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은 표창원 교수의 블로그 글
[국정원의 통합진보당 ‘내란음모죄’ 수사] 전문.
1. ‘법과 원칙’, 그리고 ‘진실’이 정답입니다.
통진당이건 새누리당이건, 이 의원이건 김 의원이건, 범죄 혐의가 있다면 수사를 받아야 하고 입증이 되면 법에 정한 처벌을 받아야 합니다. 끝.
2. 합리적 의심들
하지만, 원내 제3당, 현역 국회의원을 ‘내란 사범’으로 규정한 ‘엄청난 국가적 사건’인 이번 사건에는 많은 의문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입증책임을 가진, 그리고 권력과 정보를 쥐고 있는 국정원이 답해야 할 의문들입니다.
(1) 시기 ‘왜 지금인가’? (불법 정치/선거개입 여론조작 사건으로 개혁 위기에 몰린 상황)
‘3년 간의 내사’, ‘2012년 5월 비밀집회에서의 발언’ 이 핵심증거...라면, 그리고 ‘총’, ‘폭파’, ‘인명살상’ 등의 극히 위험한 내란 예비음모라면, 보다 일찍 전면적인 압수수색과 체포를 했었어야 하지 않나요? 특히, 핵심인 이석기 의원을 체포하려면 국회 회기 중이 아닌 시기에 영장 발부받아 체포할 수 있었잖아요?
(2) ‘내란음모죄’ 사실인가, 조작인가? (얼마 전 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 무죄판결과 유사?)
형법상 음모죄가 성립하는 경우의 음모란 “2인 이상의 자 사이에 성립한 범죄실행의 합의를 말하는 것으로, 범죄실행의 합의가 있다고 하기 위하여는 단순히 범죄결심을 외부에 표시·전달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객관적으로 보아 특정한 범죄의 실행을 위한 준비행위라는 것이 명백히 인식되고, 그 합의에 실질적인 위험성이 인정될 때에 비로소 음모죄가 성립한다. “(대법원 1999.11.12. 선고 99도3801 판결)” - “피고인 1과 피고인 3이 수회에 걸쳐 '총을 훔쳐 전역 후 은행이나 현금수송차량을 털어 한탕 하자'는 말을 나눈 정도만으로는 강도음모를 인정하기에 부족하다고 판단한 것은 정당하고, 거기에 강도음모죄의 법리를 오해하여 판결 결과에 영향을 미친 위법이 있다고 할 수 없다”
언론에 보도된 내용만으로는 대법원 판례에서 요구하는 ‘음모’죄의 구성요건이 갖추어졌다고 볼 수 없습니다. ‘국회의원으로서 할 소리냐?’는 비난과 함께 의원자격 박탈 등 도덕적이고 정치적인 문제 제기는 가능하겠지요.
그런데, 그 정도의 사안으로 국가정보원이 3년 동안 내사해서 나라 전체를 떠들석하게 하면서까지 대대적인 압수수색과 체포를 행해서는 안되지요. 만약, ‘내란음모죄’로 기소하지 못하거나 기소되더라도 무죄판결을 받는다면, 그 책임은 대통령 사퇴와 정권퇴진으로 이어져야 할 것입니다.
만약에, 국정원이 보도된 것 이상의 증거를 확보하고 있고 그래서 ‘내라음모죄’의 유죄판결을 받게된다면 해당 피의자들에 대한 법적 처벌은 물론이고 통합진보당은 빈국가단체로서 해체되어야 하겠지요. 이 난리가 벌어진 이상, 다른 타협적 결과는 있을 수 없습니다.
(3) 3년 간의 미행과 감시, 공작 ‘합법적 내사’인가 ‘불법적 사찰, 정치 보복’인가?
