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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사(紳士)의 나라 영국(Great Britain)
영국 전도(全圖) / 영국 국기(國旗/Union Jack)
스코틀랜드 국기 / 잉글랜드 국기 / 아일랜드 국기
1. 영국 개관(槪觀)
영국의 국토면적은 약 24만 ㎢로 우리나라 남한 면적의 2.7배, 인구는 6천 7백만 정도이며 수도는 런던(London)이다.
인종구성은 잉글랜드 80%, 스코틀랜드 10%, 아일랜드 2.4%, 웨일스 1.9% 이고 언어는 영어, 켈트어, 게일어가 통용된다. 종교는 영국성공회가 50%, 로마가톨릭이 11%, 개신교 및 기타 39%이며, 1인당 국민소득은 4만 4천 달러(USD) 정도이다.
<1> Great Britain과 United Kingdom
잉글랜드와 아일랜드에 걸쳐 살던 고대 원주민 켈트족은 기원전 50년경 로마군(라틴족)의 침입, 곧이어 유럽민족인 앵글로-색슨족의 침입을 겪으며 차차 웨일스(Wales/남서부), 아일랜드(Ireland/서쪽의 섬), 스코틀랜드(Scotland/북부), 잉글랜드(England/중부와 남동부)로 나뉘어 국가형태를 갖추게 된다.
그러나 잉글랜드는 웨일스(1536), 스코틀랜드(1707), 아일랜드(1801)를 통합하여 대영제국(Great Britain/ GB), 일명 유나이티드 킹덤(United Kingdom/UK)으로 부르는 『연합왕국』이 되었다. 그러다가 1922년 아일랜드가 독립전쟁을 일으켜 독립하게 되는데 북아일랜드(Northern Ireland)는 종교문제로 영국연방으로 남았다.
<2> 아일랜드(Ireland) 독립
아일랜드 독립 운동의 씨앗은 1845년부터 1852년까지 7년간 아일랜드 지방을 휩쓸었던 감자 역병으로 인한 대기근(Great Famine)이 있었는데 영국 대지주들의 무자비한 착취로 아일랜드 인들은 수많은 아사자(餓死者)를 내었고 전염병까지 겹쳐 나라는 쑥대밭이 되고 말았다.
아일랜드 인들은 지금까지도 당시 영국인들의 착취와 횡포에 뿌리 깊은 원한을 품고 있다고 한다. 우리는 영국을 통상 잉글랜드(England)이라고 부르지만 잉글랜드 이외, 특히 스코틀랜드와 북아일랜드 지역의 사람들은 매우 싫어하며 지금까지도 분리 독립을 주장하는 소수의 과격한 세력들이 있다고 한다.
<3> 홈 네이션(Home Nation)
잉글랜드에 통합된 스코틀랜드, 웨일스, 북아일랜드는 홈 네이션(Home Nation)이라 부르며 현재도 자치정부, 자치의회, 자치수도를 가지고 있을뿐더러 고유의 언어, 종교, 문화를 가지고 있다.
웨일스의 수도는 카디프(Cardiff/ 웨일스어로 Caerdydd), 스코틀랜드는 에딘버러(Edinburgh), 북아일랜드는 벨파스트(Belfast/아일랜드어로 Béal Feirste)이고 잉글랜드 수도는 당연히 런던(London)이다.
현재의 영국 국기(Union Jack)를 보면 각 나라의 국기들을 조합해서 유니언 잭이 되었는데 웨일스는 당시 문장(紋章/붉은 용)만 있었지 국기가 없어 포함되지 못했다고 한다.
2. 수도(首都) 런던(London)
파리에서 런던으로 가는 방법은 유로스타가 있지만 너무 비싸서 반값인 비행기로 갔는데 도착공항이 런던에서 훌쩍 떨어진 루튼(Luton) 공항이다. 공항버스를 타고 런던 빅토리아 지하철역까지 가서 다시 런던 써클라인(Circle Line)으로 갈아타고 숙소를 찾아 나섰다. 우리 숙소는 메트로(Metro) 베이스워터(Bayswater)역에서 그다지 멀지 않아 걸어갈 수 있었는데 제법 괜찮은 숙소였다.
