까 노심초사하는 부모의 마음과 은혜로운 부모를 외면하는 자식, 이 사회의 차별과 냉대의 시선이 함께만들어낸 서글픈 모습이다.
정화씨 미사가 끝나고 산청 간디학교 근처로 이사간 해동형님과 통화하고 찾아가기로했다. 해동형님 마을사람들과 오후에 약속이 있는듯 해서 바삐 택시를 불러 둔철마을로 향했다. 성심원을 휘감고 있는 경호강 흙탕물을 의쌰의쌰 내려오는 래프팅 보트를 바라보며 ~
통화가 잘 되지않아 한참만에 해동형님집을 찾았다. 몇년전만해도 안이랬는데 하는 택시기사아저씨의 말씀, 관광지로 해동형님집 너머로 군에서 생태마을 만든다고 길넓힌다고 이곳 저곳 파헤쳐놓아서 장맛비에 더욱 을씨년스럽다. 해동형님말로는 이곳이 도로가 나기전에는 5대 오지 였다는 ~
둔철산속 산으로 뺑둘러싸여 있는 둔철마을은 꽤 큰 분지이다. 간디고등학교를 지나산길을 차로 쭉 올라오다보면 간디 중학교 표지판이 보이는데, 그 아래로 생태마을이자리하고 있다. 자그마한 중학교 건물과 기숙사, 몇채의 집들.. 집들이 생각했던 것보다 크다. 마을이 산위 분지에 자리하고 있어서 그런지 굉장히 습한 느낌이 들고(장마철이라 그렇기도 하지만) 배수가 잘 안되는 땅이라(고산지대임에도 예전에 논으로 사용하기도 함) 장맛비에 물이 넘쳐 흐른다...산청이 물이 좋은 고장임에 좋다는 생각과 함께 직접 살려고 집지어려면 이 물을 잘 살펴야지 되겠다는 생각이 든다
해동형님집을 둘러보며 그냥 보고 느낀것 좀 적어도 될레나...수정누님 괜찮죠..
해동형님집은 3동으로 보기에도 크다라는 느낌이 드는데, 구석구석 집구경하는데도 시간이 좀 걸린다. 해동형님네 4식구에 용성형도 같이 지낼거구, 학생들 기숙사로 사용하는것을 고려하면 적당한 크기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한동은 간디중학교 학생들 기숙사 겸 홈스테이용으로 지었는데 학생들이 좋겠다 싶다
본동은 학생들 숙소를 앞쪽에 세우고 자리하는데 이층으로 지어졌다. 최대한 빛과 바람의 영향을 고려해서 지은듯하고, 습기와 열효율을 고려한 집의 형태다. 본동은 많이 넓은데, 태양열 시설을 했으면 좋겠는데라는 생각이 든다
화장실은 생태적으로 지어졌는데, 오줌과 똥이 완전히 분리되는 구조는 아니고, 똥과 오줌이 썩인뒤 오줌이 분리되어 나오는 형태라 물기때문에 똥이 제대로 발효가 될 지 의문이다. 이사와서 처음에 쌀겨를 넣지않아 파리가 알을 까 지금 구더기가 좀 끼었는데, 냄새는 나지 않는다. 이웃집에서 검증된 형태로 만들어서 별문제는 없겠지만, 처음부터 똥,오줌의 완전 분리형태가 아니라 내 생각엔 문제가 좀 있지않나싶다.
집이 넓고 오픈된 형태라 난방비가 많이 들겠다는 생각도 든다. 마을 사람들이 회의하는 마을회관으로 거실을 사용하려고 크게 지었다는 말을 일전에 들은것 같다.
마을에서의 활용도가 많도록 지은 집이라는 생각이 든다. 또, 녹색대학 생태건축팀이8개월가량에 걸쳐서 지어진 집이고, 거푸집을 이용해서 흙다짐과 목재를 이용해서집을 지어 흙과 목재의 운치가 어울린다. 이제 사람이 산지 한두달 맞나..
창틀이랑 문틀의 목재가 습기의 영향인지, 설계의 잘못인지 잘 움직이지 않는것도 있고 아직 집이 제자리를 찾아갈려면 몇년은 지나야 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마을사람들과 집주인과 자연이 함께 닮아가겠지...
자연스럽게 생태적으로 살아야하는 이곳, 비누를 세제를 많이 사용하면 자신이 먹는물이 오염된다고 생각하면 그렇게 할 수도 없다.
학교가 있고, 마을이 있으니 아이들이 외롭지 않겠다 싶다. 해동형님 둘째가 마을 친구들이랑 물놀이 가는 해맑은 모습이 보기좋다. 홈스테이 형태의 교육과 자기주도학습이 아이들에게 많은 배움을 주겠구나싶고 자연속에서 많은 배움을 얻겠구나 싶다
수정누님의 맛있는 자반 점심과 차와 담소를 나누고, 해동형님네 마을사람들과 청학동 구경가는 길에 함께 차를 타고 원지로 나왔다.
