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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설교전문학교 원문보기 글쓴이: 새생명축복
첫날 성회수요일 2.22
사순절이 시작되었습니다. 회개하는 마음으로 사순절을 열기 바랍니다.
마태복음24:35,이사야40:8
하나님은 인생들에게 말씀하십니다.
사순절 기간동안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시는 말씀에 귀를 기울인다면 멋있는 묵상이 되리라 믿습니다.
실로 하나님의 말씀으로서 성경은 필요합니다. 성경은 영감의 책입니다. 하나님은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심과 성경의 역사적인 사실을 성경으로 입증하시고 계십니다. 우리는 사순절 기간동안 성경적인 교리의 핵심을 더듬어 묵상함으로 은혜를 나누고 싶습니다.
"진리가 무엇이냐"고 빌라도는 물었습니다. 그의 어조를 살펴 볼 때에 진리를 찾는 것은 한갖 쓸데 없고 부질 없는 일이라는 것을 말해주는듯 합니다. 만일 하나님과 인간과 세계에 관한 권위있는 지침서가 없다면 빌라도의 태도는 옳은 것이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의심과 회의주의 속에서 암중 모색할 필요는 없습니다. 왜 그러냐 하면 하나의 지침서인 성경이 있기 때문입니다.
가장 위대한 사상가 중에 한 사람인 칸트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제군들이 제군들의 평화와 경건을 복음서에 근거를 두게 하는 것은 매우 잘한 일이다. 왜 그러냐 하면 깊은 영적 진리의 근원은 복음서안에만 있기 때문이며 또 이성은 깊은 영적 진리의 영역을 측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그의 종들에게 영감을 주어 인간의 이성으로는 도저히 발견할 수 없는 진리를 기록하게 하였으리라고 생각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리고 마침내 하나님께서 그의 섭리에 의하여 성경의 사본을 보존해 두었으며 또 교회로 하여금 하나님의 영감 속에 기원을 갖고 있는 책들만을 정경 속에 포함시키게 하였다고 믿는 것도 당연합니다. 우리는 금년 사순절 기간에 하나님이 주신 말씀의 은총을 따라 승리하고 합니다.
묵상할 기도제목
1. 하나님은 인생에게 그분의 뜻을 계시하시기 위하여 무엇을 주셨습니까?
2. 인간이 이성으로 모든 진리를 다 발견할 수 있습니까?
3. 그대의 삶의 한가운데 두고 싶은 책은 무엇이 되어야 합니까?
2째날 2.23
하나님께서 직접 말씀하신 영감에 넘치는 책이 성경입니다.
히브리서1:1, 베드로후서1:21
"옛적에 선지자들로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이" (히1:1).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으로 입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니라" (벧후 1:21).
성경은 영감의 책입니다. (The Inspiration of the Scriptures) " 사도 바울이 딤후 3:16 속에서 정의한 바와 같이 영감은 사람들 속에 불어넣은 하나님의 강하고 의식적인 숨결로서 사람들에게 진리를 말하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통하여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구약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씀 한 마디 한 마디는 모두 하나님께서 하신 것입니다. 인간의 언어가 인간의 입을 통하여 발언되는 것과 같이 성경은 하나님의 영감의 결과로서 생긴 것이다"라고 윌리암 이반즈 (William Evans) 박사는 말하였습니다.
베드로의 선언은, "성령께서 성경 기자들의 마음 속에 특별히 기적적으로 임재하여 계시면서 성경 기자들이 전에는 알지 못하던 진리를 계시하여 주었으며 또 이 진리를 기록하는 일에 있어서도 그들을 인도하여 주었다. 또 그들로 하여금 진리의 목격자와 증인이 되게 하여 다른 사람들의 마음 속에 진리를 본질적으로 정확하게 전하여 주게 하였다."
말씀 속에 나타나 있는 영감된 교리는 매우 단순합니다. 그러나 차차 그릇되고 결함이 있는 견해가 생기게 됨으로써 상세하고 완전한 정의로서 교리를 "방어" 할 필요성이 생기게 되였습니다. 어떤 이론을 반박하기 위하여 성경의 영감성을 강력히 주장할 필요성이 있는 것입니다.
계시는 인간 스스로 발견할 수 없는 것을 하나님께서 들어내신 그의 행위를 의미합니다. 영감은 성경 기자로 하여금 그 계시를 기록하는데 있어서 과오를 범치 않도록 그를 지켜준 것을 의미합니다. 가령 예를 들면 십계명을 계시되었고 모세는 그의 오경 (the Pentateuch)속에 십계명을 기록하도록 영감을 받았답니다. 영감은 반드시 계시를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가령 예를 들면 모세는 그가 친히 목격한 사건들과 그의 지식 범위 내에 있는 것들을 기록하도록 영감을 받았던 것입니다.
묵상할 내용
1. 성경은 무슨 책입니까?
2. 영감을 설명하십시오.
3. 계시와 영감의 차이는 무엇입니까?
3째날 2.24
성경은 가장 권위있는 책입니다.
베드로전서 3:15
"너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는 대답할 것을 항상 예배하되 온유와 두려움으로 하고" ( 벧전 3:15).
왜 성경말씀이 가장 권위있는 말씀으로 자리 매김을 했습니까?
(1) 성경의 정확성, 다른 종교의 경전들 속에서 찾아 볼 수 있는 모순을 성경에서는 전혀 찾아 볼 수 없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가령 예를 들면 어떤 종교의 경전에서 우리들은 이 지구가 오랫 동안 거북이에게 안겨 있던 알에서 나왔는데 육지는 소금물과 사탕수수의 즙과 알콜을 포함하고 있는 증류수와 맑게 정제된 뻐터와 신 우유의 일곱개의 바다에 의하여 둘러싸여 있다는 등의 전설을 읽을 수 있습니다. 이것은 모순입니다.
클라크 박사 (Dr.D.S.- Clarke)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성경과 다른 책 사이에는 사람이 이루 헤아릴 수 없을 만한 큰 차이가 있다. 이 차이는 성경의 기원에서 생긴 것이다."
(2) 성경의 통일성입니다. 비록 성경이 1,600 여년에 걸쳐 40여명의 기자들에 의하여 여러가지 논제로 기록되었으나 주제와 목적의 통일성을 지니고 있는데 이는 하나의 주재자(주재자)에 의하여 성경이 완성되었다는 점을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3) 두번 다시 재독할만한 책이 얼마나 있습니까? 그러나 성경은 백번 읽어도 그 깊이를 헤아려 볼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독자의 흥미를 상실치 않는 책입니다
(4) 성경은 수백 가지 방언으로 번역되어 대개 세계 어느 나라에서나 읽어지리 만큼 굉장한 발행 부수를 갖고 있습니다.
(5) 성경의 영구성, 성경은 가장 오래된 책 중에 하나이면서도 가장 현대적인 책입니다. 아무리 인간의 영혼이 성장하여도 성경을 필요치 않을 정도로 성장치는 못할 것입니다. 생존을 위하여 빵을 요구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인간들이 하나님과 영원을 갈망하는 한 성경을 요구치 않을 수 없습니다.
(6) 과학의 박해와 저항에도 불구하고 성경은 그 명백을 보존할 수 있었습니다. " 쇠망치는 부서져도 모루는 그대로 남게 된다."
(7) 성경 속에는 성취된 많은 예언이 들어 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묵상할 내용
1. 성경 말슴씀이 왜 권위가 있습니가?
2. 그대가 생각할 때 성경을 다른 책과 비교할 수 있습니까?
3. 사순절 기간동안 어떤 책을 일독하고 싶습니까?
4째날 2.24.
하나님의 존재 속에서 자신을 발견하시기 바랍니다.
전도서1:1-11
사순절 기간에 우리는 창조주 하나님에게 감사하며 찬양하는 것을 잊어서는 않됩니다. 하나님의 은총을 입어 구원받고 은혜가운데 지내고 있는 우리들입니다. 그분의 존재에 대한 긍정적인 자세가 가장 중요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들은 전능한 창조주로 전제 조건으로 하는 광대 무변한 우주 속에 살고 있는데 이 우주의 아름다움과 질서와 설계는 현명한 입법자(Lawgiver)를 가르키고 있습니다. 그러나 창조주는 누구가 만들었느냐? 우리들은 인과 관계를 따져 볼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 영원한" 존재를 인정치 않고는 끝없이 인과 관계를 따질 수는 도저히 없습니다. 그 영원한 존재는 하나님이요, 영원한 분이십니다. 또한 모든 존재하는 선한 것의 원인이요 근원이십니다.
성경 속에는 하나님의 존재를 형식상의 증명으로 입증하려고 시도된 곳이 한곳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존재는 인간에게는 하나님의 분명한 사실과 또 당연한 신앙으로 나가는 예배 단계로서의 하나님의 존재에 관한 일련의 증거가 제시되어있는 곳이 한 곳도 없습니다. 성경은 인간에게 하나님의 존재의 사실을 선언하는 동시에 믿음의 모험을 할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 나오는 자는 그가 계신 것을 믿어야 한다"는 말이야말로 인간의 하나님께 대한 관계에 있어서 첫 출발점이 됩니다.
참으로 성경은 심중으로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다고 말하는 자들을 "미련한 사람들"이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즉 다시 말하면 생활권 내에서 하나님을 추방해버렸기 때문에 하나님을 사색의 영역에서까지 내쫓은 사람들은 실제로 경건치 못한 사람들이요, 무신론자들입니다.
성경은 어디에서나 하나님은 이미 알려져 있는 존재로 설명되어 있는 까닭에 하나님의 존재를 한 번이라도 존증하려고 시도해 본 적이 없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존재에 대하여 별로 논의하려고 하지 않은 것과 같이 하나님을 알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논증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왜냐고요? 하나님은 살아계신 영원하신 창조이시기 때문입니다.
묵상할 내용.
1. 우주를 바라보면서 느낄 수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2.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3. 성경은 하나님을 알 수 있도록 논증하고 있습니까?
사순절 첫주일 2.26 주일
하나님은 모든 만물의 원인이십니다.
창세기 1:1-3
이성은 우리들에게 우주에는 반드시 시작이 있었으리라는 것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모든 결과는 반드시 적당한 원인을 갖고 있는 것입니다. 우주는 하나의 결과이므로 반드시 원인이 있을 것입니다. 우주의 크기에 대하여 생각해 보십시다.
죠지.그레이 (George.W.Grey)의 글 가운데서 다음과 같은 말을 읽어 볼 수 있습니다.
"우리들이 보는 바와 간이 우주는 수천 수백만의 은하의 체계이다. 은하의 체계는 각각 수천 수백만의 별들로 이루어진 성군이다. 은하수의 외곽쪽에 상당히 열도가 높고 보통 크기의 별이 있는데 이는 연령적으로 상당히 노쇠하였다. 이 별을 우리들은 태양이라고 부른다.지구보다 태양이 수백배 더 크다는 것을 한번 생각해 보라!“ 그는 계속해서 언급합니다.
"태양은 은하수 외곽을 일초에 12마일의 속도로 회전하면서 지구와 기타 유승의 뒤를 따르고 있다. 동시에 태양계는 마치 은하수 자체가 하나의 큰 별의 바람개비 마냥 회전하고 있는 동안에 일초에 200마일의 속도로 큰 원호를 이루어 회전하고 있다..... 하늘의 여러 부분을 사진을 찍어 별의 수를 조사할 수 있다. 하버드대학 관측소에서 나는 넓이 14인치 길이,17인치의 사진판에 기록되어 있는 200여 은하수의 영상이 들어있는 사진을 보았다. 우주를 구성하고 있는 은하수 대략 500억으로 추산된다."
어떻게 우주 삼라만상 모든 것이 시작되었는가 ? 이와 같은 질문은 당연한 것입니다. 왜 냐하면 우리들은 모든 결과는 원인을 갖고 있다는 것을 기대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이 우주는 제일 원인 또는 창조주를 갖고 있음에 틀림없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됩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창1:1)
회의론자나 진화론자들과 논쟁할 하등의 가치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주 삼라만상을 창조하셨고 그것은 오늘의 모습 그대로가 창조의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묵상할 내용
1. 만물의 원인은 누구입니까?
2. 현재의 우주는 하나의 결과입니다. 원인이 있었을까요?
3. 지구는 창조되었을까요?
5째날 2.27.
하나님은 우주삼라만상의 설계자이십니다.
욥기37:5,6
선데이 스쿨 타임즈 (Sunday School Times)의 만화가인 에이.제이.페이스(A.J.Pace)씨는 확대 사진의 전문가였던 고(고)윌슨.제이.벤틀리(Wilson.J.Bemtley) 와의 인터뷰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이 사람은 사십년 이상 눈송이의 결정체를 사진을 찍은 그에게, 눈송이의 육각의 조화미에 관하여 설명해 달라는 질문을 받고 그는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습니다.
"물론 하나님 이외에 알 사람이 한 사람도 없습니다. 눈송이의 결정체는 빙점 이하의 온도에서 수증기로부터 결정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물은 세 개의 분자 즉 두 개의 수소 분자와 한 개의 산소 분자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각 분자는 양전기와 음전기를 지니고 있는데 이로 말미암아 반대쪽에서 상극 작용을 이르킵니다. 아시다싶이 삼(삼)이라는 숫자는 맨 처음부터 작용하였습니다 "어떻게 이 모든 점들과 동그라미들과 우아한 곡선들과 점으로 미묘하게 쫀듯 한 사삭의 끝들이 한데 어울려 완전한 조화미를 이루고 있습니까?"라고 페이스가 물었답니다. 그는 어깨를 으슥 움추리면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습니다. "오직 그것들을 설계하여 만든 예술가(하나님)만이 어떻게 그렇게 되였는지 알 수 있습니다." 삼이라는 숫자는 맨 처음부터 작용하였다." 마치 어떤 예술가가 그의 걸작품에 그의 이름을 싸인하듯 피조물에 온각 아름다움을 창조하신 삼위 일체의 하나님께서 그의 "삼위 일체성을"을 별 모양으로 된 가냘픈 얼음의 결정체 속에 싸인한 것이 아닐가요? 누구나 자세히 살펴 보면 눈송이의 구조의 기초가 되는 중요한 원리를 육각의 구조로서 기하학의 영역에 있어서 독특한 것이며 외접원의 반경의 길이는 육각형의 여섯변의 길이와 꼭 같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리하여 여섯개의 완전한 이등변 삼각형들이 하나의 중심을 이루어 형성되는데 모든 각은 육십도입니다. 삼각형은 삼위 일체의 하나님에 관한 얼마나 적절한 상징이 되는가! 하나의 통일체인 삼각형은 전체의 통일에 절대 긴요한 삼변으로 이루어졌습니다.
눈이라는 히브리어가 전혀 삼이라는 문자들 (thress)로써 구성되여 있는 것을 찾아 볼 수 있습니다. 히브리어의 쉘레그(sheleg)라는 말은 (히브리어로 "눈"이라는 뜻임.) "눈"이라는 뜻과 동시에 333이라는 숫자를 의미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영어의 "SH" 에 해당하는 히브리어의 첫 글자는 300이고 둘째 자음인 "L" 은 30이요, 마지막 글자인 "G"는 3이다. 그러므로 이 셋을 합하면 333이라는 숫자가 생기게 됩니다. 신기하지 않은가요? 그러나 완전히 영감된 책 속에서 수학적 정확성을 기대하지 못할 이유가 나변에 있는가요?
묵상할 내용
1. 우주삼라만상에 설게자가 있을까요?
6째날 2월28일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출애급기 6:3,33:19,34:5,6
하나님은 누구이시며 또 어떤 분이십니까? 지금까지의 하나님에 대한 최선의 정의를 웨스터민스터 교리 문답 속에서 찾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영원 무궁토록 불변하는 무한한 영이요 그의 존재 속에 지혜와 능력과 성격과 의와 선과 진리가 거한다." 하나님의 명칭에 관하여 연구하여 보면 성서적 정의를 명확히 계통을 세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성경 속에 있는 하나님의 명칭은 다만 문자의 결합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시된 인격을 나타낸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이름을 선포하여 나타냄으로써 자신을 계시하신다 (출6:3,33:19,34:5,6). 하나님을 예배함은 그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요 (창12:8) 그의 이름을 경외하는 것이요 (신28:58). 그의 이름을 찬양하는 것이요(삼하22:50). 그의 이름에 영화를 돌리는 것이다.(시68:9).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것이나 (출20:7) 욕되게 하는 것은(레18:21, 24:16) 악한 것이다. 하나님을 존경하는 것은 곧 그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는 것이다.(마6:9). 하나님의 이름은 그의 백성을 높이 드시며 (시20:1) 그의 이름을 인하여 그는 그의 백성을 버리지 않을 것이다. (삼상12:22).
다음은 가장 평범한 하나님에 대한 성서상의 명칭들이다.
(a) 엘로힘 (Elohim)
이 명칭은 하나님의 창조의 능력과 전능성이 기술되거나 암시되어질 곳에 사용되었다. 엘로힘은 창조의 신 (the Creator-God)이다 복수형은 능력의 충만과 삼위 일체성을 암시해 주고 있다.
(b) 여호와 (Jehovah)
창조의 신이신 엘로힘은 피조물의 필요를 아시고 내려오셔서 그들을 도와주시고 구원해 주십니다. 이러한 관계 속에서 그는 그 자신을 언약의 신 (the Covenant God) 이신 여호와로 계시하십니다.
