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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소제공 프로그램을 시행하여 봄직 하지 않은가
섬진강에서 집을(천막) 짓지 않은 것은 구례의 무문정에 이어 2번째다.
구례와 순창의 선순위는 모르겠으나 순창의 정자에도 '무더위쉼터' 유인물이 붙어있다.
순창은 더 적극적이다.
마을회관에도 붙어있으니까.
이처럼 연린 자세라면 마을회관들을 연계해 외지인 내방객 숙소 제공 프로그램을 시행
하여 봄직 하지 않은가.
벙크(bunk/이동용 2층철침대) 1조에 예비용으로 메트리스 몇개면 되는 지극히 간단한
일이며 인심을 비롯해 지역 홍보에 이보다 더 좋은 수단은 없을 것이다.
숙박업자들도 불만을 가질 이유가 없다.
자기네의 손님을 가로채는 것이 아니고 자기네와 무관한 신규 고객을 창출하는 것이며
숙소프로그램이 없다면 숙박업소를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아예 오지 않을 고객이니까.
이곳 섬진강에서도 자전거길 공사(내월교)가 한창이다.
준공식을 가진지 3개월이 되어 가는데 이 공사가 언제 끝날런지.
침수교를 건너서 오수천 구남교를 또 건너야 하는 먼 우회길을 언제까지 따라야 하나.
광양시 다압면 어느 분의 진단대로 올해 안에 끝나면 다행일까.
게다가, 여기는 침수시의 대책이 막연한 길이다.
장수군(전북) 산서에서 발원해 오수(임실), 동계(순창)를 거쳐 온 오수천(지방 1급천)을
받은 적성강(섬진강)의 좌안을 따라 본격적인 남하를 시작했다.
간밤에 우계마을을 지나쳤더라면 평남정(平南亭/평남마을)까지 가느라 공사중인 칠흑
우회로에서 고생 많이 했을 것이다.
범죄 없는 마을이라니까 밤길에 걱정할 일은 없겠진만.
양 강안에는 강태공들이 적지 않은데 평소에도 그런가 추석귀향자들의 고향락(樂)인가.
산골이지만 강따라 형성된 들의 벼들이 노란빛을 띄어간다.
여물어가고 있다는 뜻인데 중추절에는 이미 누렇게 물들어 있어야 하지만 올해가 이른
추석이라 늦었단다.
그래도 보기 드문 풍년이라니 그나마 다행이다.
만선 풍어가 어촌을 웃게 한다면 농촌은 풍년만이 인심을 풍성하게 한다.
그래서 어촌은 하루살이 인심이지만 농촌은 한 해를 좌우한다.
내 걸음도 여유롭다고 느끼며 걸었다.
어제 밤에도 걸음으로서 한나절치에 불과한 16km가 오늘 걸을 몫으로 남았으니까.
그러나 적성교(24번국도)밑을 지나 구교(舊橋)를 걸을 때는 한숨과 분노가 절로 나왔다.
이 다리를 설계한 사람에게 묻는다.
교량 설계사 맞냐고.
아니면, 설계는 제대로 했는데 시멘트, 철근 등 자재 빼먹느라 이 꼴로 만든 거냐고.
이같은 다리를 설계하고 시공한 사람은 평생 교량의 설계, 건설업에 종사하지 못하도록
제도화 할 방법은 없을까.
다리를 건너면 원촌(院村/古院里)이다.
다음 마을이 관평(官坪)인 것으로 보아 이 일대에는 원이 있었고 벼슬아치들과 관련된
마을이었을 것이다.
원촌삼거리에서 담순로(담양 ~순창 24번국도)와 거의 나란히 가는 자전거길은 강태공
차량만 없으면 1등로다.
강에는 보(洑)가 있고 보에는 어도(魚道)가 있다.
연어 같은 높이뛰기 선수에게는 필요없지만 물고기들이 보가 설치된 강을 오르내릴 수
있게 만들어 놓은 길이 어도다.
이 길목에 서서 고기를 잡는 얌체족을 다스릴 방법은 없는가.
마침 지나가는 경찰차를 세우고 몰라서 묻는 것 처럼 넌짓이 물었다.
저 시설이 무엇이냐고.
'어도'라고 자신있게 대답하는 그에게 저 얌체족을 벌줄 법은 없느냐고 되물었다.
고소로 응답하는 그에게 내 답례도 고소였다.
순창 인심은 본래가 그래요
관평사거리 유적교 밑을 지나 목교를 넘으면 지북(支北)사거리다.
마을을 휘감고 돌아가는 산의 형상이 옥대같고 봉우리는 갓과 같은 형상이라 하여 갓대,
관대(冠帶)촌이라 했으나 안산(案山)은 백호상이며 마을은 큰 돼지가 드러누워 있는 상
이라는 한 도인에 의해 지북(支北)으로 개명했다는 마을이다.
도인에 약한 사람들, 이름 바꾼 효과는 보고 있는가.
침수교 옆 강가에 자리한 '순창알곡매운탕'집이 추석휴업을 위해 정리중인 듯 했다.