운이 좋았다고 할까, 런던에 사는 고향 후배와 연락이 닿아서 다음날 후배의 안내로 런던 시내를 고생도 안하고 골고루 구경할 수 있었고, 저녁에는 멋진 중국집에서 정통요리를 대접받아 흐뭇하고 고마웠다.
<1> 트라팔가르(Trafalgar) 광장
넬슨제독 기념탑 / 트라팔가르 광장 분수대 / 넬슨기념탑 둘레의 사자상
런던 시내 가운데 있는 트라팔가르 광장은 원래 윌리엄 4세 광장이라고 불렸으나 1805년 넬슨 제독이 트라팔가르 해전에서 나폴레옹 군을 격파하고 전사한 후부터 트라팔가르 광장이라 부르기 시작했다고 한다. 광장 가운데에는 56m 높이의 넬슨 기둥이 우뚝 솟아있고 그 맨 위에는 5m의 넬슨 동상이 올려져 있다.
또 동상 둘레에 4마리의 거대한 청동 사자상이 있는데 트라팔가 해전에서 나폴레옹 군으로부터 빼앗아 온 전리품 중 나폴레옹 군의 대포를 녹여서 만든 것이라는데 보기보다 사자가 엄청나게 크다. 시원한 물을 뿜어대는 광장 가운데의 분수대는 시민들의 좋은 휴식처가 된다. 우려했던 것보다 날씨가 비교적 좋아서 영국여행 내내 기분이 좋았다.
<2> 버킹엄 궁전(Buckingham Palace)
황실 근위병 열병식 / 버킹엄 궁전 / 궁전 앞 황금 천사상
버킹엄 궁전은 현재 영국 엘리자베스(Elizabeth II) 여왕이 살고 있는 궁전이다. 건물이 화려해 보이지는 않지만 왕궁 앞 광장이 굉장히 넓고 주변의 울창한 숲과 연못 등이 눈길을 끈다. 마침 군악대 나팔소리가 들리기에 왕궁 앞으로 달려갔더니 마침 황실 근위대의 열병식이 있어 모여든 관광객들의 카메라 세례를 받고 있었다. 저 왕궁 위에 깃발이 꽂혀있으면 여왕이 있고, 여왕이 외출하고 없으면 깃발을 내린다고 한다. 지금은 있는 모양인데 무엇을 하고 있을까?? ㅎ
<3> 웨스트민스터 대성당(Cathedral)
웨스트민스터 대성당(Cathedral:로마가톨릭)
웨스트민스터 가톨릭 대성당은 19세기 후반에 건립되어 1903년 봉헌되었으니 이제 100년 남짓 역사를 가지고 있는 건물이다. 비잔틴 양식으로 지어진 이 건축물은 영연방 잉글랜드와 웨일스 지역 로마 가톨릭 성당의 중심 역할을 한다고 한다. 높이가 87m 라는 벽돌 탑은 빨간 벽돌에 하얀 돌을 수평으로 줄을 그리듯 장식되어 있어 눈부시게 아름답다.
<4> 웨스트민스터 성공회 사원(Westminster Abbey)
부근에 있는 성공회의 웨스트민스터 사원(Westminster Abbey)을 한국 사람들은 웨스트민스터 대성당으로 부르는 경우가 많아서 로마가톨릭 성당(Cathedral)과 성공회 사원(Abbey)을 혼동하기도 한다.
영국 성공회가 처음 생긴 역사에는 가슴 아픈 사연이 숨어 있다.
◐ 못된 왕 튜더왕조의 헨리 8세
1534년, 영국 튜더(Tudor)왕조의 국왕 헨리 8세(Henry VIII)는 왕이 되기 위해 형수인 캐서린과 결혼한다. 그러나 아들을 낳지 못하자 아름답고 총명했던 시녀 앤 불린(Anne Boleyn)과 결혼하는데 그녀 또한 아들을 낳지 못하고 딸 엘리자베스를 낳는다.
