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혁명, 이란 이라크전쟁, 아프가니스탄전쟁 등으로 아시아 육로 여행이 거의불가능하기 전에도 파키스탄은 인도로 가는 길목의 마지막 장애물로 여겨졌다. 서양인들은 대중매체가 전하는 총기와 마약, 서로 다른 종파간의 폭력, 계엄령 등의 이미지만을 갖고있을 뿐, 파키스탄에 대해 거의 알지 못한다. 하지만 파키스탄에서는 다양한 문화, 호의적인 사람, 아시아의 제일 멋진 자연경관을 만나고 볼 수 있다. 또 이곳은 초기 인류의 정착지로서 이집트 문명과 메소포타미아문명에 버금가는 고대 문명의 발상지이며 힌두교와 불교라는 2대 세계 주요 종교가 같이 섞여있는 용광로 같은 곳이다.
정식 국가명: 파키스탄 이슬람 공화국(Islamic of Pakistan) 면적: 887,700 sq km 인구: 1억2천 4백 8십만명 수도: 이슬라마바드 Islamabad (인구 40만명) 주민구성: 펀잡인 56% (그 외 퍼탄인, 발루치인, 신디인) 언어: 우르두어 (그 외 펀잡어, 영어, 신디어, 각 지방어) 종교: 무슬림 97% 기독교와 힌두교3% 정체: 민주정 수상: 나와즈 샤리프(Nawaz Sharif)
파키스탄은 약간 까다롭고 여러 가지 성향을 보이는 나라들과 접하고 있다. 남서쪽으로는 이란과, 북쪽과 서쪽으로는 아프가니스탄, 북동쪽으로는 중국과, 동쪽으로는 인도 등과 접경하며 남쪽해안은 아라비아해에 면한다. 국토는 북부의 높이 솟아오른 봉우리들 (전세계에서 두 번째로 높은 8,611m의 K2가 포함되어 있다.) 과 서부의 건조한 낮은 산지, 남서부의 황량한 고원, 남동부의 불모의 사막지대, 그 밖의 지역은 충적평야로 이루어져 있다.
전 국토의 1/3을 차지하는 이 충적평야는 파키스탄의 '중심부'로 인구 대부분이 이 곳에서 살며 식량 대부분이 이 곳에서 재배되고 생산된다. 이렇게 다양한 지역들을 지나 흘러 내려오는 인더스 강은 티벳에서 발원하여 2500km를 남하한 뒤, 거대한 삼각주를 지나 아라비아해로 흘러 들어간다.
파키스탄 저지대의 자연 동물군은 불규칙하게 분포한다 - 주로 여기저기 흩어진 수풀덤불, 덜 자란 삼림 등이다. 그렇지만 북부 산악지대에서는 꽤 커다란 침엽수림, 다채로운 색채를 뽐내는 꽃들로 뒤덮인 경사면들을 주위의 고도가 조금씩 높아지면서 볼 수 있다. 동물 군에는 곰, 표범, 사슴, 자칼 등이 있다. 파키스탄의 800km에 달하는 해안선에는 상어, 갑각류, 바다거북 등이 많이 있으며 인더스 삼각주는 늪지 악어의 서식지이다.
파키스탄의 계절은 세시기로 나뉘어진다.: 시원한 시기(10월∼2월) : 더운 시기(3월 ∼ 6월) : 우기(7월 ∼9월). 그러나 지역별 차이가 크다. 시원한 시기 동안의 남부는 건조한 낮과 서늘한 밤이 계속되는 반면, 북부 산악지대에서는 이슬비가 부슬부슬 오고 밤 기온이 뚝 떨어진다. 더운 시기라 함은 남부에서는 숨이 턱턱 막힐 정도의 더위와 습도 상태를 뜻하지만 북쪽으로 갈수록 기온은 온화해 진다.
우기 동안에는 주로 펀잡(Punjab) 지역의 라호르(Lahore)에서 이슬라마바드에 이르는 지대에 걸쳐서는 계절풍의 끝자락 영향으로 비가 계속해서 내린다. 그러나 북쪽으로 올라갈수록 높은 산으로 인해 구름만이 넘어갈 수 있어 그 쪽 지방은 상대적으로 비의 양이 적은 편이다( 초보 트렉커들은 유념하기 바람).
파키스탄 최초의 주민들은 (북서 펀잡지역)의 석기 시대 사람들이다. 그 뒤를 이어 세련된 인더스(또는 하라판) 계곡문명이 기원전 23C∼18C에 걸쳐 번영을 누렸다. 그 후 반유목민들이 출현하여 정착한 뒤 기원전 9C까지 북 파키스탄 - 인도에 걸쳐 넓게 분포하였다. 반유목민들의 비딕종교는 힌두교의 전신이며 엄격한 분업체제는 초기 카스트제도의 기초가 되었다.
BC327년, 알렉산더 대왕이 패망한 페르시아 왕조의 자취를 없애버리기 위해 힌두쿠시에 오게 된다. 짧은 그의 체류기간에도 불구하고 몇몇 부족에서는 자기네들이 알렉산더와 그의 군대의 후손이라고 주장하는 그림같은 전설이 내려오고 있다. 그 후 비단길의 전성기가 도래하여 중국, 인도, 로마왕조간의 상업 무역이 이루어졌다.