휴업안내판을 보고도 주인으로 보이는 남자에게 막걸리 1병 줄 수 없겠느냐고 물었다.
말은 했지만 당연히 노(no)가 나오고 실없는 늙은이 취급받겠다 싶었는데.
"드리지요"
시원스런 즉답 조금 후에 막걸리는 물론 군침이 절로 돌게하는 전라도김치와 밥을 고봉
으로 담은 밥그릇이 담긴 쟁반을 들고 온 그.
"아침식사 전이실 것 같아서 밥을 챙겨왔는데 휴업이기 때문에 찬이 없어 죄송합니다"
"순창 인심이 왜 이리 후합니까. 언제부터 이렇게 정이 많습니까"
말솜씨가 변변치 못한 데다 밥상을 받고 어리벙벙해져서 나온 말이지만 실로 궁금했다.
풍산면 대가리와 덕산마을, 금과면 동전리와 이목마을, 적성면 우계리와 여기 식당 등
하나같이 후하고 정이 넘치니 말이다.
냉랭한 수양리가 있지만 탁수하는 일어에 불과하고.
일목(금과면)의 이영삼, 우계의 강용문 등 토박이 아닌 전입자들까지도 똑같으니 순창
물과 토양이 그러한가.
문득, 호남정맥 종주때 구림면 자양리의 카페 '매밀꽃필무렵'이 생각났다.
서울산(産) 주인도 그랬으니까.(메뉴 '백두대간과 아홉정맥'116번글 참조)
그 때 그는 시골 인심이 각박해서 떠나려 한다고 했는데 어찌된 일인가.
"순창 인심은 본래가 그래요"
나는 식당 주인의 이 말을 믿고 싶다.
각박했던 것은 일시적 현상이고 순창의 본심은 이럴 것이라고.
새벽에 누룽지 끓여서 생일을 자축했는데 아침상을 받다니.
밥을 반으로 줄여달라 해서 막걸리를 곁들여 잘 먹고 일어섰다.
주인도 떠나고 식당에는 이미지가 다른 남녀만 남았다.
태국에서 온 부부란다.
고용주네 대명절을 위해 이역의 종업원이 총대를 메고 있는데 종업원네 대축일(쏭끄란
/Songkran, 러이끄라통/Loi Krathong 등)에 배려는 하고 있는지.
그래도 부부가 함께 있어서 덜 외롭겠다.
그들을 찍어온 사진을 빨리 인화해서 2013년 추석 선물로 빨리 보내줘야겠다.
침수교를 건너 9km쯤 남은 향가유원지를 향하여 남하를 다시 시작했다.
어도의 윗목에서 고기를 잡는 얌채가 여기에도 있다.
순창 사람일까 타지인일까.
순창인이라면 사람끼리만 후하지 말고 부디 자연에도 너그럽기를.
얼마 가지 않아서 유등면(柳等)의 유촌대교를 건넜다.
지북리에서 산세(山勢)를 뚫지 못해 강을 건너고 되건너는 우회를 한 것이리라.
유촌대교 아래 섬진강둔치에는 군민체육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조성비는 들었으나 공짜 토지일 텐데 유료다.
군민의 인심과 달리 군(郡/지자체)은 짠돌이?
섬진강자전거길 걷기를 마쳤으나.
곧 섬진강을 건너 담양으로 가는 88올림픽대로 밑을 지났다.
저번에 봉서리(담양군), 이목리(순창군)에서 호남정맥 때를 기억나게 했던 고속국도다.
조금 아래 외이리 강둑에 '섬진강 고뱅이 어살 복원 기념비'가 서있다.
돌로 강을 V자형태로 막고 대나무로 발을 엮어 은어와 참게 등 물고기를 잡았단다.
이조 중기 이후 계속되어온 이 어살이 88올림픽도로 공사로 유실되었는데 복원했다고.
남해(경남) 지족해협의 죽방렴을 연상하게 하는 어살인데 아무리 두리번거려도 V자 보
만 보일 뿐 어살도 어초정도 내 눈에는 들어오지 않았다.
시력이 나쁜 것을 인정하기에 디카에 담아서 확대해 보아도 없다.
어찌 된 일일까.
수풀로 우거진 강심 밖의 강안, 필요하다면 활용될 만한 둔치가 양안으로 계속되는 둑
길은 경천이 합수되는 지점에 다리가 없기 때문에 유풍교로 U턴해야 한다.
7월 22일 06시 55분에 밟았던 유풍교를 9월 18일 12시 36분에, 58일 만에 다시 밟았다.
U턴한 지점부터는 풍산면 두승리다.
활짝 핀 코스모스가 한들거리는 강둑은 걸을 만한 길, 마냥 걸어도 지치지 않을 길이다.
대풍교에 이르러 다리 밑에서 잠시 쉬고 있는데 전주에서 드라이브 나온(?) 개인택시가
돌아가는 길이라며 원하는 곳에 내려주겠으니 타시란다.
