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 짚어 큰 그림 그릴 줄 아는 인물
이건희 전 회장이 인정한 ‘준천재’ … 냉철하지만 선 굵은 리더십 발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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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6년 대구 출생 경북고, 서울대 전자공학과 졸업 1968년 삼성전관(현 SDI) 입사 1985년 반도체 기흥공장장 1989년 반도체 기흥연구소장 1994년 반도체총괄 사장 2005년 기술총괄 겸 대외협력담당 부회장 2007년 대외협력담당 부회장 2008년 5월 삼성전자 대표이사 부회장 | |
포털사이트 네이버에서 ‘이윤우’란 이름을 검색하면 메인 화면에 금융인 ‘이윤우’가 뜬다. 그 옆 작은 창에는 동명이인으로 건설회사 사장인 ‘이윤우’가 나온다. 정작 검색하고 싶은 사람은 삼성전자의 신임 CEO인 이윤우 부회장인데 말이다. 매출 63조원, 순이익 7조5000억원(2007년 기준)을 낸 한국 최고의 회사 삼성전자 CEO는 국내 최대 포털사이트인 네이버에서조차 한 번에 ‘뜨지 않는’ 사람이 선임됐다. 그만큼 의외라는 뜻이다. 하지만 전자업계, 특히 반도체 업계에서는 ‘삼성전자 이윤우’라는 이름을 먼저 떠올린다. 삼성전자 반도체 부문에서 오래 근무한 전직 고위임원은 “김광호 전 삼성전자 부회장이 한국 반도체 산업의 뼈대를 만든 사람이라면 이윤우 부회장은 그 뼈대에다 살을 붙인 사람”이라고 평가했다. ‘황의 법칙’으로 유명한 황창규 기술총괄 사장이나 또 다른 반도체 스타 CEO인 진대제 전 장관 등도 모두 이윤우 부회장이 반도체총괄 사장으로 있을 때 삼성전자에 합류했다. 그만큼 인재 영입이나 후임 육성에 남다른 안목이 있다는 얘기다. 진대제 전 장관은 “이 부회장의 집념과 노력을 통해 삼성전자가 세계적인 반도체 기업으로 컸다”고 평가했다. 삼성전자 출신인 최진석 하이닉스 부사장은 “반도체 업계의 리더 중 전공정(연구개발)과 후공정(생산)을 아는 거의 유일한 사람일 것”이라고 말했다. 첨단 전자산업이면서 대규모 설비투자 산업인 반도체의 특성상 연구개발과 생산은 새의 양 날개와 같은 역할을 한다. 하나라도 제대로 안 되면 경쟁력이 생길 수 없다. 이 부회장의 약력을 보면 기흥공장장과 기흥연구소장이 함께 기재돼 있다. 생산과 연구를 두루 경험했다는 뜻이다. 이윤우 부회장은 1983년 고(故) 이병철 회장이 반도체 진출을 본격 선언하면서 반도체에 투신했다. 그리고 반도체 진출 선언 10개월 만에 64KD램 반도체를 만들어냈다. 하지만 자체 기술이 아닌 이 성과에 이 부회장이나 이병철 당시 회장이 만족할 리 없었다. 그 후 채 1년이 안 된 1984년 10월 삼성전자는 256KD램을 자체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256KD램 개발 성공과 함께 이 제품의 수요가 폭증해 삼성전자의 반도체 부문은 설립 5년 만에, 이건희 전 회장이 사재를 털어 한국반도체를 인수한 시점으로는 14년 만에 처음 흑자를 기록했다. 훗날 이윤우 부회장도 “엔지니어 인생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87년 삼성반도체가 처음 흑자를 냈을 때였다”고 말할 정도다. 이후 1986년 1MD램, 1988년 4MD램, 1989년 16MD램을 개발하면서 세계시장에서 주목 받기 시작했다. 