엘리자베스가 3살이 되었을 때 또 다른 시녀였던 제인 시모어(Jane Seymour)가 더 예뻐 보였는지 시모어와 결혼하기 위해 앤에게 억울한 누명(불륜설 등)을 덮어 씌워 런던탑에 감금하였다가 사형에 처하고.... 이후에도 수많은 이혼과 결혼(8번)을 반복하지만 아들을 얻지 못한다.
헨리 8세는 형수인 캐서린과의 이혼, 앤과의 결혼과 이혼, 제인과의 결혼 등이 교회법으로 허용되지 않아 로마교황청으로부터 파문을 당하자 성공회를 만들어 자신이 수장이 되고 이 모든 것을 합법화한다.
이렇게 급조된 교단이 성공회(聖公會)인데 결국 영국 국교(國敎)가 되고 수많은 가톨릭 신자들을 이단으로 몰아 화형 시켰으며 개신교 신자(청교도/淸敎徒:Protestant)들은 박해를 피해 종교의 자유를 찾아 미국(신세계)으로 떠나게 된다.
웨스트민스터 성공회(聖公會) 사원(Abbey)
헨리 8세가 성공회 건물로 지정한 건물은 11세기 성 베드로(St. Peter) 성당이었던 건물로, 13세기 헨리 3세가 현재의 고딕(Gothic) 양식의 건물로 개축하여 수도원으로 사용되었는데 역대 영국 국왕들의 유해를 모시고, 또 왕들의 대관식을 올렸던 유서 깊은 건물이다.
◐ 영화 1,000일의 앤
1969년, 영국 찰스 재로트(Charles Jarrott) 감독이 제작한, 주제곡이 너무나 아름다운 영화 『천일의 앤(Anne of the Thousand days)』을 기억하고 계시는지....
그 영화의 비극의 주인공이 바로 앤 불린이다. 앤 불린이 낳은 엘리자베스는 후일 ‘영국 역사상 가장 뛰어난 왕, 해가지지 않는 대영제국의 발판을 닦은 여왕, 어학과 문학 분야에서 천재성을 번쩍인 영국의 자랑.....’ 바로 엘리자베스 1세(Elizabeth I/1533~1603)이다.
◐ 엘리자베스 1세(Elizabeth I)
엘리자베스 1세는 어린 시절부터 천재성을 발휘했는데 7개 국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였고 12살 때 시집을 냈으며, 스페인 무적함대와 결전을 앞둔 영국 해군들에게 한 연설은 지금도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는 가슴을 울리는 명연설로 꼽힌다고 한다. 『나는 내가 연약한 여자의 몸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나는 왕의 심장을 가지고 있습니다. 잉글랜드 국왕의 심장을 말입니다.』
1588년 4월, 영국은 무적함대로 일컬어지던 스페인의 아르마다 함대와 치열한 해상전투가 벌어지는데 이른바 ‘아르마다 대회전(Armada Encounter)’으로, 스페인이 동원한 전함은 120여 척으로 알롱소 구즈만(Alonso de Guzmán)이 총사령관이었고, 영국은 전함 200여 척이었으며 찰스 하워드(Charles Howard)가 총사령관이었다.
전함의 숫자로 보면 영국이 더 많았다고 할 수 있지만 전함의 크기나 전투능력에서는 영국이 훨씬 열세였다고 하는데 우여곡절 끝에 영국이 승리를 거머쥐게 되고 5대양의 해상권을 거머쥐는 계기가 되었다.
이후, 1805년에 와서 영국의 넬슨제독(Horation Nelson)은 스페인 트라팔가르 곶(Cabo Trafalgar) 앞바다에서 당시 무적함대라 일컬어지던 스페인 함대를 또다시 격파하여 명실 공히 세계 해상권의 주도권을 거머쥐게 되는데 이것이 트라팔가르 해전으로, 런던의 트라팔가르 광장에는 우뚝 솟은 기둥 위에 넬슨제독의 동상이 서 있다.
이후 영국은 인도를 포함하여 세계의 1/4에 해당하는 대륙을 점령하고 해상권을 재배하게 된다.
엘리자베스 1세는 3살이 되기도 전에 어머니(앤 불린)를 잃었고, 국가와 결혼했다며 평생 독신으로 살았던 처녀 여왕이었다. 엘리자베스 1세가 12살때 펴냈던 시집에 실린 이 작품이 너무도 유명하다고 한다.
