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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치와 나무
서화면 서화리 서성초등학교
김 영 성
까치 한 마리가 날아갑니다.
가다가 쉬고 이곳저곳 기웃 거리며
세상 구경을 합니다.
까치는 눈앞에 서 잇는 큰 나무를 보았습니다.
"나무야, 넌 참 불행 하구나 나처럼 이렇게 세상 구경도 못하고"
그 말에 나무가 말했습니다.
"너야 말로 불행하구나. 애써 힘들게 돌아다녀야 하다니……
난 이렇게 가만히 서 있어도 넓은 세상을 한눈에 다 볼 수 있단다."
하늘로 가는 무지개
상동1리31-9 인제남초등학교
김 대 원
무지개 무지개
하늘과 땅을 잇는 다리
한번만 이라도 건너고 싶은
무지개다리
그 무지개다리로
하늘에 있는 할머니
하늘에 있는 외할아버지
꼭 만나고 싶다.
하늘과 땅을 있는 다리
아무나 갈수 있는 다리
그런 다리가 되면 좋겠다.
그 다리로 보고 싶은 사람
꼭 만나고 싶은 사람
만나고 보고 그러면 좋겠다.
사람들의 꿈과 희망을
실어다 주는 무지개면 좋겠다.
중등운문 장원
편 지
극동연립 A동 109호 인제고등학교
정 애 진
<우리가 잃어버린 그 어떤 것.>
서랍을 뒤지다가 찾은
옛 친구의 고운 편지 한 장
반듯하게 접힌 봉투 속에서
잊혀진 친구의 소리 없는 음성이
끝없이 새어나왔다.
어린 날의 비누 냄새가 났다.
"안녕"으로 시작된 소녀의 인사가
먼 곳으로 나를 이끌고
그 곳에서 나를 부르는
해맑은 아이들의 미소를 보았다.
어린 날의 비누 냄새가
더 짙어져갔다.
나의 손을 조심스레 내밀었을 때
먼 곳에서의 회상은
그렇게
"안녕"으로 끝이 났다.
차디찬 서러움이 눈가를 스친다.
바쁜 일상에 지쳐
숨을 허덕이고 있는 사이
내 안의 어린 민들레 한 송이는
홀로 남아 말라죽어버렸다.
인터넷의 두터운 숨결 속에
종이를 보듬는 애틋한 손길은
이내 눈을 감고 말았다.
거리의 붉은 소식통은
따스한 사람 내음새를 기다리며
오늘도 그렇게
자리를 지켰던 것일까?
빛 바랜 우체통 처럼
사람들의 아련한 추억도
메마른 일상속에
모두 수증기가 되어
하늘로 날아가버렸는지도 모른다.
그 날 저녁
한 장의 고마운 편지지는
철없는 연필자국을
온 몸으로 받아주었다.
중등운문 차상
까 치
용대1리 1493-1번지 원통중학교
최 현 도
시린 새벽의 빛이
창살 어루만질 때
까치는 푸른창공 마주한다.
붉은 해가 중천에 떠올라
만물을 쓰다듬을 때
까치는 그 붉음을 가슴으로 안는다.
서녁이 붉은 황홀함으로 물들 때
까치는 그 황홀함 밟고 올라서서
붉음을 날개로 느낀다.
어두운 하늘아래
탐스런 달덩이 떠올라
만물을 지그시 바라볼 때
까치는 두 눈에 달빛을 품는다.
소박한 까치의 일상 속,
자연을 닮아가고 있다.
일반운문 장원
봄의 전령
천도리 천도A가동 303호
김 다 인
배꽃잎 떨어지듯 언니는 떠났다.
세상 봄 열기도 전
금계답에 절여저 여섯 살 어린 목숨 줄 놓았다.
일눈 연두색 틔울때면
가슴 저 편 하늘새 한 마리
어머니 눈물에서 그럼거린다
저 여리고 고운 꽃송이가 돋는
봄날, 눈뜨는 새벽에
낵서도 그녀는 꽃길로 날아 오른다.
일반운문 차상
황혼 무렵
원통 1리 3반 737번지 원통중학교 관사 2호
엄 진 희
푸름이 저물어 감을
아쉬워하던 날들이 있었습니다.
추억할 일들이 쌓여가는 일상이
서운하던 날들이 있었습니다.
그대를 알고부터
숨고르기를 배우고
흐름의 순리를 알아갑니다.
무표정으로 일관하던 얼굴에
설레임이
안타까움이
교차하게 되었습니다.