여호와라는 명칭은 존재 (To be) 를 나타내는 동사에서 온 것으로 과거, 현재, 미래의 세가지 시제(the three tenese)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명칭은 존재하였던 분, 존재하고 계신 분, 존재할 분 곧 다시 말하면 영원하신 분을 의미합니다. 여호와는 자기 자신을 인간에게 계시하시는 신이므로 그 명칭은 다음과 같은 뜻입니다. “나는 나 자신을 나타내었고 또 나타내고 있으며 나타낼 것이다.”
묵상할 내용
1.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웨스터민스터 신앙고백을 따라 말해 보십시오.
2. 여호와란 명칭은 하나님의 어떤 모습을 보여주십니까?
7째날 2월29일
하나님은 여호와이십니다.
출애급기15:26
어제에 이어 말씀을 나눕니다. 사순절의 주인공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을 더 깊이 묵상하고 그대가 만날 하나님을 깊이 사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여호와 이스라엘 백성과의 관계는 야훼의 언약의 명칭들 속에 요약되여 있다. 병들어 누워 있는 자들에게는 "병을 치료해주시는 신" 이신 여호와_ 라파 (Jehovah-rapha) 로 알려져 있습니다.(출 15:26). 원수들에게 압제를 당하였을 때에 그의 백성들은, 우리들의 깃발이신" 여호와 -닛시 (Jehovah-nissi)라고 그를 불렀습니다.(출17:8-15). 근심에 싸여었을 때에 그들은 그가 "우리들의 평화" 이신 여호와 살롬(Jehovah-shalom)임을 깨달았습니다. (삿6:24). 이 세상에서 나그네 되었을 때에 그들은 "목자"이신 여호와-라하 (Jehovah-ra'ah)의 필요성을 느꼈습니다.(시23:1).정죄를 지각하고 의의 필요성을 의식하였을 때에 그들은 "우리들의 의의신 여호와 -지드케누 (Jehovah-Tsidkenu)에게 소망을 걸고 부르짖었습니다.(렘23:6). 궁핍할 때에 그들은 그가 "궁핍을 채워 주시는 신"이신 여호와-이레(Jehovah-Jireh)인 줄을 깨달았습니다(창22:14). 하나님의 나라가 세상에 임할 때에 그는 여호와 -삼마(Jehovah-Shammah)로서 알려질 것입니다(겔44:35).
(c) 엘 (EL)(하나님) 은 복합어로서 사용되어 집니다. 엘엘이 하나님은 신들이라고 불리워지는 다른 존재들보다는 훨씬 우월한 분이입니다. 엘샤-다이(EL- Shaddai)는 "그의 백성의 궁핍을 채워주는 신"입니다(출6:3),엘-올암(EL-Olam)은 "영생하시는 하나님"입니다(창21:33).
(d) 아도나이 (Adonai)는 글자 그대로 "주" (Locd)또는 "선생" (Master)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이 명칭은 통치권과 주권의 개념을 갖고 있습니다. (출 23:17,사10:16,13). 그는 그의 인격과 행위 때문에 그의 백성의 봉사와 충성을 요구합니다. 신약에서 이 명칭은 영화롭게 된 그리스도에게 적용되었습니다.
(e) 아버지(Father) 라는 명칭은 구약과 신약에 모두 사용되었습니다. 광범위한 의미에서 아버지라는 명칭은 만믈의 생산자와 인간의 창조주로서의 하나님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창조적 의미에 있어서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자손이라고 불리워질 수 있습니다.(행17:28). 그러나 이와 같은 관계가 인간의 구원을 보증해 주지는 않습니다. 다만 성령으로 새롭게 거듭난 사람만이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요1:12,13).
묵상할 내용
1. 사순절 기간 내내 그대가 만날 여호와를 말씀하십시오.
2. “엘”, “아도나이”와의 개인적인 관계를 말씀하십시오.
3. “아버지” 하나님이라고 부르시면서 느껴지는 느낌을 말씀하십시오.
8째날 3월1일
하나님은 속성을 계시하십니다.
요한복음4:24
하나님은 무한한 존재이기 때문에 하나님을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알 수 있는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나 그는 인자하게도 자기 자신을 우리들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계시하셨습니다. 그리고 성경 속에 내포되어 있습니다. 가령 예를 들면 하나님께서는 자기 자신을 가르켜 "나는 거룩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하나님은 거룩하시다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거룩함이야말로 하나님의 속성입니다. 왜 그러냐 하면 거룩이야말로 하나님께 적용할 수 있는 특질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하나님께서 자기 자신을 나타낸 계시의 도움을 받아 하나님에 관한 생각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절대적 속성은 모든 만믈이 존재하기 이전에 하나님께서 어떻게 존재하게 되었는가라는 질문에 해답을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활동적 속성은 하나님과 우주와의 관계를 맺고 있는 것을 알려 줍니다. 하나님의 도덕적 속성은 하나님과 그의 도덕적 존재들과 관계를 맺고 있는 것을 말합니다.
실로 하나님은 영이십니다 (요4:24) . 하나님은 인격을 갖고 계신 영이시다. 그는 생각하며 느끼며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그는 그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피조물과 직접적인 교제를 가질 수 있습니다.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은 없다" 고 요한은 선언하였습니다. (요1:18,출33:20). 그러나 우리는 일생을 믿음생활하면서 영이신 하나님이 육신을 입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을 만날 수 있게 하셨슴을 감사드립니다.
우리 하나님은 무한하십니다. 곧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서는 자연과 인간의 제한에 구애받지 않으시는 속성을 가지고 계십니다.(신33:27). 그리고 하나님은 하나이십니다.(출20:3,신4:35,39,6:4,삼상2:2,삼하7:22,왕상8:60,왕하19:15,느9:6,사44:6-8,딤전 1:17) 복합적 단일성이십니다.(신 6:4)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하나인 여호와시니"라는 말씀은 구약 시대의 종교의 근본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많은 거짓 신들을 섬기는 이방인의 세계를 향한 이스라엘의 독특한 멧세지가 되었던 것입니다.
묵상할 내용
1. 하나님은 속성을 가지고 계십니다.
2. 거룩하신 하나님의 속성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3. 영이시며, 무한하시고, 한분이신 하나님을 오늘의 우리가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9째날 3월2일
하나님은 능치못하심이 없으신 주권자이십니다.
창세기17:1,18:14,출15:7
하나님은 전능하십니다 (창1:1,17:1,18:14,출15:7,신3:24,32:39,대상 16:25,욥40:2,사40:12-15,렘32:17,겔10:5,단3:17,4:35,암4:13,5:8,슥12:1,마19:26, 계 15:3,19:6). 하나님의 본성과 모순되지 않는 모든 것을 행할 수 있는 그의 능력과 자유 "하나님은 능치 못할 것이 없느니라." 전능하신 하나님에 의하여 모든 생명을 유지되고 있습니다.(히1:3,행17:25,28,단5:23).
하나님은 무소 부재이십니다. 즉 다시 말하면 공간의 제한을 받지 않으십니다(창28:15,16,신4:39,수2:11,시139:7-10,잠15:3,11,사66:1,렘23:23,24,암9:2-46, 행7:48,49,엡1:23).
하나님은 전지하십니다. 곧 모든 것을 다 아시고 계십니다.(창18:18,19,왕하8:10,13,대상28:9,시94:9,139:1-16,147:4,5,잠15:3,사29:15,16,40:28,렘1:4,5,겔11:5,단2:22,28,암4:13,눅16:15,행15:8,19,롬8:27,9,고전3:20,딤후2:19,히4:13,벧전 1:2,요1서3:20). 하나님의 지식은 완전하십니다. "하나님 너희 아버지께서 아시느니라"(마6:8)
하나님은 현명하십니다.(시104:24,잠3:19,렘10:12,단2:20,21,롬11:33,고전1:24,25,30,2:6,7,엡3:10,골2:2,3,). 하나님의 지혜는 그의 전지와 전능의 결합에서 온 것입니다. 그는 그의 지식을 최선의 수단에 의하여 실현될 수 있는 최선의 목적에 적용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항상 올바른 일을 적당한 때에 올바른 방법으로 행하십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계획하시고 또 모든 사건의 과정을 자기 자신의 선한 목적을 위하여 지배하실 때에 이 행위를 섭리하고 부릅니다.
하나님은 주권자이십니다. 곧 다시 말하면 하나님은 그가 원하는대로 그의 피조물을 다스리고 처리할 절재적 권리를 갖고 계십니다.(단4:35,마20:15,롬9:21). 그는 그의 무한한 우월성과 모든 것에 대한 그의 절대적 소유권과 모든 만물이 지속하기 위하여 그에게 의존하는 절대적 의존성에 의하여 이와 같은 권리를 갖고 계십니다.
우리는 사순절 기간에 더할 나위없으신 하나님의 은총으로 전지 전능하시고 무소부재하시며 현명하신 주권이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슴을 깊이 감사하여야할 것입니다.
묵상할 내용
1. 하나님의 전능하심으로 무엇이 유지됩니까?
2. 하나님은 시공간의 제한을 받지 않으십니다. 믿습니까?
3. 현명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어떻게 인도하십니까?
10째날 3월3일
무소부재하신 하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시편 103:17 로마서14:17, 히13:8
무소 부재하신 하나님이 피조물에게 어떤 방법으로 임재하실까요?
(1) 영광 가운데서 만군의 여호와가 나타나십니다.(사6:1-3).
(2) 효과적으로 자연의 질서 가운데 나타나셨습니다. (나1:3).
(3) 섭리에 의하여 인간의 여러가지 일 가운데 나타나셨습니다.(시68:7-8).
(4) 주위 깊게 하나님을 찾는 자들에게 나타나십니다.(마18:19,20,행17:27).
(5) 심판하시려고 악한 사람들의 양심에 나타나십니다. (창3:8 시68:1,2).
인간은 우주의 어느 구석에서나 그의 창조주의 법을 피할 도리가 없습니다. 어느 한 중국인은 중국인 신자에게 이렇게 말하였답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어느 곳에서나 계시다면 그는 지옥에도 틀림없이 계실 것입니다." 이에 대하여 중국인 신자는 재빨리 "그의 노여움은 지옥에 있읍니다."라고 대답하였습니다.
어느 무신론자가 "하나님은 아무 곳에도 계시지 않는다."(God is no where)고 기록하여 놓았더니 그의 어린 딸이 "하나님은 지금 여기 계시다."God is now here)라고 읽은 일이 있다는 말을 들었다고 했답니다. 그는 이 말을 듣고 양심에 가책을 받았다고 고백하였습니다.
(6) 육체로 그의 아들 속에 거하십니다 (골2;9)."하나님께서 우리들과 함께 거하신다.."
(7) 신비하게도 교회 속에 거하십니다(엡 2:12-22).
(8) 공식으로 그의 일꾼들과 함께 계십니다 (마28:19,20).
하나님은 어디에나 존재하고 계신 한 편 어디에나 거주하시지는 않습니다. 다만 하나님께서 어떤 개인이나 단체와 인격적 관계를 맺을 때에 그들과 더불어 함께 거하신다고 일컬어집니다.
우리가 사순절 기간동안에 하나님의 임재의 역사가 일어나길 소원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임재하시는 여러 가지 방법, 그 방법들 중에서 어느 한가지라도 우리에게 이루어져 하나님의 임재하심을 누릴 수 있다면 그 이상 더 좋은 것은 없을 것입니다.
묵상할 내용
1. 하나님의 임재는 가능하다고 생각하십니까?
2. 섭리적인 하나님의 임재하심을 느껴보신 적이 있습니까?
3. 하나님과의 인격적 관계를 맺기를 원하십니까?
사순절 2째주일 3월4일 주일
하나님은 거룩하시며 사랑으로 충만하십니다.
시편111:9,이사야6:3,43:14,15,예례미야23:9
은혜(恩惠)로우신 하나님이 역사하십니다.
우리가 믿을 때 희망을 가지고 감사하며 믿음생활을 유지하는 많은 이유중에 하나가 하나님은 은혜(恩惠)로우시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시며 성실하시며, 자비(慈悲)로우심으로 말미암아 그의 은혜(恩惠)는 지극한 것입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거룩하십니다. 무죄하신 하나님으로서 죄많은 우리를 거두어주셨다는 사실은 엄청난 은총입니다.(시111:9,사6:3,43:14,15,렘23:9,벧전1:15,16,계4:8,15:3,4). 하나님의 성결은 그의 절대적 도덕상의 순결을 의미합니다. 그는 죄를 범치 않으실 뿐만 아니라 죄를 허용치도 않으십니다. "거룩(Holliness)"의 근본적 의미는 "격리(隔離 Seperation)"입니다.하나님의 거룩함은 하나님의 의를 드러내십니다. 하나님의 의는 공의이시며(창18:25) 이것은 심판으로 이어집니다. 심판하실 자리에서 우리를 대신하여 그리스도를 십자가로 심판하시고 우리를 구원하신 것은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사랑을 베푸신 것입니다.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은 진실로 성실하십니다. “성실”은 말한 바를 이루신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은 약속하신 말씀을 절대적으로 이루시는 분이시라는 말씀입니다. 실로 그는 절대적으로 믿을만하며 그의 말씀은 틀림없습니다. (렘4:28,롬3:4,15:8,벧전4:19,계15:3).
그리고 하나님은 자비와 사랑에 넘치십니다. "하나님은 자비심은 그의 피조물인 죄인들을 구원하시려고 오래 참으십니다. (Hodges) 하나님의 자비심은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심으로 나타났으며 (눅1:78). 이것은 하나님의 사랑이십니다. 사랑은 하나님의 속성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그의 형상을 지니고 있는 사람들과 인격적 관계를 맺고자 하십니다. 특별히 인격적으로 하나님과 같이 거룩하게 창조된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자 하십니다. 이와같은 일을 이루시는 하나님은 진실로 선하십니다.그렇기 때문에 그는 그의 피조물들에게 생명과 그밖에 다른 축복들을 무한히 베풀어 주십니다. (시25:8,시145:9,롬2:4,시68:10,85:5).
우리가 한결같으신 하나님의 은혜를 입으면서 오늘을 산다는 것은 진실로 행복입니다. 그분의 거룩하심, 성실하심, 자비와 사랑 그리고 선하심이 오늘의 우리를 믿음의 사람이 되게 하시고, 더나아가 하나님의 나라를 향하여 살 수 있는 사람이 되게 하심은 갚을 수 없는 은혜이오며 이같은 은혜를 생각하면서 깊은 감사와 찬양이 넘치는 귀한 날이 되시기를 바라면서 내일 또 뵙겠습니다.
묵상할 내용
1. 은혜로우신 하나님을 설명하시기 바랍니다.
11일째 3월5일
악과 고통이 존재하는 것을 어떻게 보아야할까요?
누가복음 18:7,8
사순절 기간에 "왜 사랑의 하나님이 고통으로 가득찬 세계를 창조하셨는가"라고 의문의 해답을 발견하기 바랍니다.
이렇게 생각해보십시다.
하나님은 악에 대하여 책임을 질 필요가 없습니다. 만일 조심성 없는 직공이 부주의하여 아주 섬세한 기계 속에 모래를 집어 넣었다면 그 기계를 제작한 사람이 책임을 짊어져야 하겠습니까? 하나님은 모든 것을 선하게 창조하셨습니다. 그러나 인간이 하나님의 창조물들을 망쳐놓았습니다. 누가 책임져야할까요?
하나님은 전능자이시기 때문에 악은 그의 허락을 받아 존재합니다. 왜 하나님께서 악이 세상에 존재하도록 허락하시는지 그 이유를 우리들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왜냐 하면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사색적인 사람에게는 "네 사색이 너에게 무엇을 줄 수 있느냐? 너는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하나님의 길의 일부분은 이해할 수 있습니다. 곧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서 과오를 범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대단히 위대하시기 때문에 선을 위하여 악을 억압하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요셉의 형제들과 바로와 헤롯과 그리스도를 못박은 사람들의 죄악을 어떻게 억압 하셨는가를 기억하십시오. 그러나 많은 기독교인들은 고통과 시련의 불길 가운데서 인격을 정화시켰으며 믿음을 공고히 하였습니다. 고통이란 불로 연단된 인격을 사는데 필요한 대가였습니다.
하나님은 이 우주를 자연 법칙에 의하여 조정하셨습니다. 그런데 이 자연 법칙 속에는 우발적 사고의 가능성이 게재되어 있습니다. 가령 예를들면 만일 어떤 사람이 부주의로 인해서 또는 고의로 낭떨러지에서 떨어지게 되면 그는 중력의 법칙을 범한 결과로 해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이와 같은 법칙이 있음을 대단히 고맙게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만일 이와 같은 법칙이 없다면 이 세상은 온통 혼란한 상태에 빠지고 말기 때문입니다. 우리들은 항상 이 세상이 완전한 질서의 세계가 아니라는 것을 기억해야만합니다. 하나님게서는 현재 뿐만 아니라 미래의 모든 것도 주관하십니다. 하나님께는 "하늘 나라의 표준시 (Heavenly Standard Time)에 의하여 일하고 계시기 때문에 우리들은 그가 지체하고 있다고 생각하기 쉬우나 그러나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속히 풀어주실 것입니다. (눅18:7,8).
묵상할 내용
1. 사랑의 하나님이 고통을 창조하셨습니까?
2. 모든 고통을 뛰어넘어 우리가 감사할 것은 무엇입니까?
12일째 3월6일
어떻게 삼위가 일체가 되어 유일신이 될 수 있을가요?