On Monsieur's Departure(임은 떠나는데)
I grieve and dare not show my discontent, I love, and yet am forced to seem to hate.
나는 애통해하지만 감히 불평을 드러내지는 못합니다. 나는 사랑하지만 아직도 미워하는 척하려고 합니다.
I do, yet dare not say I ever meant, I seem stark mute but inwardly do prate.
나는 아직도 내 마음을 감히 말하지 못합니다. 나는 입을 굳게 다물고 있지만 속으로는 끝없이 재잘거립니다.
I am and not, I freeze and yet am burned, Since from myself another self I turned.
내 자신으로부터 또 다른 자신에게로 돌아서기 때문입니다. 나는 나면서도 아니고, 얼어붙었으면서도 아직 불타오르고 있습니다.
엘리자베스 1세는 어린 시절부터 천재성을 발휘했는데 7개 국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였고 12살 때 시집을 냈으며, 스페인 무적함대와 결전을 앞둔 영국 해군들에게 한 연설은 지금도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는 가슴을 울리는 명연설로 꼽힌다고 한다.
<5> 대영박물관(The British Museum)
대영박물관 / 파라오 람세스2세 석상 / 히타이트왕국의 라마수
런던의 블룸스베리(Bloomsbury)에 있는 1753년에 세워진 대영박물관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박물관으로 세계 3대 박물관의 하나로 꼽히며, 주요 소장품은 고대 및 중세의 공예품과 예술품들이다. 대표적으로 이집트, 메소포타미아와 로마 등에서 시작된 고대 문명에 관한 전시품들이 유명하며 그중에서도 미라(Mummy)와 로제타석, 이집트의 람세스 2세 석상과 그리스 신전 부조(浮彫) 등 전시실은 언제나 관람객들로 붐빈다.
◐ 로제타석(Rosetta Stone)
이집트 미라(Mummy) / 로제타석(Rosetta Stone) / 그리스 조각 / 영국거주 고향후배(Bill Cho)
로제타석(Rosetta Stone)은 1799년 이집트 북쪽 알렉산드리아 부근의 로제타 마을에서 프랑스군이 진지를 구축하다가 발견되었는데 1801년 이집트가 영국령에 들어가자 영국의 손에 넘어가 대영박물관에 보존하게 되었다고 한다.
로제타석은 처음에는 다듬어지지도 않은 현무암에 오랜 세월 마모되어 흐릿한 암호와 같은 글자가 씌어져 있어 그 가치를 모르다가 후일 학자들에 의하여 똑같은 내용의 글이 이집트어와 그리스어, 그리고 상형문자로 기록되어 있다는 것이 밝혀졌다. 그리하여 이 비석이 이집트 상형문자를 해독하는데 결정적 자료가 되는 귀중한 보물임을 깨닫게 되었다고 한다.
가로 72cm, 높이 114cm, 두께 30cm인 검은 현무암의 이 로제타석은 기원전 196년에 새겨진 고대 이집트의 파라오였던 프톨레마이오스 5세의 공적을 적은 송덕비(頌德碑)라고 한다.
그 밖에도 파라오 중 이집트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람세스 2세 석상(BC 13세기)은 이집트 테베(Thebe)의 룩소르 신전에 모셔져 있던 것인데 이곳에... 그밖에도 우리가 책에서만 읽었던 수많은 세계 여러 곳의 보물들이 가는 곳마다 전시되어 있어 볼 때마다 감탄을 금치 못하게 된다.
◐ 대영박물관 ''한국관''
이곳에는 2000년 11월, 한국관이 신설되었는데 구석기 유물부터 조선 후기 미술품까지 두루 전시하고 있다고 책자에는 소개되어 있는데 실제로는 너무나 빈약해서 부끄러울 정도이고 관람객도 없었다.