그러한 하루가 소중해졌습니다.
조바심 어린 열정 대신
고요한 평온이 내렸습니다.
당신에게 배운
아름다운 낙하입니다.
반짝 반짝이던 날들을
함께 해줘서
제 19회 박인환추모백일장 초등산문 장원
꽃 비
귀둔리 676-2 귀둔 초등학교
구 슬 빈
-봄에 만나 봄 짝꿍-
우리가 헤어진 것도 벌써 일 년이 넘었다. 아마 작년 10월이 시작 되자마자 였을 것이다. 그 친구가 떠난 날이……
작년 봄 이였다. 정확히 우리학교 개교 기념 일 날, 봄비가 주룩주룩 내리던 날에 황토색 겉옷을 걸치고 초롱초롱 순수한눈망울로 나를 바라보던 그 친구
그때 우리가 처음 만났다. 내 친구 예솔이……
우리학교에 처음 전학 와서, 많이 낯설어 하는 게 정상이지만, 다정한 목소리로 내가 다가가니 그 친구와 나는 둘도 없는 친구가 될 수 있었다. 낯설어 할까봐 나는 그 기분을 잘 알고 있었기에 다가 갈수 있었다. 충분히 다가갈 수 있었다. 그 친구, 아니 예솔이는 내가 많이 좋았던 모양이다. 물론 나도 천안에서 온 예솔이가 너무 좋았다. 사실 나를 그렇게 좋아해주던 친구는 예솔이가 처음이었고, 내가 그렇게 좋아했던 친구도 예솔이가 처음이었다. 예솔이는 참 특별한 친구, 믿음직한 친구였다. 하지만, 여리고 마음이 순수해서 상처를 아주 잘 받는 친구였다.
어느 날 이였는지 생각이 잘 나지는 않지만 예솔이와 언제 학교에 늦게 남아 놀아본 적이 있었다. 한 5시정도까지였을 것이다. 3시에 끝나 유치원 앞에 있는 벚나무 아래에서 놀았다.
개미들을 보며, 벚나무 꽃잎을 맞으며, 봄바람 살랑임을 느끼며 이런저런 서로에 대해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그때 나는 내리고 있던 꽃비가 아름다워 한마디 했다. "봄에 만나 꽃비 속에서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을 갖게 된 우린 둘도 없는 봄 짝꿍이야."곧, 예솔이도 답했다.
"빙고~! 있잖아, 조금 유치하긴 하지만 우리 약속하나 하자. 우리가 헤어지면 헤어져서도 서로 잊지 말고 전화도 주고받고 하기로 어때?"나는 당연히 약속했다. "당연하지, 우리가 보통 우정이야? 당연히 그래야지. 그리고 더 유치한데… 어른이 되어 20살이 되는 행 첫날, 자정 낮 12시 학교 앞 버스정류장에서 만나는 거야. 어때? 이 약속 잊으면 안되. 꼭!"
예솔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엄마와 두 손 꼭 잡고 귀둔 초등학교에 개교 기념 일날 처음 와서 인연이 시작된 예솔이.
우리는 그렇게 만나 요리도 함께, 숙제도 함께, 상담도 서로 하며 사이좋은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특히 우리는 서로를 가족처럼 여겼다. 또한 가족처럼 믿었다. 성격으로 보아서는 믿을 수밖에 없었다. 어쩌다 그렇게 친했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예솔이의 친구가 된 건 절대 후회하지 않는다. 우린 헤어져도 영원한 친구일 테니까…
그러나 1년도 지내지 못하고 우린 헤어지게 되었다. 잠시 함께일 뿐 이였다. 처음에는 전혀 몰랐다. 아예 이사 온건 줄만 알았는데 알고 보니 잠깐 할머니 댁에서 생활했던 것 뿐 이었다. 내가 서울에 가있던 사이 내게 "안녕, 20살 되는 날 보자"라며 전학을 갔다.
서로 아픈 눈물을 흘렸다. 이제는 다 지난일이라 아무렇지 않고 예솔이가 나를 아직도 기억하고 있는지도 알 수 없기에 연락을 잘 하지 않는다. 그러나 곧 알았다. 무조건 친구가 날 잊었다 생각하고 나도 잊으려 했으니까 말이다. 그러던 어느 날 예전 기억을 생생하게 되살리는 일이 있었다.
올해 봄날 일요일이 되어 교회에 갔고, 우리 어린이 예배가 끝나자 나는 시내로 나가 걷기 시작했다.