쿠샨왕조는 비단 무역의 중심에 자리잡아 간다라 왕국의 수도를 페샤와르(Peshawar)에 세웠다. AD 2C까지 그들은 동부 이란에서 중국 국경까지, 남쪽으로는 갠지즈 강까지 왕국을 넓혀 최고 전성기를 누렸다. 쿠샨왕조는 불교를 믿었으며 카니시카왕때에는 수천 개에 달하는 수도원과 불교사원을 지었다. 곧 간다라는 무역과 종교수업, 순례여행 - 불교성지 - 의 장소가 되었다. 쿠샨왕조는 4C에 쇠락하여 차 페르시아 서세이니언왕조, 굽타왕조, 중앙 아시아에서 온 헤프탈라이츠, 터키 힌두샤이왕조 등에 흡수되었다. 그 다음으로 강력한 중심국은 무굴왕조로 16,17C 동안 군림하였다.
권력 계승자들은 전면적인 개혁을 실시하고 국교로서의 이슬람에 대한 우위를 종결시켰고 예술을장려하며 멋진 건물을 건축했으며, 그 후 완전히 방향을 바꾸어 국가를 다시 이슬람국으로 만들었다.1799년 랑지트 싱(Ranjit Singh)이라는 젊고 간악한 시크교도에게 라호르의 통치권이 넘어갔다. 그는 그 후 수십 년에 걸쳐 '성스러운 형제'의 종교단체를 대륙의 가장 강한 군대로 육성하면서 이 곳을 소왕국으로 바꾸었다. 그의 통치기간 동안 랑지트는 간섭하지 않는 조건으로 영국 영토에서 벗어나기로 동의했다 - 대략 수틀레지강의 남동쪽에 해당한다.
그러나 1839년 그가 죽고 후계자가 조약을 위반하여 시크교도들을 전쟁 속으로 몰아넣고 말았다. 영국은 정당하게 승리를 거두었고 카시미르(Kashmir), 라다크(Ladakh), 발티스탄( Baltistan), 길기트(Gilgit) 등을 합병하여 잠무 앤 카시미르주 (State of Jammu and Kashmir)로 다시 명명했다. 이렇게 그들은 북서부의 러시아의 확장에 대비하는 완충지대를 마련했고, 그것이 후에 국가간에 해결하기 어려운 분쟁이 될 소지를 안게 되었다. 1849년 영국과의 두 번째 전쟁으로 왕국은 멸망하였고 펀잡과 신드(Sind)지역의 합병이 1850년대에 이뤄졌다 ; 이 두 지역은 1857년 영국 지배하에 들어갔다.
국가 정체성에 대한 인식이 영연방 인도에 일어나기 시작한 것은 19C 후반이었다. 1906년 무슬림 연맹이 자치회교국을 요구하기 위해 창설되었지만 완전 분리된 회교국이 거론된 것은 그 후 24년이나 지나서였다. 거의 같은 시기에 영국에 기반을 둔 회교도 망명자 그룹이 '순수의 땅' 이라는 뜻을 지닌 파키스탄이라는 이름을 만들어냈다. 1940년대 중반 힌두교도와 회교도간의 폭력이 확대된 후 자치회교국의 탄생을 피할 수 없는 일임을 영국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신임 총독 루이 마운트바튼 경은 1948년 6월에 독립이 이뤄질 것이라고 천명했다.
영연방 인도는 인도라는 이름을 그대로 쓰고 있는 중앙의 넓은 힌두 지역, 동부 회교지역(현재의 방글라데시), 서부 파키스탄지역으로 나눠졌다. 국경선이 발표되자, 살인행위가 넓게 자행되었고, 역사상 가장 대규모의 주민 이주 중의 하나가 일어나는 원인이 되었다. 그러나 카시미르(정식으로는 '잠무 앤 카시미르 주')는 인도나 파키스탄의 일부분이 되길 원치 않았다. 인도와 파키스탄이 군대를 이 저항지역에 파견했을 때 두 나라간에 전쟁이 일어났다. 1949년 UN의 중재명령으로 각 국에게 카시미르의 일부분을 관할하도록 하였지만 누가 영구적으로 지배할 것인지에 대한 문제는아직까지도 미해결 상태이다.
무슬림 주요 독립 운동가인 모하메드 알리 진나(Mohammed Ali Jinnah)는 파키스탄 최초의 총독이 되었지만 그의 새 국가가 독립된 지 일년만에 죽었다. 부총독이자 친구였던 리아카트 알리 칸(Liaqat Ali Khan)이 그 자리를 대신했지만 삼년 후에 암살되었다. 그 후에 총독들과 수상들간의 싸움으로 혼란이 계속되었고 심각한 경제침체도 일어났다. 1956년 파키스탄은 마침내 헌법을 제정하였고 이슬람 공화국임을 선포하였다.
서파키스탄의 주들은 동파키스탄과 비슷하게 하나로 합병되었다. 2년 후 이스칸데르 미르자(Iskander Mirza) 대통령 - 파키스탄 정계에 만연한 언쟁과 기회주의에 넌더리를 냈다 - 은 헌법을 폐지하고 정당을 금지시켰으며, 어떤 형태로든 계속 파키스탄에 존재해왔던 계엄령을 선포했다.
그 후 20년간 파키스탄은 카시미르 지역을 차지하기 위한 인도와의 전쟁, 동서부의 시민전쟁, 방글라데시의 독립선언, 인도와의 또 다른 전쟁, 가장 카리스마적인 수상이었던 Z A 부토(Bhutto)의 처형 등으로 고통을 겪었다.