고린도후서13:13
이 질문은 많은 사람들을 당황케 만들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와 같이 이 문제에 부딪혀 당황케 되는 것은 조금도 이상할 것이 없습니다. 왜냐 하면 우리들이 영원한 하나님의 내적 본질을 생각해 볼 때에 우리들이 존재하는 형식과 하나님의 존재 형식과는 판이 하게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이성을 훨씬 초월하여 진리에 도달할 수 있는 방법도 있지만, 진리는 인간의 이성으로도 파악될 수 있습니다. 예증(illustration)이나 유추법(analogy)으로 삼위일체를 완전하지는 않지만 설명하기도 합니다.
(1) 물은 하나의 요소이지만 세 가지 형식 즉 물과 얼음과 눈으로 각각 변형될 수 있습니다.
(2) 전기는 하나이지만 세 가지 모양, 차를 움직이는 동력과 빛과 열과 불의 세가지로 나타납니다.
(3) 태양도 역시 하나지만 빛과 열과 불의 세 가지로 나타납니다.
(4) 성 패트릭(St.Patrick)이라는 사람이 아일랜드 사람들에게 삼위 일체의 교리를 설명할 때에 세 잎 크로바를 예로 들었습니다.
(5) 빛에는 세 가지 광선이 있습니다. 첫째는 화학 방사선 (the actinic)으로 볼 수 있습니다. 둘째로 발광선 (the luminiferous)으로 볼 수 있습니다. 세째로 발열선(tje calorific)으로 열을 발하여 감각할 수 있으나 볼 수는 없습니다. 세가지 선이 있는 곳에 빛이 있고 빛이 있는 곳에 이 세가지 선이 또한 있답니다.
사도 요한은 "하나님은 빛이다"고 말하였습니다. 성부는 볼 수 없습니다. 그러나 성자를 통하여 볼 수 있게 나타났습니다. 또한 성부께서는 성령을 통하여 이 세상에서 역사하고 계십니다. 그런데 성령은 볼 수는 없으나 능력은 많으십니다.
(6) 세 개의 초를 한 방안에 켜 놓을 것 같으면 빛은 하나로 비칩니다.
(7) 삼각형은 세 변과 세 개의 각을 갖고 있습니다. 만일 삼각형의 한 변을 떼내 버리면 이미 그것을 삼각형이라 할 수 없습니다. 세 각이 있는 곳에 하나의 삼각형이 이루어집니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사람은 하나의 인격이지만 영(Soul),혼(Spirit),몸(Body)의 세 가지요소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묵상할 내용
1. 삼위 일체 교리를 이해하실 수 있습니까?
2. 삼위 일체를 입증할 마음에 와닿는 예증을 한번 말씀하여 보시기 바랍니다.
13일째 3월7일
천사(Angels)란 과연 존재하는 것입니까?
요한계시록19:10,22:8,9
우리들의 주위에는 인간들이 볼 수 있는 세계보다 훨씬 조밀하고 풍부하고 강력한 영계 (a spirit world)가 있다고 성경은 계시하고 있습니다. 감히 드릴 말씀은 우리들 사이에는 선한 영도 악한 영도 마음대로 다니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 영들은 번갯불 같은 빠른 속도로 이곳에서 저곳으로 아무 소리도 내지 않고 민첩하게 이동합니다. 이 영들은 공중에 살고 있습니다. 어떤 영들은 우리들의 복리에 관심을 갖고 있으나 또 다른 영들은 우리들을 해하려고 합니다. 영감을 받은 성서 기록자들은 이 볼 수 없는 세계의 장막을 헤치고 이 볼 수 없는 세계를 통해 천사들의 모습을 우리들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천사들(Angels)을 성경은 피조물(Creatures계19:10,22:8,9),영들(Spirits),불멸 (Immortal),다수(Numerous)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천사들은 주의 천사(The angel of the Lord), 천사장(The archangel), 선택된 천사들(Elect angels), 열국의 천사들(Angels of nations), 그룹(Cherubim), 스랍(Seraphim)으로 표현되고 있습니다.
천사들은 순종하고 (Obedient),경건하며 (Reverent),현명하고 (Wise),온유하나 (Meek),강대하며(Mighty) 거룩한 존재들입니다. (Holy) 그들은 하나님의 대행자 (God's agents)로서 하나님의 심판의 명령을 시행하는 집행자로서 천사들이 묘사되어 있습니다 (민22:22-27,마13:39,41,49,) 또한 하나님의 사자(God's messengers)로 예고(눅1:11-20), 격려(행27:23), 계시하기도 합니다.(행7:53.단9:21-27)
그리고 그들은 하나님의 종 (God's Servants)입니다."모든 천사들은 부리는 영으로서 구원 얻을 후사들을 위하여 섬기라고 보내심이 아니뇨?" (히1:14). 천사들은 격려하기 위하여 (마4:11,왕상19:5), 보호하기 위하여(창16:7계7:1), 구원하기 위하여(민20:16,시34:7,사36:9,단6:22,마26:53), 중재하기 위하여(슥 1:12,계8:3,4), 의롭게 살다 죽은 사람을 수종들기 위하여 보냄을 받기도 합니다.(눅16:22).
묵상할 내용
1. 천사들의 특징은 무엇입니까?
2. 천사들은 무엇을 합니까?
14일째 3월8일
사탄(Satan)의 실존을 이해하십니까?
이사야14:12-15, 에스겔 28:12-19
사순절 기간은 사탄에 의하여 자행된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을 묵상하는 절기입니다. 그리고 그 고난은 마침내 부활로 승리하기에 승리의 길로 나아가는 은혜로운 여정입니다. 이 여정에서 사탄은 등장할 수 밖에 없습니다.
성경은 사탄은 본래는 루시퍼(Lucifer)였으며(루시퍼의 문자 그대로의 뜻은 빛을 지닌 자이다). 이 루시퍼는 모든 천사 중에 가장 영광스러웠으나, 그러나 그는 지극히 높은 자와 같이 되려는 교만한 야망 때문에 정죄를 받게 되었다고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딤전 3:6) "이 세상의 신"으로서 경배를 받고자 하였고(고후 4:4), 적 그리스도가 될 때에 잠시동안 실현되어 만족함을 얻을 것입니다.(계13:3).
사탄은 그의 범죄에 대한 형벌로서 하늘로부터 추방되었습니다. 사탄이 추방될 때에 그의 반역에 동참했던 천사들도 같이 추방되었습니다. (마25:41,계12:7,엡2:2,마12:24). 사탄은 이브를 그의 협력자로 만들고저 하였으나 하나님께서는 그의 음모를 좌절시켰습니다.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하고...." (창3:15).
사탄의 특성은 그의 명칭에서 알 수 있습니다. (a)사탄(Satan)은 "원수"(adversary)(b)마귀(Devil)는 "중상모략자 (Slanderer)" (계 12:10,욥 1:9).(c)파괴자(Destroyer)라는 말은 히브리어로는 "아마돈 (abaddon)"요, 헬라어로는 "아볼루온(Apollyon)"(계9:11)은 “파괴자의 신(Destroyer-god)”.(d)유혹자(Tempter)"는 “시험한다” (f)이 세상 임금과 신 (Prince and god of this world)은 (요12:31,고후4:4)"온 세상은 악한 자 안에 처한 것"을 의미합니다. (요1서5:19)
사탄의 운명은 태초에 하늘에서 추방되었고, 다시 대환란시에 하늘로부터 땅으로 내어 쫓기게 될 것이며, 그후에는 불못에 던지움을 받게 될 것입니다. (계20:10).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들에게 마귀의 궁극적 패배를 여실히 보여 주고 있습니다.
묵상할 내용
1. 사탄의 기원을 말하십시오.
2. 사탄이 하고 있는 중요한 일들을 열거하여 보십시오.
15일째 3월9일
인간이란 무엇일까요?
창세기 1:26-28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 (Gods Image in Man)입니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다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창5:1,9:6,전7:29,행17:26,28,29,고전 11:17,고후3:18,4:4,엡4:24.골1:15,3:10,약3:9,사43:7,엡2:10).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습니다. 곧 인격과 성품에 있어서 하나님과 같은 존재로 창조되었다. 성경 전체를 통해서 볼 때에 인간이 지향하는 목표와 표준은 하나님과 같이 되는 것입니다.(레19:2,마5:45-48,엡5:1). 하나님과 같이 되는 것은 곧 그리스도와 같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리스도는 볼 수 없는 하나님의 형상입니다.
실로 인간은 특성있는 존재요, 만물의 영장입니다. 그 특징을 요약하면
1. 인간은 생물학적 존재이면서 영적 존재입니다.
2. 도덕적 성격 (Moral Character)을 가졌습니다.
3. 이성 (Reason)을 가지고 있습니다.
4. 영원 불멸의 자격 (Capacity for Immortality)을 가지고 있습니다.
5. 지상의 지배권 (Dominion over the Earth)의 소유자입니다
창세기에서 인간의 특권을 이렇게 말씀합니다..“26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27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28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창1:26-28)
그리고 시편도 그렇습니다.
“그를 하나님보다 조금 못하게 하시고 영화와 존귀로 관을 씌우셨나이다 6 주의 손으로 만드신 것을 다스리게 하시고 만물을 그의 발 아래 두셨으니7 곧 모든 소와 양과 들짐승이며8 공중의 새와 바다의 물고기와 바닷길에 다니는 것이니이다”(시8:5-8)
그렇습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특별한 피조물입니다. 그 피조물로서의 특권을 에덴동산에서 타락함으로 상실합니다. 상실된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려고 하나님은 그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보내서 고난으로 잃어버린 것을 회복하도록 하셨습니다.. 사순절은 바로 이것을 기리는 은혜로운 기간입니다.
묵상할 내용
1. 사람은 누구의 형상입니까?
2. 하나님의 형상인 인간의 특성을 말하십시오.
16일째 3월10일
죄는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소홀히 하지 마십시오.
에베소서2:1-10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창조하고 나서 "심히 좋았더라"고 선언하셨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들이 자세히 관찰해 볼 것 없으면 선하지 못한 것들 즉 악과 부정과 압제와 투쟁과 전쟁과 죽음과 고통 등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인정치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면 죄악이 어떻게 세상에 들어왔습니까? 에덴동산에서 사탄에 의하여 들어 왔고 사람들의 불순종으로 시작된 것입니다.
죄의 사실 (The Fact of Sin)에 대하여 부인하거나 과소평가함으로 죄에 대한 잘못된 관념을 가지게 하는 사상이 우리 주변에 난무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무신론 (Atheism),결정론 (Deteriminism), 쾌락주의 (Hedonism), 크리스챤 사이언스 (Christian Science),진화론 (Fvolution)과 같은 것들입니다.이러한 사상이 오늘의 세계를 더욱더 죄로 물들게 하고 있습니다.
죄는 기원 (The Origin of Sin)을 가지고 있습니다. 역사를 가지고 있다는 말입니다. 사탄의 미혹에서 시작되었습니다.(Temptation: Its Possibility, Source, Suvtilty)
죄 (Guilt)는 하나님을 거역하게 하는데서, 그리고 하나님을 거역함으로 일어난 것입니다. 이를 우리는 원죄(Original Sin)이라고 합니다. 그 죄의 결과로 처음 그 죄에 연관된 모든 것은 심판을 심판 (Judgment) 뱀에게 (On the Serpent), 여자에게 (On the Woman),남자에게 (On the Man)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 죄로 인하여 심판을 맏아 에덴동산에 쫓겨난 하나님의 형상(Imago Dei)인 인간을 속죄 (Redemption)하시려고 약속하셨고 ( Promised ), 여자의 후손을 통하여 구원하시겠다고 예언하였습니다.(창3:15)
죄라고 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죄의 본질에대한 구약의 교훈은(old Testament Teaching)도덕적 영역에서 (In the Sphere of Morals) 부도덕한 것이며, 형제의 행위의 영역에서 (In the Sphere of Brotherly Conduct) 배신이며, 진리의 영역에서 (In the Sphere of Truth) 부정이고, 지혜의 영역에서 (In the Sphere of Wisdom) 무지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리고 신약의 교훈 (New Testament Teaching)에서 죄(Sin)는 빗나감 (Missing the Mark),빚(Debt),불법 (Lawlessness),불순종 (Disobedience),범죄 (Transgression),타락 (Fall),패배 (Defeat),불신앙 (Ungodliness),허물 (Error)입니다.
오늘 우리는 사순절 기간에 이와같은 죄와 하불을 헤결하여 주시기 위하여 이 세상에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가 오셨슴을 깊이 감사드리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죄로 인한 멸망에서 은혜로 구원을 받게 된 것입니다. (엡2;8)
묵상할 내용
1. 죄는 어떻게 사람 가운데 들어왔습니까?
2. 죄를 과소평가하는 주의와 사상을 말하십시오.
3. 죄에대한 신구약의 이해를 말씀하십시오.
사순절3째주일 3월 11일
죄의 결과는 사망이지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는 영생입니다.
요한복음5:24,25
사순절에 우리는 죄에서 해방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죄를 파악하여야 합니다.
죄의 결과 (The Consequences of Sin)는 행위인 동시에 또한 상태입니다. 하나님의 율법에 대한 반역이란 면에서 볼 때 죄는 인간의 의지에서 나온 행위요. 하나님으로부터의 격리라는 입장에서 볼 때 죄는 상태가 되는 것입니다. 범죄하면 비참한 결과가 범죄한 영혼에게 미치게 되며 하나님의 절대적 정죄함을 받게 됩니다. 하나님의 형상의 손상 (The Marring of the Divine Image)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을 완전히 상실한 것은 아니다. 비록 인간이 타락한 상태에 있을지라도 그는 여전히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피조물입니다 (창9:6,약3:9이와 같은 진실성은 다음과 같은 속된 표현 속에도 반영되어 있다. "아무리 악한 사람 속에도 약간의 선은 남아 있다." 영국의 위대한 정신병 연구자인 마우드슬레이(Maudesley)는 인간 정신의 타고난 위대성은 광증으로 말미암아 야기된 파멸 속에 현저히 들어나 있다고 주장하였습니다. (갈3:10).
타고난 죄는 "원죄 (original sin)"라고도 한다. 타락의 결과는 인간성 속에 너무 깊이 뿌리박혀 있기 때문에 죄의 경향성은 인류의 조상인 아담으로부터 유전되었습니다. (시51:5). 영적 결함을 갖고 죄가 습관화되어 "자범죄" (actual sin)를 짓게 되었지만 둘째 아담 되시는 그리스도께서 타락의 모든 결과의 영향력으로부터 우리들을 구원하게 위하여 세상에 왔습니다. (롬5:12-21).
죄가 들어 됨으로 인간은 자기 자신과도 원수가 되고 말았습니다. 내적 불화 (Inner Discord)가 일어난 것입니다.이와 같은 갈등의 절정에 이르러 인간은 다음과 같이 부르짖게 되었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 내랴" (롬7::24) "평강의 하나님"께서 (살전 5:23) 인간성의 서로 다투고 있는 요소들을 제거하여 주실 것이며 영과 혼과 육을 성별케 하십니다. 영적 축복의 결과는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 (롬14:17)입니다.
처음 사람이 "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창2:17)는 명령을 어김으로 사망이 따라왔습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요" (롬6:23).절대적 형벌 (Positive Punishment)입니다.하나님으로부터의 격리를 의미합니다. 이와 같은 죽음에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양상이 있습니다.(1) 육적으로 살고 있는 동안의 영적 죽음 (엡2:1,딤전5:6). (2) 둘째 죽음 또는 영원한 죽음 (계21:8,요5:28,29,살후1:9,마25:41).
그러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과 고난 그리고 부활로 우리는 속죄함과 영생의 은총을 누리게 되었으니 사순절은 진정으로 감사를 드려여할 기간이라 믿습니다.
묵상할 내용
1. 죄의 결과를 말씀하십시오.
2. 원죄와 자범죄의 차이는 무엇입니까?
3. 죄의 결과로 인생은 어떤 죽음을 맞이합니까?
17일째 3월12일
예수 그리스도는 누구입니까?
마태복음16:16
니케아 신조(the Nicence Creed)는 지금껏 많은 인용되었으며 아직도 여러 경우에 열거되는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 니케아 신조는 예수 그리스도에 관하여 초대 교회의 진실한 확신을 표명합니다..
" 우리들은 하나님의 독생자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 즉 신중의 신이요 빛중의 빛이요 참신 중의 참신이신 성부와 본질적으로 동일한 독생자들 믿는다. 그를 말미암아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만물이 창조되었으며 그는 우리들 인간의 구원을 위하여 세상에 육신의 몸을 입고 오셔서 고난을 당하신 후 삼일만에 부활하여 하늘에 승천하셨는데 죽은 자와 산자를 심판하시기 위하여 다시 오실 것이다."
사순절 기간에 특별히 우리가 그리스도의 본질 (The Nature of Christ)를 파악하기를 바랍니다.그리스도는 어떤 분이냐 하는 문제는 믿음생활에 본질적인 문제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아들 (신성)로 완전한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의 아들" (Son of God)은 하나님에게서 난 것을 뜻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칭호는 그리스도의 신성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인간이나 천사를 가리켜 하나님의 자녀라고 부르는 (욥2:1) 일반적 의미로 예수님을 가리켜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칭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는 독특한 의미에서 하나님의 유일한 아들 (The Son of God) 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이 우주 안에 있는 어떤 사람과도 나누지 않은 독특한 관계를 하나님과 맺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는 완전한 사람(인성)입니다.