◐ 국립 미술관(National Gallery)
영국 국립미술관(National Gallery) / 고흐의 ‘해바라기’ / 앤 불린 초상화
영국 국립미술관인 내셔널 갤러리(National Gallery)는 트라팔가 광장에서 아주 가까운데 이 미술관 역시 세계에서 손꼽히는 영국 최고의 미술관이다. 중세부터 근세(AD 13c∼20c 초)까지 유럽의 유명한 화가들 작품 2,300여 점을 보유하고 있다니 놀랍다. 이곳에서도 그야말로 우리가 미술 시간에 듣던 유명한 화가들의 작품을 수도 없이 만날 수 있다.
◐ 국립 초상화 박물관
미술관 뒤편에 있는 국립 초상화 박물관은 영국의 역대 왕들과 왕실과 관련된 인물들, 그리고 우리 귀에 너무나 익숙한 수많은 정치가, 작가들의 초상화들이 시대별로 전시되어 있다. 셰익스피어, 처칠, 나이팅게일, 다이애나 왕세자비, 심지어 비틀즈까지.... 그림 옆에서 여러 장의 사진을 찍었는데 여기서는 비극의 주인공인 앤 불린(Anne Boleyn), 정신병으로 자신의 귀를 자르고 결국 정신병원에서 권총 자살한 천재화가 빈센트 고흐(Vincent van Gogh)의 그림이 너무나 반가워 함께 사진으로 담았다.
그 밖에도 1,000일 동안 왕비로 살았던, 그리고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진 앤 불린, 그림이 팔리지 않아 동생 테오의 보살핌 속에 찢어지는 가난 속에 허덕였던 고흐... 그가 남긴 제목만 들어도 가슴이 설레는 ‘론강의 별이 빛나는 밤’, ‘감자 먹는 사람들’, ‘사이프러스가 있는 밀밭’, 그리고 ‘해바라기’ 연작 시리즈도..
<6> 런던 타워(Tower of London)
템스강 타워브리지 바로 근처에 있는 런던타워(Tower of London)는 나는 처음에 타워(Tower)라 하기에 둥그런 높은 탑을 상상했었는데 막상 실제로 보니 성벽으로 둘러싸인 성일 줄이야...
이 런던타워는 중세(中世/11세기) 정복왕으로 일컬어지는 윌리엄 1세(William I)가 템스강 북안(北岸)으로 당시 런던의 주요 항구였던 이곳의 물을 통제하기 위하여 세운 요새였다고 한다.
런던타워 / 타워 입구의 작은 문 / 런던타워 성벽
그러나 성의 구조는 2중 성벽을 갖추고 깊은 해자로 둘러싸인 철옹성으로 중세의 성 모습을 그대로 갖춘 모습으로 13개의 탑이 있었다고 한다. 그 후, 죄수들을 감금하는 감옥으로 사용되었는데 주로 왕실의 왕족들이 이곳에서 생을 마감한 비극의 장소가 되었다. 죄수들은 주로 수문을 이용하여 배로 드나들었는데 유일한 육지와의 통로는 남서쪽 귀퉁이의 작은 문 하나뿐이다.
◐ 감옥으로 사용되었던 런던 타워
이곳에서 많은 죄수들이 처형을 당했는데 왕족으로는 1471년 헨리 6세, 1483년 에드워드 5세와 동생 리처드, 1536년에는 헨리 8세의 두 번째 왕비 앤 불린, 그리고 1544년에는 여왕 제인 그레이....
단지 1.000일 동안 왕비로 있었던 앤은 딸(엘리자베스 1세)이 세 살도 되기 전에 억울한 죄목을 쓰고 런던탑에 감금되었다가 참수(斬首)를 당하는데 결혼식도 런던탑에서 올렸었다니 더욱 가슴이 아프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던 그녀는 단두대에 오르며 마지막으로 했다는 말 『주님께 제 영혼을 맡깁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모두 왕권 쟁탈이나 바람둥이 왕들의 억지 죄목이 대부분이라 가슴이 아프다.
런던타워는 현재 전쟁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각종 전쟁에서 쓰이던 무기들을 전시하고 있는데 왕실 보물관에는 530 캐럿의 세상에서 제일 큰 다이아몬드, 왕관, 의복, 왕실의 집기 등을 전시하고 있다.