친구 생일선물을 사려고 나왔다.
걷고 있는데 어디서 날리는지 알수 없게, 바람이 불때마다 민들레 씨앗처럼 솜털 같은 무언가가 날아왔다. 이윽고 꽃나무에서 꽃비가 나에게로 날아왔다. 처음에는 한잎, 두잎, 점점 나를 감쌌다.
그때 작년 봄에 꽃비 맞던 기억을 떠올리 수 있었다. 예솔이와 함께 벚나무 아래에서 약속했던 그 일이 말이다. 나는 예솔이에게 왠지 모를 고마움과 미안함에 고개를 떨어뜨렸다. 나를 그렇게 믿고 좋아했는데 결국 떠났구나, 천안으로 돌아갔구나...
사실은 예솔이가 얼마동안 전화를 자주 했다.
처음에야 반가웠으나 예솔이가 자꾸 전화를 하니 귀찮아져서 안 받았다.
그리고 잠시 잊었고, 잊은 채 생활했지만 결국 다시 기억을 살렸구나. 그동안 나에게 많은 추억을 주웠는데...
오늘날도 예솔이와 자주 연락을 주고받으며 함께했던 꽃비를 떠올린다.
특히 꽃비를 맞으며 예솔이와 아주 귀한 약속을 했던 그 시간을 말이다.
초등산문 차상
무 지 개
귀둔리 676-2 귀둔 초등학교
최 청 림
-쌍 무지개 만들기-
비가 후두둑 후두둑 내리고 비구름이 다른 곳으로 이동합니다. 무지개 요정은 헛둘 헛둘 이동하면서 무지개 만들 곳을 정합니다 "이쪽으로 해야 돼." "아니야, 여기에다 해야 돼."만들 곳을 찾다가 좋은 곳을 발견했어요. "길이는 이 만큼 하자." "아니야, 이정도 해야 돼." "구름길이 만큼 해야지."빨강, 주황, 노랑, 초록, 파란, 남색, 보라색 페인트를 가져와서 열심히 칠했어요. "얘들아 비구름이 비를 내리고 간다는 소식이 있단다. 부탁한다."
"오 마이 갓!!"
"다른 얘들에게 맡기자!"
"옳소!"
"문제가 있어."
"뮌데?"
"걔네 무지개 못 만들잖아!! 그냥 가자."
말하고선 쓩 하고 날아가서 비 구름이 가기만을 기다리고 있는데… 하루가 지나가서야 갔어요. 괜히 기다린 요청들은 대충 만들고 알려준 요정에게 갔어요.
"이게 뭐예요? 괜히 24시간만 기다려서 힘들단 말이에요. 이제 우리는 1주일이나 쉬울 테니 알아서 하세요!"
화가 난 요정들은 집에 가서 침대에 누워 낮잠을 잤어요. 1주일 후…
비가 오자 무지개 만들러 가는데 도착을 하자 무지개 만드는 방법을 잊었어요.
"만드는 방법이 뭐였지? 으악! 모르겠어. 아는 요정 없어? 없냐구"
"그냥 구름에 다리를 놓고 빨, 주, 노, 초, 파, 남, 보를 색칠하면 되지 뭐."
"근데 삐뚤다."
"그냥 해."
무지개를 본 사람들이 외쳤어요.
"야, 무지개를 만드는 요정아, 너는 그깟 무지개 한 개도 못 만드냐? 바보 아냐?" 요정회장이 무지개를 만든 요정을 불러 이제 무지개를 못 만들게 했어요.
"이제 어떡하지?"
"무지개 만드는 연습을 해서 다시 만들게 하자."
"그래!" 1주일간 열심히 연습해서 회장한테 보여주자 감탄하며 다시 등록해주었어요.
"만세!" 기쁜 마음도 잠시, 이곳저곳 슝 하면서 가야했어요.
한숨만 쉬고 회장이 바쁜걸 보고 휴가를 주고 휴가 날은 알아서 했어요.
요정들은 휴가 날을 어떤 모양의 무지개를 만들까 고민을 했어요.
휴가 동안 고민한 요정들은 열심히 머리를 맞대어 멋진 쌍무지개를 만들어 냈습니다.
그것을 보고 요정 회장은 너무나 기뻐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쌍 무지개가 생겨났습니다.
중등산문 장원
엄마의 편지
원통 6리 1반 원통중학교
김 은 혜
파란 물감이 당장이라도 뚝뚝 떨어질 듯한 하늘이 펄쳐져 있던 가을날의 일이다.