방첩공작, 내사가 개시되려면 ‘상당한 의심’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공작’ 혹은 ‘내사’가 지속되려면 최초 의심을 보완하고 보강하는 증거들이 발견되어야 합니다. 그것도 ‘3년간’이나 지속되려면 아마도 3급(C급)-2급(B급)ㅡ1급(A급) 에 이르는 승급이 이루어졌겠죠. 그 결과 ‘수사’로 전환되어 영장을 청구할 정도가 된다면 ‘엄청난 양’의 진술과 증거들이 확보되었을 것입니다. 만약에 이러한 ‘정당한 절차’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라면 이석기 의원 등 피의자들에 대한 유죄 입증은 문제없을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만약에, 녹음 파일 하나와 익명의 정보원 진술, ‘종북성향이 의심되는 문건 몇개’ 정도가 다라면, 그래서 결국 ‘내란음모죄’에 대한 유죄판결을 이끌어 내지 못한다면, 이번 사건 3년간의 활동은 불법적인 ‘표적 사찰’, ‘정치탄압’, ‘공작정치’에 다름 아닐 것입니다. 그 책임은 대통령 사퇴와 정권퇴진 및 국정원 해체후 정보기관 재편으로 이어질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3. 통합진보당이 택해야 할 길
그동안 통합진보당은 야권과 진보세력 내에서도 ‘종북논란’으로 인해 많은 갈등과 다툼을 겪은 것으로 압니다. 일부 대힉생들 마저 학내 강의를 반대할 정도로 일반 국민에게도 ‘종북 이미지’가 덧씌워져 있구요. 분단 상태인 대한민국의 특성상, ‘사상의 지유’와 ‘표현의 자유’는 “국가보안법의 한계 내”로 제한되어 있습니다. 국가보안법 폐지 주장은 얼마든지 허용되어야 하지만, 법이 존재하는 한 지켜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과연 통합진보당이 이러한 대한민국의 현실 하에서 합법적이고 정당한 정치집단, 노동자와 농민 도시 서민 등을 대표하는 대표적 ‘진보정당’인 지 아니면 체제를 위협하는 ‘반국가단체’인지, 혹은 위험한 ‘종북 세력’인지에 대한 논란이 있어왔습니다. 이번 사건은 이 논란에 종지부를 찍게 될 것으로 보입니다.
국정원이 던진 마지막 승부수가 성공한다면, 아마도 통합진보당은 ‘반국가 종북집단’으로 규정된 채 역사 속으로 사라질 것이고, 국정원이 잘못된 모험과 음모를 시도한 것이라면, 이를 통합진보당이 밝혀낸다면, 그 과정에서 적극적인 도움을 주지 않은 다른 야당들에 대한 도덕적 우위를 확보하며 선명한 진보정당으로 우뚝 서게 될 것입니다. 물론, 법적으론 무죄 판결을 받고 국정원과 정권에 심대한 타격을 입히지만 보다 확실한 ‘종북’ 이미지와 도덕적 타격을 입을 수도 있겠지요.
제가 정답을 알 순 없습니다. 하지만, 제 생각에는, 국정원과 현 정권이 자신들의 운명을 걸고 던진 마지막 승부수가 이번 사건이라고 생각합니다. 만약, 정말 유신 시대적인 시대착오적 망상으로 벌인 공안 여론몰이라면 반드시 규명해 내서 이들들 역사 속으로 보내버려야 합니다.
하지만, 만약에 국정원이 ‘상당한’ 의심으로 출발해 증거들을 모으고 ‘합리적 의심을 넘어설 정도의’ 심증을 굳힌 상태에서, 여론의 반발과 정치적 부담을 모두 이겨낼 수 있다는 확신 하에 행한 수사로, 입증을 해 ‘내란음모죄’의 유죄판결을 얻어낼 수 있다면, 이석기 의원과 관련자들이 엄중한 처벌을 받고 통합진보당이 해체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동안 북한과 연계해 그들의 지령을 따르면서 대한민국의 패망을 위해 야권과 시민들을 이용해 온 것이라면, 우리 모두가 누구보다 더 많이 분노할 것입니다. 지금까지는 어느 쪽인 지 알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합진보당이 스스로 법과 사실에 입각해 철저하게 대응해 나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무조건 ‘유신 부활’, ‘공안 탄압’으로 정치쟁점화하는 것은 모두에게 이롭지 않으며 옳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힘과 권력, 정보 및 언론 방송 지배력 등을 독점한 국가가 그 상대우위를 이용한 ‘불공정한 게임’을 펼치지 못하도록 시민들과 단체들, 정당들은 감시하고 지켜볼 것입니다.
이 사건은 우리 모두를 피해자로 만들고 있습니다. 부디, 분명한 진실이 드러나 정의가 확실하게 구현되는 계기가 되길 희망하고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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