이 운전자도 내가 자기의 롤 모델이라 서비스하고 싶다는 것.
유풍교를 건넜으므로 솔깃했으나 빤히 보이는, 2km쯤 남은 향가터널까지 마자 걸으며
저번에 공사중이었던 길을 확인하지 않으면 마음이 편치 않을 것 같아 사양했다.
대가리의 그 집에도 들려야 하고.
향가유원지권인 대풍교 밑.
잡다한 생활쓰레기로 지저분하다면 범인은 당연히 유원지 향락객들이다.
민도(民度)가 측정되는 현장인데 관리 당국자들의 태만도 비판받아야 할 것이다.
야간산행이 잦은 등산로에 쓰레기가 특히 많다.
환한 낮과 달리 밤길에는 양심도 먹통이 되어 마구 버리고 가기 때문인데 백주에도 이
꼴이라면 순창군은 민도를 인심 만큼 끌어올리기 위한 계도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
공사중이기 때문에 논길 따라 우회해야 했던 자전거길을 1km쯤 앞두고 기대되었다.
얼마나 잘 닦아놓았을까.
여전히 줄지어 서있는 '공사중우회' 안내판들에 실망하면서도 뒷처리를 하지 않았을 뿐
이겠거니 하며 접근했다.
그러나, 향가유원지 자전거길 공사는 내가 지나간 7월 21일로부터 3개월이 지났는데도
전혀 진척되지 않은 것 같다.
200m도 못되며 난공사 구간도 아니다.
양생기간을 충분히 고려해도 1개월짜리도 못되는 공사가 왜 이 꼴일까.
굳이 현장을 밟고 향가터널 앞까지 올라가며 살펴보았다.
추석연휴로 인한 중지가 아니고 한심하게도 장기간 중단상태임이 분명하다.
준공식의 뜻을 재해석해야 하나?
섬진강자전거길 걷기를 완벽하게 마쳤는데도 왜 0 씹은 기분일까. <섬진강 끝>
섬진강 에필로그(epilogue)
9월 18일 13시 35분,
향가터널에서 대가리 그 집을 찾아나섰다.
소나기 퍼붓는 칠흑의 밤길을 차로 달렸기 때문에 위치를 확인하기 위해 전화를 했으나
연결이 되지 않아 1박했던 대가리 정자로 갔다.
도중에 한 젊은이의 호의로 쉽게 도착했으나 이럴 수가.
그 집(지네골)은 왔던 길을 되돌아가 도로(향가로)를 건넌 후 한참 더 들어가야 한단다.
그 날 밤(7월 21일)에 우산을 빌리면서 꼭 보내주겠다고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 배낭에
넣어온 새 우산 2개를 주는 것이 그 집을 찾아가는 까닭인데 포기하고 말겠는가.
섬진강길에 나설 때 배낭 옆주머니에 펴보지도 않은 새 우산을 넣고 갔다.
그동안 비가 오지 않아 챙지지 않았다가 정작 필요해서 꺼내려니까 어찌된 일인지 없다.
결국, 샤워하고 식사하고 우산까지 빌리게 된 것이다.
다행스랍게도 그 집 입구 골목에서 부인을 만나 약속은 지켰으나 귀로가 문제였다.
인심과 달리 대중교통은 여전히 열악한 지역인데다 도로 사정에 어둡기 때문이었다.
드물게 있는 군내버스를 타기 어렵게 된 상황인데 한 청년의 도움으로 해결되었다.
부인의 걱정을 알아차린 마을 정자의 한 할머니가 당신의 아들에게 당부하여 순창군청
소재지 시외버스터미널까지 달려줌으로서.
참으로 고마운 인심이다.
(부인은 우산 하나를 그 할머니에게 드리겠다고 했는데 2개 가지고 가길 잘 한 것 같다)
순창에서 칠보로 가는 길은 3개다.
가장 확실한 코스는 가장 멀리 돌아가는 정읍 경유(환승)의 길.
강진(임실)은 최 단거리지만 가장 불확실한 길인데도 나는 서슴치 않고 강진을 택했다.
환승편이 여의치 않을 경우 내 최고의 장기(히치하이킹)를 발휘하기 위해서.
강진에 도착했으나 과연 강진 발 칠보 행 버스를 타려면 2시간 반을 대기해야 한다.
터미널의 여러 사람이 제시하는 여러 방안중 맘에 드는 것이 하나도 없다.
PC방 가는 것 외에는 없는데 PC방이 없기 때문이다.
아침에 걸었던 길은 칠보 왕래의 외길이다.
거기까지 1km정도만 걸으면 된다.
그 외길에서 히치하이킹에 들어갔다.
곧 그랜져의 너른 뒷자리를 차지하고 팔도의 산 얘기 나누는 사이에 내 자가용인 듯 내
목적지 남전마을 입구에서 내렸다.
행운중 행운으로, 이 차는 칠보에서 신설 내장산 길을 따라 정읍으로 가는 중이었는데
남전마을은 그 도중에 있으니까. <계 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