우리는 비도 부슬거리고 입장료도 아깝고 또 다른 볼거리들도 너무 많아서 내부 관광은 포기하고 외부만 둘러보는 것으로 만족했다. 앤을 얼토당토않은 간통죄로 몰아 단두대로 보낸 헨리 8세는 1547년 사망하는데 향년 56세로 왕위에 오른지 38년... 제일 나쁜 놈이다. ㅎ
<7> 런던브리지(London Bridge)와 타워브리지(Tower Bridge)
런던브리지 / 타워브리지 / 가까이서 본 타워브리지
나는 처음 런던브리지와 타워브리지를 같은 다리로 착각을 했었다. 지도를 펴들고 런던 강변을 걸어가며
사람들에게 런던브리지를 물었는데 이리 따라오라더니 저기 보이는 저 다리라고 한다.(첫 번째 사진) 그런데 아무리 봐도 그림에서 보던 런던브리지가 아니다. 런던브리지는 높은 타워가 있어야 되는데 타워가 없지 않은가?
내가 한국에서 조사한 바로 런던브리지는.... 런던 중심부를 흐르는 템스(Thames)강에 1176~1209년 사이에 건설된 최초의 목조다리. 수많은 화재로 붕괴되었는데 수차례 보수를 거쳐 1820년대 완전히 새로운 모습으로 탈바꿈하여 새 런던다리(New London Bridge)로 바뀌었고, 다시 1960년대에 대대적인 보수를 거쳐 오늘날의 모습이 되었다.
‘London Bridge is falling down, falling down~~’ 두 명의 어린이가 두 손을 맞잡고 높이 들어 다리 모양을 만들고 5~6명의 어린이들이 그 밑을 통과하며 부르는 게임송.... 이 노래는 영국 어린이들의 오래된 게임송인데.... 우리나라로 와서는 ‘남 남 남대문을 열어라~~’로 바뀌었고.....
그렇다면 당연히 두 개의 타워가 있고 다리를 올리면 그 밑으로 배가 다니는 도개교(跳開橋)가 맞다.
그런데 저기 아무 장식도 없는 다리가 ‘런던브리지’이고 저 멋진 도개교는 ‘타워브리지’라니....
또 여러 명의 영국 왕족들이 런던타워에 갇혔다가 비극의 죽음을 맞이했다면 분명 저 다리 위의 타워에 갇혔다가 죽었다고 믿고 있었는데... 그래서 ‘런던타워(London Tower) 브리지’....
인터넷을 뒤져 진위를 확인해 보았더니 내가 미루어 짐작했던 모든 것이 엉터리였다는 사실을 알았다.
타워브리지는 훨씬 나중인 1894년에야 완공된, 대형 선박들이 오갈 수 있게 다리를 들어 올려야 했기 때문에 다리를 들어 올리는 기능을 하는 두 개의 높은 탑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리고 타워브리지라는 이름이 붙은 것도 다리 위의 탑 때문이 아니라 바로 근처에 런던타워가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내가 알고 있었던, 아니 짐작하고 있었던 모든 것은 엉터리였던 것이고, 아이들 동요 속에 나오는 런던브리지는 첫 번째 사진의 저 지극히 평범하고 볼품도 없는 저 다리가 진짜였던 것이다!!! 무식이 고질병이고, 근거 없는 추측은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허위일 가능성이 높다. 다리 위의 타워는 감옥과는 아무 상관도 없다. ㅎ
<8> 빅벤(Big Ben)과 런던아이(London Eye)
런던 시내를 흐르는 템스강변 영국 국회의사당 옆에 우뚝 솟은 대 시계탑 ‘빅벤(Big Ben)은 런던의 랜드마크(Landmark) 중 한 가지이다. 높이가 96m나 되는 빅벤은 4면에 네 개의 대형 시계가 있는데 시각을 알리는 종이 울리고 또 정확하기로 이름이 알려져 있다. 탑 안의 종의 무게가 13.5 ton, 시계의 지름이 7m, 시침의 길이 2.9m, 분침은 4.2m 나 되는 대형 시계이다.
