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의 어느 여름날, 집에 돌아와 보니 어른들은 아무도 안계시고 누렁이만 꼬리쳐 반깁니다. 아버지는 달구지 타고 장에 가시고 할머니와 어머니는 건너마을 아저씨댁에 ? 고추 달래먹고 맴맴 아니고 누렁이와 뛰어 놀다가 마루에 쓰러져 잠이 듭니다. 밤늦게 돌아오신 어른들 밥먹고 자라고 깨우셔도 정신 못차리고 잡니다. 다음날 아침, 눈은 떴는데 몸은 자지러지고 기운을 못차립니다. 한끼 굶었을 뿐인데 ... 쯧쯧쯧, 에미야 . 밥 말아 와라. 엄마는 가마솥에 막지은 밥을 뒤꼍 펌프로 퍼올린 물에 말아 한그릇 들여 옵니다. 찬물에 헹궈 길게 썰어낸 오이지랑. 애야, 얼른 일어나 꼭꼭 씹어 삼켜라. 한술 두술 겨우 넘기다 허겁지겁 마지막 술에 번쩍 기운이 남니다. 달콤하니 부드럽게 넘어가던 밥알과 새콤하고 살짝 짭잘 하던 오이지의 아삭 씹히던 맛은 지금도 그리운 추억입니다. 그래서 매해 초여름이면 늙으신 엄마를 재촉합니다. 엄마, 마트에 오이 많이 나욌는데 살까? 놔둬. 들어오는 트럭에 내가 살테니. 엄마, 오이 샀어 ? 벌써 세번째 끓여 부었다. 알았어. 가지러 갈께용.
작년 가을 친구와 하늘 공원에 놀러 간날, 살림에도 도통이 있더라며, 이젠 그냥 척보면 어느 생선 어느 채소가 물이 좋은지, 어느물건이 싸고 비싼지, 품목별로 최고의 물건을 최저의 가격에 구하려면 어느시장 어느집에 가야하는지 알게 되었다고 스스로 대견해 하며 웃던 친구가, 이거 먹어봐 하며 거무스름하고 낯선 것을 내밀었읍니다. 뭔데 ? 오이지. 으응 ? 뭐이래 ? 어떻게 만들어 ? 쉬워. 적을 것도 없어. 오이에 여섯가지 재료를 똑같은 양으로 달아서 섞은 물을 그냥 부어 놨다 먹는거야. 어떤거 ? 설탕 가루, 사이다, 양조 간장, 액젓, 소주. 그리고 으, 으음 뭐더라. 뭐였지. 이래서 적어야돼. 아 그래 그래 생각 났다. 식초, 식초야. 두배 식초 말고 그냥 양조 식초. 일반 현미 식초나 사과 식초 같은거. 자세히 적어줘. 으이구 알았어.
*** 친구가 가르쳐준 새로운 맛의 오이지 담구는 법 ***
1. 준비 재료 :
- 유리병
- 오이지용 오이 (조선 오이 아닙니다.) - 10개 정도. (더 많이 해도 되지만 처음이니까 시험적으로. 저는 23개 했어요.)
- 설탕가루 (백 혹은 황, 아무거나 취향대로. 저는 황설탕 썼어요.) - 180 GR 정도. 7 CM 높이의 종이컵 하나 가득이면 170 GR 정도 됩니다.
- 사이다 - 180 GR. 같은 종이컵 하나 가득.
- 양조 간장 (샘표 간장 같은거. 조선 간장 말고) - 사이다와 같은 양
- 액젓 (까나리 혹은 멸치 액젓) - 사이다와 같은 양
- 소주 ( 과일주용. 35도 정도)- 사이다와 같은 양
- 식초(2배 식초 말고. 그냥 일반 양조 식초. 현미식초나 사과 식초) - 사이다와 같은 양.
2. 담구기 :
- 오이와 유리병은 깨끗이 씻어 말려 물기를 없이 합니다. (끓여 붓는 방식이 아니므로 물기가 남아 있지 않아야 군덩내와 골마지를 피할수 있습니다.)
오이는 자르지 마세요. 단면에서 물이 나옵니다.
- 설탕 가루는 간장에 미리 풀어 완전히 녹여 줍니다.