1977년 부토의 관료 중 우두머리인 무하마드 지아 울 - 하크(Muhammad Zia ul-Haq) 장군이 권력을 잡아 미국의 환심을 사는데 성공했으 (그로 인해 귀중한 외국 원조를 얻었다) , 자유세계의 영웅으로 널리 환대를 받았다. 1988년 비행기 추락으로 그가 죽자 그의 딸인 베나지르(Benazir)는 다음 선거에서의 승리를 호언장담했고 회교국 최초로 선출된 여성 통치지가 되었다. 그녀는 그 후 곧 쫒겨났지만 1993년 다시 선출되어 권력을 되찾았다.
베나지르 부토는 여러 곳을 순방하면서 파키스탄에 투자 잠재력을 알렸으며, 자기 자신을 바쳐 자기 나라를 현대 회교국을 위한 역할 본보기로 제시했다. 그러나 국민들의 마음속에 그녀가 차지하는 위치가 공직사회의 부패로 인해 위태롭게 되었다. 1996년 11월 파루크 레그하리 대통령은 그녀를 수상직에서 사임시켰다. 1997년 초에 실시된 선거에서 그녀의 정적인 나와즈 샤리프(Nawaz Sharif)가 선출되었다. 인도가 1998년 5월 핵실험을 실시한 후 파키스탄은 2주 후에 같은 방법으로 응답해 주었다. 발루치스탄 남서부에서 다섯 개의 핵장치를 폭발시킨 것이다. 국제적인 비난이 널리 일어났고, 국제적인 제재가 이 나라 경제에 치명적인 타격을 주었다.
페르바이즈 무샤라프(Pervaiz Musharraf) 장군이 1999년 10월에 일어났던 무혈 쿠데타의 주원인으로 인용했던 것은 '몰락한 경제'였다. 군부가 개입하여 나와즈 샤리프를 면직시키고 파키스탄 대부분의 공공기관을 장악했다. 무샤라프는 인도에게 국내상황에 간섭하지 말라는 은근한 경고를 했다. 두 국가간의 핵보유 가능성으로 인한 긴장상태 - 카시미르에 대한 논쟁- 가 한 단계 더 고조되고 있다.
GDP: US$282억 1인당 GDP: US$434 연간 성장률: 4.7% 인플레이션: 12.2% 주요산업: 농업, 직물, 시멘트, 화학비료, 철강산업 주요 교역국: 일본, 미국, 독일, 영국
파키스탄의 좋은 점은 역사가 깊다는 것이다: 불교 유적지, 힌두사원, 이슬람 궁전, 무덤, 유원지, 넓은 간격을 두고 있는 앵글로- 무굴 고딕양식의 저택들 등 - 일부는 그 웅대함이 더욱 더 눈에 띄게 하는 폐허상태에 있다. 조각부문은 그리스 양식과 혼합된 불교양식의 벽 상부의 띠모양의 조각 장식이 두드러지며 공예부분으로는 도자기, 보석, 비단제품, 목각, 금속세공 등이 우세하다.
심지어 파키스탄의 소함대라고도 할 수 있는 거울과 크롬금속 장신구를 단 베드포드버스와 트럭은 눈부신 예술품이다. 전통무용은 힘차고 박력있다. 음악은 클래식 음악, 민속 음악, 경건한 음악 중의 하나가 쓰인다. 또 가장 장려되는 문학 형식은 스콜라 철학과 운문이 섞인 형식이다. 크리켓은 파키스탄인이 가장 열광하는 스포츠로 국가 대표선수들은 영웅 대접을 받는다 - 물론 그들이 젊고 부유한 영국 여성들을 개종시켜 결혼하지 않는 한에서 말이다.
거의 모든 파키스탄인들은 무슬림이며 이슬람교는 국교이다. 그들의 강한 신앙심을 보여주는 예는 많다. 모스크에서 기도시각을 알리는 소리; 들판, 가게, 공항 등지에서 기도하며 절하는 남자들; 거리의 베일을 쓴 여인들 등. 기독교인은 아주 극소수이며 그 다음으로 힌두교도와 배화교도가 그 뒤를 잇는다. 복장에 아주 엄격한 규제가 있음을 명심하도록. - 위반하지 않으려면 남자 여자 모두 입는 길고 헐렁헐렁해서 몸매를 보여주지 않는 옷인 샬와르 카미즈(shalwar qamiz)를 사도록.
파키스탄의 음식은 북인도의 음식과 비슷하며 거기에 더하여 중동의 영향이 조금 가미되었다. 다시 말해 식단이 굽거나 튀겨낸 빵 (로티, 짜파티, 푸리, 할와, 난 등), 고기가 들어간 카레, 콩으로 만든 죽 (달), 시금치, 양배추, 콩, 밥 등으로 이루어진다. 거리의 음식점들 - 삼모사와 티카 (양념 바베큐한 쇠고기, 닭고기, 양고기 등의 요리) - 은 맛이 좋으며 다양한 종류의 디저트는 단 음식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만족시켜줄 것이다. 가장 흔한 단 음식은 바피로 건조우유 덩어리로 만드는데 다양한 맛을 맛볼 수 있다. 파키스탄은 공식적으로는 '금주'임을 표명하나 이 나라만의 맥주와 술을 생산한다. 최상급 호텔과 특별히 지정된 바에서 수입주류들과 함께 구입할 수 있다.
전국 규모의 행사로는 라마단으로 매년 날짜가 바뀌는 한 달간의 일출부터 일몰때까지의 금식 기간(회교도 달력은 태양력과는 다르다) 이 있고, 에이둘 피트르(Eid-ul-Fitr), 즉 라마단이 끝났음을 알리는 2,3일간의 축일과, 가축을 잡아 그 고기를 친척과 가난한 이들과 함께 나누어 먹는 시기인 에이둘 아자(Eid-ul-Azha), 모하메드의 생일인 에이둘 밀라 둔 나비(Eid-Milad-un-Nabi) 등이 있다.