이후 93년 64MD램을 세계 최초로 개발하고, 94년에 다시 256MD램을 개발하면서 삼성전자의 반도체 사업 주도권이 확립된 것이다. 이 과정에서 삼성전자 반도체 부문을 이끈 사람이 바로 이윤우 부회장이다. 이 부회장에 대해서는 사심이 없고, 선이 굵으며, 친화력이 좋다는 평가가 한결같다. 전직 삼성그룹 출신 한 중소기업체 사장은 “특정 인맥으로 분류되지도 않고 합리적이고 온화한 성품으로 전자는 물론 그룹 내에서도 두루 신망이 높다”고 말했다. 진대제 전 장관은 “항상 아래위 얘기를 경청하는 스타일이고 중요한 일에는 변함없는 관심을 쏟고 도와주는 상사였다”고 기억했다. 이 부회장과 중·고·대학교 동창인 남상구 고려대 교수(경영학)는 “삼성전자 사장과 부회장에 있으면서도 친구들을 만나면 소탈하고, 격의 없이 어울린다. 좀 잘나가는 친구들이 뻣뻣하게 굴던 것과 완전히 다르다”고 밝혔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누구도 반대하기 어려운 인물이 선택됐다”고 말했다. 이 부회장은 그룹 내에도 따르는 사람이 많다. 진대제 전 장관과 황창규 사장 외에도 임형규 신사업팀장(사장), 김재욱 SDI 사장, 류병일 삼성전기 부사장 등과 반도체에서 끈끈한 인연을 맺었다. 함께 일해 본 사람들은 털털한 평소 성격과 달리 일할 때는 집중력과 카리스마가 강하다고 평가한다. “누구도 반대하기 어려운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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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기흥공장장 당시 이윤우 부회장. 이 부회장의 별명은 ‘돌쇠’ ‘공포의 검은 사마귀’였다. 일관성 있는 무지막지한 돌파력과 추진력 때문에 얻은 별명이다. | | 삼성그룹 고위 임원은 “기흥공장장이나 연구소장 시절 같이 늦게까지 일한 사람과 함께 퇴근할 때면 소주와 삼겹살을 먹고 헤어졌다”고 기억했다. 일할 때는 바짝 조였다가 일이 끝나면 확 풀어주는 스타일인 셈이다. 최근 2~3년간 뒤쪽으로 물러난 듯 보였지만 이 부회장의 삼성전자 생활은 화려했다. 이건희 전 회장이 일찍이 ‘삼성에는 천재급 인재는 없어도 준천재급 인재는 3명 있다’면서 예를 든 3명 중 한 명이 바로 이윤우 부회장이다(나머지 두 명은 진대제 전 장관과 황창규 사장). 이 전 회장의 눈에 준천재로 보였지만 이 부회장의 진정한 경쟁력은 일에 대한 열정과 집착에서 나왔다. 이 부회장은 83년 삼성반도체 때부터 반도체 쪽에 몸담은 이래 불모지나 다름없었던 반도체 사업의 기획, 기술개발, 시험제작, 연수, 공장 건설 등 모든 분야를 직접 개척했다. 단지 반도체 자체를 연구하고 개발하는 차원이 아니라 산업에 필요한 제반 요소, 예를 들면 설비제작, 공장 디자인, 제품 기획 등 간접 산업까지 경험한 인물이다. 삼성전자 반도체 부문에서 과장 때부터 부사장 때까지 이 부회장을 모신 류병일 삼성전기 부사장은 “한국에서 반도체를 산업으로 만든 시조라고 할 수 있다”고 표현했다. 이론으로만 있어 왔던 반도체 공장을 직접 건설하고, 반도체 양산을 최초로 시작한 주역이 바로 이 부회장이라는 얘기다. 일에 대한 그의 열정은 여러 일화가 있다. 메모리 사업 초기 그는 매일 아침 8시 회의를 열었다. 이 회의에는 당시 기흥공장장이었던 이 부회장은 물론 실무 팀장까지 함께 참석했다. 매일 8시 회의를 통해 생산과 관련된 문제점과 계획을 일일이 점검했다. 이 회의에서는 공장에서 생길 수 있는 모든 문제가 토의됐다. 