"인자" (Son of Man)는 사람에게서 난 것을 의미합니다. "인자" (Son of Man)라는 칭호는 예수님의 지상 생활 (막2:10,2:28,마8:20,눅19:10) 과 인류를 대신하여 받은 그의 고난(막8:31)과 영광 중에 인류를 다스릴 그의 통치와 관련되어 있습니다 (마25:31,26:24,단7:14). 예수님께서 자신을 가리켜 "인자"라고 칭할 때에 그는 다음과 같은 의미를 내포하여 말하고자 하였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인 나는 또한 인간인고로 나약한 점도 지니고 있으며 고통도 당하며 죽음까지도 경험해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으므로 나는 죄를 용서할 수도 있으며(마9:6) 다만 일시적이요 민족적 의미 밖에 지니고 있지 않는 종교적 규례보다 우월하다.(마12:8) 이와 같은 인간성을 갖고 부활하여 승천하였다가 그와 같이 인간성을 지닌 사람들을 다스리기 위하여 재림할 것이다."
우리는 사순절을 통하여 하나님의 아들과 인자를 동시에 만납니다. 그리하여 그의 거룩하신 희생, 그 속죄함의 은총을 입게 됩니다.
묵상할 내용
1. 하나님의 아들을 설명하십시오.
2. 인자를 설명하십시오.
18일째 3월13일
예수 그리스도는 메시야이십니다.
마가복음1:11
예수님께서 구약에 약속된 메시아 곧 그리스도임을 주장하였다고 신약 성경은 끊임없이 우리들에게 선포합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도 그의 아들에게 성령의 능력으로 기름붓고 그에게 다음과 같이 기름 부음의 의미를 말씀해 주었습니다."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막1:11) 이 구절을 다른 말로 표현하면 "너는 여러 예언자들이 오리라고 예언한 여호와의 아들이니라 나는 여기서 너의 사명을 완수하는데 필요한 능력과 권위를 부여하며 축복하여 파송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전도를 받으면서도 아직 메시야가 올 것을 기대하고 있은 사람들이 있는데 이들은 불행하게도 정치적 색채가 농후한 메시아관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군인과 정치가를 겸한 아주 "강한 사람"을 대망하고 있었다. 예수님께서는 그런 메시야가 될 수 있었을가? 성령님께서는 예수님께서 이와 같은 문제를 갖고 사탄과 더불어 씨름하도록 광야로 인도했습니다. 그런데 사탄은 교묘하게 예수님에게 대중의 인기를 얻어 단시일 내에 쉽게 권력을 얻으라고 유혹하였습니다. 즉 대중의 물질적 욕구를 충족시켜 주라고 암시하였으며 (마4:3,4,요6:14,15,26) 성전 꼭대기에서 내려 뜀으로써 민중들을 현혹하여 민중의 지도자가 되어 백성들을 이끌고 나가 전쟁을 할 것을 유혹하였습니다.(마4:8,9,계13:2,4) 그러나 그는 십자가의 길로 가셨습니다.
지상생의 마지막에 예수님은 "이스라엘의 회중 (교회 행7:38)은 메시야로서의 나를 거부하고 그들의 지도자들은 이스라엘 나라의 바로 모퉁이돌이 되는 나를 파문할 것이다 (마21:42).그러나 하나님의 계획은 그것에 의하여 실패하지 않으리라. 왜냐 하면 나는 "베드로야 너와 같은 사람들로 구성된 또 다른 하나의 회중(교회)를 세우리라." (벧전 2:4-9). 이 회중들은 나의 신성과 나의 메시야를 믿으리라. 너는 회중에게 문을 여는 특권을 갖게 될 것이며 너와 너의 형제들은 일을 담당하게 될 것이다."고 하신 것입니다.
그 다음에 그리스도는 그의 부활 전에 그의 제자들이 완전히 이해할 수 없었던 말씀을 하셨습니다. (눅24:25-28). 곧 십자가는 메시야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의 일부분이었습니다. "이때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음을 당하고 제 삼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가르치시니" (마16:21). 때가 차매 엄연히 예언은 성취되었습니다. 고난의 메시야는 (사53:7-9) 죽음에서 부활하였고 (사53:10,11) 다니엘이 미리 영적 눈으로 본 것과 같이 하나님 우편에 승천하셨다. (단7:14,마28:18). 그리고 죽은 자와 산자를 심판하기 위하여 재림할 것입니다. 우리는 사순절 기간동안에 더 특별한 마음으로 메시야되신 주를 만나야 하리라 믿습니다.
묵상할 내용
1. 성령님께서 예수님을 어떻게 말씀해 주셨습니까?
2. 예수님 당시의 유대인의 메시야관을 말씀하십시오.
3. 예수 그리스도는 어떤 메시야이셨으며, 메시야 예언을 설명하십시오.
19일째 3월14일
예수 그리스도는 구원의 주이십니다.
갈라디아 4:4-5
구약은 하나님께서 구원의 근원이 되신다고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는 이스라엘의 구세주이며 구원자이십니다. 그는 그의 백성을 애굽의 종살이로부터 구원하셨습니다. 그 후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체험상으로 그가 구세주임을 알게 되었습니다.(시106:21 사43:3,11, 45:15,22,렘14:8).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대행자를 통하여 행동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그가 신비스러운 "자기 앞의 사자"를 통하여 이스라엘을 구원하신 사실을 읽어 볼 수 있습니다 (사63:9). 때때로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수단으로 사용하셨습니다. 모세를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의 종살이로부터 해방시켰습니다.
또한 때로는 사사들을 이르켜 이스라엘을 구원하였습니다.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가게 하시고 율법 아래 나게 하신 것은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도 아들의 명분을 얻게하려 하심이다."(갈4:4-5). 구세주께서 세상에 들어 오실 때에 그는 그의 지상의 사명을 나타내는 명칭을 받았습니다.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마1:21)
최초의 복음 전파자들은 유대인들에게 "구세주"의 의미를 설명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왜 냐 하면 그들은 이미 그들의 역사를 통하여 구세주에 대하여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행3:26,13:23). 유대인들은 마치 하나님께서 모세를 보내어 이스라엘을 애굽의 종살이에서 구원한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여 그의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신다는 것을 복음의 내용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알고는 있었으나 믿기를 거부하였던 것입니다.
십자가에서 그리스도께서는 그의 이름에 합당한 그의 사명을 완성하셨습니다. 왜냐 하면 사람을 죄에서 구원하신다는 것은 속죄를 의미하여 또 속죄에는 죽음이 따르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지상에 살고 계실 때에도 그의 이름에 합당한 생활을 했던 것입니다. 그는 항상 구세주이십니다. 모든 나라에 사는 사람들이 "나는 죄의 종이였으나 예수님께서 나를 일곱 마귀로부터 구원해 주셨다." 증언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어떤 중풍병자는 "예수께서 나의 죄를 용서해 주셨다."고 말할 수 있었던 것처럼 말입니다.
그러므로 사순절 기간동안 우리는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이세상에 오셔서 사람이 되셔서 고난의 길을 택하사, 우리를 속죄의 길로 인도하심으로 구원하여 주신 그리스도의 은총을 깊이 묵상하고 그의 은총의 문을 두드려야할 것입니다.
묵상할 내용
1.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어떻게 구원하셨습니까?
2. 최초의 복음 전도자들이 구세주의 의미를 설명할 필요가 없었던 이유는 무엇입니까?
3. 예수님께서 우리를 어떤 실상에서 구원하셨습니까?
20일째 3월15일
예수 그리스도는 직무를 가지고 계십니다. (The Offices of Christ)
로마서15:8, 요한복음19:15,디모데전서2:5
구약 시대에는 하나님과 그의 백성 사이에 세 가지 층의 중보자들 (Mediators)이 있었습니다. 즉 예언자와 제사장과 왕이였습니다. 그런데 완전한 중보자이신 (딤전2:5) 그리스도 속에는 이 세가지 직무가 다 구현되어 있습니다.예수께서는 만백성을 위하여 자기 자신을 제물로 드리는 제사장이시며 또한 만백성을 가르치는 예언자이시며 또한 만백성을 다스리는 임금도 되십니다.
예언자로서의 그리스도 (Christ the Prophet)입니다.구약 시대의 예언자들은 지상에 있는 하나님의 대행자로서 하나님의 뜻을 현재와 미래에 대한 관련시켜 나타냈던 것입니다. 메시야께서 이스라엘과 만백성에게 빛을 주어 교화하는 예언자가 되신다고 모든 예언자들이 증거하였습니다.(사42:1,롬15:8). 그리고 복음서들도 예수 그리스도를 예언자로서 인정하여 증거하고 있습니다. (막6:15,요4:19,6:14,9:17,막6:4,1:27) 예수님께서 구원을(Salvation), 하늘 나라를 (the Kingdom), 미래에 대하여 예언하였습니다.(Predicted the Future)
제사장으로서의 그리스도 (Christ the Priest)입니다.레위기 16장과 히브리 8장으로부터 10장까지를 비교해 보십니다. 이스라엘의 대제사장은 하나님 앞에서 인간의 대예언자가 되어 이스라엘 백성의 죄의 용서와 이스라엘 백성을 용납해 주실 것을 하나님께 간구하였습니다. 일년에 한 번씩 대제사장은 이스라엘을 위하여 속죄제를 드렸습니다. 예수님은 동물처럼 영문밖 십자가에서 보혈을 흘려 제물이 되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받아 드렸다는 사실은 그의 희생을 믿는 모든 사람을 받아 드린다는 확신을 우리들에게 줍니다.
왕으로서의 그리스도 (Christ the King)입니다.제사장으로서의 그리스도는 또한 왕으로서의 그리스도도 되십니다. 한 사람이 이와 같이 두가 직책을 맡는 것은 완전한 통치자로 삼기 위한 하나님의 계획입니다. 이와 같이 멜기세덱과 같습니다.(창14:18,히7:1-3)입니다.
진실로 예수 그리스도는 왕으로서의 그리스도이며 온 세계의 주가 되시며 모든 세상의 부를 소유한 소유주이시며 모든 인간의 주인이 되십니다. 그러나 아직도 모든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통치권을 시인치 않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이스라엘의 왕으로서 기름 부음을 받았지만(행2:30) 그의 백성들은 (요1:11) 그의 주권을 거부하였습니다. (요19:15). 그리고 모든 나라들은 그의 통치권을 인식치 못하고 제멋대로 행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이와 같은 사항을 미리 아셨습니다.(눅19:12-25).
오늘 우리는 예언자이시고, 제사장이시고 그리고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사순절에 만남을 감사드리면서 그리스도의 그 직무로 인하여 구원받았슴을 감사드려야할 것입니다.
묵상할 내용
1. 예수님은 예언자이심을 설명하십시오.
2. 예수님이 제사장되심을 설명하십시오.
3. 예수님이 왕이심을 설명하십시오.
21일째 3월16일
예수 그리스도는 인생을 구원하시고자 십자가에 달려
죽어셨으나 부활하셨습니다.
마1:21,요1:19,롬8:34,4:25,5:10
신약의 가장 현저한 사건과 중심 교리를 다음과 같은 말씀 속에 요약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교리) 죽으시고(사건The Death of Christ)(고전15:3)
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음은 기독교의 독특한 특징입니다. 기독교가 다른 모든 종교와 현저하게 다른 것은 특히 십자가의 교리가 있다는 사실이라고 마틴 루터는 선언하였습니다. 종교 개혁의 온갖 피눈물나는 투쟁은 십자가를 올바르게 해석하기위함에 있었습니다. 십자가를 올바르게 이해하는 사람만이 그리스도와 성경을 바로 이해할 수 있다고 종교 개혁자들은 가리켰습니다.
기독교를 독특한 종교로 만드는 복음서의 특징은 바로 그리스도의 죽음에 있습니다 결국 문제가 있다면 죄의 문제이므로 허물과 죄의 권세로부터 인간을 구원할 수 있는 길을 마련해 줄 수 있는 종교야말로 참다운 종교이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영원한 구원"의 창시자이십니다 (히5:9) 즉 그는 최종적 구원의 창시자로 모든 구원은 그로 말미암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들의 죄를 위하여 죽으심으로써 그는 이 장애물을 제거하셨다. 우리들이 마땅히 져야 할 짐을 그가 친히 담당하셨습니다. 우리들은 도저히 할래야 능력이 없어 할 수 없는 일을 우리들을 위하여 그가 성취하여 놓았습니다. 이 장애물을 제거하는 것이 하늘 아버지의 뜻이기 때문에 그리스도는 이 일을 하였습니다. 이것이 바로 속죄의 내용입니다.
그리스도의 부활(The Resurrection of Christ)은 기독교의 독특한 기적입니다. 이 부활의 실재성을 한번 기정 사실로 설정하고 나면 복음서에 기록되어 있는 여타의 기적에 대하여는 왈가 왈부 토론할 필요조차 없게 됩니다. 더욱이 이 기적을 믿느냐 안믿느냐에 따라서 기독교 신앙이 설 수도 있고 쓰러질 수도 있습니다. 왜냐 하면 기독교는 천 구백여 년 전에 팔레스타인에서 실제로 있었던 확실한 사건에 그 가르침의 기초를 두고 있는 역사적 종교이기 때문입니다. 이 역사적 사건들은 그의 탄생과 그의 전도와 죽음과 장사 지냄과 부활입니다.
이 여러 가지 사건 중에서도 그의 부활은 가장 중요한 관건이 됩니다. 왜냐하면 만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지 못했다면 그는 그가 주장하는대로 그의 죽음이 대속의 죽음일 수가 없으며 따라서 기독교인들은 여러 세기를 두고 내려 오면서 속은 것이요 설교자들은 거짓을 설교한 것이 되며 신도들은 헛된 구원의 소망에 기만을 당해 온 것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이 부활의 교리에다 의문 부호를 부치지 않고 감탄 부호를 붙일 수 있게 된것을 하나님께 감사하는 바입니다.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고전 15:20).
묵상할 내용
1.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속죄를 위하여 무엇을 하셨습니까?
2.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주님은 부활하셨습니다. 부활의 의미를 깊이 묵상하십시다.
22일째 3월17일
예수 그리스도는 승천하셨으나 다시 오십니다.
요한복음14:3
승천의 교리의 실제적 가치는 어떤 것입니까?
(1) 승천하신 그리스도께서 언젠가 재림하실 것이라고 의식함으로써 우리들로 하여금 거룩한 생활을 영위케 합니다.(골3:1-4).
(2) 승천에 대하여 올바른 지식을 갖게 됨으로써 바른 교회관을 갖게 됩니다. 다만 인간 그리스도만을 믿는 신앙을 갖게 되면 교회를 초자연적 능력과 권위를 갖고 있는 것으로 보지 않고 자선과 도덕적 목적을 위한 인간의 사교 단체로서 보기 쉽게 합니다. 그러나 이와 반대로 승천하신 그리스도에 대하여 올바른 지식을 갖게 되면 교회를 하나님의 생명이 역사하는 영적 유기체로 보게 됩니다.
(3) 승천하신 그리스도를 의식하게 되면 이 세상과 이 세상의 것들에 대하여 올바른 태도를 갖게됩니다. "오직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서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 (빌3:20).
(4) 승천하신 그리스도에 대하여 신앙을 갖게되면 개인의 책임감을 절실히 느끼게 됩니다. 또한 승천하신 그리스도를 믿게 되면 언젠가 그의 심판대 앞에 서서 우리들이 행한 바를 그에게 직고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롬14:7-9,고후5:9,10). 하늘 나라에 계신 주님에 대한 책임감을 갖게 되면 범죄하기를 주저하게 되며 의롭게 살려고 노력하게 됩니다 (엡6:9).
(5) 승천하신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은 그의 재림에 대한 즐겁고 복된 소망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요14:3).
복음서와 사도행전과 기타 여러 서한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승천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승천의 사실은 우리 주님이(a) 하늘에 계신 그리스도(b) 높임을 받은 그리스도(c) 주권을 가진 그리스도 (d) 길을 예비하시는 그리스도 (e) 중재하는 그리스도(f) 무소 부재의 그리스도 (요14:12)라는 사실을 명확하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승천하실 때에 그리스도는 지상의 교회를 떠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영구히 떠난 것은 아닙니다. 그는 그의 뒤를 따를 자들을 위하여 길을 예비하는 선구자로서 승천하였습니다. 그의 약속은 "사람이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르라. 나 있는 곳에 나를 섬기는 자도 거기 있으리니"(요12:26) 드디어 성도들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도록 되었다. (엡2:6)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마18:20). 영원히 함께 하시는 주님과 함께 하게 되;었으니 재림의 그날이 더욱 기다려 지는 것입니다.
묵상할 내용
1. 예수 그리스도의 승천의 역사적 사실의 의미는 무엇인가요?
2. 예수 그리스도의 승천의 사실에 근거를 두고 있는 교리를 어떤 것인가요?
3. 예수 그리스도의 승천의 실제적 가치는 어떤 것인가요?
사순절 4주째 주일 3월18일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를 위한 속죄의 제물이십니다.
이사야42:1,53:1-6
영원 전부터 예정되었고 또한 구약의 예배 의식 속에 모형적으로 예포되어 있는 속죄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 갔을 대에 역사적으로 완성되었습니다. 곧 이 때에 하나님의 구속의 목적은 이루워졌습니다. "다 이루었다." 복음서 기자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음에 대하여 구약의 예언의 성취를 인용해 가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의 어떤 다른 사람보다도 더 면밀하게 잘 기술하였는데 이로 미루어 보아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은 대단히 중요한 사건임을 알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실 때에 이런 음성을 들었습니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이 말씀 속에는 두 가지 예언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첫째는 메시야의 아들의 신분과 신성을 선언한 것이요 (시2:7) 둘째는, 주의 종으로서의 메시야의 사명을 선언하고 있습니다. (사42:1). 사42:1에 언급되어 있는 종은 이사야 53 장에 묘사되어 있는 고난은 그의 소명의 일부분임을 잘 의식하고 계셨다는 결론을 얻을 수 있습니다.
