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독일 수학 : 근대 수학 ▶19세기 수학의 특징
▶19세기 전반
▶비유클리드 기하학
▶대수학의 추상화
▶해석학의 산술화
▶19세기와 20세기에 걸친 수학자
▶3대 여성 수학자
◆19세기 수학의 특징
17세기를 새로운 수학의 창설의 시대, 18세기를 그의 발전의 시대라고 한다면 19세기는 현대에 이어지는 충실과 창설이 또 다시 계속되는 시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세기는 대체로 모든 과학이 완성의 단계를 향하여 달린 시대라 하겠다. 수학에 있어서 18세기는 프랑스인들의 활약이 두드러진 데 비하여 「19세기에 들어와서는 독일 사람들이 놀랄만한 진전을 보여주었다.」 가우스를 비롯하여 바이어슈트라스, 리만, 데데킨트, 칸토르, 클라인, 힐베르트 등이 현대 수학의 건설에 큰 소임을 담당하였다. 가우스의 정수론을 위시하여 많은 분야의 연구, 프랑스인 코시의 해석학의 연구, 헝가리의 보야이의 비유클리드 기하학의 연구, 노르웨이인 아벨의 대수학과 해석학에 대한 공헌, 프랑스인 갈로아의 방정식론, 군론에 있어서의 업적, 바이어슈트라스·리만의 해석학, 리만 기하학의 창시 등이 이 19세기 수학의 핵심부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19세기는 비유클리드 기하학의 출현으로 인한 기하학의 해방, 대수학의 추상화, 해석학의 산술화와 같이 수학에 각 분야에 있어 일찍이 볼 수 없었던 위대한 세기이다. 이 세기에는 수학의 엄밀성, 추상성, 보편성이 추구되었다.
◆19세기 전반
★ 가우스 (Carl Friedrich Gauss, 1777-1855,독일) : 아르키메데스, 뉴턴과 더불어 3대 수학자의 하나로 18세기 수학으로부터 19세기 수학으로의 전환은 가우스의 힘에 의존하고 있다.
"수학은 과학의 여왕이고 정수론은 수학의 여왕이다."라는 유명한 얘기는 가우스가 한 말이다.
그는 복소수를 진정한 수학적 대상으로 파악하고, 수학적 실재로서의 위치를 부여하였다. 또한 대수학의 기본정리인 「복소계수를 가지는 n차원 대수방정식은 적어도 하나의 복소근을 가진다.」를 일반적으로 증명하였다.
★ 코시(Augustin-Louis Cauchy,1789-1857, 프랑스): 19세기에 라그랑주와 가우스에 의해서 해석학의 엄밀화 작업이 진행되었다. 이 작업은 19세기 전반부의 가장 뛰어난 해석학자인 코시에 의하여 상당히 심화되고 강화되었다.
그는 함수론의 아버지로 변수 사이의 관계로 함수를 정의하였다. 그의 이름을 미적분학에서 코시의 근판정법,코시의 비율판정법, 복소함수에서 코시의 부등식, 코시의 적분공식으로 만나게 된다. 코시는 y=f(x)의 x에 관한 도함수를 x→0일때 다음 식을 극한으로 정의했다.
★ 아벨(Abel, 1802-1829, 노르웨이)과 갈루아(Evariste Galois,1811-1832,프랑스): 이 두 사람은 수학적 천재성을 일찍 나타내고 요절했다는 점과 동시대에는 인정받지 못했지만 후대 수학자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지닌다.
'군'이라는 추상적 개념을 방정식론의 기본개념으로 삼았으며, '군론'에 대한 연구를 통해 현대 대수학에 기여했다.
★ 야코비(Carl Gustav Jacobi,1804-1851,독일): 행렬식(determinant)라는 용어를 사용했으며, 행렬식 이론에 기여 하였다.
◆비유클리드 기하학
유클리드의 제5공준인 평행선 공준(「직선 밖의 한 점에서 이 점을 지나 주어진 직선과 만나지 않는 직선을 꼭 한 개 그을 수 있다」)과 삼각형의 세 내각의 합이 180°라는 사실은 동치이다.