비자 : 유럽인 대부분과 영어권 국가의 사람들은 비자가 필요하다. 파키스탄 비자는 비자 발급일로부터 6개월 이내에 입국해야하며 입국일로부터 3개월간 체류 가능하다. 하지만 만약 30일 이상 체류한다면 외국인 등록 사무소에 가서 반드시 등록해야 한다. ; 이 사무소들은 비교적 큰 마을들과 도시에 있다.
보건 위생 : 뎅기열, A형 간염, 말라리아 등. 시골지역에서는 일본뇌염도 조심하라. 시간 : 한국보다 4시간 늦다. 전압 : 220V, 50Hz 도량형 : 미터법 ( 도량형 환산표 참조 ) 관광 : 방문객 424,000명
통화 : 파키스탄 루피(rupee) 일반경비 : 저렴한 식사 : US$ 2-3 중간가격대의 레스토랑 식사 : US$ 3-8 최고급 레스토랑 식사 : US$ 5-10 저렴한 숙소 : US$ 4-5 중급호텔 : US$ 10-15 고급호텔 : US$ 22이상
호스텔이나 돔에 묵고 현지인과 같은 식사를 한다면 하루에 US$ 10-15의 적은 경비로도 지낼 수 있다. 그러나 만약 어느 정도의 안락함을 원한다면 하루 $30-40의 비용으로 위성TV, 책상, 발코니, 깨끗한 목욕탕이 딸린 방에 묵을 수도 있다. 어느 곳이나 마찬가지로 멋진 호텔에 묵고 최고급으로만 누리려면 얼마든지 원하는 만큼 돈을 쓸 수도 있다. 남부지역보다는 북부지역이 숙소와 음식값이 더 싸다는 점을 염두에 두길 바란다.
여행자 수표와 현금 모두 어디서나 쉽게 환전이 되나 수표를 바꿀때에는 더 많은 커미션을 요구할 수도 있다. 고급호텔은 예외로 치고 대부분의 장소에서는 신용카드는 받지 않는다. 하지만 서양계 은행에서 신용카드로 현금서비스를 받을 수는 있다. 서비스 승인을 받을 때에는 비자가 조금 더 편리한 듯 여겨지며 그 다음은 마스터 카드이다.
가끔 찢어진 지폐는 법정화폐로 인정되지 않으며 작은 마을에서는 1000루피, 500루피 짜리 지폐는 사람들을 당황하게 하고 거스름돈을 내줄 수 없는 경우도 자주 있으니 루피로 환전할 때에는 적은 액수의 지폐로 바꾸도록 하자.
박시시는 파키스탄에서는 뇌물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삶의 한 방식이다. 어떤 상황에도 적용될 수 있으며 모든 종류의 문, 글자 그대로의 문과 은유적인 의미의 문, 을 여는 힘을 가지고 있다. 서류의 사인부터 새는 수도꼭지를 고치는 일까지 무슨 일이든 박시시의 마법을 통해 얻을 수 있다. 고급호텔은 대부분은 계산서에 5-10%의 봉사료를 덧붙이므로 그이외의 팁은 전적으로 여행객의 손에 달려있다. 택시기사들은 통상 요금의 10%정도를 팁으로 바라며, 기차역 짐꾼들은 공식화된 Rs 7을 요구한다. 시골지역에서는 팁 자체를 손님에게 후하게 대접하라는 이슬람교 계명에 반하는 것이라 여기므로 팁이 환영받지 못하는 유일한 때이기도 하다.
박시시가 삶의 한 방식이라면 주로 수많은 파키스탄의 바자(시장)에서의 흥정은 스타일의 문제이다. 서구에서는 흥정에 망설임을 보이는 것과는 달리, 파키스탄 상점 주인들은 허세를 부리며 품위에 흠이 가지 않는 한, 흥정을 즐긴다. 흥정은 대개 가게 안으로 들어와서 차 한 잔하며 이야기나 나누자는 말부터 시작되어 여행객이 관심을 둔 특정품목에 대해 자연스럽게 언급이 되고 상점주인은 엄청나게 비싼 가격을 부르고 여행객은 아주 싼 가격을 제시한다. 우스꽝스럽게 희번덕거리는 눈길이 수 차례 오고 간 후 악수하며 양쪽 모두 만족하면서 흥정은 끝난다. 흥정에는 미소와 재미있는 유머, 가격을 지나치게 깎지 않는 능력이 동원된다.
파키스탄여행의 가장 좋은 시기는 어느 지역을 갈 것인가에 따라 결정된다. 일반적으로 신드, 발루치스탄, 펀잡 등을 포함하는 파키스탄 남부와 남 NWFP는 10월-4월까지의 서늘한 달에 가면 좋다. 아자드 잠무 카시미르(Azad Jammu Kashmir)같은 북부지역과 북NWFP는 5월-10월에 눈으로 고립되기 전에 가보면 아주 좋다. 이 시기의 날씨는 약간의 바람, 비 등이 몰아칠 수 있지만 산간지역은 대개 들어갈 수 있다.
보통 12월에서 1월초의 일정기간동안 실시하는 한 달간의 무슬림 금식기간인 라마단 동안에는 파키스탄 방문을 피하도록 하자. 왜냐하면 금식중인 무슬림은 까다로우며 또, 여행자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금식에 동참하게 되는데, 이는 활동범위가 최소로 제약되고 낮 동안 음식사기가 무척 어렵기 때문이다.