이 부회장은 89년 기흥연구소장으로 갈 때까지 4년간 꼬박 이 회의를 주재했다. 류 부사장은 “회의에서 공장장이 실무진과 모든 문제를 토의하면서 해결책을 찾아냈다. 그 덕에 기흥공장이 반도체 생산의 메카로 떠올랐다”고 평가했다. 공장장 시절 그는 주말도 없었다. 당시 반포삼호아파트에 같이 산 학교 친구인 남 교수는 그를 일벌레로 기억했다. “기흥공장장이었을 때일 겁니다. 주말에도 집에 없어요. 무조건 공장으로 가는 겁니다. 근처에 학교 친구가 몇 명 같이 살았는데 ‘야, 좀 천천히 하라’고 얘기하면 ‘나는 공장에 나가 있어야 마음이 편하다’고 답했을 정도였으니까요.” ‘준천재’보다는 ‘일벌레’에 가까운 모습이다. 그가 기흥연구소장으로 가면서 기흥연구소에도 ‘8시 회의’와 비슷한 회의가 생겼다. ‘수요공정회의’로 불리는 이 회의는 일주일에 한 번 수요일에 열렸다. 이 부회장은 연구소장 시절 수요일마다 저녁 7시부터 이 회의를 주재하면서 반도체 공정에 대해 연구와 토론을 거듭했다. 당시 삼성그룹은 전 사적 차원에서 7-4제(7시 출근, 4시 퇴근)를 시행했는데 ‘수요공정회의’는 밖에서 문을 잠그고 회의를 계속했다. 진 전 장관은 “매주 강도 높게 개발 실적을 챙기는 회의를 20년쯤 해왔다는 얘기인데 이런 노력과 경영층의 관심이 오늘의 삼성반도체를 만들었다”면서 “지금까지 20년 넘게 이어지는 수요공정회의가 삼성전자 반도체사업의 경쟁력을 몇 단계 점프업시켰다는 데 많은 사람이 동의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에 관한 집중력이나 정확도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하이닉스 최진석 부사장은 “이 부회장이나 김광호 전 부회장은 반도체 업계에서 일빵빵(육군 소총수를 뜻하는 말)으로 통한다. 밑에서부터 다 거치며 온 사람들이라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삼성전기 류 부사장 역시 같은 얘기를 했다. “일에 관한 한 치밀한 분입니다. 왜냐, 본인이 기본적으로 실무를 다 알고, 밑에서부터 일을 해 왔잖아요. 보통 경영자들이 큰 얘기에 강하면 작은 것에 소홀하기 쉽고, 작은 것에 강하면 큰 그림을 놓치기 쉬운데 이 부회장은 그 둘을 다 장악했어요. 같이 일하는 부하직원으로서는 어려운 상관인 셈이죠.” 270야드 넘기는 드라이버 샷 실무경험을 통해 전체를 엮어 내는 능력이 뛰어났다는 평가다. 한마디로 실사구시(實事求是)형이면서 능소능대(能小能大)한 스타일이라는 얘기다. 삼성전자의 한 임원은 “개인적으로 만나면 너그럽고 인자한 면이 많지만 일에 관해서 엉뚱한 소리 하다간 큰일 난다”고 말했다. 이 부회장은 맥을 짚으며 큰 프레임을 잘 그리는 경영자로 평가 받고 있다. 취미인 골프에서도 그런 면은 그대로 드러난다. 이 부회장과 골프를 자주 치는 한 인사는 이 부회장의 스타일이 “정면승부와 장타자”라고 표현했다. 지금도 270야드 이상의 드라이버 샷을 구사하고 있고, 벙커나 장애물이 있어도 옆으로 피해가기보다 직접 공략하는 스타일이라고 전했다. 핸디캡은 10~13정도다. 골프 스타일에서 보듯 이 부회장은 잔기술보다 정명 승부를 즐긴다. 이 부회장의 그간 경력은 반도체 CEO에 치우쳐 있다. 한편으로는 엔지니어 사장의 전형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향후 삼성전자가 마케팅보다 기술개발, 기술경영 중심으로 바뀔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 전임자인 윤종용 부회장이 생활가전과 PC 등 세트제품 마케팅에서 잔뼈가 굵어 삼성이라는 브랜드를 세계에 알리는 마케팅 위주 전략을 펼친 것과 차별되는 부분이다. 