이 평행선 공준은 너무 복잡하여 마치 정리처럼 보인다. 그래서 옛날부터 증명이 시도되었으나, 만족스러운 증명은 나타나지 않았다. 마침내 입장을 바꾸어 이 공준을 부정하였을때의 모순점을 찾아내는 간접증명법을 써 보았더니, 그 결과는 엉뚱하게도 모순이 일어나기는 커녕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명제(=정리)가 쏟아져 나왔다. 그리하여 이것들을 하나로 엮으면 유클리드 기하학과는 또 다른 새로운 기하학의 체계가 이루어진다는 것을 알아냈다.
★사케리(Girolamo Saccheri, 1667-1733): 사케리는 자신의 예각가설, 직각가설, 둔각가설이 모순에 이른다는 것을 보이려 했으나, 모순을 찾아낼 수 없었음을 인정했기 때문에, 오늘날 논란의 여지없이 비유클리드 기하학의 발견자로 인정받을 수 있었다.
★로바체프스키(Nicolai Ivanovitch Lobachesky,1793-1856): 로바체프스키와 보야이(Janos Bolyai,1802-1860)는 평행선 공준이 정리가 아니라 공리임을 밝힘. 평행선 공준을 「직선밖의 한 점에서 이 점을 지나 주어진 직선과 만나지 않는 직선을 무수히 많이 그을 수 있다」로 바꾸어서 모순이 없는 새로운 기하학을 전개했다.
★리만(Georg Friedrich Bernhard Riemann,1826-1866):평행선 공준을 「직선 밖의 한 점에서 이 점을 지나 주어진 직선과 만나지 않는 직선은 없다」로 변형하고 모순없는 기하학을 전개했다.
리만의 수학은 엄밀성, 추상적 일반화의 특성을 지니고 있으며 기하학과 공간의 다양화를 가져왔다.
★클라인(Felix Klein, 1849-1925, 독일) : 1871년 유클리드 기하학과 비 유클리드 기하학을 분류하였다.
분 류
유클리드 기하학
비유클리드 기하학
포물선 기하학
쌍곡선 기하학
타원 기하학
직선 위의 한점을 지나는 평행선의 개수
한 개
무수히 많음
없음
삼각형의 내각의 합
180°
180°보다 작다
180°보다 크다
비유클리드 기하학의 의미는 가능한 기하학이 오직 하나만 존재한다는 생각에서 자유로워진 것으로 인공적 기하학의 창시로 인해 기하학은 실제적인 물리적 공간에 얽매일 필요가 없음이 명백해졌다.
◆대수학의 추상화
★해밀턴(William Rowan Hamilton, 1805-1865, 아일랜드) : 유클리드 기하학이 그러했듯이 19세기 초까지 산술 대수학만이 유일한 대수학으로 간주되었으나, 곱셈의 교환법칙이 성립되지 않는 새로운 대수 체계가 고찰되었다.
해밀턴의 사원수(4중 순서수) - 덧셈의 교환·결합법칙, 곱셈의 결합 결합·분배법칙을 성립하나 곱셈의 교환법칙은 성립하지 않음.
★ 케일리(Arthur Cayley, 1821-1895, 영국): 또 하나의 교환법칙이 성립하지 않는 대수인 행렬대수가 1857년 영국의 수학자 캐일리에 의하여 고안되었다.
★부울(George Boole, 1815-1864, 영국): 부울은 수학의 본질적인 특성은 내용보다는 형식에 존재하며 수학은 단지 "측정과 수의 과학"이 아니라, 보다 폭넓게 그 기호에 대한 정확한 연산법칙에 따르는 기호와 내적인 무모순성만 요구하는 법칙으로 이루어진 연구라고 주장하였다.
그는 형식논리와 오늘날 부울대수라 알려진 집합의 대수인 새로운 대수학을 확립하였다. 최근에 부울대수는 전기 스위치 회로이론 등과 같은 수많은 분야에 응용되고있다.