평소처럼 온 집안을 돌아다니던 내 눈에 엄마의 빛바랜 사진첩이 들어왔다.
오래된 필름마다 엄마의 즐거웠던 순간들이 담겨져 있었다.
흑백 사진속의 엄마는 해밝은 웃음을 머금고 있었다.
그렇게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르고 사진을 보던 중 낡은 편지봉투가 눈에 띄었다.
노란색 편지 봉투 안에는 반듯하게 접힌 종이쪽지가 들어있었다.
‘당신을 만나면서 나에게 많은 일이 생겼다오, 힘들던 직장생활도 즐겁고, 따분했던 주말도 그대 생각으로 괜히 흐뭇해집니다. 나를 만나주는 당신께 감히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모든 내용을 다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구구절절하던 편지의 그 정성어린 느낌과 단정한 글씨는 또렷이 기억하고 있다.
난 그 편지를 들고 겁도 없이 아빠에게 내밀었다.
아빠는 얼굴을 벌겋게 붉히시면서 연신 허허하면서 웃으셨고 그 곁에 서있던 엄마는 빨개진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싸 쥐시기만 할 뿐 별다른 말씀이 없으셨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건대, 아빠도 내심 기쁘셨던 것 같다.
오래전 보낸 사랑의 편지를 아직도 간직하고 계신 엄마에게 고마운 마음도 들었으리라 생각해본다. 엄마가 아직도 아빠를 사랑하고 있다는 무언의 증표였을 테니까 말이다.
편지는 단순히 서로의 안부를 묻는 것이 아니다. 편지는 한 사람의 추억과 사랑을 담아놓을 수 있는 또 다른 가슴이기 때문이다. 종이쪽지가 아닌 또 하나의 가슴이기 때문이다.
그 사람에 대한 나의 마음이 깃들어 있는 것이 편지다. 그 편지를 간직한다는 건 그 사람에 대한 마음을 간직한다는 것과 다를 게 없다.
오래전 친구의 편지를 보면서 그 옛날의 즐거웠던 친구와의 추억들을 떠올려 보기도 하고, 엄마의 긴 편지를 읽으면서 눈물짓기도 하고, 아빠의 무뚝뚝한 편지에서 따뜻한 마음을 느껴보기도 한다. 아무리 오래된 편지라도 그때의 기억을 느껴볼 수 있다.
행복했던 기억들도 슬펐던 기억들도 생생하게 느껴지기 마련이다.
지금도 그때의 편지 이야기를 꺼내면 엄마, 아빠 모두 껄껄 웃으신다.
예전처럼 부끄러워하지도 않고 웃으신다.
편지에 그려져 있던 아빠의 마음과 편지를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던 엄마의 정성이 서로의 마음속에서 움튼 것은 아닐까?
중등산문 차상
무기수의 편지
서화면 천도2리 598-1 원통고등학교
한 경 애
영화에서나 나올법한 일이 나에게도 일어났다.
정확히는 우리 아빠에게 얼마 전 학교를 마치고 돌아 온 나는 아빠 책상 위에 얌전히 올라와있는 새하얀 편지봉투를 발견했다.
그 위에 쓰인 수줍은 글씨, 「한기동 목사님께.」딱딱한 공문이나 초대장만이 자리를 차지하던 그 곳에 사람 손으로 쓴 (그것도 꽤나 정성스레 쓴 흔적이 보이는) 편지가 올라와 있는 건 오랜만이었다.
‘누구지? 혹시 아빠 첫사랑이라도 되나?’ 궁금한 마음이 삐죽 고개를 내밀었을 때 이미 내 눈은 몰래 편지를 읽어 내려가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갑작스런 편지에 놀란 건 아니신지 모르겠습니다.’
상투적인 인사로 시작 된 편지는 놀라운 내용을 담고 있었다.
게다가 편지를 보낸 사람은 아바의 첫사랑도, 친구도 아닌 감옥 생활을 하고 있는 무기수였다.
그는 감옥 안에서 본 기독교신문에서 우연히 아빠를 알게 되었고, 고민 고민 하다가 펜을 든다고 했다. 그는 망설이는 듯한 문체로 고백하고 있었다.
자신은 용서받을 수 없는 일을 저질렀노라고, 한 사람의 생명이 자신의 손에 의해 사라졌노라고……. (이 대목을 읽을 땐 순간적으로 움찔했다.) 그러나 그는 캄캄한 침묵만으로 둘러싸인 감옥 안에서, 모두에게 외면당한 자신에게 손 내미는 한줄기 빛, 예수님을 발견했다고 했다.