카라치(Karachi)
파키스탄 상업의 중심지이며 가장 큰 도시로 바자, 하이테크 전자제품 가게, 먼지 낀 오래된 건물들, 유행을 따른 새 호텔 등이 이리저리 펼쳐져있는 곳이다. 볼거리들이 여기저기 넓게 멀리 떨어져 있어 이동할 때에는 택시나 릭셔가 필요하다.
여행의 출발 장소로 삼기 좋은 곳은 파키스탄 건국자인 모하메드 알리 진나의 기념물로 조금 좋게 표현해 특이하다고 할 수 있는 콰이디 아잠 머설리엄(Quaid=i=Azam Mausoleum)이다. 훨씬 인상적인 곳은 훌륭한 하얀 대리석으로 이루어진 디펜스 하우징 소사이어티 모스크(Defence Housing Society Mosque)이다. 세계에서 이런 종류로는 제일 큰 규모라 일컬어지는 이 돔을 보게 되면 입이 쩍 벌리게 될 것이다.
모스크 위쪽에 아가 칸(Aga Khan)의 출생지인 허니문 롯지(Honeymoon Lodge)가 있다. 다른 볼거리로는 홀리 트리니티 성당(Holy Trinity Cathedral), 세인트 앤드류 교회(Saint Andrew Church),로 이 둘은 앵글로-인도 양식의건축물의 좋은 본보기이다. 또, 동물원, 전통적으로 죽은이들을 독수리에게 장사지내는 언덕인 배화교도의 침묵의 탑(Zoroastrian Towers of Silence)등이 있다.
도시 남쪽에 클리프턴(Clifton)이 있는 데, 전에는 영국인 주택지였으나 현재는 현지 부유층전용의 해안, 인기는 있지만 단조로운 클리프턴 비치, 사람이 조금 덜 붐비는 비치 리조트인 마노라섬 (Manora Island)등을 볼수 있다.
시내 중심가인 사다(Saddar)는 카펫, 모피코트, 가죽재킷, 뱀가죽 지갑, 실크 스카프, 전국에서 제일 다양한 수공예품을 파는 성업중인 시장이 있는 주요 쇼핑장소이다. 또 수많은 음식노점상, 값싼 식당, 저렴한 숙소 대부분이 이곳에 있다. 카라치와 밤의 유흥은 서로 어울리지 않는 말이다. 카라치 밖으로 나가는 것이 가능하다면, 인더스문명의 도시였던 모엔조다로 유적지와 차우쿤디 무덤은 가볼 만한 곳이다.
파키스탄의 비공식적 수도이자 상업의 중심지인 관계로 카라치를 들고 나는 항공편은 많이 있지만 각자 비행편의 도착시간(ETA)을 확인해보는 것이 좋다. 카라치는 정치적, 민족적 갈등의 진원지이다; 적대 관계인 마약 갱, 정치적 암살, 테러리스트의 폭탄공격 등과 연관될 때에는 아주 작은 것에도 갈등에 불이 붙는다. 만약 타고 갈 비행편이 한밤중에 내린다면, 해가 뜨기까지 기다렸다가 택시를 타는 것이 현명하다. 같은 이유에서 버스를 타는 것은 피하도록 한다. 그 대신 기차표를 사라 : 카라치에서 대부분의 주요 행선지로 기차가 운행된다.
라호르(Lahore)
펀잡 지방의 수도인 이곳은 파키스탄의 문화, 교육, 예술의 중심지이며 따라서 전국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이 방문하는 도시이다. 그늘진 공원과 정원, 무굴 양식과 식민지 양식 건축물의 부조화, 혼잡한 거리와 바자에서 느낄수 있는 이국적인 스릴 등, 찾아가는 이유를 대는 것이 어려운 일이 아니다. 도시의 볼거리를 몇가지 들어보면: 영국풍 공원과 건물지역인 더 몰(The Mall); 전국 최고 최대 규모의 박물관인 라호르 박물관; 키플링의 고전 Kim의 킴스 건(Kim's Gun); 이마란 칸(Imaran Khan)이 옛날에 이곳 학생이었음을 자랑으로 내세우는 정말 아름다운 공립학교인 에잇치슨 컬리지(Aitchison College); 웅장한 궁전, 홀, 정원 등으로 이루어진 라호르 성채(Lahore Fort); 릭셔, 조랑말 마차, 노점상, 베일 쓴 여인들의 행렬이 좁은 길에 넘쳐나는 구시가지(Old City) 등이 있다. 이 도시는 너무나 많은 무덤, 모스크, 기념물 등이 있어 일일이 언급하기가 어렵다.
이슬라마바드 남쪽 250km 지점의 라호르는 너무 많은 국제선과 국내선이 취항하고 있다. 장거리 육로 이동은 편안하고 확실한 에어컨버스로 가능하며 짧은 여행은 도처에 있는 미니버스로 할 수 있다. 라호르는 카라치와 페샤와르를 잇는 주요 국도상에 있어 모든 주요 행선지로 직행편이 자주 있다.