하지만 사업부를 책임지는 자리에서는 주특기가 경영능력과 직결되지만 삼성전자라는 거함을 이끄는 선장으로선 기술자 이상의 무엇이 필요하다. 이 점에서 이윤우 부회장의 능력이 다시 한번 발휘될 수 있을지 관심사다. 특히 반도체 아닌 다른 사업부문에 대해 어떻게 컨트롤할지 주목된다. 일부에서는 “과거 이건희 회장-윤종용 부회장-총괄 사장으로 이어지던 일사불란한 라인과 달리 이번에는 각 총괄이 자율적으로 경영하면서 이 부회장이 이를 조율하는 형태가 되지 않겠느냐”고 예측한다. 실제 유임된 총괄사장들은 재신임을 받은 셈이고, 당연히 힘이 실릴 수밖에 없다. 이번 인사 이동도 크게 보면 반도체 부문에 국한된 느낌도 있다. 하지만 삼성그룹의 특성상 위계나 보고체계가 존재하는 한 영향력이 미칠 수밖에 없는 측면이 있다. 특히 공식적 대표이사인 이 부회장의 역할이 축소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 그룹 전략기획실이 없어지면서 각 계열사 CEO의 역할이 커진 점도 새로운 환경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부회장은 최초로 삼성전자의 독립적인 CEO가 된 셈이다. 그의 행보가 주목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삼성전자 인사의 ‘초점’ |
엔지니어 중심으로 반도체 라인 교체 삼성은 5월 14일 삼성전자 윤종용 대표이사 부회장이 퇴진하고 그 후임으로 이윤우 대외협력 담당 부회장이 대표이사에 오르는 것을 포함한 계열사별 사장단 인사를 단행했다. 전체적으로 승진 3명과 보직이동 등 7명으로 모두 10명이 인사 리스트에 포함됐다. 예상보다 폭이 컸다. 이번 인사에서 이기태 기술총괄 부회장은 이윤우 부회장이 맡아온 대외협력담당으로 전보됐고, 황창규 반도체총괄 사장은 기술총괄 사장으로 옮기게 됐다. 권오현 시스템LSI사업부장(사장)은 반도체총괄 사장으로 이동했고, 임형규 종합기술원장 겸 신사업팀장은 신사업팀장만 맡고 종합기술원장 겸직이 해제됐다. 4개 사업총괄 중 유독 반도체총괄만 CEO가 바뀐 것이 이채롭다. 황 사장에겐 위기일수도 기회일수도 있다. 보통 부회장으로 한 단계 승진해 가던 기술총괄이 이번에는 사장으로 수평 이동했다. 삼성전자는 부회장급 사장이라고 말했지만 뭔가 어색하다. 재신임을 받은 나머지 3개 총괄에 상대적으로 무게를 실어준 셈이다. 특히 휴대전화 부문의 최지성 사장에게 눈길이 쏠린다. 반도체, 디지털미디어, 휴대전화를 두루 경험하면서 여전히 입지를 굳히고 있기 때문이다. 권오현 신임 반도체총괄 임명은 향후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에서 비메모리 사업부문을 강화하겠다는 포석으로 보인다. CEO인 이윤우 부회장이 메모리의 산 역사인 점을 감안하면 이 부회장이 메모리 부문에서 뒷받침할 것이라는 의견이 우세하다. 삼성전자 CEO들은 엔지니어 출신 위주로 쭉 이어져 왔지만 이번에는 특히 두드러진다. 그중에서도 반도체 라인이 돋보인다. 삼성전자가 그동안 악재를 털고 다시 본업인 기술 중심 기업으로 돌아가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 이석호 기자[lukoo@joongang.co.kr] <이코노미스트 938호> 매거진 기사 더 많이 보기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