자기 같은 사람의 죄까지 대속하기 위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그 분의 사랑을 알게 된 그는 끝없는 절망 속에서 헤어 나올 수 있었고, 평생 그분을 섬기며 살아갈 수 잇도록 아빠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있었다.
편지를 다 읽고 흥분해 아빠에게 달려간 나는 어서 답장을 쓰라고 재촉했다.
그 후로 지금까지 그와 아빠의 편지는 계속되고 있고, 오히려 아빠보다 내가 더 설레며 기다린다.
이런 사람이 어떻게 그런 죄를 지었을까 싶을 정도로 그의 편지는 순수함이란 담어를 떠올리게 한다.
어린아이 같은 어투로 그간 있었던 일을 엄마에게 말하는 듯한 편지는 읽는 내내 가슴이 따뜻해진다.
비록 평생을 어두운 그 곳에서 살아야 하지만, 그는 죄를 뉘우치고 밝은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최근에는 정성스레 쓴 성경필사(성경을 손으로 옮겨 쓰는 것)를 보내오기도 했다.
감옥에서 온 편지, 그것도 무기수가 쓴 편지는, 앞으로 세상에 나와 눈부신 햇살에 눈가를 찡그려 볼 기회가 없을지도 모르는 주인 대신에 그이 소식을 이곳에 전한다.
그런 편지를 내가 항상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그가 알리 만무하지만, 그 특별한 편지를 읽으며 나는 오늘도 언젠가는 그가 세상에게도 죄를 용서받고 환한 햇살 아래로 나올 수 있기를 기도한다.
일반산문 장원
황혼의 무렵
부재: 어머니의 황혼
덕산리 3821-02부대
최 영 복
황혼 무렵 내가 이 시제를 접했을 때 문득 어머니가 생각났다.
19세에 젊은 나이에 시집을 오셔서 고생만 하신 어머니 문득 추석에 어머니를 찾아 뵈었을 때 전에 안보이던 주름살과 문득 드문드문 드리운 머리에 핀 흰 꽃들이 나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아이들이라곤 하나뿐인데 돌이켜 보면 효도다운 효도 한번 하지 못한것 같아 맘이 무거워진다.
어릴 적에 폐렴이여 천식이며 감기를 1년 내내 달고 살아 어머님의 맘을 아프게 하고 청소년기에는 집 떠나서 공부 한답시고 용돈 붙여 달라 떼쓰고 친구들과 싸워서 학교로 불려 오시면서도 아들 래미 돈 없으면 기 죽는다 용돈 챙겨 주시던 어머니 그때 왜 몰랐을까?
집안이 어려워지고 아버님의 당뇨병이 점점더 심해 졌음을 매일 다투시는 부모님이 싫어 휴일에도 집에 내려가지 않았던 아들이 홍역에 걸렸을 때 구미까지 한걸음에 달려오셔서 1주일간 병수발을 드시며 고생하셨을까?
결국에 아버지는 돌아가시고 늘 사이가 좋지 않으시던 어머닌 집을 나가셨다.
그 후로 내 나이 22살이 되던 해 까지 어머니의 소식을 듣지 못했었다. 간간히 친척들에게서
"통영에서 재혼해 잘 살고 있다" 라는 말만 들을 뿐 그게 다였다.
그러나 내가 부사관으로 입대하기 전 작은아버지의 도움으로 통용의 한 휴게소에서 일하고 있던 어머니를 볼 수 있었고 아무 말 없이 그저 바라보기만 했었다.
내가 처음으로 한말이 이거였지 싶다.
"왜 아버지 장례식에 안왔어?"
어머닌 "아버지가 죽도록 싫어서 그래서 안 왔다" 는 것 그동안 어머님은 아버지의 구박에 못 견디어 집을 나가신 것이였다.
하지만 20년 넘게 같이 산 정이 있어 어머닌 그날 아버지의 묘 앞에 서럽게 우셨다.
내 평생 어머니가 그렇게 서럽게 우신 걸 본적이 없는 것 같다.
어머닌 전화번호를 적어 주시며 휴가 나오면 꼭 연락하라고 하셨다.
그 후로 난 입대를 했고 6달의 교육을 받고 임관식을 하는 날 어머니와 함께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씩씩한 아들을 두어서 기쁘시 다며 눈물을 흘리실 때 처음으로 어머니의 눈물을 닦아 드리며 난 다짐했다.