펀잡 주변
펀잡은 파키스탄의 가장 비옥한 지역으로 많은 농업활동이 이뤄지며 고대사와 많은 관련이 있는 곳이다. 또 비교적 안정된 지역에 속하므로 여행자들은 더 남쪽이나 북쪽에서 겪었던 문제들을 다시 겪어야 할 일은 거의 없을 것이다. 인심 좋고 번성하는 마을인 바하왈푸르(Bahawalpur)는 이 지역을 부드럽게 소개해주는 길잡이 역할을 한다. 이곳에서 유목민 집단과 바람만이 불어치는 요새 등이 점점이 흩어져 있는 모래 황무지 땅인 촐리스탄(Cholistan)이나 중요한 야생동물 보호지역인 랄 수한라(Lal Suhanra)국립공원으로의 여행을 시작할 수 있다.
조금 더 북쪽으로는 모엔조다로 이후 인더스 문명의 두 번째로 중요한 장소인 하라파(Harapa)가 있다.라왈핀디(Rawalpindi)와 파키스탄 수도인 이슬라마바드는 쌍둥이 도시이다. 전자는 떠들썩한 각종 바자가 모여있는 곳이라면 후자는 조용한 변두리같은 느낌이 들며 아직도 건설중이다(신수도의 건설은 1961년에야 시작되었다). 여기서는 고고학의 보고인 탁실라(Taxila), 성지 순례여행지인 하산 압둘(Hasan Abdul) 등지로 갈 수 있다. 바하왈푸르는 펀잡지역에서 최남단 마을이다. 약 555km 떨어진 이슬라마바드로부터 항공편이 매일 있다. 펀잡지역 내의 주요 행선지 대부분과 버스, 미니 버스, 기차 등으로 연결된다.
케타(Quetta)
메마른 불모의 땅인 발루치스탄 주에서 크기에 상관없이 중요한 유일의 장소가 고대 기념물이라고 여겨질수도 있지만, 오히려 인종간의 활발한 융화, 나무가 심어진 넓은 대로, 가치있는 영국풍의 건축물 등으로 인한 충만함이 더 가치가 있다. 더욱 더 감탄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케타가 지니고 있는 사방의 산악배경이 주는 드라마틱한 환경이다.
카라치와는 다르게, 대부분의 볼거리에 하루 안에 걸어서 쉽게 갈 수 있다. 인상적인 발루치스탄 고고학 박물관, 요새 외에도 대리석, 얼룩마노, 파키스탄의 최고품질의 카펫을 사기에 좋은 곳인 수많은 화려한 도시의 바자를 놓치지 말길.케타 바로 외곽에는 엽서그림에 딱 어울리는 한나 호수(Hanna Lake), 우락 계곡(Urak Valley)의 많은 피크닉 장소, 보호되고 있는 하자르간지 칠탄 국립공원(Hazarganji Chiltan National Park)등이 있다. 또 케타 근방에는 상쾌하게 시원한 지아라트(Ziarat) 피서지가 있어 휴식을 취하고 산책이나 산행을 할 수 있는 좋은 기점이 되고 있다.
케타는 다른 주요 마을과 상당히 떨어져 있으며 이슬라마바드와는 1000km라는 엄청난 거리가 있다. 그러나 지리적 장애물은 멀리 떨어져 있다는 점에서 더 한층 증폭되는 국경지방의 심리적 요소만큼 걱정할 정도는 아니다; 일반법의 부재, 다른 종족과의 마찰, 총기 등이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혼란스런 상태를 만들어낸다. 중심도로에서 벗어나거나 밤에 움직이지 않는 한, 케타와 그 주변 지역은 주 고속도로 상에 있기 때문에 안전하다.
이론적으로는 관광객은 어디든지 가볼 수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지방당국이 관광객의 안전을 보장할 수가 없다. 케타로 국내선 비행기를 타고 이동하면 몇 가지 귀찮은 문제를 피할 수 있다. 비행기표를 못 구하면, 장거리여행에는 에어컨 버스와 기차를, 단거리 여행에는 미니버스를 이용할 수 있다.
아자드 잠무 앤 카시미르(Azad Jammu & Kashmir)
분쟁지역인 잠무 앤 카시미르의 주요 자산은 자연의 아름다움이다 - 안타깝게도 파키스탄의 16km에 달하는 안전지대 때문에 정말 아름다운 장소의 대부분이 출입금지 구역이다. 남아있는 것은 낚시와 트레킹으로 유명한 닐룸 밸리(Neelum Valley)과 훌륭한 도보산책로가 있는 피서지인 젤룸 밸리(Jhelum Valley), 남쪽의 숲이 울창한 고지대 등이 있다. 그러나 이곳들도 당시의 정치적 상황에 따라 출입이 금지될 수도 있다. 가기 전에 금지여부를 확인하는 것을 잊지 말도록 하자.
이슬라마바드에서 무자파라바드(Muzaffarabad)와 라왈라코트(Rawalakot)로 매일 항공편이 있다. 무자파라바드로 육로를 통해 가는 것은 만셰라(Manshera)의 바라르코트(Bararkot)나 무리(Muree)의 코할라(Kohala)에 한정되어 있다. 라왈핀디에서 라왈라코트로는 버스나 웨건을 타고 갈 수도 있다. 다른 직선 노선은 외국인에게는 제한되어 있으며 이는 그 노선들이 펀잡지역의 정부 연구소 옆을 가까이 지나기 때문이다.
북서 변경주(North-West Frontier Province)
NWFP가 파키스탄의 여러 지역 중 아마도 가장 기억에 남는 곳이 되는 이유 중에는 감히 뚫고 들어갈 수 없는 산악지대와 고집센 사람들, 상상 이상으로 로맨틱한 도시들이 포함된다. 여행의 대부분은 페샤와르(Peshawar)에서 시작된다. 이곳의 하이라이트는 구시가지로 부족의 귀중품부터 가죽으로 만든 권총 케이스에 이르기까지 잡다한 것을 파는 상인들의 외치는 소리가 가득하다. 따가닥거리며 말이 끄는 2륜마차인 통가가 거리를 가득 메운다.