◆해석학의 산술화
해석학 기초의 보다 더 깊은 이해에 대한 요구가 1874년 현대해석학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독일의 수학자 바이어슈트라스에 의하여 도함수를 가지지 않는 연속함수, 즉 그 위의 어떤 점에서도 접선을 가지지 않는 연속인 곡선의 예가 발표되면서 나타났다.
극한, 연속성, 미분가능성에 대한 이론은 실수계의 성질에 의해 좌우된다. 따라서 바이어슈트라스는 그 속에서 먼저 실수계 자체가 엄밀하게 되어야 하고, 그런 다음 모든 해석학의 기초 개념이 이 수체계로부터 유도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프로그램을 주장했다. 해석학의 산술화(arithemetization of analysis)로 알려진 이 주목할 만한 프로그램은 어렵고 복잡한 것으로 밝혀졌으나, 바이어슈트라스와 그의 제자들이 마침내 실현시켜서 오늘날 모든 해석학의 이론은 실수계를 특징 짓는 공준집합으로부터 논리적으로 이끌어 낼 수 있다.
◆19세기와 20세기에 걸친 수학자
19세기와 20세기에 걸쳐서 살았고, 현재 수학의 많은 부분에 상당한 영향을 끼친 두 수학자, 칸토어와 푸앵카레에 대하여 간단히 살펴보고, 무한에 관한 칸토어의 수학에 호되고 사정없는 비평을 가했던 크르네커에 관하여 알아보자.
★칸토어(G.F.L.P. Cantor, 1845 - 1918, 러시아→독일) : 1874년에 집합론과 무한이론에 관한 혁명적인 연구를 시작하였다. 이 후자의 연구로, 칸토어는 수학 연구의 완전히 새로운 분야를 창조하였다.
무한집합을 농도에 따라 분류하였으며, 두 집합 사이에 일대일 대응이 가능하면 같은 수의 원소를 갖는 것으로 간주하였다.
가산집합 : N ∼ Z ∼ Q, 비가산집합 : (0,1) ∼ R
오늘날, 칸토어의 집합론은 거의 모든 수학 분야에 스며들었고, 위상과 실함수론의 기초에서 특히 중요하다는 것이 증명되었다.
★크로네커(Kronecker, 1823 - 1891. 독일) : 유한론자로서 그는 칸토어의 논문은 수학이 아닌 신학으로 간주하여 비난하였다. 모든 수학은 수 전체에 대한 유한한 방법에 의존해야만 한다고 믿은 그는 19세기의 피타고라스였다.
그는 '신은 정수를 만드셨고, 나머지 수는 모두 사람이 만든 것이다'라고 하였다.
★ 푸앵카레(Jules Henri Poincare, 1854- 1912, 프랑스) : 그는 수학 분야에서 전반적으로 능통한 마지막 학자로 묘사되고 있다. 확실히 그는 이 분야의 놀랄만한 영역에 능통했고 발전시켰다.
그는 또한 수학과 과학을 대중에게 보급시키는 데 가장 능력있는 사람 중의 한 사람이었다.
◆3대 여성 수학자
★히파티아(Hypatia) :4세기 말에 살았던 테온(Theon)의 딸 히파티아는 수학, 의학, 철학 분야 등에서 이름을 떨쳤는데 디오판투스의 <산학>, 아폴로니우스의<원추곡선론>에 대한 주석집을 쓴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녀가 바로 수학사에서 등장하는 최초의 여성수학자이다.
★소냐 코발레프스키(Sonja Kovalevsky, 1850 - 1891, 러시아) : 바이어슈트라스의 제자로 편미분 방정식 분야에 기여하였다.
★에미 뇌더(Amalie Emmy Noether, 1844-1921, 독일) : 일반적으로 여성 수학자 중에서 가장 위대하다고 여겨지는 뇌더는 가난한 강사였고 교수법도 부족했지만, 추상대수학 분야에 족적을 남긴 놀랄 만한 숫자의 학생에게 영감을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