수리 중인 빅벤 / 런던의 상징 런던아이(London Eye) / 성 마가레트 성당
시계탑의 명칭인 빅벤은 크다는 빅(Big)과 설계자의 이름인 벤자민 홀(Benjamin Hall)에서 따서 붙여 부르는 애칭인데 처음에는 시계탑이 아니라 속에 들어있는 커다란(Big) 종을 부르는 이름이었다고 한다.
또 하나 런던의 명물로 꼽히는 런던아이(London Eye)는 높이 135m로 세계에서 제일 큰 놀이관람차라고 한다.
1999년 말, 브리티시 항공사에서 21세기의 개막을 기념하는 의미에서 세웠다고 하는데 처음 세울 때에는 5년간만 운영하려고 했지만 시민들의 폭발적인 사랑에 힘입어 다른 사업자가 인수하여 영구 운영하기로 했다고 한다.
엄청나게 커서 런던의 눈(London Eye)이라는 애칭이 붙었는데 총 32개의 캡슐이 있고 한 캡슐에 25명이 탑승할 수 있다고 한다. 엄청나게 크다보니 한 바퀴 도는데 30분이나 소요된다고......
3. 스코틀랜드(Scotland)의 풍광
♧ 에든버러 성(Edinburgh Castle)
에든버러 성 / 성안의 골목길
스코틀랜드의 수도인 에든버러(Edinburgh)는 인구 50만 정도로 큰 도시는 아니지만 도시의 상징인 에든버러 성이 언덕 위에 우뚝 솟아있다. 또, 도심 한 가운데에는 칼튼 힐(Calton Hill), 건너편에는 아더왕의 자리(Arthur's Seat)가 있는 다른 언덕이 있고 그 아래에 있는 홀리루드 궁전(The Palace of Holyroodhouse), 로열마일(Royal Mile) 등이 주요 관광지로 알려져 있다.
에든버러 성(Edinburgh Castle)은 캐슬록(Castle Rock)이라는 바위산 위에 16세기에 세워진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성으로 스코틀랜드의 상징이다. 에든버러 성의 입장료는 17파운드(2만 5천 원)로 다소 비싼 편이지만 우리는 경로우대(만 65세)로 12파운드를 냈던가??
어느 나라를 가든 입장료는 대부분 경로우대를 해준다. 에든버러성은 외관은 제법 그럴싸한데 성내로 들어가면 의외로 볼 것이 별로 없다는 느낌이다. 우선 웬 대포가 그리 많이 전시돼 있는지?? 거기다가 전쟁박물관과 감옥, 그리고 왕가 보물실과 소박하기 짝이 없는 좁은 예배실의 성 마가렛 교회...
12세기 초에 세워진 이 성 마가렛(St. Margaret) 교회가 성 안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이라고 한다.
전쟁 관련 유물들이 많은 것으로 보아 고대로부터 이곳을 중심으로 수많은 전투가 있었나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전쟁박물관에 들어가면 동영상을 보여주는데 재미있다. 잉글랜드가 얼마나 자주 쳐들어왔는지 천정 한 곳에는 연도표시가 연속으로 바뀐다. 사자 한 마리(스코틀랜드)와 사자 세 마리(잉글랜드)가 10여 회 이상 바뀌고 어떤 것은 1년에도 2번 이상 바뀔 때도 있다. 성의 주인이 그만큼 자주 바뀌었다는 얘기이다.
<1> 로열 마일(Royal Mile)
에든버러 성 앞에는 길바닥에 로열마일(Royal Mile)의 시작점이라는 표시가 있는데 이곳에서부터 건너편 언덕 밑에 있는 홀리루드 궁전까지가 약 1마일로, 이 길을 일컫는 말이다. 옛날에는 왕가의 전용도로였다고 하는데 지금은 관광객들로 항상 복작거리는 길이 돼버렸다. 로열마일은 조금 가다가 포기했는데 흡사 중세의 거리를 걷는 느낌으로 좀 으스스하다.
로열마일 거리 / 홀리루드 궁전 / 스콧 기념비
도심에 있는 스콧 기념비는 스코틀랜드가 낳은 대 문호 월터 스콧(Walter Scott)을 기리는 기념물로 웅장하게 솟아있어 관광객들의 눈길을 끈다.
