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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뷔 12년차, 무려 여덟 장의 앨범을 낸 2인조 록밴드 ‘닥터피쉬’(유세윤, 이종훈)에게는 일당백, 아니 일당 수천의 몫을 하는 소녀팬이 있다. 유세윤이 즐겨 먹는 반찬부터 이번 주 나이트 클럽 행사 스케줄까지 쫙 꿰고 있고 유세윤의 분장을 고쳐 주는 스태프의 손길에도 “야, 코디 너 뭐하는 거야? 유세윤 만지지 마! 너 죽여 버려! 내가 너 얼굴 기억 다 했어!” 라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다 경호원에게 맥없이 밀려나는 그의 모습에는 과거 H.O.T.와 젝스키스에 열광했고 지금 동방신기와 빅뱅에 환호하는 이들의 자화상이 겹쳐진다. 그런데 이 소녀팬은 사실 소녀가 아니다. “예비군 훈련 때문에 내일 닥터피쉬 공연 못 볼 것 같아요”라며 울먹이는 이 남자, 나이도 먹을 만큼 먹었고 키도 껑충하니 크지만 마음만은 언제나 ‘세윤이 형’을 따르는 광팬 양상국은 매 순간 처절한 반응들로 코너에 예상치 못한 활력을 불어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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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저는 남자라서 그런 여자 분들을 잘 이해 못했는데 막상 제가 그런 연기를 하고 있으니까 재밌어요. 1회 방송 때는 ‘개그맨이 아니라 그냥 유세윤 팬 데리고 찍은 거 아니냐’는 얘기도 들었어요. (웃음)” 실제로는 185cm의 키에 긴 다리가 8등신 순정만화 체형이지만 ‘닥터피쉬’에서의 양상국은 어정쩡한 길이의 바지와 얇은 반팔티 한 장만을 걸치고 등장해 구부정한 자세로 풍선을 흔들며 어설픈 캐릭터에 리얼리티를 더한다. “매주 녹화 때마다 집에서 티셔츠를 세 장씩 가져오면 유세윤 선배가 한 장을 골라줘요. 사실 그게, 그 바지에 입으니까 그렇지 예쁜 청바지에 입으면 괜찮거든요?”
약간은 억울한 표정, 사근사근한 말투와 빠르게 종횡무진하는 억양은 한 번 들어도 쉽사리 잊히지 않을 만큼 독특하다. 방송을 볼 때마다 궁금했던 그 사투리의 원산지는 경남 진영, 양상국의 고향이다. 태어나서 대학에 들어갈 때까지 진영에만 쭉 살았던 그는 2005년 여름, 군 제대 후 문득 어릴 때부터의 막연한 꿈이었던 개그맨에 도전했다. 마침 개그맨 지망생들이 출연해 심사를 받는 <개그사냥>이 방송 중이었다. “저도 고향에선 좀 웃기다는 놈인데 TV에 나오는 개그맨들은 얼마나 웃길까 궁금했어요. 만약 방송 무대에 한 번이라도 출연하면 언젠가 평범하게 살게 되더라도 자식한테 ‘아빠에게는 한 때 개그맨이라는 꿈이 있었다’하면서 보여줄 수 있는 추억이 생기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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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상 소원을 한 번 이루고 나니 <개그 콘서트>(이하 <개콘>)라는 큰 무대가 보였고, 결국 2007년 KBS 공채 22기로 데뷔하게 되었다. ‘준교수’ 송준근, ‘원빈’ 박지선, ‘박대박’의 박성광과 박영진을 비롯한 그의 동기들 대부분이 요즘 <개콘>을 떠받치고 있는 쟁쟁한 멤버들이다. 그들 사이에서 양상국이 소리 없이 강한 인상을 남긴 것은 지난 해 10월부터 ‘내 인생에 내기 걸었네’에 범인 곽한구의 조직 2인자로 등장했을 때부터다. “우리 형님 몸에 손끝 하나 대지 마! 얼마나 더러운데요~” 등 예측할 수 없는 대사를 늘어놓으며 형사 김원효를 찜 쪄먹을 때도 그 특유의 말투는 빛을 발했다. “원래는 심한 사투리를 쓰는데 서울말을 섞어서 얘기하다 보니까 톤이 이상해진 것 같아요. 지금은 사투리라는 무기 하나밖에 없으니까, 서울말도 배워서 새로운 무기를 만들어야죠.”
올해 초 허경환을 비롯한 동기들과 야심차게 준비했던 ‘품행제로’가 2주 만에 막을 내린 것이 두고두고 아쉽다는 그의 다음 바람은 버라이어티 프로그램 출연이다. “개그맨들이 원래 웃기는 사람이잖아요. 버라이어티에서 제대로 한번 웃겨 보고 싶어요.” ‘닥터피쉬’에서의 자신 같은 열성팬이 있으면 어떻겠냐는 질문에도 얼굴이 빨개지는 이 수줍은 진영 총각의 버라이어티 적응기가 궁금하긴 하다. 어쨌든 “꼭 하고↗ 싶어요” 라니, 우리도 “꼭 보고↗ 싶어요.”
(글) 최지은 guilty@t-fac.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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