이사야 53장에 의할 것 같으면 주의종은 "범죄자 중 하나로 헤아림을 입었음이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례를 받으신 행동은 우리들의 비참을 친히 담당코저 하는 사상의 위대한 행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그의 공생애를 통해서 여러 번 그의 죽음이 닥아 오고 있다는 사실을 은근히 비유를 들어서 암시하셨습니다. (마5:10-12,23:37,막9:12,13,3:20-30,3:6,2:19). 그러나 가이사랴 빌립보에서 그는 고난을 받고 죽은 것을 그의 제자들에게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이후로 그는 그의 제자들의 마음 속에 그가 고난을 받게 될 것을 깊이 명심시켰습니다.
그는 또한 그의 제자들에게 그의 죽음을 뜻하지 않은 불행한 비극으로 생각하지않고 도리어 대속의 목적을 지닌 죽음으로 인식시키기 위함에서였습니다. 인자는 많은 사람의 죄를 속하기 위하여 그의 생명을 주려고 세상에 오셨던 것입니다. 최후의 만찬시에 그는 그의 제자들에게 그의 죽음으로 그의 공생애에 있어서 십자가의 역사적 사실을 기념해 주실 것을 당부하였습니다. 마치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해방된 것을 기념하기 위하여 유월절을 지키는 것과 같이 예수님께서도 인류의 죄를 사하시는 것을 기념할만한 의식을 정하시었습니다.
그때까지 아직 메시야와 하늘 나라에 대하여 유대교의 사고 방식의 영향을 받고 있던 그의 제자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의 필요성을 깨닫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부활승천하신 후에야 비로소 저들은 깨닫게 되었습니다.그후부터 저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은 하나님께서 속죄의 수단으로 미리 예정하셨다는 사실을 확실하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끊임없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들의 죄를 위하여 죽으셨다."고 증거하였던 것입니다.
묵상할 내용
1.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을 때 구약의 무엇을 성취하신 것입니까?
2. 예수님이 공생애기간 동안에 십자가를 예고 하셨습니까?
3. 예수 그리스도는 왜 죽으셨습니까?
23일째 3월19일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의 효력
(The Efficacy of the Atonement)은 상상이상입니다.
히브리서9:22-28
그리스도의 속죄 사업이 인간들에게 어떤 결과를 가져옵니까? 인간의 체험 속에 어떤 결과를 초래할까요? 5가지 은혜를 입습니다..
(a) 죄의 용서 (Pardon of Transgressions)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 사업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신자들에게는 이미 그의 죄가 도말되고 제거 되었음으로 죄악된 그의 과거가 어두운 그림자처럼 그의 뒤를 따라 다니지 않습니다 (요1:29,엡1:7히9:22-28,계1:5). 그는 새로운 삶을 출발했기 때문에 심판대 앞에 설 때에 결코 과거의 죄에 의하여 다스림을 받지 않으리라는 확신을 갖게 됩니다.(요5:24).
(b) 죄로부터의 자유 (Freedom from Sin)입니다.
속죄를 통하여 그대는 과거의 죄로부터 해방될 뿐만 아니라 죄의 권세로부터 해방됩니다. 이 문제는 로마서 6장으로부터 8장까지에 언급되어 있습니다.
(c) 죽음으로부터의 구원 (Deliverance from Death)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들의 죄를 위하여 돌아 가셨다고 성경이 말해 주고 있는데 이는 그리스도께서 단순히 육체적으로 죽으셨다는 것을 의미할 뿐만 아니라 죄에 대한 형벌로서 죽으셨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친히 자신을 낯추어 죽음을 당하신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음을 맛보려 하심이라"(히2:9).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도 육체적 죽음을 당해야 한다는 것은 사실이다. (롬8:10). 그러나 그들이 죽는 것은 죄의 형벌로서가 아니라 보다 큰 생명에 참여할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됩니다.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요11:26).
(d) 영생의 선물 (The Gift of Life Eternal)을 받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죽으신 것은 우리들로 하여금 "멸망치"않고 (이 성경에 기록되어있는 멸망이라는 말은 영적 멸망의 의미로 사용되었다) 영생을 얻게 하기 위함입니다(요3:14-16,롬6:23 참조). 영생이란 것은 다만 존재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이상의 것을 뜻합니다. 곧 영생은 하나님과 화목하여 그와 교제를 갖는 것을 의미합니다. 왜냐 하면 영원한 존재이신 하나님과 더불어 하는 생명이기 때문입니다. (딛1:2,롬9:22).
(e) 승리의 생활 (The Victorious Life)이 보장됩니다.
십자가는 발전기와 같은 것으로 인간의 마음 속에 전력을 이르켜 기독교인의 생활에 자극을 줍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와 같은 신앙 고백은 십자가의 위력을 단적으로 나타내주고 있습니다. 이 승리의 생활 가운데는 사탄을 이기는 승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신약 성경은 그리스도께서 우리들은 대신하여 사탄을 정복하였다고 선언합니다 (눅10:17-20,요12:31,32,14:30, 골 2:15,히2:14,15,계12:11).
사순절은 속죄의 은혜를 받는 여행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승리의 여행이 되시길 바랍니다.
묵상할 내용
1.속죄함으로 받는 은총을 간략하게 말씀하십시오.
24일째 3월20일
구원의 궁극적인 성취는 성화 (Sanctification)입니다.
출애굽기 24:8, 베드로전서1:15,2:59
구원받은 사람은 거룩함에 이릅니다. "거룩하다"(Holy)는 말은 하나님의 본질을 잘 나타내 주고 있습니다. 이 말의 근본적인 뜻은 "격리" (separation)를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거룩함은 하나님의 절대적 도덕의 완전성과 하나님의 위엄을 나타내 줍니다. 거룩하신 이가 그를 섬기는 일에 사람이나 물건을 사용할 때 그것들을 일상 생활에 사용되는 것과 거룩히 구별하였습니다. 거룩하게 구별함으로 말미암아 이와 같은 사람이나 물건은 "거룩하게"됩니다.
성화 속에는 헌납 (Dedication)과 성별이 다 내포되어 있습니다. 이 헌납이란 "신자들이 모두 세상으로부터 떠나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하여 중보자를 통하여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헌신하는 상태"를 말합니다. 성화의 주요한 의미 속에는 하나님을 섬기기 위하여 성별한다는 뜻과 정화 (Purification)의 개념을 다같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여호와의 인격을 그를 섬기기 위하여 헌납된 모든 것은 무엇이든지간에 깨끗한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사람이나 물건을 그를 섬기는데 사용하기 위하여 선택하였을 때 그는 그 사람이나 물건들을 거룩하게 합니다. 무생물에다 기름을 부어 거룩하게 하였습니다. (출40:9-11) 이스라엘 백성은 언약의 희생의 피로 말미암아 거룩하게 되었습니다.(출 24:8,히10:29)
헌신(Consecration)이란 거룩하게 의로운 삶을 뜻합니다. 의로움이란 하나님의 율법에 일치하는 중생된 삶을 말합니다. 곧 하나님의 자녀들은 바르게 사는 것입니다 (요1서3:6-10). 거룩함이란 하나님의 성품에 일치하는 중생된 삶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헌신하는 것을 뜻합니다. 그러므로 거룩함은 하나님을 섬기를 일에 방해되는 더러움을 제거할 것을 요구합니다.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자 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벧전1:15)
언약이란 하나님과 인간과의 맺은 관계를 말하는 것인데 하나님은 저들의 하나님이 되시고 저들은 그의 백성이 됩니다. 곧 하나님을 예배하는 백성이 된다는 말입니다. 즉 봉사(Service)하는 백성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섬긴다는 것은 제사장이 되는 것을 뜻합니다. 곧 이스라엘은 거룩한 백성이요, 제사장의 나라가 되었습니다. (출19:6) 이와 같은 관계를 더럽히는 것은 무엇이든지 물과 정결케 하는 피로써 씻어버리지 않으면 안됩니다. 신약 시대의 신자들은 "성도들"(Saints)입니다. 즉 헌신한 거룩한 백성들입니다. 언약의 피의 수단에 의하여 저들은 "왕 같은 제사장과 거룩한 나라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되었습니다 (벧전2:59) 저들은 찬미의 제사를 드립니다.(히13:15) 그리고 저들 자신을 하나님의 제단에 산제사로 드립니다 (롬12:1).
이러한 과정이 성화의 과정이고 구원받은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사순절 남은 기간동안 성화에 이르기를 바랍니다.
묵상할 내용
1. 구원받은 사람이 이루고 있는 성화의 과정을 설명하십시오.
2. 당신은 거룩한 제사장입니까?
25일째 3월21일
거룩함에 이르도록 하나님의 수단
(The Divine Means for San-ctification)은 은혜롭습니다.
고린도전서 6:11.데살로니가후서 2:13,베드로전서1:1,2
인생이 거룩함에 이르도록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의 피 (The Blood of Christ), 성령(The Holy Spirit), 말씀 (The Word )을 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는 주로 절대적인 위치상의 거룩함의 수단이 됩니다. 곧 이 피는 하나님과 관계를 맺는데 있어서 죄를 회개하는 자들에게 완전한 위치를 제공해 줍니다. 성령께서는 거룩함의 내적 수단임으로 신자의 본성을 변화시키는 역할을 합니다. 말씀은 외형적이고 실제적 행위를 다룹니다. 하나님께서는 외형적 거룩함과 내면적 거룩함의 방도를 예비하셨습니다.
(a) 그리스도의 피 (The Blood of Christ) (영원한 절대적 위치상의) 히13:12,10:10,10:14,요1서1:7 어떤 의미에 있어서 인간은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거룩하게 되었습니까? 그리스도의 완성된 속죄 사업의 결과로서 죄를 회개한 사람들은 더러운 죄인으로부터 거룩한 예배자로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자기 자신을 제물로 갈보리 언덕에서 드림으로써 성취한 속죄 사업의 결과로써 거룩함이 성취된 것입니다.
(b) 성령(The Holy Spirit)(영원한 성결)고전 6:11.살후2:13,벧전1:1,2 롬15:16, 여기에 열거한 성경 구절 속에는 성령에 의한 성결이 취급되어 있는 데 이와 같은 거룩함은 인간의 영혼 속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일의 시작입니다. 또 이와 같은 거룩함은 그리스도의 보혈을 믿는 신앙을 통하여 칭의에 대한 완전한 지식으로 인간을 인도합니다.
(c) 말씀(The Word )(외형적이고 실체적 성결)요17:17,엡5:26,요15:3,시119:9 약1:23-25. 기독 교인들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거듭난 것입니다. "너희가 거듭난 것이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된 것이니 하나님의 살아 있고 항상 있는 말씀으로 되었나니라." (벧전1:23)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인간은 자기의 어리석음과 악함을 깨닫게 됩니다.
인간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그리스도를 믿게 되면 이미 저들에게 주어진 말씀을 통하여 저들은 깨끗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여 신자의 정결한 생활은 시작되는데 이와 같은 정결된 생활을 신자들은 일생 동안 지속해야 합니다. 헌신할 때에 이스라엘 제사장은 목욕을 해야 하는데 한번 목욕하는 것으로 족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날마다 손과 발을 씻어야 했던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중생한 자들도 씻음을 받은 것입니다.(단3:5) 그러나 날마다 하나님의 말씀이란 영혼의 거울에 비추어진 더러움과 불완전한 결점을 제거하지 않으면 안됩니다.(약1:22-25) 그는 그의 손을 씻지 않으면 안됩니다. 즉 그의 행위를 바르게 해야만 합니다. 그는 그의 발을 씻지 않으면 안됩니다. 즉 그는 이 세상을 순례하는 동안에 발에 묻은 때를 깨끗이 씻어 버리지 않으면 안됩니다.
사순절은 거룩함에 이르는 여행입니다. 하나님께서 베푸신 방도를 따라 사는 것이 감사하고, 진실과 전심으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나가야 하리라 믿습니다.
묵상할 내용
1. 거룩함의 방도로 하나님이 주신 것은 무엇입니까?
2. 성화를 위한 하나님의 수단을 감사할 이유는 무엇입니까?
26일째 3월22일
하나님은 우리가 온전한 성화
(Entire Sanctification)에 이르기를 바라십니다.
로마서6장,8장
육체를 다루는 성서적 방법은 구원을 위한 객관적 규정인 그리스도의 피와 주관적 규정인 성경에 근거를 됩니다. 그러므로 육체의 힘을 이기는 구원은 속죄를 믿는 신앙과 성령의 역사에 응하는 호응에서 나옵니다. 속죄를 믿는 신앙(Faith in the Atonement) 을 통하여 육체로부터의 구원의 가능하다는 것은 로마서6장에 기록되어 있고 성령의 역사에 호응(Response to the Spirit)함으로써 육체로부터의 구원이 가능하다는 것은 로마서 8장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온전한 성화는 완전성(Perfection)에는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절대적 완전성이요 다른 하나는 상대적 완전성입니다. 절대적으로 완전한 것은 개혁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와 같은 절대적 완전성은 하나님에게만 속한 것입니다. 그 다음 상대적으로 완전한 것은 절대적 완전성을 목표로 향상 발전할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은 상대적 완전성은 인간에게도 가능한 것입니다. 구약에 사용된 "완전"이란 말은 "성실하고 바른것"을 의미합니다 (창6:9,욥1:1)
신약에서는 "완전하다"는 말이 매우 다양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그 말을 해석할 때는 반드시 그 말이 사용된 경위를 살펴서 해석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완전성이란 개념을 전하기 위하여 여러 가지 헬라어가 사용되었습니다.
(1) 그 첫째 뜻은 어떤 목적이나 일을 행하기에 적당하다는 의미에 있어서 완전성을 나타냅니다 (딤후3:17) (2) 둘째 뜻은 정신과 도덕의 발전을 통하여 어떤 일정한 목표에 달한 것을 가르킵니다.(마5:48,19:21.골1:28,4:12) (3) 셋째로 고후13:9,엡4:12과 히13:21에 사용된 말은 완전한 장비를 뜻합니다. (4) 넷째로, 고후7:1 속에 사용된 말은 종결을 짓는 것을 의미합니다.(5) 다섯째로,계3:2에 사용된 말은 충만시키다를 의미하고 또 성취한다를 의미합니다.
이 말은 기독교인의 신앙 생활의 여러 가지 면을 다음과 같이 보여주고 있다.
(가) 그리스도 안에서의 위치상의 완전성 (히10:14) - 그리스도께서 우리들을 위하여 하신 일의 결과.(나) 영적 유년기에 반대되는 영적 성숙과 이해 (고전2:6,14:20,고후13:11,빌3:15,딤후3:17) (다) 점진적 완전성 (갈3:3) (라)하나님의 뜻을 수행하고 인간을 사랑하고 봉사하는 특수한 일에 있어서의 완전성(골4:12,마5:48,히13:21) (마)하늘 나라에서 이루어질 개인의 궁극적 완전성 (골1:22,28,벧전5:10) (사) 신자들의 협동체인 교회의 궁극적 완전성 (엡4:13,요17:23)
죤 칼빈 (John Calvin)은 신자의 완전성을 강조하였다. 그는 기독교인의 완전성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의를 통하여 우리들과 화목을 누리게 되었을 때에 그는 의롭다고 인정하셨다. 그는 또한 그의 성령을 통하여 우리들 속에 거하시면서 그의 능력으로 우리들을 거룩하게 만들며 우리들의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우리들의 육체의 정욕을 억제하신다. “(전7:20,왕상8:46).
묵상할 내용
1. 육체를 다루는 성서적 방법은 무엇입니까?
2. 완전성의 개념을 설명하십시오.
3. 기독교인의 생활 속에 나타나는 완전성은 무엇입니까?
27일째 3월23일
하나님은 그대의 구원을 보장
(The Security of Salvation)하십니다.
디모데전서2:4-6, 히브리서2:9.고린도후서5:14. 디도서2:11,12
우리의 사순절은 구원의 준비와 구원의 본질에 대하여 연구여행이었습니다. 이제 기독교인의 최종의 구원은 무조건적인 것이냐 그렇치 않으면 최종의 구원은 죄로 말미암아 상실되고 마는가?를 생각해 보십시다.
체험에 의하여 살펴 볼 것 같으면 은혜로부터 일시적인 타락은 가능한 것입니다. "타락" (Backsliding)이라는 말을 우리들은 신약에서 찾아 볼 수 없습니다. 이 타락이라는 말은 구약의 용어입니다. 타락을 의미하는 어떤 히브리어는 "되돌아가다" (turn back) 또는 "돌리라" (turn away)를 의미합니다. 타락을 나타내는 또 다른 히브리어는 "변절하다"(turn around)또는 "완고하다" (be re-fractory)를 의미합니다. 멍에를 메지 않고 인도함을 받지 않으려고 반항하는 어린 암소에다 이스라엘을 비유하였습니다. 이스라엘은 여호와 하나님으로부터 돌아서서 하나님의 계명의 멍에를 완강히 거부하였던 것입니다.