<2> 영국에 있었던 여러 왕국들
영국 각 나라의 국장(國章/紋章)과 스코틀랜드 국화인 엉겅퀴, 1파운드 동전에 그려진 엉겅퀴
위에서 순서대로 ①잉글랜드, ②스코틀랜드, ③북아일랜드, ④아일랜드, ⑤웨일스의 국장(國章)이고, 엉겅퀴는 스코틀랜드의 국화(國花)인데 스코틀랜드에서 통용되는 1파운드짜리 동전에는 엉겅퀴가 그려져 있다. 영국이 여러 왕국으로 갈라져 있을 때인 중세에는 나라별로 국기(國旗)가 없고 국장(國章/紋章)만 있었다.
영국의 가장 북쪽에 위치한 스코틀랜드는 중세에 북쪽 스칸디나비아의 해적인 바이킹(Viking)의 잦은 노략질로 골머리를 앓았다고 한다. 이 에든버러성도 당시 바이킹의 침입을 막는 목적으로 쌓았을 것이다. 바이킹은 주로 야습을 해서 사람들을 함부로 죽이고 재물을 약탈해 갔는데 그들을 막으려고 성 위에 항상 보초병을 세웠다고 한다. 캄캄한 밤에 성 아래로 살금살금 들어오던 바이킹이 이 지방 들판에 흔한 엉겅퀴 가시에 찔려 ‘앗 따거~!’ 하는 소리에 졸던 보초병이 깨어 신호를 하고 바이킹을 막아냈다고 한다.
그 이후, 나라를 구한 귀한 꽃으로 여겨 엉겅퀴를 국화(國花)로 정하였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3> 칼튼 힐(Calton Hill)
칼튼 힐(Calton Hill/해발 171m)은 스코틀랜드의 수도(首都) 에든버러 시내 중심에 있는 언덕이다. 이곳에서 바라보면 에든버러 성은 물론, 시내 전체가 한눈에 들어오고 멀리 시가지 너머로 바다도 보인다. 또 언덕 뒤쪽으로 가면 맞은편에 ‘아서왕의 자리’라는 언덕이 보이고 그 너머로 아스라이 산들이 겹쳐 보여서 전망이 아주 좋다.
칼튼 힐 언덕은 도시의 중심부에 있고 그다지 높지 않아서 힘들이지 않고 오를 수 있는데 우선 공원이 잘 조성되어있고 몇 가지 기념물들, 그리고 시내를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가 곳곳에 있다.
◐ 국정 기념물(National Monument)
칼튼 힐 언덕에 오르면 흡사 그리스의 파르테논 신전의 기둥들과 비슷한 건축물이 보이는데 국정기념물(National Monument)이라고 한다. 이 기념물은 나폴레옹 전투에서 전사한 장병들을 추모하는 건물이라는데 예산 부족으로 중단됐다든가? 기둥만 을씨년스럽게 서 있다.
◐ 넬슨 탑과 듀갈드 기념탑
뾰족하게 높이 솟은 넬슨 탑은 트라팔가 해전의 넬슨 제독을 추모하는 탑으로 1815년에 세웠다고 하고, 듀갈드 스튜어트(Dugald Stuart)는 에든버러대학 교수로 재직했던 스코틀랜드가 낳은 철학자이다.
듀갈드 스튜어트 기념비 / 국정기념물(National Monument) / 기념물과 넬슨 탑
◐ 칼튼 천문대와 아더왕의 자리
칼튼 언덕에서 본 경관 / 칼튼 천문대 / 아서왕의 자리(Arthur's Seat)
1776년에 건축한 칼튼 천문대는 건물만 있고 지금은 당연히 폐관되었고, 아서왕이 에든버러를 정복하고 걸터앉아 에든버러 성을 바라보았다는 ‘아서왕의 자리(Arthur's Seat)’가 있는 언덕은 마주 건너다보인다. 저 유명한 영국 전설 속의 임금, 내가 어렸을 때 너무나 재미있게 읽었던 책 ‘아서왕과 원탁의 기사들(King Arthur and the Knights of the Round Table)’의 바로 그 아서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