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일어나 현관문을 여는 순간 붉게 타오르는 햇살은 구름 사이로 두둥실 이리 저리 떠돌아 다니는 빛의 그림자 사이로 가는 인생길에 곱게 스치는 바쁜 일상에서 잠시 모든 것을 뒤로 한 채 가치있는 인생에 대한 생각에 잠긴다.
2024/10/13일 (목욜) 제네시스로 출발 금정Ic를 지나 애마는 경부고속도로를 출발한다.음악이 흐르는 동안 비몽사몽 그리움의 유혹속으로 빨려드는 시간이 반복되는 동안 애마는 포항 크루즈 선착 장에 안착
애마는 크루즈 선착장에 주차하고 택시로 스페이스워크까지 이동한다. 우왕 계단을 오를때도 스릴만점 감탄시가 절로 나온다. 흔적을 남기며 오른다. 에궁 오버행구간을 오르려고 했지만 출입금지라는 단어가ㅋㅋ 군침만 삼킨다.T_T
건너편에는 포항제철소가 있는 해안도로 따라 가면서 천진난만하게 행동으로~ 이후배가 준비해온 간식 삼각김밥을 배급받아 쉼터가 있는곳마다 행동식으로 충전을한다.^^
박정희 대통령은 포항제철소 설립을위해 차관을 해야 하기위해 관계자들은 모래 사장을 후보지로 정해알리자 외국의 관계자들은 난색을 표현 했다고 합니다. (손으로 머리부분을 빙글빙글 돌리면서)
위대한 박정희 대통령은 포항제철을 박태준과 포철을 기적을 일으킨 박태준은 상식을 초월한인물입니다.
포항제철 건설의 중책은 대한중석 사장이던 박태준에게 맡겨졌다. 그는 자금 조달을 위해 국제금융기관을 접촉했으나 퇴짜를 맞기 일쑤였다. 당시 후진국이었던 한국의 제철업계 진출에는 회의적인 시각이 압도적 이었다. 세계은행은 채산성이 없다고 판단했고, 그러자 믿었던 국제제철차관단(KISA)도 등을 돌렸다.
낙담한 박태준은 귀국길에 하와이에서 대일 청구권 자금 1억 달러를 포항제철 건설로 돌리자는 아이디어를 생각해 냈다. 이 자금은 원래 농수산 지원 용도였기 때문에 국내에서도 반대가 극심했다. 하지만 박 대통령은 이 아이디어를 밀어붙였다. 마침내 꾸준한 로비로 일본 제철업계의 기술 지원까지 확보한 후 1970년 제철소 건설이 시작됐다.
박태준은 1205억 원이 투입된 공사를 성공 적으로 이끌었다. 마침내 1973년 6월 9일 첫 쇳물이 용광로를 타고 흘렀다. 준공식에서 박 대통령은 "포항제철소는 우리 민족의 땀과 눈물로 이룩된 위대한 성과이며, 단순한 제철소의 준공이 아닌 한국 경제 발전의 새로운 출발점을 의미한다"고 강조했다. 포항제철은 준공 첫해 순이익 1200만 달러(약 46억 원)를 달성했다. 가동 첫해부터 흑자를 낸 세계 유일의 포항제철은 이렇게 한국 경제 도약의 신호탄을 쐈다고 합니다.
죽도시장에서 포항물회로 민생고를 해결하구 부산으로 돌아오는 차안에는 삼총사의 아름다운 인생은 방랑이고 여행이고 우리생애 가장 소중했던 시간속에 가족의 품속으로 달려간다.
이별 언젠가는 사랑하는 사람도 가버리는 날이 오겠지 언젠가는 미워하는 사람도 가버리는 날이 오겠지 사랑도 미움도 가고있구나 가서는 돌아오지 못할 길 속에 서있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