신약은 이와 같은 태도에 대하여 경고하는데 다른 용어를 사용하였습니다. 타락자는 한 때 하나님에 대하여 열심을 품고 있었으나 차차 그 열심이 식어버린 사람을 말합니다.(마24:12) 또 그는 한 때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였으나 죄의 방해를 받아 성장하지 못하고 열매를 맺지 못하였습니다. (마13:22) 또 그는 한 때 쟁기를 잡았으나 그만 뒤를 돌아 본 사람입니다. (눅9:62). 마치 롯의 아내와 같이 멸망의 도성으로부터 구출되었으나 그의 마음은 멸망의 도성으로 다시 향하게 된것입니다.(눅17:32) 또 그는 한 때 그리스도와 생명의 관계를 맺고 있었으나 지금은 관계를 단절하고 말았기 때문에 시들고 말라버려 영적으로 아무 소용도 없게 되었습니다. (요15:6) 또 그는 한 때 양심의 억제를 받았으나 이 양심이란 나침판을 내버리고 말았기 때문에 그의 믿음의 배는 죄의 암초에 걸려 난파되고 말았습니다(딤전1:19) 그는 한 때 자기 자신을 크리스챤이라고 부르는 것을 즐거워 하게하였으나 지금에 와서는 주의 이름을 고백하기를 부끄러워 하게 되었습니다.(딤후1:8,2:12) 또는 한 때 이 세상의 더러움으로부터 구출되었으나 마치 "돼지가 씻었다가 더러운 구렁이에 도로 누웠다하는 말"과 같이 다시 세상의 더러움으로 돌아간 것입니다.(벧후2:22,눅11:21-26 )
칼빈주의(Calvinism)는 구원이란 전혀 하나님에게 속한 것으로 인간은 절대로 구원에 대하여 관여할 수 없습니다. 만일 사람이 죄를 회개하고 그리스도를 믿고 그의 앞에 나오게 되었다면 이는 오로지 하나님의 성령의 이끄는 힘으로 말미암은 것이다.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을 구원키로 예정하였다면 그는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아 구원의 상태를 유지할 수 있음으로 그는 결코 타락하지 않게 됩니다.
그러나 아르미니안 설 (Arninianism)은 그리스도께서 모든 사람들을 위하여 돌아가셨기때문에 하나님의 뜻은 모든 사람을 구원하는데 있답니다. (딤전2:4-6, 히2:9.고후5:14. 딛2:11,12). 이 목적을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에게 그의 은혜를 주십니다. 예레미야가 바로 그런 사람입니다.
묵상할 내용
1. 인생이 타락할 수 있습니까?
2. 타락에 관한 신약의 의미를 말씀해 보십시오.
28일째 3월24일
사순절은 성령충만을 받을 수 있는 절기입니다.
로마서8:11
성령은 어떤 분이신가?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성령께서 지니고 있는 명칭과 그의 역사를 나타내주는 상징들을 연구하면 자연히 알게 됩니다. 성령의 명칭을 보면
(a) 하나님의 영
성령은 하나님의 일을 집행하는 역할을 하는데 물질과 정신의 모든 영역에서 활동하신다. 하나님께서는 성령을 통하여 우주를 창조하셨고 보존하시고 있습니다.
(b) 그리스도의 영 (롬8:9)
하나님의 영과 그리스도의 영광 성령의 본질적인 구별은 없습니다. 오직 한 분의 성부와 성자가 있는 것과 같이 오직 한 분의 성령이 있기 때문입니다.
(c) 보 혜 사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게 있게 하시리니." (요14:16). 보혜사는 말은 (헬라어로는 "파라클레테스"(Paracletes)"이다) 어떤 일에 있어서나 특히 형사상의 소송 사건에 있어서 어떤 사람을 돕게 위하여 부름을 받은 사람을 뜻합니다.
(d) 성 령
성령을 가리켜 거룩하다고 하는 것은 그 성령이 거룩하신 분의 영이기 때문에 그렇고 또한 성령의 주된 일은 성화이기 때문이다.
(e) 약속의 성령
성령을 가리켜 약속의 성령이라고 부르는 까닭은 그의 은혜와 능력은 현저하게 뛰어난 축복 중의 하나로서 구약 속에 약속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겔36:27,욘2:28)
(f) 진리의 영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몸을 입고 세상에 오신 목적은 아버지를 계시하는 것입니다.보혜사의 사명은 아들을 계시하는 것입니다. 성령은 예수 그리스도를 설명해 주시는 해설자이십니다.
(g) 은혜의 영 (히10:29,슥12:10)
성령께서는 인간에게 은혜를 주어 회개케 하며 또한 능력을 주어 인간으로 하여금 성화케 하며 참게 하며 봉사케 합니다.
(h) 생명의 영 (롬8:2,계11:11)
성령의 특수한 기능은 육체의 생명과 영적 생명 창조와 보존입니다.
(i) 양자의 영 (롬8:15)
구원받게 될 때에 그는 하나님의 자녀라는 명칭을 받게 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가정의 양자로 채택되어 그의 영혼 속으로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하게 됩니다.
묵상할 내용
1. 성령의 명칭을 아는 데로 말씀하고 설명하십시오.
사순절5주째 주일 3월25일
하나님은 성령의 상징 (Symbols of the Spirit)으로
성령을 이해하게 하십시다.
이사야4:4,슥37:7-10
하나님께서는 상징으로 진리를 예시하는 길을 선택하셨습니다.
(a) 불 (사4:4,마3:11,눅3:16)
불을 정화, 정결,불 같은 담대성과 열심으로 나타내 주고 있는데 이와 같은 것들은 성령의 기름부으심으로 말미암아 생겼던 것입니다. 성령을 불에다 비유할 수있습니다.(렘20:9)
(b) 바 람 (슥37:7-10,요3:8,행2:2)
바람은 성령의 재생의 역사를 상징합니다. 그리고 바람은 신비스럽고 자주적이고 통찰력이 있고 생명을 주며 정결케 하는 역사를 나타내 주고 있습니다.
(e) 물 (출17:6,겔36:25-27,47:1,요3:5,4:14,7:38,39).
성령은 가장 깨끗하고 좋은 생수의 샘입니다. 왜 그러냐 하면 성령은 참다운 생명의 강이기 때문이다. 이 생명의 강은 우리 영혼에 차고 넘치며 죄를 씻어 줍니다. 기독교인들만이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생수의 근원과 접촉함으로써"생수"를 얻을 수 있습니다.
(d) 인 (도장) (엡1:13,딤후2:19)
(1) 소유권.도장을 찍은 표적은 도장의 소유자와의 관계를 나타내 주며 또한 도장의 소유자에게 어떤 사물이 속해 있다는 확실한 표적이 됩니다. 신자들은 하나님의 소유임을 알게 됩니다. (딤후2:19).
(2) 보장의 개념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엡1:13,계7:3 ). 성령은 신자들의 마음 속에 확신과 보장을 주십니다. (롬8:16).성령은 하늘 나라에서 받은 우리들이 유산의 첫 부분이요, 장차 임할 영광의 보장이십니다. 기독교인들은 인치심을 받았습니다. (엡4:30).
(3) 기름. 기름은 성려에 대한 가장 평범하고 친숙한 상징이 됩니다. 구약에서 기름이 의식적으로 사용되었을 때에 기름은 유용성과 풍요함과 아름다움과 생명과 변화를 나타내 주었습니다. 기름은 흔히 식용과 등화용과 윤활용과 약용 등으로 사용되듯이, 성령은 영혼을 위로하고 고쳐 주며 자유하게 하고 빛을 비추어 주며 힘을 주십니다.
(f) 비둘기
상징으로서의 비둘기는 양순함과 부드러움과 무사기함과 온유함과 화평과 순결과 인내는 말해 줍니다. 시리아 사람들은 비둘기를 자연의 생명을 주는 능력의 상징으로 생각합니다.
묵상할 내용
1. 성령을 상징하는 것들을 예시하여 보십시오.
2. 인(도장)의 의미를 말씀해보십시오.
29일째 3월26일
성령의 은사들(The Gifts of the Spirit)로
충만한 사순절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고린도전서12:1-7
성령의 은사들과 (the gifts of the Spirit) 성령의 은사 (the gift of Spirit) 는 구별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전자는 특별한 목적을 위하여 성령에 부여된 초자연적 능력을 말하고 후자는 승천하신 그리스도께서 신자들에게 주신 것을 가리킵니다(행2:33).
바울은 세 가지 면에서 성령의 은사들에 대하여 언급하였습니다. 즉 첫째로 성령의 은사는 "카리스마타" (charismata)인데 이는 성령이 주신 여러 가지 은사들을 가르킵니다 (고전12:4,7). 둘째로 성령의 역사는 "다이코나이"(deakonai)인데 이는 한분이신 주님을 섬기기 위하여 주어진 여러가지 봉사(직임)을 가리킵니다. 셋째로 성령의 은사는 "에네르게마타"(energemata)인데 이는 모든 사람들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한 분 하나님의 능력을 가리킵니다. 우리는 사순절 기간동안에 "카리스마타" (charismata),"다이코나이"(deakonai),그리고 "에네르게마타"(energemata)로 충만하기를 소원합니다.
이와 같은 성령의 여러 면을 가리켜 "성령의 나타나심"(the manifestation)이라고 하는데 이는 모든 사람에게 유익을 주기 위함입니다.
그러면 성령의 은사의 주요한 목적은 무엇입니까? 성령의 은사란 신자들을 가르치고 새로운 개종자를 얻음으로써 하나님의 교회의 덕을 세우기 위한 목적을 성취시키는데 필요한 영적 가능성(능력)을 말합니다 (엡4:7-13) 바울은 성령의 아홉가지 은사를 다음과 같이 분류할 수 있습니다.
1. 초자연적 인식 능력을 부여하는 성령의 은사들은 지혜의 말씀과 지식의 말씀과 지식의 말씀과 영들 분별함 등입니다.
2. 초자연적 행위를 할 수 있도록 부여된 성령의 은사들은 믿음과 병고침과 능력 행함 등입니다.
3. 초자연적으로 말하게 하는 능력을 주는 성령의 은사들은 예언과 방언과 방언 통역 등입니다.
이와 같은 성령의 은사들을 가리켜 "성령의 나타나심"이라고 합니다.이 성령의 은사는 모든 사람들에게 유익을 주기 위하여 주어지는 것입니다. (즉 교회의 유익을 위하여 성령의 은사들은 주어집니다)우리들이 여기서 성령의 "나타나심"을 성경적으로 정의를 내릴 것 같으면 성령의 아홉 가지 은사의 작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를 대신하여 고난을 당하신 그리스도와 사순절을 통하여 깊은 교제의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그 교제는 성령의 나타남으로 가능한 것입니다.
묵상할 내용
1. 성령의 은사들과 성령의 은사의 차이점은 무엇입니까?
2. 바울의 성령에 대한 구분을 말씀하십시오.
3. 성령의 나타남을 설명하시고, 그대에게 임한 은사를 발견하시기 바랍니다.
30일째 3월27일
역사는 시작이 있었으니 마지막이 있습니다.
이사야44:6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나는 처음이요 나는 마지막이다." (사44:6) 하나님께서는 모든 만물의 역사의 첫 장과 마지막 장을 쓰셨습니다.
시작이 있으면 종말이 있슴을 가장 실감하게 하는 것이 인간의 죽음입니다.
죽음은 영혼과 육체와 분리되는 것을 뜻하는 동시에 또한 인간을 볼 수 없는 불가사의 세계로 안내하는 것을 뜻합니다. 죽음을 가리켜 잠잔다고 기록되어 있고(요11:11,신31:16) 또한 땅에 있는 장막집이 무너진다고 기록되어 있고 (고후1:14) 영혼을 도로 찾는다고 기록되어 있고 (눅12:29) 돌아오지 못할 길로 간다고 기록되어 있고 (요16:22) 그 열조에게로 돌아간다고 기록되어 있고 (창49:33) 적막한데 내려간다고 기록되어 있고 (시115:17) 혼이 떠난다고 기록되어 있고 (행5:10) 흙으로 돌아간다고 기록되어 있고 (창3:19) 쇠하여진다고 기록되어 있고 (욥14:2) 떠난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빌1:23)
죽음은 최초로 나타난 죄의 외형적 결과이다 그리고 죽음은 또한 죄의 마지막 결과도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이 죄의 마지막 결과인 죽음으로부터 구원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롬5:12,고전15:26) 구세주께서는 죽음을 폐하시고 복음으로써 생명과 썩지 아니할 것을 드러내셨습니다. (딤후1:10) "폐한다"는 말은 무효로 한다는 뜻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면 죽음과 영원 불멸의 교리와는 어떤 관계를 맺고 있습니까? 육체의 부활을 말하는데 사용되는 두 가지 용어가 있는데 그중에 하나는 "영원 불멸"(Immortality) 이요. 다른 하나는 "불후성" (Incorruption)입니다. (고전 15:53,54)
만일 성경에서 "영원 불멸"이라는 말을 육체에 적용하였다면 영혼이 영원 불멸에 대하여 어떻게 정당화할 수 있습니까? 신약에서나 구약에서나 죽음이란 육체와 영혼의 분리를 뜻합니다. 육체는 죽어 흙으로 돌아가고 영혼은 보이지 않는 영의 세계에서 계속 의식을 갖는 상태로 존재합니다. 인간의 육체는 죽음에 복종할 수 밖에 없음으로 인간은 죽음을 면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영혼은 영원불멸하여 육체의 죽음을 초월하여 존재합니다.
영원 불멸과 영생 사이에는 어떤 차이점이 있습니까? 영원 불멸은 미래의 것으로(롬2:7,고전15:53,54) 부활 시에 영광스러운 몸을 입는 것을 가리킵니다. 영생이란 주로 인간의 영혼에 관한 것으로 현재에 소유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영생이란 육체의 죽음에 의하여 하등의 영향도 받지 않습니다. 영생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할 때에 완성될 것이며 또한 영광스럽고 죽음을 다시는 맛보지 않을 몸으로 영원히 살게 될 것입니다. 죽은 자와 살아 있는 자를 막론하고 모든 기독 교인들은 이미 영생을 소유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부활 전까지는 영원 불멸의 상태에는 도달할 수 없습니다.
묵상할 내용
1. 역사나 인생에게 시작이 있었으면 마지막이 있을까요?
2. 죽음을 설명하십시오.
3. 종말에 우리의 영혼은 어떻게 될까요?
31일째 3월28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재림
(The Second Coming of Christ)하십니다.
마태복음 24:27, 요한복음 14:3, 사도행전 1:10,11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하여 신약에 300번 이상이나 기록되어 있습니다. 바울은 그의 편지들 속에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하여 적어도 50번쯤 기록하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한 기록은 그의 초림에 대한 기록 보다 팔배나 더 많습니다. 데살로니가 전후서와 마태복음 24장과 마가복음 13장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하여만 언급하고 있습니다. 재림론이야 말로 신약에서 찾아 볼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교리중에 하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은 육체를 입고 오시는 인격적인 것입니다. (요 14:3, 행 1:10,11 살전 4:16, 계 1:7. 22:7)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은 문자 그대로의 재림입니다. (행 1:10. 살전 4:16,17. 계 1:7. 슥 14:4)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은 볼 수 있습니다. (히 9:28, 빌 3:20. 슥 12:10)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은 영광스럽습니다(마 16:27. 살후 1:7-9. 골 3:4. 마 25:31).
어떤 사람들은 에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문자 그대로의 인격적인 재림을 부인하기 위하여 그것에 해당하는 성경 구절을 교묘히 해석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죽음을 그리스도의 재림이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러나 죽음은 그리스도의 재림과는 동일한 것이 아닙니다. 왜 그러냐 하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에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부활하기 때문입니다. 죽을 때에 우리들은 그리스도 앞으로 갑니다. 그러나 재림하실때 그는 우리들을 위하여 오십니다. 만일 죽음으로 그리스도의 재림을 대치시킬 수 있다면 어떤 성경 구절들은 (마 16:28. 빌 3:20) 무의미하게 되고 말 것입니다. 죽음이란 우리들의 원수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재림은 우리들의 영광스러운 소망이 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오순절에 성령이 임한 것을 가리켜 그리스도의 재림이라고 주장합니다. 또 다른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고께서 AD 70년에 예루살렘성이 멸망될 때에 재림하였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재림시에 있을 여러 가지 현상 즉 죽은 자들이 부활하는 일과 살아 있는 성도들이 공중에 휴거되는 일이 위에서 언급한 그 어느 경우에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지금껏 많은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의 때를 계산하여 예언하였습니다. 그러나 모든 예언이 실패로 돌아가고 말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 날과 그 시는 오직 하나님 만이 아시고 다른 사람은 알 수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마 24:36-42,막 13:21,22) 우리들이 알 수 있는 것은 그날이 갑자기 임할 것과 (고전 15:52. 마 24:27) 그날이 언제 임할지 기대조차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벧후 3:4. 마 24:48-51. 계 16:15) 주님께서 그의 종들을 향하여 "내가 돌아오기까지 장사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미혹되는 일이 있어서는 않될 것입니다.
묵상할 내용
1. 성경에 예수님의 재림에 대하여 몇 번이나 예언되어 있습니까?
2.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의 모습을 설명하여 보십시오.
3. 재림의 날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32일째 3월29일
하나님은 구원의 방주로 교회를 이 땅 위에 허락하셨습니다.
베드로전 2:5,6,고린도후서11:2
니콜스(Robert Hastings Nichols)는 말하길 "분명히 예수께서 인류에게 복음을 전하고 또한 그의 정신으로 인류에게 봉사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시키는 일을 할 수 있는 그의 추종자들의 사회를 형성할 것을 계획하셨다 그러나 그는 조직체를 형성하거나 그의 조직체를 다스릴 수 있는 정치적 계획을 꾸미지는 않았다... 그는 조직 보다 더 위대한 그의 생명을 주었다. 예수께서는 그의 주위에 그의 추종자들을 불러 모음으로써 추종자들의 사회를 형성시켰다.