올해 귀농학교 동문 송년회때 해동형님 집으로 가서 이런저런 얘기 나눌 수 있겠지.
산청으로 오는 버스안에서 만난 사이는 산청에서 멀지않은 가회 황매산 자락 서정홍시인의 집에 간다고 했다. 그래서, 우리도 일정이 되면 가겠다고 한지라 전화를 했다.
사이는 지금은 인드라망생명공동체에서 일꾼으로 일한지 1년남짓 되었지만, 인드라망을 통해서 알게된 친구는 아니다. 천성산살리기,새만금살리기,반전평화 등 집회에서 아콤다라는 노래패로 쫄깃쫄깃한 노래 많이 불러주었었는데, 인드라망과도 서로인연이 닿고 이렇게 버스안에서 우연히 만나 서정홍시인의 집에서 하루를 함께 보내니 인연이 참 신비롭다.
사이에게 전화를 하고 가회까지 버스로 도착하니 나무실(목골)에서 서정홍선생님 아내인 경옥누님(시집을 보고 이름을 알게됨)이 차로 마중을 나와 마을로 20분정도 들어갔다.마을에 도착하니 비가 조금씩 뿌리기 시작했고, 한참 창원에서 온 중학생들과 사이일행(은진,광진씨), 그리구 그곳에서 서정홍 선생님 아래집에서 농사짓고 살고있는 상아씨가 200평정도의 고구마밭에서 풀도 메고 뿌리를 들어주는 일을 2시간남짓 함께하고 내려왔다. 마을에 도착해서 서정홍선생님 집에 도착했을 때 처마밑에서 한동안 띵했다. 너무 아름다운 마을이고, 너무 아름다운 마을이라...말로 표현하기가 힘들 정도로...
10가구 정도가 사는 이곳 나무실 마을, 대부분 노인분들만 지내고 있어서 안타깝지만 나중에 젊은이들이 이곳으로 들어와서 그 자리를 대신할 수 있으면 ~
새로 만들어진 생태마을이 아니라 그곳에서 옛부터 농사짓고 살아온 사람들의 생태마을, 밤에 반딧불이를 볼 수 있는곳..함께 온 사람들과 넓은 처마밑에서 멀고 가까운 산을 바라보고, 다랭이 논을 바라보고, 너무도 맑은 빗방울과 나무들.. 모두들 멍하니 넋이 나간 모습으로.....17평 흙집은 너무도 아름답고, 실용적으로 잘 지은것 같다. 서정홍 선생님이 아랫집에 1년간 살면서 녹색대학 생태건축팀과 노동자로 시인으로 환경운동가로 살면서 평생 모은 2000만원을 가지고 주위 사람들의 여러가지 도움을 얻어 지은 집이라 한다
이집은 자신의 집이 아니라 이곳을 방문하는 사람들의 집이라고 하시는 서정홍선생님의 말을 들어니 초면에 처음방문하는 집이지만 불편한 마음이 하나도 없다.
생태 뒷간이 환상이고 집도 소박하다..곳간(창고)이 넓지 않은것이 흠이라면 흠일까
집안에 수세식형태의 뒷간은 만들지 않으려다가 노인이 오시거나, 장애우들이 오시면뒷간가기가 수월치 않음을 고려해 만들었다는 함께 살아가는 사람 내음나는 곳이다.
차려주시는 저녁을 양껏 먹고, 마을에서 차로 10~20분정도 더 떨어져있는 산간마을에살고 있는 전상평씨 가족과 3달전에 함께 살게된 여자 귀농자 두분과 얘기 나누러 낡은 승용차에 7명을 태우고 비오는 밤 급경사 꾸불꾸불한 포장된 산길까지 올라가서 또 5분정도를 걸어서 전상평씨 가족들이 있는 곳에 도착했다.
부설부설 비가오고 산속엔 두채의 집만 보이고 쭉쭉 뻣은 소나무들과 풀들 습지연못 모두들 전설의 고향에 온것 같다고 한마디씩 하면서 1시간 가량 산책을 하고, 담소를 나누기 위해서 집으로 돌아왔다. 참 누리는 발목에 거멀이한테 피빨려 비명지르고 손으로 떼주는데 잘 안떼져서 고생한 에피소드와 함께..