- 오이를 병에 담고 모든 준비된 액체(6종수)를 하나로 섞어 오이가 푹 잠기도록 붇고 밀봉합니다.
3. 보관과 숙성 그리고 먹기 :
- 오이를 눌러서 보관하면 속이비고 전체적으로 오글쪼글해서 더 졸깃합니다. 병에 여유를 두고 당으세요. 가끔은 열어서 공기를 빼줍니다. 끓어 넘치지 않도록.
- 숙성 - 취향과 계절에 따라 다를수 있읍니다.
봄/가을 - 서늘한 곳에서 2 주 이상 두었다가 검은 물이 들고 익은 냄새가 나면 꺼내 드세요. (저는 6월 초에 담궈 20여일 지나서 먹었어요. 시일이 지날수록 검어지고 짠맛이 늘었어요.) 물에 살짝 헹궈서 그냥 먹거나 무쳐 먹습니다. 저는 그냥 먹었어요.
한여름 - 하루 정도 지나 냉장실이나 김치 냉장고에 두고 2 주 전후에 열어 꺼내 보세요.
4. 그외 참고 사항 :
- 6종수는 넉넉히 만들어 밀봉해 두었다가 나중에 쓰거나 양파, 깻잎, 고추, 마늘 또는 양배추등을 같은 방법으로 만들어 보세요.
- 다른 채소의 숙성은 종류마다 다른데 단단한 마늘이 가장 시간이 걸려요. 저는 6월 중순에 담궈 상온에 두었는데 2 달 더지난 지금도 덜 삭은 맛이어서 아직 안 먹어요. 깻잎은 2-3일 후에도 맛이 들어서 삼겹살을 싸먹으면 새콤 달콤 아주 좋아요.
- 양파는 잘라서 안쪽에 상한 부분이 없는지 확인하고 담금니다. 저는 그냥 담궜는데 양파 몇개가 안쪽이 상해서 큰유리병 가득 담은 소중한 양파를 그만 모두 버리게 되었어요. 으흐흑 ~ 오이지의 성공에 부풀려진 마음에 그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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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나 하는 마음에 자세히 적다보니 괜히 복잡한 것 같지만 정말 간단하고 쉬워요. 물기 조심하고 재료 비율만 맞추면 OK 예요.
친구들 몇개씩 나눠주고 도시락 반찬으로 써 봤는데 모두들 맛있다며 방법을 물어요. 그리고 자랑 합니다. 야, 니가 가르쳐 준 방법으로 양파랑 오이 만들어 먹었는데 맛있더라. 이제 마늘 담궈봐야지. 그러면서 각자의 방법으로 응용하며 벌써 선수들이 되갑니다. 좀 짠듯 싶으니 간장과 액젓양을 조절해 보겠다. 이종 언니는 사이다는 해로울 수 있으니 좀 줄여 보겠다나. 그러면 아삭 아삭한 맛이 줄텐데 ... 몰라요. 나는. 친구의 방법대로 합니다. 아직은.
단 맛과 짠 맛이 2 (사이다 1+ 설탕가루 1) : 2 (간장 1 + 액젓 1) 로 고르게 어울리고 식초가 살짝 (1) 새콤하게 분위기 띄우고 소주가 은근히(1) 무게 잡으며 어느것 하나 큰 목소리로 자기만 주장 하지않고 동일한 양으로 똑같이 수고하며 군덩내와 골마지와 싸우는 ,모습이 고맙습니다.
모르겠어요. 그래도. 신 맛이 싫다며, 우리 전통의 것이, 아니 당신의 방법이 최고라고 주장하시는 우리 엄마의 까다로운 심사를 다시 한번 받아 보려면 식초를 쬐끔 줄여서 다시 시도해 봐야 할지도. ^^
첫댓글 글을 읽으면서 어린시절 몹시도 더웠던날 친정어머니와 함께 마루끝에 걸터앉아 참외 깍아먹던 생각에 잠겼었죠. 어유! 군침이 꼴깍..... 어서 담궈먹어야지 마늘은 이미 담궈어 삭히는중, 감사합니다...
오이지 사랑, 얘기를 글로 풀어가는 솜씨가 아기자기 합니다. 종종 올려주셔요. 저도 참고해서 오이지 담궈봐야겠슴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