예수께서는 이 땅 위에 계실 때에 될 수 있는한 그의 추종자들에게 그의 생명과 그의 정신과 그의 목적을 전해 주려고 노력하셨다. 그는 또한 세상 끝날까지 그의 사회 즉 그의 교회에게 그의 생명을 계속해서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 예수께서 그의 교회에게 주신 선물 중에 가장 위대한 선물을 예수께서 자신을 교회에게 주신 일이다."
교회란 무엇입니까?
신약 성서 헬라어로 교회라는 말은 "에클레시아"(ecclesia)인데 그뜻은 "불러냄을 받은 자들의 회"라는 의미입니다. 이 말을 다음과 같은 것에 적용할 수 있을 것입니다. (1) 한 도시에 있는 크리스챤의 전체를 의미합니다 (행11:22,12:1).(2) 회중을 뜻합니다. (고전 14:19,35,롬16:5) (3) 지상에 있는 신자들의 전체를 의미합니다.(엡5:42).
영어로 교회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는 "춰 - 치"(Church)라는 말은 "쿠리아케"(Kuriake)라는 헬라어에서 유래한 것으로 "주님에게 속한 자"라는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교회란 세상에서 불러내심을 받아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 고백을 하고 충성을 다하는 자들의 무리를 뜻합니다.
교회란 영적으로 형제가 되어 친교를 맺는 자들의 것이다. 그러므로 인류를 갈라 놓는 모든 장벽이 교회 안에서는 무너집니다. "유대인도 이방인도 없는 것이다" 종교사에 근거를 두고 있는 모든 심각한 분렬은 극복되어야 합니다. "헬라인도 야만인도 없다." 문화적인 심각한 분렬도 극복되지 않으면 안됩니다. "자유인도 종도 없다." 사회와 경제적 심각한 분렬도 극복되지 않으면 안됩니다. "남자도 여자도 없다." 모든 인간의 심각한 분렬도 극복되어야 합니다.
기독교인들을 가리켜 신자,성도들,택함을 받은 자들,그리스도의 제자들,크리스챤이라고 부르는 까닭은 저들의 종교의 중심은 그리스도 인격에 있기 때문입니다. 초대 교회 당시에 크리스챤들을 가리켜 "도를 좇는 자들"이라고 종종 불리워졌던 것입니다. (행9:2). 왜냐 하면 저들은 인생의 특수한 도리를 따라서 살았기 때문이다.
성경적인 교회로서의 교회관은 교회는 (a) 그리스도의 몸 (b) 하나님의 전 (벧전 2:5,6)그리스도의 신부(고후11:2,엡5:25,계19:7,22:17,21:2)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교회 중심의 생활을 할 때 그리스도 중심이 되는 것이며 교회 밖에는 구원이 없다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묵상할 내용
1. 니콜스의 교회관을 요약하십시오.
2. 교회를 문자적으로 정의하십시오.
3. 성경적인 교회관을 정리하십시오.
33일째 3월30일
교회가 해야할 일을 해야 합니다.
마태복음 28:19,20
1.구원을 전하는 일
만민에게 복음의 말씀을 전하는 것이 교회의 사업이요 사명입니다.(마28:19,20)그리고 또한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대로 구원의 계힉의 자세히 설명하는 것도 교회의 사업입니다. 그리스도께서 구원의 계획을 마련하심으로써 인간의 구원이 가능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교회는 이 구원을 선포함으로써 인간의 구원을 실제화해야 합니다.
2. 예배의 수단을 제공하는 일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이 정해 놓으신 예배 제도를 갖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저들이 인생의 어떤 위기에 처해 있을 때와 또한 궁핍 속에 빠졌을 때에 저들은 이 예배 의식을 통하여 하나님 앞에 나갈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교회도 만민의 기도하는 집이 되지 않으면 안됩니다. 하나님은 이 곳에서 인간의 예배와 간증과 기도를 들으십니다.
3. 종교적 친교를 제공하는 일
인간은 사회적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그는 교제를 갈망하고 있으며 또한 우정을 나누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자연히 인간은 이해 관계가 있고 같은 경험과 같은 환경에 있는 사람들과 접촉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교회는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고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모시는 일을 친교의 기반으로 삼지 않으면 안됩니다. 교회란 결국 같은 영적 체험을 나누는 사람들이 하나의 형제로 모인 유기체입니다. 따뜻한 우정을 어디서든지 찾아 볼 수 있었던 현상이 초대 교회의 현저한 특징이었다고 할 수 있었습니다. 기계와 같은 로마 제국이 다스리는 세계에서 개인의 인격은 무시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고독과 절망의 의식을 망각해 버릴수 있는 정다운 교제를 갈망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와 같은 세계에서 교회가 사람들을 끌어당길 수 있는 매력의 힘을 갖고 있었다면 그것은 바로 따뜻하고 믿음직스러운 친교의 힘이었습니다.
4. 도덕적 표준을 유지하는 일
교회는 도덕적 무지를 추방해버리 "세상의 빛"이요, 또한 도덕적 부패로부터 세상을 보존시키는 "세상의 소금"입니다. 교회는 인간에게 올바르게 죽는 방법 뿐만 아니라 올바르게 사는 방법도 가르치지 않으면 안됩니다. 교회는 인간의 행위와 생활의 영역에 있어서의 모든 규례를 위한 하나님의 계획을 제시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묵상할 내용
1. 교회가 기본적으로 해야할 일이 무엇입니까?
2. 교회를 교회되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34일째 3월31일
사순절 기간은 전도를 위한 준비의 기간입니다.
고린도후서5:14,요한복음15:8,마태복음28:18-20
우리가 복음을 전하는 것은 하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전도는 하나님의 지상명령이요 주님의 소원이기 때문이며, 전도하는 사람은 바로 이와같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사람인 것입니다.
⑴주님의 지상 명령입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마28:19-20)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행 1:8)
⑵영혼의 최상의 가치이기 때문입니다.“누구든지 자기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와 복음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자기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막8:35-36)
⑶믿음으로 천국갑니다. 그러나 전하고 시인하지 않는 영혼이라면 문제는 달라질 수 있답니다.“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시인할 것이요/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부인하리라” (마10:32-33)
⑷죽은 자의,소원이기 때문에 “이르되 그러면 아버지여 구하노니 나사로를 내 아버지의 집에 보내소서/내 형제 다섯이 있으니 그들에게 증언하게 하여 그들로 이 고통 받는 곳에 오지 않게 하소서”(눅16:27-28)
⑸그리스도의 사랑이 강권하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 우리가 생각하건대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었은즉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라”(고후5:14)
⑹지옥도 확실히 있고 불신자는 반드시 지옥 가게 되어 있음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음행하는 자들과 점술가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거짓말하는 모든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던져지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계21:8)
⑺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일이기 때문에
“그들이 이 말을 듣고 잠잠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이르되 그러면 하나님께서 이방인에게도 생명 얻는 회개를 주셨도다 하니라”(행11:18)
⑻추수할 것이 많기 때문에. “너희는 넉 달이 지나야 추수할 때가 이르겠다 하지 아니하느냐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눈을 들어 밭을 보라 희어져 추수하게 되었도다”요4:35
⑼피의 책임을 면하기 위해서. “가령 내가 악인에게 이르기를 악인아 너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였다 하자 네가 그 악인에게 말로 경고하여 그의 길에서 떠나게 하지 아니하면 그 악인은 자기 죄악으로 말미암아 죽으려니와 내가 그의 피를 네 손에서 찾으리라/그러나 너는 악인에게 경고하여 돌이켜 그의 길에서 떠나라고 하되 그가 돌이켜 그의 길에서 떠나지 아니하면 그는 자기 죄악으로 말미암아 죽으려니와 너는 네 생명을 보전하리라”겔33:8-9
⑽화를 면키 위해서 “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이로다” 고전9:16
⑾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더 복이 있기 때문이다. “범사에 여러분에게 모본을 보여준 바와 같이 수고하여 약한 사람들을 돕고 또 주 예수께서 친히 말씀하신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하심을 기억하여야 할지니라”(행20:35)
전도 당연히 해야할 그리스도인의 책무입니다. 사순절을 다 보내고 고난 주간이 시작됩니다. 반드시 한사람을 주님에게로 교회로 인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묵상할 내용
1. 전도는 하고 말고의 문제가 될 수 있습니까?
2. 왜 전도를 해야 합니까?
4월1일 종려주일
예수님은 왕으로 예루살렘성에 입성 하셨습니다.
마태복음21:1-11,마가복음11:1-10
예수님이 사신 33년은 역사의 중심이며 전환점이었습니다. 특히 그 중에서도 더 중요한 기간은 공생애 3년 3개월이었을 것이고 다시 이 기간 중에 더욱 중요한 기간을 말한다면 십자가에 돌아가시기 전 1주일간의 기간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기간에 해당하는 종려주일(Palm Sunday)로부터 부활주일(Easter day)의 한 주간을 특별히 거룩한 주간(Holy Week) 혹은 고난주간(Passion Week)으로 지키면서 그리스도의 수난의 의미를 회개하는 자세로 되새겨 보는 것입니다.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왕이여, 하늘에는 평화요 가장 높은 곳에는 영광이로다" 오늘은 세계적으로 모든 교회가 뜻있게 지키는 종려 주일입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님의 생애 중에 제일 즐겁고 화려한 날의 한 장면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베다니에 제자를 보내어 나귀를 몰고 오게하여 그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으로 입성하고 있습니다. 이때 제자들은 기분이 좋아서 어쩔줄을 모릅니다. 그래서 옷을 벗어 안장을 만들고 남은 것을 길가에 깔아 카페트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는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라고 기뻐하였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 슥 9:9에 예언한대로 나귀새끼를 타고 지금 입성을 하고 있습니다. 제자들과 수 많은 사람들은 자기의 겉옷을 길가에 펴고 나무가지를 꺾어서 손을 흔들며 호산나 다윗의 자손으로 오신 왕이라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우리는 이 날을 종려 주일로 기념하여 지킵니다. 이 날은 승리적인 입성의 날(The triumphal entry)임에 틀림없습니다. "시온의 딸아 크게 기뻐할지어다 예루살렘의 딸들아 즐거이 부를지어다 네 왕이 임하나니 그는 공의로우며 구원을 베풀며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리니 나귀의 작은 것 곧 나귀새끼니라" 그리스도는 왕입니다. 그러나 그의 왕국은 지상에서의 그의 선교기간동안 사람들에게 잘못 이해되어 왔습니다. 사람들은 모두 세상의 왕으로 군림할 자를 보았습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들이 바라는 그러한 왕이 되기를 원치 아니하셨습니다.
예수님에 대한 왕으로서의 상징의 의미는 인간 영혼의 깊은 요구에 응답하는 데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의미를 나귀와 예수와 나무가지의 관계에서 찾아보려고 합니다.
예수님은 나귀새끼(An ass's Colt)를 탔습니다. 여기 나귀새끼의 의미를 스가랴 9:9에서 찾아보면 나귀새끼는 '겸손의 상징'(Marksof his humiliation)이며 그리스도인의 승리적인 삶의 원리입니다.
그리고 이들이 사용한 나무는 두가지 대조적 의미를 가진 나무였음이 주목됩니다. 종려나무는 기쁨의 상징(레 23:40)이며 의에 대한 전망(시 92:12)으로 결혼식에 사용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버드나무는 슬픔과 포로와 죽음을 상징하는 것으로 장례식때 사용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왜 이 두가지 나무를 함께 사용했겠습니까? 그 이유는 이것이 바로 '고난의 신비'(The Mystery of Suffering)이기 때문입니다.
이 두가지를 연결시켜 보면 그리스도인의 기쁨은 이 깊은 슬픔의 심연 속에서 인내함으로 주어진다는 것을 나타냅니다(욥 2:10, 13:15).
예수님의 승리적인 입성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나귀새끼를 통해서 겸손을 보여주며, 예수님께서 하신 입성의 결단을 통해서 충성을 보여 줍니다. 또한 나무가지의 의미에서 인내를 보여 줍니다.
사람들이 자기의 겉옷을 벗어서 폈다고 하는 것은 최고의 존경과 최고의 존귀를 나타낸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영광 돌리기 위해 살아야 합니다. 그가 기뻐하시는 일, 그를 존귀케 하는 일이라면 어떠한 희생도 각오하고 드릴 줄 알아야 될 것입니다.
오늘 십자가를 지시기 위하여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시는 예수님, 이것은 곧 재림하실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이라고 어떤 신학자는 말했습니다. 다시 오실 예수 그리스도 만왕의 왕, 심판주로 나의 구주가 되신 그 예수 그리스도를 맞을 준비를 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이제부터는 주님의 뜻대로 순종하며 예수님의 지배만 받으며 사시기를 바랍니다.
묵상할 내용
1. 종려주일에 일어난 일을 설명하십시오.
2. 우리는 어떻게 재림의 주를 맞을 준비를 하여야 합니까?
35일째 4월2일 고난주간 첫날
하나님의 집에 대한 열정으로 가득차시기를 바랍니다.
마태복음 21:12-16
사순절기간은 나의 정결을 회복하는 기간이면서 내가 속한 교회가 주님 앞에 순결한 신부로 단장하는 기간이라고 믿습니다. 성전청결 바로 그것이 바로 고난 당하신 주님의 바램입니다. 오늘의 말씀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셔서 성전에 들어 가셨을때 그 성전에서 벌어지고 있는 참담한 모습을 보시고 분노하셔서 하나님의 집을 깨끗하게 하신 사건입니다.
우리는 살아 가면서 타성에 젖어서 하나님의 집의 참뜻을 잊어 버리고 살아갈 때가 많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집에 있지 말아야 할 것이 있고 있어야 할 것이 없는 그런 상황이 벌어질 때가 많이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너희 몸이 그리스도의 지체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고전6:15)“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의 각 부분이라”(고전12:27)“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고전6:19) “교회는 그의 몸이니”(엡1:23) 라고 말씀 하십니다.그러니 이 말씀을 다시 살펴보면 나의 삶과 교회를 깨끗하게 되어짓기를 원하시는 주님의 뜻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오셨을때 우리의 삶이 주님께서 원하시는 삶이 아닐때 우리 교회가 주님께서 원하시는 일을 행하지 않을때 이런 결과가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을 받으리라 하였거늘 너희는 강도의 굴혈을 만드는도다”
우리는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하여 주님의 집에 있지 말아야할 것이 있을 때는 과감히 내어 버리고 있어야할 것이 없을 때에는 채워 넣는 그런 결단의 역사가 일어나야 합니다.
그럴려면
교회에 대한 뜨거운 열정이 있어야 합니다. 주님께서 성전을 깨끗하게 하신 것은 가슴 가운데 뜨거운 열정이 있어서입니다. 우리 신체는 머리와 가슴까지는 한 30㎝정도 밖에는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말씀을 받고서 살아가면서 머리로는 깨닫지만 가슴이 뜨거워지지 못하는 모습을 많이 봅니다.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고는 아닙니다.
아버지 집에대한 뜨거운 열정이 있어야 합니다.그 열정은 아버지를 예배하기 위하여 지어놓은 성전이 그 본래의 의도와는 벗어난체로 있었을 때 하나님은 분노 하셨습니다.우리의 삶에서도 거룩한 분노가 있어야 합니다.내가 아끼지 아니하고 내가 사랑하지 아니하고 내가 돌보지 아니하다면 교회의 부흥은 기대하지 못합니다. 가슴속에 뜨거움이 없는 자를 주님은 쓰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게서는 가슴에 뜨거운 열정을 가지고 있는 자를 쓰십니다.
왕상19:10절에 엘리야는 “내가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열심이 특심하오니.”
하나님에 일에 대하여 다른 사람보다 열심이 특심하였을때 하나님께서는 그를 불러서 쓰셨습니다. 이방 선지자와 싸워 이기게 하셨고 3년 6개월 동안 비가 오지않게도 하고 비가 오게도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무너진 제단을 만민이 보는 앞에서 다시 쌓기도 하였습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첫번재 성전에 오셔서 성전에서 일하셨을때에도 “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이 나를 삼키리라” (요2:17)한 그 말씀으로 일을 이루셨습니다.
사울도 행22:3 “하나님께 대하여 열심하는 자라” “내가 내 동족 중 여러 연갑자보다 유대교를 지나치게 믿어 더욱 열심이 있었다고 말합니다”계시록 3:19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열심내지 못한 것을 회개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진실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열심을 입어 겉옷을 삼으시고” (사59:17)가슴속에 뜨거운 열정을 가지시는 고난주간이 되시기 바랍니다.
묵상할 내용
1. 사순절 기간은 나를 주님 앞에 어떻게 해야할 기간입니까?
2. 고난주간 동안에 내가 입어야할 복장은 무엇이어야 합니까?
36일째 4월3일 고난주간 둘째날
예수님이 세우신 성찬에 참여하십시다.