전상평씨는 청학동에서 도인공부를 한 일명 도인이라고들 한다. 젊었을 때 약초를 캐러 다니며 며칠씩 산속에서 지내다 이곳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빈 집터에서 10년정도를 사는동안 서정홍선생님 소개로 지금의 아내를 만나고 5살베기 이쁜 구륜이도 낳아서 함께 살고 있다. 구륜이 엄마는 원래 서울에서 직장생활하다가 "작은책"을 보고 서정홍선생님을 알게되어 돈없고 자기땅없는 젊은이가 있으면 소개해 달라고 해서 만난 정상병씨가 첫눈에 인연임을 알고 결혼을 올렸다 한다. 너무 행복한 가족의 모습이다. 작년에 이곳 마을에 한전간부였던 사람이 들어와 거의 비용도 들이지 않고 전기가 들어와서는 30촉짜리 백열등 몇개가 어둠을 밝히고 있다. 먹는것을 해결하기 위해서 부지런히 일을 하고 욕심없이 살고 있는 모습에서 참된 행복을 느낀다. 고추부침개와 쑥물로 삶은 감자와 가지고 간 산딸기주를 함께 하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많이도 들었다. 3개월전에 함께 집을 짓고 두레농을 하게된 성직자였던 두 여자분이 귀농해 살아가고 있는 모습에서도 삶의 무게와 진솔함이 베여난다.
그리구..2마리 똥개...만유는 정말 늠늠하다. 꼬리를 맞껏 치켜세우고 무게있게 걷다가 사람앞에서 꼬리를 흔들며 다정함을 표시하고 내려갈때 길 끝까지 어두운 밤길을 앞서 살펴서 배웅한다. 내가 이제껏 본 개들중에 제일 멋드러진 놈이다.다시 서정홍선생님 집으로 돌아와서 어두운 바깥 수돗가에서 사이랑 광진씨 어둠을 벽삼아 발가벗고 먼저 목욕하고, 그모습 어렴풋이 보일랑 말랑...깔깔대고..
다음타자 누리랑 돌삐가 함께 다음차례로 시원스레 씻고, 청개구리 처마밑 평상을 올라 앞유리창에 딱붙어 수직 암벽타는 모습이 어찌나 귀여운지...
한참을 처마밑 청에 앉아 얘기 나누다 잠자리 들지만 너무나 들뜬 마음에 몇번을 깨고 밖을 거닐고 한다. 마루 이부자리 깔고 누워 구름 휘감은 먼산을 바라보고 처마를따라 떨어지는 빗방울과 새소리..
새벽녁 서울 갔다 이제야 돌아오신 서정홍선생님, 트럭몰고 간 서울 초행길에 윗마을풋고추 다 팔아서 오는길 콘크리트 도시 서울 물난리에 조심조심 고향으로 밤새 내려 오셨다는 처음 본 그분은 인심좋은 옆집 아저씨같은 사람임이 느껴진다.
잠자리를 좀 늦게 털고 일어나 늦은 아침을 먹고, 보이차를 안주삼아 이런저런 야그 나누고, 귀한 칡말린거 한줌씩 얻어서 집을 나선다.
사이, 은진, 광진, 서정홍, 경옥, 상아, 전상병부부, 구륜,두여자 귀농자,해동&수정,누리&돌삐,정화씨 그리구 성심원 참 만남의 모습은 단순하다.
삶,사람,사랑,평화,농촌,도시,노동자,농부,아이들,"작은책","보리출판사","인드라망","귀농운동본부" 이속에 우리도 모두 함께 하고 있었다. 또, 저마다의 다른 삶속에서만났다 헤어지는 사람들, 내 삶속에 저 멀리 있다고 생각되던 사람들의 모습이 좀 더내 삶속에 자리하고 있음을 느낀다.
여행을 하면서도 장맛비로 걱정하고, 이스라엘의 침략에 죽어가는 팔레스타인과 레바논의 사람들도 떠오른다. 자신의 삶에 다른이들의 삶을 가슴속에 품고 사람 사람들..그렇게 살아야 하지 않을까.. 오롯이 자신의 삶의 진지함으로 우리는 세상을 평화롭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서울와서 잃어버렸던 3년여의 시간과 그 이전의 시간들, 그리구 내 자신의 모습을 회복하려고 나름 노력하며 살아온 누리와 함께한 3년여의 시간들이 모두 소중한 나의 삶이라는 깨달음이 느껴진다.
산청여행 많은 것을 남긴 시간들이다..
몇년이 지난 지금 그때의 인연속에 사이랑 은진은 결혼해서 느티를 낳고 괴산에서 잘 살고 있고, 서정홍 선생님 아랫집에 살던 처자중 한명이 청라였다는 것을 후에 알았는데, 청라랑 상아가 결혼해서 얼마전에 다울이를 낳았다는 소식을 들었다. 장인어른 짚공예를 통해서 몇년만에 만나서 다시 연락을 주고 받고 있는데,, 참 인연이란 이렇듯 돌고 도는 구나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