무서운 얼굴의 퍼쉬툰스-전 부족협회의 멤버-와 아프가니스탄인들, 치트랄인들도 거리에 넘쳐난다. 페샤와르 외곽을 조금 벗어나면 (그래도 100만 마일이나 떨어져 있다) 스머글러스 바자(Smugglers Bazzar)가 있다. 물론 여러분들이 기대했던 것과는 다르다: 텐트를 치고 터번을 두른 상인들은 최신 TV, VCR, 냉장고를 가득 쌓아놓은 서구식의 몰로 바꾸어 졌다. 심지어 막스&스펜서 물건을 파는 가게까지도 있다.
소규모의 군대 요새들이 흩어져있는 전설적인 카이버 패스(Khyber Pass)가 인근에 자리하고 있다.페샤와르의 북쪽은 스와트(Swat)구역으로 파키스탄 북부계곡 중에서 가장 멋진 경관을 지니고 있다고 간주되며 치트랄(Chitral)은 푸르게 우거짐 계곡, 온천, 멋진 산책로가 있는 비교적 오염 안 된 지역으로 여겨지고 있다. 현기증이 있는 사람들은 서쪽에 위치한 인더스 코시탄(Indus Koshitan)은 피해야 한다. 그곳은 어마어마한 봉우리와 바닥이 안 보이는 협곡, 더 많은 수의 좋은 산책로가 있다.
페샤와르에서 파키스탄의 각지로 국내선을 이용할 수 있으며 카타르, 타쉬켄트, 아부다비, 두바이, 제다 등지로의 직항편도 이용가능하다. 버스와 미니버스는 라호르와 라왈핀디에서 하루종일 떠나고 도착하지만 가차가 버스보다 안전하며 요금은 비슷하게 저렴하다. 페샤와르는 이슬라마바드서쪽 150km에 위치해 있다.
북부지방
북부지방에는 여행자들이 별로 없지만 이 험난한 지형을 무릅쓰고 도전한 여행자들은 대개 주도인 길기트(Gilgit)에서 여행의 막을 내린다. 도시 자체는 중앙아시아 무역상들로 넘쳐나는 바자를 제외하고는 별다른 것이 없다. 그러나 알파인 도보여행, 송어낚시, 시골근교의 유서 깊은 유적지에서 한가롭게 지내기 위한 기점으로 삼기에는 나무랄 데 없이 훌륭한 곳이다.
한때는 미탐사 된 막다른 장소 같던 발티스탄(Baltistan)은 이제는 세계 수준의 등산, 좋은 트렉, 멋진 경관을 은밀히 자랑한다. 더 쉽게 접근이 가능하고 볼만한 곳으로는 - 경사면을 따라 물결치듯 펼쳐진 물을 댄 계단식 지형을 확인해보자 - 중국 국경 쪽의 나가르&고잘, 훈자 지방 쪽이다.
까다롭지만 않다면 길기트로 비행기를 이용해 가는 것도 가능하다. 날씨, 결항된 앞 항공편, 대기자 명단, 시간, 그리고 약간의 운 등이 알맞게 조화되기란 정말 엄청 어려운 일이다. 개인의 별자리 징조나 업보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단지 그렇게 보일 뿐이다. 버스, 미니버스, 지프차로 가는 것이 훨씬 수배하기는 수월할지 모르지만 위에서 내려다보는 장대한 광경을 놓치게 될 것이다. 길기트는 이슬라마바드에서 거의 330km 정도 떨어져 있다.
잘 알려지지 않은 여행지
펀잡지방의 아래에 위치한 방문하는 사람이라고는 거의 없는 물탄(Multan)은 아대륙에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도시로서 4000년이나 거슬러 올라간다. 이슬람의 주요 중심지였었던 이 곳은 그 후 샬와르 카미즈를 입은 신비주의자, 성자, 성도들을 불러들여 그 수가 엄청나게 많다. 오늘날 물탄은 무덤, 사원, 최고의 도시 정경을 볼 수 있는 요새, 파키스탄에서 가장 훌륭한 바자 중의 하나 - 아니타 로딕에 의해 영향받지 않은 사람들은 도마뱀으로 만들어 재생에 뛰어난 효능이 있다고 말하는 스킨을 즐겨 살지도 모른다 - 등으로 뛰어나다.
이슬라마바드에서 물탄까지는 570km의 거리가 된다. 카라치, 라호르, 라왈핀디, 파이살라바드(Faisalabad), 하이더러바드(Hyderabad)를 포함한 각 지에서 버스, 미니버스들이 물탄에 들러 승객들을 복잡한 버스 정거장에 내려놓는다. 기차는 (훨씬 더 편안한 여행 방법이다) 라호르, 카라치, 라왈핀디간을 운행한다.
칼라시계곡(Kalash Valleys)
선교사, 인류학자, 더들리 두-라잇(Duddley Do-rights) 등이 치트랄 남쪽의 칼라시계곡에 온 것은 오직 한 가지를 위해서이다 - 그 곳에 살고있는 비 무슬림 종족 (놀라지 말길, 진짜 무슬림이 아니다)을 보기 위해서이다. 그 사람들은 스스로를 칼라시인이라 부르며 나무, 돌, 진흙 등으로 만든 견고한 집에서 살고 있다. 곡식을 기르고 특이한 염소를 치면서 목가적인 생활을 조용히 누리고 있다. 놀랍게도 그들은 주목받는 것에 흥분하는 것 같지도 않으며 관심을 보이는 서양관찰자들을 환영하는 것처럼 보인다.