마태복음 26:26-30
한 신학자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정원을 산책하고 있는데 정원 한 모퉁이에서 개미들이 저들의 양식을 나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저들 앞에 큰 산맥이 가로막혀서 도저히 저들의 그 양식을 옮기지를 못하고 있었습니다. 물론 그 신학자가 보기에는 전혀 무시해도 될 그런 흙이 약간 높게 싸여져 있는 것이었는데 개미들에게는 난공불락의 성과 같았습니다.이 광경을 보고있던 그 신학자는 개미들이 측은하고 불쌍해서 허리를 굽혀서 개미들의 양식을 그 산맥너머로 옮겨주었습니다. 그 결과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뭐 이상한 물체가 닥아오더니 자기들이 그렇게 힘들여 옮기고 있는 그 먹이꺼리를 들어 옮기고 말았습니다. 놀란 개미들은 혼비백산 하였습니다. 다 뿔뿔이 흩어져 버렸던 것입니다. 도와주려던 것이 개미들에게는 더 큰 재앙이 되고 말았던 것입니다.
이 광경을 보던 신학자는 생각했습니다.
"내가 개미를 진정 도와주기를 원한다면 내가 개미가 되어서 저들과 함께 동거동락을 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겠구나" 생각하고, 더불어 그 신학자는 이런 상황속에서 왜 예수님께서 굳이 인간의 몸으로 이땅에 오시고, 인간들과 더불어 생활을 하시고 결국에는 십자가에서 모진 고통끝에 운명하셨는가를 일부나마 깨닫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시지만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하셔서 친히 인간이 되신 것입니다. 성찬은 바로 예수님께서 인간이 되셔서 인류를 위하여 자신을 주신다는 것을 분명하게 하셨습니다.
“그들이 먹을 때에 예수께서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받아서 먹으라 이것은 내 몸이니라 하시고/또 잔을 가지사 감사 기도 하시고 그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그러나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포도나무에서 난 것을 이제부터 내 아버지의 나라에서 새것으로 너희와 함께 마시는 날까지 마시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26-29)
지금은 고난주간입니다. 금년 고난주간에 우리는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이세상에 오셔서 자신의 살과 피를 아낌없이 주신 예수님을 기념하는 새로운 도전을 통하여 진솔한 믿음의 길을 가는 믿음의 사람이 되십시다.
묵상할 내용
1. 하나님이신 예수님은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무엇이 되셨습니까?
2. 예수님께서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세우신 것은 무엇입니까?
37일째 4월4일 고난주간 셋째날
내 삶의 옥합을 깨트립시다.
마태복음 26:6-13
고난주간 동안에 예수님의 장사를 위하여 옥합을 깨트린 사실은 우리들의 믿음에 항상 새로운 헌신의 귀감이 됩니다. 옥합을 깨트린 마리아의 갑작스런 행동에 대하여, 제자들은 귀하고 값비싼 향유 한 옥합을 깨뜨린다하여 책망을 하였지만 예수님께서는 주의 복음이 온 천하 어디든지 전파되는 곳에 이 여인의 행한 일도 말하여 저를 기념하게 될 것이라고 오히려 여인을 칭찬하였습니다.
요12:5에 의하면 이 향유 한 옥합의 가격은 3백 데나리온이나 되었다고 하는데, 3백데나리온은 그 당시 일반 노동자 한 사람의 일년치 품삯에 해당되는 금액입니다.
첫째,마리아의 행동은 예수님에 대한 극진한 사랑의 표시입니다.
마리아는 요12:1에 나타난 나사로의 누이였으며, 예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을, 예수님을 대접하기 위해 분주했던 언니 마르다보다 더 사모했던 여인입니다. 한마디로 예수님을 향한 지극한 사랑이 넘치는 여인인 것입니다. 다시말하면 마리아가 예수님에 대한 사랑이 없었다면 그리고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향유를 깨트리지 못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삶의 방향과 목적이 과연 무엇을 위해 꾸려나가는지, 극진한 사랑을 예수님께 드리고 있는지 살펴봐야 합니다.
둘째 마리아의 행동은 전적인 헌신의 표시입니다.
마리아가 옥합을 깨트리자 제자들은 불만을 표시했고, 오히려 그것을 팔아 가난한 이들은 구제하는 것이 좋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오히려 제자들을 꾸짖습니다.
어찌보면 인간의 이성으로 판단할 때 제자들의 행동은 상당히 설득력이 있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마리아는 자신이 갖고 있는 가장 귀한 것으로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께 향한 전적인 헌신의 표현이었던 것입니다.
온 인류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죽으신다는 것을, 평상시 잘 귀담아 들었기에 자신의 가장 귀한 것을 깨트릴 수 있었던 것입니다. 믿지 못하고, 은혜받지 못한 사람은 흉내내기도 힘듭니다. 오히려 제자들과같이 오류를 범하기 십상입니다.
전적인 헌신은 가장 좋은 것을 드리는 것이며, 이것은 단순한 허비가 아닌 상급이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장차 오실 예수님에 대한 마라나타의 소망이 없이는 헌신과 희생은 어렵습니다. 물질과 시간을 드리는 것과 몸바쳐 봉사하는 것이 아깝다면, 이것은 그리스도의 그 크신 사랑을 체험하지 못한 신앙이라 할 수 있습니다.
열심히 봉사하려는 사람들은 비방을 받을 수가 있습니다. 이것은 오히려 당연한 결과입니다. 그러나 이것 때문에 중단해서는 안되며, 오히려 감사함으로 극복해 나가야 합니다. 아무리 재능이 많고, 물질이 많아도, 혹은 믿음이 좋아도 주를 위해 깨트려 사용하지 않으면 아무 것도 아닌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자신의 가장 귀한 것을 깨트릴 수 있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반드시 기억하시고 기쁘게 받아 주신 다는 것을 기억하는 고난주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묵상할 내용
1. 마리아가 깨트린 것은 무엇입니까?
2. 나의 옥합은 무엇이며 주님을 위하여 깨트릴 용기가 있습니까?
38일째 4월5일 고난주간 넷째날
십자가 위에서의 일곱 말씀은 구원 성취의 선포였습니다.
누가복음 23:34,43-46, 로마서9:34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있는 마가 요한의 다락방에서 최후의 만찬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깊은 밤에 겟세마네 동산에 가셔서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시옵소서" 하는 마지막 기도로 십자가를 짊어지실 준비를 하였습니다. 가룟 유다가 앞장서서 인도해 온 유대 관원들이 예수님을 체포하였습니다. 끌려간 예수님은 대제사장들로부터 멸시와 천대를 받았습니다. 로마 총독 빌라도와 로마 병정들로부터 조롱을 당하시고 가시관을 쓰셨습니다. 채찍을 맞았습니다. 온 몸이 찢기시고 피를 흘리셨습니다. 그리고 십자가를 지시고 골고다로 올라갔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금요일 아침 9시에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오후 3시까지 여섯 시간 동안 십자가 위에서 고난을 당하시고 운명하십니다. 그 때의 고통을 시편 22편에 예언하고 있습니다. "나는 벌레요 사람이 아니라 사람의 훼방 거리요 백성의 조롱거리니이다"(시22:6) 하였습니다. "많은 황소가 나를 에워싸며 바산의 힘센 소들이 나를 둘렀으며", "나는 물같이 쏟아졌으며 내 모든 뼈는 어그러졌으며 내 마음은 촛밀 같아서 내 속에서 녹았으며", "내 힘이 말라 질그릇 조각 같고 내 혀가 잇틀에 붙었나이다 주께서 또 나를 사망의 진토에 두셨나이다", "개들이 나를 에워쌌으며 악한 무리가 나를 둘러 내 수족을 찔렀나이다" 하였습니다. 이 예언의 말씀과 같이 찢기시고 상하셔서 보배로운 피를 흘리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 위에서 일곱 마디 말씀을 하셨는데 그것은 구원 성취의 선포였습니다.
①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눅23:34)용서의 말씀입니다.
②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눅23:43) 천국의 말씀입니다.
③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또 제자에게 이르시되) 보라 네 어머니라"(요19:26,27) 효도의 말씀입니다.
④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마27:46) 고난을 책임지신 말씀입니다.
⑤ "내가 목마르다"(요19:28) 생수의 근원의 말씀입니다.
⑥ "다 이루었다"(요19:30) 구원 완성의 말씀입니다.
⑦ "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눅23:46) 복귀의 말씀입니다.
죽어 장사 지낸바 되었지만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예수님은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로마서 8장 34절에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하였습니다. 이 십자가 위에서의 한 마디 한 마디의 말씀은 하나님의 사랑이요 예수님의 사랑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누구를 위한 십자가입니까? 예수님 자신을 위한 십자가였습니까? 아닙니다. 나와 우리를 위한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고난은 누구를 위한 고통이었습니까? 예수님 자신의 죄 때문이었습니까? 아닙니다. 나와 우리를 구원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 나와 우리의 죄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았다는 이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 십자가 앞에서 무릎을 꿇어야 합니다. 예수 십자가를 나의 십자가로 바라보아야 합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을 바라보면서 내가 져야 할 저주의 십자가를 예수님께서 대신 지셨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묵상할 내용
1. 가상칠언은 무엇을 위한 선포입니까?
2. 가상칠언을 열거하시고 묵상하십시오.
39일째 4월6일 고난주간 다섯째날
골고다에 세 십자가가 서있었습니다.
누가복음 23:32-43
기독교인에게 일년 중 가장 중요한 한 주간은 고난 주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종려주일에 예루살렘 성에 입성하시고, 금요일에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다가 , 죽은 지 3일 만에 부활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실 비장한 각오로 입성하실 때 많은 무리들이 종려나무(Palm tree) 가지를 흔들며 환영했기 때문에 종려주일이라고 하고 오 금요일을 성 금요일이라고 하며, 오는 주일은 사망 권세를 이기신 부활절로 지키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실 때 갈보리 언덕에 세 십자가가 서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양옆에 두 행악자 즉 두 강도가 함께 처형당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이사야서와 시편에 예언된 말씀이 성취된 것입니다(이사야 53장, 시편 22편 6-8절, 시편 22편 18절). 세 십자가가 서 있는 이 언덕을 갈보리(Calvary)라고도 하고, 골고다(Golgotha)라고도 하는데, 갈보리는 라틴어이고 골고다는 아람어 말입니다. 그 말의 뜻은 해골 곳(The place of skull)이란 뜻인데 헬라어로는 크라니온(Kranion)이라고 하는데 왜 해골 곳이라고 하는가 하면 그 언덕을 멀리서 바라볼 때 해골처럼 생겼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이 골고다 언덕에 세 십자가가 서있었습니다.
1. 자기 죄 값으로 멸망한 강도(행악자malefactor)의 십자가(멸망의 십자가)
2. 죄를 회개하고 은혜로 구원받은 자의 십자가 (회개의 십자가)
3. 남의 죄를 위하여 죽은 구원의 십자가 (구원의 십자가)골고다 언덕의 세 십자가 중에 가운데 우뚝 세워진 십자가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의 십자가로서 자기의 죄가 아니라 남의 죄를 대신 지시고 죽임을 당하신 십자가입니다. 죄인을 구원하는 구원의 십자가이며 기독교의 영원한 표상이 되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9장 13절에 염소와 송아지의 피와 암 송아지의 재를 부정한 자에게 뿌려 그 육체를 정결케 하며 거룩케 하거든 하물며 영원한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으로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못하겠느뇨 라고 하셨습니다.
속죄 제물로, 하나님의 어린양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를 힘입어야만 구원받고 천국에 들어갈 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나는 이 고난주간에 주의 십자가를 바라보면서 나의 죄를 고백하고 나의 영혼을 부탁하는 자리에 있어야할 것입니다.
묵상할 내용
1. 갈보리 언덕의 세 십자가는 누가 달린 것입니까?
2. 주님의 십자가는 어떤 의미를 나타내고 있습니까?
40일째 4월7일 고난주간 여섯째날
고난당하신 메시아를 깊이 생각하십시다.
히브리서12:1-3, 이사야 53:4-6
주경 학자들은 이사야 40장~66장을 구약 속의 신약(New Testament book of Old Testament)이라 부릅니다. 이유는 장차 예수 그리스도가 구속자로 오셔서 인간을 구원하시게 될 사건을 예언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사야 53장은 그 중의 한 장으로 메시아이신 예수님이 세상에 오셔서 겪으실 고난과 승리를 예언하고 있습니다.
이 예언대로 예수님은 세상에 오셔서 온갖 멸시와 천대, 굴욕과 고통을 다 겪으셨고 결국은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습니다. 그 심자가의 참상과 깊이를 헤아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1. 주님은 우리 때문에 고난을 당하셨습니다.
4~5절을 보면 "우리"라는 말이 일곱 번이나 반복됩니다.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예수님은 죄가 없습니다. 그 어떤 잘못도 없습니다. 실정법을 위반한 일도 없고, 도덕률을 깬 일도 없고, 파렴치한 일을 저지른 일도 없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십자가에 죽어야 했습니다. 그 이유를 본문 4~5절은 "우리" 때문이었다고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2. 주님은 견디기 어려운 고통을 당하셨습니다.
4절을 보면 "질고를 지고 슬픔을 당했다"고 했고, 5절을 보면 "찔렸고 징계를 받았고 채찍에 맞았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7절을 보면"곤욕을 당했다"고 했고, 8절을 보면 "심문을 당하고 끌려갔다"고 했습니다.
죄가 있어 고통을 겪고, 창에 찔리고, 매를 맞고, 심문을 당하고, 끌려갔다면 할 말이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잘못한 일이 없습니다. 그런데 온갖 수모와 멸시와 천대와 고통을 다 겪으셨습니다.
3. 고난 당하신 주님을 깊이 생각하고 사모하시기를 바랍니다.그러므로 우리는먼저, 날마다 주님의 고난을 생각하고 고백하고 감사해야 합니다. 왜 죽으셨는가, 왜 고통을 받으셨는가를 늘 생각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크신 사랑을 감사해야 합니다. 둘째로, 주님의 사랑을 말해야 합니다. 나는 주님때문에 죄 사함 받고 구원받았노라고, 주님은 나를 살리시기 위해 죽으셨노라고, 입을 열어 다른 사람에게 말해야 합니다. 셋째로, 나도 그 사랑을 실천해야 합니다. 사랑을 받은 사람은 그 사랑의 빚을 갚을 의무가 있습니다. 내가 받은 그 사랑을 실천하기 위해 주님을 사랑하고 형제를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해야 합니다.
주님의 이놀라운 사랑에 감격하고, 그 사랑을 감사하고, 그 사랑을 실천하는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묵상할 내용
1. 예수님은 십자가 상에서 어떤 일을 겪으셨습니까?
2. 예수님은 왜 고난을 당하셨습니까?
4월8일 부활주일
예수님의 부활을 믿고 증거하십시다.
요한복음 20:1-18
부활은 우리 신앙의 핵심이요 소망입니다. 부활의 역사성과 우리의 소망을 살펴보십시다.
1. 빈 무덤을 찾아간 믿음 없는 제자들의 모습이 안타갑습니다.(1-10)
구약성경에도 예수님의 부활을 예언하였고(사 53:5, 시 16:10) 주님께서도 말씀하셨습니다(마 16:21, 17:23, 20:19). 그러나 그들은 말씀을 기억하지도 않고 믿지 못했습니다. 말씀대로 예수님은 부활하셨고 무덤은 빈 무덤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시신은 인간의 손이 아닌 하나님의 능력으로 나오신 것입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사람의 믿음과 관계없이 역사적 사건입니다. 다른 사람은 믿지 못하나 우리는 믿고 그 구원의 역사에 참여한 것을 감사드리십시다.
2. 부활하신 주님을 처음 만난 영광을 차지한 마리아의 신앙을 본받읍시다.(11-16)
베드로와 요한은 빈 무덤을 보고 믿음 없이 집으로 갔으나 마리아는 자리를 떠날 수 없었습니다. 이때 두 천사를 발견하였습니다(12). 천사가 여자여 어찌하여 우느냐! 하였습니다. 빈 무덤은 슬픈 일이 아니요 기쁜 일입니다. 마리아는 예수의 시신을 찾고자 하였으나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게 되었던 것입니다.(16). 그러므로 지속적으로 예수님을 뜨겁게 사랑하는 자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날 수 있고 동행할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들도 기쁜 일을 슬프게 보고 있지 않는지 자신과 주변을 살펴보십시다. 실로 부활의 약속과 그 말씀을 깨닫지 못하면 우리의 기쁨도 감소될 것입니다.
3. 부활하신 예수님을 최초로 증거한 마리아의 열성을 본받읍시다.(17-18)
예수님과의 영적 교제는 깊은 사색에 잠기게 하거나 세상을 멀리하게 하지 않고 즉시 부활하신 예수님을 증거하는 실증적인 믿음의 사람이 되게 합니다. 무덤에 달려갔다고 끝까지 주님을 그리워한 마리아는 부활하신 주님을 만났고, 부활의 증인으로 최초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우리도 예수님의 부활을 믿고 믿음 그대로를 증거할 수 있는 성도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그리하여 예수님의 부활의 소식을 전하여 우리의 이웃을 하나님의 자녀의 영광에 이르게 하십시다. 이 일은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십시다.(딤후 4:27).
예수님의 부활은 역사적 사건입니다. 또 우리들의 부활의 예표가 됩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심으로 사망의 세력은 그 힘을 잃고, 사망 권세는 정복되고 생명의 놀라운 은혜의 역사가 이루어져 영생의 사실이 현실화되었으니 세상이 당장 끝이 난다고 하여도 두려울 것이 없습니다. 그날 우리는 부활하여 영생의 자리 하나님의 나라 천국에 이를 것이기 때문입니다.
묵상할 내용
1. 무덤에 달려간 제자들이 만난 것은 무엇입니까?
2. 부활을 최초로 목격한 마리아의 무엇을 본받아야할 것입니까?