"이제껏 저에게 쏟으신 정과 사랑 만분의 일이라도 갚겠다고'
이제 입대를 한지 2년이 넘었다.
그동안 우리 모자는 예전처럼 행복해 졌으며 여전히 난 어머님의 사랑을 받으며 군 생활을 하고 있다.
가을날 붉게 물들며 아름답게 지는 황혼의 햇볕처럼 우리 모자도 이렇게 아름답게 살아가고 있다.
일반산문 차상
봄의 전령
덕산리 사서함 100-22호 제 3821-021부대
박 호 식
누구에게나 겨울이 있다. 절기의 끝자락 어디쯤에 있는 입동으로 시작하여 입춘이 되기 전까지의 겨울. 그리고 시련과 고민, 방황의 날들로 채워지는 ‘인생의 겨울’이.
겨울의 혹독함을 말하라고 하면 보통은 전자에 관해 이야기하기 마련이지만, 후자의 겨울도 그리 녹록치만은 않다.
오히려, 집이라는 안식처가 예비 되어 있기에 돌아오면 언 몸을 녹일 수 있음을 알고 있는 겨울보다는 인생의 겨울 쪽이 더 혹독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잘 알려진 일화 중, 바둑판에 관련한 이야기가 하나 있다. 2등급의 목재를 사용해 만든 바둑판의 표면에 균열이 생겨 그대로 창고에 넣어두었는데, 창고 안에서 몇 년간의 시간을 보내게 한 뒤에 꺼내니 균열은 나무의 재생력으로 인해 사라져 있었고, 보니 2등급이었던 바둑판은 그 재생력을 인정받아 1등급의 바둑판이 된다는 이야기이다.
이 바둑판의 경우에는 제작 중에 균열이 생긴 것도 몇 년간의 시간을 창고 안에서 보내게 된 것도 바둑판이 겪어야 했던 삶의 겨울인 셈이다.
이 이야기가 비단 바둑판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님은 누구라도 알 것이다.
한 인간을 성숙시키는 데 있어 삶의 겨울은 중요한 역할을 한다.
겨울의 혹독한 눈보라를 견뎌 낸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것이 봄의 따뜻함이듯.
비록 언제 끝날 지 알 수 없어서 사람을 더욱 지치게 만들지만, 겨울을 인내하는 자에게 봄은 반드시 찾아온다.
계절로서의 봄이 왔음을 알리는 전령들은 여러 가지가 존재한다.
개나리부터 시작해서 겨울잠에서 깨어난 개구리까지.
그러면 삶의 겨울이 지나고 봄이 왔음을 알려주는, 또 하나의 봄이 전령에는 무엇이 있을지 한번 생각 해 본다.
내가 가장 최근에 맞이했었던 겨울은, 2년 전이었다.
시험을 보고 대학에 들어갔지만 적성에 맞지 않는 전공 공부에 벽을 느끼고 학교 밖으로 겉돌기를 몇 달. 결국 나는 한 번 더 시험을 보기를 선택하게 되었다.
처음에 생각하던 것 이상으로 고된 시간들이었다.
고등학교에서 3년 내내 하던 것과 정 반대 성격의 공부를 1년 만에 마쳐야만 했기에 더욱 그랬었다.
그 중에서도 여러 번의 방황과 좌절감을 맛봐야 했었지만, 시간이 지난 지금 돌아켜 보면 그 때의 시간들이 지금의 나를 있게 했다는 생각이 든다
언제 끝날지 모를, 인생의 첫 번째 겨울. 그 겨울이 끝나고 봄이 왔음을 알린 봄의 전령은 우습게도 한 통의 문자 메시지였다.
내가 목표로 하고 있었던 곳에 합격했음을 축하한다는, 두 줄여의 짤막한 문장. 그 마법 같은 두 문장에 의해 내게 찾아온 첫 번째 겨울은 그렇게 끝을 맺었다.
내 인생에서 첫 번째로 마음에 봄을 안겨준, 첫 번째 봄의 전령이었다.
꼭 봄의 전령이 꽃이나 동물일 것은 없는 법이다. 각자에게 ‘겨울’이라는 단어ㅏ 주는 이미지는 다를 수밖에 없으니까.
하지만 겨울을 견딘 자에게 주어지는 것이 봄이니만큼, 누구라도 겨울을 견디면 봄이 온다. 그렇게 봄이 찾아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