걸어가지 않는 한 치트랄(Chitral)로 가는 유일한 길은 항공편(날씨가 허락한다 면) 이며, 또는 해발 높은 곳의 통행로 두 곳 중 한 곳을 경유하는 방법이나 겨울동안에 이 곳들은 폐쇄된다. 이슬라마바드에서 도보로는 먼 거리이다 : 정확히 말해 393km. 치트랄에서는 지프차로 칼라시 계곡에 가거나 일부는 버스로 가다가 나머지는 힘든 방법으로 갈 수도 있다 ; 도보로 말이다.
낭가 파르밧(Nanga Parbat)
낭가 파르밧산은(카시미르어로 '벌거벗은 산'라는 의미다) 북부지역 중에서는 가장 남쪽에 위치하여 너무나 가팔라서 눈도 쌓이지 못할 정도인 4,500m 높이의 외벽을 자랑한다. 눈뿐만 아니라 수많은 산악인들에게도 같은 말이 적용될 수 있다 - 수년간 이 곳에서 추락했다. 게다가 계곡으로 오르는 길은 속이 뒤집힐 정도로 힘든 트랙이다.
통행로가 1987년 개선될 때까지 정기적으로 지프차들이 전복되었다. 겁나지 않은가? 정상까지 가는 마지막 길은 썩은 달걀(그 정도로 험하다)에 비유될 수 있다.
우선 길기트로 가야한다.(북부지역편 참조) 거기서 버스나 지프차를 이용하여 아스토르(Astor)로 가고 그 지역의 몇몇 작은 마을로 지프차로 이동한 뒤 그 뒤에는 순전히 도보로 이동해야 한다.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산악지대 중 일부가 있는 파키스탄은 그냥 그대로도 트렉커들이 열광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곳이다. 외국 회사가 운영하는 트레킹부터 파키스탄에 기반을 둔 여행장비 차비에 이르기까지 모든 종류의 트레킹이 가능하다.
각자 자신만의 준비를 스스로 할 수도 있는데 조금 더 비용이 덜 드나 동시에 더 많은 것이 요구된다. 하루에서 한 달짜리에 이르는 인기 있는 트레킹 루트는 대부분 길기트, 낭가 파르바트, 발리스탄(K2로가는 트렉이 시작되는 곳이다)과 훈자 등, 국토북단의 모든 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쉬운 것을 원한다면 케타 근처의 지아라트계곡에 멋진 1일 하이킹 코스가 있다.
다른 할 것으로는 카라코람 하이웨이 Karakoram Highway (라왈핀디Rawalpindi 부터 쿤제랍 패스 Khunjerab Pass까지), 파트와르 고원(이슬라마바드에서 패샤와르까지), 마르갈라 (Margalla)와 무리힐 (Murree Hill, 이슬라마바드 북쪽)을 자전거로 달려보거나 길기트에서 치트랄까지 산악자전거를 타볼 수도 있고 훈자, 길기트, 인더스 강에서 화이트 워터 래프팅을 할 수도 있다.
유럽과 아시아에서 오는 비행편의 대부분은 카라치에 도착하나 일부는 이슬라마바드, 라호르, 패샤와르, 케타, 과다르(발루치스탄)로도 간다. 훨씬 더 재미있는 일은 대륙횡단을 해 보는 것이다. 철도가 라호르와 인도의 암닛사르를 이어주며 인도 철도 시스템과 연결되고 케타에서 출발하는 열차는 이란으로 손쉽게 들어간다. 그랜드 트렁크 로드 외에 파키스탄으로 들어오는 가장 유명한 길은 카라코람 하이웨이로 중국의 카시가르부터 4,730m 높이의 쿤제랍 패스를 지난다. 이 길은 인도에서 이란으로도 연결된다. 델리와 라호르간의 버스 편은 일주일에 네 번 운행 중이다. 중동이나봄베이에서 출발, 카라치에 들르는 화물선을 이용한다면 해상 여행도 가능하다.
파키스탄 내를 돌아다니는 일은 항상 편한 것은 아니지만 굉장히 저렴하다. 국영 파키스탄 인터내셔날 에어라인즈 (PIA, Pakistan International Airlines, 때때로 'Prayers in Air, 상공에서의 기도'로 해석되기도 한다)는 35개 국내선 정기비행편이 있으며 주요 장소로는 매일 연결편이 있다. 항공편을 이용할 때 좋은 점 중의 하나는 특히 북부지역과 치트랄로 가는 것같은 일부 항공로에서 말로 형용할 수 없는 멋진 장관을 볼 수 있다. 버스는 언제든지, 어디든지 간다(인샬라-신의 뜻대로-의 진짜 의미를 일부 위험하기 그지없는 산악도로에서 분명히 알 수 있다).
밴, 웨건, 픽업, 지프들 또한 도로교통의 인기 있는 수단이다. 기차여행은 훨씬 느리고 신경 쓸 일이 덜하지만 안타깝게도 산악지대로 가는 노선은 없다. 신체 건강하고 열받는 교통 상황도 상관없다면 자전거 여행도 국토를 살펴보는 아주 좋은 방법이다. 시내 교통은 버스, 택시, 오토릭셔, 말이 끄는 이륜마차인 통가 등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